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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아(Sia), '타인을 위한 것'을 '자신을 위한 것'으로

Sia - 〈This is Act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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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 전체가 비감 혹은 공포라는 정서 하나에 초점을 맞추고 있던 전작에 비하면 응집력이 떨어지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This Is Acting>은 그런 상황을 역설적으로 뒤집어 '타인을 위한 것'을 '자신을 위한 것'으로 바꿔내는 시아의 역량을 증명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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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면적으로만 보자면 흥미로운 기획이다. 다른 아티스트들에게 '까인' 곡들로 채운 앨범이라는 한 줄의 정보는 생각보다 구미가 당기고 솔깃한 이야기다. 시아(Sia)의 제안을 거절한 가수들을 찾아보고 '이 노래가 비욘세한테 갔던 거였어?' '아델이 「Alive」를 불렀으면 어땠으려나'등의 생각을 해보며 곡들에 집중해 본 사람도 많았을 것이다. 다른 가수들이 불러야 을 노래를 본인이 직접 부른 탓에 연기하는 것만 같았다며 이름 붙인 앨범 제목 <This Is Acting>이 새삼 잘 어울려 보인다. 하지만 앨범은 방점을 시아의 '연기'에 찍지 않는다. 오히려 다른 사람의 가면 속에서 형체를 드러내는 것은 싱어송라이터 시아에 가깝다.

 

「Alive」가 가장 적확한 예시다. 원래 아델의 <25>에 수록될 곡이었고 그만큼 원작자인 시아 외에도 편곡과 수정의 손길이 많이 묻었을 트랙이다. 아델이 불렀을 이 노래를 어렴풋이 상상하는 것도 어렵지 않다. 그럼에도 「Alive」에서 시아는 타인의 흔적을 조금도 허락하지 않는다. 원인은 두 가지, 뼈대를 받쳐주는 편곡과 시아 특유의 보컬이다. 후렴구에 백미가 있는 곡인지라 곡 초반부터 완성도 높은 훅을 표현하기 위해 공을 들였고, 1절이 끝난 뒤로는 후렴구의 변용에 초점을 둔다. 후반부에서 코러스와 후렴구 멜로디의 두 목소리만으로 절정을 치닫는 브릿지는 좋은 멜로디를 활용하는 방법의 일례라 하겠다.

 

시아의 랜드 마크처럼 여겨지는 거친 가창 역시 작품 곳곳에서 번져 나온다. 과하다는 생각이 들기 바로 직전까지 피치를 올리는 「Alive」도 그렇고 그답지 않은 가벼운 도입부를 선보이는 「Cheap thrills」에서도 마찬가지다. 전작 <1000 Forms Of Fear>와 비슷한 감정선을 보이는 「Bird set free」나 「Broken glass」 같은 곡들에서는 노랫말의 힘까지 더해져 굳이 다른 가수를 연상할 필요가 없다. 줄곧 비극 속에서도 의지를 갖춘 자아를 음악으로 되살려낸, 온전히 시아의 노래 그 자체이다.

 

사실 새삼스러울 이유는 없다. 앨범이 정식으로 발매되기 전에도 줄곧 여러 아티스트들과의 협업을 내세우며 싱글들을 공개해 온지라 시아 이외의 아이덴티티를 부여할 여지가 적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지금까지의 활동으로 싱어송라이터로서의 위상이 굳어온 음악가로서 다른 가수들에게 주려고 했던 곡이라는 조건이 붙었다 한들 본인의 장악력이 옅어졌을 리도 만무하다.

 

작품 전체가 비감 혹은 공포라는 정서 하나에 초점을 맞추고 있던 전작에 비하면 응집력이 떨어지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This Is Acting>은 그런 상황을 역설적으로 뒤집어 '타인을 위한 것'을 '자신을 위한 것'으로 바꿔내는 시아의 역량을 증명한다. 본인의 창작물과 정체성에 대한 애정이 느껴지는 음반이다. 스스로 얼굴을 가리기 시작하면서 커리어에 새로운 전기를 열었던 그이다. 이렇게 보여주지 않고도, 음악만으로도 이름을 각인시킬 수 있는 경지에 올랐다.

 


 2016/02 이기선(tomatoapple@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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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이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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