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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안이 필요할 때, 티라미수를 먹자

12월은 모순이다. 성(聖)스러우면서도 속(俗)되다 지치고 나의 육체가 쇠약할 때, 나는 접시에 사뿐히 올려진 티라미수를 찾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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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저트 하나에 너무 오버한다고 할 수도 있겠다. 그러나 그토록 가벼운 것이, 휘청거리는 것이 곧 세상사 아니었던가? 그러니 티라미수를 먹으며 잠시 모든 것을 망각한 채 그 치닫는 단맛에 몸을 맡겨도 좋다. 그리고 주문을 외우자.

어떤 이는 만족스럽지 못했던 시간을 반성한다. 그 반성은 일 년 중 어느 때도 가능하지만 세찬 겨울 바람에 더 깊어진다. 어떤 이는 지긋지긋한 한 해가 갔음을 축하하며 한 해의 마지막이 세상의 마지막인 것처럼 낮과 밤을 보낸다. 밤은 길고 낮은 짧으니 부끄러움은 쉽게 스러진다.

 

티라미수2.png


이처럼 반성과 방종은 같은 것을 다르게 바라보는 것이지만, 결국은 위안을 갈구한다. 그럴 때, 우리에게 위안이 필요할 때 나라면 디저트로 티라미수(tiramisu)를 고르겠다. 하고 많은 디저트 중에 티라미수인 이유는 단순하다. 이토록 직감적이고 황홀한 디저트는 드물기 때문이다. 모든 디저트가 그러해야 하지만 이탈리아가 원산지인 이 디저트는 그 어떤 디저트보다도 관능적이다.


프랑스 디저트는 섬세하고 예술적이지만 일면 너무 어려울 때가 있다. 가볍디 가벼운 수플레를 보라. 이 성스러운 디저트는 만들는 것부터 까다롭다. 엄밀한 시간과 분량, 엄격한 노동이 어우러져야 고개를 빼꼼히 내민 수플레가 나온다.


날아갈 것 같은 질감, 입안에서 순식간 녹아버리는 그 찰나에 빛나는 수플레는 찬양받아 마땅하지만 때론 저 멀리 서 있는 미녀처럼 나에게 미소 짓지 않을 것처럼 상대하기 어렵다. 티라미수는 그렇지 않다. 미소가 헤프다고 욕 먹을지언정 그 너른 품을 숨기지 않는다.


티라미수가 필요한 날은 아마 이런 날일 것이다. 눈이 내리고 바람은 차서 어깨가 턱까지 올라오는 날씨이리라. 거리에서는 캐롤이 울려 퍼지고 사람들의 표정은 행복하기만 하다. 그러나 나는 행복하지 못하다. 외롭고 외롭고 또 외롭다. 몸은 움츠러들고 휴대폰은 울리지 않는다.

 

아니다. 꼭 이럴 필요는 없다. 나는 너무나 행복하다. 내가 사랑하는 그 사람은 나를 사랑하고 나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내 곁에 있다.


비가 오든 해가 뜨든, 바람이 불든 바람이 자든, 우리는 행복해서 아니면 불행해서, 티라미슈는 필요하다. 지금 여기서 행복한 사람이라면 더 행복하게 해줄 것이고 지금 잠깐 불행한 이라면 그 불행의 무게를 조금이나마 덜 해줄 수 있는 것이 티라미수다.


티라미수는 먹는 장면만 떠올려봐도 황홀해진다. 코코아 파우더가 듬뿍 뿌려진 얇은 층을 뚫고 스푼을 쑥 들이밀면 하얀 마스카포네 치즈가 흠뻑 묻어난다. 그 질감과 향기를 음미하며 더 깊이 스푼을 밀어넣으면 에스프레소를 머금은 스폰지 케이크에 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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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요한 건 이제부터다. 이 무력한, 내 손에 운명이 달린, 이 아름답도록 애처로운 케이크 한 스푼을 입 안에 넣는 것이다. 그 순간 짜릿하다고 표현해야 할 단맛이 치솟고 곧바로 에스프레소의 강렬한 맛이 혀를 희롱한다.


당신은 눈을 감아야 할지 모른다. 생각지도 않았는데 ‘흐음’ 하는 소리도 나올 것이다.


 “Lift me up!”


나를 들어 올리라, 나를 기분 좋게 하라, 는 티라미수의 어원이 몸으로 느껴질 것이다.


말이 난 김에 월드 베스트셀링 디저트 티라미수의 기원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하다. 그 중 1960년대 이탈리아 베네토(Veneto)의 ‘르 베체에리(Le Beccherie)’라는 레스토랑에서 처음 만들었다는 설이 가장 유력하다.


티라미수라는 말이 활자매체에 등장한 것은 1980년대부터이니 역사가 그리 긴 음식은 아니다. 그러나 티라미수 곧 국제적으로 인기를 끈다. 일단 만드는 게 쉬워서다.


레시피랍시고 소개하는 것 자체가 부끄러울 정도다. 우선 레이디스 핑거(lady’s finger)라고 하는 이탈리안 스폰지 케이크를 구한다. 단단한 질감의 케이크인데 이것이 없으면 일반 스폰지 케이크도 상관없다. 단지 에스프레소를 부었을 때 조직이 부서져 내리지 않을 정도의 밀도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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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유리컵을 준비하고 밑에 이 케이크를 나란히 깐다. 티라미의 영혼인 에스프레소는 굳이 고급일 필요가 없다. 기천만 원 하는 기계로 내린 에스프레소라면 더할 나위 없지만 인스턴트 커피 믹스라도 좋다. 물론 밀크 커피니 하는 것은 안 된다. 마시면 독한 기운이 올라오는 순하고 진한 에스프레소여야 한다.


그 다음은 티라미수의 육체인 마스카포네(mascarpone) 치즈다. 크림에 산을 첨가해 만든 이 치즈는 특유의 산미가 있어서 평범한 크림보다 입맛을 더 돋운다. 여기에 설탕을 넣고 크림을 섞어 부드러운 식감을 만든다. 넛멕(nutmeg)을 갈아넣어 맛에 개성을 주기도 한다.


 이 마스카포네 치즈를 에스프레소 머금은 스폰지 케이크 위에 붓는다. 평평하게 위를 다듬고 나면 코코아 파우더를 뿌린다. 두껍게 뿌리면 오히려 먹기 불편하니 낭비하진 말자. 이걸로 티라미수 케이크는 완성이다. 여러 잔재주를 부릴 수 있지만 굳이 그렇게 힘 줄 이유 없다. 어차피 신경 쓸 일 많은 세상 아닌가.


마음대로 되는 게 없는 나날, 공허한 하루와 힘겨운 내일, 떠나간 사랑과 다시 오지 않는 사랑, 당신의 눈물과 나의 한숨, 그 사이 어디쯤에서 나의 영혼이 지치고 나의 육체가 쇠약할 때, 나는 접시에 사뿐히 올려진 티라미수를 찾는다.


디저트 하나에 너무 오버한다고 할 수도 있겠다. 그러나 그토록 가벼운 것이, 휘청거리는 것이 곧 세상사 아니었던가? 그러니 티라미수를 먹으며 잠시 모든 것을 망각한 채 그 치닫는 단맛에 몸을 맡겨도 좋다. 그리고 주문을 외우자.


“나를 들어 올리라. 나를 기분 좋게 하라. 타라미수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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셰프의 빨간 노트정동현 저 | 엑스오북스(XOBOOKS)
다큐멘터리의 카메라처럼 유럽과 호주 레스토랑의 주방 풍경과 셰프들의 뜨거운 전투를 현장감 있게 속속들이 비춰준다. 그 장면 하나하나가 눈과 귀에 쏙 들어오는 것은 셰프들의 벌거벗은 조리 과정을 비롯해 음식에 얽혀 있는 역사와 영화, 예술, 여행 이야기, 나아가 러브 스토리까지 버무려 놓기 때문이다. 군침 넘어가는 레시피와 음식에 관한 깨알 같은 상식과 에티켓까지 음미하고 나면 서양 음식 앞에서 생기는 괜한 주눅도 말끔하게 사라진다.



‘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예스24 채널예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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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정동현(셰프)

<셰프의 빨간 노트>의 저자. 신세계그룹 F&B팀에서 ‘먹고(FOOD) 마시는(BEVERAGE)’일에 몰두하고 있는 셰프. 오늘도 지구촌 핫한 먹거리를 찾아다니면서 혀를 단련 중이다. <조선일보> 주말 매거진과 페이스북을 통해 새로운 맛의 세계를 소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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