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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이경 “도대체 책 읽는 게 무슨 도움이 될까요?”

든든한 내면을 만드는 독서 레시피, 『책 먹는 법』 펴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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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읽어주는 건, 저자를 위해서가 아니라 자기 자신을 위해서라고 생각해요. 사람을 만났을 때, 상대의 이야기를 잘 듣는 게 그 상대를 위한 게 아니라, 내가 쓸데없이 오해를 해서 내 마음을 괴롭히지 않기 위해서이기도 하잖아요. 책도 마찬가지예요.

심상한 제목의 책이 나왔다. ‘든든한 내면을 만드는 독서 레시피’라는 카피를 단 『책 먹는 법』. 저자 김이경은 ‘맛있는 한 끼의 독서’를 권하며 있는 그대로 읽는 법, 다독하는 법, 정독하는 법, 문학과 고전을 읽는 법 등을 소개했다. 책 앞날개에 적힌 저자 소개를 살짝 들쳐보니 호기심이 쑥 튀어나왔다. “초등학교 때 국어 교과서를 큰 소리로 읽다가 어머니의 칭찬을 듣고 소리 내어 책 읽기의 즐거움을 처음 느꼈다”는 김이경 작가. 그는 서해문집에서 오랫동안 편집자로 일하다 지금은 독서칼럼니스트로 활동하며, 우연히 인연이 닿은 시립도서관의 독서회에서 20년 넘게 강사로 책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그간 소설집 『순례자의 책』, 서평집 『마녀의 독서처방』, 『마녀의 연쇄 독서』 등을 펴냈다.

 

김이경 작가가 쓴 『책 먹는 법』은 유유출판사에서 펴내는 땅콩문고 시리즈다. 무척 작은 판형의 책으로 200쪽이 넘지 않는 매우 가벼운 책이다. 마치 편의점에서 파는 삼각김밥 같은 인상인데, 뒷맛은 확연히 다르다. 우선 든든하다. MSG가 전혀 느껴지지 않는 글밥의 향연은 꽤 묵직하다. 이런 책의 첫인상을 ‘삼각김밥’이라고 표현했으니, 저자에게는 무척 실례다. 한적한 고택에서 처음으로 맛본 12첩 반상으로 책의 끝인상을 수정한다. 그리하여 김이경 작가에게 인터뷰를 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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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등에서 갑자기 빛이 나는 책이 있어요


독서칼럼니스트이시지만 ‘법’이라는 제목의 책을 내기란, 꽤 부담스러운 작업이 아니었을까 싶습니다.


후회를 많이 했어요. (웃음) 출간 제안을 받았을 때 맛있는 수제 맥주를 먹고 있었거든요. 출판사 대표님이 제 독자라면서 책을 내자고 하셔서, 반가운 마음에 ‘그래요. 써보죠”라고 했는데, 집에 와서 정신을 차려 보니 후회되더라고요. ‘아 못 쓰겠다’ 싶어서 연락을 드리려고 했는데, 바로 계약금을 보내신 거예요. 이 책은 정말 시작부터 끝까지 맥주랑 함께 썼어요. 맑은 정신으로는 한 문장, 한 단어가 다 걸리는 거예요. 이게 최선일까, 내가 너무 교만한 게 아닐까. 자기검열도 많이 했고요. 밤에 맥주를 한 잔 먹고 ‘아 몰라’ 이러면서 쓰기 시작하니까 분량이 늘긴 했는데, 다음날 아침에 일어나면 거의 모든 문장을 다 지웠어요. 80%는 버리고 20% 정도를 건지는 심정으로 썼어요. 사실 독서에 대해 너무 시시콜콜하게 모든 이야기를 한다는 것에 대해 망설이기도 했어요. 하지만 모든 이야기를 할 수는 없는 거니까요. 제 한계를 인정하고 시작한 글이에요. 결국 자기만의 독서법을 만들어가는데 작은 실마리를 주는 것일 뿐이니까요.

 

책이 8월에 출간됐는데, 집필은 언제부터 시작하셨나요?


작년 가을부터 썼어요. 매수는 정말 얼마 안 되는데, 오래 쓴 책이에요.

 

저자 소개글을 재밌게 읽었어요. “책은 사 주지 않았지만 신문 여러 종을 구독하며 밥상머리에서 여러 가지 이야기를 듣고 말할 기회를 준 부모님 덕분에 비판적 독해와 지식의 중요성을 깨달았다”고 쓰셨는데요.


한 주 전에 아버지가 돌아가셨는데, 저희 다섯 형제가 세상에서 가장 존경하는 사람이 아버지였어요. 너무 가난해서 학교를 못 다니셨거든요. 초등학교도 졸업을 못하셨는데, 제가 지금까지 만난 사람들 중에 아버지만큼 똑똑하고 지적이고 많이 아는 분을 본 적이 없어요. 아버지가 어떻게 혼자 공부를 해오셨을까, 생각해보면요. 계속 책과 신문을 읽으셨어요. 한국방송이 별로 없을 때부터 미국방송을 챙겨 보셨고, 새벽부터 라디오뉴스를 항상 들으셨고요. 신문도 여러 개를 보셨는데, 언론마다 입장이 다르고 주요하게 생각하는 면이 다르고, 기자마다 수준이 다르기 때문에 여러 종을 봐야 한다고 하셨어요. 신문의 행간을 읽으신 거죠. 아침에 신문이 배달되면, 아버지가 읽으시고 그 다음에는 오빠들이 읽고 나서야 제 차례가 됐어요. 아버지의 신문이 내려오길 기다리면서 아침을 보냈는데, 저로서는 어른이 되는 상징이기도 했어요.

 

어린 아이가 신문을 보기는 쉽지 않은데요.


신문을 보면 네 컷 만화가 있잖아요. 그것부터 봤던 것 같아요. 만화부터 보다가 기사를 읽곤 했던 기억이 나요.

 

『책 먹는 법』을 보면, 책을 고르는 법부터 독서의 다양한 방법을 소개하고 있어요. 첫 장에서는 ”어깨에서 힘을 빼고 첫 눈에 반한 책을 읽어라”라고 하셨는데요. 반하려면 우선 만나고 접해야 하잖아요. 작가님은 어떻게 책을 고르시나요?


책방에 직접 가기도 하고 인터넷서점도 들어가보는데, 거의 비슷한 책이 자꾸 보이잖아요. 그래서 저는 매주 도서관에 가서 신간 코너를 둘러봐요. 혹시 놓친 책도 있을 수 있으니까 틈틈이 서가도 보고요. 그러면 책등에서 갑자기 빛이 나는 책이 있어요. 물론 리뷰를 읽다가 챙겨 놓는 책도 있지만, 저와 궁합이 맞는 책이 저를 막 불러요.

 

최근에 반한 책은요?


요즘 역사 문제가 시끄러워서 역사책을 많이 찾아보는데, 썩 재미있는 게 없더라고요. 그러다가 『일본제국 vs. 자이니치』라는 책을 알게 됐는데, 책장을 넘기다가 그대로 매료됐어요. 상당히 감동적으로 읽었어요. 또 전영애 교수님이 쓴 『시인의 집』을 보는데, 몇 장 읽다가 눈물이 후드득 떨어졌어요. 제가 미술가 윤석남 선생님께 이 책을 선물했더니, 어느 날 문자가 왔어요. “일흔 나이에도 이 책을 읽으니 눈물이 난다”고요. 책을 선물하면 이 사람이 나와 맞는지, 안 맞는지를 알 수 있잖아요. 내가 좋게 읽은 책이라고 상대도 꼭 좋아하라는 법이 없는데요. 이렇게 책을 통해서 인연이 돈독해지는 경우도 있는 것 같아요.

 

반해서 읽었는데 배신감을 느끼는 경우도 있지 않나요?


많죠. 많아요. (웃음)

 

156쪽의 이야기도 퍽 인상적이었는데요. “결국 문제는 삶”이라는 문장이었습니다. “잘 살기 위해 책을 읽는 것이지 그 반대가 아니”라고 하셨는데요. 간혹 책 많이 읽었다고 자랑하는 사람들을 보면서, 작가님의 말마따나 ‘아니, 그런 책을 읽은 사람이 왜 그 모양이야?’ 싶을 때가 있습니다. 저자의 경우도 마찬가지예요. 훌륭한 책을 쓴 분들의 실태를 마주했을 때, 때때로 실망도 합니다. 독자 입장에서는 혼란스러울 때가 있어요.


저는 이렇게 생각해요. 문제나 결점, 한계가 없는 인간은 없잖아요. 저도 저희 아버지를 무척 존경하지만 모든 게 완벽한 분이었다고는 생각하지 않아요. 살아온 시대적 문제, 성격이나 한계, 문제가 분명히 있어요. 이걸 아는 것과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른 훌륭한 점을 인정하는 게 같이 가야 하는데, 많은 사람은 어느 한 부분이 실망스러우면 그 사람 자체를 폄하하는 경우가 많아요. 특히 도덕적 잣대를 엄격하게 생각하는데, 가만 보면 외국 작가들에게는 그렇지 않아요. 여자관계가 복잡해도 자유분방한 사람이라고 평가하는데, 지금 우리와 같이 살고 있는 현 시대의 우리 작가들에게는 그 잣대를 너무 엄격하게 둬요. 하지만 작품이라는 게, 꼭 그 작가의 모든 내면이 들어가 있지는 않아요. 자기도 모르는 어떤 영감 같은 것이 훨씬 더 좋은 작품을 만들게 하는 경우도 있어요. 독자는 저자의 여러 한계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스스로가 중요하게 감동 받은 부분만 인정하면 돼요. 책이라는 게, 사람을 존경하기 위해 읽는 게 아니잖아요. 내가 이 작품에서 어느 부분이 좋았다면, 그 이유는 나에게 있는 거예요. 그걸 인정하고 받아들이면 되는 거지, 그 사람이 훌륭하고 아니고는 전혀 문제가 되지 않아요. 작가의 한계가 오히려 그 사람의 위대함이 됐으면 정말 대단한 거니까, 그걸 인정하면 된다고 생각해요.

 

한계가 때로는 장점이 될 수 있다는 말씀이시죠?


훌륭한 점이 꼭 훌륭함을 낳는 건 아니니까요. 지나치게 도덕적 판단을 하는 건, 문학의 자유로운 발전과 성숙에 좋은 영향을 끼치진 않는다고 생각해요. 자유가 있어야 예술이 피어나잖아요. 자유가 도덕적 기준, 사회적 기준과 꼭 맞는 건 아니니까요. 이 기준은 그 사람이 범죄를 저질렀을 때 갖다 붙이면 된다고 생각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좋은 글을 쓴 사람은 심성도 좋은 사람’일 거라는 환상을 버리기가 쉽지 않아요.


(웃음) 작가는 교만해야 글을 쓸 수 있어요. 글 쓰는 사람뿐만 아니라 예술가라고 하는 사람은 어느 정도 자아도취가 있어야 해요. 자기 예술을 하려면 내가 특별한 걸 한다는 마음이 있어야 뭐라도 나올 수 있지 않을까요? 그런 마음이 없다면, 그냥 공부를 하는 사람이죠. 교만이 동력이 될 수 있어요. 우리가 그 사람을 존경할 필요는 없다니까요. (웃음) 훌륭한 문학작품을 만들면 그 사람도 훌륭한 인격체일 거라고 생각하는데, 잠시 천사가 왔다 갔다고 생각하면 쉬워요. 사람의 힘으로만 되는 게, 아닐 수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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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좋은 책, 편집자의 존재가 드러나지 않아야


출판사에서 편집주간으로 일할 때, 5년 동안 근 200여 종에 달하는 책을 만드시다가 결국 대인기피증과 활자울렁증이 도져 일을 그만두셨는데요.


그 때는 정말 괴롭더라고요. 내가 읽고 싶은 책은 못 읽고 책만 만들어야 했으니까요. 물론 내가 기획한 책이 실물로 나오는 희열은 어디에도 비교할 수 없는데, 몇 년 동안 너무 많은 책을 만들다보니 정말 꼴도 보기 싫었어요.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고집들을 보면서, 이런 인간이 될 바에야 왜 책을 읽지? 그런 환멸도 느꼈어요.

 

어떻게 극복하셨나요?

 

결국 제 글을 쓰고 싶더라고요. 남의 이야기를 너무 많이 들어주고 읽다 보니까. 내 이야기를 좀 하고 싶었어요. 그래서 쓴 책이 『순례자의 책』이에요. 저는 글을 단숨에 쓰는 스타일이 아니라서, 3년이라는 시간이 걸렸어요. 시작은 단순했어요. ‘도대체 책이 무슨 소용이 있는데?’라는 약간 시니컬한 의문에서 내 답을 구해야겠다고 생각하고, 저 혼자서 책을 읽고 쓰기 시작했어요.

 

대인기피증은요?


저희들끼리 편집자에 대해 말할 때, ‘무수리’라고 해요. 남의 뒤치다꺼리를 많이 해줘야 하는 일이잖아요. 제가 출판사에 막 들어갔을 때는 편집자가 한 명밖에 없는 상황이었어요. 그러다 갑자기 규모가 커지니까 내부 사람들 갈등도 있었고 외부 사람들도 많이 만나다 보니 늘 긴장 상태였죠. 한 달에 4,5권을 만들어야 하니까 일 년에 백 편 이상의 원고를 봐야 했는데요. 정말 그 때쯤 되니까 막 화가 나더라고요. (웃음) 이러다가 인간성 다 버릴 것 같아서 그만뒀어요.

 

편집자 경력이 많은 분들을 보면, 대개 글발이 좋으세요. 책을 만들다 보면 당연히 책을 보는 눈도 높아지고, 자기 글을 쓰고 싶은 욕망도 생길 텐데요. 편집자의 역할을 어떻게 보고 계신가요?


저는 정말 좋은 책은 편집자의 존재가 드러나지 않는 책이라고 생각해요. 너무 잘 읽혀서, 편집자가 아예 생각도 안 나게 하는 책, 그런 책이 좋아요. 자꾸 편집이 눈에 띄기 시작하면 그건 잘 만든 책이 아니에요. 편집자는 부재를 통해 증명되는 존재라서 당연히 회의에 시달릴 수밖에 없어요. 원래 그런 거라고 생각하는데, 이런 점 때문에 사람이 살아가는데 가장 큰 덕목을 배울 수 있는 직업인 것 같아요. 제게 대인기피증까지 준 직업이지만, 전 그때 시간이 너무나 소중했어요. 자기 책을 쓰던 남의 책을 만들던, 그 시간들을 정말 잘 견디는 분들을 늘 고맙게 생각해요. 정말 세상에 큰 보탬이 되는 일을 하고 계시니까, 자부심을 가졌으면 좋겠어요.

 

『책 먹는 법』의 편집은 어떻게 진행됐나요?


편집자 분께 전적으로 일임했어요. 제 책에 대해 저보다 더 잘 아는 분은 편집자예요. 저자는 주관적이 될 수밖에 없지만, 편집자는 객관과 주관을 다 갖고 있는 분이니까요. 정말 긍지를 가져야 해요.

 

독서회 이야기도 좀 여쭐게요. 20년이 넘게 독서회 ‘글두레’에서 강사를 맡고 계신데요. 보통 어떤 분들이 모이시나요?


일단 책을 좋아하는 분들이 오세요. 도서관에 공고를 써 붙이니까 궁금해서 오시기도 하시고요. 그런데 계속 모임을 하게 하는 힘은 사람인 것 같아요. 결국 사람이 힘이 되니까 와요. 30대부터 60대, 70대 여성 분들이 모이는데, 요즘은 세대 차이를 조금씩 느껴요. 약간 아쉬운 점은 새롭게 오시는 분들의 경우는 정보나 지식 욕구는 굉장히 강한데, 사람들하고 관계 맺는 일에 대해서는 거리를 많이 두세요. ‘나에게 지식적으로 도움이 되면 계속 하겠지만 그렇지 않다면 언제든지 그만둘 수 있어’라는 마음이 있는 것 같아요. 그런데 이런 마음을 갖고 있으면 지식 자체도 크게 늘지 않아요. 앎이라는 게, 내가 모르는 모든 것들로부터 배운다는 자세가 있어야 하는데 ‘이 책에서 내가 새로운 걸 좀 얻겠어. 정보를 얻겠어’라는 마음만 갖고 있으면, 스스로를 완전히 탈바꿈하는 앎은 얻기가 힘들어요.

 

“책을 이야기하는 모임이지만, 결국 사람”이라면 듣는 귀도 열려있어야겠어요.


사람은 누구에게나 인생의 힘든 시기들이 있잖아요. 젊은 분들은 늘 자기들이 지금처럼, 별탈 없이 살 거라고들 생각하는데, 꼭 우여곡절을 겪는 때가 와요. 20년 동안 독서회를 통해 만난 사람들만 해도 그렇고요. 그런데 정말 힘들 때, 이분들이 서로에게 큰 힘이 돼요. 책 읽는 모임은 다른 모임이랑 달라서, 위로를 해도 좀 더 조심스럽게 하시고 배려심이 깊어요. 그래서 이 모임이 더 힘이 돼요. 독서 모임에 참여하고 싶은 생각이 있다면, 좀 더 마음을 열면 좋을 거라는 생각이 들어요. 

 

요즘 젊은 사람들은 책을 읽기보다는 유명 강사의 강연을 듣거나 멘토를 만나는 걸 좋아해요. 독서회 같은 모임은 시간을 많이 뺏긴다고 생각하고요.


강의를 듣는 게 문제는 아닌 것 같아요. 저 역시 좋은 강의에서 감동을 받고 자극을 받을 때가 많아요. 문제는 강의만 듣는다는 거에 있겠죠. 요즘 우리나라 세태를 보면 계속 강의만 들으려고 하고 책은 안 읽잖아요. 도서관이 평생학습관으로 바뀌면서 책이 더 있어야 할 공간이 강의실로 변경되고 문화센터 개념으로 바뀌었는데, 그건 문제라고 봐요. 강의를 듣는 것도 너무 중요하지만 강의로는 도저히 안 되는 부분도 있어요. 스스로 혼자 생각하는 시간이 없으면 배울 수 없는 것들이 있으니까요. 몸으로 배우는 게 가장 좋지만, 몸으로 배울 때조차 혼자 생각하는 방법을 모르면 성장하기가 어려워요. 만약 경험과 지혜가 비례한다면 노인들은 모든 면에서 지혜로워야 하는데 그렇진 않거든요. 경험 자체를 정리하고 숙고해서 하나의 철학으로 만드는 훈련을 할 수 있어야 하는데, 이건 독서가 해결해주는 문제예요.

 

‘아이와 함께 책 읽는 법’에서는 “독서교육을 하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학부모들이 놀랄 이야기인데요. 독서 습관을 키우는 노하우로는 “내버려 두기, 읽어 주기, 들려 주기, 들어 주기, 전집으로 책장을 빽빽이 채우지 말기”를 꼽아주셨어요.


저희 집 바로 옆에 도서관이 있어요. 주말에 가보면 정말 많은 아버님이 아이들이랑 도서관을 오는데, 너무 많이 읽히세요. 볼 때마다 항상 마음이 아픈데, 사실 책은 하루에 한 권이면 충분하잖아요. 한 권을 충분히 생각하려면, 하루에 한 권도 많을 수 있어요. 아이들은 반복하는 걸 참 좋아하는데, 그 반복이 결코 무의미한 과정이 아니라서 새로운 걸 끊임없이 주기보다는 다양한 방식으로 생각할 수 있도록 시간을 주는 게 현명하다고 봐요. 도서관에서 정말 책을 열 권, 스무 권씩 싸 들고 가는 부모들을 보면 마음이 참 안 좋아요. 전집 같은 경우도 그래요. 할인율도 높고 큰 출판사에서 나온 책이니까 선뜻 구매를 하는데, 애들 입장에서는 그렇게 힘든 게 없어요. 어른도 그렇잖아요. 세계 전집 사다 놓으면 마냥 좋나요? 언제 다 읽나, 부담스럽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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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 앎을 가져가려고 하는 마음


사실 출판계는 늘 불황이라고 하지만, 책을 읽는 사람들은 꾸준히 읽습니다. 그런데 요즘 정말 불황은 ‘문학’인 것 같습니다. 문학을 읽을 여유가, 읽을 때가 아니라는 사람들이 있는데, 그래서 읽어야 하는 게 아닐까 싶기도 해요. 작가님께서는 “문학은 사람을 이해하는 데 특히 나를 아는 데에 가장 좋은 자료”라고 하셨어요.


따지고 보면 픽션이든 논픽션이든 책을 읽는 이유는 사람을 이해하고 세상을 알기 위해서잖아요. 철학이나 역사, 심리학도 다 사람을 이야기하지만 문학은 사람의 행동과 심리를 판단하기보다 묘사하는 데 중점을 두기 때문에, 사람 속을 상상하고 공감하고 이해하는 데 큰 도움이 될 수밖에 없어요. 최근에 문학에서 표절 관련 이슈가 뜨거웠잖아요. 그 이후로 한국 문학이 너무 실망스러워서 이제 한국 소설을 안 읽겠다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꽤 들었어요. 물론 저도 실망한 부분이 있지만 그렇다고 한국 문학을 안 읽는 게 옳은가요? 너무 안 읽어서 그렇게 된 건데요? 지금보다 더 안 읽으면 정말 표절을 해도 아무도 모르겠네요? 왜 이런 일이 일어났는지를 생각해보면 독자에게도 책임이 있어요. 독자들은 마치 자신이 피해자인 양 이야기하시는데, 저는 독자에게도 책임이 있다고 생각해요. 표절은 언제나 어느 나라에서나 있어 왔어요. 이렇게 큰 문제로 이슈화된 건, 우리나라의 권위 있는 작가가 권위 있는 출판사에서 낸 책이라서가 아닐까요? 그런데 이 권위가 어떻게 만들어졌냐를 생각해보면 독자가 스스로 판단하기를 멈추고 권위자에게 기댔기 때문이에요. 권위는 있어야 하지만, 독자가 스스로 권위를 부여할만한 역량을 갖추는 것도 중요해요. 이런 면에서는 독자들이 자기 책임을 회피한 거예요.

 

독자가 준 권위보다 더 큰 힘은 없죠.


독자가 압력을 가해야 바꿀 수 있어요. 독자의 수준이 올라가는 것 외에는 다른 방법으로는 어렵다고 생각해요. 저자, 출판사가 스스로 권위를 내려놓을 하등의 이유가 없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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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으면서 가장 크게 얻는 것, 배우는 것은 무엇인가요?


20대 마르크스주의 책을 읽을 때, 그게 제 삶의 어떤 철학이 됐는데요. 전 항상 지행합일할 생각이 없다면 책을 읽을 필요가 없다고 생각해요. 그 정신으로 늘 읽으니까 사실 좀 고단하죠. 아는 것도 힘든데 행동으로 옮기기까지는 또 얼마나 힘들어요. 하지만 그렇게 해오려고 했어요. 또 하나는 제가 살면서 너무 힘들어서 어떤 책을 읽게 되는 경우가 있어요. 책이 뭔가 제게 답을 줬기 때문에 열심히 읽는 건데요. 저는 스스로 내가 여성이라는 걸 뼈저리게 느낀 게 결혼을 하고 나서예요. 그 때부터 여성에 대해 공부를 하기 시작했는데, 여성으로서의 권리를 주장하는 한편 남편에 대해서도 더 많이 생각하게 됐어요. 살다 보면 불화도 생기고 힘들지만, 근본적인 해결도 결국 이룰 수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이런 걸 모른 채 일희일비하다가 보면, 내 인생이 어느 방향으로 가는지 모르게 돼요.

 

어떤 책이 위로가 됐을 때를 돌이켜보면, 나 스스로를, 내 현재를 이해하게 만들어줬을 때인 것 같아요.


제가 집에서 막내인데, 어머니가 아프셨을 당시에 제가 직업이 없어서 어머니 옆을 오랫동안 지켰어요. 어머니를 보면 안쓰럽고 마음이 아팠지만, 젊은 저로서는 답답한 마음이 왜 없었겠어요. 속으로는 화가 났죠. 그 때 죽음에 대한 책들을 많이 읽었는데, 큰 도움을 받았어요. 자기 객관화에 있어서는 제 독서가 도움이 됐다고 생각해요. 함께 독서회를 하는 분들이 때때로 “도대체 책을 읽는 게 무슨 도움이 되냐?”라고 하시는데, 저 같은 경우는 어머니가 아프실 때 정신분석학 책을 여러 권 읽으면서 내가 느끼는 이런 불만이 어디에서 나오는지를 알게 됐어요. 처음에는 부모를 원망하다가 부모도 하나의 인간일 뿐이라는 걸 깨달았죠. 저 사람도 한 인간인데, 왜 부모로서의 역할만 요구하나, 그런 게 잘못됐다는 걸 깨달으면 원망이 줄 수밖에 없죠. 물론 심리 상담을 받아도 도움이 될 거예요. 그런데 스스로 힘들게 깨닫는 것과 남이 이야기해줘서 빨리 깨닫는 것은 좀 다른 것 같아요. 책을 읽는 내내, 내면의 갈등을 겪는다고 생각해요. 저는 사람들이 뭔가를 너무 빨리 해결하려고 하지 말고, 자기 앎을 가져가려고 하는 마음을 꼭 가졌으면 좋겠어요.

 

그래도 책은 재미없다, 지루하다는 사람들에게 한 마디를 하신다면요?


(웃음) 책은 정말 재미가 없지 않아요. 자기랑 맞는 사람을 못 만난 것과 비슷하게 자기와 맞는 책을 못 만난 거, 아닐까요? TV도 모든 프로그램이 재밌진 않잖아요. 정말 재밌는 순간은 30분 정도일 텐데, 책도 항상 그 정도를 생각하면 좋을 것 같아요. 약간 마음에 안 들어도, 친해지려면 시간이 좀 필요하니까요. 요즘은 좋은 만화책도 많으니까, 가볍게 시작해도 좋을 것 같아요. 최근에 스웨덴 여성만화가가 그린 『가족의 초상』을 무척 재밌게 봤어요. 정말 제가 읽은 최고의 심리책이에요. 작가가 직접 겪은 이야기라서 더 재밌었는데, 너무 재밌게 읽어서 남편에게 추천해줬는데 남편도 손을 못 떼더라고요. 저와 독서 취향이 상당히 다른 편인데도 재밌게 보더라고요.

 

좋아하는 한국 작가들도 궁금합니다.


황정은의 『백의 그림자』를 참 좋게 읽었고, 김사인 시인의 시 좋아하고, 산문은 서경식 선생님의 글을 좋아해요.

 

앞서 독자의 권위, 독자의 책임에 대한 이야기를 해주셨는데요. 독자들에게 더 하고 싶은 말씀이 있다면요.


딱 한 마디예요. 일단 읽으셨으면 좋겠어요. 판단은 나중에 하고요. 잘 읽어주는 건, 저자를 위해서가 아니라 자기 자신을 위해서라고 생각해요. 사람을 만났을 때, 상대의 이야기를 잘 듣는 게 그 상대를 위한 게 아니라, 내가 쓸데없이 오해를 해서 내 마음을 괴롭히지 않기 위해서이기도 하잖아요. 책도 마찬가지예요. 사람들은 대체로 남의 이야기를 듣고 있을 때도 자기 생각을 하고, 남의 책을 읽을 때도 자기 생각을 하는데요. 책 읽는 30분 만이라도 온전히 책에 집중하면 좋을 것 같아요. 요즘은 사람들이 모두 불만이 많고 분노가 많잖아요. 내 이야기를 안 들어준다, 나를 무시한다는 생각들을 참 많이 하는데, 조금만 경청해줘도 좀 덜하지 않을까 싶어요. 내 인생을 위해서 30분만 명상하는 시간, 공부하는 시간으로 도전해도 좋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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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먹는 법김이경 저 | 유유
선생의 유려한 글쓰기와 꼼꼼한 책 읽기 경험이 골고루 잘 섞인 이 책은 아직 책 읽기에 익숙지 않은 독자도 편안히 책과 접할 수 있도록 쓰였다. 따라서 이 책을 읽는 독자는 제대로 책 읽는 데 필요한 영감과 필요한 지식을 얻을 수 있으며, 구수하게 저자가 들려주는 이야기를 따라가노라면 어느새 단단하면서도 묵직한 것이 속에 남는다. 나를 힘들고 고통스럽게 하는 사태에 처했을 때, 그 어떠한 경우에도 굳게 뿌리박아 흔들림 없는 ‘든든한 내면’을 만드는 데 독서만 한 게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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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엄지혜


eumji01@naver.com

오늘의 책

수학 좋아하는 아이로 키우는 엄마표 유아수학 공부

국내 최대 유아수학 커뮤니티 '달콤수학 프로젝트'를 이끄는 꿀쌤의 첫 책! '보고 만지는 경험'과 '엄마의 발문'을 통해 체계적인 유아수학 로드맵을 제시한다. 집에서 할 수 있는 쉽고 재미있는 수학 활동을 따라하다보면 어느새 우리 아이도 '수학을 좋아하는 아이'로 자랄 것이다.

나를 바꾸는 사소함의 힘

멈추면 뒤처질 것 같고 열심히 살아도 제자리인 시대. 불안과 번아웃이 일상인 이들에게 사소한 습관으로 회복하는 21가지 방법을 담았다. 100미터 구간을 2-3분 이내로 걷는 마이크로 산책부터 하루 한 장 필사, 독서 등 간단한 습관으로 조금씩 변화하는 내 모습을 느끼시길.

지금이 바로, 경제 교육 골든타임

80만 독자들이 선택한 『돈의 속성』이 어린이들을 위한 경제 금융 동화로 돌아왔다. 돈의 기본적인 ‘쓰임’과 ‘역할’부터 책상 서랍 정리하기, 용돈 기입장 쓰기까지, 어린이들이 일상생활 속에서 쉽게 접할 수 있는 소재로 자연스럽게 올바른 경제관념을 키울 수 있다.

삶의 주인공은 내가 아니야

저마다 삶의 궤적이 조금씩 다르지만 인간은 비슷한 생애 주기를 거친다. 미숙한 유아동기와 질풍노동의 청년기를 거쳐 누군가를 열렬하게 사랑하고 늙어간다. 이를 관장하는 건 호르몬. 이 책은 시기별 중요한 호르몬을 설명하고 비만과 우울, 노화에 맞서는 법도 함께 공개한다.


문화지원프로젝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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