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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림 “『나무 대륙기』는 육체와 심리, 둘 다 욕심냈어요”

10년 넘게 걸린 작품 『나무 대륙기』 펴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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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전 작품들은 주로 식물에게 빗대거나 식물로 회귀되었어요. 『나무 대륙기』에서는 드디어 식물을 관통해 존재 변이를 시도하죠. 상징도 식물에만 국한되지 않고 빛나는 돌(옥)이나 이해할 수 없는 무(어둔)등으로 좀더 다양해지고 소설 속 세계도 물리적으로 확장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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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티노』, 『할머니 나무』로 황금드래곤문학상을 두 번이나 수상한 은림 작가의 첫 번째 장편소설 『나무 대륙기』가 황금가지에서 출간되었다. 환상문학을 통해 여성의 사회적 위치와 정체성에 대한 문제를 주로 다루는 은림 작가는, 이번 작품에서도 남성 중심의 거친 판타지 세계에서 앞으로 나아가는 두 소녀의 이야기를 치열하게 다루고 있다.

 

『나무 대륙기』는 출판사 공식 포스트를 통해 일부 분량이 선 공개되는 동안 독자들의 뜨거운 반응을 얻었다. 독창적인 세계관과 개성 넘치는 캐릭터, 꼼꼼하게 설정된 플롯은 또 하나의 주목할 만한 환상 문학 작품을 완성시켰다. 

 

첫 장편 『나무 대륙기』를 정말 오랜 시간 동안 준비하고 집필하셨습니다. 오랜 시간을 거쳐 책을 펴내신 소감이 궁금합니다. 더불어 단편을 쓰실 때와는 어떤 점들이 다르셨나요?

 

뱃속이 후련합니다. 이걸 끝내고 나면 현실물이든, 로맨스물이든 얼마든지 도전 해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나무 대륙기』는 제가 정말로 다루고 싶었던 얘기였고, 그만큼 오래 걸렸습니다. 그리고 단편과 달리 장편은 일단 굉장히 많은 체력이 필요했어요. 그 분위기를 이끌어나갈 수 있는 상황이란 게 거의 불가능했어요. 저는 굉장히 느리게 쓰는 편이라 1년에 단편 두 세편을 쓰는데요, 그것도 출산 전이었죠. 단편이 밥을 굶고 잠을 건너뛰고 분위기를 유지한 채 철야를 해서 한달 정도에 끝낼 수 있다면, 장편은 수시로 현실로 돌아와 밥을 먹고 설거지를 하고 운동을 하고 아이를 돌보고 돈을 벌면서 3년여를 써내야 했어요. 그 시간 동안 장편의 분위기와 현실을 함께 유지하기가 힘들었어요. 저쪽(원고 속)으로 건너가는 시간이 오래 걸리고, 집중할 시간은 너무 적고, 돌아와서 현실 세계를 유지하는데 드는 체력이란 무지막지했죠. 중간에 이야기 맥을 놓치는 일은 매일 매 순간 일어났어요. 하지만 그 치열함이 좋기도 했어요. 

 

작가 후기에서 『나무 대륙기』는 꼭 쓰고 가야 할 ‘징검돌’ 같은 작품이라고 말씀하셨는데, 이전 단편들과 달리 ‘쓰지 않으면 죽을 것 같다’는 어떤 필생적 간절함과 각오가 강력히 엿보였던 게 아닌가 싶습니다. 집필 과정이 어떠셨는지, 그 의미는 무엇이었는지요.

 

그러게요. 구상부터 출발하면 굉장히 오래된 작품이에요. 제가 『나무 대륙기』 타로 카드를 처음 만들어서 발표한 것이 2006년이에요. 캐릭터와 설정은 그때부터 계속 갖고 있다가 쓸 필력도 없고 환경도 안 돼서 계속 묵혀 두었어요. 그러고 보니 (구상부터) 책 출간까지 딱 10년이 걸렸네요. (실은 그보다 더 오래되었지만 부끄러우니까 밝히지 않겠습니다;;)

 

부족한 쓰기능력으로 처음부터 끝까지 다시 쓰기를 몇 번이고 반복했어요. 황금가지와 계약한 후에도(2012년) 초고부터 네 번 이상 다시 썼고요. 덕분에 제 안에서 가장 뜨거워진 화두로 완결을 낸 거 같아요. 십 년 전에 썼다면 절절한 로맨스였을 것 같아요. 10년 전과는 추구하는 바가 달라진 거죠. 

 

『할티노』, 『할머니 나무』로 황금가지의 황금드래곤문학상을 두 번이나 수상하셨어요. 작품집 『노래하는 숲』과 이번 장편 『나무 대륙기』까지 이어지는 ‘나무’나 ‘식물’이라는 대상에 꾸준히 천착해 오셨는데, 특별한 계기가 있으셨는지 궁금하고요, 그 주제가 『나무 대륙기』에서 특별히 확장되는 부분이 있다면 어떤 지점인지 여쭙고 싶습니다.

 

전작인 『노래하는 숲』의 후기에서 적었듯이, 식물의 수동성이 여성성의 상징으로 주로 쓰이는 것을 의식했어요. 하지만 식물은 결코 수동적이지 않으며 자기만의 방식으로 적극적이고 강력하죠. 지구에서 가장 강한 존재니까요. 그렇게 인간으로서는 불이해한 방향으로 위대한 존재에게 반했고, 남성들에게 불이해한 방향으로 위대한 여성성에 그대로 투사했어요.

 

이전 작품들은 주로 식물에게 빗대거나 식물로 회귀되었어요. 『나무 대륙기』에서는 드디어 식물을 관통해 존재 변이를 시도하죠. 상징도 식물에만 국한되지 않고 빛나는 돌(옥)이나 이해할 수 없는 무(어둔)등으로 좀더 다양해지고 소설 속 세계도 물리적으로 확장됩니다. 동양풍으로 시작했지만 동서남북 대륙을 아우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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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간 전 연재 때부터 많은 분들이 서양 판타지가 아닌 동양풍 느낌이 나는 『나무 대륙기』에 대한 이색적인 관심이 높았습니다. 동양의 분위기를 선택한 것은 공부한 것이 아니라 주변의 일상과 이미지를 빌어 오고 숨쉬듯 가져오셨다고 했는데, 이런 배경에 대해 좀 더 알려주신다면요.

 

'판타지’라고 하면 일반적으로 서양 판타지를 떠올리게 되고, 사람들이 기대하는 것도 서양 판타지가 아닌가 싶어요. 그래서 이 작품은, 특이하게 받아들여질 수도 있고 독자 입장에서 판타지, 동양이라는 이중 장벽을 가질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어요. 독자들이 아예 외면할 수도 있을 것 같았죠. 싸움 같은 재미적 요소가 들어가 있지만 또 이게 딱히 무협풍도 아니잖아요. (판타지와 무협) 양쪽 독자에게 전부 다 외면당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어요.

 

하지만 제 친구들은 검과 마법으로 외향성을 강조하지 않고 심리적인 부분들을 강화시킨 동양적인 판타지(꾸준히 재출간되는 『십이국기』)에 굉장히 관심을 가졌고 제가 몸담고 있는 웹진 <거울>의 작가들은 「지우전」, 「아홉개의 붓」 등 강하고 유려한 동양풍 작품을 꾸준히 시도해 왔죠. 서양 판타지가 육체적이라면 동양 판타지는 정신적인 면이 강하다고 생각해요. 그런 부분들을 『나무 대륙기』에 녹여 넣고 싶었습니다. 동양풍이 강조되긴 했지만 『나무 대륙기』는 육체와 심리, 둘 다 가져가려고 무척 욕심을 냈습니다.

 

서미와 무화의 어렸을 적 이야기들은 제가 직접 봐 왔고 경험했던 것들이에요. 밤에 깜깜해지면 저 문설주나 대들보 뒤에 뭔가가 있을 것 같다거나 툇마루에 앉아 마당에 일군 텃밭위로 떨어지는 빗방울 같은 걸 하릴없이 바라보는 것 같은 것들요. 그런 이미지를 정서에 갖고 있는 상태니까 묘사하고 상징을 담아내기는 어렵지 않았어요. 그리고 어쩌면 그 이미지를 표현하고 공유하는 마지막 세대일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해요. 지금 아이들은 툇마루에서 진종일 놀아본 기분 같은 것은 모르지 않을까요?  (웃음) 

 

무화가 보고 말하는 ‘어둔’, 평소에는 쓰지 못하다가도 어느 순간엔 또 하나의 생명체처럼 살아 숨쉬는 무화의 다친 왼쪽 팔, 남장 무사 등 무화의 캐릭터가 범상치 않습니다. 『나무 대륙기』에서 작가님이 의도하신 무화는 어떤 캐릭터인가요?

 

‘무화’는 긍지가 강하고 친구를 믿고 싶어 하고, 두려운 순간에도 용기를 내고 싶어 하는 인물이에요. 겁나도 물러서지 않고 모든 문제를 스스로 해결하고 싶어 하죠. 설령 실패하는 한이 있더라도요. 항상 본인이 전면에 서 있다는 것을 아는 인물이에요. 그림자 무사라고 묘사되지만 전체 사건을 수습하는 것은 무화, 본인이에요. 자신이 밀리면 서미가 다칠 것이라는 것을 아는, 자신이 마지노선이고 최전선이라는 걸 아주 잘 알고 있지요. 

 

작가의 말에서 ‘여자인 것을 잊을 수도 떨쳐낼 수도 없었다’고 하셨는데, 서미와 무화를 통해 남성 중심 사회에서 여성으로 살아가는 일에 대해 어떤 것들을 풀어내고 싶으셨는지요?

 

서미와 무화의 경우는 서로 생존 기술이 달라요. 서미는 미모가 있으니까 여성스러움을 힘으로 삼아 이용하죠. 보통 그런 여자들을 남자/혹은 여자들도 비난할 때가 있잖아요, 여성스러움을 무기로 사용한다고. 하지만 (제 소설에서는) 이 부분은 반하도 똑같아요. 반하도 눈부시게 아름다운 외모를 지닌 남자이기 때문에 이걸 적극 활용하지요. 여자뿐만이 아니라 아름다움은 누구에게나 무기일 수 있어요. 누구나 자기가 가진 모든 것을 이용해 살아남으려고 노력한다고 생각합니다. 

 

앞으로 반공주의 엄마인 ‘녹옥’의 이야기가 조금 남아 있다고 하셨어요. 『나무 대륙기』의 남은 이야기에 대한 힌트를 조금 더 전해 주실 수 있을까요.

 

본편에는 넣을 수 없는 이야기였어요. 녹옥은 굉장히 미스터리한 인물이라 어떤 일이 있었는지 잘 드러나질 않았죠. 누구랑 결혼했고 누구의 애를 가졌는지 등 어째서 그런 행동들을 하게 되었는지도요. 녹옥에 대한 못 다한 이야기를 더 써 보고 싶어요. 이번에야말로 다양한 남자 캐릭터가 등장하는 로맨스를 써 보고 싶네요. (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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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 대륙기은림 저 | 황금가지
황금드래곤문학상을 수상하며 데뷔한 환상 문학 작가 은림의 장편 판타지 소설 『나무 대륙기』(전2권)가 황금가지에서 출간되었다. 환상문학을 통해 여성의 사회적 위치와 정체성에 대한 문제를 주로 다루는 작가는, 이번 작품에서도 남성 중심의 거친 판타지 세계에서 앞으로 나아가는 두 소녀의 이야기를 치열하게 다루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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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ㆍ사진 | 출판사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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