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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 기고] 중년 탐정 김상중이 말하는 ‘그것이 알고 싶다’

대한민국의 내밀한 어둠을 들여다본 지 어느덧 천 번, 대한민국의 정의를 묻다 “우리는 언제나, 그것이 알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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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시사 프로그램에서 이렇게까지 할 수 있을까? 지금까지 이렇게 강한 이야기를 해왔기 때문에 지금의 〈그것이 알고 싶다〉가 될 수 있었다. 수위에 대한 고민이 아예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굴하지 않고 하고 싶은 이야기를 다 해왔다.

『그것이 알고 싶다』는 대한민국 대표 시사 프로그램인 SBS <그것이 알고 싶다>가 포착한 다양한 아이템을 주제별로 더듬어, 한국의 지난 20여 년의 격동의 현대사를 읽어낼 수 있도록 구성한 책이다. 책에서 다루는 방영분은 약 80개이며, 성격이 비슷한 29개의 꼭지로 분류했다. 이형호 군 유괴 사건, 화성 연쇄살인 사건 등 유명한 미제 사건은 물론, 강기훈 유서 대필 조작 사건, 재야인사 장준하 의문사 등 정치적으로 민감한 사안들, 형제복지원, 세 모자 성폭행 사건 등 현재에 닿아 있는 사회적 이슈들을 다양하게 포함하고 있다. 각각의 주제 글 뒤에는 해당 분야의 전문가, 실제로 취재를 한 담당 PD 등이 해당 이슈에 관해 좀더 깊이 있게 파고들어 전문성을 높이는가 하면 당시의 생생한 숨결까지 함께 전한 원고를 실었다.


또한 역대 진행자 문성근, 정진영, 김상중을 만나 <그것이 알고 싶다> 진행 경험에 대해 나누고, 함께 <그것이 알고 싶다>가 걸어온 역사와 만들어갈 미래를 이야기한 내용을 책 안에 담았다. 현재 진행자인, ‘중년 탐정’이라는 별명으로 인기를 누리고 있는 김상중은, ‘세월호’ 관련 내용을 방송하며 마지막 멘트를 하며 눈시울을 붉힌 사연을 이야기하기도 했다. 김용언 <미스테리아> 편집장과 이현 엘릭시르 편집자가 <그것이 알고 싶다> 1000회를 맞아 김상중을 만났다. 아래 인터뷰는 『그것이 알고 싶다』 책에서도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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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방송 때는 쉽지 않았다


엘렉시르(이하 ‘엘’)_ 〈그것이 알고 싶다〉 제작진이 어떻게 처음 제안을 해왔는지 궁금하다.


김상중(이하 ‘김’)_ 실은 오래 전, 문성근 선배께서 첫 진행자로 활약하시고 물러나실 때 처음 제안을 받았다. 그 무렵 나는 SBS에서 생방송 프로그램 〈추적 사건과 사람들〉을 진행했기 때문에 잘할 수 있겠다고 생각하셨던 것 같다. 하지만 〈그것이 알고 싶다〉에서는 다양한 이슈를 다루는데, 그런 프로그램을 진행하기에는 내 연륜이 부족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당시 나는 30대였으니까. 여담으로 이야기하자면, 아무리 잘해봐야 문성근 선배의 아성을 넘을 수는 없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웃음)


시간이 꽤 흐른 후 2008년에 다시 제안을 받았고, 이 정도 나이를 먹었으면 프로그램 진행을 하는 데에 무리가 없을 거란 판단이 섰다. 그때는 당연하게, 흔쾌히 받아들였다. 2008년 3월 1일, 659회의 ‘숭례문 화재’에 대한 내용을 처음으로 진행을 시작했다. 〈추적 사건과 사람들〉의 경험 덕분에 어느 정도 내공이 쌓였던 것 같다. 이런 시사 프로그램을 하기 위해서 필요한 자세, 태도, 생각 등이 큰 도움이 되었다. 물론 그전에 〈그것이 알고 싶다〉에 대해서 공부를 안 할 수가 없었다. 이전 진행자들 스타일도 상세하게 모니터링하며 공부했다.


엘_ 안 그래도 〈추적 사건과 사람들〉의 예전 방송분을 찾아보니 대본을 손에 쥔 채 진행했어야 했더라. 시청자 입장에서 진행자가 불편하고 힘들어 보인다는 생각이 들었다.

 

김_ 방송 전에 대본을 보거나 프롬프터를 쓸 수가 없던 상황이었다. 생방송인데다 제보가 들어오면 즉각적으로 제보를 받고 추적을 해야 되는 상황이었다. 자료 화면이 나오는 동안을 이용해서 제작진이 다음 대본을 써서 건넸다. 나는 그 ‘쪽대본’을 쥐고 계속 흘끔흘끔 내려다보며 진행해야 했다. 그때는 그게 조금 용서가 됐는지도 모르겠다. 지금 보면 상당히 불편해 보일 수 있다.

 

엘_ 아무래도 생방송이다 보니 진행자로선 애가 타는 상황이었을 것 같다.

 

김_ 긴장을 많이 했고, 자료 화면이 거의 끝나가는데도 대본이 안 넘어올 땐 답답했다. 내가 나름대로 필요한 멘트들을 막 써보기도 했다. 어쨌거나 그러한 경험이 〈그것이 알고 싶다〉를 할 수 있게 되는 기본적인 바탕이 되어줬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역시 고마운 프로그램이다.

 

엘_ 〈그것이 알고 싶다〉는 시사 보도 프로그램으로선 독특하게 배우들을 진행자로 선정해왔다. 앞선 진행자로 문성근, 박상원, 정진영 배우들이 거쳐갔는데, 이전 진행자들과 어떤 차별점을 가져야 한다고 생각을 했는지, 혹은 어떤 부분은 앞선 진행자의 스타일을 그대로 따라가도 되겠다 생각했을지 궁금하다.

 

김_ 따라간다는 생각은 없었다. 나뿐만이 아니라 누구든지 자기만의 개성을 보여줄 수 있는 진행 방식을 고민할 것이다. 나도 마찬가지이다. 다만 앞선 진행자들이 워낙 프로그램을 잘 이끌어왔고 또 잘하셨다. 그분들이 해왔고 만들었던 것들에 누가 되지는 않아야겠다는 것이 첫 번째 생각이었다. 나름대로 차별화된 모습을 보여줘야 되겠단 생각도 들었다. 그분들과 나는 어차피 배우이기 때문에, 같은 배역이라도 누가 맡느냐에 따라서 인물이 전부 다르게 보인다. 각각 하나의 인물을 창조해내고 해석했던 입장에서, 나 역시 진행자로서 나만의 스타일을 보여줘야 하지 않겠는가 싶었다.


배우가 시사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데 있어서 가장 큰 장점은 시청자들을 조금 더 집중시킬 수 있다는 부분이다. 나도 진행하면서 연기를 한다. 대사의 강약을 조절하고, 말을 늘였다 줄였다 하는 템포도 신경쓴다. 사실 그래서 〈그것이 알고 싶다〉를 시작할 때 큰 부담감은 없었다. 더군다나 녹화 방송이니 더욱 부담 없었다. (웃음)

 

엘_ 〈그것이 알고 싶다〉는 카메라 앞에서 일종의 기나긴 독백을 해야 하는 진행이다. 그래서 혼자 움직일 때 타인에게 자연스러워 보이는 사소한 디테일이 더 중요해질 것이다. 예를 들면 손을 어떻게 움직일까, 혹은 여기서 일어나는 것이 나을까 등을 판단해야 할 텐데, 어떻게 구성했는지 궁금하다.

 

김_ 사전 리허설을 통해서 구성한 대로 하는 건 아니다. 어떻게 보면 모노드라마 같은 느낌을 줄 수 있겠다. 카메라 앞에서 어떻게 움직이느냐, 그리고 움직임에 어떤 디테일을 줄 것이냐는 진행자가 결정할 몫이다. 손동작을 비롯한 사소한 움직임들을 굳이 계획한 대로 의지를 가지고 내보이는 건 아니다. 대사를 읊으면서 자연스럽게 따라오는 동작일 뿐이지, 그런 것까지 계산해서 할 수는 없다. 어떻게 보면 그것 또한 배우로서의 장점이다. 무대에서 연기하면서 이리저리 이동하는 것에 훈련되어 있기 때문에 시청자들이 보기에 불편하거나 어색함이 덜할 것이다. 배우가 진행자인 〈그것이 알고 싶다〉의 큰 장점이 아닐까 싶다.

 

엘_ 시청자들이 가장 인상적인 진행으로 꼽는 모습은 ‘세월호 사건’ 방송 당시 마지막 멘트에서 내비쳤던 눈물이다. 혹은 범죄 아이템에서 범죄자들이 말도 안 되는 행동을 보여줄 때 “그런데 말입니다” 라고 말하는 순간 보일 듯 말 듯한 냉소가 얼굴에 스쳐 지나가기도 한다. 진행자가 감정을 내비칠 때 시청자들은 그 감정에 깊이 공감하게 된다. 감정을 노출하는 데에 제작진들과의 조율이 있나

 

김_ 제작진과 감정선까지 조율하지는 않는다. 무대에서 진행하는 것만큼은 내가 해야 할 몫이다. 제작진들이 피와 땀을 쏟으며 취재해온 것들을 편집해서 방송을 준비하면, 내 몫은 그 내용을 스튜디오에서 온전하게 전달하는 일이다. 제작진들이 레시피를 짜오면, 그걸 잘 요리해서 맛있는 내용으로 전해주는 것. 다만 항상 〈그것이 알고 싶다〉의 최초의 시청자이기 때문에, 내가 어렵다고 생각하거나 잘 이해가 안 가거나 한 번에 받아들여지지 않으면 제작진에 수정 제안을 한다. 내가 어렵다고 느낀다면 시청자도 그럴 거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시청자들에게 방송 내용을 잘 전달하기 위해서, 어렵지 않은 말로 쉽게 이야기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방송에서 어려운 말을 쓰는 일은 자제하고 있다. 진행자이기 때문에 중립을 지켜야 하는 것이 맞다. 하나 때때로 나도 시청자와 같은 감정을 가질 때가 있다. 내용에 따라 화도 나고 슬퍼진다.


감정을 어느 정도 조절하면서 진행을 하는 편이지만 세월호 방송 때는 쉽지 않았다. 녹화에 들어가기 전, 대본을 읽기만 하는데도 가슴이 꽉 막히는 느낌이 들었다. 아, 이건 안 되겠구나, 싶었다. 담당인 배정훈 PD에게 “이 부분에서 감정이 좀 걸린다. 진행을 하다가 감정 조절이 안 될 수도 있다. 만약에 그렇게 된다면 편집해서 그 부분은 자르든가, 아니면 그냥 가야겠다”고 이야기했다. 역시 아니나 다를까 대본을 보면서 북받쳤던 부분에서, 진행을 하던 도중 또다시 울컥해버렸다. 진행자로서 중립을 지키지 못했던 모습을 어쩌다 보여드리게 된 그 부분에서 시청자들이 많은 공감을 해주신 것 같다.


그 외에 필리핀 납치 살인 사건 방송분에 내 의견이 반영되었던 것이 기억이 난다. 피의자들은 안양 환전소에서도 살인을 저질렀던 죄질이 나쁜 친구들, 아니 나쁜 놈들이다. 그런 놈들이 필리핀에 가서 한국 여행객들을 납치하고 고문하고 죽이기까지 했다. 시신은 자신들의 거주지 바닥에 묻고, 가족들에게 연락해서 피해자들이 아직 살아 있는 것처럼 말하며 돈을 요구했다. 사람이 아니라 악마라고 표현해도 되겠다. 방송에서는 범인들의 얼굴을 모자이크할 수밖에 없다. 그렇지만 나는 이들의 인권을 고려해주는 게 용납되지 않았다. 그래서 제작진에게 제안했다.


“최소한의 예의만 지켜서 모자이크를 해주되, 모자이크를 해도 누구인지 알아볼 수 있도록, 실눈 떠서 보면 누구인지 보이도록 살짝 하자.”


방송이 나가고 피의자의 인권에 대한 문제 제기가 올라올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지만, 그런 이야기는 전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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맥락 없이 악하기만 한 역할은 하지 않는다


엘_ 매회 방송마다 모습이 달라진다. 안경을 쓰고 진행할 때도 있고, 앞머리를 내리거나 올리는 등의 변화가 있다. 방송 내용에 따라 이런 분장이라든가 목소리 톤이라든가 제스처나 억양 등이 달라지는 건가.

 

김_ 하나의 프로그램을 같은 사람이 너무 오래 시간 진행하면 정형화되지 않을까 우려스럽다. 늘 같은 모습, 같은 목소리 톤, 비슷한 의상으로 진행을 하다 보니 도식화된 모습으로 시청자들이 볼 것 같다. 그래서 〈그것이 알고 싶다〉 1000회 기자 간담회 때도 “지금도 〈그것이 알고 싶다〉는 계속 진화하고 있다”는 표현을 썼다. 프로그램과 마찬가지로 저 역시 계속 진화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날그날 방송 아이템의 성격에 따라서 의상도 바꾸고 목소리 톤도 바꾸곤 한다. 무거운 아이템을 진행할 때는 검은 의상, 좀더 가벼운 내용을 진행할 때는 밝은 의상을 선택한다. 또한 사건 현장으로 나가서 진행하는 것을 선호한다. 그러면 화면이 좀더 생생해지고 시청자들의 집중도도 높일 수 있다. 변신할 수 있다는 건 연기자의 장점이다. 역할에 따라서 머리도 바꾸고, 안경도 껴보고, 의상도 바꿔 입을 수 있다. 늘 이렇게 변화하는 모습을 보여드리고 싶다.

 

엘_ 최근 들어 야외 촬영 비중이 상당히 커졌다. 가장 인상적이었던 것 중 하나가 800회 특집이었던 화성 연쇄살인 사건 편이다. 사건의 재구성 화면에서 당신이 범인이 걸었을 법한 길을 걷고 범인이 이용했던 버스를 같이 타는 등의 적극적인 개입이 흥미로웠다.

 

김_ 진화하고 있는 PD들의 모습 중 하나이다. 예전에는 사건을 단순하게 재연해서 보여주기만 했는데 이제는 재연도 상당히 드라마틱해졌다. 지금의 제작진들은 미국의 수사 드라마 등을 참고하며 어떻게 컷을 잡을 것인지, 미국 드라마에 익숙한 요즘의 시청자들을 어떻게 잡을 수 있을지를 고민한다. 시청자들은 〈그것이 알고 싶다〉를 보면서 “미드를 보는 것 같다”, “미드보다 더 재미있다”고 이야기한다. 이런 이야기가 나올 수밖에 없다. 제작진은 방송 구성을 촘촘하게 하기 위해서, 디테일을 살리기 위해서 정말 다각도로 노력한다. 탐정이 수사를 하듯이 ‘내가 범인이라면 여기서 이렇게 했을 것이다’ 하고 추리하고 취재해서 보여준다. 시청자들은 자연히 연출자의 방향을 따라가며 함께 추리한다.

 

엘_ 야외에서 세트장을 꾸며서 찍을 때도 있지만 한밤에 저수지 근처에서 촬영을 한다든지 한겨울에 시골 억새풀 숲에서 촬영하기도 했다. 뉴스 기자들이 생방송 리포팅을 하는 것처럼 진행해야 하는데, 야외 촬영의 어려움은 어떤가.

 

김_ 당연히 어렵고 힘들다. 스튜디오에서 할 때는 프롬프터에 흐르는 대사를 보면서 읽을 수 있는데 야외로 나가면 대본의 많은 분량을 외워야 한다. 진행의 흐름 때문에 NG를 많이 낼 수도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야기 전달력과 집중도를 위해서 기꺼이 야외로 나가자고 제안한다. 물리적으로는 힘들지만, 그 외에는 힘들지 않다.


처음 진행하게 됐을 때 제작진에게 당부했던 점은 〈그것이 알고 싶다〉 앞에 내 이름을 넣지 말아달라는 것이었다. 왜냐면 이 프로그램은 SBS의 〈그것이 알고 싶다〉지, ‘김상중의 〈그것이 알고 싶다〉’가 아니기 때문이다. 적어도 내 이름을 붙이려면 내가 기획, 아이템 선정, 취재부터 일정 부분 참여했어야 한다. 그렇게 한다면 내 이름을 붙여도 부끄럽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제작진들이 가지고 온 레시피를 보고 요리를 하는 역할에 불과하다. 그래서 몸이 힘들어도 야외에 나가서 진행을 하자는 주의다. 그것이 시청자들로 하여금 생생하고 긴장감 있게 내용이 전달되는 좋은 방법이니까. 앞으로도 야외 촬영이 필요하면 계속 나갈 생각이다. 

 

엘_ 매주 같은 날 정해진 시간에 녹화와 녹음을 마쳐야 한다는 것이 배우에게는 제약일 수 있다. 매주 금요일에는 다른 일정을 잡을 수 없다는 점 때문에 곤란한 건 없었나.

 

김_ 금요일에는 다른 일을 전혀 할 수 없다. 드라마든 어떤 다른 방송을 하든 나는 금요일을 무조건 양보 받는다. 다른 분들도 다 아신다. 드라마 제작진들이 ‘저 사람은 금요일에는 〈그것이 알고 싶다〉 촬영이 있기 때문에 다른 일은 못 한다’고 이해해준다. 물론 4박 5일이 넘는 여행도 가지 못한다. (웃음)지금까지 시사 프로그램 〈그것이 알고 싶다〉를 진행하면서 지식인의 이미지를 얻었다. 나름대로 보람도 느끼고 의무감도 느낀다. 배우이지만 배우로서는 할 수 없는 이야기를 〈그것이 알고 싶다〉를 통해서 하고 있다. 금요일을 활용하지 못하는 일정의 한계는 아쉽지만 내가 희생하고 감수해야 할 부분이다. 이런 점 때문에 연기를 할 때 배역 선정에서 폭이 좁은 건 사실이다. 〈그것이 알고 싶다〉 진행에 걸림돌이 될 것 같으면 그 배역을 선택하지 않는다. 그러나 〈그것이 알고 싶다〉에 애정을 가지고 있고, 프로그램의 진행자로서 많은 것을 얻고 있기 때문에 불편하다고 여기지 않는다.

 

엘_ ‘중년 탐정’이라는 별명도 생겼는데 연기자로서 이런 고정된 이미지가 부담스럽지는 않은가.

  

김_ 배우 김상중 하면 〈징비록〉의 류성룡, 〈개과천선〉의 차영우 변호사, 아니면 〈추적자〉의 대통령 후보 강동윤보다 〈그것이 알고 싶다〉가 먼저 떠오른다. 그리고 “그런데 말입니다”도. 그게 나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감사하게도 드라마 제안도 많이 들어온다.

 

엘_ 진행자의 이미지 훼손을 꺼린다고 했는데 그럼에도 그동안 맡은 역의 폭이 넓다. 악역을 맡는 것도 그리 꺼리지 않는 것 같다.

 

김_ 악역을 맡더라도 맥락 없이 악하기만 한 역할은 하지 않는다. 〈추적자〉에서도 강동윤이라는 인물은 일개 형사의 딸을 살해한 범죄와 연관이 있는 사람이지만 나름의 진정성이 있다. 악역이라고 해도 단순히 나쁜 사람이 아니라 악하게 된 과정을 납득할 수 있기에 거기서 이야기를 끄집어낼 수 있는 인물이 있다. 〈나쁜 녀석들〉의 오구탁처럼 딸을 잃고 복수의 칼날을 세우는 인물도 그렇다. 그런 역할들은 〈그것이 알고 싶다〉를 진행하는 데에 크게 어긋나지 않는다고 여긴다.

 

엘_ 배우들은 고통스러운 역할을 맡으면 거기서 빠져 나오기 위해 노력을 많이 기울인다고, 매일매일 촬영이 끝나고 집에 돌아와서도 역할과 자신을 분리해야 한다고 들었다. 당신은 〈그것이 알고 싶다〉에서 매주마다 너무나 괴로운 이야기를 날것으로 가장 먼저 보고, 그런 괴로운 이야기를 시청자들에게 전달까지 해야 한다. 어떻게 극복하는지 궁금하다.

 

김_ 방송이 끝나면 바로 잊어버리는 편이다. 방송 후에도 계속 떠올리면서 도대체 이걸 어떻게 해야 할까, 정의를 위해서는 어떻게 하는 것이 좋을까 고민하지 않는다. 나는 드라마가 끝나도 빠져나오는 과정 없이 바로 잊고 지워버린다. 머릿속에 다 담아두고 있는다면 끝날 때마다 정신과에 가서 상담받아야겠지. 어떤 드라마를 하더라도 역시 빨리 잊어버린다. 끝남과 동시에 시작이기 때문이다. 내 일이 계속 과거의 무엇에 구애받아서는 안 된다. 그러다 보니 〈그것이 알고 싶다〉에 대해서도 한 주제가 끝나면 바로 잊고 새로운 것을 곧바로 시작한다.

 

엘_ 다행이다. 가끔 볼 때마다 제작진과 진행자가 괜찮을까 걱정스러울 때가 있다.

 

김_ 제작 PD들은 나가서 피의자와 피해자를 모두 만나고 관계자들을 찾아내 취재한다. 그 와중에 예상하지 못한 일들도 겪고, 쫓고, 쫓아가야 하니 그들이 더 힘들겠지.

 

엘_ 다른 시사 프로그램이나 비슷한 역할이 나오는 영화 등을 참고하는 경우도 있나.

 

김_ 다른 시사 프로그램들을 볼 때는 어떤 아이템을 어떻게 풀어가는지를 본다. 〈그것이 알고 싶다〉에서 다루지 않은 사건들을 이렇게 풀어가는구나, 하는 부분을 중점적으로 본다. 진행자가 어떻게 하는지를 의식하며 보진 않는다. 가끔 내 ‘짝퉁’ 같다는 느낌이 올 때도 있지만. (웃음)

 

엘_ ‘중년 탐정’이라는 별명답게, 혹시 탐정이나 형사가 등장하는 미스터리 소설도 읽는지 알고 싶다. (웃음)

 

김_ 소설은 가끔 읽고 주로 에세이, 인문학 서적을 많이 읽는다. 탐정이라는 별명을 지어주신 것은 감사하게 생각한다. 그런 것 역시 〈그것이 알고 싶다〉를 통해서 얻을 수 있는 이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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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른 생활을 하게 되었다


엘_ 8년 전 〈그것이 알고 싶다〉를 처음 시작할 때와는 시청자와 제작진 모두 크게 달라졌다. 또한 〈그것이 알고 싶다〉에 대한 인식과 김상중이라는 진행자에 대한 인식도 달라졌다. 진행자에 대한 시청자들의 열띤 반응이 오기 시작한 것을 체감한 순간이 혹시 기억나는가.

 

김_ 기억이 잘 안 난다. 어느 순간 정신을 차려보니 〈그것이 알고 싶다〉가 하나의 브랜드가 되어 브랜드 파워를 발휘하고, 열성 팬들이 방송 내용을 두고 갑론을박을 벌이고 있었다. 시사 프로그램에서도 사람들이 이렇게 재미를 발견해서 딱딱하게 보지 않고 열띤 응원도 보낼 수 있음을 알았다. 내가 진행자로서 역할을 무사히 수행하고 있다는 의미도 있겠지만, 역시 현장에서 발로 뛰는 PD들의 열정이 계속 진화해가면서 시청자들의 눈을 사로잡게 된 게 가장 큰 이유가 아닐까 싶다.

 

엘_ 특별히 기억에 많이 남는 회차가 있다면 무엇인가.

 

김_ 〈그것이 알고 싶다〉 350여 회를 진행하면서, 비슷한 말을 참 여러 번 반복했다. “정부와 관계 당국에 촉구합니다”를 비롯, “○○를 해야 합니다”라고 거듭 당부했다. 그 문장을 지난 8년 동안 계속 반복했다는, 그리고 앞으로도 계속 반복해야 할 것 같은 슬픈 예감이 들어 허무하다. 〈그것이 알고 싶다〉를 통해 물론 많은 사회 이슈들이 공론화되고 법제화되어 바뀌기도 했다. 알려야 할 것을 알렸고, 잡아야 할 사람을 잡았을 때도 있었다. 하지만 같은 이야기를 반복해야 한다는 비애감이 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열릴 때까지 두드리자는 것이 〈그것이 알고 싶다〉의 취지이다.한일 관계, 범인을 잡지 못한 살인 사건, 세월호같이 하나의 사건 사고이긴 하지만 뜯어보면 우리 사회의 총체적인 문제를 담고 있는 사건들 모두가 기억에 남는다. 하나하나 다 소중한 아이템들이다.

 

엘_ 〈그것이 알고 싶다〉를 가장 처음 보는 시청자로서 ‘어, 오늘 재미있겠는데’라는 생각이 들거나 개인적으로 매력을 느끼는 분야가 있나

 

김_ 이 프로그램은 우리 사회의 모든 내밀한 부분을 아우를 수 있는 총체적인 이야기를 하기 때문에 때문에 특정 아이템을 선호하기보다는, 시청자들이 아이템들을 재미로 분류해서 편식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예를 들어 매니아들이 방송을 보고 가장 이야기를 많이 나누는 때는 미제 사건으로 남은 미스터리한 살인 사건이나 풀지 못한 수수께끼 등이다. 확실히 의문의 범죄 사건이 화제성이 높다. 그런 내용을 진행하게 되면 ‘시청률이 잘 나오겠다’는 생각을 하는데, 결과적으로도 그 예측이 종종 맞는다.


하지만 재미없을 것 같은 소재에도 시청자들이 관심을 좀 가져주고 갑론을박을 해줬으면 하고 바란다. 예를 들어 한일 관계에 대해서라면 위안부, 역사관, 일본 우익들이 한국을 보는 시선, 일본에 가 있는 우리나라의 문화재 등을 이야기할 수 있을 것이다. 예전에 독도에 대해서 2부작 특집으로 방영했었는데, 시청률도 낮고 관심도 받지 못했다. ‘참 괜찮은 주제를 다뤘다’고 호평을 받을 수 있지만, 호평으로 끝나는 것이 문제다. 더 많은 관심을 가져주고 사람들 사이에서 회자가 되어야지만 폭넓은 이야기를 다룰 수 있을 텐데 아무래도 방송 프로그램이다 보니 시청률을 무시할 수가 없다. 시청률이 있어야지만 사람들이 관심을 갖고 보게 되고, 시청률이 있기 때문에 〈그것이 알고 싶다〉가 계속 진화하는 것이니까. 여기서 더 발전을 하려면 편향된 이야기에만 관심을 가지지 않고 다양한 이야기를 해야 한다.


엘_ 〈그것이 알고 싶다〉 진행한 후 개인적 삶에 변화가 있었나.

 

김_ 바른 생활을 하게 되었다. 진실을 이야기하려는 사람이 바르지 못하면 어떻게 바른 이야기를 할 수 있겠는가.

 

엘_ 사소한 규칙, 예를 들어 운전할 때 규정 속도를 매번 지킬지, 주황색 신호에 엑셀을 밟을지 브레이크를 밟을지 이런 것들에도 주의하는 편인가? (웃음)

 

김_ 갈등이 될 때가 있다. 〈그것이 알고 싶다〉 진행자를 하면서 혜택을 받을 때가 있는데, 방송 일을 할 때 내가 직접 운전하지는 않지만 타고 다니는 차가 교통법규를 완벽하게 지키지는 않는 경우가 있다. 신호 위반을 할 수도 있고 차선 위반을 할 수도 있다. 그러다가 경찰에 잡히면 그분들이 이해를 해준다. “아유, 바쁘셨나 봅니다. 가시죠” 하면서. 식당을 가더라도 알아보고 좋아해주시고 더 잘 대해주신다. 연예인을 두고 공인이라는 사람들도 있지만 엄밀히 얘기하면 공인보다 유명인에 가깝다고 생각한다. 대중의 많은 관심을 받고 많은 혜택을 누릴 수 있다. 그러니까 지켜보는 분들에게 실망을 주는 행동을 해서는 안 된다. 특히나 내가 시사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으니 더더욱 유의한다. 전에는 바르게 살지 않았다는 건 아니지만 지금은 더더욱 바르게 살려고 노력한다.

 

엘_ 문성근 배우는 〈그것이 알고 싶다〉를 진행할 때 강남의 고액 과외 관련 방송 준비 과정에서 돈이 들어 있는 케이크 상자가 배송됐다는 추억을 들려주었다. 혹시 비슷한 일은 없었나.

 

김_ 나한테 뇌물이 들어오는 경우는 없었다. 1000회 특집 같은 경우, ‘대한민국에 정의를 묻다’라는 주제가 소위 사회 지도층이라고 일컬어지는 이들에 관한 이야기였다. 많은 관심을 받은 만큼 굉장히 예민할수 있는 내용이었다. 그래서 혹시 신변에 위험이 있지 않나, 하고 걱정해주시는 분들이 많다. 그런 일은 없었다. 돈 봉투가 전달된다든가, 간접적으로 위협을 받는다든가 하는 일은 전혀 없었고, 잘 봤다며 팬이라고 부산에서 어묵 세트를 보내주신 적은 있다. (웃음)


음, 주변 사람들을 통해서 ‘이런 것 좀 취재해달라’는 요청이 들어오긴 했다. 그런데 개인적인 문제들이기 때문에 들어줄 수는 없었다.

 

엘_ 1000회 특집 3부작을 보며 이야기가 너무 강해서 놀랐다. 정말 고생이 많다.

 

김_ 그런 것이 〈그것이 알고 싶다〉의 고유한 특성이다. 다른 시사 프로그램에서 이렇게까지 할 수 있을까? 지금까지 이렇게 강한 이야기를 해왔기 때문에 지금의 〈그것이 알고 싶다〉가 될 수 있었다. 수위에 대한 고민이 아예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굴하지 않고 하고 싶은 이야기를 다 해왔다. ‘사모님의 이상한 외출?여대생 청부 살인 사건’에 대해서 MBC의 〈시사매거진〉에서 먼저 다루었었다. 그렇지만 〈그것이 알고 싶다〉에서 방송한 것과는 방향이 달랐다. 〈그것이 알고 싶다〉에서 방송한 이후 전 국민의 공분이 일어나 결국 형 집행정지 제도에 문제를 제기하는 성과도 이루었다.

 

엘_ 〈그것이 알고 싶다〉가 이 사회에서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는가.

 

김_ 〈그것이 알고 싶다〉가 무슨 의미를 가지고 있다고 거창하게 얘기하고 싶지는 않다. 〈그것이 알고 싶다〉가 20년 동안 방송을 하면서 쌓아온 것이 〈그것이 알고 싶다〉의 의미이지, 그 이상의 무언가를 부여하고 싶지는 않다. 지금껏 해왔듯이, 시청자가 느끼는 것이 〈그것이 알고 싶다〉의 본질이라고 생각한다. 이 프로가 국민 신문고라느니, 대한민국 방송 중의 유일한 양심이라느니 이야기할 수는 없다. 〈그것이 알고 싶다〉도 사람이 만들고 있기 때문에 시행착오를 겪을 때가 있다. 사실이 아닌 걸 사실이라고 착각하고 잘못 내보낼 때도 있었다. 그럴 때는 당연히 우리도 채찍질을 받아야 한다.

 

엘_ 시청자와 책의 독자들에게 한마디 부탁드린다.

 

김_ 1000회까지 오기 위해 많은 PD, 작가, 그리고 수많은 제작진이 수고해줬다. 시청자도 함께 참여하고, 비판할 일에 있어서는 비판하고, 잘한 일에는 칭찬해주셨다. 〈그것이 알고 싶다〉는 시청자와 함께 만들어왔다. 너무 재미있는 아이템만 보려고 하지 말고 사회 전반의 모든 것들을 이야기할 수 있도록 관심을 부탁드린다. 앞으로 2000회까지 가려면 제작진의 노고도 있어야겠지만 시청자들도 함께 힘을 내주어야 한다. 좀더 알고 싶은 것, 미처 듣지 못한 것은 1000회를 기념하며 나온 이 책을 통해 느껴달라. 〈그것이 알고 싶다〉가 한 방송국의 대표 시사 프로그램이 아니라 우리 국민 모두에게 진실을 알릴 수 있는 프로그램으로 자리매김하길 바란다. 그것은 우리 모두가 함께 해야 할 몫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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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이 알고 싶다 SBS [그것이 알고 싶다] 제작진 저 | 엘릭시르
단행본 [그것이 알고 싶다]는 이 프로그램의 탐구적 자세와 범죄 추적에 관한 다각도의 시각과 밀도 있는 진행을 사랑하고 열광하는 2000년대 중후반부터 새롭게 유입된 젊은 시청자들에게, 프로그램의 역사와 의의를 프로그램 자체만큼이나 흥미진진하게 펼쳐줄 수 있는 입문서의 역할을 하고자 기획되었다. 1000회 방송 목록 중 대중적 화제를 고려하여 편집부가 제안한 목록과, [그것이 알고 싶다] PD들이 꼭 들어갔으면 하고 바랐던 목록을 결합하여 28개의 주제를 선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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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김용언(<미스테리아> 편집장), 이현(엘릭시르 편집자)

그것이 알고 싶다

<SBS [그것이 알고 싶다] 제작진> 저18,810원(5% + 2%)

대한민국의 내밀한 어둠을 들여다본 지 어느덧 천 번, 대한민국의 정의를 묻다 “우리는 언제나, 그것이 알고 싶다” 대한민국은 ‘야만적’이었다. 폭력과 불법이 개인뿐 아니라 국가 차원에서도 아무렇지 않게 저질러졌고, ‘어쩔 수 없이 덮고 넘어갈 수밖에’라는 변명이 태연하게 통용되었다. 지금은 시대가, 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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