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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현산 “시라는 세계 속에서 다른 세계를 이야기하는 것”

『우물에서 하늘 보기』 출간 기념 독자와의 만남 시가 어떻게 내게로 왔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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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는 이 세계와 다른 세계를 연결시키려고 온갖 장난을 치고, 실험을 합니다. 여기에 동참하십시오. 그러면 시가 굉장히 친숙하게 다가올 것입니다. 그리고 어떻게 해서든 다른 세계로 건너가야겠다는 소망을 품으십시오. 그러면 시가 동지처럼 생각될 것입니다.

지난 12월 28일 저녁, 불문학자이자 문학평론가인 황현산 선생과 함께하는 북콘서트가 열렸다. 이번 행사는 그의 책 『우물에서 하늘 보기』의 출간을 기념하는 자리로, 문학평론가 김수이가 사회를 맡았다. 『우물에서 하늘 보기』에는 시의 언어 체계를 통해 표현된 다른 세상을 어떻게 보려고 했는가에 대한 선생의 기록이 담겨 있다.

 

황현산 선생은 독자들과 이야기를 나누기에 앞서, 이번 책을 내기까지의 과정을 간략히 설명했다. 그는 “이 책은 전적으로 시에 관한 이야기이다. 내가 이 세상에서 왜 살고 있는가 질문한다면 그에 대한 설명이 바로 시일 것이다. 살다 보니 결국 시 때문에 살고, 시에 의해 살고, 시에 의해 밥을 먹고 이렇게 평생을 지내온 것 같다”라고 자신에게 시가 어떤 의미를 지니고 있는지 이야기하며 말문을 열었다. 그러니까 말하자면 이 책은 지금까지 살아온 삶에 대한 그의 고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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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섬에서 배운 것은 ‘말’이었다

 

그는 ‘왜 이렇게 시와 가깝게 살게 되었는가’라는 질문을 스스로 가끔 해본다고 한다. 책에서 여러 번 언급됐듯이 황현산 선생은 전라남도 신안군에 속하는, 사람들이 낙도라고 하는 작은 섬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다. 7년이라는 시간은 누군가에게 짧게 느껴지는 시간일지도 모르지만, 그 섬에서 보낸 7년의 시간이 그에게 미친 영향력은 어마어마하다.

 

“7년은 제가 살아온 나이의 10분의 1에 해당합니다. 그러니까 저는 제 인생의 10분의 1을 그 섬에서 보낸 것이죠. 어렸을 때 7년은 굉장히 긴 시간이었습니다. 저는 지금 생의 8할을 그 섬에서 알게 된 것을 통해 살고 있습니다. 여전히 그 섬은 저에게 있어서 우주를 재는 척도와 비슷합니다. 그 섬에 있는 제일 높은 산이 한 300미터 정도 됩니다. 보통 어떤 산이 높다 하면 저는 항상 그 산을 기준으로 계산합니다. 예를 들어, 그 산보다 몇 배 더 높구나 가늠하는 것이죠. 그렇게 해야만 실감이 납니다. 이렇게 저는 어렸을 때 경험했던 것들로 모든 것을 비춰서 지금까지도 판단하고 있습니다.”

 

이어서 황현산 선생은 “내가 그 섬에서 배운 것은 바로 ‘말’이었다”라고 덧붙였다. 그가 살던 섬은 육지에서 꽤 떨어져 있는 곳이었기 때문에, 옛날에 쓰던 말이 그대로 보존돼 있었다. ‘아래아’가 살아 있을 정도였다. 그는 학교에 입학하고 나서야 라디오 방송을 통해 섬 밖에서 쓰는 말들, 그러니까 표준어를 처음 들었다.

 

“제가 우리 섬 말로 말하면 여기 계신 분들은 거의 못 알아 들으실 거예요. 그렇게 심한 섬 사투리를 쓰고 있었는데, 학교에 들어가고 나서 교과서로 표준어를 배우기 시작했어요. 그러면서 참 빨리 배웠어요. 내가 배운 섬 말이 있고 새로 배운 표준어가 있으면, 글을 쓸 때 섬 말을 금방 표준어로 바꿔 쓸 수 있었어요. 그 과정 속에서 느끼는 어떤 희열 같은 게 있습니다. 공대를 다니거나, 수학을 공부하거나, 경제학과에서 수식을 다루거나 하는 분들이 대개 가지고 있는 꿈은 굉장히 복잡한 현상을 수식으로 간단히 표현해내는 것입니다. 제가 섬 말을 표준어로 바꿔서 글쓰기를 하면서 느꼈던 흥분이 바로 그런 것과 비슷한 것 같아요. 뭔가를 수식화 하는 것과 같은 흥분인 것이죠.”

 

문학을 하고, 시를 공부하는 것에 있어서 최초의 에너지가 그때 만들어진 것 같다고 황현산 선생은 말했다. 이처럼 언어에 대한 어떤 흥분은 그가 아주 어렸을 때부터 시작됐다.

 

“언어에 대해 흥분하게 되면, 당연히 언어로 표현할 수 있는 사물에 대해서도 흥분하게 됩니다. 사람은 어떤 것을 알고 나서 말을 사용하지만, 어떤 경우에는 말을 만들어놓고 그 말에 해당하는 세계를 탐구하면서 마치 그 세계가 존재하는 것처럼 생각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저는 바로 그런 언어 세계, 언어와 관계 맺는 삶의 방식을 시에서 발견하게 되었고 그렇게 시에 모든 것을 바치게 된 셈입니다. 내 삶을 시라는 특별한 언어를 통해 정리하고, 삶에 어떤 구멍을 뚫어놓고 그 구멍을 통해 보는 세상이 실제로 존재한다고 믿게 하는 에너지를 시에서 찾아내고, 나아가서 그것을 내 존재처럼 생각하기에 이르지 않았나 싶습니다. 제 삶에 있어서 행운인 것은, 문학 선생을 오랫동안 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계속 시를 읽고, 시에 관해 말하고, 시에 관해 끊임없이 생각할 수 있는 기회를 얻었죠.”

 

황현산 선생은 학생들에게 시를 가르치면서, 그 동안 불 보듯 뻔하게 알고 있다고 생각했던 시에 대해 새롭게 생각하게 되었다고 말했다. 그는 항상 시와 친숙한 삶을 살아왔지만, 학생들은 그렇지 않았기 때문에 그의 입장에서 볼 때, 학생들은 늘 엉뚱하고 바보 같은 질문만을 하는 것 같았다.

 

“시를 가르치다 보면 학생들이 질문을 합니다. 저는 시와 내내 친숙하게 살았기 때문에 항상 시에 관한 모든 것이 자명하게 생각되는데, 학생들은 그렇지 않잖아요. 질문을 받고 보면 내가 뭔가를 잘못 설명했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래서 다시 설명하고, 다시 질문 받고, 또 다시 설명하다 보면 내가 잘못 설명했을 뿐만 아니라 잘못 본 것도 있고 못 본 것도 있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아무리 쉽게 생각되는 시라도, 우리가 읽을 가치가 있는 시는 그 안에 또 다른 비밀을 숨기고 있다는 것입니다. 사실 모든 언어가 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다 알고 있는 것처럼 생각하다가도 그 언어 속에 다른 깊이가 항상 남아있다고 믿게 됩니다. 그리고 그것은 우리 삶 속에 항상 비밀이 있고, 또 하나의 희망이 있다는 뜻도 될 것 같습니다.”

 

 

이 세계를 다른 세계와 연결시키는 것

 

약 20분 간 이어진 황현산 선생의 말 속에는 그의 삶 전체가 압축되어 있었다. 살아오는 내내, 그는 시 때문에 희망의 끈을 놓치지 않을 수 있었다. 사회를 맡은 평론가 김수이는 “선생님은 불문학을 전공하고 공부하시면서 번역자의 길을 걸어오셨는데, 번역은 서로 다른 두 언어를 매개하는 일이다. 어릴 때부터 고향 섬의 말을 제도적인 표준어로 바꾸는 일에서 이미 언어적인 자의식을 갖고 계셨던 것 같다. 선생님이 살았던 섬은 선생님께 가장 넓은 우주였을 것이라 생각된다”라고 소감을 전했다. 그리고 이어서 황현산 선생에게 몇 가지 질문을 던졌다. 첫 번째 질문은 ‘시를 대할 때 어떤 기준으로 읽는가, 그리고 시를 통해 말하고자 하는 것이 무엇인가’였다.

 

황현산 선생은 “누군가 자신에게 어떤 시를 좋아하느냐고 물어 보면, 좋아하는 시는 따로 없고 잘 쓴 시는 다 좋아한다고 말한다”라고 답했다. 그렇다면 그가 생각하는 잘 쓴 시란 어떤 것일까. 그가 꼽은 기준은 상투적이지 않은 시였다. 황현산 선생은 “이 세상에 시가 굉장히 많은데 대개 이 시가 저 시를 먹고 살고, 저 시가 이 시를 먹고 산다. 요즘은 그것을 ‘상호텍스트성’이라는 말로 설명하지만, 결국 저 사람이 이 사람이 쓴 것을 베껴 쓰고 이 사람이 저 사람 것을 베껴 쓴다는 말과 다른 게 아니다. 이미 개발돼 있는 이미지, 말버릇, 언어의 구조와 같은 것들은 내내 다시 반복되는데 반복을 하더라도 새로운 것이 있고, 정말 바보같이 반복하는 것들이 있다. 반복 구조에서부터 벗어나려고 애쓰고, 새로운 구조를 만들어내고, 새로운 이미지를 언어 속에 끌어들이면서 상투성을 비껴가는 시를 좋은 시라고 생각한다”라고 이야기했다.

 

이어서 시를 통해 말하고자 하는 것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대해 그는 “우리 삶은 늘 불만스럽다. 특히 한국 사회를 보면 계속해서 절망적인 상황이 전개되고 있다. 사람은 살면서 늘 지금의 삶 속에서 다른 삶에 대해 이야기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시는 아름다우면서 때로는 절대적으로 건강한 세계, 인간이 살아야 할 어떤 세계에 관해서 이야기한다. 물론 그런 세계에 대해서만 이야기하면 시는 지극히 허황될 것이다. 하지만 이렇게 비천하고, 막막하고, 절망스러운 삶 속에서 그 싹을 발견해내서 이 세계를 아름답고, 거룩하고, 완결된 어떤 세계와 연결시킬 때 세계에 관한 믿음이 생겨날 수 있다”라고 이야기했다.

 

우리는 시를 읽을 때면, 지금 우리가 사는 세계와 다른 어떤 세계가 있다고 굳게 믿게 된다. 시가 하는 말 속에는 늘 새로운 세계에 대한 이미지와 전망이 담겨 있기 때문일 것이다. 이처럼 우리에게 끊임없이 희망을 주는 시, 비천함 속에서도 희망을 갖게 하는 시가 바로 그가 좋아하는 시이자, 우리에게 전하고 싶었던 메시지이리라.

 

김수이 평론가는 황현산 선생의 답변에 대해 “다른 세계의 전망을 이끌어오는 것은 막연하기도 하고, 답이 없는 것 같기도 하고, 때로는 지리멸렬한 작업이 되기도 한다. 하지만 선생님의 말씀을 들으며 희망을 갖게 된다. 선생님의 책이 널리 읽히고 많은 사람들에게 반향을 불러일으키는 이유는 우리의 삶, 한국 사회의 어려운 문제, 불합리한 모순을 함께 읽어내는 것에 관한 열망 때문이 아닐까. 한국 사회에 정신적 지주가 많지 않은 상황에서 우리가 선생님의 책을 통해 읽어내는 것은 문학이면서 문학 이상의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그리고 이어서 그는 또 다른 질문을 던졌다. ‘지금의 젊은 시인들이 중심이 된 한국 시를 높게 평가하고 계신 것 같은데, 그 이유가 무엇인가’라는 물음이었다. 황현산 선생은 다음과 같이 답했다.

 

“시를 잘 쓰니까 그렇죠. 한국 사람들은 천성적으로 노래를 잘하는 민족인 것 같습니다. 그런데 그에 비해 서사 능력은 떨어지는 것 같습니다. 한국 사람들은 언어를 오랫동안 써왔고, 학문을 오랫동안 해왔는데요. 한국말이 가지고 있는 매우 특이한 점이 있습니다. 오랫동안 학문을 해왔음에도 우리는 우리의 언어로 학문을 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니까 머릿속에는 문장으로 표현할 수 있는 많은 지식들이 담겨 있는데, 실제로 사용하고 있는 언어는 구어로만 쓰고 있는 것이죠. 그것이 바로 한국어가 갖고 있는 묘한 언어적 특성입니다. 구어적, 일상적이면서 동시에 그 배면에는 굉장한 지식과 문장적, 문어적인 특색을 담고 있는 것이 한국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한 언어는 바로 시적 언어와 같습니다. 시는 비루한 일상의 언어를 통해 정의된 세계, 평화로운 세계, 깊이 있는 세계를 표현하는데 한국어가 갖고 있는 언어의 존재 상태도 그렇게 돼있다는 느낌을 받습니다. 한국인이 갖고 있는 언어 표현 능력은 굉장히 뛰어납니다. 실제로 한국 시인들이 시를 매우 잘 쓰고 있고, 시간이 가면 아마 한국 시를 세계의 다른 모든 사람들이 배우겠다고 할 날이 머지 않았다는 생각이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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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들이 묻고, 선생이 답하다

 

Q. 문학 비평을 직접 해보고 싶은 사람들에게, 비평에 어떻게 접근해야 하는지 가르쳐 주세요.

 

비평은 학술적으로 문학 작품이나 예술 작품을 보지 않습니까? 이렇게 학술적으로 보고 있기 때문에 비평은 다른 창작과 다른 점이 있어요. 일단 그것들을 익히고 외우는 것이 비평에서는 굉장히 중요합니다. 하지만 익히고, 배우고, 외운 것을 그대로 썼다가는 재능 없는 비평가가 되기 마련입니다. 배움으로써 튼튼해진 몸을 어떻게 써야 할 것인가는 각자 결정하고, 수련하면서 만들고 발명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Q. 나이가 들수록 앞으로의 삶에 대한 기대감도 있으면서, 한편으로 그 나이가 되면 어떤 느낌일까 궁금하기도 합니다. 선생님의 지난 시간을 돌아보며 나이 든다는 것, 성숙에 대해 말씀 부탁 드립니다. 더불어 인연이란 있는 것인지도 궁금합니다.

 

나이마다 그 나이가 가지고 있는 고민들이 있습니다. 이 나이가 지나고 나면 새로운 고민이 오고, 또 지나면 또 새로운 고민이 오죠. 그런데 지나고 나서 보면 다 괜찮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중학교 때는 연애가 정말 하고 싶었어요. 연애는 중학교 때만 할 수 있는 것인 줄 알았고, 고등학교나 대학교 때도 역시 마찬가지로 생각했습니다. 모든 나이마다 가능성이 있는데 우리는 늘 나이를 먹을 때마다 그 가능성이 없어졌다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은 것 같습니다. 인연이라고 말하기는 뭐하지만 사람은 언제든지 만날 수 있습니다. 사람을 만나기 위해서는 일단 열어놓고 있어야 하고, 두 번째로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그것도 공부하듯이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Q. 책 『밤이 선생이다』에서 현재의 두께가 감수성과 연결된다고 하셨던 부분이 인상 깊었습니다. 그런데 요즘은 현재의 두께가 두꺼운 사람일수록 더 살기 어려운 듯합니다. 저희가 자신의 두께만큼 살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삶을 두텁게 살아야 한다고 말했는데 현재 한국 사회는 삶을 두텁게 살지 못하도록 만들고 있는 것 같아요. 특히 젊은 사람들이 불행한 세월을 보내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그 중에서도 한국 사람들을 불행하게 하는 것이 있습니다. 한국 사람들은 일을 너무 많이 합니다. 일하느라 생각할 틈이 없고, 늘 경쟁하느라 한 치 앞만 바라보고 삽니다. 이것이 우리를 너무 지치게 만듭니다. 너무 부지런하지 말고, 시키는 일을 다 잘하려고 하지 말고, 멍 때리기도 하고 뒤로 미뤄 놓기도 하는 시간을 가지는 것이 좋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야 삶도 깊어지고 우리가 무엇을 하며 살아야 하는지에 대해서도 알 수 있을 것입니다. 예전에는 사회가 어둡고 혼란스러우면 지식인들이 나와서 말했는데, 요즘은 지식인들도 눈 앞의 일에만 잡혀 있습니다. 조금 게으르기도 하고, 미루기도 하면서 사는 것이 오히려 잘 사는 것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Q. 취미로 시를 쓰고 있습니다. 앞서 말씀하신 것처럼, 시를 쓸 때는 자기 안의 타자를 꺼내야 하는데 그것을 탄탄한 말로 정제시키는 일과 동시에 하기가 어렵습니다. 다시 말해, 자신만의 개성을 표현하면서 그것을 정제된 말로 쓰는 일을 어떻게 할 수 있을까요?

 

제가 아까 한국말이 가지고 있는 기묘한 특성에 대해 이야기했습니다. 그리고 시의 이상적인 언어 상태가 바로 그런 것이라는 말씀을 드렸는데, 이것은 시 쓰는 사람들, 창작 활동을 하는 사람들이 다 같이 하고 있는 고민일 것입니다. 예술이 가지고 있는 질서나 이론적인 측면들이 있는데 그것을 다른 내가 하는 말들, 광기의 내가 하는 말들과 어떻게 조화를 이루게 하는가 하는 고민은 모든 글 쓰는 사람들이 다 하고 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것에 관해서 가르쳐 줄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결국은 자신이 가지고 있는 모든 시간을 거기에 다 바치는 방법 밖에는 다른 방법이 없을 것입니다. 『밤이 선생이다』의 제목 속에도 그 고민을 담고 있었습니다. 밤이라는 것은 일종의 몽상의 시간입니다. 낮은 이성의 시간이죠. 시간을 바치고 있으면 몽상과 이성이 화해를 하고, 몽상과 이성이 새롭게 관계 맺는 경험을 하게 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Q. 글로 나타내는 말들은 굉장히 깊이 있는데 정작 그 사람의 행동에서는 그런 것을 발견하지 못 할 때가 있습니다. 글과 행동과의 간극이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는지, 그리고 스스로 냉정하게 바라볼 때 선생님 자신에 대해서는 어떤 평가를 내리실 수 있는지 궁금합니다.

 

동양에서 늘 하는 말이 있습니다. ‘학행일치(學行一致)’, ‘언행일치(言行一致)’가 바로 그것인데요. 이 말들은 동양권, 특히 유교 문화권에서 많이 쓰는 것 같습니다. 에세이라고 하는 것은 대개 경험에서부터 글을 쓰기 시작해서 어떤 결론을 끄집어내는 글쓰기입니다. 제가 글에서 썼던 것도 대개는 제 경험이죠. 지어낸 이야기는 거의 없고 실제로 경험한 것에서 나온 이야기입니다. 그 글에 있어서, 저에게 언행일치를 하게 하는 책임은 크게 없습니다. 왜냐하면 처음부터 제 행동에서 글이 나온 것이니까요. 실제로는 말도 일종의 행동이죠. 결국 언행일치의 문제보다도 더 중요한 것은 말이 설득력을 갖느냐 하는 것입니다. 제가 설득력의 구조를 책 속에서 만들었다고 한다면, 제 경험을 그 설득력의 도구로 썼다고 생각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Q. 저는 시를 좋아하지 않는데, 시를 좋아할 수 있는 방법이 있는지 궁금합니다. 앞서 다른 세상을 보여주는 매개가 시가 될 수 있다고 하셨는데, 그렇다면 수필이나 소설처럼 다른 문학은 가능하지 않은지에 대해서도 여쭤보고 싶습니다.

 

우선 두 번째 질문에 대해 먼저 대답하겠습니다. 물론 다른 예술장르들도 그런 일을 합니다. 예술이 아니더라도 철학을 비롯한 여러 인문학도 그런 역할을 하고 있죠. 그런데 인문학 중에서도 문학은 좀 다른 점이 있습니다. 문학은 항상 논리에만 의지하지는 않습니다. 그런데 그 가운데에서도 시는 안 해본 일이 없습니다. 만화, 애니메이션, 영화 등 여러 첨단적인 예술장르들이 많이 있죠. 그것들이 시보다 훨씬 더 첨단에 있는 것처럼 생각되지만 사실 그렇지 않습니다. 새로운 미디어를 통해 예술장르들이 했던 매우 새롭게 보이는 실험을 시는 이미 다 했습니다. 시가 안 해본 일은 하나도 없습니다. 시가 우리에게서 멀어진 것 같은 이유도 어쩌면 온갖 난리를 치고 실험을 하느라 그런 것일 수 있습니다. 이 현실을 어떻게 하면 다른 현실로 바꿀 수 있을 것인가, 그리고 그 속에서 언어라는 도구를 어떻게 효과적으로 사용할 것인가 하는 모든 고민이 그 실험들 안에 있습니다. 다른 예술장르들은 그렇게 하지 않는다는 것이 아니라, 그 선두에 시가 서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다음으로 시를 어떻게 하면 좋아할 수 있는지에 대한 답을 하겠습니다. 시는 이 세계와 다른 세계를 연결시키려고 온갖 장난을 치고, 실험을 합니다. 여기에 동참하십시오. 그러면 시가 굉장히 친숙하게 다가올 것입니다. 그리고 어떻게 해서든 다른 세계로 건너가야겠다는 소망을 품으십시오. 그러면 시가 동지처럼 생각될 것입니다.

 

독자들과의 질의응답 시간이 끝나고, 황현산 선생은 다음과 같이 말하며 마지막 인사를 건넸다. “이 책은 사람들이 시에 대해 친근감을 갖게 하고자 만든 책입니다. 그리고 이 책에는 시를 어떻게 써먹을 것인가에 대한 이야기도 담겨 있습니다. 이 세상을 바꾸는 데에, 삶을 윤택하게 하는 데에 어떻게 하면 시를 써먹을 수 있을지 같이 의논하기 위해 엮은 것이 바로 『우물에서 하늘 보기』입니다. 아마 이 목적을 전혀 달성하지는 못했겠지만, 제가 가지고 있던 이 뜻은 이해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여러분이 갖고 있는 소망을 여기에 덧붙여주셨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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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물에서 하늘 보기황현산 저 | 삼인
이 시대의 낭만가객, 평론가 황현산이 겨울을 여는 시화詩話집을 선보였다. 『우물에서 하늘 보기』. 한국일보에서 2014년 초부터 연재했던 27편의 이야기들을 한데 모았다. 가히 ‘시 마을에서 세상 보기’라 할 만하다. 우물에서 올려다보는 하늘이 필경 좁고 편협하다면 그가 시를 통해 바라보는 세상은 넓고 여유로우며 다양하되 처연하다. 시가 꿈꾸는, 응당 꿈꾸어야 하는 세상에 대한 저자의 간절함이 편마다 읽는 이의 가슴을 건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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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ㆍ사진 | 지예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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