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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유리 “화가들의 마지막을 온전히 체험하는 느낌”

『화가의 마지막 그림』 예술가는 증언자의 모습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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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많은 미술작품이 있지만 그것을 고르는 것은 제가 어떤 예술가에게 끌리느냐에 달린 것이잖아요. 밝고 아름다운 미술도 정말 의미 있다고 생각하지만 치열하고 뜨겁게 시대를 온몸으로 마주하고 간 삶이 많이 다가왔어요. 당장 보기에는 아름답지 않더라도 진실한 모습을 담는, 인간의 모습을 한 사람들을 더 글로 표현해내고 싶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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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장의 그림은 때로 어떤 긴 이야기보다 더 길다. 그 한 장을 완성하기 위해 살아온 고통의 삶과 그럼에도 삶을 희망하는 애처로움, 표출하지 않고는 견딜 수 없었던 예술가의 영혼이 보이는 듯하다. 그림은 시간을 뛰어넘어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 말을 건넨다. 그 목소리를 외면하지 못하고 예술가가 죽기 직전 남긴 작품들을 찾아보았다. 공부를 하면서도, 기자 생활을 하면서도 그림이 건네는 말에 귀 기울이기 좋아했던 작가 이유리는 이 마지막 그림을 일컬어 “백조들이 토해낸 마지막 울음 같은 작품들”이라고 적었다. 

 

그도 그럴 것이 어째서 하나같이 이토록 고통스러운지, 예술가들의 삶은 그야말로 굴곡진 삶이었다. 병으로 죽은 모딜리아니를 따라 6층 건물에서 뛰어내려 자살한 잔 에뷔테른, 아무도 모르게 길 위에 쓰러져 죽음을 맞은 나혜석, 자살이냐 타살이냐 아직까지도 의견이 분분한 반 고흐와 평생을 숨 막히는 고통 속에서 살다 간 프리타 칼로까지 이들의 고통은 감히 헤아리기조차 힘이 든다. “마지막 순간을 계속 탐구하면서 쓴다는 것 자체가 그의 마지막을 온전히 체험하는 느낌”이라 책을 쓰면서 많이 울었다는 이유리 작가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왜 아니었겠는가. 

 

시간의 힘을 이겨 나가는 것


흥미롭게 읽었어요. 특히나 예술가의 삶을 읽어 내려가는 재미가 있는 책이었어요.  


이 책은 입문자용 책이에요. 미술이라고 하면 어려워하시는 분들도 많고, 막연하게 현학적이라고 생각하는 분들도 많은데요. 그런 분들이 쉽게 읽으시고 미술에 대한 관심을 여는 첫 번째 문이 되었으면 좋겠어요. 저 역시 전공자가 아니기 때문에 그 마음을 잘 알고 있어요. 저도 정말 학문의 도움 없이 몸으로 뚫고 나간 경우라서요.(웃음) 옛날 생각하면서 어떻게 미술을 알아갔는지, 어떻게 미술에 가까이 갔는지 기억을 떠올리며 썼으니까요. 쉽게 읽으실 수 있으면 좋겠어요. 


전공이 아니라면 어떤 면 때문에 미술 작품에 빠지게 됐는지, 어떻게 이런 책을 쓰게 됐는지 궁금한데요. 


어렸을 때 엄마가 클래식 컴필레이션 음반을 사서 들으셨어요. 참 재미있는 게 음반에 명화가 짝꿍처럼 붙어있더라고요. 쭉 관심은 있었어요. 미술 교과서나 잡지에 그림이 있으면 잘라서 스크랩을 많이 했었어요. 기억하실지 모르겠는데요, 교과서에 보면 ‘소실점’ 이해하는 작품으로 ‘미델하르니스의 가로수길’이라는 그림이 나와요. 제목도, 화가도 안 나오고 소실점 이해하는 그림으로만 나와 있었죠. 깨끗하고 아련한 느낌이 참 좋은데 작가나 제목은 없고 단지 소실점을 이해시키기 위한 것으로만 있는 게 좀 안타까웠어요. 다른 것도 알고 싶다는 호기심이 생겼어요. 그렇게 관심의 끈을 계속 놓지 않고 살았던 것 같아요. 그러면서 익숙한 작가의 익숙하지 않은 이야기를 조명하고 싶다는 생각도 하게 된 거죠. 


결정적으로는 런던으로 어학연수를 가게 됐는데, 영어 공부는 안 하고 미술관만 다녔어요. 유명한 명작들이 많이 있는데 게다가 공짜인 거예요. 너무 신나서(웃음) 시간만 되면 미술관을 다닌 거죠. 그때 체계적으로 공부가 됐던 것 같아요. 비전공자라서 전공자가 보지 못한 것들을 볼 수 있는 면도 있었을 거예요. 그래서 조금 독특한 책을 낼 수 있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들어요. 


저자가 어린 시절 명화에 관심 갖는 장면에서 힌트를 얻을 수 있는데요. 미술 작품이 수단이나 배경이 되긴 했지만 그 자체로 의미가 되지 못했던 것 같아요. 그러니까 이 책은 우리네 삶 안으로 미술 작품이 들어왔을 때 어떤 가치를 갖는지 다시 한 번 생각하게 할 수 있는 책이기도 했어요. 


고맙습니다. 미술 작품을 어려워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미술을 완벽하게 알지 못하기 때문에 어렵다, 미술관 가는 것에 위화감이 든다, 고 하는 것 같은데요. 모든 것을 완벽하게 안 뒤 가려고 한다면 영원히 못 가요. 어떻게 가겠어요? 저는 그냥 일단 가서 부딪쳐보라고 얘기를 하고 싶어요. 미술뿐이 아니고 사람과 사람이 만날 때도 마찬가지잖아요. 어떤 사람을 좋아하는데 그를 완벽히 알기 때문에 다가가나요? 아니잖아요. 몸으로 뚫고 나가는 게 제일 중요한 것 같아요. 시간의 힘을 이겨 나가는 거죠. 계속 보다보면 남들이 보지 못하는 것까지 볼 수 있는 자신만의 혜안 같은 것이 생길 수도 있고요. 그러다보면 저처럼 책도 낼 수 있겠죠.(웃음) 


예술가의 마지막 그림은 거의 그의 인생을 통틀어 보여주는 듯해요. 저자가 마지막 그림을 살펴보고, 매료된 이유도 같겠지요?


마지막이 되면 돈, 명예가 중요할까요? 저는 죽음 앞에 선 벌거벗은 한 인간은 굉장히 절박하고 간절할 거라고 봤어요. 그래서 마지막 작품을 알고 싶었어요. 기존에는 대표작이나 전성기의 작품을 조명하는 경우가 많아서 개인적으로 궁금하기도 했고요. 사람은 계속 진보하고, 진화한다고 믿거든요. 최전성기 작품도 가치 있겠지만 죽기 직전의 작품은 또 판이하게 다를 수도 있잖아요. 왜 전성기만 조명할까 궁금했죠. 많은 대가들이 활자 속에서 박제된 채 존재하고 있잖아요. 이들이 우리와 같은 뜨거운 체온을 가진 인간이라는 생각으로 꺼내서 보고 싶은 욕구가 있었어요. 한 시대를 뜨겁게 살아간 한 인간이었다는 것을 조명하고 싶었던 거예요. 


인간으로서의 예술가가 궁금해지는 마지막 그림들이 있죠. 폴 고갱 같은 경우가 그랬어요. 살면서 그린 그림과는 결이 다른 마지막 그림을 남기고 떠났잖아요. 


그러니까 제일 솔직한 게 마지막 같아요. 사실 고갱도 얼마나 찾기가 힘들었는지 몰라요. ‘눈 덮인 브르타뉴 마을’도 정말 안 되는 영어로(웃음) 헤매고, 찾은 거예요. 한국에는 거의 알려지지 않았던 거죠. 너무 힘들어서 기억에 남는 부분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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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밖에 오래 기억에 남았던 화가는 누구였어요? 


반 고흐요. 고흐의 마지막 작품은 당연히 ‘까마귀가 있는 밀밭’이라고 생각했어요. 국내 출간된 책들도 그랬고요. 그런데 전문서나 학술서를 찾아보니까 이미 그 작품은 마지막 작품이 아니라는 결론이 나 있더라고요. 도대체 마지막 작품이 뭘까 했는데 의견이 너무 분분한 거예요. ‘도비니의 정원’이라고 하는 사람도 있고, 지금도 논란이 있는데요. 고민하고 있을 때 트위터의 반 고흐 뮤지엄 계정에서 마지막이 유력한 작품이 발견되었다고 한 거죠. 그것이 책에 소개한 ‘나무뿌리’였어요. 워낙 소개가 안 된 내용이라 진짜 전공자처럼 여기저기 찾으면서 봤던 기억이 나요. 거기 맞물려서 반 고흐의 자살설, 타살설이 나왔죠. 얼마 전 국내에도 출간된 책이 있어요. 『화가 반 고흐 이전의 판 호흐』라고요. 저는 그 책이 나오기 전에 썼거든요.(웃음) 정말 힘들기도 했고, 재미있었어요. 반 고흐의 숨겨진 사망 원인을 보면서 많이 울기도 했고요. 반 고흐뿐 아니라 모든 화가들의 마지막 순간을 계속 탐구하면서 쓴다는 것 자체가 그의 마지막을 온전히 체험하는 느낌이었거든요. 그런 의미에서 많이 착잡했던 기억이 나는데 반 고흐는 더욱 그랬죠. 마지막까지 편하지 않았구나, 이런 생각이 들어서 많이 울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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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연구 중인 사실들도 많은 것 같습니다. 최근 반 고흐의 귀에 대한 이야기도 많았잖아요. 


제가 처음 반 고흐를 만났을 때는 귀 전체를 완전히 자른 걸로 알고 있었는데 좀 지나니까 귓불을 조금만 잘라서 준 거라고 정리가 됐었어요. 그런데 다시 귀를 완전히 잘랐다는 것이 새로 밝혀졌다고 하는 거예요. 이런 것으로 논쟁사를 한 번 써보는 것도 재미있을 것 같아요. 반 고흐는 지금도 논란이 되는 것들이 많잖아요. 그가 지금까지도 ‘핫한’ 작가라서 더 그런 것 같아요. 사람들이 많은 관심을 가지니까 연구가 지속적으로 이루어지고 관련 문헌도 많아지고요. 


소개한 예술가 중 제일 좋아하는 예술가는 누구예요? 


한국인들이 제일 좋아하는 작가 중 하나라면 프리다 칼로가 있겠죠. 저도 참 좋아해요. 프리다 칼로야말로 『화가의 마지막 그림』의 주제에 가장 잘 맞는 화가라는 생각이 들어요. 사람은 살면서도 죽어가는 거잖아요. 하지만, 죽는다는 건 다 알고 있지만 그렇다고 가만히 있나요? 그러면서 더 뜨겁게 사는 거죠. 끝을 알기에 이 삶이 더 소중한 것처럼요. 프리다 칼로가 그런 것 같아요. 그토록 고통스러웠지만 그것을 승화시켜서 작품으로 남겼고 죽기 전에도 ‘삶이여 만세(VIVA LA VIDA)’라고 남겼잖아요. 그래서 더 뜨겁고 가슴에 남는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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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 역사도 함께 볼 수 있는 것


읽으면서 생각했어요. 어쩌면 이렇게 모두들 고통스러운 삶이었을까요? 


참 얄궂죠. 공지영 작가가 목구멍까지 차올라서 토해내지 않고는 견딜 수 없을 때서야 글이 나왔다는 말을 한 걸 봤어요. 글이든 예술작품이든 다 자신의 언어를 뱉으려고 하는 거잖아요. 그 욕구는 자신이 정말 고통스러웠을 때 더 강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요. 『행복한 사람은 시계를 보지 않는다』라는 책도 있잖아요. 행복한 사람은 일기를 안 쓴대요. 고통스러워야 표현 욕구가 더 강렬해지고 목구멍까지 차올라서 나오는 것 같아요. 또 고통의 과정에서 응축된 작품들이 얄궂게도 사람들의 마음을 건드리는 것 같고요. 


활이 휘어지면 휘어질수록 화살이 멀리 날아가잖아요. 휘어짐은 고통이고요. 이게 정말 얄궂은 것 같아요. 고통이 강할수록 더 멀리 날아가는, 더 강렬하고 인상적인 작품이 나올 수 있다는 건데, 그게 맞는 것 같아요. 굉장한 아이러니죠. 


지금까지 생명력을 갖고 존재하는 작품은 특히 더 그런 것 같아요. 프리다 칼로 같은 예술가들의 삶은 특히 압도적이에요. 


고통으로 그냥 사라지는 경우가 있는가 하면 고통을 작품으로 승화시키는 경우도 있잖아요. 잘 승화시켜야 우리에게 남는 건데요. 사실 고통 없는 사람이 어디 있겠어요. 다만 위대한 예술가들이 비범한 것은 그 고통을 자신의 정제된 언어로 잘 승화시켰다는 데 있는 것 같아요. 


그렇게 탄생한 작품들을 보고 있으면 정말 생각할 것들이 많아지더라고요. 


작품을 배태시키는 영감이라는 것이 하늘에서 뚝 떨어지는 게 아니잖아요. 사회 안에서 삶이 해결되었고, 그 안에서 작가가 가졌던 사회나 역사를 바라보는 눈이 작품으로 만들어지는 거니까요. 저는 미술을 볼 때 작품만 보는 게 아니고 역사도 함께 볼 수 있는 거라 생각하거든요. 독자 분들도 미술을 통해 역사를 바라보는 하나의 재미있는 창을 또 하나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해요. 관심 가는 작품을 보면서 궁금한 점이 생기면 그 사람이 살았던 시대를 함께 연구해보는 것도 좋은 방법인 것 같아요. 


콘텍스트를 읽는 것이 미술 작품을 재미있게 보는 하나의 좋은 방법이겠네요. 


미술 작품이 소통의 재미있는 창구가 될 수 있다는 생각도 들어요. 미술가들이 자기가 사는 시대를 어떻게 바라보고 있느냐 어떻게 살아냈느냐를 미술가와 우리가 작품을 통해 소통할 수 있는 거잖아요. 한편 저는 ‘시대 상황과 상관없이 순수한 예술의 세계에만 침잠하련다’고 하는 태도가 어두운 시대 현실에 마음 놓고 등 돌릴 수 있는 떳떳한 변명거리가 되지 않나 하는 생각을 개인적으로 하거든요. 그래서 사회적인 문제의식과 부조리에 대한 시선을 뜨겁게 끌어올릴 수 있는 작품들이 더 가슴에 남는 것 같아요. 지금도 신문만 펼쳐도 나쁜 소식이 너무 많잖아요. 이렇게 시대가 어두울 때 밝고, 깨끗하고, 무결한 작품만 나온다면 어쩌면 예술가들이 한쪽 눈을 감고 있는 게 아닌가 생각을 했거든요. 좀 불편하고 어두운 예술이라도 시대의식을 잘 담은 작품이 제게 진정성 있게 다가와요. 그런 작품이 지금 당장은 불편해도 훗날까지 사람들의 마음을 잡을 수 있는 작품이 아닐까 생각이 들고요.  


특히나 역사의 상흔을 고스란히 입은 예술가들의 삶은 그 자체로 의미가 있는 것 같아요. 나혜석을 보면 시대와의 불화가 너무나 안타깝게 느껴지잖아요. 


미술이 사람들의 미의식을 부양시키는 역할도 하지만요. ‘에케 호모(Ecce Homo)’라고 하죠. 예수님을 보고 ‘이 사람을 보라’고 한 것처럼, 그런 부분도 있는 것 같아요. 그 사람을 보는 거죠. 예술가는 어떻게 보면 증언자로서의 모습이 있는 거예요. 우리 시대가 얼마나 잔인하고 힘들었는지 증언하는 면도 있는 것 같아요. 나혜석이나 펠릭스 누스바움도 그런 미술을 한 것 같고요. 그래서 시대의식을 잘 담은 미술 작품이 훨씬 더 많은 것을 이야기해주는 거라고 생각해요. 


책에서 다루는 예술가들을 선정할 때도 그런 부분을 고려한 건가요? 


그런 제 생각을 훨씬 더 노골적으로 쓴 게 『세상을 바꾼 예술작품들』이거든요. 수많은 미술작품이 있지만 그것을 고르는 것은 제가 어떤 예술가에게 끌리느냐에 달린 것이잖아요. 밝고 아름다운 미술도 정말 의미 있다고 생각하지만 치열하고 뜨겁게 시대를 온몸으로 마주하고 간 삶이 많이 다가왔어요. 당장 보기에는 아름답지 않더라도 진실한 모습을 담는, 인간의 모습을 한 사람들을 더 글로 표현해내고 싶었어요. 


미술이 그래서 재미있는 것 같아요. 역사를 글로만 읽으면 얼마나 힘들겠어요.(웃음) 작품 하나로 그 많은 이야기들을 한꺼번에 얘기할 수 있잖아요. 그게 미술의 힘인 것 같아요. 바로 그 때문에 수많은 권력자들이 미술을 자신의 도구 삼았던 것이기도 하고요. 이데올로기에 종속된 미술 작품을 보면 그렇죠. 이처럼 미술 작품은 이야기가 어마어마하고 힘이 무궁무진한데 어렵다는 이유 하나 때문에 진입이 가로막혀 있어요. 그게 너무 안타깝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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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과된 사람들을 조명하고 싶다


책 출간 후 릴레이 강의를 하셨더라고요. 최근에 페미니즘 시각으로 살피는 강의가 있던데 여러 방향에서 접근할 수 있는 게 또 미술 작품인 것 같아요. 


페미니즘에 정말 관심 많아요. ‘페미니즘으로 본 예술’이라는 주제로 강연을 했는데요. 그 주제에 너무 욕심이 많아서 책도 쓰고 싶은데 얼마나 걸릴지는 모르겠어요. 


이 대목에서 한 예술가가 떠오르죠. 에드워드 호퍼요.


그렇게 얘기하실 줄 알았어요.(웃음) 앞서 어쩌면 다들 그렇게 고통스러운 삶이었냐고 하셨는데 호퍼는 왜 그렇게 행복했던 거냐고요. 그게 다 누군가의 희생과 헌신을 땔감 삼았기 때문에 가능했던 거죠. 고통이 응축돼 위대한 작품 하나가 완성됐다면 에드워드 호퍼는 자신의 분신과 다름없었던 조 호퍼의 고통을 연료 삼아서 작품을 완성했다는 생각이 들어요. 『화가의 아내』라는 책이 있는데요. 화가들의 삶과 작품은 다 개성 있고 너무 달라요. 재미있는 게, 화가들의 아내들은요, 삶이 다 똑같아요. 나중에는 읽다가 이 화가의 아내 이야기였던가, 저 화가의 아내 이야기였던가 헷갈릴 정도였어요. 제게는 익숙한 화가의 익숙하지 않은 이야기를 조명하고 싶은 욕구도 있지만 서양 미술사에서 간과되고 조명을 받지 못했던 사람들을 조명하고 싶은 욕구도 있거든요. 장기적으로는 그런 것도 풀어내고 싶은 마음이 있어요. 


더 이야기해야 할 이야기들이 너무 많아요. 


이제 미술 독자들도 좋은 책들이 많이 나와서 어느 정도의 소양은 다 갖고 계시다고 생각하거든요. 그래서 안 알려진 이야기들을 많이 세상에 내는 것이 미술작가로서의 제 소명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조금 힘들더라도 더 많이 연구를 해서 호기심을 채우는 작업을 하고 싶어요. 강의 주제 중에 ‘을의 편에 선 예술가들’이라는 것도 있거든요. 제가 관심사가 꾸준한 것 같아요.(웃음) 그런 식으로 계속 강의하고, 책 쓰는 것이 계획이고 소망입니다. 


책을 볼 때도 바로 책 속으로 들어가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책 주변을 오래 살피는 사람이 있는데요. 저자의 경우 작품을 감상할 때 어떻게 시작하나요?  


처음 작품을 보면 익숙하지가 않잖아요. 익숙하지 않아서 많이들 중도포기 하는 것 같은데요. 제가 요즘 수영을 하고 있거든요. 운동을 하다보면 온몸이 다 아프죠. 미술도 마찬가지 같아요. 처음에 낯선 건 안 쓰던 근육을 쓰기 때문인데요. 그걸 이겨내는 건 시간을 들여 꾸준히 보고 계속 하는 것일 것 같아요. 저도 낯설지만 무조건 보거든요. 그냥 봐요. 물에 그냥 들어가듯 들어가는 거예요. 그러다보면 말을 걸어오는 것 같은 작품을 만나고, 그러면 작품을 소개하는 책을 찾아보고, 그런 과정을 거치는 거죠. 초심자라도 이 방법을 따르는 게 좋다고 생각해요. 아까 말했듯이 모든 걸 완벽하게 알고 보려고 하면 볼 수 없으니까요. 그냥 꾸준하게 계속 보시면 좋겠어요. 그게 정공법인 것 같아요. 


또 쓰고 싶은 책이 있다면요?


독자들과 미술 작품 사이에 있는 창이 아직은 너무 흐릿한 창인 것 같아요. 그래서 선뜻 다가가지 못하고 그 너머를 보려고 하지도 않는 것 같은데요. 저는 그 창문을 입김으로 호호 불어가면서 닦는 역할을 하고 싶어요. 


당장 계획하고 있는 것도 있어요. 화가의 마지막 그림도 있지만 출세작도 있잖아요. 보통은 이게 대표작이구나, 하고 넘어가는데요. 왜 그 시대 상황에서 그 작품이 사람들의 마음을 얻고, 왜 이 작품이 떠오를 수밖에 없었는지 또는 화가가 죽고 작품이 잊혀졌다가 갑자기 떠오른 이유는 무엇이었는지 살펴보고 싶어요. 작품은 변한 게 아니잖아요. 작품은 그대로인데 시대 상황에 따라서 다시 호출될 수 있잖아요. 작품과 시대를 함께 조명하는 책을 또 쓸 예정이에요.  


마지막으로 꼭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들려주세요. 


말씀드렸듯이 저는 외부자잖아요. 그래서 쓸 수 있는 얘기들이 또 있었다고 생각해요. 더 쉽게, 눈높이에 맞춰 쓰려고 노력도 많이 했어요. 이 책은 미술이 알고 싶은데 너무 어렵게 느끼는 분들에게 ‘일단 이야기 한 번 읽어볼래?’ 하는 식으로 던지고 싶은 책이에요. 저는 항상 이야기에 많이 끌렸거든요. 전공이 사학인데요. 그것 역시 이야기잖아요. 기자 생활을 했는데 그것 역시 사람들의 이야기고요. 미술도 마찬가지예요. 갑자기 하늘에서 뚝 떨어진 게 아니고 역사 속에 살다가 작가 자신의 관점을 담아 탄생시킨 것이 예술 작품이니까요. 그런 재미있는 이야기를 담으려고 노력했으니까 어렵게 생각하지 말고 이야기를 읽어보셨으면 좋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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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가의 마지막 그림 이유리 저 | 서해문집
생의 끝, 가장 아름답고 치열한 시간에 화가의 손끝에서 피어난 그림 한 점엔 쉬이 껴안지 못할 삶의 진실이 녹아 있으리란 생각에서다. 실제로 화가의 마지막 그림 안에는 죽음이 임박한 순간, 그들이 무얼 예감했고 무얼 목격했으며 무슨 메시지를 최후로 남기고 싶었는지가 생생하게 담겨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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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신연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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