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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가 서현 “건축은 사회를 담는 그릇”

『건축가 서현의 세모난 집 짓기』 제주의 바다를 품은 세모난 집 ‘시선재示線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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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은 돈을 적게 들이고 건물을 짓는 사회적 분위기, 통념이 형성되어 있잖아요. 그리고 장인이 없죠. 일본 목수 수준은 거의 묘기 수준이에요. 한국과는 상대가 안 돼요. 현장에 가면 항상 미치죠.(웃음)

이제 우리는 도면 점검을, 아니 악보 검토를 마쳤다. 남은 것은 악보에 근거한 연주다. 이때 등장하는 것이 시공사다. 우리의 연주자다. 연주회장에서는 오보에 주자가 낭랑하게 A음을 먼저 내면서 전체 소리를 조율한다. 콘서트는 그렇게 시작한다. 우리의 공사는 요란한 굉음으로 시작했다.(179쪽)

 

『건축을 묻다』, 『빨간 도시』 등 건축가의 시선을 다양한 글로 적어온 건축가 서현. 그는 글 쓰는 건축가이자 집 짓는 건축가이기도 하다. ‘아름다운 제주 건축 7선’에 선정되기도 한 주택 ‘해심헌’을 눈여겨본 건축주가 선물 같은 집을 지어달라고 청해온 것도 그런 연유였다. 제주에 자리잡은 세모난 집 ‘시선재’는 그렇게 시작되었다.


서현은 이번 책 『건축가 서현의 세모난 집 짓기』를 통해 “리허설 과정을 보여주겠다는 생각”이었다. 모름지기 콘서트는 무대 뒤 수많은 연습과 시행착오에서 시작되는 것이며 “지휘자가 손가락 흔든다고 지휘가 되는 게 아니고 그 전에 수많은 사람들을 조율하는 과정이 다 필요하다는 것을 알도록 하기 위함”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시선재’가 지어지는 아주 세세한 순간순간을 지켜보는 일은 얼마나 새로운지. 이 아름다운 건축물을 만들기 위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의 고민과 타협, 선택의 순간이 있었는지 지켜보는 일은 독자로서도 행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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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영채

 

 

사람의 인생에 개입하는 일


제주에 주택 ‘시선재’가 세워지는 과정을 담은 책인데요. 원래 책 출간 계획은 없으셨던 거죠?


없었어요. 워낙 짓는 과정이 머리에 들어있으니 책 쓰는 건 별 고민 없이 간단하게 진행했고요. 이게 일곱 번째 책인데요, 그 전에 쓴 책들은 조바심도 나고 했는데 이 책은 그런 것 없이 덜컥 나왔어요. 처음부터 끝까지 쭉 가는데 일주일 만에 끝났어요. 나머지 시간은 정리하는 정도였고요. 몸체가 금방 만들어졌기 때문에 제 입장에서는 제일 쉽게 쓴 책 중 하나예요.

 

‘몸체’ 말씀하셨는데, 글을 쓰는 것과 건축에 공통점이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구조체를 만든다는 점에서는 비슷한 게 있어요. 그런데 글 쓰는 것보다 건물 만드는 게 훨씬 힘들죠. 건물 만드는 건 여러 사람들의 관심이 개입되기 때문에요. 항상 타협해야 하는데 그 타협이 대개는 스트레스를 유발한다, 그런 차이점은 있어요.

 

책 말미에 ‘어딘가 한 줌의 가치라도 있다면’ 독자가 취했으면 한다고 적으셨어요. 글을 쓴 입장에서 꼽는 가치도 분명히 있을 텐데요.


대개 사람들이 건물 설계한다고 하면 딱 나오는 얘기가 이거예요. ‘쓱쓱 그리면 되는 것 아니냐.’그 사람들은 외관, 투시도를 그리면 되는 것 아니냐고 생각하는 건데요. 실제로 건물 만드는 과정은 온갖 잡다한 것들을 다 구성하는 과정에서 이루어지죠. 도면을 보면 다들 깜짝 놀라요. 철근 가닥부터 해서 타일 나누는 것들, 심지어 창틀까지 다 정리해서 가야 하거든요. 또 그 다음 나오는 얘기가 ‘설계비는 왜 이렇게 비싼데?’, ‘왜 이렇게 오래 걸리는데? 니까 결국 무지한 자들이 무지한 방식으로 평가를 하게 되는 거죠.


이 책을 쓴 건 오케스트라로 치면 리허설 과정을 보여주겠다는 생각에서예요. 지휘자가 손가락 흔든다고 지휘가 되는 게 아니고 그 전에 수많은 사람들을 조율하는 과정이 다 필요하다는 것을 알도록 하기 위함이죠. 배경에 깔린 인간의 지적인 작업을 다 무시하고 그런 소리 좀 하지 말라, 하는 이야기예요. 책도 그냥 쓰면 되는 거 아니냐, 뭐 상 받았다고 떠들어, 이런 것과 똑같이 무식한 얘기죠. 눈에 보이는 것만 중요하게 생각하지 말고 거기까지 가는 과정이 얼마나 복잡하고 지난한지를 이해해주세요, 하는 얘기예요.

 

바로 그 지난한 과정을 대중들에게 전하는 것, 기록하는 것 자체가 의미 있는 작업이라고 생각해요.


거의 처음이라고 하더라고요. 신기해하는 사람들도 있어요. 다행입니다, 그렇게 보셨다니.(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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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 짓는 일을 두고 ‘살 사람의 인생에 개입하는 일’이라는 생각을 앞부분에 적으셨어요. ‘시선재’ 외에 여러 주택을 건축하셨는데 이에 대한 남다른 마음이 있을까요?


호기심. 이 사람들은 어떤 인생을 살고 싶을까, 이런 호기심이 있어요. ‘시선재’ 다음 지은 집은 파주에 있는 아들 둘을 둔 부부였어요. 이 집은 꿈이 동네 사람들 다 불러 모아서 영화 보며 맥주 마시는 거예요. 아파트에 사니까 그게 안 돼서 집을 지은 건데요. 이렇게 되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자유롭게 문턱 없이 이 집을 드나들 수 있느냐가 제일 중요하거든요. 결국 이들이 살고 싶어 하는 인생의 모습이 공간을 통해 번역이 되어야 해요. 번역을 하려면 그들이 원하는 인생의 모습이 공간에 보여야 하잖아요. 그 과정은 굉장히 흥미롭고 유쾌한 과정이에요. 물리적으로 짓는 과정은 문제가 많지만 처음에 도면 그릴 때까지는 굉장히 유쾌해요. 또 짓고 난 다음에는 대개 가치가 있고 보람도 있어요. 파주의 그 집은 네모난 집인데요. 건축주가 인생이 조금 바뀐 것 같다고 하더라고요. 실제로 바뀐 것이 보이기도 하고요. 그런 것은 건축가로서의 중요한 성취감, 가치라고 생각을 해요.

 

실제로 건축주가 원하는 것보다 건축가가 더 많은 것을 보여줄 수 있잖아요. 건축주가 원하는 것은 막연하기도 할 것이고요.


그렇죠, 자기가 필요로 하는 것을 말로 번역해내는 데 대개는 어려움이 있어요. 저는 말을 그대로 들으면 안 돼요. A라고 얘기하지만 정확히 머릿속에 들어있는 그림이 뭔지를 끌어내야 하는데 이건 꽤 중요한 일이에요. 그건 노력과 관심, 경험이 있어야 하는 것 같아요.

 

‘시선재’가 결국 세모난 집이 되는 결정이 순간도 감동적이었어요. 그것이 방금 말씀하신 내용에 닿는 부분일 것 같아요.


그 건축주도 대단히 독특한 사람이에요.(웃음) 외벽을 모두 유리로 하려던 첫 안을 딱 보더니 첫눈에 ‘아! 이거네요’했으니까요. 보통 한국 사람들은 무척 보수적이에요. 남들 안 하는 것 되게 하기 싫어하는데 이 건축주는 삼각형이라고 하니까 ‘야, 신기한데요, 좋아요, 기대는 하고 있었는데 진짜 좋네요’ 하더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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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현

 

 

건축은 사회를 담는 그릇

 

보수적인 환경이지만 새로운 시도를 하려고 하는 편이시죠?


저는 안 한 거 하고 싶어요. 말하자면 반복하는 인생 아니고 싶은 거죠. 지금은 주택만 이야기를 했는데요. 얼마 전에 주민센터 인테리어를 하나 했어요. 흔히 주민센터를 가보면 영역이 나뉘어 있어요. 한쪽에 공무원들이 있고 민원인들이 그들을 찾아가는 형태죠. 이상하더라고요. 민원대가 군데군데 놓여있고 그곳에 공무원이 앉아서 민원인을 맞는다면 갑과 을 관계, 적대적 관계, 대립구도가 아니고 말 그대로 서비스일 것 같았어요. 절충해서 완성을 했는데요. 준공한 다음 가서 들으니까 민원인들이 주인이 된 것 같은 느낌이 든다고 하더라고요. 제가 의도를 사전에 얘기한 것도 아닌데 의도가 다 읽히는 것 같다고 얘기를 하고요. 만세!(웃음)


제가 평소 주장하는 게 건축의 가치는 사회 모순에 대한 공간적 대안 제시라는 건데요. 주거 공간은 사실 모순이 적은 공간이긴 하고요. 밖으로 나가 기관이라는 곳은 그런 부분이 커요. 그런 공간을 바꿔서 ‘이런 게 옳다’고 보여주고 싶어요.

 

건축은 사회를 담는 그릇이라고도 하셨죠.


사회가 조직되어 있으면 어떤 그릇에 담겨야 하는데요. 그 사회는 유연하게 변하지요. 반면 건물은 고정된 구조체라 잘 안 변해요. 사회가 변하는 걸 건축이 항상 담을 수가 없어요. 결국 사회와 건축은 늘 모순 관계, 갈등 관계일 수밖에 없는데요. 문제는 건물이 안 변하다보니 사회의 변화를 건축이 잡아요. 건축이 결국 보수반동이죠. 사회 갈등을 만들어내는 거예요. 건축가는 그런 전 시대의 모습을 뒤집고 새로운 사회는 이런 공간에 담겨야 한다고 이야기하는 주체예요. 그것이 건축이 사회를 담는 조직체, 그릇이라는 얘기고요.

 

그렇다면 건축가는 사회가 어떻게 변화하는지 계속 보고 있어야 하겠네요. 건축이 어떻게 변화하는 사회를 담을 수 있을지 앞으로를 고민해야 하니까요.


오늘만 제대로 봐도 돼요. 모든 사회가 조직되어 있는 그 모습의 현재를 바라보는 것은 굉장히 어려워요. 미래까지는 잘 모르겠고요, 오늘만이라도 잘 보면 되는데요. 제일 좋은 사례가 학교일 것 같아요. 한국에서 제일 지체현상을 빚고 있는 공간이죠. 이전 시대의 학교는 훈육, 암기, 체벌, 반복에 의해 움직였어요. 공간도 그걸 요구해왔고요. 교실은 사각형 공간 한쪽이 창문, 반대쪽이 복도, 앞쪽에 칠판, 뒤쪽에 학급 게시판이 있죠. 학생들은 다 칠판을 바라보고 있고요. 이것은 뭐냐면 선생님 얘기를 무조건 따르라, 너희들끼리 얘기하지 마라, 이거예요. 21세기는 이런 교육이 유지되지 않아요. 아이들이 선생님보다 훨씬 똑똑하니까요. 특히 영어에서 그렇죠. 이건 일제시대의 흔적이거든요. 아이들을 빨리 천황폐하의 뜻에 따라 키워 전장에 내보내는 병영이 될 수밖에 없었어요. 문과, 이과를 나눈 것도 마찬가지고요. 학교 공간이 바뀌어야 하는데 결국은 학교가 바뀌어야 해요.

 

한국 사회의 오늘을 어떻게 보고 계세요?


지금 한국을 움직이고 있는 단 하나의 에너지는 ‘경쟁’이에요. 미국 대통령 선거에서 계속 얘기하는 건 ‘협력’이죠. 우리는 제일 좋은 사회를 만들었다, 서로 인정해서 다 같이, 검든 희든 히스패닉이든 뭐든 함께 살자, 하는 건데요. 한국 사회는 그렇지 않죠. 내가 너보다 더 많이 벌어야 하고, 더 지위 높아야 하고, 더 덩치 커야 하고, 더 큰 집에서 살아야 해요. 기관들도 그런 가치관에 의해 조직이 되어 있어요. 이게 옳지 않다고 얘기를 해야 하는데요. 어떻게 해야 하죠?(웃음) 이런 문제에 대한 비판적 시각을 갖기 위해 노력하고 있고요. 더 좋은 사회가 담기기 위한 공간 조직이 무엇이냐, 이런 것에 대한 가치는 갖고 있어요.

 

서울이라는 도시에 대해서도 이야기하신 글을 봤어요. 경쟁, 각자도생의 현현이라고 진단하셨죠.


대표적인 게 재개발이에요. 가진 자들을 위한 리그죠. 겉에 걸린 것은 경제적이고 능률적이며 우아한 도시의 형성이지만 기득권을 쥐고 있는 사람이 더 많은 기득권을 쥐게 해주는 도구가 재개발이거든요. 제일 어렵게 살아야 하는 사람들은 세입자들이죠. 요즘이야 대단위 재개발을 하면 세입자들에게도 임대권을 주는데 그것 역시 일정한 돈을 내야 해요. 못 내는 사람들은 갈 데가 없어요. 그런 모습이 2010년 정도까지 서울을 만들어왔고요. 그 과정에서 은행이 제일 돈을 많이 벌었죠. 대형 건설사도 그렇고요. 2010년까지 한국 사회를 이끌던 오피니언 리더들이 다 거기 앞장섰어요. 사단장 같은 사회지도자들이죠. 안에 담긴 인생을 보는 게 아니고 껍질만 보는 사람들이요. 그런 사회가 빨리 지나가야죠.

 

지나가고 있다고 보세요?


지나가고 있는 것 같아요. 문제는 그 사람들이 다 사라지지 않았죠. 여기저기 잠복해 있어요. 신문 보다보면 그런 가치관을 가진 사람들이 여기저기서 보여요. 불안해요.(웃음) 사회 변화가 한 번에 끝나는 게 아니기 때문에 그런 세대가 지나가야 하는데 아직은 안 지나가 있고, 여전히 그들이 주목받고 있어요. 위험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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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협이 없으면 큰 것을 잃기 쉽다

 

‘시선재’가 완성되는 과정에서도 여러 순간들이 있어요. 그 중 가장 힘들었던 순간은 언제였어요?


모서리 창이 벌어진 순간이죠. 이 집은 시작부터 끝까지가 저 모서리 창이었는데 갔더니 이만큼 벌어져있더라고요. 좌절이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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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현

 

현장에서 벌어지는 일들이라 계획을 수정해야 하는 순간이 굉장히 많더라고요. 선택의 순간, 결정을 내리는 선생님만의 기준이 있다면요?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인가를 놓치지 않는다, 덜 중요한 것들은 타협할 수 있다, 예요. 작은 것들에 대한 타협이 없으면 큰 것을 잃기가 굉장히 쉬워요. 많은 사람들이 개입하기 때문이죠. 사람들이 자존심을 걸고 일을 하는데 쓸데없는 것에 분쟁을 만들어 그들의 자존심을 긁으면 나중에 타협하기가 굉장히 어려워지더라고요. 필요 없진 않지만 중요도가 낮은 것들은 타협하고요. 적어도 흔들리지 않는 중요한 것 하나는 잡아둔다, 하는 거죠. 그러기 위해서 경험은 필요한 것 같아요. 어떤 게 중요하고, 중요하지 않은지 판단하려면 말이죠. 사안의 경중, 사태의 진행방향을 판단하는 것은 건축가에게 굉장히 중요한 것 같아요. 이 사업에서는 제일 중요한 게 모서리가 붙느냐 하는 것이었는데 그게 안 됐죠.(웃음)

 

예산 문제가 계속 나와요. 중요한 문제기도 하죠. 만약 예산 한계가 없다면 어떤 모습이 될까, 궁금하기도 했어요. 예산 문제가 없다면 다른 모습이었을까요?


아니요, 결국은 삼각형이었을 거예요. 그것에는 변함이 없고 대신 사용하는 재료들이 훨씬 더 비싸고 우아한 재료들이었을 텐데요. 실제로 그런 일은 없어요. 절대로 돈을 마음대로 쓸 수 있는 상황은 없어요. 0%에 수렴하므로 그것은 상정도 안 해요. 어제도 작은 도서관 견적을 받았는데 딱 두 배가 들어왔어요. 이제부터 계속 잘라야죠. 건축은 항상 그래요. 예산에 들어온 적이 한 번도 없어요. 백화점에서 물건 사는 것과 비슷해요. 마음에 드는 건 비싸잖아요. 그 다음부터는 타협해야죠. 좋은데 값도 싸네, 그런 것 보셨어요? 그런 건 없어요.(웃음)

 

건축이 공공재로서의 속성을 갖긴 하지만 예술적인 가치도 있잖아요. 이 둘의 균형을 많이 생각하실 것 같거든요.


예술적이라는 것은 아마 완성도 높은 건물을 이야기할 것 같아요. 좋은 건물. 또한 공공성이란 자기가 만들지 않은 것에 대한 배타적인 소유를 부인하는 것이겠죠. 토지는 소유자를 거슬러 올라가면 결국은 불법점거가 등장해요. 땅은 누가 만든 것도 아니죠. 그냥 점거했을 따름인데 자신의 소유라고 하는 것은 불법점거의 소지가 충분히 있어요. 도시의 경관, 도시의 역사, 이것 역시 내가 마음대로 처분하기는 어렵죠. 어떤 땅 위에 건물을 얹어서 나 혼자만 쓰겠다, 하면 공공성이 대단히 적은 것이에요. 주변 건물이 전부 네모난데 나 혼자만 동그랗게 해볼게, 이것도 공공성이 적죠. 여기서 건물의 완성도가 높은가 낮은가 하는 것은 조금 다르기도 하고요. 공공성이 없는 건축이 건축적 가치를 가지고 있다고 보기도 어려워요. 예술성이란 단어가 적당한지는 모르겠으나 건축의 공공성과 예술성이 서로 배치되는 얘기는 아니에요.

 

서울의 수많은 건물들이 그런 공공성을 가지고 있는지, 의문인데요.


2010년 이전에 만든 건물들이 대개 공공적이지 않았어요. 종로를 보면요, 이중 제일 공공적인 건물 사례는 교보빌딩이에요. 다른 건물들은 건물 앞에 차를 세워요. 세종문화회관, 정부청사도 앞에 차를 세우거든요. 교보빌딩은 뒤로 가서 차를 세우도록 했어요. 앞에는 공원처럼 만들어놓고 보도블록부터 1층까지 단이 한 개도 없죠. 다른 건물은 전부 단이 있어서 휠체어 못 들어가거든요. 그리고 교보빌딩은 지하에 누구나 들어갈 수 있는 상업시설, 책방을 넣어놨어요. 굉장히 공공적이죠.


종로의 건물들을 보면 앞에 나무도 멋있게 심고, 조각도 하고, 심지어 분수도 있는데요. 문제는 이 건물들 1층에 사람들이 들어갈 일이 없었다는 거예요. 은행 영업장, 증권사 대리점, 이러니까 철문을 다 내리면 똑같다고요. 사람들이 재개발 전에는 길가에서 꽃도 사고, 국밥 먹고, 반지도 사고 할 수 있었거든요. 지금은 이곳이 카페로 바뀌고 있죠. 이것은 시민들의 생활패턴이 사적 공간을 공공화 시키고 있다는 중요한 변수들이에요. 카페는 공공 공간이면서 사적 공간인 대단히 독특한 영업장이에요. 프랑스 혁명을 만든 게 신문과 카페죠. 그렇게 열린 공간이 도시에 많은 것은 대단히 건강한 모습이에요. 1층 은행 영업장들이 카페로 바뀌고 있다는 건 한국 사회가 개방적인 공간으로 진화하고 있다는 중요한 시험지라고 봐요. 이런 변화는 훌륭하다고 생각하고 있어요.

 

회의실도 1층으로 나오고, 공부방도 1층으로 나온 셈이네요.

 
그렇죠, 개별 공간이 공공 영역으로 나오는데 여기서 중요한 것은 숨기질 않는다는 거예요. 숨길 필요도 없죠. 개방적인 사회가 되는 건데요. 결국은 세대가 바뀌는 일인 것 같아요.


하나 더 이야기하면 이화여대 ECC예요. 그곳이 원래 운동장이었어요. 건축가가 제안한 것은 운동장 땅의 한 뼘도 잃지 않겠다는 거였어요. 그러면서 엄청난 공간을 그 안에 집어넣었죠. 층간구획도 별로 없어요. 끝내주는 제안이잖아요. 이런 게 건축의 공공성이라고 생각해요. 만약 어떤 인간이(웃음) 와서 그 자리에 커다란 건물을 세웠다면? 사람들 다 돌아서 지나가야 했겠죠. 바로 이런 게 건축의 가치일 거라고 생각해요.

 

다음 세대에 대한 기대가 있으신 것 같아요.


있죠. 한국 사회의 가능성은 경쟁력을 갖춘 세대의 등장인데요. 문제는 이전 세대가 파놓은 계층화의 고리를 뛰어넘기 어렵게 사회가 고착화되고 있다는 점이에요. 386세대가 가진 한계는 국제 경쟁력이 하나도 없다는 것이죠. 영어도 못하고 알고 보니 수학도 못해요.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 제목은 들어봤어, 이런 수준이에요. 다음 세대는 일단 영어는 훨씬 잘하고요. 도시 안에서 태어났으므로 농촌 경제에 근거한 도시 생활 즉, 무조건 자기 것이라고 점유하는 것 없고, 개방적이죠. 이야기를 나눠보면 확실히 달라요. 훨씬 낫죠. 문제는 사회가 이분화 되면서 저소득층이 사회의 상류층으로 이동하기가 대단히 어려운 구도가 되어 있다는 건데요. 진짜 큰 문제는 그 계층 분화의 가장 큰 분기점에 아파트가 들어와 있다는 거예요. 아파트가 건축 형식이기 때문에 좀 곤란한데(웃음) 아파트의 유무에 따라 사회가 양분되기 시작했으니까요. 이건 걱정거리지만 당분간, 제가 죽을 때까지 한국 사회의 미래는 큰 문제는 없을 것이란 낙관적 사고를 하고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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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당 있는 아파트

 

전에 비해 많은 사람들이 주거에 대한 고민을 하는 것 같아요. 아파트의 대안도 얘기하고요. 선생님께서 제시하고자 하는 대안도 있을까요?


2008년 이후 아파트가 유일한 대안이었다는 신화가 깨지고 있어요. 그 전까지는 아파트를 사면 값이 오른다, 지금 사지 않으면 도태된다고 생각했죠. 값이 오르지 않는 순간 아파트가 대안이 아님을 깨닫기 시작했고, 그래서 사람들이 마당 있는 데서 살고 싶다면서 판교, 동백, 파주, 이런 곳에 가기 시작했죠. 문제는 그들이 마당이 있는 아파트를 만들어놓고 산다는 거예요. 배타적인 공간이에요. 입구도 꽉 막혀 있고, 사람 사는 건 안 보이죠. 여기에 택지 개발을 하면서 담장을 만들지 말라는 조건을 내고, 담장이 투시형이다보니 건물이 바뀌었죠. 몸통이 담장이 되기 시작하고 중정을 만든 거예요. 이건 우리 식구들만 보이는 마당이죠. 지금 판교 가면 다 그래요. 게다가 이들이 출퇴근은 해야 하잖아요. 두 시간 동안 차 안에 있어요. 건강하지 않죠. 대안은 실제 마당이 있는 아파트가 아니겠느냐, 생각해요.


저는 스폰지처럼 구멍이 뚫려 있는 마당 있는 아파트가 대안이라고 생각하고 있어요. 그런데 주거 시장은 진화가 느린 시장이라 아직은 대안으로 받아들여지지 않고 있어요. 마당이 있으면 생활의 질이 확실히 달라지거든요. 지금은 밀봉되어 발코니까지 확장해서 안에서 지내면서 답답하다고, 마당이 있으면 좋겠다고 하잖아요. 아파트의 장점도 있기 때문에 그 안에 마당을 넣으면 된다고 생각해요. 도시 안에 있는 구멍 뚫린 아파트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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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건축과의 비교를 통해 한국 건축 현실에 대한 답답함을 토로하기도 하셨거든요. 반드시 고쳐졌으면 하는 부분이 있다면 어떤 걸까요?


두 종류예요. 하나는 싸게 짓는다, 다른 하나는 대강 짓는다. 대강 짓는다는 건 능력이 없어서 대강 짓는 것을 말하는데요. 일본은 가보면 달라요. 일본은 이미 2차 대전 때 항공모함도 만들고, 1960년대에 시속 300km 짜리 총알열차를 만든 사회예요. 장인들이 있죠. 일본의 중요한 자산 중 하나가 건축적 전통이거든요. 그래서 이들은 건물 만드는 데 우리보다 훨씬 돈을 많이 써요. 한국은 돈을 적게 들이고 건물을 짓는 사회적 분위기, 통념이 형성되어 있잖아요. 그리고 장인이 없죠. 일본 목수 수준은 거의 묘기 수준이에요. 한국과는 상대가 안 돼요. 현장에 가면 항상 미치죠.(웃음)

 

악순환인 것 같아요. 돈을 많이 들이지 않으니까 싼 인력을 써야 하고, 그 인력은 돈이 안 되니까 장인정신을 갖기 힘들고요.


그래서 바꾸는 게 오래 걸리죠. 제자가 바뀌는 데 얼마나 걸릴 것 같은지 물은 적 있는데요. 300년 걸릴 것 같다고 했어요. 그것도 잘 될 때고요. 안 그러면 더 걸릴 수도 있을 거예요.

 

건축가로서 가지고 있는 궁극의 목표가 있다면 들려주세요.


두 종류의 작업을 하는데요. 하나는 책을 쓰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건물을 짓는 것이에요.  둘 다 후배들로부터 가치를 인정받는 작업을 하고 싶다는 것이었어요. 책은 한 것 같아요. 당분간은 이 정도 책을 쓰는 선수가 후배들 중에도 없을 것이다, 하는 건방진(웃음) 확신이 있어요. 건물은 그게 아니에요. 죽기 전에 할 수 있을지 모르겠는데요. 건물을 통해 경지에 이르기 위해서는 시공하는 분들도 도와줘야 하고, 건축주도 도와줘야 하는데, 아직은 그렇게 가치를 인정받는 건물을 만들지는 못했어요. 가치를 인정받는 건물을 만드는 것이 제 인생의 건축적 목표죠.

 

글은 그렇다면 앞으로 계획이 없으신가요?

 
지금까지 쓴 책 중 제가 적극적으로 쓴 것은 네 권인데요. 분야를 따지면 쓸 것은 다 썼어요. 건축 입문자를 위한 책, 전통 건축, 건축 전문가를 위한 책, 그리고 이 책이 대중을 위한 책이고요. 뭐, 인생은 알 수 없죠.(웃음) 하지만 지금은 제가 건축계에서 책을 통해 할 일은 다 했다고 생각하고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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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가 서현의 세모난 집 짓기 서현 저 | 효형출판
인문적 건축, 도시 이야기를 꾸준히 쓰며 건축과 대중 사이의 담을 부지런히 허물어온 서현 교수의 첫 번째 집 짓기 책이다.도면과 스케치부터 건물 완공 후 사진까지 시각 자료를 다채롭고 디테일하게 수록한 것은 물론이고 끝없는 고민, 어이없는 실수, 겨우 해결했다 싶으면 또 등장하는 현실적 난관 등 대충 넘어갈 법한 이야기까지 덮어두거나 포장하지 않고 솔직하게 써내려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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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신연선

읽고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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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의 죽음으로 폐허가 된 열 살 소녀의 세계. 작가는 그의 첫 소설인 이 작품으로 최연소로 인터내셔널 부커상을 수상했다. ‘한발 물러나 읽을 수 있는 소설이 아니’라는 부커상 심사평과 같이, 이야기는 상실과 폭력, 슬픔에 잠식된 세상, 그 피할 길 없는 삶의 가운데로 순식간에 독자를 데려간다.

고미숙이 동양 고전에서 찾아낸 지혜

고전평론가 고미숙이 독자와 함께 읽기를 제안한 작품은 『동의보감』과 『숫타니파타』다. 몸에 관한 동양의 담론을 집약해낸 『동의보감』, 2,600년이 넘는 시간 동안 인간의 마음과 고통의 문제를 고민해 온 불교의 사유를 지금 여기로 불러온다.

피터 슈라이어, 그의 삶과 디자인 철학

세계적인 디자이너 피터 슈라이어. 독일 시골의 식당 한 켠에서 그림을 그리던 소년이 유럽을 넘어 세계적인 디자이너가 되기까지, 그의 삶과 디자인 철학을 한 권에 담았다. 새로운 도전과 방향성을 제시해온 그의 디자인에서 예술적 영감은 물론 미래를 창조하는 질문에 대한 답을 얻게 될 것이다.

진심을 다해 투자한다

주식 입문 5년 만에 55억의 자산을 일군 평범한 가장의 주식투자 이야기. 의사가 되었지만 미래를 장담할 수 없는 현실에 투자를 시작했고, 그 결실로 내 집 마련에 성공한 성현우 저자가 지난 5년간의 주식투자 경험과 노하우, 기록에 간절함을 담아 전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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