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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쓰기는 소통이 목적이다

외국어를 배우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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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외국어를 배우는 이유는 소통하기 위해서다. 멋진 말을 구사해서 상대방에게 좋은 인상을 주려는 것이 목적이 아니다. 그런데 많은 영어 학습자들은 주어진 어구를 외고, 문장을 외어서 멋진 대화를 하는 꿈을 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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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자리에 앉아도 됩니까?’를 영어로 못하면? 왕초보. 


대략 이런 내용의 광고 문구를 본 적이 있다. 광고 내용의 옳고 그름을 떠나서 매우 재미있는 시사점을 드러내준다. 실제로 미국인들은 이런 상황에서 어떻게 말할까? 과연 ‘May I sit in here? Would you mind if I sit in here?’ 혹은 ‘Is this seat occupied?’라고 할까? 많은 회화 책들이나 심지어 이 광고를 한 업체도 이중 하나나 그 변형을 정답으로 제시하지 않을까 싶다. 하지만 필자가 보스턴이나 로스앤젤레스에 있다면 아마도 이런 말을 들었을 것이다. ‘Excuse me?’ 혹은 ‘May I?’ 너무 짧다고? 그러나 어쩌겠는가. 그게 핵심이다. 

 

영어를 배우는 많은 사람, 특히 한국 사람들은 너무 강박관념에 사로잡혀 있다는 것이 필자가 받은 인상이다. 이와 비슷한 사례는 무수히 많다. 어느 외고에서 한 학생이 미국인 선생님과 사진이 찍고 싶었다. 영어가 자신이 없어서 망설이고 있을 때, 평소에 영어를 잘 하지 못하던, 그러나 매우 활달했던 한 친구가 선생님에게 가서 “Picture with me?”라고 하고는 자연스럽게 사진을 찍더라는 것이다. 그럼 ‘참 잘했어요’는 영어로 어떻게 말할까? ‘잘’은 well, ‘참’은 very? 이렇게 생각하고 있으면 이미 잘못된 것이다. ‘good job’이나 ‘well done’이 떠오르지 않으면 이미 그 대화는 실패한 것이다. 소통이란 이런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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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외국어를 배우는 이유는 소통하기 위해서다. 멋진 말을 구사해서 상대방에게 좋은 인상을 주려는 것이 목적이 아니다. 그런데 많은 영어 학습자들은 주어진 어구를 외고, 문장을 외어서 멋진 대화를 하는 꿈을 꾼다. 그것은 잘못된 방법이다. 필자는 대화 상황에서 미리 암기한 문장들을 다 써먹었을 때, 말문이 막히는 학생들을 자주 보아왔다. 또 준비한 문장들을 사용하려고 대화를 시작했는데, 막상 외국인이 엉뚱한 대화 주제를 꺼내는 바람이 말문이 막히고 얼굴이 붉어지는 학생들을 자주 보아왔다. 암기한 문장을 실제 상황에서 사용하는 것은 극히 제한적이고 한계가 분명하다. 더욱이 소통이란 무엇인가? 언어학자들은 소통에서 언어가 차지하는 비중이 30퍼센트도 되지 않는다고 말한다. 과연 그럴까? 잠깐 실험을 해보자. 텔레비전을 틀고 소리를 끈 채 화면을 보라. 드라마가 영어로 되어 있든 한국어로 되어 있든 그림만 보아도 대략 그 흘러가는 내용을 알 수 있을 것이다. 필자 자신도 잠시 러시아에 있을 때 종종 TV 방송을 보곤 했다. 물론 러시아어는 전혀 모른다. 하지만 러시아 드라마를 보고 있으면 대략적인 흐름을 알 수 있었고, 나름대로 즐겁게 시청했다. 언어가 차지하는 비중은 생각보다 훨씬 더 작다. 

 

영어를 가르치려고 우리나라에 온 많은 원어민 선생들이 제기하는 불평 중에 한 가지가 소통의 본질에 대한 오해였다. 그들이 동남아시아나 중남미에서 영어를 가르칠 때는 학습자들이 문법이나 발음에 상관없이 말을 해서 가르치기가 수월한데, 한국 학습자들은 웬만해서는 말을 하지 않고, 심지어는 묻는 말에도 대답을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한국 학습자들이 비협조적이어서 그럴까? 그렇지는 않다. 외국인 선생들도 한국 학습자들이 매우 정이 많고, 열정적이며 협조적이라고 말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웬만해서는 입을 잘 열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리고 더 시간이 흘러서 그들이 발견하는 사실은 한국 학습자들이 체면에 매우 민감하고, 그렇게 때문에 다른 사람들 앞에서 틀리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어 하지 않는다는 것, 그렇기 때문에 자신이 완벽하게 암기한 문장이 아니면 즉석에서 문장을 만들지 않는다는 것이다. 필자도 물론 그런 적이 있었다. 틀리는 것이 두려워서 머릿속에 완벽하게 암기된 문장이 아니면 즉석에서 입을 뗄 수가 없었다. ‘이 자리에 앉아도 됩니까?’를 영어로 하려면 머릿속에서 온갖 생각들이 떠오른다. 우선 ‘자리’는 seat이고, ‘앉아도’는 sit, ‘됩니까’는 may I 어쩌고저쩌고……. 이건 이미 실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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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할 겨를이 없이 즉각적으로 말이 튀어나오지 않는다면 초보다. 그런데 이 말은 당사자가 영어 초보라기보다 소통의 초보라고 하는 것이 더 정확한 표현일 것이다. 영어를 걱정하기 전에 소통의 본질에 대해 생각해보는 것이 더 낫다. 소통은 내 의사를 전달하고 상대방의 의사를 이해하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주어진 상황에서 가장 핵심적인 단어만 말해도 이미 상황이라는 것이 있기 때문에 상대방은 충분히 이해하는 것이다. 농담으로 thank you, please, sorry만 알면 미국에서 생활이 가능하다고 하지 않는가. 무슨 일이 벌어졌을 때, 모든 상황을 묘사하는 어휘들을 사용하는 것은 회화가 아니라 신문보도다. 현장에 없는 사람에게 무슨 일이 벌어졌는가를 알려주는 것이 바로 보도니까. 우리는 신문기자가 아니다. 신문기자는 전문지식인이라고 할 수 있다. 우리는 기자가 아니면서 기자처럼 온갖 상황 설명을 하려고 하는 것이다. 이런 일은 전문적인 훈련이 필요한 전문가의 영역임을 명심하자. 우리에게, 즉 일반인에게 필요한 수준은 정말로 하찮은 수준이다. 

 

미국에서는 농부들이 800단어로 평생을 살 수 있다고 하는 기사를 본 적이 있다. 1,500단어면 <뉴욕 타임스>를 읽을 수 있다는 글을 읽은 적도 있다. 문장을 만들고, 멋진 어휘를 사용하고, 미사여구를 동원해야 소통이 되는 것은 아니다. 글쓰기에서도 마찬가지다. 꼭 필요한 단어만 사용하면 효과적인 글이 되는 것이다. 문장이 아닌 소위 조각문들(fragments)이 얼마나 많이 사용되는지는 신문에 딸려오는 광고지만 보아도 알 수 있다. 광고지, 생활 안내문, 극장표 등의 실용문 등을 보면 문장이 거의 없다. ‘우리 집을 팔고 싶어요’를 영어로 하고 싶으면? 그냥 house for sale이면 충분하다. my나 our를 house 앞에 붙일 필요도 없다. 세상에 남의 집을 파는 사람은 없으니까. <글쓰기의 요소>는 간결하고 깔끔한 글쓰기를 위한 18가지 규칙을 제시하고 있다. 필자는 많은 독자들이 이미 필요 이상의 영어 지식과 어휘를 가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이제는 채울 시간이 아니라 비울 시간이다. 더 많이 알려고 할 것이 아니라 아는 것도 아껴 쓰고 덜 쓰는 것이 더 효과적인 소통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문법을 걱정하지 말고, 문장이 되는지를 생각하지 말고, 필요한 단어 한두 개로 소통하는 연습을 하자. 그것이 말로 하는 것이든 글로 쓰는 것이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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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쓰기의 요소

윌리엄 스트렁크 저/장영준 역 | 윌북(willbook)
정확한 문장을 쓰는 핵심 규칙을 명쾌하게 정리한 책이다. 영미권 사람들이 잘 쓴 영어와 잘못 쓴 영어를 판단하는 기준으로 삼는 책으로, 타임지 선정 ‘가장 영향력 있는 100대 도서’이며, 스티븐 킹, 댄 브라운 등 대작가들이 가장 좋아하는 책으로 꼽는 책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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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장영준

국내 최고의 촘스키 전문가. 하버드 대학교에서 박사 논문 집필 당시 세계적 언어학자인 노암 촘스키에게 논문 지도를 받으며 그의 제자로 이름을 알렸다. MIT와 애리조나 주립 대학교 방문학자로 활동했고, 중앙 대학교 영어영문학과 교수로 재직하였다. 현재는 오르고라는 필명으로 활동한다. 저서로는 『한국어가 사라진다면』 (공저), 『언어의 비밀』 , 『그램그램 영문법 원정대』 시리즈 등이 있으며, 옮긴 책으로는 『촘스키, 끝없는 도전』, 『번역과 번역하기』, 『영어에 관한 21가지 오해』, 『최소주의 언어학』 등이 있다.

글쓰기의 요소

<윌리엄 스트렁크> 저/<장영준> 역14,850원(10% + 5%)

『글쓰기의 요소(Elements of Style)』는 영어의 기본을 오직 18가지 핵심 원칙으로 제시한 영어 학습서다. 1918년 초판이 출간되어 약 100년간 1,000만 부 이상 팔린 전설의 책으로, 영미권 사람들이 잘 쓴 영어와 잘못 쓴 영어를 판단하는 기준으로 통용되고 있다. 타임지 선정 가장 영향력 있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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