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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머 없는 겸손은 지루해

<피키캐스트> 노엘 갤러거와 에릭 남의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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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겸손은 지루하다. “진리를 발견하기 위해서는 먼지처럼 겸손해져야 한다.”고 했던 마하트마 간디가 옳다. 천 번 만 번 옳다. 그렇지만 끝내 먼지처럼 살고 싶지는 않다. 간디는 먼지가 아니니까 그렇게 말했지만, 먼지 같은 우리들은 먼지처럼 겸손하기가 좀처럼 쉽지 않다.

출처_ 피키캐스트.png

출처_ 피키캐스트

 

 

네 번째 문제. 겸손은 어려워

 

<문제>
오아시스의 전 멤버이자 뮤지션인 노엘 갤러거의 인터뷰는 재미있다. 실명을 거론하며 내뱉는 거침없는 욕설, 겸손이라곤 찾아볼 수 없는 자뻑 모드, 모든 것을 조롱하는 듯한 삐딱한 태도는 언제 봐도 매력적이다. 2007년 NME 어워즈 수상소감에서 “감사합니다. 단언컨대 이건 제가 지금껏 받은 상 중에서 가장…, 최근에 받은 것입니다.”라고 농담을 날린 것이나 라이벌 그룹이었던 블러를 향해 “그 자식들은 그냥 에이즈에 걸려 죽어버렸으면 좋겠다.”고 말했던 패기는 정말 놀라웠다. (블러에 대한 욕설은 곧 사과했다. 블러에게 한 것이 아니라 에이즈 환자들에게 사과했다.)

 

연예인 인터뷰를 가장 잘한다고 생각하는 에릭 남과 노엘 갤러거가 만났다. 좋은 질문을 하고, 상대방의 말을 잘 듣고 가장 적절한 리액션을 할 줄 아는 에릭 남과 이제는 좀 날이 무뎌진, 그러나 여전히 매서운 노엘 갤러거와의 만남은 시종 팽팽했다. 자, 이제 빈칸 (A)와 (B)에 알맞은 대화를 골라보세요.

 

에릭 : 이번 앨범 얘기부터 할게요.
노엘 : 그럽시다.
에릭 : 신보는 굉장하고 흥미진진한 앨범이었어요.
노엘 : (A)
에릭 : 노래방 가본 적 있어요?
노엘 : 없어요. 한번도.
에릭 : 왜요?
노엘 : 노래방 가자고 하는 사람이 없었으니까.
에릭 : 노래방 가실래요?
노엘 : 아뇨. 싫어요. 따지고 보면 내가 하는 일이 노래방 가는 거나 마찬가지인데, 가고 싶겠어요?
에릭 : 다음 생이 있다면 뭐로 태어나고 싶어요?
노엘 : 우주비행사나 (B) (으)로 태어나면 좋겠네.

 

1. (A) 뻔한 칭찬하지 마. (B) 에릭 남
2. (A) 이번 앨범 들어보긴 했어? (B) 맨시티 구단주
3. (A) 예전에 비하면 구리지. (B) 하나님
4. (A) 굉장하긴 하지. (B) 내 아들이나 딸
5. (A) 비틀즈에 버금가는 노래들이지. (B) 부처님

 

(문제해설)
오래 전부터 스포츠 게임을 좋아했다. 피파 시리즈나 MLB 시리즈, NBA 시리즈, NFL까지 안해본 게임이 거의 없다. 요즘엔 2K의 아이패드용 NBA 시리즈 2K16을 자주 하고 있다. 역대 최고의 게임이다. 여러 가지 모드가 전부 재미있지만 ‘커리어 모드’에 푹 빠져 있다. 선수를 직접 만들어서 드래프트에 참여하고 실제 경기에 참여하여 NBA에서 성장해가는 ‘모드’인데 이처럼 사실적인 게임은 난생 처음 보았다. 지금 내가 뛰고 있는 팀은 ‘마이애미 히트’인데 성적이 별로 좋지 못하다. 내가 좀더 잘해야 할 텐데.

 

경기를 마치면 반드시 인터뷰를 해야 한다. 기자가 이런저런 질문을 던진다. “당신이 오늘 패배의 원인인 것 같은데 어떻게 생각하나?” “코치에게 불만은 없는가?” 같은 질문들이다. 네 개의 답 중 하나를 골라야 하는데 선택이 만만치 않다. 너무 잘난 척하는 답변을 고르면 팀의 화합도가 떨어지고, 너무 겸손한 답변을 고르면 팬들이 싫어한다. 마음 같아선 노엘 갤러거 같은 답변을 선택하고 싶지만 그게 말처럼 쉽지 않다. 스포츠 스타에게 겸손은 필수다. 수많은 스포츠 스타들의 답변을 떠올려보자. 하도 많이 들어서 외울 수도 있다.

 

“저의 개인 성적은 중요하지 않습니다. 팀의 승리가 우선이죠.”

 

이런 말을 들을 때마다 꼬치꼬치 캐묻고 싶어진다. 진짜? 오늘 홈런 친 게 진짜 중요하지 않다고? 30-30 클럽에 가입했는데 우리 팀이 진 것 때문에 하나도 기쁘질 않다고? 진짜? 거짓말이지?

 

예전에 축구 잡지 일을 잠깐 한 적이 있다. 축구 선수를 인터뷰하고, 재미난 뒷이야기를 글로 쓰는 일이었는데, 가장 곤혹스러웠던 것은 신인 선수들의 인터뷰였다. 언젠가 신인 선수 특집을 했을 때, 여러 선수들에게 같은 질문을 던지는 꼭지가 있었다. 가서 직접 만날 수는 없고 전화로 인터뷰를 하거나 서면으로 답변을 받았다. 인터뷰를 정리할 때 내 입에선 욕이 절로 나왔다. 12명의 답변이 모두 똑같았기 때문이다.

 

질문 : 올해 당신이 이루고 싶은 목표는 뭔가요?
답변 : 개인의 성적은 중요하지 않습니다. 팀의 승리에 힘을 보태는 선수가 되고 싶습니다.

 

안다. 그 마음도 진심이겠지. 팀의 승리에 기여해야 자신이 돋보일 수 있다는 마음도 진심이겠지. 그래도 이건 질문을 던진 사람에게 너무나 가혹한 일이 아닌가. 나는 12명의 답변을 조금씩 다르게 표현하느라 숨겨두었던 문학적 재능을 폭발시키고 말았다. 그 일 덕분에 내 문장이나 표현 능력이 조금 좋아진 것 같기도 하고….

 

<하워드 비즈니스 리뷰>에서는 최고의 보스가 되기 위한 자질 여섯 가지를 꼽았는데, 첫째가 겸손이다. 에너지, 직관, 통찰, 열정, 확신이 그 뒤를 이었다. 겸손이란 무엇일까? 상대방을 자극하지 않는 것이다. 상대방이 아무리 만만해 보여도 얕잡아보지 않는다는 뜻이기도 하다. 가수 조영남 씨는 「겸손은 힘들어」라는 곡에서 (얼마 전 ‘리쌍’이 리메이크하기도 했지.) “세상에는 이런 사람 저런 사람, 세상에는 잘난 사람 못난 사람, 많고 많은 사람들이 있지만, 그 중에 내가 최고지, 겸손 겸손은 힘들어.”라고 노래했는데, 잘나서 겸손하기 힘들다기보다 언제나 겸손하기는 힘들다. 겸손한 화법이 쉽다고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세상에 그처럼 어려운 게 없다. 겸손에는 한치의 어긋남이 없어야 하고, 언제나 변함없어야 한다. 잠깐이라도 겸손함을 잃는 순간 이런 이야기를 듣게 될 것이다. “사람이 변했네.” 어차피 겸손을 유지하기 힘들 거라면 노엘 갤러거처럼 말하며 살고 싶을 때도 많다. 갑자기 ‘겸손 따위 개나 줘버려 화법’으로 갈아타기란 쉽지 않겠지.

 

미국의 부통령을 지내기도 했던 애들라이 스티븐슨은 미시간 주립대학의 졸업식 축사에서 이렇게 말했다.

 

“이런 자리에 제가 설 자격이 있을까 생각하다가 사무엘 버틀러의 말이 생각났습니다. 한번은 그가 인생을 최고로 활용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방법을 알려달라는 요청을 받았습니다. 그러자 그는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다음 15분을 어떻게 활용해야 할지조차 모르는 걸요.’ 저 역시 앞으로 20분을 어떻게 넘겨야 할지 막막하군요.”

 

화법의 마술사 데일 카네기는 이 축사를 인용하면서 이렇게 덧붙였다. “청중의 적대감을 불러일으키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당신이 그들보다 훨씬 우월하다고 과시하는 것이다. 여러 사람 앞에서 말을 할 때 당신은 진열장에서 자신의 인격을 샅샅이 드러내는 것과 같다. 조금이라도 허세를 부리는 것은 치명적이다. 반면에 겸손함은 신뢰와 호감을 불러온다. 비굴하지 않으면서도 겸손해 보일 수 있다. 스스로 완벽하지 않고, 한계가 있다고 암시한 상태에서 최선을 다하겠다는 태도를 보여주면 청중은 당신을 좋아하고, 존경할 것이다.”

 

데일 카네기의 말이 백번 옳다. 그렇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겸손은 지루하다. “진리를 발견하기 위해서는 먼지처럼 겸손해져야 한다.”고 했던 마하트마 간디가 옳다. 천 번 만 번 옳다. 그렇지만 끝내 먼지처럼 살고 싶지는 않다. 간디는 먼지가 아니니까 그렇게 말했지만, 먼지 같은 우리들은 먼지처럼 겸손하기가 좀처럼 쉽지 않다. <주역>에서는  ‘겸손은 높이 있을 때는 빛나고, 낮은 곳에 처할 때에도 사람들이 함부로 넘지 못한다’며 군자의 완성을 ‘겸손’이라고 일컬었지만 군자가 아닌 우리들은 잠깐이라도 ‘자뻑 모드’로 넘어가고 싶다. 겸손한 진동 모드가 아닌 볼륨을 최대로 한 소리 모드로 시끄럽게 소리치고 싶다. “너희들, 내가 잘난 거 알아?”

 

겸손과 거만함을 적절하게 사용하기 위해서는 유머가 관건일 수밖에 없다. 유머 없는 겸손은 지루하고, 유머 없는 거만함은 불쾌하다. 노엘 갤러거에게 유머가 없었더라면 진작에 모든 팬들이 도망갔을 것이다. 자, 이제 문제를 한번 풀어보자. (1)은 유머가 없다. (2)는 그럴 듯하지만 지나치게 공격적이다. 맨시티를 사랑하긴 하지만 구단주로 태어나고 싶지는 않을 것이다. (3)은 노엘 답지 않게 겸손한 답변이다. (5)는, 그럴 듯하지만 이렇게 말하지는 않았다. 정답은 (4)번이다. 자신의 아들이나 딸로 다시 태어나고 싶다고 말하고는, 이렇게 덧붙였다. “걔들은 팔자가 폈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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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예스24 채널예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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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김중혁(소설가)

소설 쓰고 산문도 쓰고 칼럼도 쓴다. 『스마일』, 『좀비들』, 『미스터 모노레일』,『뭐라도 되겠지』, 『메이드 인 공장』 등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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