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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한한 시골빵집에서 ‘세상’을 보는 부부

『시골빵집에서 자본론을 굽다』 저자 시골빵집 ‘다루마리’의 주인 와타나베 이타루, 마리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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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짜를 먹으면서 자라면, 나중에 커서 가짜를 접해도 수정하는 힘이 생길 거라고 생각해요. 시골에 와서 기쁜 것 중 하나는 우리 아이들이 이 나물이 어떻게 키워지고, 누가 만들었는지를 알 수 있다는 거예요.

“책을 읽고 빵집에 찾아갔는데, 문을 닫았던 데요?”  올해 초, 일본 오카야마현으로 여행을 떠난 한국 독자들은 허탕을 많이 쳤다. 빵집 ‘다루마리’가 최근 돗토리현으로 이전한 것을 미처 몰랐던 것. 덕분에 일본의 고단샤 출판사는 한국 독자들의 문의전화를 꽤 많이 받았다. 2014년 6월에 출간된 『시골빵집에서 자본론을 굽다』는 한국에서만 4만 부가 팔렸다. 일본 변방의 작은 시골빵집 ‘다루마리’에서 일어난 조용한 경제혁명은 이웃나라 한국 독자들의 마음까지 훔쳐, 지난해 각종 언론사로부터 ‘올해의 책’, ‘출판인들이 뽑은 숨어있는 최고의 책’ 등으로 선정됐다.

 

균을 연구했던 할아버지, 마르크스를 탐닉했던 아버지의 역량을 물려받은 와타나베 이타루 씨는 유기농산물 도매회사에서 동료로 만난 아내 마리코 씨와 8년째 희한한 시골빵집 ‘다루마리’를 운영하고 있다. 이들 부부는 올해 6월, 일본에서 인구가 가장 적은 돗토리현으로 이주해 새롭게 빵집을 열었다. 빵이 잘 팔리니까 돈을 더 많이 벌기 위해서가 아니다. ‘궁극의 빵’을 만들기 위해, 지역 내 순환이 가능한 경제 활동을 하기 위해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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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골빵집에서 자본론을 굽다』가 1년 만에 10쇄를 찍을 정도로 한국 독자들에게도 큰 사랑을 받았는데요. 최근에 한국 독자들과 만나셨다고요.


이타루_ ‘와우 북 페스티벌’에서 토크를 했는데요. 젊은 분들이 굉장히 큰 관심을 갖고 질문을 해주시더라고요. 일본으로 직접 찾아오는 독자 분들도 꽤 많았어요. 일주일에 한 두 분 정도는 만난 것 같아요. 며칠 전에 출판사에서 보여주셔서 한국 독자들의 리뷰도 읽어봤습니다. 굉장히 공감을 하면서 읽으셨더라고요. 일본 독자들은 대개 한 발 뒤에 물러서서 평가를 하는데, 한국 독자들은 자기 입장에서 진정성을 갖고 보셔서 인상 깊었습니다.

 

돗토리현으로 빵집을 옮긴 이유는 무엇인가요?


이타루_ 오카야마현에서 빵집을 할 때는 제분기가 안에 들어갈 수가 없어서 잘라서 썼어요. 그러다 보니 고장이 났는데, 제분을 못하다 보니 순환이 안 됐어요. 제분기가 들어갈 수 있는 공간을 찾다 보니 조금 큰 장소가 필요했고, 좋은 물을 가까이에서 얻을 수 있는 곳으로 가고 싶었어요. 맥주를 팔기로 했으니 좋은 지하수가 필요했거든요. 새로 꾸려진 다루마리에서는 화덕피자를 팔아요. 좋은 나무가 있어야 피자를 잘 구울 수 있는데, 돗토리현에서는 산이 가깝거든요. 저희가 제대로 돈을 지불하고 나무를 사오면 임업가들도 산을 좋게 할 거고, 비가 내리면 좋은 지하수가 생길 거 아니에요? 지역 내 순환이 가능한 곳이라고 생각했어요.

 

시골빵집의 맥주를 기대하는 손님들도 많겠네요.


이타루_ 맥주를 만들게 된 건, 거의 필연적입니다. 4년 전부터 맥주효모를 만들어 빵을 굽기 시작했는데요. 효모로 사용할 수 있는 양은 한정적이고, 거의 80%가 그냥 맥주예요. 맥주를 판다면 아무 것도 버리지 않아도 되죠. 맛도 굉장히 오묘하고 깊어요.

 

책은 어떻게 쓰게 되셨나요?


이타루_ 빵을 만들면 만들수록 행복이 크게 느껴졌어요. 2년 정도 빵집을 운영하니까 균을 채취하는 과정에서부터 빵집 경영 일련의 과정들이 눈에 보이는 형태로 나타나기 시작했고요. 사람들에게 우리 이야기를 하고 싶어서 ‘토크 라이브’를 해보기로 했죠. 일본에는 하라주쿠 같은 곳에서 자리를 빌리면, 15분 정도 이런 저런 말을 할 수 있어요. 어느 날, 오모데산도에서 토크 라이브를 하던 중에 고단샤 출판사 관계자 분을 만났고 책 제안을 받았습니다. 준비 과정이 꽤 길었어요. 빵집 성과도 없이 책을 낼 수는 없으니까요. 2년 반쯤 걸린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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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_ 다루마리 페이스북

 

‘작아도 진짜인 일’을 하고 싶어 빵집을 여셨습니다. ‘빵’을 만들게 된 건, 꿈 속에 나타난 할아버지의 음성 때문이었다고요.


이타루_ (웃음) 원산지 허위 표기니 뒷돈 거래를 하는 회사에 염증을 느끼던 때였어요. 한창 고민을 하고 있는데 아주 어렸을 때 전시하셨던 할아버지가 꿈에 나와 ‘이타루, 너는 빵을 만들어보렴’이라고 하셨어요. 신기하게도 그 한마디에 금세 마음속 짐을 내려놓은 것 같은 느낌이 들었어요. 4년 반 동안 네 군데를 옮겨 다니면서 제빵 기술을 배웠습니다. 이후 아내와 치열한 경영회의 끝에 빵집을 열었는데, 리먼 쇼크가 터지면서 금융 위기까지 찾아왔죠. 호두, 피넛 등 수입 자재가 급등하면서 불안해할 때 아버지께서 마르크스를 읽어보라고 권하셨어요. 그 때서야 『자본론』을 읽게 됐죠.

 

천연균과 마르크스가 책을 관통하는 주제입니다.


이타루_ 마르크스는 약 200년 전에 태어났고 인생의 후반기를 영국에서 보냈어요. 산업혁명의 발상지였던 만큼 자본주의 선진국이었죠. 『자본론』을 읽는데, 마르크스가 묘사한 빵집 상황이 지금과 똑 닮아있다고 생각했어요. 가혹한 노동에 시달렸던 사람들의 모습이 우리의 현재와 겹쳐 보였어요. 상품, 임금, 노동력에 대해 고민하게 됐고, 자기 소유의 생산수단이 필요하다는 걸 깨달았죠. 부패하지 않는 돈을 탄생시킨 자본주의 경제의 모순을 극복하는 길을 ‘균’에서 찾았고요. 발효라는 신비한 작용을 하는 균을 통해, 이윤이 아니라 순환과 발효에 초점을 맞춤 ‘부패하는 경제’에 도전 중이고요.

 

일본 기준으로, 책이 나온 지 벌써 2년이 지났습니다. 지금은 무엇을 고민하고 계신가요?


이타루_ 사람을 키우는 것에 대한 문제가 가장 큽니다. 빵을 만드는 일은 도제식으로 가르칠 수밖에 없으니 젊은 분들은 대부분 힘들어 합니다. 물론 기술을 배워 독립한 사람도 있지만, 견디지 못한 분들이 많아요. 그래서 사람들마다 스스로에게 맞는 방식으로 일에 접근할 수 있도록 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어요. 도제식을 견딜 수 있는 사람은 빵을, 현대적인 일을 하고 싶어하는 사람에게는 카페를, 지적인 노동을 하고 싶어하는 사람에게는 맥주를 맡기려고 해요. 맥주 같은 경우는 균에 대한 연구가 매우 중요하거든요.

 

마리코_ 정말 어려운 게 사람을 뽑는 일입니다. 처음 이력서를 받으면 대부분 학력이 좋은 사람일수록 문장력이 좋아 저희가 설득을 당해요. 그런데 서류만 놓고 볼 수 없는 게 빵을 만드는 일은 체력도 좋아야 한다는 점이에요. 그래서 체력이 좋은 사람을 뽑으면, 또 그 분들은 저희의 철학을 이해하지 못하는 경우가 있어요. 그러다 보면 불만이 생기고 즐겁게 일하기가 어렵죠. 우리는 지금 정말 아무나 뽑아서는 안 되는구나를 자각한 상태예요. 지속성과 균형이 중요한 일이기 때문이에요.

 

현재 다루마리는 일주일 중 이틀이 휴무입니다. 어떻게 시간을 보내시나요?


이타루_ 경영이 안정되는 기간 동안에는 강연 자료를 만들고 책을 보는 시간이 많았어요. 스태프들과 여행을 가기도 했고요. 책을 쓰게 되면서부터는 빵만 만드는 게 아니라 빵을 표현하면서 세상에 대한 문제의식을 갖고, 세상을 어떻게 변화시킬 수 있을까를 고민하고 있어요. 물론 가족들과 충실한 시간도 보내고 있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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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제공_ 더숲 출판사

 

자녀들에 대한 글도 기억에 남습니다. “부모가 열심히 일하는 모습을 보고 자란 아이들은 자기 안에 있는 힘을 비축해서 건강하게 자란다”고 쓰셨는데요. 교육 철학이 궁금합니다.


마리코_ 엘리트 같은 이미지는 아예 갖고 있지 않아요. 건강하게 자라는 것이 제일 중요해요. 진짜를 접하고 진짜를 먹으면서 자라면, 나중에 커서 가짜를 접해도 수정하는 힘이 생길 거라고 생각해요. 시골에 와서 기쁜 것 중 하나는 우리 아이들이 이 나물이 어떻게 키워지고, 누가 만들었는지를 알 수 있다는 거예요. 삶과 직접적으로 연계할 수 있는 부분이 많기 때문에 만족합니다.

 

이타루_ 생각하는 힘과 창의력, 이 두 가지가 있으면 제대로 자랄 수 있다고 생각해요.

 

와타나베 이타루 씨가 글을 무척 잘 쓰셔서 혹시 전업작가가 되면 어떡하나 걱정하는 독자들도 있더라고요. 계속 빵집 주인으로 남았으면 하는 바람으로요.


이타루_ (웃음) 돗토리현으로 빵집을 옮기고 난 후로는 실제로 빵 만드는 시간이 예전보다는 줄어든 게 사실이에요. 하지만 빵 레시피를 완전히 바꿨기 때문에 다시 빵에만 주력할 수 있는 시간도 생겼어요. 결론적으로는 빵을 만드는 장인으로서도 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강연하는 일도 큰 도움이 되기 때문에 독자들을 만나는 일도 계속할 예정입니다.

 

마리코_ 독자 분들의 걱정을 이해할 수 있어요. 그런데 이거 하나는 말씀 드릴 수 있어요. 우리의 강점은 모든 판단의 기준에 균과 가족이 있다는 거예요. 매일 균에 대해 공부하는 것이 저희의 주 업무인데 이 일을 하다 보면 이상한 방향으로 흘러갈 수가 없어요. 우리는 매일 생산하는 사람이에요. 아무리 바빠도 사와서 음식을 먹는 건, 있을 수 없고요. 계속 음식을 만들고 가족들과 함께 있을 것이기 때문에 딴 방향으로 샐 일은 없어요. (웃음)

 

한국에도 작은 빵집들이 많이 생기고 있습니다. 동지들에게 조언을 해주신다면요.


이타루_ 일을 하다 보면 너무 힘들겠지만요. 그럴 때일수록 고개를 15도 정도 들고 있는 게 중요해요. 비과학적인 이야기지만, 정말 장사를 하는 사람들에게는 기본이 되는 자세예요. 정말 좋은 운이 들어올 수 있거든요. (웃음) 또 모든 일의 중심에는 가족이 있으니까요. 남자가 생각하는 방식, 여자가 생각하는 방식이 어우러져야 한다고 생각해요. 빵을 만드는 사람으로서 공유하고 싶은 이야기는 상품을 전면에 내세워야 한다는 거예요. 자본주의 사회 속 대기업들은 마케팅을 먼저 내놓고 세상을 장악한 후에 상품을 내놓잖아요. 그런 방법에 지지 않는 우리의 방법이 필요해요. 우리의 상품은 우리가 추구하는 것, 우리가 어떤 사람이라는 인간성이 표현돼있어요. 작은 일을 하는 분들도 물건을 통해 세상에 어떤 영향을 줄 수 있다고 생각해요. 우리의 의식을 내놓는 게 중요해요. 이게 개인이 살 수 있는 방법이 아닐까 싶어요.

 

『시골빵집에서 자본론을 굽다』를 통해 또 어떤 독자들과 만나고 싶으신가요?


마리코_ 도시에서 열심히 일하면서 커리어를 쌓고 싶어 하는 젊은 분들이 많잖아요. 그러다가 한계를 느끼는 사람들이 읽으면 좋을 것 같아요. 이 책이 굉장히 느긋한 시골 생활, 여유로운 삶을 이야기한 책이 아니잖아요. 생명력이 막 넘치는 데도 불구하고 굳이 무대를 시골로 선택해서 사는 이야기인데요. 아직 기존 성공 사례는 도시 속에서 많이 일어나지만, 그걸 뒤엎어서 시골을 선택해서 성공하는 예를 보여주고 싶어요.

 

이타루_ 자본주의 안에서 젊은이들은 어쩔 수 없이 시스템상 착취를 당하고 있는데요. 이건 일본이나 한국 모두 마찬가지라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계속 수긍하면 계속 반복될 수밖에 없기 때문에 우리만의 기술이나 생산 수단을 갖고, 새로운 표현 방법을 개척해나갔으면 합니다. 그런 변화에 조금이라도 보탬이 된다면, 이 책도 보람이 있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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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골빵집에서 자본론을 굽다와타나베 이타루 저/정문주 역 | 더숲
기존 사회로부터 벗어나지 않으면서 자신의 생활도 지켜나가며 삶의 균형을 찾아가는 그의 모습은 많은 일본인들에게 커다란 울림을 전해주었다. 이를 보여주기라도 하듯,『시골빵집에서 자본론을 굽다』는 출간 후 일본 아마존 사회,정치, 경제 분야에서 단숨에 1위를 차지하였고, 언론과 독자들로부터 관심과 격려, 칭찬이 끊임없이 이어지고 있다. 양심 있는 자본가로서의 그의 모습은 불안정하고 모순 가득한 현실을 애써 피하며 살고 있는 많은 이들에게 진정한 삶의 가치와 노동의 의미를 다시금 생각하게 하고 대안적 삶의 방식을 제시하는 좋은 기회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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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엄지혜


eumji01@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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