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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정의 달 특집] 소설가 엄마, 만화가 아빠가 추천하는 책

소설가, 만화가, 출판인, 기자, 사회학자, 정신분석가에게 물었다 내 아이가 커서 읽었으면 하는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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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대나 또는 아직 젊은 것들은 부모와 세상을 부정하는, 불온하기 짝이 없는 글들을 많이 읽어야 한다. 하지만 요즘처럼 검열이 심한 세상에서 불온한 서적을 대놓고 권할 만큼 내가 바보는 아니다

5월, ‘가정의 달’을 맞아 <채널예스>에서 엄마 아빠인 저자, 출판인에게 책 추천을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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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아빠가 읽은 책 중에 추천해주고 싶은 책 있어?” 내 아이가 언젠가 이 같은 질문을 한다면, 꿀 먹은 벙어리가 될 텐가? 기다렸다는 듯이 내 서재 리스트를 풀어낼 것인가? ‘우리 아이는 결코 이런 질문을 하지 않을 것’이라고 장담하지 말자. 장담한대로 되는 일은 많지 않으니까. 언젠가 내 아이가 사춘기를 겪고 관계에 상처를 받고 사회에 불만이 생겼을 때, 소리 없이 책상에 훅 올려 놓고 싶은 책이 있는지, 8명의 아빠, 엄마에게 물었다.

 

 

양현범(사계절 마케터)
서현 저『눈물바다』

6개월 된 딸이 까르르 웃는다. 그 웃음소리에 시름이 다 날아간다. 딸이 처음 집에 왔을 때, 울음으로 우리 부부를 일으켜 세웠었다. 며칠 밤낮을 아이를 품에 안은 채 보낸 우리 부부는 아기를 길들이기 위해, 스스로 지쳐 잠이 들 때까지 안아주지 않았다. 반나절을 꼬박 울다 잠이 든 아이를 지켜보며, 부모인 나도 이런데 세상은 아이를 얼마나 더 눈물지게 할까 싶었다. 밥 먹기가 싫고, 친구와 싸우고, 선생님이나 부모에게 혼나고. 되는 일이 없어 울고 싶을 때, 내 딸이 『눈물바다』를 펼쳐 봤으면 한다. 복잡하게 뒤섞인 감정을 한바탕 울음으로 정리하고 다시 웃을 수 있도록!


 

선대식(오마이뉴스 기자)
송경동 저  『나는 한국인이 아니다』 

세 살배기 아이가 중학생이 됐을 때, 시집을 건넨다면 아이는 어떤 표정을 지을까. '뭥미?' 하는 표정을 짓지 않을까. 아이가 고등학생이 됐을 때, 밤과 새벽에도 일하는 사람은 힘들지 않을까라고 묻는다면 아이의 대답은 무엇일까. "관심 없어"라고 하지 않을까. 그럴 때 이 시집을 건네주고 싶다. 송경동이 노동자로, 노동운동가로, 거리의 시인으로 살아온 흔적을 담은 이 시집은 아이에게 그 어떤 교과서보다 더 넓은 세상을 보여줄 것이다. 아이가 앞만 보고 내달리지 않고 천천히 가더라도 내 이웃에 눈길을 주는 사람이 된다면, 이 시집 때문이리라.

 
 

김수박(만화가)
로알드 달 저  『마틸다』

5월 가정의 달에 권하고 싶은 책은 영국의 대표적인 아동소설가 로알드 달의 『마틸다』이다. 도무지 자신을 이해해주지 않는 가족과 억압적인 학교생활을 겪게 되는 천재 소녀 마틸다가 어떻게 어른들의 세계에 일침을 가하는지가 아주 재미있게 그려져 있다. 이 책에서 어른들의 모습은 아이들을 괴롭게도 하지만, 진정으로 이해하고 사랑해 줄 수 있는 존재라는 점을 주목하자. 때문에 아이뿐 아니라 어른도 같이 읽을 것을 권한다. 더불어 이 책을 본 뒤라면 "책을 왜 보나? TV가 있는데!" 라는 말에 동의하지 못하게 될 것이며, 책 읽는 재미를 알게 될 것이다.

 
 

이승욱(정신분석가)
헤르타 뮐러 저 『숨그네』  

10대나 또는 아직 젊은 것들은 부모와 세상을 부정하는, 불온하기 짝이 없는 글들을 많이 읽어야 한다. 하지만 요즘처럼 검열이 심한 세상에서 불온한 서적을 대놓고 권할 만큼 내가 바보는 아니다. 그래서 누구도 의심하지 않을 권위를 가진 책을 앞에 내 놓는다. 헤르타 뮐러의 『숨그네』. 표면적인 이유는 2009년 노벨상 수상작! 누가 의심하겠는가? 시종, 이렇게 충실한 감각으로 문장을 꽉 채운 글을 읽은 적이 없다. 하지만 이 책을 권하는 가장 중요한 이유. "우환이 사라졌다" 나치에 부역했던 아버지가 죽자, 헤르타 뮐러가 한 말이란다. 가장 용감하고 순결한 윤리를 가진 그녀가 쓴 책이다. 


 

조지현(SBS 기자)
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 저 『체르노빌의 목소리』 

"나는 과거에 대한 책을 썼지만, 그것은 미래를 닮았다." 그렇다면 이 책은 '미래의 사람들', 우리 자녀들의 이야기고, 자녀와 함께 읽어야 할 글이다. 1986년 '체르노빌 원전 사고', 자신이 태어나기 한참 전의 이 사건을 아이들은 교과서 속 한 줄로, 역사책 속 한 단락으로 접했을지 모른다. 그러나 그 속에 빠져 있었을 '사람들'의 이야기, 한 명 한 명의 목소리가 이 책에 담겨 있다. 사고 원전 해체 작업자들과 그 가족들, 강제 이주 당한 주민들, 피폭된 아이들, 정부 관계자와 핵 전문가 등 5백여명을 인터뷰한 작가 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는 이들의 목소리를 통해 '핵'의 신화와 기술적 진보의 허상을 꼬집는다. 우리가 '자녀 세대'에게 떠넘긴 문제를, 그들은 어떻게 생각할까.


 

이도우(소설가)
오카다 토시오 저 『세계정복은 가능한가』

엄마와 『호호아줌마』, 『말괄량이 삐삐』를 읽던 아들은 12살 때 운명처럼 건담을 만났고, 안드로메다로 향하는 우주선처럼 빠르게 새로운 스토리와 세계관 속으로 날아갔다. 35년 역사의 건담 계보를 파악하더니 중학생 때 이 책 『세계정복은 가능한가』를 만나 지금까지 스무 번 넘게 읽고 있다. 무사태평한 성격에 누구보다 세계정복에 관심이 없을 듯 한데 어째서? 궁금해졌다. 에반게리온 제작자 오카다 토시오는 '왜 악의 무리는 세계정복 같은 귀찮은 걸 하려고 들까?'라는 의문에서 출발한다. 세계정복을 하면 뭐가 좋아서? 그 힘들고 고생스러운 것을! 21세기 자본주의 대중사회에서 세상을 지배한다는 것과 '악'이란 무엇인지. 그 개념을 다시 정의해보고 청소년 눈높이에서 흥미로운 발상의 틈을 열어준다. 극장가엔 여전히 어벤저스와 캡틴 아메리카가 건재하다. 이것을 그저 휴일을 때울 길티 플레저로 여길지, 지금 우리가 사는 세상의 또 하나의 은유로 볼 지는, 우연찮게 만나는 한 권의 책이 그 힌트를 안겨줄지도 모를 일이다. 중고등학생들에게 추천한다.


 

정은정(사회학자)
박완서 저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

한국전쟁이라는 지울 수도 지워서도 안 되는 비극의 역사를 관통한 박완서의 입말을 통해 역사의 속살을 볼 수 있다. 특히 여성의 말하는 눈, 혹은 수다와 일상이 역사의 전면으로 드러난 문학작품. 특히 박완서의 개인 경험을 고갱이 삼아 엮어낸 작품들은 가감 없이 인간의 속내를 드러낸다. 이는 곧 개인이 곧 사회 자체임을 알려준다. 무엇보다 여성의 다층적인 삶을 촘촘하게 보여준다는 점, 특히 엄마도 치사한 욕망 덩어리임을 숨기지 않고 그러내어 주었다는 점에서 딸에게 내 삶을 해명하는 자료로 주고 싶다. 사회학 전공자인 엄마가 추천. 무엇보다 마흔 넘어 등단한 박완서는 여러모로 마흔 줄에 접어든 내게 큰 희망의 증거다.

 

 

김서령(소설가)
패멀라 린던 트래버스 저 『메리 포핀스』

아빠의 월급으로 딸 셋을 키우느라 마냥 짭쪼롬한 살림을 살았던 엄마는 그 흔한 소꿉놀이 세트 한 번 사주질 않아, 나는 좁은 집안 구석구석을 뒤지며 놀 거리를 찾았다. 그래서 한글을 일찍 깨쳤다. 낡은 동화책, 만화책 몇 권과 날짜가 얼마나 지난 건지도 모를 잡지책과 그것도 아니라면 설탕봉지와 치약에 쓰인 주의사항 문구라도 읽어보려고 말이다. 집에 손님이라도 놀러 온 날이면 아빠 무릎에 앉아 신문의 깨알 같은 글자들을 읽어 내려가는 세 살배기(!) 둘째 딸을 자랑스럽게 내어놓으면서도 엄마는 남들 집에 다 있다는 세계명작전집도 사주지 않았다.

 

그게 또 안쓰럽고 예뻤던 외삼촌은 나를 청계천 헌책방 골목으로 데려가 종종 책을 고르게 해주었다. 입을 헤 벌린 채 헌책방에 쪼그려 앉아 동화책을 두 권씩, 세 권씩 골랐던 그날들. 나는 폴폴 먼지 날리는 책들을 먹으며 조금씩 조금씩 키가 컸고 살이 올랐다. 아마도 초등학교 2학년이나 3학년이었을 텐데, 내가 청계천에서 공들여 고른 책은 계몽사 문고 78번 『메어리 포핀즈』였다.

 

새카만 박쥐우산을 쓴 채 하늬바람을 타고 제인과 마이클네 집으로 날아온 시크한 베이비시터 메어리 포핀즈. 그리고 그 집의 쌍둥이 아기 존과 바바라. 꿈 속에 놓인 듯 나를 몽롱하게 만들어주었던 양장본 그 책은 이제 새로운 외래어표기법에 따라 『메리 포핀스』가 되었지만 아직 나에게는 메리가 아닌 메어리다.

 

내 아기는 아직 꼬물꼬물 기어 다니는 7개월 갓난쟁이다. 아기가 자라면, 꼭 헌책방 골목으로 데려가야겠단 생각을 했다. 물론 청계천 그 골목은 사라졌지만 말이다. 그리고 그 전에, 빨리 하늬바람이 우리 집 쪽으로 불어와 메어리 포핀즈를 만났으면. 내가 원고를 쓰는 동안 우리 집 징징이 아기를 좀 봐주었으면. 당장 달려나가 현관문을 달칵 열어줄 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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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엄지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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