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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온이 느껴지는 영화

스크린을 통해 다시 펼쳐지는 문학의 감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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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는 가까이만 있어도 타버릴 것만 같은 사랑도 필요하지만, 천천히 소매를 적시는 가랑비 같은 관계도 필요한 법이다. 그리고 때론 차곡차곡 쌓인 눈송이가 지붕을 무너뜨리기도 한다.

 인간은 더욱 자유로워지기 위해서 기술을 발전시켰지만, 기술의 발전은 우리의 시간을 더 압축시켰다. 그 결과 우리는 같은 시간에 과거보다 더 많은 업무와 더 많은 걱정을 해야 한다. 뭐든지 빨라야만 하는 시대가 도래했다. 인터넷도 빨라야 하고, 기차도, 택배도, 심지어 인간관계도 빨라야 한다. 클릭 한 번으로 친구가 되었다가도, 슬라이드 한 번으로 친구를 차단하는 세상이다. 하지만 아직도 우리 곁에는 잔잔하게 젖어드는 사람의 힘을 이야기하는 작품이 있다. 사람(人)이 만들어가는 관계(緣)의 온도를 믿는 작품이 있다.

 

 

거창하고 대단하지 않아도, 『완득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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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_ 네이버 영화 스틸컷

 

『완득이』의 작가 김려령은 마해송 문학상, 문학동네 어린이문학상, 창비 청소년문학상을 석권하며 2008년 혜성처럼 등장한 작가이다. 그녀의 대표작으로 항상 꼽히는 『완득이』 역시 제1회 창비 청소년문학상을 수상하였다. 김려령은 공감과 소통을 통한 치유와 성장에 주목하는 작가이다. 그리고 『완득이』는 이런 김려령의 작품 세계가 가장 단적으로 드러나는 작품이다.

 

『완득이』는 주인공 완득이가 담임 동주를 만나면서 내적 성장을 이루어나가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완득이는 만년 꼴등에, 가난해서 수급품을 받으며 생활을 해야 하고, 어머니는 어디 있는지도 모르고, 아버지는 등이 잔뜩 굽어 사람들에게 손가락질을 받는, 그야말로 “완벽하게 불쌍한” 사람이다. 완득이는 어디에서도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인 외톨이다. 그런 완득이를 동주는 끊임없이 부른다. “얌마, 도완득!”하면서 말이다. 그런 동주를 귀찮아하던 완득이도 점점 마음을 열고, 거창하고 대단하지 않아도 자신의 삶에 열의를 갖기 시작한다.

 

가슴 따뜻해지는 이야기로 많은 독자로부터 호응을 얻은 『완득이』는 이후 연극으로도 각색되었으며, 동명의 영화로도 제작되었다. 영화 <완득이> 역시 530만 이상의 관객을 동원하면서, 원작의 열풍을 이어갔다. 영화 <완득이>는 소설을 영화화한 영화 중에서도 비교적 원작을 충실하게 반영하고 있다. 다만 원작에서는 완득이의 가족사뿐만 아니라, 완득이가 킥복싱을 하면서 꿈을 가지게 되는 이야기, 그리고 같은 반 친구 정윤하와의 연애 이야기도 비교적 자세하게 다루어지는 데 비해, 영화는 상대적으로 오롯이 완득이의 가족사와 담임 동주와의 관계에 집중하는 모습을 보인다. 그리고 이웃집에 사는 무협소설가라는 캐릭터를 추가해 담임 동주와 러브라인을 형성함으로써 동주라는 캐릭터에 좀 더 힘을 실어준다. 하지만 이러한 차이는 소소할 뿐, 영화는 ‘만남을 통한 치유와 성장’이라는 원작 소설의 메시지를 스크린에서 충분히 재현해 내는 것에 성공했다. 특히 영화 <완득이>는 소설 속 캐릭터와 배우 김윤석(담임 동주 역), 유아인(도완득 역)의 훌륭한 싱크로율을 자랑하며 관객들에게 큰 즐거움을 선사하기도 했다.

 

 

빛이 사라지면 너에게 갈게, 『렛미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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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_ 네이버 영화 스틸컷

 

소설 『렛미인』의 작가 욘 아이비데 린드크비스트는 굉장히 특이한 이력을 지닌 사람이다. 무시무시하게 환상적인 존재가 되고 싶어 한 그는 십 대 시절부터 거리 마술쇼를 선보였고, 마술 경연에서 입상하기도 했다. 오랫동안 코미디쇼 및 드라마 시나리오 작가로 활동하던 그는 소설을 쓰기로 결심하고 실제로 자신이 태어난 스웨덴의 블라케베리를 배경으로 한 자전적 소설 『렛미인』을 집필하지만, 이야기가 너무 괴상하다는 이유로 여덟 군데의 출판사에서 거절을 당하고 나서야 마침내 『렛미인』을 출간하게 된다.

 

『렛미인』의 주인공 오스칼은 학교에서 따돌림을 받는 소년이다. 그런 그는 자신의 옆집에 이사 온 뱀파이어 친구 엘리와 우연히 친해지게 되고, 엘리의 조언에 힘을 얻어 처음으로 용기를 내 학교에서 자신을 괴롭히는 아이에 맞선다. 오스칼은 자신과 마찬가지로 늘 혼자 있는 엘리에게 일종의 동지애를 느끼면서 점차 마음을 열어가고, 그들은 서로에게 운명적인 상대가 되어준다. 평범한 사람들의 세계에서는 늘 외톨이인 오스칼과 자신이 살기 위해서는 살인을 저질러 피를 마셔야만 하기에 숙명적 외톨이인 엘리, 이 불완전한 존재들의 포옹을 노래한 『렛미인』은 출간 전 출판사들의 차가운 반응과는 대조적으로 출간 이듬해 노르웨이에서 ‘최고 번역소설상’을 수상하고, 23개국에 소설판권이 팔림과 동시에 20여 건이 넘는 영화화 제의를 받는 등 뜨거운 호응을 얻었다.

 

수많은 영화화 제의를 받은 작가 린드크비스트는 고민 끝에 스웨덴의 촉망받는 차세대 감독 토마스 알프레드손의 제의를 받아들이고 직접 시나리오 작업에 참여한다. 그렇게 탄생한 스웨덴판 <렛미인(2008)>은 30여 개 영화제에서 48개 상을 받으면서 원작 소설과 함께 큰 사랑을 받는다. 그 사랑을 입증하듯, 『렛미인』은 2010년 헐리우드 버전으로 또다시 영화화되었다.

 

『렛미인』은 앞서 소개한 『완득이』와 달리 원작 소설과 영화의 차이가 꽤 크다. 스웨덴판 <렛미인(2008)>과 헐리우드판 <렛미인(2010)> 모두 오스칼과 엘리의 서사에 집중하고 있지만, 소설은 오스칼과 엘리의 로맨스뿐만 아니라 블라케베리에 함께 살고 있는 이웃들, 엘리와 함께 이사를 온 호칸의 이야기까지 방대하게 다루고 있다. 이러한 소설과 영화의 차이는 시간적 압박에서 기인한 것으로 보인다. 우리나라의 경우 400쪽에 달하는 분량의 책 두 권으로 분권 되어 출판된 원작 소설의 내용을 기껏해야 두 세 시간에 불과한 영화가 전부 담아내기엔 분명 한계가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두 버전의 영화 모두 원작의 틀을 해치지 않는 선에서 영민하게 이야기를 선택하며 영화적 완성도가 높다는 호평을 받았다. 따라서 『렛미인』의 경우 영화를 먼저 관람하고 난 후 원작 소설을 읽는다면 영화에서 암시적으로만 언급된 것들에 대한 뒷이야기들을 접할 수 있을 것이다.

 

 

살아있는 건 뭐든 손길이 필요해, 『바닷마을 다이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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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_ 네이버 영화 스틸컷

 

만남과 소통을 통한 치유를 이야기하는 또 다른 작품으로는 『바닷마을 다이어리』가 있다. 『바닷마을 다이어리』는 이전에 소개한 『완득이』, 『렛미인』과 달리 원작이 소설이 아닌 만화다. 전 6권으로 이루어진 원작 만화는 일본의 유명 만화가 요시다 아키미의 작품으로, 평범하고 소소한 일상을 그렸지만 쇼가쿠칸만화상을 2회 수상한 작가의 저력이 돋보이는 작품이다.

 

『바닷마을 다이어리』는 가족을 버리고 떠난 아버지와 불륜을 저지른 여자 사이에서 생긴 배다른동생을 보살펴주며 오롯이 사람의 힘으로 가족을 이루어가는 자매들의 이야기이다. 친어머니를 일찍 여의고 아버지마저 떠나 보내면서 외톨이가 된 스즈의 모습이 이내 마음에 걸렸던 세 자매는 스즈에게 자신들과 함께 살 것을 제안한다. 주변 어른들은 그런 세 자매의 선택에 반대하지만, 그들은 아랑곳하지 않는다. 첫째 사치는 그저 자신들의 정원에 있는 매실나무를 돌보며 중얼거릴 뿐이다. “살아있는 것들은 모두 손길이 필요해.” 어색하지만 친절한 세 언니와 함께 살게 된 스즈는 조용하고 아름다운 바닷마을 카마쿠라에 살면서 크고 작은 일들을 겪으며 진정으로 성숙한 어른이 된다. 이처럼 『바닷마을 다이어리』는 버려진 사람들이 버려진 아이를 거두어 보듬어주는 과정을 큰 갈등 없이 소박하게 담아냈다는 점에서 작가의 세상, 그리고 사람들에 대한 따뜻한 시선을 엿볼 수 있는 작품이다.

 

『바닷마을 다이어리』는 따뜻하고 소박한 이야기로 많은 독자들의 사랑을 받으며, 특유의 따뜻한감성으로 많은 팬을 보유하고 있는 일본의 거장 감독 고레에다 히로카즈에 의해 영화화되었다. <바닷마을 다이어리>는 감독 고레에다 히로카즈의 명성에 걸맞게 원작의 내용에 충실함과 동시에 원작의 섬세하고도 소박한 감성을 담아 원작의 감동을 고스란히 관객들에게 전하는 것에 성공하면서 제68회 칸 영화제 경쟁부문에 초청되면서 극찬을 받았다. 또한 <바닷마을 다이어리>는 실제 원작 만화의 배경이 되기도 한 일본의 카마쿠라 지역에서 촬영을 진행했기 때문에 아름다운 영상미를 자랑하기도 한다.

 

<바닷마을 다이어리>는 감독의 전작들인 현대 일본사회에서 가족의 의미가 무엇인지 진지하게 되짚어보는 <걸어도 걸어도>, ‘스가모 어린이 방치 사건’을 다루고 있는 <아무도 모른다>, 혈연관계란 무엇인가에 대한 진지한 성찰이 돋보이는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와는 사뭇 다르게 강렬한 사회적 메시지 대신 상처받은 사람들에게 따뜻한 포옹을 건네는 영화다. 이런 점에서 <바닷마을 다이어리>는 감독의 또 다른 전작 <진짜로 일어날지도 몰라 기적>의 흐름을 잇고 있는 영화라 볼 수 있다. 영화를 관람하고 원작 만화를 읽는다면, 영화 속 장면이 다시 떠오르는 재미와 함께 영화에서는 미처 다 다뤄지지 못한 사랑스러운 네 자매의 에피소드들을 읽는 재미를 만끽할 수 있다.

 

잔잔함, 따뜻함, 만남. 모두 요즘 같은 세상에서 살아남기 어려운 단어들이다. 하지만 이 단어들은 때론 그 무엇보다도 강력한 힘을 가진다. 『완득이』, 『렛미인』, 『바닷마을 다이어리』가 모두 영화화된 작품이라는 사실만 봐도 그렇다. 게다가 최근작인 <바닷마을 다이어리>를 제외하고는 <완득이><렛미인> 모두 국내에서 최근 재개봉을 했다. 이것이야말로 아직은 이 작품들의 시선에 힘을 실어주고 싶은 사람들이 많다는 증거 아닐까. 이제는 우리가 이 작품들의 시선을 따라 세상을 바라볼 차례다. 어제보다 더 넉넉하고 따스한 마음으로 내 곁에 있어 주는 사람들을 바라봐줄 차례다.

 

지금까지 ‘스크린을 통해 다시 펼쳐지는 문학의 감동’이라는 주제로 다양한 스크린셀러 작품들을 만나보았다. 최근에는 영화뿐만 아니라 드라마까지 소설을 기반으로 한 작품들이 많이 나오고 있다. 이러한 현상은 이미 소설의 형식으로 검증받은 이야기를 다루고자 하는 ‘안정성 보장’의 목적도 분명히 있지만, 자신들이 소설을 통해 느낀 감동을 스크린, 혹은 브라운관을 통해 재현해 내고자 하는 예술계 종사자들의 의지도 있다. 그리고 때론 그런 재현 행위를 통해 원작을 뛰어넘는 감동을 선사하는 작품이 나오기도 한다. 앞으로도 문학이 영상예술에 영감을 주고, 또 영상예술이 문학을 활성화하는 과정을 통해서 문화예술계의 선순환이 더욱 활발해지기를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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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고은영(예스24 대학생 리포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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