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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자 고병권 “철학은 기다림, 기다림은 실천”

『다이너마이트 니체』 나는 나를 기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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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체는 가만히 있는 것은 기다리는 게 아니라고 말해요. 문이 열리기를 기다리는 사람은 가만히 있지 않고 두드립니다. 열매를 기다리는 사람은 씨앗을 심어요. 기다림은 중요해요. 기다림이 없으면 사건이 없어요. 그 점에서 기다림은 실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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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사람이 모였다. 지난 6월 30일, 벙커1에서 진행된 철학자 고병권의 강연. 철학자가 말하는 ‘니체’ 이야기에 무더운 여름 평일 저녁 이렇게 많은 사람이 모일 줄은 몰랐다. 강연자도 그랬을까. “꼭 같은 길은 아니더라도, 잠깐 마주쳤을지라도 함께 걸어가는 사람들처럼 느껴서 반갑다.”며 감사의 인사를 먼저 건넸다. 

 

강연은 ‘나는 나를 기다린다’는 제목으로 진행되었다. 이 제목은 『다이너마이트 니체』에서 한 문장을 꼽으라면 선택할 문장이라고 고병권은 말했다. 무엇보다, 철학은 기다림이라는 것. 『다이너마이트 니체』는 니체의 저서 『선악의 저편』을 해석한 책으로, 이날 강연은 저자가 『다이너마이트 니체』를 어떻게 쓰게 됐는지에 대한 이야기로 꾸며졌다. 말하자면 니체를 만나온 고병권의 삶의 기록인 셈이다.

 

“20년 동안 세 번 정도 길에서 니체를 마주쳤다고 할 수 있습니다. 90년대 중반에 한 번, 2010년에 한 번, 2015년에 한 번이죠. 공부를 하는 중간에 마치 이정표 만나듯 지금 무슨 생각하는지 니체를 통해 확인하는 시간이었던 것 같아요.”

 

그가 니체를 처음 만난 것은 대학원 시절이었다. 니체와의 첫 대면은 놀라움 그 자체였다. 고병권은 처음 만난 니체는 자신에게 ‘무게’의 문제를 제기했다고 말했다.  

 

“니체가 잘 쓰는 표현으로 ‘중력의 영’이라는 게 있는데요. 사람을 무겁게 만드는 거예요. 사람은 다 자기 시대가 제일 힘들죠. 자기 시대를 전환기라 여기고요. 저도 그렇게 느꼈어요. 전환기 중에서도 절망적인 전환기라 느꼈기 때문에 힘들었죠. 많은 사람들이 죽었어요. 암울했고, 꺾였어요. 80년대가 죽어가는구나, 하는 느낌을 강하게 받았어요. 대학원에 가면서 여차저차해서 니체를 만났는데 정말 깜짝 놀랐어요. 그때 니체가 저한테 물었다고 생각해요. ‘너는 깊어지고 있는 게 아니라 무거워지고 있다’고요.”

 

니체의 말은 가볍지만 단단했다. 공부란 고착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생각을 니체를 통해 하게 됐다. 그는 조금 가벼워진 것 같았다. 비로소 모든 지식이 즐겁게 느껴졌다. 니체라는 이정표를 따라 움직일 수 있게 되었다.

 

그러나 이후 그는 니체에게서 떠나있었다. 그 사이 다시 좌절을 겪었고, 자신이 가장 즐겁게 공부했던 때를 떠올려봤다. 그 자리에 니체가 그대로 있었다. 2010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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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째 니체, 언더그라운드

 

“땅을 파고 계속 들어가는 철학자의 이미지가 떠올라서 『서광』 읽었는데요. 90년대 중반, 니체가 무게와 깊이를 혼동하지 말라고 했다면 두 번째 만난 니체는 ‘깊이’에 대한 편견을 깨주었던 것 같아요. 깊이 자체가 편견일 수 있다는 거였죠. 더 깊은 곳에 이르는 것도 중요하지만 뭐랄까요, 표면에서도 깊이를 느낄 수 있어야 한다고 할까요. 중요한 것은 좋은 것을 찾아 떠나는 게 아니라 절망적인 상황에서도 좋은 것을 찾을 수 있는 눈을 가져야 한다는 거였어요. 니체는 제게 있는 곳에서도 충분히 떠날 수 있다고 가르쳐주었죠.”

 

철학은 애당초 토대 없이 하는 것이라는 깨달음, 고병권은 그것을 자신의 책 『언더그라운드 니체』로 이야기한 바 있다.

 

“굳건한 토대를 세우려고 하는 습관을 벗어나야 사건이 차츰 잘 보인다는 거예요. 토대 없이 봐야 해요. 니체는 이것을 ‘심연’이라고 표현했는데요. 심연이란 깊은 곳이 아니에요. 바닥이 꺼진 것을 심연이라 불러요. 바닥, 근거 없이 살아가는 것, 그래서 토대 없이 설 수 있는 것이죠. 그런 것에서 벗어나야 오류, 착각, 어리석음도 유익하게 써먹을 수 있는 능력이 생긴다는 거예요. 굉장히 흥미로운 말이죠. 진리만큼이나 어리석음의 소중함도 알아야 한다는 이상한(웃음) 말이에요.”

 

깊이가 전복되는 순간이다. 고병권은 여기서 세 가지를 배웠다고 설명한다.

 

“첫 번째는 ‘가치의 전도’라는 거예요. 모든 시대마다 주어진 가치표가 있어요. 학교에서 배운 거죠. 니체는 이 가치표를 다시 써야 한다고 말했어요. 마음의 서판을 네가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순서대로 다시 쓰라고 했어요. 뭐 먹었는지, 무슨 책을 읽었는지, 무슨 음악을 들었는지, 내가 나를 위해 했던 많은 것들을 쓰는 것이 중요하다고요. 사소한 것은 사소하지 않다, 중요한 것은 중요하지 않다, 이것이 가치의 전도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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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째는 ‘진리만큼이나 오류도 소중하다’는 가르침이었다. 이에 고병권은 “니체는 정말 민주적인 사람”이라고 말문을 열었다. 진리와 오류를 똑같이 대하는 사람이었다는 설명이다.

 

“우리가 오류를 안 범했다면 살 수 없었을지도 몰라요. 살아있다는 건 생략, 과장, 왜곡, 이런 거죠. 존재한다는 것 자체가 굴절이죠. 이건 나쁜 게 아니에요. 삶을 위해 꼭 필요한 것들이죠. 참만큼이나 거짓이 소중하고, 진리만큼이나 허구도 소중하다, 그것을 함부로 저울질하지 말라, 라고 니체는 이야기합니다.”

 

세 번째 가르침은 ‘퍼스펙티비즘(perspectivism)’이었다. 진리와 오류가 모두 소중하기 때문에 다른 ‘퍼스펙티브(perspective)’를 체험하라는 것이다. 여기서 ‘개구리의 퍼스펙티브’가 등장한다. 가깝고 낮은 것이 훨씬 길어 보이는 개구리의 시선은 근시안적이다. 개구리의 오류다. 그러나 그 덕분에 곤충을 놓치지 않고 잡는다. 개구리는 자신의 오류 덕분에 산다. 악덕이 미덕이 되는 것이다.

 

“이것이 개구리에게 실재하는 세계예요. 개구리는 이 세계를 체험하며 살아가요. 이것을 오류라고 한다면 어떤 의미에서 개구리는 오류 속에서 살아가는 거죠. 그것이 개구리의 현실이에요. 우리는 각자의 퍼스펙티브 안에서 보게 돼요. 중요한 것은 얼마나 많은 퍼스펙티브를 체험해봤느냐죠. 개구리보다 우리가 제대로 본다고 우기는 건 바보예요. 개구리, 나, 저 사람, 우리 시대의 퍼스펙티브가 각각 있는 거예요. 철학은 다른 퍼스펙티브로 보아 본 체험의 문제입니다. 니체는 계속 이렇게 보다 보면 언젠가 세상을 보는 눈이 달라진다고 말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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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번째 니체, 다이너마이트

 

세 번째 만난 니체는 ‘시간’의 문제를 던졌다. 철학은 시간을 필요로 한다는 것이다. 말하자면 기다림이었다.

 

“니체가 이런 말을 한 적이 있어요. 현재 유럽의 젊은이들은 재능도 충분하고 훌륭하다, 없는 건 딱 하나, 시간이다, 라고요. 젊은 사람들에게 제발 시간을 주라고요. 자기 삶을 돌아보고 계획할 시간 말입니다. 철학도 마찬가지예요. 이동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머물고 기다리는 것도 무척 중요하다는 건데요. 마치 참나무통에서 포도주가 익어가는 데 필요한 것이 공간이 아니라 시간인 것처럼 말이에요.”

 

화살을 멀리 날리고 싶다면 활시위를 계속 당겨야 한다. 폭발해버리면 다이너마이트가 아니다. 무서운 폭발력을 응축하고 있는 것, 그것이 다이너마이트다.

 

“응축하지 않고 바로 수다스럽게 떠들어대는 것, 대표적인 것이 신문이죠. 니체는 신문을 우리가 무언가를 품을 수 없다는 것에 대한 증거라고 했어요. 철학이 시간을 품는 것이라는 것, 때를 기다리는 것이라는 것, 이걸 『다이너마이트 니체』에 담고 싶었어요.”

 

니체의 『선악의 저편』에는 ‘도래하는’이라는 말이 정말 많이 나온다. 부제 역시 ‘도래하는 철학을 향한 서곡’이라고 달았다. 역시 기다림에 관한 것이다.

 

“기다리는 건 쉽잖아요? 알아서 시간이 가요. 오래 걸리더라도 때가 와요. 니체는 가만히 있는 것은 기다리는 게 아니라고 말해요. 문이 열리기를 기다리는 사람은 가만히 있지 않고 두드립니다. 열매를 기다리는 사람은 씨앗을 심어요. 기다림은 중요해요. 기다림이 없으면 사건이 없어요. 그 점에서 기다림은 실천입니다. 다가오지 않은 것에 다가서는 것이죠.”

 

여기서 니체가 질문을 던진다. 도래하는 철학자는 현자인가, 바보인가? 니체는 살아있는 바보가 진정한 철학자라고 생각했다. 고병권은 이 대목에서 바로 전태일을 떠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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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이것이 철학사건이라고 생각해요. 전태일이 ‘바보회’를 만들었을 때요. 그때 그는 각성했어요. ‘바보회’라는 이름은 바보라면 절대 만들 수 없는 이름이죠. 전태일은 우리가 바보였다는 걸 철저히 알아야 한다고 했어요. 동시에 선배 재단사들을 바보라고 부른 거죠. 선배 재단사들은 이미 알고 있어요. 현인들이에요. 현자들은 지혜롭지만 세상을 못 바꿔요. 세상에 적응하는 법에 대해서는 잘 알아요. 현자는 체제의 협력자예요. 바보, 니체가 말한 살아있는 바보가 도래하는 철학자, 바로 전태일 같은 사람이죠. 그의 죽음은 좌절이 아니에요. 한때 바보였다는 걸 깨달은 사람은 과거로 다시 못 돌아가요. 죽을 수는 있어도 바보가 될 수는 없죠.”

 

그러므로 ‘어쩌면’은 막연한 개연성을 가리키는 말도 아니고, 정교한 확률적 예측을 가리키는 말도 아니다. 이 말은 현재의 논리와 현재의 율법 속에서 관측된 빈곤한 가능성, 사건이 부재한 가운데 도달할 예견된 결과와는 정반대 의미를 갖는다. ‘어쩌면’은 ‘불가능’을 ‘가능’으로 바꾸어내는, 불가능이라는 결정을 깨뜨리는 ‘가능화(possiblisation)’의 단어라 해도 좋을 것이다. 바꾸어 말하면 ‘어쩌면’은 율법에 대한 의심이자 율법의 효력 정지다. 그러므로 이 단어는 참으로 도래하는 철학자를 수식하는 말이라 할 수 있다.(『다이너마이트 니체』, 86쪽)

 

‘어쩌면’이라는 말을 하는 사람이 어쩌면 도래하는 철학자일지도 모른다. 위험한 가정을 하는 사람, 그런 철학자를 기다린다고 니체는 말했다. 그리고, 도래하는 철학자는 다른 존재가 아니다. 바로 ‘나’다.

 

“내 안에는 다른 ‘나’가 있다는 거예요. 뿐만 아니라 내 앞에는 나를 넘어서는 ‘나’가 있어요. 철학은 이 믿음으로 투신하는 것이죠. 나를 구원하는 것은 나라는 거예요. 그러니 단련하라고요. 그것이 기다리는 거니까요. 그 뒤에 자유가 언제 찾아올지 모르죠. 언제 삶이 달라질지 몰라요. 다만 철학자가 할 수 있는 것 하나는, 기다리는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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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이너마이트 니체 고병권 저 | 천년의상상
《다이너마이트 니체》는 2000년대 초부터 지금까지 우리에게 ‘니체로 가는 길’을 보여준 철학자 고병권이 《선악의 저편》을 강독한 책이다. ‘가장 높은 곳에 마련된 식탁’에 다다르기 위해 위로 올라가고, 온갖 훈련을 통해 마치 “살갗이 햇볕에 그을리듯” 점점 고양되는 정서를 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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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ㆍ사진 | 신연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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