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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론알프스, 땅과 미각에 대한 찬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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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식의 도시 리옹에서 벨 에포크의 휴양지 에비앙까지. 먹고 즐기고 머물렀다. 유려한 맛과 지극한 자연이 동행하는 프랑스 론알프스 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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짙푸른 안시 호수와 수면 위에 떠 있는 듯한 릐피 성(Chateau de Ruphy)이 만든 동화 같은 풍경.

 

 

Lyon 오직 리옹에서만

 

서늘한 기온이 내려앉은 골목으로 몇몇 행인의 발소리가 울린다. 1850년에 문을 열었다는 호텔 글로브 에 세실(Globe et Cecil)에서 나와 가스파랭 가(Rue Gasparin)를 따라 광장으로 향한다. 이미 해는 리옹 서쪽의 푸르비에르(Fourviere) 언덕 너머로 사라졌고, 어두운 남색빛만 하늘에 감돈다. 금요일 밤을 즐기러 온 현지인은 벨쿠르 광장(Place Bellecour)에서 무리를 지어 잠시 머물렀다가 좁은 골목 안으로 사라진다. 광장 한가운데 말을 탄 루이 14세의 동상은 어두운 실루엣에 감겨 있다. 말의 두상 너머로 푸르비에르의 노트르담 성당이 조명을 받아 빛난다.


프랑스 동부 론알프스, 조만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오베르뉴 론알프스(Auvergne-Rhone-Alpes)라는 이름을 얻게 될지 모를 주의 수도 리옹은 불규칙한 나이테 같은 도시다. 광역 인구수로 따지자면 프랑스에서 두번째로 큰 규모인데, 고대 로마 시대로 거슬러 올라가는 역사 덕분에 여러 시간의 층위가 구시가를 중심으로 미스터리하게 얽혀 있다. 2세기에 완공된 야외극장을 시작으로 11세기 중세부터 고딕과 르네상스 양식이 뒤섞이다가 19세기에 지은 실크 방직소 건물이 연이어 등장하면서 도시가 펼쳐진다. 곳곳에 자리한 비밀스러운 통로인 트라불(traboule)은 건물을 통과해 다양한 시대의 골목과 골목을 이어주고 있다. 지리적 요소도 흥미롭다. 2개의 언덕과 2개의 강 그리고 그 사이 반도처럼 툭 튀어나와 자리한 다운타운이 조화를 이룬 구시가. 이름하여 푸르비에르 언덕과 크루아 루스(Croix-Rousse) 언덕, 손(Saone) 강과 론(Rhone) 강, 그 사이의 프레스킬(Presqu’ile). 유네스코 문화유산에 등재된 구시가는 아담해서 1시간 남짓 걸으면 동쪽 끝을 출발해 서쪽 끝에 다다를 수 있다. 언덕과 광장, 그리고 강 2개를 지나서. 누군가의 말마따나 휴먼 스케일(human scale)의 도시다.


금요일 밤 벨쿠르 광장을 지나던 리오네즈(Lyonaise, 리옹 사람)는 맛에 대한 갈망으로 자갈 깔린 좁은 골목을 비집고 들어갈지 모르겠다. 그들은 미식에 대한 자존심으로 파리지앵과 경쟁하니 말이다. 리옹 출신의 유명 인사, 영화의 대부 뤼미에르 형제와 작가이자 파일럿인 생텍쥐페리가 프랑스의 문화 예술에 깊은 자취를 남겼다 해도, 페르 라세즈(Pere-Lachaise) 묘지에 잠든 파리의 영웅은 너무나 많다. 그렇지만 폴 보퀴즈(Paul Bocuse)라는 이름표를 꺼내면 파리지앵도 잠시 숨을 고를 것이다. ‘프랑스 요리의 아버지’ 혹은 ‘미식의 교황’이라 불리는 리옹의 세프 앞에서는 파리의 모든 미슐랭 스타가 존경을 표할 테니까.


보퀴즈가 이 도시에 투여한 미식의 자취는 다채롭다. 일단 도시 곳곳에서 마주치는 벽화나 포스터, 책자 등이 시작이다. 이어서 그 자취는 1965년부터 미슐랭 별 셋을 유지하는 그의 메인 레스토랑 로베르주 뒤 퐁 드 콜롱주(L’Auberge du Pont de Collonges)와 전 세계 셰프 지망생이 모여드는 요리 학교 폴 보퀴즈 앵스티튀트(Paul Bocuse Institute)를 거쳐 리옹 시내에서 각각 다른 이름으로 운영하는 6개의 레스토랑, 삼색기 스카프를 목에 두른 MOF(Meilleur Ouvrier de France, 프랑스 정부가 인정하는 분야별 장인)가 육류를 썰고 디저트를 굽는 고급 식자재 시장 레 잘 드 리옹 폴 보퀴즈(Les Halles de Lyon-Paul Bocuse), 리옹 시내 르 로얄(Le Royal) 호텔에 들어선 요리 학교의 레스토랑과 단기 쿠킹 클래스 등으로 확장된다. 이 외에도 전 세계에 퍼져 있는 폴 보퀴즈 레스토랑과 협력 요리 학교까지 따지면, 그는 이미 전 세계에 미식의 제국을 일군 셈이다.


보퀴즈가 교황처럼 성장할 수 있던 배경에는 우직하게 맛을 탐닉하는 리오네즈의 전통과 기질이 한몫하는 듯하다. 리옹은 파리보다 좀 더 좋은 식자재의 혜택을 받아온 도시다. 예전부터 론알프스에 산재한 4만여 개의 농장은 프랑스 최고의 와인, 치즈, 닭, 밤, 송로버섯, 누가 등을 생산해왔다. 사람들은 그 식자재에 각종 육류를 더해 리옹만의 전통 음식을 즐겼다. 다소 직설적인 방법으로 말이다. 부숑 리오네(Bouchon Lyonnais)를 찾아가보면 그 실체를 제대로 경험해볼 수 있다.


부숑의 사전적 의미는 선술집의 간판 구실을 하던 작은 짚단 더미다. 예전에는 문 옆에 짚단이 달려 있는 곳이 바로 선술집이었다. 리옹의 부숑은 독특하다. 옛 모습과 음식 스타일을 유지하고 있으며, 시 정부 차원에서 인증ㆍ관리한다. 현재 리옹에는 20개의 공식 인증 부숑 리오네가 영업 중이다. 그중 벨쿠르 광장 인근 마로니에르 가(Rue de Marronniers)에 자리한 샤베르 에 피스(Chabert & Fils)의 저녁 메뉴 구성은 다음과 같다. 우선 식전주로 키르(kir)를 마시고 돼지 비계를 튀긴 그라탱(gratin)을 전채 안주 삼아 먹는다. 이어 부숑만의 전통 음식이 등장하는데, 갖은 육류가 그득 담겨 나온다. 눅진한 소스에 졸인 닭 간, 다진 돼지 내장, 송아지의 머리 고기와 혀, 리옹식 고기 완자 케넬(quenelle) 등. 고기에 대한 열정과 고기를 아는 사람만 먹을 수 있다는 자부심으로 뭉친 식탁이랄까? 모두 육류의 식감을 잘 살리면서도 비린내가 없다. 맛있다. 강한 풍미의 와인과 함께하면 더욱.


전통 부숑은 테이블을 다닥다닥 붙여놓아 식사 때마다 옆 손님과 어쩔 수 없이 친분을 나누게 된다. 인사와 건배 그리고 수다의 순서로. 테이블이나 식기는 말할 것도 없고 식기와 전체 실내 인테리어에 세월의 더께가 수북하게 쌓여 있다. 리옹 사람들은 여전히 온 가족이 이런 곳에서 모여 먹는 저녁 식사를 즐긴다. 마치 언제나 명절이라는 듯이. 그리고 식사가 끝나면 르네상스 시대 골목이나 옛 부두 일대를 개조한 콩플뤼앙스(Confluence) 지구로 가서 남은 밤을 보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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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부터 시계방향으로
리옹의 손 강 너머로 유네스코 문화유산에 등재된 구시가가 펼쳐진다.
부숑 리오네는 푸근한 분위기와 음식으로 방문객을 유혹한다.
리옹 시내 폴 보퀴즈 앵스티튀트에서 강의 중인 셰프 필리프 주스(Philippe Jousse).

 


Annecy 알프스의 눈이 녹아 운하가 되다

 

호수 옆 산악 도시 안시에 내린 빗방울이 운하를 따라 흩어지고 있다. 2개의 운하 양옆으로는 카페와 레스토랑, 숍 등이 줄을 잇는다. 프랑스의 작은 베네치아라는 별명은 약간 과장된 듯하나, 안시 호수(Lac d’Annecy)와 안시의 풍경은 자신만의 짙푸른 운치를 발한다. 1728년 3월 21일, 16세의 장 자크 루소(Jean-Jacques Rousseau)는 고향 제네바를 떠나 이 풍경 속으로 들어왔다. 훗날 자신의 사상이 프랑스혁명에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칠지 전혀 알지 못하던 때였다. 그저 제네바에서의 고된 삶을 피하길 원했고, 안시에서 가톨릭으로 개종하고픈 생각도 있었다. 16세기 종교개혁 당시 신교도의 발흥을 피해 제네바 주교가 이주해온 것처럼 안시는 가톨릭의 영향력이 매우 큰 도시였다. 그런데 개종보다 더 큰 운명의 전환점이 루소 앞에 기다리고 있었다. 3월 21일, 와랑 부인(Madame Warens)을 만난 것이다. 제네바에서 온 청년보다 열두 살이 많았던 부인은 그날 이후 13년간 루소의 후견인이자 연인, 스승으로 지냈다. 훗날의 인연이나 이별 따위는 모른 채. 그녀가 없었다면, 루소도 프랑스혁명도 어떻게 됐을지 모를 일이다.


루소와 와랑 부인은 안시 구시가의 생피에르 성당(Cathedrale Saint-Pierre) 옆 작은 마당에서 마주쳤다고 한다. 오늘날 아담한 공원처럼 변한 그곳에는 루소의 흉상이 놓여 있고 그 아래 이런 문구가 새겨 있다. “Jean-Jacques Rousseau rencontrait Ici Madame de Warens(장 자크 루소가 여기에서 와랑 부인을 만났다).” 어떤 자료는 바스(Vasse) 운하 초입에 자리한 사랑의 다리(Pont des Amours)에서 둘의 사랑이 싹텄다고 하지만, 그 다리는 사랑도 끝나고 혁명도 끝난 19세기에나 완공됐다.


안시는 1860년이 되어서야 온전히 프랑스 땅이 되었다. 그 이전에는 종교적ㆍ정치적 이유로 여러 공국과 왕국에 속해 있었다. 지금은 오트 사부아(Haute-Savoie) 주의 중심 도시라 여러 행정기관도 모여 있는데, 프랑스에서 두 번째로 큰 안시 호수와 주변 산 그리고 고즈넉한 도심을 무대로 한 여행 산업이 이 지역을 이끌어간다. 12세기에 지은 이즐 궁(Palais de l’isle) 성벽에 부딪혀 갈라지는 티우(Thiou) 운하와 바스 운하를 따라 복잡하게 펼쳐진 구시가는 늘 여행객으로 붐빈다. 주황색 석회암으로 지은 건물들 사이로 알프스의 능선이 겹쳐지고, 일렁이는 운하의 물결은 빛과 형상을 반사한다. 덕분에 사람들은 수시로 걸음을 멈춰 눈앞의 장면을 확인한다. 사진을 몇 장 찍고는 걸어가고, 다시 멈추었다가 걸음을 옮기고. 노천 시장이라도 열리면 좁은 골목은 발 디딜 틈이 없다. 시장의 매대에는 다양한 치즈와 소시송(Sausisson)이 쌓여 있고, 이탈리아에서 넘어온 식자재도 더러 보인다. 구시가 골목과 운하 변의 레스토랑에서는 이런 식자재로 만든 진득한 전통 요리 사부아야르드(Savoyarde)를 맛볼 수 있다. 사부아산 치즈 르블로숑(reblochon)과 으깬 감자, 베이컨, 프룬 등을 넣은 파이 같은 파르송(farcon), 양파와 생크림을 더해 거대한 그라탱처럼 만든 타르티플레트(tartiflette), 알프스 산악 지역에서 자주 접하는 라클레트(raclette)와 퐁뒤까지. 현지인들은 높은 칼로리와 느끼함을 자랑하는 음식에 사부이 지역 와인을 곁들이며 알프스의 긴 겨울을 지금껏 버텨왔다.


약 40킬로미터 둘레의 안시 호수 주변은 고급 휴양지와 거주지로 각광받고 있다. 두터운 적란운에 가려 회색 빗방울이 떨어질 때도 산정의 마을은 아름답다. 더불어 다채로운 레저 스포츠를 만끽하기에도 좋은 환경 조건을 갖췄다. 현지인이든 여행객이든 여름에는 수상 스포츠, 하이킹과 등반, 패러글라이딩 등을 즐기고, 겨울에는 가까운 알프스의 스키 리조트에서 겨울스포츠에 도전한다. 마음껏 쉬어갈 생각이라면, 호수 위에 배를 띄워 에메랄드빛 물과 거칠게 솟은 암봉을 둘러보는 것만으로도 평온해질 수 있겠다. 두툼한 파르송으로 점심 식사를 마친 뒤에 말이다. 연정과 혁명은 멈춰도 흐르는 운하와 알프스의 자연은 그대로일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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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시가에서 안시 성(Chateau d’Annecy)으로 올라가는 예스러운 골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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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부터
안시의 전통 시장 가판대 가득 쌓여 있는 사부아산 치즈들.
탈루아르 몽맹(Talloires-Montmin)은 안시 호수를 돌아보다 쉬어가기 좋은 곳이다.

 

 

Chamonix 하얀 산 아래의 모험

 

“산은 하나의 다른 세계다. 그것은 지구의 일부라기보다는 동떨어져 독립된 신비의 왕국인 것이다. 이 왕국에 들어서기 위한 유일한 무기는 의지와 애정뿐이다.” 프랑스를 대표하는 산악인이자 샤모니의 전설적 가이드 가스통 레뷔파(Gaston Rebuffat)가 남긴 말은 알프스를 마치 하나의 다른 왕국으로 묘사하는 것 같다. 그가 에귀유 뒤 미디(Aiguille du Midi)에 숨막힐 만큼 우아하게 매달려 있거나, 브레방(Brevent)과 플랑프라츠(Planpraz) 사이에 놓인 어느 비딱한 첨봉 위에 외로이 서 있는 사진을 보면 수긍이 간다. 그곳이 바로 또 다른 세계라는 것을. 또 유럽 최고봉 몽블랑(Mont Blanc)을 옆에 둔 샤모니는 그 왕국으로 들어가고자 하는 세속 경계쯤 된다는 것을.


“샤모니는 매일같이 새로운 액티비티와 먹거리를 경험할 수 있는 환상적인 곳입니다. 때로 죽으려고 환장한 것 같은 미친 사람도 있지만요.” 샤모니의 가이드 공세 크리스토프(Goncet Christophe)가 말한다. 그는 한때 일본에서도 일했던 스키와 스노보드 전문가이자 산악 가이드다. 프랑스 국가 대표팀을 위해 일하기도 했다. 잠시 부연 설명하자면, 샤모니의 가이드는 진짜 프로다. 수시로 재난 사고가 발생하는 알프스에서 가이드와 구조대의 존재는 때로 인간이 의지할 수 있는 유일한 밧줄이 되고는 한다. 에귀유 뒤 미디에서 내려오는 케이블카에서 크리스토프가 우연히 만난 한 가이드를 소개해주었는데, 그는 명함 대신 사진 엽서 1장을 건넸다. 앞면에는 스케이터의 사진이 뒷면에는 이력이 써 있는. 알고 보니 그는 프랑스 스피드 스케이팅 국가대표 출신이었다. 그만큼 쟁쟁한 사람들이 그 역할을 맡는 것이다. 샤모니에 자리한 프랑스 유일 국립 스키ㆍ등산 학교의 전 과정을 마치는 데는 4년이 걸린다.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가이드 협회(1821년 창설)에 정식 등록되는 건 그보다 더 어렵다고 한다. 그런 가이드 중 1명인 크리스토프가 말한 ‘미친 사람’은 샤모니기에 받아들여지는 익스트림 스포츠 마니아. 이를테면 윙슈트(wingsuit)를 입고 3,000미터 급 봉우리에서 뛰어내리거나, 계곡 사이 허공에 밧줄 하나만 걸고 줄타기를 실행하는 슬랙라이너(slackliner) 혹은 홀로 거대한 암벽을 오르는 솔로 프리 클라이머 등이다.


물론 샤모니를 찾는 연간 500만 명의 방문객 대부분은 스키나 하이킹 등 상대적으로 안전한 활동을 즐긴다. 샤모니는 1740년대부터 압도적 풍경을 보러 사람들이 찾아왔을 만큼 여행의 역사가 오래됐다. 그때부터 세계적인 산악 스포츠의 메카로 성장했는데, 1786년에 자크 발마(Jacques Balmat)와 미셀 가브리엘 파카르(Michel-Gabriel Paccard)가 유럽에서 가장 높은 몽블랑을 올라 등반사의 전환점을 찍었다. 1924년에는 제1회 동계올림픽을 개최해 세계가 겨루는 겨울스포츠의 시작을 알렸다. 두 세기에 걸쳐 계속해서 방문자가 늘어났고, 스키 슬로프와 숙소, 리프트가 들어섰다. 오늘날에는 예전보다 알프스에 깊숙이 접근하는 방법이 편하다. 브레방과 에귀유 뒤 미디까지 케이블카를 타고 오를 수 있다. 사실 해발 3,842미터 에귀유 뒤 미디 전망대까지 케이블카로 오르는 것만도 매우 흥분되는 일이다. 한눈에 들어오는 유럽의 최고봉과 아득한 산맥의 물결. 전망대에서 허공으로 툭 튀어나온 사각의 유리 박스 르 파 당 르 비드(Le pas dans le Vide) 안에 서면, 발아래로 깊이를 가늠할 수 없는 낭떠러지가 아른거린다. 일반인이 감당할 수 있는 소소한 수준의 미친 짓 정도. 그 위의 단계 격으로, 체력 소모가 덜한 액티비티인 스노슈잉을 해볼 만하다. 레 우슈(Les Houches) 지역의 스키 슬로프 주변을 스노슈잉으로 이동하면, 거대한 산군의 행렬을 옆에 두고 그림 같은 세계로 들어가는 듯하다. 순백의 오프 피스트(off piste, 활강 코스를 벗어난 지역)로 한 발을 터벅 내밀어 좁은 길이 열리면, 낙엽송과 가문비나무 가지에 내려앉은 눈이 가끔 바람에 흔들려 하얀 먼지처럼 부서진다. 한두 시간의 걸음 후에는 사부아야르드 음식과 휴식으로 이어진다. 샬레 안의 레스토랑에서 기운을 북돋우자 금세 풍경이 그리워진다. 문 밖에는 고도 차 약 1,800미터를 느릿느릿 오르내리는 트람웨 뒤 몽블랑(Tramway du Mont-Blanc)이 기다리고 있다. 또다시 알프스를 오르고 또다시 내려가는 일이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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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군의 패러글라이더가 알프스의 능선에 모여 활공을 준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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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부터

에귀유 뒤 미디 케이블카 환승 지점에서 스노우슈잉 체험하기.
에귀유 뒤 미디로 올라가는 곤돌라에서 마주친 샤모니의 산악 구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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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 위부터 시계방향으로

사부아산 배를 졸인 후 초콜릿을 곁들인 디저트.

알프스가 거울처럼 반사되는 샤모니의 가이앙 호수(Lacs des Gaillands).
잠시 스키를 잊고 눈 놀이에 열중하는 아이.

 

 

Evian 세상에서 가장 유명한 물

 

프랑스와 스위스의 국경. 레만 호(Lac Leman)는 하늘에 따라 색을 달리한다. 한없이 푸를 때도 있고 잿빛 물결을 흩뜨리기도 한다. 뭉게구름이라도 떠 있으면, 그로테스크한 형상의 흰 그림자가 수면 위로 퍼진다. 국경을 넘나드는 선박이 긴 물무늬를 달고 멀어질 때면 호수는 헝클어지다 이내 평온해진다. 에비앙의 해변 산책로에서 바라보면 레만 호는 그렇다.


1789년 레세르 후작(Marquis of Lessert)이 생 카트린(Sainte Catherine)의 샘물을 마시고 자신의 병을 치료했다는 사실이 알려지자, 프랑스 인들은 그 물의 효험을 믿고 레만 호 주변의 작은 마을로 속속 찾아왔다. 반신반의하는 사람도 있었지만, 카샤(Cachat)가 소유한 땅에서 나오는 이 물은 수많은 부유층을 끌어들였다. 에비앙에서의 목욕은 럭셔리 여행의 버킷 리스트 같은 것이었다. 1860년 오트 사부아가 프랑스 영토에 속하게 되면서 에비앙의 진짜 전성기가 시작됐는데, 호텔과 카지노, 부유층의 빌라가 레만 호수 주변을 조금씩 채워갔다. 그중에는 금박으로 다이닝 룸을 도배한 뤼미에르 형제의 저택도 있었다. 물을 병에 담아 판매하는 획기적인 사업도 시작됐다. 에비앙 생수는 그때부터 유럽의 식탁으로 퍼져나갔다. 아니, 상류층의 식탁이라고 해야 정확하겠다. 애거서 크리스트의 <오리엔트 특급 살인>에는 식당칸에 에비앙이 없다고 불평하는 장면마저 실려 있다. “에비앙이나 비치 같은 음료수가 없다니, 나는 참 이상하게 여겨지는군요.”


오늘도 에비앙의 수원 중 하나인 수르스 카샤(Source Cachat)는 일정한 수압으로 물을 내뱉고 있다. 현지인이나 여행객이나 물통을 여러 개씩 가져와 가득 담아 간다. 알프스에 내린 빗물이 15년간 지층을 통과해 지상으로 나온 물은 11.6도를 유지한다. 이렇게 매일 600만 병 분량의 물이 생산된다. 수원은 시가 소유하고 에비앙 브랜드를 소유한 다농(Danone) 그룹이 시에 돈을 내고 물을 구매한다. 시 재정에 반영구적 도움을 주는 시스템이다. 덕분에 에비앙은 벨 에포크(Belle Epoque) 시대의 미모를 잘 간직하면서 여전히 동시대의 취향을 만족시켜주는 곳이 되었다. 오래된 좁은 골목도 잘 보존되어 있고, 20세기 초 방문객들을 스파 시설로 나르던 퍼니큘러 철도도 여전히 운행 중이다. 한때 우아한 스파 건물이던 팔레 뤼미에르(Palais Lumiere)는 현대적인 전시장과 컨벤션 시설로 쓰인다. 이 외에도 벨 에포크 시대에 지은 여러 건물이 레너베이션을 거처 하나둘 씩 새롭게 태어나고 있다. 100년 전이나 지금이나 거리를 걷다가도 호수를 바라보면 언제나 마음이 풀리는 것도 변함없는 듯하다. 오텔 루아얄(Hotel Royal) 객실의 창문을 열자 예의 그 풍경이 눈에 들어온다. 호수의 끝과 하늘 사이로 스위스 영토가 지평선처럼 길게 펼쳐져 있다. 1909년 문을 연 이 호텔은 에비앙의 언덕에 자리 잡고 있다. 발코니의 난간에 한 번이라도 몸을 기대면 호수와 구름의 흐름을 하염없이 바라보게 된다. 20세기 초, 잔지바르의 술탄과 페르시아의 왕이 호텔 정원 어딘가에서 산책을 즐겼다. 왕국의 운명이 다하기 전에 말이다. 그레타 가르보(Greta Garbo) 같은 은막의 스타는 객실에 앉아 레만 호수를 향해 고혹적인 눈빛을 던졌을지도 모른다. 그 어딘가에 긴 여운을 남기며. 호수의 서쪽 끝으로 노란색 기운이 감돈다. 변하지 않는 것들은 변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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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부터
에비앙에서 내려다본 평화로운 레만 호수. 저 멀리 스위스 땅이 실루엣처럼 보인다.
수르스 카샤에서 나오는 물은 누구나 마음껏 마실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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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텔 루아얄은 벨 에포크의 화려함을 유지하며 현대적인 고급스러움을 더했다.

 

 

*허태우는 <론리플래닛 매거진 코리아>의 편집장이다.

여행 사진가이자 작가인 노중훈은 론알프스 지역의 음식이 가장 입맛에 잘 맞는 프렌치 요리라고 말한다.

*취재 협조 프랑스관광청(kr.rendezvousenfrance.com), 에어프랑스(airfranc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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론리플래닛 매거진 코리아 lonely planet (월간) : 6월 [2016] 안그라픽스 편집부 | 안그라픽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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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ㆍ사진 | 론리플래닛매거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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