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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진경 “고전을 둘러싼 낡은 틀을 깨야”

『파격의 고전』 출간 기념 이진경 저자 강연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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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살려내는 가장 중요한 방법은 그 책을 둘러싸고 있는 틀을 깨는 것입니다. 반박하고 싶어서라도 읽게 될 때 비로소 그 책이 살아나는 것입니다. 그런 점에서 저는 이 고전들의 구원자가 된 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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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청전, 홍길동전, 흥부전 등은 제목만 들어도 그 내용이 바로 떠오를 정도로 우리에게 잘 알려진 고전소설들이다. 하지만 돌이켜 보면 저 작품들을 처음부터 끝까지 제대로 읽은 적이 없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너무나 익숙하지만 오히려 그렇기 때문에 우리와 고전소설들 사이의 거리가 더욱 멀어진 것일지도 모르겠다. 『파격의 고전』을 쓴 철학자 이진경 역시 고전소설들을 인생에서 다시 볼 거라고는 생각도 하지 않았다. 좋은 작품이라고 생각한 적도 없었고 재미있지도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문득 그것들을 다시 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그는 말했다.

 

“고전이란 누구나 다 읽어야 된다고 믿는 것이죠. 그러나 거의 안 읽게 되는 책들입니다. 재미없어 보이잖아요. 워낙 고전은 평가나 내용에 대한 해석이 확립돼 있는 것들이라 내용을 이미 안다고 생각해서 안 읽게 되죠. ‘파격’이라는 말은 우리가 흔히 쓰는 말이지만 사실 굉장히 심오한 말입니다. ‘격물치지(格物致知)’라는 말 아시나요? 여기서 ‘격’은 틀이라는 뜻입니다. 주어진 틀을 통해 앎에 이르고 도리를 찾는 거예요. 아는 만큼 보인다는 것이죠. 그런데 틀을 통해서만 보면 틀에 맞춰서 보게 됩니다. 틀 밖의 것들은 보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그런 점에서 격물치지는 ‘물(物)’에 대한 폭력이기도 합니다. 틀을 통해서 사물을 보려고 하는 한, 늘 보던 방식으로 사물을 보게 됩니다. 보던 대로 보면 사실 사물을 보지 못한 것과 다름없습니다. 어떤 것이 가슴에 확 들어와 꽂힌다는 것은 평소 보던 것과 다르게 부각될 때죠.”

 

틀에서 벗어나면 세상이 굉장히 다르게 보인다. 하지만 틀이 깨지지 않는 한, 세상은 뻔한 방식으로만 보인다.

 

“여러분은 사고하지 않습니다. 상식이 사고하죠. 그런 점에서 인간은 생각하는 동물이 아닙니다. 생각하지 않기 위해 굉장히 애를 쓰는 동물이죠. 우리는 항상 생각하지 않으려고 애쓰기 때문에 틀을 통해 보는 것에 익숙해져 있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정말 생각하는 동물이 될 때는 언제일까요? 피해갈 수 없을 때죠. 이때 여러분의 머리는 돌아가기 시작합니다. 생각하지 않는 상태로 너무 편안하게 살다 보면 나중에는 생각하고 싶어도 할 수 없는 상태에 빠져듭니다. 낡은 소설도 그렇습니다. 생각할 여지가 별로 없는 것들이었던 거죠. 이것들을 다시 보게 되면서 그동안 내가 얼마나 틀에 갇혀 이것들을 봤던 것인가 생각했습니다. 이러한 관심이 생기면 작품들을 다시 읽게 됩니다. 그러면 그때 비로소 작품들이 살아난다고 할 수 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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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고전들의 구원자

 

그는 이어서 ‘부활’에 대한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다. 수많은 사람들이 부활을 하는데, 여기서 부활은 존재에 대한 부활이 아니라 사유에 있어서의 부활이다. 모든 사람들이 다 부활하지는 않는다. 무언가 불려 나올 이유가 있을 때만 부활한다. 불려 나올 이유를 여러 개 가진 사람들은 그만큼 더 자주 부활하게 된다. 여기서 부활의 주체는 누구인가에 대해 우리는 다시 생각해야 한다고 이진경은 말했다.

 

“부활하는 사람들은 우리에게 구원자로서 오는 것이지만 그 구원자는 구원을 필요로 하는 자들에 의해 구원됩니다. 맑스를 예로 들면, 그 사람에 대한 표준적 해석이 있습니다. 그것을 확실하게 믿고 있는 사람, 즉 통념에 충실한 사람들은 맑스를 다시 불러낼 필요가 별로 없습니다. 하지만 어떤 상황에서 이 사람의 사고가 도움이 될 것 같은데 기존의 틀로는 해결이 안 될 때 그 사람은 다시 불려 나옵니다.”

 

부활은 바로 그럴 때 일어난다. 글의 경우도 역시 마찬가지다. 기존의 방식대로 생각하는 한, 어떤 책을 다시 읽어야겠다는 생각은 들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왠지 의심이 든다거나 사실을 확인하고 싶어질 때, 그전까지는 읽을 거라고 생각하지 않았던 책들을 다시 읽게 된다. 읽는 사람이 불러내야만 그 글, 책은 부활할 수 있다.

 

“책을 살려내는 가장 중요한 방법은 그 책을 둘러싸고 있는 틀을 깨는 것입니다. 반박하고 싶어서라도 읽게 될 때 비로소 그 책이 살아나는 것입니다. 그런 점에서 저는 이 고전들의 구원자가 된 셈입니다. 위대한 고전, 위대한 구원자란 여러 번 자주 불려 나오는 것들입니다. 반복해서 불려나올 이유를 가졌기 때문이죠.”

 

이진경은 “좋은 작품이란 여러 절단면이 이미 있음에도 또 자르면 새로운 절단면이 나오는 작품”이라고 말했다. 자르는 면을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같은 작품도 완전히 다른 모습으로 우리에게 다가온다. 그런 점에서 독서, 해석, 비평 등은 한 작품의 여러 절단면을 보여주는 것이다. 

 

“흔히 비평가는 창작자에 콤플렉스를 가지고 있다고 하는데, 저는 비평가들에게 힘내라고 하고 싶어요. 그 사람들 역시 창작을 하고 있는 것이니까요. 남들이 못 보던 작품을 만드는 것입니다. 이런 것이 바로 절단으로서의 독서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이러한 독서가 해석자의 주관적 의미를 작품에 덕지덕지 붙이는 것과 동일하다는 말은 아닙니다. 작품의 여러 요소들이 서로 연관성 속에서 잘 드러나야 합니다. 없는 것을 연결하는 게 아니라 텍스트 안에서 연결된 것들로 나름의 일관성을 만들어내는 것이기에 이것이 주관적 행위는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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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인륜적 독서가 필요하다

 

이진경은 홍길동전과 전우치전을 예로 들었다. 소설 속에서 홍길동과 전우치는 둘 다 도술을 쓸 수 있는 능력을 지니고 있다. 이런 점에서 둘은 비슷한 종류의 소설로 간주되기도 한다. 하지만 이진경은 두 이야기 속 도술의 양상이 완전히 다르다고 말했다.

 

“홍길동전을 보면 홍길동이 주역(周易)을 읽다가 까마귀 울음소리가 들려서, 불길하니까 점을 치는 장면이 나오는데요. 주역, 점 등에서 도술을 얻는다는 데에서 홍길동의 도술은 인간적입니다. 반면 전우치가 도술을 부리게 되는 과정은 조금 다릅니다. 어느 날 전우치가 절에 불공을 드리러 온 예쁜 여자와 하룻밤을 보내게 됩니다. 여자 입안을 보니 구슬 같은 게 있어서 전우치가 그 구슬을 뺏어 먹습니다. 여자는 울면서 도망가죠. 나중에 사부님에게 물어보니 그 구슬이 바로 여우의 넋인 호정(狐精)이었던 것입니다. 즉, 전우치의 도술은 동물적 성격을 띠고 있습니다. 한편 홍길동은 사람을 죽이는 데 서슴없었지만 전우치는 살인은 하지 않았습니다. 또한 홍길동은 자신의 존재를 임금에게 알리려는 목적을 가지고 도술을 쓴 반면, 전우치의 도술은 유희적입니다. 이렇게 둘은 서로 완전히 다릅니다.”

 

이어서 그는 콩쥐팥쥐와 신데렐라 이야기를 했다. 신데렐라 스토리는 어느 나라에나 흔히 존재한다. 그런 점에서 콩쥐팥쥐와 신데렐라 역시 같은 선상에서 비교되곤 한다. 두 이야기에는 공통적으로 계모와 못된 언니에게 구박받는 주인공이 나오고, 주인공은 신발 때문에 왕자와 결혼하게 된다. 그러나 유심히 들여다보면 이 둘 역시 아주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다고 이진경은 말했다.

 

“콩쥐팥쥐는 신데렐라와 달리 이야기가 결혼한 데에서 끝나지 않습니다. 결혼 후 팥쥐가 열이 받아서 콩쥐에게 목욕하러 가자고 한 후 콩쥐를 물에 빠뜨려 죽입니다. 콩쥐는 후에 연꽃으로 피어나 다시 부활합니다. 모든 사건의 전모가 밝혀지고 팥쥐는 잔혹하게 죽게 되죠. 콩쥐팥쥐와 신데렐라의 차이점은 이뿐만이 아닙니다. 신데렐라의 계모가 신데렐라에게 내는 과제는 심술입니다. 하지만 콩쥐에게 주어지는 과제는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신데렐라는 쓸데없는 일을 하지만 콩쥐는 과제를 통해 살아가는 데 필요한 능력을 얻게 됩니다. 또한 두 이야기에는 모두 동물들이 등장합니다. 콩쥐팥쥐에 나오는 동물들은 야생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인간보다 높은 위치에서 도움을 주죠. 그러나 신데렐라에 등장하는 동물들은 길들여진 동물입니다. 동물의 성격이 다르다는 것은 자연과 인간과의 관계가 다르다는 것이죠. 두 이야기에서 모두 등장하는 신발의 의미도 다릅니다. 신데렐라 이야기 속 구두는 왕자에게 아름다운 아가씨의 지표로 상징됩니다. 그러나 콩쥐팥쥐 속 신발은 집밖으로 나갈 수 있는 능력을 상징합니다. 탈영토화 능력이죠.”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고전소설을 읽을 때, 작품 속에서 윤리적 덕목을 발견하고자 한다. 하지만 이런 방식의 독서는 계속해서 이러한 작품들을 뻔하게 읽게 만들 뿐이다. 이진경은 거꾸로 반인륜적인 독서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런 관점에서 볼 때 심청전은 매우 중요한 텍스트라며 그는 이야기를 이어갔다.

 

“심청의 아버지는 맹인입니다. 가만히 보면, 맹인 아버지를 통해 실제로 가부장들이 얼마나 눈멀었는가에 대해 서술하는 작품들이 굉장히 많습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그 점에 대해 지적하는 사람들이 거의 없습니다. 심청은 눈먼 아버지가 눈을 뜰 수 있다는 사실에 혹해서 자신의 목숨을 바칩니다. 많은 사람들이 이런 점에서 심청전의 내용을 ‘목숨 바친 효’로 해석하곤 하는데, 여러분 같으면 여러분의 자식이 나를 위해 목숨을 내놓겠다고 하면 감동하시겠습니까? 저라면 욕을 할 것입니다. 그게 무슨 효입니까. 이걸 효라고 하면 제정신이 아닌 것이죠. 실제로도 심봉사가 그 사실을 알고 펄펄 뜁니다. 가서 당장 취소하라고 하죠. 하지만 심청은 그러지 않습니다. 어떤 제안도 받아들이지 않고 끝까지 우겨서 결국 죽으러 갑니다. 좀 이상하지 않나요?”

 

그동안 너무도 당연하게 생각해왔기 때문에 미처 보지 못했던 부분이 그제야 보이기 시작한다. 이진경은 심청전을 다시 읽으며 카프카의 소설 『선고』를 떠올렸다. 그 소설의 내용은 다음과 같은데, 아버지가 아들에게 물에 빠져 죽을 것을 선고하자 아들이 진짜로 뛰쳐나가서 물에 빠져 죽는다. 카프카는 왜 이런 황당한 내용의 소설을 썼을까?

 

“규칙을 엄격하게 준수했을 때 그 결과가 어이없게 나타나는 것을 통해 규칙 자체를 웃음거리로 만든 것입니다. 심청의 행동 역시 마찬가지죠. 목숨까지 바쳐 효를 행했지만 이것이 정말 효일까 반문하게 만드는 것입니다. 심청은 나중에 연꽃으로 떠올라 부활합니다. 그런데 집으로 돌아가지 않고, 집 밖으로 아버지를 불러냅니다. 맹인 잔치를 열어서 모든 눈먼 가부장들을 불러내죠. 이들을 집 밖으로 불러내는 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넓은 세상을 보면 눈이 뜨이죠. 눈을 뜬다는 것은 지혜를 상징합니다. 그런 점에서 심청은 효라는 논리를 안고 죽어버린 것입니다. 그리고 다시 태어나 아버지마저 밖으로 불러낸 것이죠.”

 

이런 점에서 심청전은 오히려 강요된 효에 반하는 텍스트다. 만약 우리가 이것을 효에 관한 텍스트로 보려 한다면, 여기서 효란 맹목적 효가 아니라 눈먼 아버지를 집 밖으로 불러서 눈뜨게 하는 진정한 효인 것이다. 이진경은 “조선시대는 유교적 윤리의 압박이 굉장히 셌던 사회였다. 그래서 감히 삼강의 윤리를 엎어버리는 방식으로는 비판할 수 없으니, 시키는 대로 따랐다가 황당한 결말이 나타나는 이야기가 굉장히 중요한 비판의 방법이 되었다고 생각한다”고 전했다.

 

“외부는 이 세계 어디에나 다 있고, 고전소설도 마찬가지입니다. 이야기 속에 다른 세계로 통하는 독특한 탈출구들이 있습니다. 이런 점에서 외부를 통해 그 당시 사회를 비판한다는 것은 지금의 관점에서 그 사회를 비판하는 것이 아니라 그 사회 안에 있는 것과 밖에 있는 것들의 관계를 통해서 지배적인 관계가 깨지는 지점을 찾아내는 것입니다. 이것은 지금 우리가 살아가는 시대의 관점을 투영하는 것과는 다른 내재적 비판입니다. 고전소설들은 두 개의 적을 가지고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하나는 낡은 세계를 유지해가는 지배적인 도덕, 윤리, 가치입니다. 즉 과거에서 온 적입니다. 또 다른 하나는 바깥에서, 미래에서 오는 아직은 지배적이지 않은 종류의 적입니다. 과거와 이어진 적과 미래와 이어진 적. 이 두 개의 적과 소설들은 충돌하고 싸우면서 새로운 영역을 만들고 있는 것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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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격의 고전이진경 저 | 글항아리
이 책은 [심청전] [흥부전] [홍길동전] [콩쥐팥쥐전] 등 제목만 들어도 지루할 것 같고, 달리 생각하기 어려울 만큼 그 메시지가 주입되어왔던 고전들을 다시 읽으려 한다. 어떻게? 이 소설들을 ‘고전’의 확고한 자리로부터 끌어내리면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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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ㆍ사진 | 지예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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