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색

우리 좋은 인연으로 만나요

최근 이 ‘인연’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된 일

  • 페이스북
  • 트위터
  • 복사

굳이 모든 사람들과 다 좋은 인연은 맺고 살지 못하겠지만, 언제 어디서 어떻게 만나더라도 반갑게 인사 할 수 있는 좋은 인연을 많이 만들며 살고 싶다.

특이하게도 나는 유난히 인연이 여러 번 겹치는 재주가 있다. 특히 구 남친은 많은 숫자도 아닌데도 불구하고 한 사람을 여러 번 겹쳐 만나기도 하고. 아주 난감한 상황에서 만나기도 했다.


대학교 1학년 때 만난 K는 나의 첫사랑이다. 뭐 처음 사랑이 그렇게 대단하기에 사람들이 ‘첫 사랑’에게 대단한 지위를 주는지 모르겠다고 생각하는 지라 K가 나에게 더 특별한 인연은 아니다. 하지만 처음 이별은 꽤나 오래 기억에 남는다. 콘택트렌즈가 눈에서 튀어 나올 정도로 울어서 손에 딱딱해진 렌즈를 들고 학교에서 집까지 오기도 했고, 빈 강의실에 들어가 엉엉 소리 내 울기도 했고, 수업시간에도 차 안에서도 눈물은 하염없이 쏟아져 내렸다. 그렇게 힘들게 이별 할 때 남자친구가 헤어짐의 이유에 대해서 나름 멋을 부려 한 말은 “내가 지금까지 쌓아온 성을 다 없애고 싶어, 학교도 그만 두고 군대에 가려고. 미안한데 그 성 안에 너도 있는 거 같아” 였다.

 

그 후 7년쯤 뒤에 메일 한 통이 도착했다. K는 당시 유행했던 커뮤니티 사이트에서 내 메일을 한참 찾았다며 만나고 싶다고 했다. 그는 학교를 그만두지도 않았고, 뭔가 전혀 다른 길을 걷지도 않고 군대에 다녀와 안정된 다른 성안에 살고 있었다. 우연히도 광화문에 있는 직장이 서로 가까웠고, 궁금하기도 하여 만나기로 했다. 그런데 그와 대화를 하기 시작한지 얼마 안되어 만나지 말았어야 했다는 후회를 했다. 순수한 청년의 이미지였던 그는 신입사원인데도 벌써 대기업 과장쯤 되는 회사생활에 찌든 모습으로 자신의 근황을 얘기 하고 있었다. 너무 어색했고, 돌이켜 생각해 보니 내가 추억하고 있던 그와는 전혀 다른 사람이 되었다.

 

“너 참 많이 변했다” “넌 하나도 안 변했다” 이 서로 다른 두 말의 의미가 실은 둘 다 긍정적인 의미가 아니었던 것 같다. 이야기를 마치고 헤어지며 “안녕, 오늘 오랜만에 반가웠고, 이제 연락 안 했으면 좋겠어”라고 하자 그는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으로 잘 가라고 했다. 아마 지금까지도 그는 내가 왜 저런 말을 했을까 궁금해 할지도 모른다. 피천득의 『인연』에 나오는 작가와 아사코처럼 만나지 않았다면 더 좋았을 인연이었다.


그리고 다시 몇 년이 흐른 후, K와는 한 두번 만난 적이 있으나 어떻게 만났는지 기억은 나지 않고 만났을 때는 업무상 만나는 사람보다도 못한 서로의 근황을 나눈 후 헤어졌던 걸로 기억한다.
 

ds.jpg


그 뒤 세월이 아주 많이 지나 처음 만난 지 17년쯤 흘렀고, 나는 결혼을 앞두고 인천의 한 성당에 ‘혼인 강좌’를 신청하여 남편과 갔다. 하루 종일 하게 되는 혼인강좌에는 서른 쌍 정도의 예비 부부들이 와 있었다.


놀랍게도, 거기서 K를 만났다. K는 무교에다가 고향은 경북이고 직장도 집도 서울인데 어떻게 이곳에서 마주칠 수 있는 것인지. 작은 강의실에 앉아 하루 종일 들어야 하는 강의에 각자의 옆에는 예비 신부와 신랑이 있었던 것이다. 참으로 불편하기 그지 않는 자리. 우리는 서로 쉬는 시간 한번 마주쳤으나 내가 먼저 자리를 피해버렸던 거 같다.  강의 내내 신경이 쓰여 혼났다. 왜 쿨하게 인사하지 못 했을까. 하지만 거기서 인연이 끝은 아니었다. 그 뒤로 두 번이나 남편과 동네 대형 마트에서 장을 보고 있는데 느닷없이 그의 부부가 카트를 끌고 지나가고 있었다. 인연인지 우연인지가 계속 되자 이젠 그 만큼 당황되진 않아 이번엔 미소 비슷하게 서로 눈인사를 하고 헤어졌다.


가끔 상상하게 된다. 이사를 갔는데 옆집에, 혹은 캠핑을 갔는데 바로 옆 사이트에, 긴 여행 비행기 바로 옆 좌석등. 어쩔 수 없이 일정 시간 동안 한 공간에 있어야 하는 상황에서 만나는 안 좋은 인연들에 대하여…. 딱히 구 남친이 아니더라도 좋지 않은 인연을 불가피 한 자리에서 만나게 된다면 얼마나 불편할까! 


최근 이 ‘인연’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된 일이 있었다.


얼마 전 업무상으로 불편한 자리에 가서 모욕적인 말까지 들어가며 앉아 있어야 할 일들이 있었다. 내 생전 그런 모욕은 처음이었고, 아무리 내 개인적인 일이 아니라 회사를 대신하여 그들 앞에 선 것이지만 어떤 인연으로 다시 만날 지 모르는데 왜 저렇게 막말을 할까 라는 생각을 하며 그들의 말을 듣고 있었다. 다시 생각해 보면 우리는 각자의 ‘업무’를 하고 있는 것이라고 생각하며 이해 하려고 하였지만 특히나 ‘인연’이 많이 달라 붙는 나에게 저들을 또 어떤 인연으로 만날 수도 있겠다 라는 생각은 한 동안 계속 들었다.


굳이 모든 사람들과 다 좋은 인연은 맺고 살지 못하겠지만, 언제 어디서 어떻게 만나더라도 반갑게 인사 할 수 있는 좋은 인연을 많이 만들며 살고 싶다.
 

 

 

인연 因緣

피천득 저 | 샘터

우리에게 너무도 익숙한 수필문학의 대가 피천득의 수필집. 중고등학교 교과서에서 애틋한 가슴저림으로 만났던 수필 '인연'을 필두로, 작은 것이 아름답다는 일상의 소중함을 다시 한번 일깨우게 하는 '플루트 플레이어' 등 주옥같은 명수필 80여편을 모아 엮었다. 금아 피천득의 수필은 백 마디 천 마디로 표현해야 할 것을 될 수 있는 대로 적은 수표의 언어 안에 함축시키는 절제가 돋보인다. 그리움을 넘어서 슬픔과 애닯음과 아름다움을 동시에 느끼게 하는 피천득의 미문美文은 언제, 어느 때 읽어도 마음의 고향과도 같은 느낌을 준다. 이 책은 샘터에서 출간하는 『인연』의 개정판이다.(3판)

 

 

 

 

 

[추천 기사]

 

- 무계획으로 떠난 나오시마 여행
- 메일로 사람을 읽을 수 있을까
- 범인은 바로 이 맨션에 있다
- 인생도, 독서도 타이밍

- 아홉 수의 끝에서 방황중인 스물아홉에게

‘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예스24 채널예스

이 기사가 마음에 드셨다면 아래 SNS 버튼을 눌러 추천해주세요.

독자 리뷰

(0개)

  • 독자 의견 이벤트

채널예스 독자 리뷰 혜택 안내

닫기

부분 인원 혜택 (YES포인트)
댓글왕 1 30,000원
우수 댓글상 11 10,000원
노력상 12 5,000원
 등록
더보기

글ㆍ사진 | 이윤정

아르토 파실린나의 블랙유머를, <크리미널 마인드>의 마지막 명언을, 김기덕과 홍상수를 좋아하지만 어둡지 않아요. 밝고 유머 있는 사람을 좋아하는 여자 사람입니다.

인연 因緣

<피천득> 저8,100원(10% + 5%)

우리에게 너무도 익숙한 수필문학의 대가 피천득의 수필집. 중고등학교 교과서에서 애틋한 가슴저림으로 만났던 수필 '인연'을 필두로, 작은 것이 아름답다는 일상의 소중함을 다시 한번 일깨우게 하는 '플루트 플레이어' 등 주옥같은 명수필 80여편을 모아 엮었다. 금아 피천득의 수필은 백 마디 천 마디로 표현해야 할 것..

  • 카트
  • 리스트
  • 바로구매

오늘의 책

20세기 가장 위대한 시인의 대표작

짐 자무시의 영화 〈패터슨〉이 오마주한 시집. 황유원 시인의 번역으로 국내 첫 완역 출간되었다. 미국 20세기 현대문학에 큰 획을 그은 비트 세대 문학 선구자, 윌리엄 칼로스 윌리엄스의 스타일을 최대한 살려 번역되었다. 도시 패터슨의 역사를 토대로 한, 폭포를 닮은 대서사시.

본격적인 투자 필독서

네이버 프리미엄콘텐츠' 경제/재테크 최상위 채널의 투자 자료를 책으로 엮었다. 5명의 치과 전문의로 구성된 트레이딩 팀으로 국내는 물론, 해외 최신 기술적 분석 자료까지 폭넓게 다룬다. 차트를 모르는 초보부터 중상급 투자자 모두 만족할 기술적 분석의 바이블을 만나보자.

타인과 만나는 황홀한 순간

『보보스』, 『두 번째 산』 데이비드 브룩스 신간. 날카로운 시선과 따뜻한 심장으로 세계와 인간을 꿰뚫어본 데이비드 브룩스가 이번에 시선을 모은 주제는 '관계'다. 타인이라는 미지의 세계와 만나는 순간을 황홀하게 그려냈다. 고립의 시대가 잃어버린 미덕을 되찾아줄 역작.

시는 왜 자꾸 태어나는가

등단 20주년을 맞이한 박연준 시인의 신작 시집. 돌멩이, 새 등 작은 존재를 오래 바라보고, 그 속에서 진실을 찾아내는 시선으로 가득하다. 시인의 불협화음에 맞춰 시를 소리 내어 따라 읽어보자. 죽음과 생, 사랑과 이별 사이에서 우리를 기다린 또 하나의 시가 탄생하고 있을 테니.


문화지원프로젝트
PYCHYESWEB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