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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 김경주, 긴장과 대극(對極)을 창조하는 연출가

김도언의 시인의 얼굴 열한 번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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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력이라는 게 오염되고 불순해지기 쉬운 거니까요. 그리고 무엇보다 재미가 없는 거예요. 설렘이 없고. 바깥을 보면, 너무나도 나를 시적으로 떨리게 하는 게 많은데, 굳이 내가 저기에 가서 헤게모니에 취해 있을 이유가 있느냐 하는 생각이 컸죠. 하지만 시와 문학이 가지고 있는 권위가 중요하다는 생각은 해요. 권위라는 건 권력이나 어떤 시스템 자체를 바꿀 수 있는 설계를 할 수 있으니까요.

외계(外界) / 김경주

 

양팔이 없이 태어난 그는 바람만을 그리는 화가(畵家)였다
입에 붓을 물고 아무도 모르는 바람들을
그는 종이에 그려 넣었다
사람들은 그가 그린 그림의 형체를 알아볼 수 없었다
그러나 그의 붓은 아이의 부드러운 숨소리를 내며
아주 먼 곳까지 흘러갔다 오곤 했다
그림이 되지 않으면
절벽으로 기어올라가 그는 몇 달씩 입을 벌렸다
누구도 발견하지 못한 색(色) 하나를 찾기 위해
눈 속 깊은 곳으로 어두운 화산을 내려보내곤 하였다
그는, 자궁 안에 두고 온
자신의 두 손을 그리고 있었던 것이다
- 시집 『나는 이 세상에 없는 계절이다』 수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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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분히 소비된 시인의 영혼을 찾아서

 

내가 처음으로 그에 대한 풍문을 들은 것은 2004년 즈음이었던 것 같다. 문학에 관심이 많은 지인으로부터 김경주라는 시인이 등단(2003년)을 했는데 시도 좋지만 외모가 연예인 뺨치게 잘생겼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나는 시인이 시만 잘 쓰면 되지 외모가 뭐가 중요하냐고 시큰둥하게 한 마디 던지곤 곧 그의 이름을 잊었다.

 

그런데 김경주라는 이름이 다시 내게 뚜렷하게 각인된 것은 2005년쯤 내가 무한 신뢰하는 시인 김정환 선생님의 입에서 그의 이름이 나오는 걸 듣고부터였다. 걱정스러울 정도로 천부적인 재능을 가진 젊은 시인이 있는데 그가 김경주라는 것이었다. 선생님은 대산문화재단 창작기금 심사에 나섰다가 거기 응모된 김경주 시를 일별할 기회를 가졌다고 했다. 김경주는 그해 창작기금 수혜자로 뽑혔고, 이듬해인 2006년 문제적 첫 시집 『나는 이 세상에 없는 계절이다』를 상재하게 된다.

 

시집이 나온 이후 세상이 이 시집에 보인 반응은 가히 폭발적이었다. 평단과 독자들이 한 목소리로 젊은 시인이 보여준 혁신적인 문법과 목소리에 열광했다. 기형도 시집 『입속의 검은 잎』 이후, 시인의 처녀 시집이 보여준 가장 놀라운 현상이었다.  

 

문예중앙 시인선으로 출간된 초판본이 출판사의 사정으로 절판되기까지 약 2만 부 가량이 팔린 이 시집은 이례적으로 2012년 문지에서 재발간된다.(초판본, 재발행본 합쳐 40쇄 인쇄) 문지는 이 시집의 가치를 역산하면서 이렇게 썼다.

 

“이것은 기형(畸形)에 관한 얘기다.’라는 저자의 말처럼 연극과 미술과 영화의 문법을 넘나드는 다매체적 문법과 탈문법적인 언어의 범람, 낭만적 감수성의 극한에서 그것이 어떻게 폭발하고 다른 차원으로 넘어가는 지를 극적으로 보여주는 시편들로 구성되어 있다. 다른 시간, 삶의 다른 계기, 삶의 다른 기미를 읽는 저자의 눈을 따라가며 시는 불가능성에 대한 추구, 즉 쓸 수 없는 것을 쓰는 것이라는 것, 시는 결국 부재하는 언어에 대한 언어라는 것 등의 저자 시의 중요한 출발점을 엿볼 수 있다.”

 

자존심 강하기로 소문난 문지가 다른 출판사에서 먼저 나왔던 문제적 시집을 복간하는 ‘R시리즈’를 발행하기 시작한 것은, 시의적 맥락에 갇혀 있기 쉬운 문학사의 균형과 복원을 생각할 때 퍽 의미 있는 일이다. 더욱이 김경주의 경우, 문지로부터 첫 시집을 거절당한 소이연을 갖고 있음을 생각하면 이것은 극적인 사건이기도 하다.

 

첫 시집이 나오고 10년 가까이 지난 지금에서야 말할 수 있는 것이지만, 김경주는 너무나 지나치게 그리고 가혹하게 소비된 측면이 있다. 그는 권혁웅을 위시한 의욕적인 비평가들에 의해 2000년대 젊은 한국 시단의 상징적인 아이콘으로 부상했고 그 역할을 자의반타의반 성실하게 받아들였다. 일부 언론과 매체는 그를 중심으로 하는 이례적인 시의 부흥을 호들갑스러운 특집으로 다루면서 그를 연예인처럼 취급하기 시작했다. 수려한 외모, 저주받을 만큼의 천재적인 재능은 그때부터 그를 따라다니는 심드렁한 클리셰였다. 하지만 그러는 동안 역설적이게도 김경주는 자신의 텍스트가 섬세하고 정밀하게 읽힐 기회를 빼앗기게 되었다. 그의 이름은 어느 순간 은밀한 고유명사에서 읽지 않고도 읽었다고 말할 수 있는 상투적인 대명사가 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실제로 전국의 예술고등학교와 대학교 문창과에서 그의 텍스트는 교본처럼 사용된다. 시를 공부하는 많은 학생과 시인 지망생들이 그의 시를 학습하고 그의 목소리를 흉내내는 것이다. 일찍이 모든 것에 시적인 것이 깃들어 있음을 간파하고 그것을 자신의 시론으로 삼았던 김경주 입장에서(그는 어떤 인터뷰에서 “시적인 것은 따로 없”으며 “다른 어떤 것에도 시적인 것이 담길 수 있”고, 심지어는 “시라고 생각하는 것에서 벗어나는 순간에도 시적인 것이 있을 수 있다”고 말한 적이 있다.) 자신의 시가 ‘한정적이고 억압적인’ 교본으로 소비되는 것은 결코 환영할 만한 일이 아니다.

 

그를 인터뷰하고 싶다는 생각을 하면서 내가 가장 염두에 두었던 것은, 이미 충분히 소비된 시인의 영혼, 그 영혼의 음화를 이해하는 일이었다. 그가 아무도 몰래 갈망하는 ‘소외’의 표정을 정확하게 담아내는 것이었다. 그를 만나기 하루 전 날, 김경주는 뉴욕에서 서울로 돌아왔다. 그러니까 그에겐 아직 미국 동부와 극동아시아의 까마득한 시차가 남아 있었다는 것. 나는 그것이 어떤 행운처럼 느껴졌다. 왜냐하면, 그는 시차(時差)를 통해 시적인 것을 빨아들이는 시인으로 알려졌으니까.    

 

그를 만난 곳은 그의 단골인 상수동의 이리카페. 그가 하루가 멀다 하고 찾는 곳이다. 그는 카페 한 구석에서 마음껏 해찰하며 그의 친구들과 함께 재미있는 작업들을 궁리하고 기획한다. 인터뷰를 하기로 한 시간에 맞춰 가보니 그는 진즉부터 와 있었던 행색으로 카페 발코니에 나와 지인과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뉴욕에는 무슨 일로 갔던 것인지, 근황부터 묻고 싶었다.


(* 인터뷰이가 개인적으로 말을 놓고 지내는 문단 후배이고, 현장의 사실감을 살리기 위해 경어체로 바꾸지 않았음을 알려둡니다.)

 

김도언 : 뉴욕에 다녀왔다고 들었는데, 무슨 일로 다녀온 거니?

 

김경주 : 제가 연극에 관심이 많잖아요. 꾸준히 극작을 해왔고 공연도 계속 해오고 있어요. 그런데 서울시극단에서 공연했던 제 희곡 <나비잠>이 영어로 번역되어 책도 나올 예정이고 내년에 공연도 하는데, 이번에 쇼케이스가 있어서 초대 받아 다녀온 거예요.

 

김도언 : 너에게 연극이 뭐지? 어떤 사람들은 시가 아닌 것에 관심을 갖는 널 좀 부정적으로 보기도 하는 것 같던데. 외도를 한다는 얘기도 있고.(웃음) 혹시 너에게 시적인 것이 곧 극적인 것을 뜻하기도 하니?

 

김경주 : 네, 그런 셈이죠. 언젠가부터 사멸해버린 듯한 시극들이 우리 모국어의 속살로 부활할 수 있다는 생각을 해왔어요. 현대시가 사실은 가독성의 문제로부터 자유롭지 않잖아요. 점점 읽기가 어려워졌다는 거죠. 제도권 교육에서 시를 체감하는 방식이 의미 중심이다보니까 소리내서 읽는 방식이라거나 시를 읽었을 때 라임의 전달방식, 사운드 메타포라는 것이 거의 눈으로 답을 찾는 방식으로 이루어지잖아요. 2000년대 초반에 낭독회를 했던 것도 그런 것 때문에 시작한 거였는데, 그런 것들을 통해서 내가 쓰는 언어들을 꾸준히 중얼거리고 소리내서 읽어보는 작업들을 해봤는데 그것이 극성에 닿으면 포에틱해지는 지점이 있었거든요. 제가 하려던 것은 그것의 접점을 찾아보자는 거였죠.

 

시와 극 둘 다의 고유성을 찾는 방식이기도 하고 동시에 우리 문학이 소리를 회복해야한다고 생각하는 점이 있어요. 외국은 몇 백년 된 낭독회 같은 게 동네마다 존재하고 있잖아요. 그런데 이게 다시 말하면 문학이 소리로서 존재를 하고 있다는 거거든요. 우리처럼 문학을 해독하고 그걸 자기 삶의 구체적인 부분에 닿게 하는 방식도 중요한 기능이지만, 발화해서 소리를 회복하는 게 중요하다는 생각을 했어요. 그래서 뉴욕까지 갔다 온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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늦게 쓰기 시작한 시

 

사실, 등단 전까지의 김경주의 필력이 의외로 길지 않음을 알고는 놀라는 사람들이 제법 있다. 김경주는 소위 말하는 ‘문학소년’이나 ‘문청’의 시절을 겪지 않았다. 중학교에 진학할 때까지 훈련이 엄격하고 고된 기계체조를 했던 그는 체육관 반대편에서 연습하는 발레리노들에게 열패감을 느꼈을 만큼 감수성이 예민했으나 그가 관심을 가졌던 것은 만화와 애니메이션 같은 것이었다. 그는 스스럼없이 자신을 20대 초반까지 만화가를 꿈꾸며 ‘만화방을 어슬렁거리던 녀석’이라고 칭하기도 했다. 그러다가 대학 연극반에 들어가서야 문학을 만났다고. 그곳에서 대본을 쓰고, 쓴 대본을 고쳐 쓰면서 문장 수련을 했다는 것이다. 그리고 유별난 선배들이 연극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시를 알아야 한다면서 후배들에게 시집을 볼 것을 권유했다는 것이다. 
  
김도언 : 시를 비교적 늦게 쓰기 시작했다고 들었는데.

 

김경주 : 네 스물다섯부터였던 것 같아요. 저는 연극하시는 선배들로부터 시를 처음 접했거든요. 그 당시만 하더라도 지방 극단생활을 할 때, 연극하는 선배님들 주머니에 시집이 항상 들어 있었어요. 그때 연극하시던 분들이 지금 대부분 대학로에서 연극하시는 분들이고 시인이 되신 분도 있는데, 늘상 연극을 하기 위해서는 시를 읽어야 한다는 이야길 듣고 또 그렇게 생각을 해 와서 자연스럽게 시와 연극에 대한 관심이 겹쳐진 것 같아요. 사실 문학보다 먼저 연극이라는 걸 접했는데, 상당히 새로운 문화였어요. 연극하는 사람들의 몸쓰기, 발화 같은 것들이 티브이나 이런 매체에서 받은 질감과는 달랐고, 그러다 자연스럽게 연극하는 선배들을 접하면서 시를 읽었어요. 허연 시인의 『불온한 검은 피』가 재출간될 때 발문을 제가 썼는데, 그것도 그 시절에 인상적으로 읽은 시집이에요.

 

김도언 : 2003년에 등단했기 때문에 편의상 2000년대 시인이라고 부를 수 있을 거 같은데, 너에게 시를 쓰게 하는 욕망을 뭐라고 명명할 수 있을까. 계보학적으로 흔히 말하는 90년대 시인과 또 변별되는 어떤 특징이 있을 것 같은데.

 

김경주 : 흔히 공동체에서 개인을 끌어낸 게 90년대 시라고 하는데, 저는 그런 의미보다는 시의 속성을 파악하는 방식에 관심이 많아요. 그러니까 언어로 쓰여져 있지만 언어로 말해질 수 없는 것에 대한 떨림 같은 거요. 저는 그게 시의 속성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그것을 보면 떨리는 거죠. 분명히 언어로 쓰지만 언어로 쓸 수 없는 것을 향해 달려가고 있다는 거죠. 내가 무엇을 쓰는지 모른 채 갈 수 있는 부분이, 어느 순간 자기 신뢰를 가질 수 있다는 거죠.

 

다른 말로 하면 흔히들 현대시의 문학적 환원방식을 이야기할 때는 은유의 체계에서 환유의 체계로 넘어온 방식을 말하잖아요. 공동체에서 개별성으로 수사적 접근을 하잖아요. 그게 2000년대에 구조화됐을 때, 더 미시적으로 쪼개질 수 있다고 생각해요. 저한테 시를 쓰면서 가장 설레는 지점이 뭐냐고 물어보면 시를 쓰는 순간 어딘가를 건너가고 있다는 느낌이 드는 부분인 것 같아요. 극을 쓰거나 스토리를 쓰는 작업을 할 때는 뭔가를 채워간다는 느낌이 강한데, 시를 쓸 때는 내가 모르는 어딘가를 건너간다는 느낌이 있어요. 그 운동성. 그래서 저는 독자가 시집을 읽을 때도 내가 건너가는 느낌 그대로 읽는 게 아니라 그 독자도 어딘가로 잠시나마 그게 아무리 어려운 시집이라도 잠시나마 다른 곳에 건너갔다가 오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요.

 

김도언 : 그게 바로 네가 자주 얘기하는 시차(時差) 아닌가? 시차를 확보하는 것이 네 시의 욕망이라고 할 수도 있겠구나.

 

김경주 : 네 그럴 수 있을 것 같아요. 시차는 제가 몸을 통해 얻은 것인데, 외국 여행을 갔다 오면, 몸을 통해서 공간과 시간을 건너고 넘어서는 느낌이 들거든요. 시차(時差)가 주는 시차(視差)가 발생하는 거죠. 그 순간에 매우 강렬한 포에틱이 발생해요.

 

시차(時差)는 몸에 깃든 감각의 혼란을 초래하고, 시차(視差)는 정신의 긴장을 유도한다. 이질적인 속성이 부딪치며 대극(對極)이 발생하는 것이다. 사실, 내가 김경주에게서 받은 가장 인상적인 개성은 그가 늘 어떤 대치상황 속에 자신을 몰아넣고 있다는 데서 발견된다. 그에게 그것은 익숙하고 낯익은 것을 징치하려는 어떤 정신의 모험이다. 그는 그것을 위해 언제나 새로운 대극을 창조한다. 그의 전략은, 자신으로부터, 자신에게 가장 편리하고 안정적인 요소들을 분리하고 이격시키는 것이다. 예컨대, 그가 시인으로서 누린, 유례없는 문단의 구애를 고스란히 받아들이고, 그 안의 관습대로 자신의 프로필을 관리하고 소위 말하는 ‘한우물’을 팠다면 그는 지금보다 훨씬 안정적인 지위와 영향력를 가진 시인이 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문단이 그를 체스판의 말처럼 시단 중심에 올려놓았을 때 그는 별 미련도 없이 터벅터벅 걸어내려와 다른 영역으로 횡단해갔다. 시극과 공연에 대한 관심을 바탕으로 언어와 소리를 둘러싼 다양한 메타적 실험실로 망명한 것. 그런데, 그것은 생산성과 경제적 효용 측면에서 보면 쓸모없는 일에 가까운 것이다. 그는 자신이 가지고 있는 시인으로서의 고정자산을 소모시키는 감가상각 구조에서 플러스가 되지 않는 일을 감행한 것이다. 그는 문단과 독자의 주목을 한눈에 받는 상황을 억압적이라고 생각했던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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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찍이 주목받는 시인의 생, 그리고 시의 권위와 권력

 

김도언 : 부인할 수도 있겠지만, 등단과 동시에 다른 시인들과 비교했을 때 첫 시집부터 엄청난 평가와 인정을 받고 한국시단의 아이콘 같은 존재로 부상되었는데, 그렇게 주목을 받으면서 시를 쓸 때, 시인으로서 장점과 단점이 다 있을 거 같아. 시인은 자기 소외라는 걸 항상 감행해야 하는 존재라고 생각하는데, 주목을 받을 때 자기 소외를 감행할 수 있는 여지가 좁아질 수 있잖아. 직접 느낀, 주목 받는 것의 장점과 단점을 좀 이야기해주면 좋을 것 같아.

 

김경주 : 아시겠지만 저 같은 경우는 글을 쓰면서 먹고 살겠다고 마음을 먹고 고생을 오래했어요. 데뷔 전에 책이 다섯 권 있었으니까요. 늦은 나이에 대학을 와서 시인으로 데뷔했지만, 지방에서 서울로 올라왔을 때 감수성의 지점 같은 게 변하더라고요. 서울은 욕망을 되게 많이 자극하는데, 저한테 가장 커다란 건 속도와 맛에 대한 욕망이었어요. 지방은 새벽 아침 9시가 되어야 일상이 시작되는데 서울은 4시 반이면 움직이고, 굉장히 빠르잖아요. 그리고 지방에서는 웬만하면 엄마가 다 해줄 수 있는 음식인데, 서울사람들이 좋아하는 스타벅스 스트로베리 케이크를 엄마가 어떻게 해줘요? 그걸 받아들이는 과정이 상당히 소외적이었고 힘들었어요.

 

시를 써서 등단까진 했는데, 그러고 나니까 저에게 있어 굉장히 중요한 생존에 대한 본능이 살아나더라고요. 사실 시를 쓰는 건 일종의 실존적 본능이잖아요. 유령작가 시절이라고 이야기를 하기도 하는데, 생존을 위해 글을 써야 했던 시기가 있었죠. 그때 시의 자장으로부터 멀어지고 있다는 생각을 많이 했어요. 굉장히 그게 한편으로는 힘들었죠. 이렇게 가다가는 시의 원심력에서 완전히 튕겨나가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작정하고 아예 시를 쓰기 시작한 거죠. 썼는데 거절도 당하기도 했고요. 권혁웅 시인이 그 무렵에 우리 시를 윗세대들이 잘 읽어내지 못했다고 썼는데, 제가 지금 돌아보면 그건 현대시를 읽는 스킨십이 전과는 달라졌다는 말이라고 생각해요. 그런데 첫 시집을 내고 여행을 다녀왔더니, 여기저기서 인터뷰 하자고 하고, 언론에서도 찾고 그러더라고요. 운이 좋았고 고마운 일이었어요. 
 

그런데, 어느 순간 회의가 오더라고요. 자기소외라고 하셨는데, 저는 시인이라면 자기 신경질을 확보하고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거든요. 신경질을 피울 수 있는 순간이 시를 쓰게 하거든요. 그래서 2009년쯤부터인가는 문단 모임이나 시상식에 더 이상 나가지 않았어요. 
 

김도언 : 권혁웅 시인이 주도한 미래파 담론을 얘기하지 않을 수 없는데, 그것이 너의 시적 행보에 어떤 의미가 있다고 생각해? 어디선가 했던 말을 보면 미래파 담론에 동의하지 않는다는 말을 한 것도 같은데. 사실 시사적으로 그리고 계보학적으로 미래파 담론은 긍정적인 요소가 많지 않니?

 

김경주 : 네, 그 부분에 동의해요. 당시에 필요한 담론이었고, 말씀하신 것처럼 시사적 차원에서 그렇게 유형화하고 계열화하는 게 불가피했다고 생각해요. 그런데 어찌 보면 그 시절에 새로운 시인들의 시를 말하기 위한 시도가 미디어와 문단 프레임 속에서 프로파간다적으로 오해되어 소비된 요소가 있었던 것 같아요. 아방가르드적인 역할을 한 거 같기도 하고요. 주목을 받아서 좋은 점은 지금까지 글을 쓰면서 살 수 있는 여건들이 만들어졌다는 거겠죠. 
 

김도언 : 나름대로 균형감각을 갖고 냉정하게 자신의 포지션을 돌아보고 있었구나.

 

김경주 : 사실 시를 쓰는 방식자체도 지면에 발표하고 시집을 묶는 관행이 지배적인데, 저는 이것에도 회의적이에요. 제가 하일지 선생님, 장정일 형과 했던 이야기가 있는데, 왜 출판사의 패러다임에 작가의 몸이 맞춰져야 하는지 모르겠다는 거였어요. 시인들은 평균 3, 4년에 한 권씩 시집이 나오잖아요. 그런데 잘 써지면 1년에 2권이 나올 수도 있고 안 되면 10년이 걸릴 수도 있는 건데 관료처럼 매카니즘이 생긴 거죠. 어떤 설계 같은 것이 있는 거죠. 그런데 그걸 벗어나기가 어렵죠. 그런데 다행히 저는 운이 좋게 저랑 같은 고민을 하시는 하일지 선생님이나 장정일 선배 같은 분들을 만난 거죠.

 

김도언 : 그러면 내가 이런 질문을 해볼게. 시인이든 작가든 어쨌거나 자기 발언, 발화에 대한 영향력, 힘 같은 것이 생기기를 바라잖아. 그걸 원하지 않는 작가나 시인이 있을까 싶은데, 좋은 의미에서의 힘, 영향력, 권력을 원하는데, 그런 힘을 가지기 위해서는 안정적인 지위, 안정적인 입지가 필요하잖아. 그런데 너 같은 경우에는 첫 시집부터 주목을 받고 문단에서 너에게 구애를 했잖아. 그러면 그걸 그냥 모른 척하면서 받아들이고 안정적으로 문단 안에서 지위를 키울 수 있잖아. 권위 있는 잡지 편집위원이 되거나 대학에 임용될 수도 있고. 그런데 넌 그런 이익을 포기한 거야?

 

김경주 : 그런데 권위와 권력은 다르잖아요. 저는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는 권위를 갖고 싶어요. 요즘 아이들에게 시에 대한 생각을 물어보면, ‘일베문화’나 다양한 커뮤니티 문화처럼 그거 마니악한 거 아니에요? 이렇게 대답한단 말이에요. 그러니까 그 아이들은 엉뚱한 생각을 하면서 말놀이 같은 걸 하는 게 재미있어서, 그런 감각으로 시 공부를 시작해요. 그런데 만약 등단을 하고 보면 문학이 숭고하고 진지한 거예요. 저의 경우 선배들로부터 문학은 숭고하고 시 공부도 제대로 안 하고 은유도 모르면서 어떻게 문학을 하냐는 말을 들으면서 습작을 했는데, 문학이 가진 이런 위계에 감염된 상태에서 데뷔를 하고 보니 이게 완전 레드오션인 거예요. 진짜 이런 ‘씬’이 일어나는 것에 대해 저는 별 관심이 없었어요. 권력이라는 게 오염되고 불순해지기 쉬운 거니까요. 그리고 무엇보다 재미가 없는 거예요. 설렘이 없고. 바깥을 보면, 너무나도 나를 시적으로 떨리게 하는 게 많은데, 굳이 내가 저기에 가서 헤게모니에 취해 있을 이유가 있느냐 하는 생각이 컸죠. 하지만 시와 문학이 가지고 있는 권위가 중요하다는 생각은 해요. 권위라는 건 권력이나 어떤 시스템 자체를 바꿀 수 있는 설계를 할 수 있으니까요.

 

 

시인의 생활과 고민, 그리고 대극

 

김도언 : 워낙 다양한 작업을 한 덕분에 멀티플레이어와 기획자로 노출되었는데, 나는 시인이라는 네 본업에 주목해서 질문을 하고 싶어. 지금까지 네 권의 시집을 냈는데, 개인적으로 받은 인상은 초기시가 선언, 직관의 방식으로 관념적인 의미에 대한 탐구 같은 걸 보여줬다면, 두 번째, 세 번째, 네 번째 시집으로 가면서는 조금 더 세밀하고 구체적인 물상이나 이미지나 이야기를 만드는 것에 관심을 가지는 쪽으로 바뀐 거 같은데, 본인 스스로 네 권의 시집의 변별점을 설명해줄 수 있을까?

 

김경주 : 제가 좋아했고, 학창시절에 상당히 많이 읽었고, 닮고 싶었던 시인 중에 오규원 선생님이 계셨어요. 시에 대한 ‘순례’의 태도가 인상 깊었죠. 다른 말로 하면 자신의 전 시집을 계속해서 배반할 수 있는 태도죠. 저도 두 번째 시집까지만 해도 그런 생각을 꽤 했어요. 대부분의 작가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것도 자기복제잖아요. 그런데 시는 자기변주나 자기번식이 주술적으로 강한 장르라고 생각해요. 왜냐하면 미리 설계를 하고 들어가는 게 아니기 때문에 어떻게 보면 언어에 대한 몽상을 포착하는 것이니까요. 그게 바로 주술성이죠. 때문에 자기 시가 감염이 되고 있다는 사실을 인지하고 전 시집들을 배반하는 방식을 스스로 고민했던 거 같아요. 그래서 두 번째 시집에서 첫 시집과 다른 방식의 작업을 했는데, 첫 시집은 누구에게나 그렇지만, 문학청년시절부터 그 시절까지 싸우던 감정의 찌꺼기들이 다 있기 때문에, 사실 울퉁불퉁할 수 밖에 없어요. 우리가 첫 시집에 기대하는 지점은 바로 그런 에너지죠. 첫 시집은 정서의 산물이잖아요. 세계가 아니라.

 

김도언 : 그 이후는 세계의 산물이고?

 

김경주 : 네, 본인이 세계에 대한 고민을 안 할 수 없다고 저는 생각하거든요. 그런데 그걸 찾는 데까지 시간이 오래 걸리죠. 세 번째 시집 『시차의 눈을 달랜다』부터는 많이 생각이 달라지기 시작한 게, 아시다시피 2000년대에 새로운 감수성들이 촉발되는 계기는 됐지만 대중과는 유리되었다는 혐의로부터 자유롭지 못했잖아요. 결국 우리끼리만 자폐적으로 소화하면서 동시대에 시가 왜 필요한지에 대한 고민이 적었던 거겠죠. 그래서 예전에 주목했던 언어의 감각이나 레토릭적인 접근보다는 시 고유한 것들에 대한 질문을 다시 던지기 시작했어요. 시가 머금고 있는 근본적인 침묵들. 그 침묵의 질에 대해서요. 침묵의 질을 만들어내지 못하면 안 된다는 생각이 들었던 거죠.

 

그러다보니 자연스럽게 언어가 줄어들더라고요. 이게 굉장히 아슬아슬해요. 많이 채운 산문시나 쏟아져 내리는 시들은 그 자체가 가지고 있는 파장이 있기 때문에 거기에서 생기는  페이소스 같은 것도 기대할 수 있는데, 언어를 비운다는 게 내적인 필연성을 확보해야 하기 때문에 어려운 부분이 있더라고요. 그래서 네 번째 시집이 저한테는 5년 반이란 시간이 걸렸어요.

 

우리 나이로 그는 올해 마흔이다. 그리고 등단 13년차 시인으로 개인시집 네 권을 갖고 있다. 문광부에서 주는 올해의 예술가상 문학부문과 민음사가 주관하는 김수영문학상 등을 수상했고, 아내와 두 아들을 거느린 가장이기도 하다. 시단의 ‘꽃미남’이라는 지극히 세속적인 레토릭으로 대별되는 아이콘에서 논리정연한 근거와 자기의 깊이와 너비를 정밀하게 재는 혜안과 설득력 있는 목소리를 가진 장년의 시인으로 진화해 있다. 하지만, 긴장은 여전히 그의 몸 곳곳에 팽팽하게 서려 있다. 그것은 도약대 앞에 서서 숨을 고르는 기계체조 선수의 그것과도 같다. 이 긴장은 여전히 그를 청년으로 보이게 한다.

 

그는 언제나 세계와 대치중이다. 다시 그는, 대치하지 않은 상황을 견딜 수 없는 날렵한 밴텀급 복서와도 같다. 평온해지려는 감각을 끊임없이 혼돈 속으로 밀어넣고 대극을 창조하는 것이다. 그가 창조한 대극에는 ‘단독자’와 ‘협업자’의 대극이 있다. 그는 시인으로서 철저한 단독자이지만, 공연을 기획하고 극을 만들 때에는 누구보다도 유연하고 신뢰할 만한 협업자다. 그 간극을 그는 하루에도 수시로 왔다갔다 한다. 그에겐 또 ‘개인’과 ‘가족’이라는 대극이 있다. 그는 일체의 구속이나 억압을 경계하는 개인주의자이지만, 가족 앞에서는 믿음직한 남편이고 다정한 아비다. 개인과 가족의 대극적 상황을 그는 너무나도 편안하게 즐긴다.

 

또한 그에겐 실존적인 존재를 증명해내야 하는 ‘예술가’와 생존을 도모해야 하는 ‘생활인’의 대극이 있다. 그는 타고난 재능과 열정을 의심받지 않는 탁월한 예술가이지만, 매일 아침 일곱 시 삼십 분이면 어김없이 하루를 시작하는, 술도 즐기지 않는 철저한 생활인이다. 어쩌면 이런 대극 사이에서의 역할놀이는, 그가 스스로 고안해낸 일인극을 완성하기 위한 리허설 같은 것은 아닐까. 실제로 그는 바이크를 탔던 시절도 있고, 붉게 염색을 하고, 레게머리를 하는 등 수시로 스타일을 바꾼 적이 있다. 그런 위장도 어쩌면, 대극을 창조하기 위한, 시차 확보를 전제로 한 가면(퍼소나)의 무도 같은 건 아니었을까. 그렇다면 그는 언제 자기자신을 방전시킬까. 자신을 완전히 이완시키기 위해 그는 어떤 옵션을 갖고 있는 것일까. 

 

김도언 : 내가 아는 김경주 하면 떠오르는 이미지가 늘 어떤 일을 벌이고 있다는 거야. 그런데 시인들한테는 나른한 공명상태, 권태, 자기를 이완시키는 시간도 필요하다고 생각되는데 너에게 자기를 공명시키고 비워버리고 이완시키는 행위는 뭐야?

 

김경주 : 여행이죠. 제가 지금까지 517개 도시를 돌아다녔어요. 사람들한테 어디 다녀왔다고 잘 떠들지는 않는데, 지금도 3, 4개월은 그렇게 있어요. 그 시간에는 완전 시만 생각해요. 이번에 뉴욕에 다녀왔는데, 아 뉴욕은 나한테 한 줄의 시적 영감도 줄 수 없다는 걸 알았어요, 그렇게 속도가 빠르고 욕망이 강한 도시들에서는 진공상태가 잘 안 와요. 저는 예술가는 좀 공산당처럼 자본주의를 끊임없이 착취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일부러 여행을 다닐 동안 저는 무인도를 많이 다녔고. 그런 곳에 가서 그냥 나른하게 있었어요. 그러면서 다른 자아로 가는 거죠. 정 그게 안 되면 국내 어디라도 가요. 그렇게 다시 시작을 하는 편이고.

 

김도언 : 결혼을 하고 아이도 낳고, 육아도 정성을 들인다고 들었는데, 그러면 생활에 필요한 수입원이 있어야 하잖아. 그런데 내가 알기로 너는 고정적인 샐러리가 없잖아. 주수입원이 뭐야? 생활비가 만만하지 않을 텐데.

 

김경주 : 저는 나름 생활전선에서 훈련이 되어 있어요. 아침에 일정한 시간에 일어나 작업실 가서 일을 하거든요. 가장 중요한 수입원은 저술과 강연이죠. 기본적으로 책을 일 년에 4, 5권정도 작업하려고 하고 있어요. 그리고 가끔 프로젝트 작업도 하고 하는데, 그래도 돈을 많이 벌지는 못하지만요. 제 주변에 술 좋아하는 분들이 많은데, 저는 영감을 받는 생활 습관 자체가 많이 다른 것 같아요. 프리랜서로 사는데, 다양한 일을 동시에 많이 하는 편이에요.

 

김도언 : 어쨌거나 시를 쓰고 글을 쓰는 게 가장 중요한 생업이잖아. 문학적으로는 일찍이 인정을 받고 평가를 충분히 받았는데, 대중적인 관점에서는 책만 내고 살 수 있을 정도로 유명하고 인기 있는 작가는 아니잖아. 대중적인 독자들의 인색한 반응에 대해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 그리고 할 수만 있다면 베스트셀러 작가가 되고 싶은지 궁금해.

 

김경주 : 축구로 비유하자면, 점유율이 많다고 이기는 건 아니잖아요. 한국사회 소통의 방식은 양적으로 환원하는 게 강하잖아요. 많이 참여하면 질적으로 괜찮다고 생각할 수 있어요. 그런데 시는 결국 양적인 점유가 아니라 질적인 점유 같아요. 그것이 확보가 된 상태에서 어떻게 상업적으로 대중과 만나느냐 하는 건 내 몫이 아닌 거죠. 그건 운이 있으면 좋고. 대중성과 보편성은 다른 거 같아요. 보편성은 인간에 대한 문제를 고민하면서 생기는 거고, 대중성은 내 곁에 있는 사람들과의 호흡 안에서 그러니까 동시대인들과의 호흡에서 확보되는 것 같아요. 저는 늘 시가 보편적인 거라고 생각했고. 내 시 역시 보편적일 수 있다고 생각해요. 그런데 같은 시대를 사는 사람을 글썽거리게 만드는 방식으로 가는 건 다른 해결방식이 필요한 거 같아요. 그게 팬시가 될 수도 있고, 감수성의 문제일 수도 있고, 시스템의 문제일 수도 있는데, 그 방식은 아직까지는 저한테 계속 고민해야 하는 문제죠. 베스트셀러 시집이란 건 어쨌든 시라는 형식 안에서 대중에게 소비가 되는 거잖아요. 저는 나쁘게 생각 안 해요. 시라는 것 자체를 더 이상 우리가 말하지 않는 상황으로 가는 게 더 위험하다고 생각하고요.

 

김경주는 자신의 삶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 사람으로 자신의 아버지를 들었다. 그의 부친은 33년간 강력계 형사반장으로 일하고 은퇴를 했단다. 말하자면 “의심이 특기”인 사람이었다고. 의심을 잘 해야지만 일을 잘할 수 있고 유능하다는 말을 들을 수 있는 아버지의 의심이 종종 가족에게 옮겨올 때, 그는 고통을 느꼈다고 한다. 아버지의 의심에서 벗어나는 것, 아버지를 완벽하게 속이는 것, 그것을 힘겹게 앓으며 성장통을 겪었다는 것. 그 아버지는 지금 육체의 쇠락과 함께 언어를 잃어버리고 사신다. 의심이 특기인 사람이 육중한 침묵의 세계에 거한 것이다. 하지만 그의 아들은 언어가 직업인 시인이다. 그는 침묵을 깨고 발화해야 살 수 있는 사람이다. 여기에서 또다시 ‘침묵’과 ‘발화’라는 대극이 발생한다. 그 대극은 아버지가 그에게 물려준 긴장의 유산이다. 그리고 김경주는 그 사이에서 또다시, 맹렬히 대치중이다. 인터뷰를 마치며 그에게 자신의 시세계를 관통하는 시어 하나만 꼽아달라고 하자, 명쾌하게 “시차”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시차는 대극 사이에서 대치하는 자의 숙명적인 감각 혹은 오브제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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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이자 극작가 김경주는 1976년 전남 광주에서 태어나 서강대학교 철학과를 졸업했다. 2003년 〈대한매일〉(현 '서울신문') 신춘문예로 문단에 등단하였다. 연극실험실 '혜화동 1번지'에 작품을 올리며 극작가로도 활동 중이다. 야설작가, 대필작가, 카피라이터 등을 전전하다가 시집 『나는 이 세상에 없는 계절이다』를 펴내면서 문단과 대중으로부터 호평을 받으며 주목받기 시작했다. 등단 2년 만인 2005년 대산창작기금을 받을 당시, 주최 측에서는 상금 천만 원보다도 더 귀중하고 무서운, '걱정스러울 정도로 뛰어난 시적 재능'을 가졌다는 극찬을 했다.

 

2008 작가가 선정한 '오늘의 시'상, 2009년 오늘의 젊은 예술가 문학 부문상, 2009년 제28회 김수영 문학상 등을 수상했다. 독립영화사 '청춘'을 확장 개편한 무경계 문화펄프 연구소 '츄리닝바람'을 운영하면서 다양한 인디문화를 제작하고 개발하며 공연기획들을 하였다. 최근에는 스튜디오 '나는 공항'에서 다양한 문화 작업과 실험극 운동을 하고 있다. 저서로는 시집으로 『나는 이 세상에 없는 계절이다』,『기담』, 『시차의 눈을 달랜다』, 『고래와 수증기』가 있고 희곡집으로『늑대는 눈알부터 자란다』, 『내가 가장 아름다울 때 내 곁엔 사랑하는 이가 없었다』, 산문집으로 『패스포트』,『자고 있어, 곁이니까』『밀어』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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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김도언 | 이흥렬(사진)

김도언
1999년 한국일보 신춘문예에 당선된 이후 여섯 권의 소설책과 세 권의 산문집, 한 권의 평전을 펴냈다. 지금은 문학적 관점을 다양한 형식의 글쓰기, 시각적 이미지 작업과 연계해 세계와 타자를 읽어내는 실험을 하고 있다. 좋은 인터뷰는 인터뷰이의 실존적 조건에 대한 통찰과 아울러 삶의 총체성에 대한 상상력과 감수성이 들어 있어야 한다고 믿는다.
https://www.facebook.com/doeon.kim.58

이흥렬(사진)
중앙대학교 사진학과와 밀라노 IED 사진학과 졸업. 인물사진과 나무사진을 주로 찍고 있으며 최근의 작업은 '푸른 나무(Blue Tree) 시리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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