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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시민 “당신은 왜 글을 쓰는가?"

만화가 정훈이와 함께 『표현의 기술』 펴내 결국 표현의 기술은 마음에서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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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을 쓸 때만이라도 "Why?", "Why not?"을 생각해야 한다. 이게 맞나? 왜 맞지?를 생각해보면 알아서 검색하게 되고 새로운 사실을 얻게 된다. 지금은 정보가 넘치는 시대 아닌가. 넘치는 정보 중에서 어떤 정보를 왜 찾느냐가 중요하다. (2016-07-06)

“생각은 힘이 세다.” 작가 유시민이 자신의 사인과 곁들인 문장이다. 직업정치를 떠나 전업작가가 된지도 벌써 4년. 유시민은 2013년에 펴낸 『어떻게 살 것인가』 이후, 단독 저서를 5권 냈고 공저로 참여한 책만 4권이다. 명함에 '지식소매상'이라는 타이틀을 적은 후, 그는 꾸준히 책을 썼다. 『표현의 기술』은 만화가 정훈이와 함께 쓴 책으로 강연과 온라인 상담실에서 주고 받았던 글쓰기, 말하기, 토론하기 등에 관한 질문을 토대로 집필했다. 유시민은 글을 쓸 때, 항상 "Why?", "Why not?"을 따져본다. 『표현의 기술』의 제1장 제목이 '왜 쓰는가'인 까닭이다. 

 

유시민은 "나를 표현하는 것과 세상을 더 좋게 바꾸는 것 사이에 울타리를 세우지 말라”고 조언한다. 자신을 표현하는 글쓰기와 여론 형성을 목적으로 한 글쓰기를 선명하게 나누긴 어렵기 때문이다. 아마 독자들은 글을 잘 쓰고 싶어서, 그림을 잘 그리고 싶어서, 소통을 잘하고 싶어서  『표현의 기술』을 집을 것이다. 곳곳에 만화가 등장하는 이유에서일까, 책은 무척 편안하고 쉽게 읽힌다. 재미도 있다. 문제는 마지막 책장을 덮었을 때, 책을 통해 얻은 질문이 있느냐다. 유시민은 결국, 표현의 기술은 "자유롭고 자신 있게 내면을 표현하려는 마음"에서 나온다고 했다. '마음, 생각, 질문'. 세 가지 키워드로 『표현의 기술』을 읽어보면 어떨까. 마음을 열지 않으면 기술을 배울 수 없듯이, 책도 마찬가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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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 글쓰기의 열쇠, 문장 기술이 아니라 '마음'에 있다

 

정치적인 글쓰기에 성공한 듯하다. "지금까지 정치적 목적 없이 쓴 책은 단 한 권도 없었다"고 밝혔는데, 『표현의 기술』을 읽고 나니 그 속뜻을 확실히 알겠더라.

 

책에도 썼지만 사람들은 정치와 정치인을 특별하게 불신한다. 정치와 글쓰기는 분리해야 하고 정치적 목적으로 쓴 글은 가치가 적다고 믿는 사람이 많은데, 정치적 목적이 있다고 해서 글쓰기의 다른 목적을 해치는 것도 아니다. 오히려 바람직할 수 있는데, 정치적 목적을 잘 이루려면 미학적 열정을 담아 아름답고 멋진 글을 써야 하기 때문이다. 글쓰기에 있어 정치와 예술은 서로 배척하지 않는다. 작가는 세상사를 있는 그대로 보면서 사실에 근거를 두고 진리와 진심을 담으려고 노력해야 한다. 그렇게 쓴 글이라야 많은 독자의 마음을 움직이고 오래 살아 남을 수 있다. 

 

만화가 ‘정훈이’와 함께 쓴 책이다.

 

만화가 삽화로 들어간 책이 아니라 공저로 쓴 책이다. 정훈이 작가는 이 책을 두고 “두 권을 붙여 놓은 책”이라고 말했는데, 그렇게 볼 수도 있지만 내 생각으론 그림이든 글이든 본질적으로는 동일하다고 생각한다. 어떤 주제를 표현할 때, 문자가 더 호소력이 있고 그림이 더 접근성이 높을 수 있는데, 이 두 가지를 같이 사용했을 때 배가 되는 경우도 있다.

 

글과 만화를 동시에 썼는지 궁금하다.

 

기획 단계에서 의견을 같이 나눴고, 내가 글을 먼저 썼다. 4달 정도 먼저 끝낸 것 같다. 정훈이 작가의 에필로그에 나오기도 하지만, 콜라보 작업은 처음이라서 좀 힘들었던 부분도 있었던 것 같다. 하지만 끝내고 나니 서로가 만족스러운 결과물이 나왔다. 과정이 재밌었다. 다른 프로젝트를 또 한 번 같이 해도 좋겠다.

 

정훈이 만화를 선택한 이유는 무엇이었나?

 

그의 만화를 보면 명랑만화 같기도 하고 풍자만화, 생활만화 같기도 하다. 굉장히 독특한데, <씨네21>에서 만화를 연재할 때부터 눈여겨봤던 작가다. <씨네21>은 영화 잡지 아닌가. 그래서 영화에 관한 만화일 줄 알았는데, 모티프만 영화로 했을 뿐 자기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하더라. 내 텍스트와 같이 작업해보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이번 책을 작업하면서 그림에 대한 매력을 톡톡히 느꼈다. 텍스트는 여러 문단을 써야 이해가 되는 반면, 그림은 한 컷만으로 이야기를 만들 수 있다. 직관이라고 볼 수 있는데, 책에서 정훈이 아버지에 관한 에피소드가 나오지 않나? 기쁠 때나 화낼 때나 표정이 똑같은 아버지를 설명할 때, 글로 표현하면 여러 문장이 필요하지만 그림은 세 컷으로 충분하다. 그림의 힘이 얼마나 강력한지를 깨닫는 작업 과정이었다.

 

책을 만들면서 그림을 한번 그려보고 싶다는 생각도 했겠다.

 

늘 한다. 글 쓰는데 쫓겨서 엄두는 못 내지만 항상 하긴 한다.

 

강연이나 온라인 상담실을 통해 받은 '글쓰기'에 관한 질문이 다수 소개됐다. 글쓰기를 직업으로 하지 않은 사람들의 고민도 꽤 많아서 놀랐다. 이를 테면, 한 교사는 화장실 사용법에 대해 학생들을 지도해 달라는 공지문을 쓰다가 혹시 동료 교사들이 불편해 하지 않을까 걱정이 되어, 좋은 표현법을 가르쳐달라고 했다.

 

그 교사에게는 이런 답변을 했다. 상대가 번거로워할 만한 글을 쓸 때는 되도록 짧고 명확하게 쓰고, 읽는 사람이 웃을 수 있도록 유머를 집어넣으라고. 생활 글쓰기의 열쇠는 문장 기술이 아니라 마음에 있는 경우가 많다. 아이를 지도하는 교사부터 시작해서 일상에서 누군가에게 축하의 글을 남기는 일 등은 누구나 평범하게 겪는 일이다. 글쓰기 상담을 하면서 매주 연재를 했는데, 연재 글은 오랫동안 손보기가 어려웠다. 시간에 쫓겨서 미처 말하지 못했던 내용을 포함해 다양한 질문을 다뤘다. 꼭 글쓰기에 국한하지 말고 어떤 미디어, 장르를 통해 나를 표현하고자 할 때 부딪히는 문제를 이야기하고자 했다. 

 

소제목도 재밌다. “왜 쓰는가”라는 진지한 물음도 있지만, “악플을 어찌할꼬”, “감정이입? 어쩌란 말인가”, “베스트셀러는 특별한 게 있다” 등 흥미로운 제목이 인상적이었다.

 

글 쓰다 보면 모두가 부딪히는 문제일 거다. 전작 『유시민의 글쓰기 특강』이 논리적 글쓰기에 관한 책이었다면, 이번 책은 달콤 씁쓸한 글쓰기의 맛을 즐기려는 독자를 생각하면 쓴 글이다. 작년에는 유독 강연을 많이 다녔는데 글을 잘 쓰기 위해 고민하는 분들이 정말 많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한 번은 건축디자인을 하는 분들의 모임에 초대 받아, 글 쓰는 능력을 기르는 훈련법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는데 한 젊은 분이 “디자인을 하면서 제가 부딪치는 문제와 똑같았다. 내 고민을 해결하는 데 많은 도움이 됐다”고 하더라. 이 말이 『표현의 기술』을 쓰게 된 계기가 됐다. 

 

제목은 어찌 보면 조금 평범하다. 비슷한 제목의 책도 여럿 있다.

 

'기술'이라는 단어가 들어간 책 제목이 무지 많다. 튀는 제목도 생각해봤는데, '표현의 기술'이 가장 적합하다고 생각했다. 이 책이 담고 있는 어떤 문제의식을 잘 표현한 제목이라고 느꼈다. 평범해 보이지만 나쁘지 않은 제목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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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요한 건, 열 받음에 대처하는 나의 태도

 

"정치인들이든 시민이든 말과 글로 싸울 때, 창의적으로 개성 있게 예술적으로 쓰라"고 했다. 그러기 위해서는 문장의 아름다움, 독창적인 논리의 미학이 필요한데 앞서 ‘생각과 감정에 자유의 날개를 다는 것’이 중요하다고 지적했다. 어떤 문제에 대해 자유롭게 생각하는 것만큼 어려운 일이 없지 않나?

 

물론이다. 어렵다. 글을 쓸 때, '이 말이 맞나?'도 중요하지만 '이게 말이 되나?'도 중요하다. 확실한 건 없으니까 옳고 그름을 결정하는 것은 후순위이고, 일단 말이 되야 한다. 사람들이 동의하는 글인지, 글 자체가 말이 되는 게 중요하다. 사실 말도 안 되는 주장도 많다. 또 확신이 안 드는 관념도 많다. 익히 봐 왔고 들어 왔고 읽었기 때문에 당연히 그럴 거라 생각하는데, 아이를 키우다 보면 엉뚱한 질문을 받곤 하지 않나? 최근에 소설가 김형수 선생이 쓴 『소태산 평전』을 읽었는데, 원불교 창시자인 소태산이 어릴 적 동네에서 콜레라를 예방하기 위해 대문에 고양이 그림을 붙이는 걸 보고, "왜 고양이인가? 호랑이 정도는 돼야 콜레라가 무서워할 것이 아닌가?"라고 물었단다. 이 질문은 어떻게 보면 생뚱하게 보이는데, 고정관념이 없는 아이였기 때문에 가능한 질문이다. 우리는 사회화를 거치면서 대부분 순치된다. 아이의 사고방식으로 살면 불편하기 때문인데, 글을 쓸 때만이라도 "Why?", "Why not?"을 생각해야 한다. 이게 맞나? 왜 맞지?를 생각해보면 알아서 검색하게 되고 새로운 사실을 얻게 된다. 지금은 정보가 넘치는 시대 아닌가. 넘치는 정보 중에서 어떤 정보를 왜 찾느냐가 중요하다. 

 

“진보적 원칙을 글쓰기 어떻게 반영하냐?”라는 물음에 "그런 생각을 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중요한 것은 ‘문장의 정확성, 논리적 결함이 없는가, 내가 하고 싶은 말인가? 독자의 마음에 공감을 일으킬 수 있는지’ 등 4가지를 살핀다고 했다. 이 중에 가장 어려운 것은 무엇인가?

 

가장 중요한 것은 ‘독자의 공감을 받을 수 있냐’다. 독자와 얼마나 교감, 소통했냐가 중요한데, 실제 가장 어려운 건 문장을 잘 쓰는 일이다. 매번 표현하려는 감정이나 메시지를 정확하게 표현하는 문장을 쓰는 게 가장 어렵다. 보통 사람들에게는 안 어려울 수도 있지만, 직업적 글쓰기를 하는 사람에게는 가장 어려운 일이다. 마크 트웨인은 "꼭 맞는 말과 대충 맞는 말의 차이는 반딧불이와 번개만큼의 차이"라고 말했다. 아마 내가 전업작가라서 더 그럴 테지만, 글을 쓰다 보면 맨 마지막 단계에 이르기 까지 끊임 없이 뜯어고치게 된다. 더 이상 지겨워서 어떻게 할 수 없을 때, 손을 털게 된다.

 

저자 개인의 이야기도 많이 등장한다. 어떻게 보면 해명으로 읽힐 소지가 있는 글들도 많다. 이를 테면 2015년  JTBC <밤샘토론>에서의 저자의 발언을 두고 논평한, 문학평론가와 칼럼니스트의  글을 비평했다.

 

해명으로 받아들이는 사람도 물론 있을 거다. 하지만 그건 어쩔 수 없는 거다. 토론이나 논쟁을 하게 되면 필연적으로 자기를 지키는 요소가 표현될 수밖에 없다. 그 점을 중시해서 보는 독자가 있다면 내 글을 변명으로 볼 거고, 논쟁으로 보는 사람은 반격으로 볼 거다. 이 문제는 독자에게 달렸다. 사람들은 보고 싶은 걸 보니까, 나로서는 상관하기 어렵다.

 

해석에 있어서 논란의 소지가 될 수 있는 이야기도 있지 않나? 생략할 여지는 없었나.

 

꼭 하고 싶은 말이었기 때문에 그렇지 않았다. (웃음)

 

악플 대처법에 대해서는 민간요법을 추천했다. 무시하는 것이 정말 쉽지 않은 일인데.

 

요즘은 일반인들도 악플 스트레스가 많다. 댓글의 대댓글이라는 것이 있지 않나. 누구라도 악플을 마주할 수 있는데, 악플을 보고 열이 받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중요한 건, 열 받음에 대처하는 나의 태도다. 물론 쉬운 일이 아니다. 나 역시 한 저명인사가 나를 두고 끊임 없이 악플을 달았을 때, 한 번쯤은 반격하고 싶은 유혹을 받았다. 하지만 이럴 때 바로 반응하면 안 된다. 하루쯤 더 생각해봐야 한다. 그렇게 시간을 보내다 보면, ‘이걸 끝까지 기억하는 사람이 누가 있을까’ 싶은 생각이 든다. 이런 문제에 매달리면 삶이 소모된다. 내 삶을 지키는 것이 더 소중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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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자, 독자의 태도도 중요하지 않을까. 아무리 정확하게 표현해도 곡해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그건 어쩔 수 없다. 우리가 아무리 올바르게 써도 상황에 따라 인식하는 경우가 다르다. 읽는 사람의 태도는 어떻게 할 수가 없다. 바꿀 수 없는 일을 두고 계속 에너지를 쓰면 나만 괴로울 뿐이다. 사람은 자기가 정말 필요할 때 바뀐다. (웃음) 사람의 성정이 모두 다른 것과 비슷한 이치다. 

 

감정이 실린 글을 읽을 때, 더 어려운 것 같다. 요즘은 말보다 메신저, 메일을 많이 쓰니까. 

 

어떤 이치를 말한 게 아니고 감정을 실었다고 생각하면, 곡해하는 경우가 있다. 이럴 때는 감정을 빼고 쓰면 된다. 쉽지 않은 일이지만, 되도록 감정은 다른 쪽에서 해결하는 게 좋다. 운동을 하거나 게임을 하는 것도 좋다. 글에 있어서 감정이 오가면 더 고조될 수밖에 없다. 감정에 소모 당하게 되는 경우가 적지 않기 때문에 내가 느끼는 감정의 10%만 표현하는 게 좋다. 

 

그래도 말이 안 통하는 사람도 있지 않나? 해결 방법이 있을까?

 

사람은 안 고쳐진다. (웃음) 이해하려고 하지 않아야 한다. 어쩔 수 없는 부분이 있다. 내 감정도 내가 감당할 수 있을 만큼 표현하는 게 좋다. 분노조절장애가 생기면 힘이 없는 사람은 자기 인생을 괴롭힌다. 반면 힘이 있는 사람은 남을 괴롭히게 되고. 둘 다 안 좋은 일이다.

 

윗사람과 소통할 때는 어떻게 해야 할까? 표현의 기술을 조언해준다면?

 

마음이 중요하다. 아무리 마음에 안 드는 사람이라도, 최대한 그 사람 입장에 서보는 거다. 나를 좋아하는 사람을 싫어하는 사람은 없지 않은가. 거짓말을 하라는 이야기가 아니다. 생각과 성격이 다른 사람이라도 상대가 내 입장을 생각해주면, 상대에게 적대감이 생기지 않는다. 나 역시 많은 시행착오 끝에 좌절 끝에 깨닫게 된 사실이다. 중요한 건, 내가 실제로 그 마음을 갖는 일이다. 마음 없이 ‘그 사람이 이렇게 느끼도록 만들겠다’고 생각하면 할 수 없다. 상대의 장점을 자꾸 봐주려고 하면 감정이입을 할 수 있다. 내가 어떤 적대감을 갖고 있으면, 상대방도 반드시 그 감정을 느낀다. 

 

다독가로 보이는데, “완전히 재미없고 난해한 책은 읽지 않는다”고 말했다. 평소에 읽는 책은 어떻게 선택하나?

 

주로 신문에 소개된 신간을 주목해서 본다. 아내가 구입해서 같이 보는 경우가 많은데, 사고 나면 출판사에서 같은 책을 보내주는 경우도 있다. 최근에는 역사학자 유발 하라리의 『사피엔스』를 굉장히 인상 깊게 읽었다. 엄청난 책이라고 생각한다. 그간 인류사에 관한 책들이 꽤 나왔지만, 철학적 깊이와 함께 문장도 좋은 책은 오랜만이다. 읽은 사람이 자꾸 권해주게 되는 책이다. 정보량이 상당히 많은 책이기 때문에 한 번 읽어서는 모든 걸 이해하기 어렵다. 여러 번 볼만한 책이다. 1만 몇 천원에 이런 책을 볼 수 있다는 게 얼마나 축복인지 모른다. 출판은 위대하다. ‘세상에 이런 일이?’ 차원이라고 본다. 옛날에는 고수를 찾아서 천리 길도 마다하지 않았나. 지금은 고수를 만나지 않아도 책으로 모든 걸 배울 수 있다. 인간이 만든 문화양식 중에 이런 게 어딨나?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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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문을 갖고 접근하라

 

요즘 일상은 어떤가.

 

일주일 단위다. 월요일에는 <썰전> 녹화가 있고, 화요일부터 금요일은 파주 작업실에서 글을 쓴다. 주말에는 가족과 시간을 보내고. 3달에 한 번 정도는 여행을 간다. 유럽 도시 기행 프로젝트 때문인데 대개 2주 일정으로 진행하고 있다. <썰전> 방송이 시의성이 있는 시사 문제를 다루는 프로그램이라서 장기 여행을 떠날 수 없다. 첫 여행지는 아테네, 이스탄불이었다. 내년 정도에 1권이 출간될지, 좀 더 쌓아서 나중에 책이 나올지는 아직 모르겠다.

 

역사 기행물인가? 여행 에세이인가?

 

글쎄. 평소 내가 가보고 싶었던 도시를 중심으로 다룰 예정이다. 유발 하라리 강연에서 마지막 말이 “너 자신을 알라”였는데, 여행을 가는 것도 마찬가지다. 나를 알고 싶어서 간다. 경치 좋은 곳이 아니라 옛날 사람들의 흔적이 있는 곳, 나에게 의미가 있다고 생각하는 공간을 눈으로 보고 싶은 거다. 아마 독자들도 아크로폴리스 같은 곳은 누구나 한 번쯤 가보고 싶어 하지 않을까. 

 

앞으로 갈 여행지는 어디인가?

 

7월은 더우니까, 조금 덜 더운 곳으로 가려고 한다. 빈이랑 부다페스트를 가볼까 생각하는데, 시간이 너무 빠듯하다. 프라하랑 드레스덴을 묶어서 가야 하나, 고민 중이다.

 

올해 1월부터 JTBC 시사교양 프로그램 <썰전>에 출연 중이다. 정치에서 은퇴하고 전업작가로 살겠다고 밝힌 터라, 의외라는 반응이 있다. 출연 동기가 궁금하다.

 

동기는 명료하다. 정치적 글쓰기를 하는 이유와 같다. 사람들이 대중적으로 관심을 갖는 정치, 사회, 문화적인 현상에 대해 이런 시각, 이런 해석도 있다는 걸을 보여주고 싶다. 나 역시, 모든 이슈에 대해 전문적인 견해를 갖고 있지 않기 때문에 매번 새롭게 정보 검색을 해야 한다. 토요일쯤 제작진이 “다음주에 이런 주제를 갖고 이야기할 예정입니다”라고 연락을 주면, 그 때부터 자료를 검색한다. 일요일 오전에는 방송국에서 대본이랑 자료를 보내오는데, 그 자료를 그냥 읽지 않고 좀 더 깊이 들어가본다. 나 스스로의 질문을 만들어보는 거다. 

 

질문을 갖고 검색을 하라는 뜻인가?

 

질문이 없는 상태로 인터넷에 들어가면 그야말로 정보의 바다다. 헤엄만 치다 나온다. 낚싯대를 던질 때도 뭘 낚고 싶은 게 있어야 하지 않나. 어종의 생태는 어떠하고 수심은 어떤지, 먹이를 먹는 습성은 어떤지를 알아야 적절한 위치, 적절한 타이밍에 맞춰 낚싯대를 던질 수 있다. 예를 들어 ‘브렉시트’를 검색한다고 치자. 영국은 왜 유럽연합을 탈퇴한다고 밝혔을까? 생각해보니 영국만 유로화를 쓰지 않고 파운드화를 쓰고 있네? 그렇다면 유럽연합은 왜 만들어진 거지? 한중일은 공동 사법 정치 군사제도를 만들어서 주권의 일부를 양도하는 건 상상할 수 없는데, 유럽은 왜 이렇게 됐지? 하고 질문을 던져 보면, 유럽연합의 경제적 이해관계나 과거 역사가 줄줄이 나온다. 그래서 질문이 있어야 의미 있는 검색이 된다. 의미를 갖고 질문을 하다 보면 할 이야기가 생긴다. 질문 없이 정보를 보는 건 시간 낭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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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송은 편집이 반이다. 잘못 편집될 염려도 있을 것 같은데.

 

편집은 제작진의 몫이다. 일체 관여하지 않는다. 내가 말한 맥락을 잘 이해하지 못해도 어쩔 수 없다. 잘못된 정보나 논리적인 오류가 있을 때는 CG로 이야기하려고 하고, 편집할 때 참고가 될 만한 자료들을 정리해서 녹화가 끝나고 제작진에게 드리고 간다. 그러니까 대개 큰 오류 없이 방송이 나온다. <썰전>에 출연하는 두 번째 이유는 밥을 먹고 살만큼 돈을 주기 때문이다. 내 기준에서는 출연료가 꽤 높다. 광고 수익이 얼마나 되는 프로그램인지, 제작진은 얼마를 받는지 모르지만, 1주일에 1번 출연하는 비용으로는 높다. 그래서 다른 방송이나 인터뷰, 기고 등을 안 하고 방송에 집중한다. 덕분에 해마다 책을 한 권씩 펴내야 한다는 압박에서 조금 자유로워졌다. 나한테도 좋고, 사회적으로도 의미가 있고, 시청률도 괜찮은 편이니까 좋은 선택이었다고 생각한다. 

 

말하고 글 쓰는 직업을 갖고 있다. 어떤 게 더 편한가?

 

편하긴 말이 더 편하다. 말은 함량이 낮으니까 비약이 있거나 논리적인 모순이 있어도 사람들이 다 알아채지 못한다. 하지만 글은 반복해서 보게 되니까 제대로 하기가 더 어렵다.
 
책에서 “말을 잘하는 사람이 글도 잘 쓴다”고 했는데, 극과 극인 경우도 있지 않나 싶다.

 

말에 가치를 크게 부여하지 않아서 그렇다. 심지어 말을 잘하는 걸 나쁘게 보는 시각도 있다. 글로는 속이기 힘들어도 말로는 속일 수 있다. 우리는 문자 없이 산 세월이 길지 않은가. 말 잘하는 사람을 두고는 “저 사람 말을 잘한다”고 평가하지만 존경하진 않는다. 반면 말을 잘 못해도 글을 잘 쓰면 ‘훌륭한 작가’라고 치켜세운다. 그래서 사람들이 말에는 노력을 크게 하지 않는다. 글을 잘 쓰는 사람은 조금만 더 노력하면 대부분 말을 잘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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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지 오웰과 같이 “정치적 글쓰기를 예술로 만드는 것”이 큰 소망이라고 밝혔다. 글쓰기에 관한 미학적 열정은 앞으로 어떻게 펼칠 예정인가?

 

지금은 다른 계획을 세우기 어렵다. 향후 5년 정도는 작업량이 빠듯하게 있기 때문에 그 후를 내다 봐야 할 것 같다. 요즘은 젊을 때처럼 숨가쁘게 일하기 어렵다. 7,8년 전까지만 해도 새벽 2,3시까지 글을 쓰는 게 어렵지 않았는데 지금은 아니다. 나이가 들면서 좋아지는 것도 있지만, 집중력과 지구력은 예전 같지 않다. 작업시간이 길지 못하기 때문에 적당히 숨을 돌리면서 작업을 해야 할 것 같다.

 

지금, 유시민의 최대 관심사는 무엇인가? 만약 일간지 1면을 통으로 준다면 어떤 주제로 글을 쓰고 싶나.

 

'인간'에 대해 쓰고 싶다. 우리 인류 역사 전체에서 가장 중요한 질문이 '나는 누구인가'다. '나는 무엇인가, 우리는 무엇인가'라는 질문은 수만 년 전부터 가졌던 물음이다. 모든 문명과 과학은 이 질문에 대한 해답을 찾아가는 과정이었다고 생각한다. 우리 인류가 우리 자신에 대해서 어디까지 알게 되었나, 우리가 알고 있다고 느끼는 것 중에 확실한 것은 무엇이고 불확실한 것은 무엇인지가 나의 관심사다. 한강 작가의 『채식주의자』를 읽으면서도 그런 생각을 했다. 인간의 여러 모순적인 측면에서 우리가 아름답다고 생각하는 것을 끝까지 추구하고, 우리가 역겹다고 생각하는 것을 끝까지 배척할 때 한 인간의 삶이 어떻게 되는가?, 이것이 이 소설의 테마가 아니었을까 싶다. 우리는 "이러면 안 돼"라는 관념을 갖고 있는데, 이것이 추하다고 생각하면서도 끝까지 없애지 못한다. 한강의 소설을 두고 '인간의 폭력성을 탐구한 작품'이라고만 단정지을 수는 없을 것 같다. 그의 소설 『소년이 온다』는 너무 힘들어서 못 읽겠더라. 우리 세대는 너무 고통스러워서 페이지가 잘 넘어가지 않는다. 한강은 그만큼 독자를 힘들게 하는 작가다. 요즘 나는 "왜 이렇게 살지, 생각은 이런데 내 삶은 왜 이렇지?, 남루한 이 삶을 어떻게 대해야 하지?, 나는 어떤 태도로 인생을 살아가야 하지?"라는 생각을 자주 한다. 소설을 읽거나 교양서, 인문서를 읽을 때도 늘 이 질문을 갖고 책을 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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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현의 기술유시민 저/정훈이 그림 | 생각의길
생각과 감정을 표현하려면 그에 필요한 기술을 익혀야 한다. 평소 많은 독자들이 온오프라인을 통해 문의해 온 글쓰기뿐만 아니라 말하기, 토론하기, 안티 대응 등, 표현을 잘 할 수 있는 모든 궁금증에 대해, 막힘없는 대한민국 대표 작가 유시민이 그만의 ‘표현의 기술’을 아낌없이 전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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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엄지혜


eumji01@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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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마음을 좀먹는 질투를 날려 버려!

어린이가 지닌 마음의 힘을 믿는 유설화 작가의 <장갑 초등학교> 시리즈 신작! 장갑 초등학교에 새로 전학 온 발가락 양말! 야구 장갑은 운동을 좋아하는 발가락 양말에게 호감을 느끼지만, 호감은 곧 질투로 바뀌게 된다. 과연 야구 장갑은 질투심을 떨쳐 버리고, 발가락 양말과 친구가 될 수 있을까?

위기는 최고의 기회다!

『내일의 부』, 『부의 체인저』로 남다른 통찰과 새로운 투자 매뉴얼을 전한 조던 김장섭의 신간이다. 상승과 하락이 반복되며 찾아오는 위기와 기회를 중심으로 저자만의 새로운 투자 해법을 담았다. 위기를 극복하고 기회 삼아 부의 길로 들어서는 조던식 매뉴얼을 만나보자.


문화지원프로젝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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