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색

조선시대 여름 나기 2

조선시대에도 한여름 피서 여행을 떠났다?

  • 페이스북
  • 트위터
  • 복사

한여름에도 성리학의 규율 속에 단정한 복장을 갖추는 것이 미덕이었던 선비들은 여름철 더위를 이기기 위한 방법으로 발을 시원한 물에 담그는 ‘탁족’이나 ‘산행’을 즐겼다.

그렇다면 무더운 여름날 시원한 강과 계곡, 바다를 찾아 떠나는 피서는 조선시대에도 있었을까? 비행기를 타고 동남아시아 등지로 여행을 가는 피서야 당연히 불가능했을 테지만 더위를 피해 시원한 곳을 찾는다는 의미의 피서는 조선시대에도 있었다. 특히 조선시대 사람들이 신분의 높고 낮음을 막론하고 즐기던 피서법이 제대로 녹아들어 있는 세시풍속으로 음력 6월 보름날을 ‘유두’라 하여 더위를 쫓는 명절로 여겼다. 
 

크기변환_유두날.jpg

단오보다는 계곡으로 피서 온 유두날의 모습을 보여주는 신윤복의 단오풍정(출처-간송미술관)

 

본래 ‘유두[流頭]’는 동류수두목욕[東流水頭沐浴]의 약자로 양기가 왕성한 동쪽으로 흐르는 물에 머리를 감고 목욕을 하며 불길한 것을 씻어낸다는 뜻이다. 이날은 식구들이 모두 맑은 시냇물이나 산속 폭포를 찾아가서 미리 마련한 음식을 먹으며 머리를 감고 몸을 씻은 뒤 시원하게 하루를 보내곤 했다. 유두날을 잘 보내면 여름 내내 질병에 걸리지 않고 더위를 먹지 않아 건강할 수 있다고 믿었다.

 

한여름에도 성리학의 규율 속에 단정한 복장을 갖추는 것이 미덕이었던 선비들은 여름철 더위를 이기기 위한 방법으로 발을 시원한 물에 담그는 ‘탁족’이나 ‘산행’을 즐겼다. 탁족이라는 용어는 “창랑의 맑은 물로는 갓끈을 씻고, 창랑의 흐린 물로는 발을 씻는다 [滄浪之水淸兮 可以濯吾纓 滄浪之水濁兮 可以濯吾足].”라는 <맹자(孟子)>의 글귀에서 유래된 것으로 한양에 거주하는 양반들은 남산과 북한산 일대의 계곡에서 탁족을 즐기곤 했다. 유두 행사나 탁족이 당일치기 여행의 개념으로 가까운 계곡이나 냇가, 폭포에 다녀오는 피서라면, 양반들의 산행은 여러 날에 걸쳐 이루어지는 장기피서 여행이었다. 경치가 아름답고 계곡물이 시원한 산으로 여름 더위를 피해 장기간 머물다 오는 산행은, 주변의 가까운 지인, 스승, 제자들이 함께 떠나는 것으로 술과 음식을 준비해 가서 먹고 쉬며 더위를 피해 학문을 이야기하는 자리를 마련해 주는 것이기도 했다.

 

 

더위에는 몸의 기운을 북돋워주는 단백질 공급이 필수

 

조선시대에는 어떤 보양식으로 여름철 원기를 충전했을까?  흔히 보신탕이라 불리는 개고기탕을 먼저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 물론 조선시대사람들이 개고기를 여름 보양식으로 먹었던 것은 사실이지만 그것이 조선시대 사람들과 더 나아가 그 후손인 오늘날 대한민국 사람들까지 한데 묶어 무조건 비난하는 이유가 되어서는 곤란하다. 여기에는 조선시대 사람들 나름의 이유가 있었기 때문이다. 인류는 본래 태어나 삶을 영위하는 장소에서 나고 자라는 다른 생명체들을 먹고 소화시키는 데서 에너지를 얻고 살아가는 동물이다. 조선시대에 삼복이라고 불리는 초복, 중복, 말복에는 더위를 이겨내고 몸의 기운을 북돋워주는 음식을 먹고 시원한 곳에서 몸을 쉬게 하는 것을 복달임이라고 불렀는데 이를 위해서는 양질의 단백질 공급이 필수 요소였다.

 

크기변환_개장국.jpg

개장국

 

궁중이나 경제력을 갖춘 양반들은 소고기를 넣은 장국을 뜨끈하게 끓여 먹거나 닭에 갖가지 몸에 이로운 한약재를 넣고 달여낸 삼계탕을 먹어 기운을 북돋우고 단백질을 공급받았지만 일반 서민들에게는 지나치게 비싼 음식이었다. 소는 평생의 생업인 농사를 위한 농기구로 떠받들어도 모자란 판이었으니 나를 위해 소를 잡아 그 고기를 넉넉하게 넣고 끓여먹는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고, 같은 닭을 끓여도 백숙이라 하여 물과 닭만 넣고 푹 삶은 탕을 먹었던 서민들은 이나마도 달걀을 낳아 소득을 올려줄 닭이라는 비싼 재료를 사용한 음식이기에 특별한 날 큰마음을 먹지 않는 한, 함부로 접할 수 있는 음식이 아니었다. 이러한 상황 속에 온 동네에 비교적 많은 개체수가 확보되어 있고, 한 번에 여러 마리의 새끼를 수시로 낳으며, 훔쳐갈 만한 물건 없이 빡빡하게 사는 삶 속에 도둑을 지킨다는 기능이 크게 와 닿지 않았던 개의 존재는 쉽게 구할 수 있는 단백질 공급원으로 생각되었을 것이다. 하물며 하루에 두 끼 먹는 것이 일반적이었던 조선시대에, 그 두 끼마저 제대로 먹지 못하는 곤궁한 삶을 살았던 우리네 조상님들이 여름을 버텨내기 위해 개장국을 먹었던 것은 쉽게 손가락질하듯 말할 수 있는 부분이 아닐 것이다.

 

 크기변환_임자수탕.jpg

임자수탕

 

여기서 한 가지 짚고 가야 할 것이 있다. 실제로 조선시대에 개장국이 최고의 여름 복달임 음식은 아니었다는 점이다. 현대의 많은 사람들이 조상들은 개장국을 보신용으로 먹었다는 선입견을 가지고 있기에 먼저 다룬 것일 뿐이다. 조선시대 궁중과 양반가에서는 복달임음식으로 민어를 사용한 탕이나 찜을 최고로 쳤다. 호박을 넣고 끓인 맑은 민어탕은 제철 재료로 만든 음식답게 영양과 맛이 매우 뛰어났기 때문에 정약전이 지은 <자산어보>에 보면 “민어는 맛이 달고 무더운 여름에 먹으면 기운을 북돋운다.”는 내용이 기록되어 있기도 하다.  조선시대에는 복달임에 민어요리가 일품이요, 도미를 사용한 탕이나 찜이 이품, 개고기는 삼품이라는 말이 공공연히 회자되곤 했다. 이외에도 경제적으로 부유한 지배층은 ‘깻국탕’, 백마자탕[白麻子湯]이라고도 부르는 임자수탕[荏子水湯]도 즐겨 먹었다. ‘임자’는 깨를 가리키는 말인데, 깨를 불려 껍질을 벗기고 볶은 후, 곱게 갈아 체에 밭친 뽀얀 깻국물에 영계를 푹 삶은 국물을 섞어 차게 만들어두고, 고아낸 닭의 살점을 잘게 찢은 후 그 위에 계란 지단, 쇠고기완자, 미나리, 표고버섯, 오이, 추를 얹고 미리 준비해 둔 차가운 깻국을 부어 먹는 고급 요리였다.

 

  이외에도 서민들은 각종 물고기를 넣고 끓인 어죽이나, 미꾸라지로 만든 음식, 팥죽 등을 여름 보양식으로 먹곤 했다. 미꾸라지는 <동의보감>에서도 따뜻한 성질로 속을 보하고 설사를 멎게 하는 재료라고 기록되어 있을 정도여서 사계절 모두 몸에 이로운 음식이었으며 미꾸라지를 넣고 끓인 추어탕은 여름철 보양식으로 손색이 없었다. 마찬가지로 팥도 더위로 인한 갈증과 설사를 해소해 주고 이뇨작용으로 몸의 붓기를 빼준다는 효능으로 <동의보감>에서 칭찬을 아끼지 않고 있는데 팥으로 죽을 쑤어 먹으면 더위를 먹지 않고, 질병에 강해진다 하여 삼복기간 내내 즐겨먹곤 했다.

 

크기변환_고종냉면.jpg

고종냉면

 

의외로 우리가 여름하면 떠올리는 대표 음식인 냉면은 조선시대에는 주로 겨울음식으로 즐겨 먹던 것이었다. 다만 유독 냉면을 좋아했던 고종이 여름 더위를 이기기 위한 방편으로 동치미 국물로 만든 냉면을 즐겨 먹었다고 하니, 오늘날 냉면이 여름음식으로 각인된 데에는 고종의 영향도 조금은 있었던 것이 아닐까 싶다.

 

 

최종 점검, 여름 더위를 물리치는 여덟 가지 방법

 

지금까지 조선시대 우리 조상들이 상황과 처지에 맞는 방법으로 더위를 물리치고 건강을 지키기 위해 사용했던 다양한 방법들을 살펴보았다. 글 쓰고 책 만들기와 요점 정리에 관한한 감히 조선 최고였다고 말할만한 달인이었던 정약용은 ‘소서팔사[消暑八事]’라 하여 지금까지 살펴본 방법들을 실생활에 적용시켜 여름 더위를 물리칠 수 있는 여덟 가지 방법을 <여유당전서>라는 책을 통해 몹시 양반다운 시각에서 소개하기도 했다.

 

첫째, 송단호시[松壇弧矢]로 솔밭에서 활쏘기, 둘째, 괴음추천[槐陰?韆]으로 느티나무 그늘 아래에서 그네 타기, 셋째, 허각투호[虛閣投壺]로 넓은 누각에서 투호하기, 넷째, 청점혁기[淸?奕?]라 하여 깨끗한 대나무 자리에서 바둑 두기, 다섯째, 서지상하[西池常夏]으로 서쪽 연못의 연꽃 구경하기, 여섯째, 동림청선[東林聽蟬]으로 동쪽 숲속에서 매미소리 듣기, 일곱째, 우일사운[雨日射韻]이라 하여 비오는 날 한시 짓기, 여덟째, 월야탁족[月夜濯足]으로 달 밝은 밤 개울가에서 발 씻기가 바로 그것이다.

 약용의 소서팔사를 한번 오늘날의 시각에서 아름답고 실용적인 것으로 포장해 보자면 더운 여름일수록 무리하지 않은 선에서 운동을 게을리 하지 말아야 체력이 떨어지지 않는다는 교훈도 들어 있고, 몸과 마음을 고요하고 정갈하게 유지해서 덥고 치밀어 오르는 기운이 뻗치지 않게 하며, 태양으로 가득했던 낮의 더운 기운을 적절한 밤 활동으로 중화시키고, 자기 전에 깨끗하게 씻어서 잠이 잘 오도록 만들라는 지혜도 엿보인다고 할 수 있다.





‘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예스24 채널예스

이 기사가 마음에 드셨다면 아래 SNS 버튼을 눌러 추천해주세요.

독자 리뷰

(0개)

  • 독자 의견 이벤트

채널예스 독자 리뷰 혜택 안내

닫기

부분 인원 혜택 (YES포인트)
댓글왕 1 30,000원
우수 댓글상 11 10,000원
노력상 12 5,000원
 등록
더보기

글 | 반주원

고려대학교 역사교육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 진학했다. 외고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다가 한국사 및 통합사회 강사로 메가스터디, 비타에듀, 비상에듀 등의 유명 대형 학원과 EBS 등에서 두루 강의를 진행하기 시작했고, 전국 최고 사탐 강사 5인(입시타임즈 선정)에 뽑히는 등 수능 영역에서는 10년 이상 최고의 사회과 스타 강사로 입지를 굳혔다. 이후 공무원 한국사 영역으로 강의 영역을 확장했으며, 현재는 TV 프로그램 ‘황금알’에 한국사 전문가로 출연 중이다. 『반주원 한국사』 시리즈, 『반주원의 국사 교과서 새로보기』, 『유물유적 한국사 1』 외 다수의 저서를 편찬·집필하였다.

오늘의 책

요 네스뵈 〈형사 해리 홀레〉 시리즈 신작

자신이 수사한 미제사건 현장에서 연이어 참혹하게 죽어가는 경찰들. 범인의 정체는 여전히 오리무중이지만, 사건을 해결할 수 있는 단 한 사람, 해리 홀레가 돌아왔다. "독자들은 그저 뒷자리에 탑승해 극적인 전환과 반전을 즐기면 된다." 예상치 못한 반전과 스릴은 덤이다.

가장 쉽고 재밌는 삼국지 입문서

『삼국지 연의』는 명성에 비해 완독한 사람이 많지 않다. 수많은 등장 인물이 만들어내는 이야기가 방대하기 때문이다. 이 책은 설민석 특유의 강의식 말투로 삼국지의 복잡한 이야기를 이해하기 쉽게 설명했다. 이해를 돕기 위해 수록된 지도와 일러스트는 가독성을 높인다.

별빛 내리는 여름밤, 다정한 선물 같은 이야기

'아일랜드의 국민 작가'로 불리는 『그 겨울의 일주일』 메이브 빈치의 "한여름 밤의 기적" 같은 이야기. 각자의 삶에서 도망쳐 여행중이던, 완벽한 타인이었던 네 명의 여행자가 서로에게 없어서는 안 될 존재가 되기까지, 그 가슴 따뜻한 여정이 아름답게 펼쳐진다.

가짜에 속지 마라, 모두 잃을 것이다

『부자 아빠 가난한 아빠』 로버트 기요사키 신간. 가짜 뉴스와 정보가 넘치는 지금, 가장 큰 문제는 많은 사람들이 이것을 진실이라 믿으며 가짜의 파급력이 크다는 데 있다. 가짜 돈, 가짜 교사, 가짜 자산. 팩트를 무기로 가짜에 맞서는 사람만이 돈과 자산을 지킬 수 있다.

.

주목! 투데이 포커스


문화지원프로젝트
KALIOP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