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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환과 안개, 엘비스 디프레스들리(Elvis Depressedly)

엘비스 디프레스들리(Elvis Depressedly) <Holo Pleasures/California Dream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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밴드의 특성인 로 파이 사운드, 잘 들리는 멜로디, 무지근한 느낌이 작품 곳곳에 잘 살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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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히 흐리고 심히 거친 사운드. 작품을 열었을 때 가장 먼저 우리에게 인사를 건네는 것들이다. 정제 과정을 무시하다 못 해 차라리 그 반대편으로 뛰어 나가버린 듯한 로 파이의 질감과 이를 작품 전반으로 부옇게 퍼뜨리는 리버브 톤이 앨범 전체에 서려있다. 안개가 지독하게 낀 듯한 형상이다. 이에 대해선 양가적인 입장을 취해볼 수 있겠다. 엘비스 디프레스들리가 늘 로 파이의 사운드를 끌어안고 사는 밴드라는 점을 생각해보면 충분히 반길 수 있는 요소에 해당하나, 2012년의 <Mickey’s Dead>와 <Hotter Sadness>, 2015년의 <New Alhambra>으로 이어지는 전작들과 비교했을 때 불투명함과 투박함의 정도가 훨씬 강하다는 점을 고려해보면 조금은 당혹스럽게 다가오는 요소로 머무르기도 한다.

 

그러나 엘비스 디프레스들리의 음악이 가진 강점은 언제나 까끌까끌한 사운드 마감과 특유의 선율이 교차할 때 빛을 발해왔다. 그렇기에 <Holo Pleasures/California Dreamin’>에 대한 이야기는 어지러운 사운드가 불편하냐 아니냐의 논제로부터 한 걸음 더 나아간 지점에서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밴드의 노래는 미묘하다. 간편한 코드 진행과 가볍게 움직이는 멜로디 메이킹으로 듣기에 편안한 선율을 만들어내면서도 무기력하게 휘청거리는 기타 리프와 점차 가라앉는 듯한 보컬로 무거운 공기를 자아내기도 한다. 탁한 음향으로 가득 메운 앰비언스를 뚫고 노래에 가까이 다가가 보자. 차분하게 빚어낸 서정성이 돋보이는 「Okay」와 「Pepsi / Coke suicide」, 캐치한 리프의 기타 록 사운드가 나른하게 울리는 「Inside you」, 전작의 「Bruises (amethyst)」처럼 몽롱하게 울리는 「Weird honey」, 시드 배릿의 사이키델릭 포크를 닮은 「Cop poet」 등의 곡들에 소구력 좋은 멜로디와 침잠하는 정서가 공존해있다.

 

불친절하게 소리를 전하는 사운드의 효용에 대해 제대로 논할 차례가 왔다. 흐릿하고 뿌연 음향은 엘비스 프레스들리의 기타 록과 포크 록, 사이키델릭 팝에 담긴 우울한 분위기를 강조하는 데 일조한다. 들리는 모든 걸 헝클어뜨리고 왜곡하는 필터 덕분에 밴드의 노래에 내재된 여러 냉소와 조소, 비난과 비관은 그 감정의 세기를 더욱 강하게 나타낼 수 있게 됐다. 힘 없이 읊조리는 매튜 리의 보컬뿐 아니라 몽환감을 일으키는 「Weird honey」의 기타 선율, 아득함을 더하는 「Thinning out」의 스트링과 「Angel cum clean」의 키보드, 부피감 큰 「Teeth」의 신디사이저와 같은 요소들이 로 파이의 텍스처를 끌어 안고 작품의 이미지를 잘 그려낸다. 앨범의 진가는 이 지점에서 빛을 발한다. 트랙 리스트를 관통하는 내내 괜찮은 곡과 불편한 장치가 만나 서로의 가치를 극대화한다. 멋진 결과물들이 가득한 작품이다.

 

물론 앨범은 한 해 전의 수작 <New Alhambra>만큼이나 뛰어나다고는 할 수 없겠다. 전작의 곡들보다는 다소 멜로디의 흡입력이 떨어진다는 점이 격차를 발생시킨다. 까칠한 사운드 톤 역시 마찬가지다. 좋은 효과를 일으킨다고는 해도 호오 사이의 거리를 꽤 늘인다는 점은 쉽게 간과하기 힘들다. 게다가 앞선 작품에선 이를 어느 정도 정돈해놓지 않았던가. 다만 이 음반이 <New Alhambra>보다 일찍 완성됐다는 점을 이 맥락에서 함께 볼 필요가 있다. 작품은 2013년에 발표한 EP <Holo Pleasures>와 비슷한 시기에 만들어 두고 내놓지 않은 EP <California Dreamin’>을 묶어낸 결과물이다. 그래서 어쩌면 일부 앨범 내의 한계는 과도기적 흔적일 수도 있다. 그리고 개인적으로는 그렇게 보고자 한다. 아쉬운 점은 있으나 충분히 좋은 앨범이다. 밴드의 특성인 로 파이 사운드, 잘 들리는 멜로디, 무지근한 느낌이 작품 곳곳에 잘 살아있다. 행보의 중간에서 조금은 거칠지만 멋지게 자신을 그렸던 앨범이다.

 

2016/06 이수호 (howard19@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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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이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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