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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나무 “내 음악은 오래된 미래”

‘포크의 신성’으로 주목받은 가수 2집 <사랑은 높은 곳에서 흐르지> 발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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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에서 순수함을 느낀다는 건 제가 분명 그런 면이 있다는 것일 수도 있죠. 그것을 부정하고 싶지는 않아요. 그런데 그게 다는 아니라는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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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를 마치자마자 달려왔다는 그는 밤 10시가 지나서야 서울에 도착했다. 서천에 있는 초등학교에서는 권경렬 선생님으로, 서울, 아니 각지에서는 뮤지션 권나무로 불린다. 1집 <그림>을 내자마자 '포크의 신성'으로 주목 받았으며 2년여만에 2집 <사랑은 높은 곳에서 흐르지>를 발매하며 바쁜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권나무는 반듯하게 기계로 도려내진 원목이 아니다. 나무의 까칠까칠한 질감과 딱딱한 껍질까지 두루 갖췄다. 알루미늄에선 느낄 수 없는 '온기'와 플라스틱에선 찾을 수 없는 '견고함'이 목소리에 담겨있다. 그는 꾸며지거나 부풀려지지 않은 있는 그대로의 이야기, 나이테처럼 촘촘한 철학들을 풀어놓았다. '물', '사랑은 높은 곳에서 흐르지'는 물에서 태어난 노래라고 한다. '물'과 관련된 음악들을 이제는 물이 '없는' 행화탕에서 권'나무'와 이야기를 나누었다.

 

 

현재 서울과 서천을 왔다 갔다 하신다고요?

 

금요일까지는 학교일 때문에 서천에 있고요. 주말이면 상경해 공연을 합니다. 그래서 거의 매주 서울에 올라와요. 서울과 서천은 세 시간 정도 거리인데 체력적으로 부담이 될 때도 있죠. 돈도 많이 들고. 그래도 떨어져 있으니까 좋은 것도 있고 그래요. 조용하니까. 지역적으로도 직업적으로도 분리가 되는 느낌도 있고요.

 

가르치는 학생들은 선생님이 노래하는 것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나요?

 

별로 관심이 없어요. 로이킴 하고 같은 공연에 서면 그 때는 대단하다 그러죠. “선생님 '양화대교' 부르는 자이언티 아세요?” 라고 물어보기도 했어요. 그런데 저는 아이들이 오히려 무관심해서 좋아요. 저도 계속해서 별다른 게 없다고 이야기를 하고 있고요. 특별히 애들에게 노래를 불러주거나 하지도 않아요. 그저 '니들은 내 노래를 좋아하지 않을 수도 있는데 선생님은 이런 거 부르는 사람이다.' 이렇게. 농담으로 '너네 생각하는 것보다는 유명하다.' 이런 식으로 말을 할때는 있죠(웃음)

 

나무라는 이름을 김광석의 '나무'에서 따왔다고 들었어요. 이름이 나무라서 그런지 나무와 참 잘 어울리는 얼굴, 목소리를 가진 것 같아요.

 

원래는 나무라는 이름을 별로 안 좋아했어요. 나무에 대한 이미지가 너무 선명하니까, 왠지 자연적인 노래를 할 것 같고 그렇잖아요. 그런데 사람들이 제 이름을 좋게 만들어줬어요. “나무씨 음악은 나무처럼 넓어요” 이런 이야기를 해주시는데 어떻게 제가 안 좋아할 수 있을까요. 그러다보니 이름을 잘 지었네 이런 생각도 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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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년 연속 한국대중음악상 포크 노래부문 수상자로 선정되셨습니다. 데뷔하자마자 <스페이스 공감> '헬로 루키'로 뽑히기도 했고요. 출발부터 순조롭게 가고 있다고 생각이 드네요.

 

제가 잘하는 것도 있지 않겠습니까? (웃음) 그런데 확실히 사람이 시기가 있는 것 같아요. 저는 27살까지, 그러니까 음악을 하기 직전까지 무척 힘들었어요. 선생님이 되고 싶어 교대를 갔는데 이것도 재수를 하고 졸업하고도 임용고시 3번 떨어지고.. 개인적으로도 부모님, 친구들과의 관계로 여러 문제가 겹쳐 너무 힘들었어요. 사실 그 전에는 별로 악기에 관심이 없는 사람이었어요. 그런데 그 시기에 갑자기 기타를 치게 되고 노래도 만들게 되었죠. 그런데 갑자기 또 임용고시가 되고 새로운 상황을 준비하게 되고, 우연찮게 공연을 해달라고 초대를 받게 되었어요. 그런데 그게 홍대였고 한 두 번 공연하다가 갑자기 이름이 알려지고, <EBS 스페이스 공감>도 덜컥 걸리게 되고 말이죠. 앨범을 냈는데 대중음악상을 받고.. 그동안은 문이 다 닫혀있었는데 갑자기 확 열리는 느낌이 들더라고요.

 

음악을 하면서 어떤 변화가 있었나요?

 

저에 대해서 더 많이 알게 되었어요. 생각보다 내가 무대 체질이구나, 생각보다는 뭔가를 할 때 흔들림이 많이 없다는 걸 알았어요. 일종의 긍정적인 자기 회복을 처음으로 하게 되었어요. 그러니까 내 단점도 보이고 그걸 보완해나갈 기회도 생기더라고요. 세션을 꾸리면서 '이렇게 해야 같이 할 수 있는 거구나' 하고 배우게 되고요. 뭘 선택해야 하고 과감히 무엇을 놓아야 하는지도 배웠어요. 여기저기서 인터뷰 요청이 들어오고, 방송 섭외도 들어오고, 책을 보내주고…. 처음에는 마냥 신기했어요. 이제는 그런 작업을 하면서도 여러 가지를 배우고 있어요.

 

목소리나 곡의 느낌이 맑고 순수한 느낌이 듭니다. 그런데 이건 어떻게 보면 권나무를 얽어매는 굴레가 되지 않을까 생각도 됩니다.

 

제가 항상 그런 수식어들을 거부하고 있어요. 어떤 면에서는 순수하기도 하겠죠. 하지만 그것만 있는 건 아니에요. 재미없잖아요. 그런 건. 물론 학교에서 아이들 하고 있으면 순수해지긴 합니다. 교사로서 보람도 있고요. 그리고 음악에서 순수함을 느낀다는 건 제가 분명 그런 면이 있다는 것일 수도 있죠. 그것을 부정하고 싶지는 않아요. 그런데 그게 다는 아니라는 거죠. 순수함이란 여러 가지가 있죠. 제가 가진 순수함이 있을 거고 전자음악과는 다른, 음악 스타일의 단순함도 있을 것이고요.

 

권나무가 생각하는 포크는 어떤 음악인가요?

 

나름 세련된 리스너라는 자부심은 있어요. 세련되다는 게 힙한 게 아니고 언제 들어도 괜찮으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해요. 제가 좋아하는 말 중에 '오래된 미래'라는 말이 있어요. '옛날 것들이 배울 게 있어' 이런 말이 아니라, 아무리 새로운 장르를 표방해도 옛날 것의 연장선에 있잖아요. 제가 생각하는 포크는 '오래된 미래' 같은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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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집과 1집의 차이는 무엇일까요?

 

지나고 나니까 1집은 굉장히 건조한 앨범이구나 생각이 들어요. 그러니까 곡의 멜로디나 이런 것들 보다는요. 정서적으로. 내 정서가 찐득찐득하게 밀착된 노래들이 아닌 거죠. 시기적으로 예전에 만든 곡이기도 하고 당시에 복잡하고 피곤하니까 좀 깔끔하고 거리를 두는 노래가 필요했어요. 1집 마지막 공연 이름이 <투명해져 버린 것>이었는데요. 내가 투명해져서 의미가 없고 공허하구나 싶어서 공연 타이틀을 그렇게 붙였어요. 공연이 끝나고 1집은 여기까지다 라고 생각하니까 맥이 풀렸어요. 그러면서 한동안 1집은 부르기가 힘들고 예전같이 안 불러지더라고요. 그래서 1, 2월까지 진짜 애먹었어요. 마음이 안 실리니까 연주에 몰입이 안 되고 그 때부터 기타가 안쳐지기 시작하고요. 내가 치는 게 거슬리고 내가 노래를 어떻게 불러야 하는지 생각하게 되고. 그러다보니까 몇 백번을 부른 노래 가사를 잊어버리고 이상한 부작용들이 쏟아지는 거예요. 계속 회복이 안 되는 상황에서 2집 작업을 시작했어요.

 

지금은 회복이 되셨나요?

 

지금은 80%정도. 그래서 제가 강구했던 대책이 사비를 들이더라도 되도록 세션과 같이 공연하는 방향으로 잡았어요. 그래야 제가 의지도 할 수 있으니까요. 기타도 두 번이나 바꿨어요. 처음에는 내 문제지 악기가 중요한 게 아닐 거야 고집을 부렸어요. 그런데 제주도에 공연을 하러 갔다가 진짜 좋은 기타를 잡았는데 잘되는 거야(웃음). 그래서 뭐든 그렇게 생각하면 안 되는구나 싶어 좋은 기타도 샀는데 그 기타는 너무 가벼워서 안 맞았어요. 결국 그 기타는 반값에 팔고 그 돈으로 지금 기타를 샀어요. 반값인데 훨씬 좋아요. 그리고 최근에 인이어 모니터도 샀어요. 모니터 이게 중요할 수도 있다 싶어서 투어할 때 쓰고 있는데 좋더라고요. 지금은 85%정도 올라온 것 같아요. 이제는 '내가 이런 시기인가 보다' 싶고 정면 돌파를 해서 뚫고 나가든지, 여기서 무너지거나 인데.. 만약 그렇다고 해도 이 85%가 내 실력이겠거니 이렇게 편한 마음으로 공연을 하고 있어요. 사실 3월 까지만 해도 죽을 맛이었어요. 그 때는 이런 문제들을 말하면 진짜 문제가 될 것 같아서 말을 안했어요.

 

하지만 이런 우여곡절이 있었기 때문에 더 자신을 들여다 볼 수 있지 않았을까요?

 

그렇죠. 어떤 계기들이 계속 생기더라고요. ‘약간은 방향을 틀어야 돼’ 라든지, ‘이걸 이렇게 해봐’ 라든지, 제주도에서 만난 기타도 운이 좋았죠. 그 기타를 쳐보면서 생각을 넓혀가게 됐으니까요. 저로서는 좋은 사람들을 만나고, 우연히 간 공간의 주인이 의미 있는 말을 던져서 뭔가를 느끼기도 하고요. 큰 그림으로 봤을 때는 순조롭게 가고 있는 것 같습니다.

 

'물'도 그렇고 '흐른다'도 그렇고 2집의 키워드는 '물'인 것 같아요?

 

1집 녹음을 마칠 때부터 2집에 대한 구상이 다 끝나 있었어요. 2집의 가제가 '물'이었어요. 그런데 '물'이라는 곡은 1집의 연장선에 있던 곡이고 이렇게 가면 1집과 똑같다는 생각이 들었죠. 더 적극성을 띄고 싶고 내가 말하고자 하는 '물'이 무엇인가를 설명해야 한다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생각이 난 것이 '물'은 저에게 습도였고 자연스럽고 원초적인 거였어요. 그 노래는 처음엔 이성적인 가사로 도배가 되어있어요. 정말 하고 싶은 말은 마지막 구절입니다. “너무 무언가를 하려 하지 말아요. 그냥 가만히 있는 것도 좋을 텐데”

 

2집을 작업하면서 또 자연스러워지는 게 뭘까 고민을 했어요. 물은 위에서 밑으로 흐르잖아요. 바람도 닫혀있는데서 문을 열면 나가는 거지 뻥 뚫린 데서 좁은 데로 나가는 게 아니거든요. 우리가 말하는 자연이라는 것은 깊고 모여 있는 곳에서 옅고 부족한 곳으로 가요. 사랑도 물처럼 나를 채우고 내 고도를 높여야 부족한 곳으로 흘러 보낼 수 있다는 생각을 했어요. 이 노래는 내 사랑이 높은 곳에 있다는 것이 아니라 내 사랑의 고도를 높여서, 그러니까 내가 위쪽으로 높이 올라가있어야 밑쪽으로 물을 흘려보낼 수 있다는 내용입니다.

 

'사랑은 높은 곳에서 흐르지'가 그렇게 탄생한 거군요?

 

네, 그런데 사실 이 노래는 제가 만든 노래 중에 가장 슬픈 곡이에요. 목이 메어서 부를 수가 없을 때가 있었어요. 그랬던 곡에 현악기를 넣으니까 의외로 밝은 분위기가 되었고 사람들이 듣기 좋다고 하는 거예요. 그래서 타이틀이 되었어요. 만약 기타만 쳐보면 막막함과 슬픔이 느껴지는 분도 있을 거라고 생각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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곡 작업 방식은 어떤가요?

 

직관적인 편입니다. 직관적이어서 불필요한 것들을 어떻게 다듬고, 내가 말하고자 하는 걸 어떻게 자연스럽게 이야기할까를 배워가고 있습니다.

 

보컬로서 재능은 언제 발견했나요?

 

어릴 때부터 노래를 좋아했어요. 노래를 부를 때는 행복하고 즐거웠죠. 학교 다닐 때 보면 가수와 비슷하게 부르는 친구들이 있었는데, 저는 그것과는 좀 다르다는 이야기를 들었죠. 그래서 그런지 제가 듣는 노래가 꽤 인기가 많아, MP3 플레이어를 친구들이 돌려 듣기도 하고요. 그럼 또 신이 나서 음악을 열심히 들었죠. 그 때 들었던 음악은 거의 가요였어요. 그러다가 대학을 갔는데 노래를 하고 싶어서 밴드 동아리에 들어갔죠. 밴드 오디션을 보는데 다른 애들은 'She's gone' 같은 노래를 부르는데 저는 발라드를 부르고 그랬어요. 밴드에 뽑히고 나서 밴드 음악을 듣기 시작했죠.

 

그럼 밴드에서는 어떤 음악을 불렀나요?

 

메탈 밴드였어요. 들어가자마자 선배들이 메탈리카(Metallica), 메가데스(Megadeth), 판테라(Pantera)만 들려줬어요. 그런데 노래방에서 노래하던 사람이 그렇게 센 곡을 어떻게 부르겠어요. 선배들한테 호흡이 안 된다고 매일 야단 듣고 그랬죠. 그래서 열 받아서 발성, 호흡 이런 걸 찾아보고, 록도 듣기 시작했어요. 레드 제플린이나 건즈 앤 로지즈. 그런데 좋은지 잘 모르겠더라고요. 그래서 '이거 말고 없어요?' 했더니 브릿팝을 추천해줬어요. 그리고 브릿팝에 좀 빠졌다가 그 다음에는 너바나에 빠졌어요. 처음에는 그렇게 공부하듯이 음악을 들었어요. 그 시기가 지나고 나니 학습이 아니라 진짜로 좋아서 찾아 듣기 시작했어요. 그 때부터 확 넓어지게 되었죠. 그러니까 노래 부르는 것도 훨씬 좋아졌어요. 그러다가 졸업을 하고 혼자서 기타를 들고 노래를 하니 동요 같은 곡이 나오는 거예요. 그게 놀라웠고 충격적이었어요. 아이가 크레파스에 막 그린 그림처럼. 그런데 그게 너무 재미가 있어 하루에 7곡도 만들고 그랬어요. 그 때 1년 정도 가사가 폭발적으로 나오더라고요. 제가 악보를 못 그리거든요. 그래서 종이에 가사만 적었어요. 가사를 보면 멜로디는 모두 기억이 나니까요.

 

악보가 없으면 합주나 이런 건 어떻게 하나요?

 

비올라 켜는 친구한테 '따라라라라라~~'하고 허밍을 해서 줘요. 그러면 악보를 기록해서 저한테 주죠. 지금은 이게 좋지만 무리가 생기면 나중에는 배울 것 같기도 해요.

 

2집은 전반적으로 '과정', '흘러간다'는 생각이 많이 들었어요.

 

다음 앨범은 그동안의 이야기가 이어진다기보다 제가 달라지는 변천을 보여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권나무 앨범은 지금의 제가 변하면 달라질 수 있는 음악이에요. 지금도 변하고 있는 중이고요.

 

1집 만들면서 2집의 구상이 끝났다고 했잖아요. 3집 구상은 어떤가요?

 

곡의 70% 정도, 개수는 만들어진 것 같은데 모르죠. 아직 '물'처럼 제 머리를 치는 건 없어요. 큰 틀에 모여는 있는데 그것들이 끈끈하고 강렬하게 네트워크 되지는 않은 상태죠.

 

마지막으로 이즘 공식질문입니다. 추천하는 노래가 있다면 알려주세요.

 

트래비스(Travis)의 노래를 좋아해요. 그들의 음악을 들으면 맑은 물을 바라보는 것 같아요. 그 물에 발을 담그고 있는 것처럼 느껴지는 노래도 있는데 'Turn'과 'Sailing away'입니다. 이 곡들은 제가 대학생때 처음 들었는데 당시 기분이 떠올라서 그런지 들으면 기분이 좋아집니다.

 

인터뷰 : 김반야(10_ban@naver.com)
사진 : 정민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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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이즘

이즘(www.izm.co.kr)은 음악 평론가 임진모를 주축으로 운영되는 대중음악 웹진이다. 2001년 8월에 오픈한 이래로 매주 가요, 팝, 영화음악에 대한 리뷰를 게재해 오고 있다. 초기에는 한국의 ‘올뮤직가이드’를 목표로 데이터베이스 구축에 힘썼으나 지금은 인터뷰와 리뷰 중심의 웹진에 비중을 두고 있다. 풍부한 자료가 구비된 음악 라이브러리와 필자 개개인의 관점이 살아 있는 비평 사이트를 동시에 추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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