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젠트리피케이션을 이기는 ‘점진적 개발’

『세운상가 그 이상』 강빛나래/박혜리 편자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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멀리서 한국의 변화를 지켜보면서 대규모 개발계획에 대한 문제의식과 대안을 묶은 책을 만들고 싶었습니다. 세운상가와 그 일대는 새로운 생태계를 만들어 내고 있습니다. 유럽 사례도 그 시작은 생소했지만, 현실에서 문제를 직시하고 해결 가능한 지점들을 찾아내 적용한 결과입니다.

세운상가는 폭 50m, 길이 1km에 육박하는 긴 상가단지이자 거대한 구조물이다. 1968년 국내 최초 주상복합건물이자 당시 국내 유일의 종합 가전제품 상가로 호황을 누리기도 했지만, 1990년대 본격적인 강남개발로 쇠락의 길로 접어들었다. 세운상가 개발을 두고 여러 이행 전략이 나오는 가운데, 국내외 도시계획과 개발 관련 전문가가 모여 새로운 시각으로 공간을 바라보려고 시도했다.

 

박혜리는 사회 구성원들과 주민들의 일상으로 점철되는 도시의 형성과 변화를 다루는 설계 과정에 초점을 둔 도시계획가이자 건축가인 ‘도시건축가’다. 한국에서 실무를 한 후 스위스 취리히공대, 네덜란드 델프트공대 등에서 공부하였고, 다시 로테르담에서 도시디자인 실무를 하고 있다. 강빛나래는 델프트공대에서 네덜란드 지자체 토지개발정책에 관한 박사과정 연구를 진행 중이다. 이 둘이 의기투합해서 세운상가에 관한 16가지 아이디어를 모은 『세운상가 그 이상』을 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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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도심에 숨어 자는 거대한 괴물을 깨우다
 
현재 네덜란드에 기반을 두고 있습니다. 이렇게 의기투합하게 된 계기가 있나요?

 

박혜리: 저희는 로테르담의 한인교회에서 만났습니다. 자연스럽게 서로 자신이 하는 연구와 프로젝트에 관해 이야기를 나누며 한국의 도시계획과 개발에 대해 아쉬움 점을 유럽과 비교할 수밖에 없었고 문제점과 해결방안에 대한 공통된 시각을 확인했어요. 최근 멀리서 한국의 변화를 지켜보면서 대규모 개발계획에 대한 문제의식과 대안을 묶은 책을 만들고 싶었고, 실천에 옮긴 결과물이 이 책입니다.
 
‘세운상가 그 이상: 대규모 계획 너머’란 제목은 어떻게 나왔나요?

 

강빛나래: 제목엔 두 가지 시선이 교차합니다. 하나는 공간적 범위로서의 ‘이상(beyond)’, 즉 세운상가 군과 그 주변을 함께 주목하는 것이죠. 또 다른 시선은 시간적 범위의 ‘이상(ideal)’을 말합니다. 세운상가 군은 과거 최첨단 주상복합건물로 ‘도시 안 도시’를 구현한 한 시대의 아이콘이었습니다. 경제 성장 시기의 유산인 대규모 계획 그 너머를 함께 모색하자는 것이죠. 이 책은 현재 진행형이자 미래 시제로 다시 접근하고자 했습니다.
 
세운상가에 관련된 개인적인 추억이 있나요? 세운상가는 서울역 고가공원에 비해 세간의 관심을 덜 받고 있습니다. 서울의 많은 산업유산 중에 굳이 세운상가에 주목한 이유가 있나요?

 

박혜리: 세운상가는 우리가 자랄 때쯤 이미 쇠락의 길을 걷고 있었습니다. 깨울까 무서워 조심하게 되는 서울 도심에 숨어 자는 거대한 괴물 같았습니다(웃음).


잘 알려졌다시피, 세운상가는 대규모 계획의 연속이었습니다. 목조주택이 많은 도심에 화재를 방지하기 위해 무자비하게 밀었던 일제강점기 시대의 ‘소개공지’, 독립 후 그 빈터에 무허가 판자촌이 형성되자 이를 밀고 근대건축의 이상향을 세웠던 독재시대의 ‘세운상가’, 그 후 낙후된 세운상가를 밀어버리고 공원을 조성해 복합시설로 개발하고자 했던 신자유시대의 ‘공원화 계획’까지, 이 땅은 ‘백지식 불도저’ 개발의 연속이었습니다.


하지만 최근 저성장 시대를 맞아 세운상가와 일대는 독특한 혼합형 도심산업지역이 되었습니다. 책에서도 “처음에는 젠트리피케이션을 의도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역으로 도심의 약자와 영세상공인들에게 ‘숙주’ 역할을 하며 오히려 젠트리피케이션을 지연하고 있다”고 지적했듯(김성우, p.22), 세운상가와 그 일대는 새로운 생태계를 만들어 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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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운상가 내부

ⓒ건축전문 사진작가 노경


책에서는 다양한 국적, 서로 다른 분야의 전문가들이 다양한 의견을 피력하고 있습니다. 이를 한 권의 책으로 정리하고 의견을 모으는 과정 자체가 ‘점진적인 개발’로 보입니다.
 
박혜리: 네, 맞습니다. 큰 틀 안에서 다양함을 끌어내고 점진적으로 가는 겁니다. 각자 세운상가에서 느낀 생각과 경험을 바탕으로 해결책을 내놓았고 다행스럽게 ‘같은 방향성을 지닌 다양한 목소리’를 담을 수 있었습니다.


이 책에서 말하는 ‘점진적 개발’에 관해 말씀드리면, 첫째로 키워드는 ‘안전장치’, ‘자발성’, 그리고 규제와 방임으로 찾는 ‘다양성’입니다. 그 전제로 젠트리피케이션(지역이 고급화되어 원주민이 내쫓기는 현상)에 대한 우려와 그에 대한 정책적 장치가 우선 되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지역이 활성화된다고 해도 원주민과는 상관없이 그 누군가를 위한 개발이 되죠. 끝으로 멋진 그림을 보여주는 청사진식 종합계획이 아니라 유연한 프레임워크로 개별개발에 대한 독창성과 다양성 확보를 제안해서 ‘열린 도시’를 만들 수 있다는 말입니다.
 
도시개발의 선진국인 네덜란드, 스위스, 독일의 실제 사례가 다양한 자료와 함께 구체적으로 언급됩니다. 그러나 단순히 한국과 비교하기 너무 이상적이지 않을까요?

 

강빛나래: 정말 이상적이기만 한 걸까요? 저도 편저자로서 고민했던 적이 있습니다. 그런데 작년 11월 서울시가 ‘젠트리피케이션 종합대책’을 전격 내놓더라고요. 곳곳에 장기안심 상가를 마련하고, 소상공인 상가 매입을 지원하며, 특정 지역에 업종을 제한하는 것 등이 주요 내용입니다. 비전에 대한 의지가 있고, 행정이 뒷받침하며 따라가 준다면, 전에는 ‘될까?’ 싶던 것들이 점차 가능한, 나아가 당연한 방법이 될 수 있다는 조짐인 거죠. 이 책에 나오는 유럽 사례도 그 시작은 생소했지만, 현실에서 문제를 직시하고, 해결 가능한 지점들을 찾아내 적용한 결과입니다.
그 상황에서 현실성을 증명해낸 거죠. 언뜻 낯설고 이상적으로 보인다고 해서 불가능한 건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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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못한 ‘갑’을 꾸짖기도 하는 전문가 ‘을’
 
현재 유럽에서 실무와 연구를 하고 있습니다. 도시 개발 과정에서 한국 현장 사이에 느끼는 차이점이 있나요?
 
박혜리: 한국에선 성장시대의 끄트머리 때에 실무를 했고, 여전히 대규모 계획이 왕성히 쏟아지는 때 화려한 조감도에 일조한 사람 중 하나였죠(웃음). 그러다 재개발이 된다는 지역에 애틋한 마음이 들면 사진기를 들고 나가 사진을 찍고 글을 써서 ‘서울스크랩'이라는 웹진을 운영했습니다. 때론 직업과 지향점이 다른 데서 오는 괴리에 괴롭기도 했고, 대학 때부터 고민하였던 점진적 도시개발은 진정 불가능한 것일까 하는 의문을 품고 유럽으로 떠났죠. 떠난 지 한참 지나 멀찌감치서 한국을 지켜보니 그 조감도들은 그저 조감도에 머물러 있었고 ‘개발이익’이라는 그들만의 신기루에 많은 것들을 놓치고 있다는 것이 선명해지고 있었습니다.


반면, 유럽에선 대규모 개발이익이 비단 토지주나 개발업자의 전유가 아닙니다. 책에 나왔듯이 독일 하펜시티나(p.297),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의 사례(p.316), 영국의 공동체토지신탁과 협동조합 시스템(p.241) 사례를 직접 체험하고 있습니다. 이제는 한국에서도 저성장의 고통을 느끼면서 여러 대안과 해결방안이 나오고 있고 이에 대한 공감대가 형성되고 있습니다.


유럽에선 프로젝트를 진행할 때 주민과 개발회사, 즉 클라이언트(갑)가 절대 갑이 아니며 실무진을 전문가로 인정해주는 바탕 위에 소통합니다. 일하다 ‘갑’이 잘못을 하면 그들을 우리 ‘을’이 꾸짖기도 합니다(웃음). 우리 한국도 건축가들을 ‘용역업체’라며 낮게 보며 ‘을’ 취급하며 프로젝트를 진행할 것이 아니라 프로세스상 절대적으로 귀 기울여야 하는 전문가임을 인정해주면 좋겠습니다. 
 

강빛나래: 저는 도시 문제에 행정이 접근하는 방식의 차이를 느낍니다. 네덜란드는 중앙에서 지자체 재정을 엄격히 감사하긴 해도, 지자체가 개발 사업을 벌이는 데는 뜻밖에 규제가 적습니다. 사업 절차나 규모, 지자체 땅의 임대료나 분양가 기준, 사업 주체를 구성하는 방법 등은 각 지자체가 정책과 조례로 정합니다. 그래서 지자체의 자율성과 창의성이 두드러집니다. 장기적으로 우리 도시는 어떤 도시가 되어야 할까, 어떤 다양한 필요를 채우는 도시여야 할까, 평소에 고민하고 이야기 나누기 때문에 그 사회적 합의를 바탕으로 선계획-후개발이 가능합니다. 지자체 행정 속에 “시민 삶의 질을 적극적으로 높인다”는 정신이 깊게 배어있는 거죠.


최근 한국도 시마다 도시공사가 늘어나는 추세인데요. 분권화를 하고, 지자체가 창의성을 발휘하도록 행정적 걸림돌을 제거하는 것도 좋지만, 견제, 균형, 시민감시, 책임감, 소통도 뒷받침되어야 합니다. 그래야 사회적 합의를 바탕으로 행정적 유연성을 적재적소에 발휘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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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운상가

ⓒ건축전문 사진작가 노경


이 책은 세운상가와 그 주변을 본격적으로 다룬 첫 단행본입니다. 특별히 도시전문가나, 행정가, 계획가, 건축가뿐 아니라 시민에게 널리 읽히기를 바라는 특별한 이유는요?
 
강빛나래: 세운상가를 전면에 건 도시 분야의 첫 책입니다. 이 책의 강점은 디자인?사회학?계획의 언어 등 세운상가군과 그 일대, 곧 도심 내 한 지역의 변화를 바라볼 때 고려해야 할 다양한 관점을 한 권에 접할 수 있다는 겁니다. 도시재생 자체가 한 분야의 전문가가 주도할 수 없고,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들이 모여 협업을 이뤄야 가능한 장기적인 과정인데요. 그래서 일반인의 관심과 참여가 절실합니다. 내가 사는 지역이 형성되고 변화되어 가는데 어떤 요소가 작용하는지 이 책이 이해를 도울 겁니다. 세운상가 주위를 늘 지나치는 사람이라면, 그곳의 다른 풍경을 상상해보는 데 좋은 영감이 될 것이고요. 끝으로 국영문을 함께 실었기 때문에, 도시 이슈를 외국인과 소통하고 싶은 이들, 젊은 건축도시건축학도들도 펼쳐 볼 만한 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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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운상가 그 이상김성우,이영범,제프 헤멀,케이스 크리스티안서 등저 | 공간서가
『세운상가 그 이상』은 본격적인 국내 최초의 세운상가와 그 일대를 조명한 책으로 단순히 세운상가의 역사와 현재에 집중하기 보다, 세운상가 개발을 두고 새로운 국내외 도시계획과 개발 관련 전문가가 모여 이행 전략을 종합적인 시각으로 탐색해 본다. 『세운상가 그 이상』은 책 제목대로 세운상가만을 이야기 하지 않고 그 ‘이상(beyond)’을 다룬다. 건축가와 도시계획가가 꿈꿨던 ‘이상(ideal)’적인 건물인 세운상가를 현재 진행형과 미래의 시제로 접근하고, 세운상가뿐 아니라 세운상가 일대에 대한 종합 전략을 소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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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ㆍ사진 | 출판사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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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운상가 그 이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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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대 담론과 거대 건설에서 잃어버린 도시의 디테일과 이야기를 찾는 사람들은 바로 이 책 속에서 길을 찾을 것이다” 세운상가는 종로3가에서 퇴계로3가에 이르는 긴 상가단지다. 폭 50m, 길이 1km에 육박하는 거대한 구조물로 1968년 국내 최초의 주상복합건물로 완공돼 당시 국내 유일의 종합 가전제품 상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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