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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가 탁영호 “4.19혁명은 박제화된 혁명이었다”

『침묵의 봄 희망의 봄 혁명의 봄』 4.19에서 5.16까지 우리가 건너온 핏빛 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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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현대사에 이렇게 혁명이라는 멋있는 일이 있었다는 것을 꼭 기억했으면 좋겠어요. 그 혁명을 많이 생각했으면 좋겠고요. 한 10년, 15년 전만 해도 4월 19일이 되면 각 대학에서 4.19마라톤대회도 하고 시위도 하고, 축제였는데요. 요즘은 다 사라졌죠. 봤더니 재작년부터 각 대학의 4.19행사가 다 없어졌더라고요. 심지어 고대에서까지 그게 없어졌어요. 그런 점이 참 안타깝죠.

폭넓은 이야기가 만화로 그려지고, 많은 사람들이 만화를 즐기는 일본이 부럽다고 말하자 그 말을 들은 일본 만화가는 도리어 너희가 부럽다고 했다. “역사가 엄청난 소재”라는 이야기였다. “우리 현대사를 꼭 한 번 그려야겠다, 이것이 내가 만화를 하는 이유다”라는 다짐으로 만화를 시작했던 탁영호는 그 말에 다시 한 번 예전 마음을 확인했다. 지금도 그 생각에 변함이 없다는 작가가 이번에 그린 것은 4.19혁명에서 5.16쿠데타로 이어지는 험난한 두 번의 봄이다.


1960년 봄은 척박한 땅에 민주주의의 싹이 움트는 시기였다. 이승만 정권의 장기집권을 위해 자행된 부정선거에 분노한 민중은 이를 규탄하며 시위를 벌인다. 3월 15일, 선거 당일 마산에서 일어난 유혈시위에서 총에 맞아 사망한 김주열의 시신이 4월 11일, 마산 앞바다에 참혹한 모습으로 떠오르고 분노의 물결은 곧바로 4월 19일, 혁명으로 이어진다. 이승만은 결국 무릎을 꿇었다. 민중의 승리였다. 하지만. 역사는 다른 방향으로 흘렀다. 박정희 소장을 필두로 한 군사 세력의 정권 장악. 바로 1961년 5월 16일 벌어진 5.16쿠데타였다.


인터뷰는 공교롭게도 5월 16일에 진행되었다. 맑은 날씨가 무색하게 역사의 한 순간이 명백한 감각으로 다가왔다. 작가는 거듭해 기억하라고, 계속 이야기하라고 말했다. 그것으로 역사의 진보를 조금이나마 이룰 수 있을 것이었다. 과연 ‘기억하겠다’는 약속은 과거도, 현재도 모두 감싸는 것이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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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는 진보하는가


지난 4월에 문득 시간이 너무 빠르다는 생각을 한 적이 있습니다. 해결되지 않은 시간들은 더 빠르게 가는 것 같아요. 선생님께서는 그런 생각을 더 많이 하시겠죠?


네, 오히려 시간이 간다기보다 세월호 같은 경우는 2년 전에 멈춰있는 것 같아요. 그냥 모든 게 굳어있는 것 같아요. 머리도 그렇고, 사고도 그렇고요. 그런데 세상은 그것과 무관하게 가고 있는 것 같아 안타깝죠.

 

인터뷰를 하는 오늘은 공교롭게도 5월 16일이에요. 역시 세상은 아무 일 없던 듯 돌아가는 것 같은데요. 그럼에도 여러 징후들이 있잖아요. 요즘 어떤 생각을 하며 지내세요?


5.16, 4.19, 세월호, 다 어떤 역사고 사건이고 삶의 모습인데요. 자기 생활이나 자기가 속한 조직에서의 생존을 위해 급하고 바쁘게 살다보니 잊고 지나치게 되는 것 같아요. 그래서 역사를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는 사회는 뭐랄까요. 발전이 더디다고 할까? 그런 생각을 많이 하고 있어요. 역사 발전이 안 되니까 역사에 대한 반성도 없고 그래서 정치 현실이 아직도 저급하지 않은가 생각해요.

 

질문하지 않을 수 없을 것 같아요. 역사는 진보하고 있는가, 이 물음에 어떻게 답하시겠어요?


진보하고 있지 않다고 보는 쪽인데요. 역사에 잘못된 점이 있으면 충분히 단죄를 해야 한다고 보거든요. 그런데 우리는 봉건 시대, 식민지 시대 지나면서 특히 식민지 시대 때 잘못됐던 점들조차도 그대로 안고 현대로 왔으니까요. 그게 지금까지도 진행 중이고요. 때문에 진보한다고 생각 안 해요. 민주주의를 지키고 만들려는 소수의 사람들이 노력은 계속 하고 있지만 사회 자체로 봤을 때 우리 역사의 수준은 진보성을 띠고 있지 않다, 저는 그렇게 보고 있죠.


이번 책도 그런 맥락에서 만든 거예요. 당시에는 혁명이었지만(4.19혁명) 박제화된 혁명이었다, 그게 제 주제였어요. 

 

그 말, 작가의 말에도 쓰셨어요. “박제화된 역사는 거짓도 참으로 만드는 오류를 범할 것”이라고요. 혁명의 빛나는 순간만 얘기하고 기억하는 건 편하고 좋아요. 하지만 선생님께서는 이후를 재차 이야기하셨거든요.


상징이죠. 4.19혁명은 한국 사회에서 최초로 시민의 힘으로 나라를 바꾼 사건이었고, 역사적인 사건인데요. 그것들이 굉장히 희석화 되었어요. 물론 그 이후 우리 역사가 진보적이고 민주적으로 흘러왔다면 4.19의 현재적 가치는 더욱 높게 평가를 받았겠죠. 그렇지 못했기 때문에요. 오늘이 5.16이에요. 군사 정권에 의해 민주주의가 좌절되었고, 그러니까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해 희생당한 사람들조차도 잊히게 되었죠. 무엇보다 중요한 건 4.19혁명의 가장 큰 가치가 우리의 민주주의 경험과 훈련, 교육이었거든요. 혁명 이후는 그런 것조차도 다 흩트려 놓은 거죠. 현재도 우리는 민주주의 경험과 교육, 이런 측면이 굉장히 미약하거든요. 그런 것에 대한 아쉬움을 만화를 통해 그리려고 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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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만화를 하는 이유


사회나 역사 이야기를 계속 해오셨는데요. 어떤 의무감 같은 게 있는 건가요?


처음 만화를 할 때부터 그랬는데요. 주변에서 저더러 만화를 하라고 권유를 했을 때 생각한 게 있어요. 우리 현대사를 꼭 한 번 그려야겠다, 이것이 내가 만화를 하는 이유다, 라는 거였거든요. 지금도 그 생각은 변함이 없고요. 예전에 어느 일본 만화가를 만났어요. 즐겁게 이야기를 하다가 제가 소재에 대한 얘기를 했어요. 일본은 만화의 다양성이 풍부하고 소재도 많아서 참 부럽다고요. 그랬더니 일본 작가가 나는 너희들이 부럽다는 거예요. 너희는 역사가 엄청난 소재가 아니냐, 이런 얘기를 하더라고요. 거기서 한 번 또 찡한 걸 느꼈어요. 내가 잘 선택했구나, 그렇게 생각했었죠.

 

처음 만화를 하겠다고 생각하셨을 때가 1980년대잖아요. 시대적 분위기와도 관련이 있을 것 같아요.


네, 처음 만화를 그린 게 대학생 때였는데 한국가톨릭농민회를 우연히 알게 됐어요. 그림 그릴 사람을 찾더라고요. 그렇게 시작해서 전단지 그리고, 대자보 그리고 하다가 기왕이면 단 컷으로 그리지 말고 이야기 있는 만화를 그려보라는 선배의 제안을 받았어요. 그것도 재미있을 것 같더라고요. 그래서 한 달 정도 농촌 돌아다니면서 자료 수집하고 사람들과 같이 생활하면서 경험을 쌓고 와서 중편 만화를 하나 그렸고요. 그게 「학마을 사람들 이야기」였어요. 그렇게 시작이 돼 지금까지 만화를 그리게 된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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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연한 기회가 삶을 바꿨어요.


다시 보니 짜증이 날 정도로 너무 못 그렸고(웃음) 그랬지만 한 가지 좋은 것은 진짜 열심히 그렸다는 거예요. 땀 냄새는 나더라고요. 진심과 열심히 한 흔적이 있더라고요. 군대를 다녀와서는 그때가 1985년이었는데 문화 운동하던 선배들이 다시 만화를 그리라고 권유를 했어요. 영화를 하고 싶어서 준비하고 있었는데 말이에요. 또 그것도 필요하겠더라고요. 당시 만화하는 사람이 별로 없었으니까요. 1987년에 6.10항쟁이 일어났어요. 그때 국민운동본부에서 나온 전단지 만화는 제가 다 했었어요. 이것까지만 하고 만화 은퇴하자, 하고 했던 거예요.(웃음) 그러면서 기왕이면 프로가 돼야겠다는 생각을 하면서 기성 작가들과 교류도 하고, 만화 기술도 배우고, 그때 처음으로 만화책이라는 걸 보면서 연출, 캐릭터, 이런 것들을 혼자 연구했죠. 몇 달 동안 습작을 하다가 만화 잡지에 등단도 하고요. 그렇게 본격적인 만화가의 길이 시작된 것 같아요.

 

그때부터 지금까지 오랫동안 변함없이 만화를 그리게 한 힘은 무엇이었을까요? 전공도 다르고, 영화를 꿈꾸기도 했잖아요. 다른 선택이 가능한 순간도 있었을 텐데요.


보통 만화가들이 연재 만화, 장편 만화, 그런 것들을 많이 하는데 저는 단편 만화를 주로 했거든요. 잡지에 연재할 때도 단편을 했어요. 단편 만화는 이 안에서 모든 이야기가 끝나는 거죠. 시작과 반전, 결말까지 말이에요. 제가 마음대로 소재도 정하고 주제, 캐릭터도 잡고요. 거기에 완전히 재미를 붙인 거였어요. 세어보니 단편을 거의 삼백여 편을 했더라고요. 만약 영화로 찍으려면 일 년은 걸릴 거예요. 저는 열흘이면 단편 한 편이 나오거든요. 수없이 소재를 개발하고, 이야기를 만들어내고, 배경과 인물을 창출해내는 것이 좋았어요. 예전에 흑석동에 산동네가 있었어요. 우연히 지나다가 밤에 너무 좋더라고요. 달도 있고, 멀리 한강도 보이고요. 그래서 여기를 배경으로 만화를 그리자, 해서 또 스토리를 만들고요. 그런 식으로 작업을 하면서 만화라는 작업에 큰 재미를 느낀 거죠. 약간의 보람도 느끼고요.

 

보람이라면요?


제 만화에 대해 사람들이 높게 평가하거나 그런 건 원치 않는데요. 가끔 어떤 사람들이 제 만화를 보고 제가 그린 주제에 대해 생각하게 됐다, 그런 얘기를 해요. 그때는 내색은 안 하지만 기분은 되게 좋았죠.(웃음) 저는 주로 우리에게 가장 가까이 있는 삶, 역사, 정치를 그리려고 했어요. 세상의 주역은 아니지만 이들에 의해 지탱이 되고 흔들리지 않는 그런 모습, 그 사람들의 얘기, 이들이 얼마나 훌륭하고 강한가, 그런 것이 제 작품의 축이었던 것 같아요.

 

이번 만화도 그래요. 역사가 늘 다루는 승자가 아니라 주변인의 이야기, 이야기되지 않은 사람들의 이야기예요. 그런 게 선생님을 많이 끌어당기나 봐요.


항상 그래요. 역사적 주류, 사건에 직접 영향을 끼친 사람들보다 주변 사람들, 이들에 의해 역사가 어떻게 발전 또는 퇴화되어 왔는가 하는 것에 더 관심이 많아요. 오히려 그렇게 연출을 하고 이야기를 풀어나갈 때 독자들에게 훨씬 더 가깝게 다가가지 않을까 그런 생각을 많이 하고 있거든요. 내일 모레면 또 5.18이잖아요. 그걸 다룬 책이 또 나와요. 시국 사건으로 수배당한 어느 대학생 이야기예요. 그가 여러 곳을 돌아다니면서 겪는 이야기들인데요. 주인공 동생이 광주에서 시민군으로 죽었죠. 그것을 회상을 하면서 자신의 수배 생활과 광주를 서로 교류하고요. 폭력이라는 것이 얼마나 무서운지 도식화되죠. 큰 정치 세력이 폭력화되었을 때 그것이 인간을 얼마나 참혹하게 만드는가에 대해 썼어요. 광주 이야기는 그냥 중간중간 나오죠. 그러면서도 이런 식으로 연출했을 때 광주의 참혹함이 더 강조되는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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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을 기다리는 겨울


이야기를 시작하는 장면, 첫 장면이 아무래도 가장 중요할 것 같아요. 이 책의 시작은 상갓집 풍경이거든요. 보여주고 싶었던 건 무엇이었나요? 


상가가 암시하는 건 민주주의의 장래죠. 계절은 혹독한 겨울이에요. 봄을 기다리는 겨울이고요. 그걸 처음에 의도했던 거죠. 그 안에서 봄을 생각하고 느끼게 하기 위해서요.

 

박정희라는 인물이 아주 잠깐 조연으로 등장해요. 사실 이 책 전체에 많이 등장하지 않죠. 그런데 그것이 더 강렬한 인상을 남겨요.


가상의 공간과 상황에서 그 사람이 그런 일을 했다는 역사적 사건은 없죠. 제가 만든 이야기인데요. 복선을 하나 넣은 거죠. 하지만 사람들은 알잖아요. 그 장면을 깔아주면서 나중에 있는 자유당의 횡포, 온갖 부정 선거, 혁명으로 치닫는 이야기를 보게 되는데 뭔가 사실 불안한 거죠. 불안한 마음을 깔고 싶었던 거예요. 그 총소리요. 결국은 이것조차도 보수 정당이 권력을 잡아서 모든 게 다시 회귀되는 그런 과정이잖아요. 계속 답답한 거죠. 끊임없이 답답하면서도 불안한 요소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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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지금 시점에서 그 이야기를 봤을 때 느끼는 답답함이 있죠. 희망적인 사건을 보지만 결국 좌절되었던 경험을 계속 해왔던 거고, 그것은 지금도 마찬가지잖아요.


물론 제가 패배주의, 그런 건 아니에요. 그렇지만 현실은 그대로 보여줘야겠다, 의도한 거예요. 희망은 있죠. 패배주의가 아니라 현실을 직시하는 거죠. 분석도 하고요. 잘못된 게 있으면 고쳐나가고요. 그랬을 때 희망이라는 게 생기겠죠. 좌절을 한 번 겪었으니까요. 아까 말했지만 민주주의 훈련과 교육, 그런 것이 한국 사회에 얼마나 필요한가, 또한 민주주의 철학이 완고한 지도부가 있는 조직이 서로 앙상블을 이뤘을 때 비로소 혁명이라는 게 완성되겠구나, 하는 것들을 이를 통해 배우는 거죠. 그때는 이게 없었거든요. 민주주의 훈련도 안 되어 있지, 그런 철학을 가진 지도부나 조직도 안 가지고 있었지, 때문에 혁명이 좌절되지 않았나 하고요. 그걸 저는 여기서 보여주고 싶은 거였죠.

 

어떻게 여기에 왔는지 계속 역사를 되짚다보면 청산되지 않은 과거가 남아요. 친일세력이라든지 말이죠. 해방공간에서 제대로 단죄하지 않은 역사적 과오가 지금까지 작동하는 것인데요. 이 숙제를 어떻게 풀어야 하는지 고민하게 되거든요.


일단 사실을 알아야죠. 공부를 해야죠. 제 만화가로서의 사명은 그런 것을 사람들이 편히 볼 수 있게 하는 거예요. <모래시계>, <여명의 눈동자> 같은 드라마도 있었잖아요. 그런 것 보면 그런 부분들이 다 나오거든요. 사람들이 아주 재미있게 보면서도 반민특위가 좌절되면서 친일파들이 다시 경찰이 돼 독립운동 했던 사람들을 고문하던 일을 알게 돼요. 사람들에게 그런 걸 반복적으로 보여주는 거죠. 우리 역사가 이랬다, 이런 것들이 두 번 다시 거듭되지 않기 위해서 노력해야 한다는 걸 말이에요. 물론 제가 보는 관점이 있겠죠. 만일 제가 그 시대에 살았으면 나는 어떤 행동과 생각을 했을까, 어떤 조국의 미래를 꿈꿨을까, 생각하죠. 그런 작가의 철학으로 극을 꾸미면서 이야기 흐름을 만들어 나갈 텐데요. 언젠가 그런 이야기를 꼭 해보고 싶어요.

 

해방공간에서 벌어지는 이야기를요?


네. 해방 직전부터 6.25 직전까지 벌어지는 이야기를 구상해놨어요. 한 번 완성해 보려고요. 그러니까 자꾸 이런 이야기를 해야 해요. 이런 만화가 나오면 고등학교나 중학교 같은 데서 학생들이 이걸 보고 토론하게 하고요. 왜 이때 우리가 민족적 자존심을 포기해야 했는가, 그런 이야기를 하는 것 바로 그것이 민주주의 훈련이 아닌가 그렇게 생각하거든요.

 

그런 훈련이 너무 안 되고 있죠.


요즘 학생들이야 많이 좋아졌지만 특히 예전 세대는 진짜 안 됐죠. 오로지 반공 교육만 받아왔으니까요. 무조건 북한 사람은 다 늑대였고, 빨간색이고 그랬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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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전히 짓밟힌 비극적인 사건


4.19혁명 이후를 현재의 관점에서 볼 때는 물론 사람들이 꿈꿨던 모습보다 많이 축소된 결과였지만 혁명을 통해 좋아진 점도 분명히 있어요. 언론, 출판의 자유나 국가보안법 개정처럼 말이에요.


그렇죠, 그 후 일 년 동안 어떤 일이 있었는가를 그렸는데요. 나중에 군사 정권이 들어서면서 이것을 ‘혼란이었다’라고 했어요. 사실은 혼란이 아니거든요. 저는 이것이 민주주의의 과정이었다고 봐요. 수많은 데모, 그것은 수많은 국민들의 의견이죠. 꽉 닫혀있던 민의가 표출된 거예요. 출판, 정당, 모두 마찬가지죠. 누구나 출판할 수 있고 정치에 참여할 수 있고 그런 거잖아요. 물론 과정에서 혼란도 있을 순 있었겠지만 그 과정을 통해서 민주주의의 틀을 잡는 것이 아니었는가, 이것이 조금만 더 길었으면 자연스럽게 자리를 잡았을 것이다, 생각해요. 그런 것을 욕심 많은 군인들이 와서 자기 식대로 파시즘을 만든 거죠. 그게 진짜 아쉬운 거죠. 역사에 새싹이 돋고 꽃이 피려고 봉우리가 맺혔는데 그게 잘려나가고 완전히 짓밟히고 그 위에 아스팔트까지 깔린 그런 비극적인 사건이다, 저는 그렇게 생각해요. 어떤 사람들은 그 혼란기에 군인들이 나라를 바로 세웠다는 관점을 갖기도 하겠죠. 

 

다양한 관점이 나오고 서로 이야기해야 할 텐데 관심조차 많이 없는 것 같아요. 현재의 하루살이가 너무 힘들기도 할 테고 지금도 어떤 이야기는 자유롭게 하지 못하는 분위기기도 하고요.


그럴수록 자꾸 해야죠. 유신 시대, 전두환 시대 이후에도 그런 식으로 자꾸 해왔기 때문에 점차 환경들이 좋아진 거잖아요. 지금도 많이 좋아졌죠, 사실. 그러니까 지금도 계속 해야 한다고 봐요. 그러기 위해서는 만화뿐 아니라 여러 작가들이 그런 것을 학습할 수 있는 요소를 제공하는 역할을 해야 하지 않을까 싶어요. 작가들도 공부를 많이 해야겠죠. 습득을 하고 여과시켜서 대중들이 학습할 수 있게 제공해야 해요.

 

이야기 사이에 신동엽의 시 「봄의 소식」과 김수영의 시 「푸른 하늘을」을 보여주었어요.


김수영의 시가 진짜 압축적이죠. 봄을 기다리는 사람들, 완성되지 못한 혁명을 이야기하는데 기승전결이 딱 나오더라고요. 만화는 상황으로 보여주는 건데요. 이것들을 압축해서 정리해주는 의미에서 시를 도입한 거예요.

 

그런 요소가 무척 영화적이기도 해요. 장면 사이에 마치 음악이 흐르는 것처럼 감정을 증폭시키는 느낌이거든요.

 
제 만화를 다들 영화적이라고 해요. 영화나 만화나 흡사하거든요. 영화가 종횡비가 같은 프레임 안에서 모든 것들이 이어진다면 만화는 프레임 자체가 자유롭죠. 그런 차이지 나머지 연출은 거의 비슷한 것 같아요. 영화적이라고 할 때 보다 더 중요한 것은 일정한 시간 내에 모든 것을 다 보여줘야 하기 때문에 연출을 빨리 해야 하는 거예요. 의외의 인물과 의외의 장소가 튀어나고 의외의 대사가 나오죠. 이것들이 하나의 복선이 되고요. 복선이 많을수록 극은 더 재미있어지는 거거든요. 제 만화도 그런 면들을 많이 깔다보니 영화적이라고 하는 얘기를 듣는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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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기대가 되고, 신난다


노동 현장 이야기를 담은 『송곳』, 『미생』이나 삼성 반도체 사건을 다룬 『먼지 없는 방』, 용산 참사를 이야기한 『내가 살던 용산』 등 만화가 지금도 굉장히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는 생각을 하는데요. 다른 장르보다 만화라서 할 수 있는 것들이 있는 것 같아요.


만화는 일단 혼자서 할 수 있거든요. 영화나 연극 같은 다른 장르는 혼자 못해요. 그런데 만화는 혼자 북 치고 장구 치고 꽹과리 치고 할 수 있어요. 그렇기 때문에 작업 과정이 아주 편리하게 되는 것 같아요. 시간적으로도 장점이 있죠. 빨리 할 수 있고요. 시간적으로 빠르다는 건 그만큼 순발력 있다는 거죠. 어떤 사건을 만화로 다루자면 2~3일 걸릴 수도 있거든요. 그렇다면 이 사건에 바로 대처하거나 투입될 수 있는 거죠. 이런 순발력과 작업의 편의성이 현장 만화에 어울리는 것 같아요. 또 민주화 과정 속에서 좋은 엘리트 현장 만화가들을 많이 키웠고요. 덕분에 리얼리즘을 추구하는 만화가들의 저변이 요즘은 집약되는 면이 있어요. 그런 건 참 좋은 것 같아요.


지금 언급한 만화를 그린 친구들을 다 알거든요. 그림을 보면 놀라울 정도로 엄청나게 성장했어요. 성장이란 말이 건방진데요. 처음 시작할 때부터 봐왔기 때문에요. 보면 깜짝깜짝 놀라요. 저는 이 사람 현재의 작품뿐 아니라 미래의 작품까지 보는 거죠. 그러면 더 기대가 되고, 신나죠. 거기에 자극을 받아 나도 더 신나게, 재미나게 해야겠다 하는 마음을 갖게 되고요.

 

아쉬운 점도 있을 것 같은데요.


아쉬움은 없는데요. 굳이 아쉬움이라면 출판이나 만화계에 대한 아쉬움은 좀 있죠. 특히 만화를 웹툰으로 많이 보고 있잖아요. 웹툰이 사망 직전의 만화를 살렸다고 보는데요. 진짜 아쉬운 건 만화는 그래도 책으로 나왔을 때 더 가치가 있다고 봐서요. 웹툰이 굉장히 감각적이고 말초적이고 개그적이잖아요. 그런 것들은 아무 생각 없이 볼 수 있는 거잖아요. 그런데 이런 리얼리즘 만화는 뭔가 생각을 하면서 봐야 하는데 아무래도 집중력이 떨어지겠죠. 읽었는데 뒤돌면 ‘어? 내가 뭘 읽었지?’ 그렇게 되니까요. 책이 더 확장되었으면 좋겠어요. 일본은 아직도 웹툰보다는 종이 만화를 더 많이 보잖아요. 여전하거든요. 손으로 느끼는 것, 눈으로 보는 것, 인지하는 것, 이런 시간이 필요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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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질문인데요. 많이들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고 하잖아요. 그런 의미에서 선생님께서 꼭 하고 싶은 말씀이 있다면 들려주세요.


우리 현대사에 이렇게 혁명이라는 멋있는 일이 있었다는 것을 꼭 기억했으면 좋겠어요. 그 혁명을 많이 생각했으면 좋겠고요. 한 10년, 15년 전만 해도 4월 19일이 되면 각 대학에서 4.19마라톤대회도 하고 시위도 하고 그야말로 축제였는데요. 요즘은 다 사라졌죠. 봤더니 재작년부터 각 대학의 4.19행사가 다 없어졌더라고요. 심지어 고대에서까지 그게 없어졌어요. 그런 점이 참 안타깝죠. 대학이라는 게 취업 공간으로 전락하고 만 것 같아서요. 우리도 혁명을 경험했었다, 그걸 많이 생각했으면 좋겠다, 4.19에 대해 많은 사람들이 알았으면 좋겠다, 그런 정도를 말할 수 있을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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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묵의 봄 희망의 봄 혁명의 봄탁영호 글,그림 | 휴머니스트
탁영호 작가는 한국 현대사의 가장 치열하고 험난했던 시절을 살아낸 인간 군상들의 사연을 씨줄날줄로 엮어 만화로 지어냈다. 혁명에서 쿠데타까지 393일의 역사적 사실 위에 생동감 있는 인물들의 이야기를 구성하여 독자로 하여금 역사적 진실에 다가서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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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신연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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