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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을 탐구하는 여행

『자연해부도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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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의 풍성한 텃밭에서 수확한 것으로 무슨 요리를 만들었는지, 이웃집 마당에서 벌레 먹은 나무를 어떻게 살려냈는지, 식재료로 쓸 만한 것을 뒷마당에서 어떻게 찾아냈는지 들려준 친구 존은 언제나 내게 큰 울림을 주는 자연의 목소리나 다름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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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년 전 나는 전작인 『농장해부도감Farm Anatomy』 작업을 마무리했다. 이 과정에서 먹을거리를 마련해 저장하고 동물을 분류하고 곡식을 수확하는 방식에 놀라운 부분이 많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서 자연히 ‘초록’으로 상징되는 자연에 대해 알고 싶다는 갈증이 더욱 커졌다. 비록 도시에 살고는 있지만 자연을 탐구하는 여행은 앞으로도 계속해나갈 생각이다.

 

나는 뉴욕 브롱크스의 시티아일랜드에서 성장기를 보냈다. 대개의 섬들이 그렇듯 거리 한쪽 끝이 해변으로 통해 있는 곳이었다. 뉴욕의 상징인 고층빌딩들이 바다 건너편에서 빛나는 모습을 볼 수 있는 곳이었지만, 내 어린 시절의 일상은 조개껍데기를 주워 분류한다든지 투구게의 배를 관찰한다든지 바닷물을 들이켜는 일들로 꽉 차 있었다. 여름이면 여동생과 함께 뉴욕 북부의 숲에서 하이킹을 했는데, 딸들이 행여 벌레에 물릴까 걱정하는 어머니를 안심시켜 드리려고 벌레기피제를 잔뜩 뿌려둔 텐트에서 잠을 잤다.

 

나는 자연을 정말 좋아하는 아이였다. 메인 주로 가족 휴가를 떠나거나 집근처에 있는 통나무집으로 주말여행을 가는 등 야외에서 이루어지는 모험이라면 마다하지 않고 손꼽아 기다렸다. 하지만 나이를 먹으면서 나는 뼛속 깊이 도시 사람이 되었다. 십대 시절은 도심의 클럽을 몰래 드나들거나 로어이스트사이드 거리에서 친구들과 어울려 다니느라 흘러가버렸다. (과학교사인 아버지의 권유로) 살아있는 곤충 채집과 수정 키우기를 좋아하던 아이는 어느덧 청치마에 흑백 체크무늬 스타킹을 신고, 유니언스퀘어에서 스케이트보드를 타는 반항기 가득한 사춘기 소녀로 변해 있었다.

 

현재 나는 뉴욕 도심부인 브루클린의 파크슬로프에 살고 있는데, 우리 집은 프로스펙트 파크 입구에서 가까운 몇 안 되는 건물들 가운데 하나다. 이 공원은 내가 매일 시간 날 때마다 개를 데리고 산책을 하거나 오래달리기를 하는 곳이다. 이렇게 잠깐 바람 쐬는 걸 두고 ‘자연 산책’이라 부르는 것이 지나친 호들갑일지는 모르겠지만 매일 잠시나마 초록의 자연에 에워싸이는 시간은 내게 더없이 소중하다. 지하철에서 파김치가 되고 나서도 산책을 나서면 풀 냄새를 맡을 수 있을 만큼 정신이 또랑또랑해진다. 산책을 할 때면 나는 뭔가 더 알고 싶은 욕심에 공원을 두리번거린다. 잎이 예쁘게 생긴 저건 무슨 나무지? 작년에 봤던 저 꽃들은 언제쯤 다시 필까? 머리 위로 날아다니는 저 녀석들은 진짜 박쥐일까? 사랑 놀음을 하느라 바짝 몸을 붙인 잠자리 떼를 지켜보는 건 또 얼마나 재미있는지!

 

이렇듯 내 호기심은 점점 커져갔고 결국 이 책이 나오게 되었다.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리면서 나는 향수 어린 장소를 다시 떠올렸다. 그곳을 출발점으로 해서 어릴 적 내 호기심을 자극했던 것들의 진면목을 살펴볼 수 있었다.

 

앞서 내가 잠깐의 산책을 ‘자연 산책’이라 부른 것을 생각해보면 이 책을 ‘자연책’이라 부르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책을 아무리 크게 만든다 해도 우리를 둘러싼 거대한 세계의 아주 작은 일부도 한 권에 담아낼 수는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이 책은 어디서 끝나게 될까? 별자리부터 지구의 핵에 이르기까지 배워야 할 것이 무궁무진하다. 하여 이번 프로젝트를 ‘나의 자연책’이라고 하면 어떨까 하는 생각도 든다. 이 책에는 내가 관심을 갖고서 알아내고자 했던 것들, 그리고 싶었던 것들이 담겨 있다. 그동안 지나칠 때마다 궁금했던 동식물, 나무, 풀, 곤충, 강수량, 육지, 수역 등을 이번 자연책 작업을 통해 제대로 공부할 수 있었다. 비록 겉으로 보기에 그리 완벽한 책은 아니지만 말이다.

 

자신의 풍성한 텃밭에서 수확한 것으로 무슨 요리를 만들었는지, 이웃집 마당에서 벌레 먹은 나무를 어떻게 살려냈는지, 식재료로 쓸 만한 것을 뒷마당에서 어떻게 찾아냈는지 들려준 친구 존은 언제나 내게 큰 울림을 주는 자연의 목소리나 다름없다. 이 책을 기획하는 과정에서 나는 존에게 책의 방향을 잡아줄 것과 아울러 내가 미처 찾아내지 못한 재미있는 소재가 있으면 알려달라고 부탁했다.

 

어느 날 오후 프로스펙트 파크를 산책하면서 존은 풀잎 몇 개를 집어 들고 내게 먹어보라고 권했다. 개가 풀 위에 용변을 봤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다소 꺼림칙했지만 나는 마지못해 풀잎을 입에 넣고 씹어보았다. 그 사이 존은 풀잎 맛에 대한 내 반응을 지켜보며 재미있어 했다. 우리는 공원을 걸으며 먹을 수 있는 것이라면 무엇이든 눈에 보이는 대로 집어 들어 맛을 본 뒤 쓴맛, 단맛, 식감 등에 대해 이런저런 의견을 나누었다. 그때까지 집 근처 공원에서 그토록 다채로운 샐러드를 만들 수 있으리라고는 전혀 상상도 못해본 터였다. 도심의 공원이 이렇게나 많은 걸 우리에게 내어줄수 있다면 정말 깊은 숲속에서는 대체 얼마나 많은 걸 찾아낼 수 있을지 나로서는 그저 상상만 할 따름이다.

 

존이 없었다면 이 책이 이런 모습으로 세상에 나오지 못했을 것이다. 그는 내게 선생님이나 다름없었고 나는 그의 제자였다. 원고를 쓰고 수정하는 것은 물론 내가 책의 방향을 잡아나가도록 도움을 주었으며, 나는 그의 조언을 충실히 따랐다. 물론 이 책을 어떻게 만들지 최종적으로 결정하는 건 내 몫이었지만 여러분은 책의 곳곳에서 그의 흔적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이제 이 책은 어엿한 작품으로 완성되어 우리 두 사람 손에 자랑스레 들려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공원에서 마주치는 꽃을 그리거나 새를 올려다보는 걸 그만둘 생각은 없다. 존은 변함없이 내년의 텃밭 구상과 특정한 자연현상을 관찰하기 위해 계획한 여행 이야기를 들려줄 것이다. 어떤 모습이든 우리를 둘러싼 주변을 살펴보는 일은 평생에 걸쳐 계속될 과제이며, 이 책은 이를 보여주는 작은 증거물일 뿐이다. 모쪼록 이 책이 뒷마당에 대한 독자 여러분의 호기심을 자극하는 데 도움이 되길 바란다. 그 뒷마당이 뒷동산이든 비상계단 위에 놓아둔 화분이든 중요하지 않다.

 

줄리아 로스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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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해부도감줄리아 로스먼 저/이경아 역/이정모 감수 | 더숲
이 책은 산책길에서 마주친 나무와 곤충에 대한 저자의 작은 호기심에서 시작되었다. 매일 같은 도시를 걷고 비슷한 하루를 보내는 우리에게 하루하루 조금씩 다른 얼굴의 자연을 보여주며 우리가 사는 도시 바깥에도 온전한 세계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알려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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