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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전 이전과 이후, 사이의 균형 <더 비지트>

<더 비지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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샤말란 감독의 변화와 함께 의미 있게 되짚어볼 작품임에는 틀림없다. 채움과 비움의 균형, 사람과 테크닉 사이의 균형, 반전 이전과 반전 이후 이야기의 균형, 샤말란 감독이 다시 되찾은 균형 감각이 반갑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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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9년 <식스 센스>는 공포 영화의 지형도를 완전히 바꿔놓았다. 이후 영화들은 모두 반전 강박에 빠진 것처럼 보였다. 마지막 한방을 위해 차곡차곡 쌓아온 이야기를 비트는 것은 기본, 단 한 번의 반전을 위해 억지를 쓰는 영화도 많아졌다. 그럼에도 <식스 센스>가 주었던 충격과 신선함을 따라잡은 영화는 없었고 어떤 감독도 샤말란 감독이 한순간에 이룬 성과를 뛰어넘지 못했다. 하지만 그 누구보다 <식스 센스>를 넘어야 할 사람은 바로 샤말란 감독 그 자신이었다. 관객들의 기대치는 너무 높아졌고, 보다 새로운 것을 보여주고 더 강한 한방을 만들어야 한다는 강박증은 오래 지속되었다. 그렇게 <식스 센스>는 화려한 영광이었지만, 역설적으로 그의 발목을 잡는 족쇄가 되었다. 뛰어난 형을 둔 아우들의 고단한 삶처럼 그의 차기작들은 끊임없이 <식스 센스>와 필요이상 비교 당했다. 그리고 무엇보다 가장 큰 문제는 감독 스스로 그 그림자에서 벗어나려 하기보다 후광은 등에 진 채 그 보다 더 강한 영화를 만들겠다는 강박에 시달리는 것처럼 보였다는 것이다.
 
흥행과 화제성으로 보자면 <식스 센스>에 못 미치지만 그의 차기작 <언브레이커블><싸인>은 나쁘지 않았다. 그가 일관되게 관심을 가져온 소외된 자들과 세상과의 소통을 통해 실존의 이야기를 하는 작품이었다. 어설픈 반전이라 평가받았지만 <언브레이커블>에서 신이 준 자신의 운명을 거스르고 자신의 존재를 찾는 마지막 이야기는 실존에 대한 고민이 담겨 있었다. <싸인>은 SF 스릴러의 외피를 쓰고 있지만 믿음과 영혼에 대한 진지한 드라마였다. 외계의 존재가 끝내 그 얼굴을 드러내지 않는 마지막 순간까지 격렬한 액션을 숨기고 더 많은 스릴과 긴장감을 끌어냈다. 하지만 전작을 뛰어넘는 평가를 받지 못했다. 다시 <식스 센스>로 되돌아가보자. 사실 <식스 센스>의 반전은 관객들을 멍하게 할 정도로 충격적이었지만, 그 영화에 있어서 중요한 것은 반전이 주는 의외성이 아니라, 반전 이전과 이후의 드라마가 얼마나 균열 없이 조화롭게 이어질 수 있는가 하는 것이다. <식스 센스>의 성공은 그 균형이 치밀하고 조화로웠기에 가능했던 것이다. 그의 이야기 속에는 사람이 있었고, 진심이 있었다. 하지만 그런 그가 무너지기 시작했다. <레이디 인 더 워터>에서 보여준 것처럼 그가 반전의 균열 사이로 사람을 놓치기 시작한 순간부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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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수의 삶, 그 의미를 되돌아 보다

 

엄마가 새 남자친구와 크루즈 여행을 할 수 있게 속 깊은 베카와 타일러 남매는 태어나 처음 만나는 외할머니의 시골 농장으로 찾아간다. 베카는 오래전 친정 부모의 집을 떠나 돌아가지 못한 엄마를 위해 다큐멘터리를 제작한다고 손에서 카메라를 놓지 않는다. 남동생 타일러 역시 누나를 돕는다. 베카는 집을 나서기 전부터 엄마를 인터뷰하고, 기차로 이동하고 할머니 집으로 가서도 카메라를 멈추지 않는다. 평온한 시골의 다정한 부부처럼 보이는 할머니와 할아버지의 행동이 이상하다고 생각하는 것은 밤 9시 30분이 넘으면 절대 방문을 열지 말라는 할아버지의 이야기 때문이다. 호기심 가득한 아이들이 그 약속을 지킬 수 있을까?

 

미국 사회 속 아시아인으로서 존재에 대한 고민을 하면서 컸던 조숙한 청년은 늘 자신의 영화 속에서 인간과 사회, 소외된 자와 사회 간의 소통을 다뤄왔다. 유령, 초인, 미스터리 서클, 외계인, 은둔자들 등 특이한 존재와 파격적인 소재를 통해 충격을 주고, 반전을 통해 미스터리의 분위기를 강화시키지만 사실 그가 영화 속에서 말하고자 하는 것은 사회와 소통하는 개인의 단절감과 인생에 대한 통찰이었다. 큰 기대 없이 개봉했지만, 좋은 평가를 얻고 있는 <더 비지트>는 스타일에 집착하던 그가 다시금 ‘사람’의 이야기를 하는 영화라 더 반가운 영화다. 과도한 스타일도 줄이고, 무엇보다 강박적 반전에도 집착하지 않는다. 이야기는 단순해지고, 고립된 공간에 남겨진 두 남녀와 두 노부부의 이야기에 온전히 집중하며 몰입도를 높인다. 무엇보다 <더 비지트>에 마음이 끌린 이유는 시골 농장에서의 공포가 두 남매에게 벌어진 끔찍한 기억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두 남매의 성장 이야기로 그려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더 비지트>의 이야기 속에는 싱글 맘의 고민과 부모자식간의 오해, 심각한 노인문제 등 사회적 맥락들이 함께 녹아들어 있다. 아빠가 사라진 가정에서 아이들은 엄마가 없어진 이후에도 살아남아야 하는 법을 고민해야 하거나, 떠나간 아빠를 맘으로 이해하는 법도 배워야 한다.

 

1999년 <블레어 윗치>의 크나큰 성공에 힘입어, 제작된 <R.E.C.> 시리즈, <파라노말 액티비티> 시리즈 같은 페이크 다큐 형식의 공포영화가 하나의 장르가 되어가고 있다. <더 비지트>에서 주목할 점은 샤말란 감독이 자신만의 새로운 장르를 개척하려는 과욕 대신, 일종의 트렌드를 수용하고 자신의 이야기 속으로 끌어들였다는 점이다. 샤말란 감독은 보이는 것 보다, 보이지 않고 숨겨진 것이 훨씬 더 무섭고 소름 돋는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베카와 타일러가 들고 다니는 카메라에 찍힌 것만 볼 수 있는 관객들은 두 남매의 시선에 절대적으로 동의하며 카메라에 찍힌 것과 찍히지 않아 볼 수 없는 것, 그리고 이미 찍혔지만 미처 보지 못한 것 사이에서 긴장과 공포를 느끼게 된다. 저예산 페이크 다큐 위에 샤말란 감독은 의외의 순간, 풉하고 터져 나오는 웃음 코드를 녹여내며 기묘한 분위기를 더한다.

 

이제 막 삶의 전성기를 시작하려는 어린아이들에게 가장 먼저 찾아온 것은 이별이었고, 배설 기능도 망가지고 정신도 온전치 못한 늙은이들에겐 하루하루의 삶이 생존이다. 충격적이라 할 반전은 아니지만, 평온하게 누려야 마땅한 일상이 어느 날 불쑥 찾아온 아이들 때문에 뒤흔들리는 일이야 말로 어쩌면 노부부에게는 또 다른 공포였을지도 모를 일이다. 다큐 형식의 영화인 관계로 특수효과도 없고, 심장이 쿵 떨어질 만큼 놀랍거나 뒤통수를 한 대 맞은 것 같은 반전도 없지만, <더 비지트>는 샤말란 감독의 변화와 함께 의미 있게 되짚어볼 작품임에는 틀림없다. 채움과 비움의 균형, 사람과 테크닉 사이의 균형, 반전 이전과 반전 이후 이야기의 균형, 샤말란 감독이 다시 되찾은 균형 감각이 반갑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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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최재훈

늘 여행이 끝난 후 길이 시작되는 것 같다. 새롭게 시작된 길에서 또 다른 가능성을 보느라, 아주 멀리 돌아왔고 그 여행의 끝에선 또 다른 길을 발견한다. 그래서 영화, 음악, 공연, 문화예술계를 얼쩡거리는 자칭 culture bohemian.

한국예술종합학교 연극원 졸업 후 씨네서울 기자, 국립오페라단 공연기획팀장을 거쳐 현재는 서울문화재단에서 활동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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