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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수진 “미친 건 사랑이 아니라고 생각해요”

보컬리스트 임수진 『언젠가 너에게 듣고 싶은 말』 펴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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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피’는 음악을 위한 예명이고요. 이 책은 음악과는 크게 관련이 없어요. 음악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쓰지도 않았고요. 그래서 계피가 아닌 임수진으로 나와야 된다고 생각했죠.

‘계피’라는 이름으로 친숙한 가을방학의 보컬리스트 임수진이 첫 번째 에세이 『언젠가 너에게 듣고 싶은 말』을 출간했다. 그녀가 들려주는 소소한 일상은 나와 당신의 것처럼 낯설지 않다. 누군가를 만나고, 관계를 맺고, 그 안에서 의미를 찾으려는 순간들이 이어진다. 너무나 평범해서 시시하다고 생각했던 일들이 『언젠가 너에게 듣고 싶은 말』에서는 작게 빛나고 있으니, 이상한 일이다.

 

아마도 그녀 특유의 감성 때문일 거라고, 미루어 짐작한다. 따뜻한 듯 서늘하고 달콤한 듯 쌉싸름한 목소리는 ‘계피’의 노래 속에만 있지 않았다. 언젠가 너에게 듣고 싶은 말』의 책장 사이사이에도 스며있었다. 이번에도 그녀는 덤덤하게 읊조리듯 이야기를 들려줬다. 그러면서도 뜨거운 감정은 뜨거운 대로, 서글픈 순간은 서글픈 대로 담아냈다. 이 또한 묘한 일이라 할 수밖에.

 

『언젠가 너에게 듣고 싶은 말』에는 여백이 많다. 구태여 많은 설명을 덧붙이지 않는 까닭이다. 그 빈자리를 채우는 것은 독자들의 이야기다. 임수진의 순간들을 들여다보고 있노라면, 크게 다르지 않았던 나의 감성들이 떠오른다. 그렇게 그녀의 이야기 위로 나의 이야기가 겹쳐진다. 시월의 첫 날, 그녀와 함께한 시간들도 마찬가지였다. 사랑하고 살아가는 평범한 일들에 대한 이야기가 이어졌고, 그녀만의 것이 아닌 나와 당신의 이야기가 쏟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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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피’ 아닌 임수진의 이야기


첫 책을 출간하신 소감이 궁금합니다. 어떤 이야기를 들려줄지 고민도 많이 하셨을 것 같은데요. 어떠셨나요?


책이 나와서 굉장히 설렌다기보다는 덤덤한 것 같은데요(웃음). 그건 앨범을 낼 때도 마찬가지예요. 책을 준비하는 과정에서도 미리 콘셉트를 정해놓지는 않았고요. 손이 가는 대로 썼어요. 저희는 앨범 작업을 할 때도 콘셉트를 잡아놓고 시작하지는 않거든요. 제가 아는 많은 뮤지션들도 일단 곡을 쓴 다음에 좋은 걸 고르시더라고요. 콘셉트를 확실하게 정해놓고 작업하시는 분들도 많이 계시겠지만요.

 

『언젠가 너에게 듣고 싶은 말』에서 일상적인 순간과 감정들에 대해 이야기하셨습니다. 특별함이 아닌 평범함을 선택하신 이유가 있나요?


‘어떤 이야기인가’가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편은 아닌 것 같아요. 같은 경험을 하더라도 그 안에서 감정을 얼마나 세밀하게 느꼈는지, 그 경험에 어떤 의미를 부여하는지에 따라 다르다고 생각하는 편이에요. 개인적으로 이야기의 구성이 기상천외한 것들을 선호하는 편이 아니기도 하고요. 특별한 경험도 흥미롭기는 하지만, 저는 조금 다른 종류의 것을 만들어내는 사람이 아닌가 합니다.

 

지난해에는 정바비 씨가 산문집 『너의 세계를 스칠 때』를 출간하셨잖아요. 이번 책을 준비하시면서 조언을 구하기도 하셨나요?


‘다른 분들은 사적인 이야기를 많이 쓰시던데, 그 정도를 어느 선에서 조절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물어봤었어요. 바비는 ‘그래서 나는 전혀 쓰지 않아’라고 하더라고요(웃음). 피드백을 받고 나서 조금 포함시키기는 했는데, 본인이 전하고 싶었던 주된 내용은 아니었다고 이야기했던 기억이 나요.

 

『언젠가 너에게 듣고 싶은 말』에는 개인적인 이야기가 많이 담기지 않았다고 생각하세요? 


바비가 그런 조언을 하기는 했는데요. 바비랑 저는 워낙 다른 종류의 사람이라서요(웃음). 바비 책과 제 책도 많이 다른 것 같아요. 『너의 세계를 스칠 때』를 보면서도 ‘이 사람은 정말 나랑 다른 사람이구나’하고 생각했어요(웃음).

 

주로 어떤 부분에서 그런 차이를 느끼세요?


일단 바비는 세상에 관심이 많죠. 「취미는 사랑」의 가사에도 ‘내가 취미로 모은 제법 값나가는 컬렉션’이라는 부분이 있잖아요. 바비는 수집가예요. 경험도 수집하고 물건도 수집하고, 여러 가지로 수집을 많이 해요. 그런데 저는 수집에 큰 관심이 없거든요. 경험의 수집에 있어도 마찬가지예요. 저는 여행도 잘 가지 않아요. 바비는 1년에 몇 번씩 가거든요. 저와는 다른 사람이죠.

 

일상적인 이야기를 들려주다 보면 나라는 사람이 드러날 수밖에 없잖아요. 그런 점에서 책을 쓰시는 동안 ‘나를 어디까지 보여줘야 하나’라는 고민을 하셨을 것 같아요.


두렵다고 생각했었는데요. 친구들에게 원고를 보여주면서 ‘이건 너무 부끄러운 경험 아닐까?’라고 말했더니 ‘왜? 다 그런 거 아냐?’라는 식으로 이야기하더라고요. 그래서 ‘꺼내놓고 나면 다 별 게 아니구나’라는 생각을 하기는 했어요.

 

독자 분들은 책 속에서 가을방학의 감성을 발견하게 될까요? 


가을방학의 감성이랑 닮아있는지는 모르겠지만, 보컬이라는 정체성과는 닮아있는 부분이 많지 않나 생각해요. 저는 담담한 보컬이라는 평가를 받거든요. 많이 절제가 되어 있으면서 그 안에서 미묘한 것들을 담아내는 것 같다고요. 『언젠가 너에게 듣고 싶은 말』도 그런 느낌이 아닌가 싶어요. 이를테면, 제 보컬은 딱히 특별할 게 없기는 해요. 바이브레이션을 넣는 것도 아니고 엄청난 성량이 있는 것도 아니잖아요. 기교도 없고요. 그런 게 책에도 적용이 될지는... 보시는 분들이 판단하시겠죠(웃음).

 

『언젠가 너에게 듣고 싶은 말』은 기교 없이 담담하게 써내려 간 이야기라고 볼 수 있겠네요.


네, 그런데 노래는 담담하기만 해서 좋은 건 아니잖아요. 담담하면서도 그 안에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떨리는 무언가가 있어서 전해져야 좋은 노래가 되는 거죠. 말하듯이 노래를 부르는 게 장점이 되려면, 단순히 말하는 것처럼 느껴지지 않고, 그걸 통해서 상대에게 어떤 감정을 촉발시켜야 하는 거잖아요. 책도 그랬으면 좋겠어요. 판단은 독자 분들이 하실 테지만요.

 

‘계피’가 아닌 ‘임수진’으로 책을 쓰신 이유는 무엇인가요?


계피는 음악을 위한 예명이고요. 이 책은 음악과는 크게 관련이 없어요. 음악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쓰지도 않았고요. 그래서 계피가 아닌 임수진으로 나와야 된다고 생각했죠. 책을 통해서 가을방학에 대해 더 이해하고 싶거나 음악 이야기를 더 듣고 싶다고 생각하시는 분들에게는, 책이 기대에 못 미칠 수도 있을 거라고 생각해요. 평소에 저라는 인간에 대해서 보고 싶으셨던 분들이라면 이 책을 보실 수도 있겠죠. 어떤 독자 분께서는 책을 다 읽어도 제가 어떤 사람인지 모르겠다고 하시던데, 그건 무척 잘 파악하신 거예요(웃음). 제 친구들한테도 가끔씩 그런 이야기를 듣거든요. 그 자체가 저의 특성인 것 같기도 하고요. 그게 책에 그대로 반영이 됐을 수도 있겠죠. 그래서 제가 노래를 그렇게 부르는 것 같기도 하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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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친 건 사랑이 아니라고 생각해요


책 중간 중간 뮤지션이기에 고민하는 부분들도 눈에 띄는데요. 그 중 하나가 음색에 대한 고민인 것 같아요.


이를테면 배우들이랑 비슷한데요. 사람들이 기대하는 역할이 있어서 계속 비슷한 인물만 연기하게 되는 경우가 많잖아요. 그러면 배우는 갈등을 겪으면서 연기 변신을 하는데, 그 시도가 성공적인 경우는 그렇게 많지 않은 것 같아요. 저는 무리하게 노력했기 때문에 그런 거라고 생각하거든요. 만약 지금까지와는 다른 연기를 할 수 있다면, 그건 때가 되었기 때문이라고 생각돼요. 아직 때가 되지 않았는데 억지로 하다 보면 보는 사람이 거부하는 거죠. 배우가 맞지 않은 옷을 입은 것처럼 보이니까요. 물론 다른 경우도 많이 있겠지만, 그래서 좋지 않은 성과를 얻게 되는 경우도 있는 것 같아요. 뮤지션도 크게 다르지 않은 것 같고요.

 

“미친 건 사랑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미친 건 그냥 미친 거다”라는 이야기도 들려주셨어요(웃음). 이렇게 말할 수 있는 건 한 때 정말 미쳐봤기 때문이 아닐까 싶은데요. 어떠세요?


그렇죠(웃음). 정말 세게 사랑을 했던 적도 있었죠. 그때는 사랑을 통해서 이루고자 하는 게 당연히 상대의 사랑이라고 생각했었거든요. 그런데 사실은 그렇지 않은 경우가 정말 많더라고요. 이를테면 나는 자존감이 필요한데 상대가 나를 많이 사랑해주면 자존감이 느껴지는 것처럼 생각이 드는 거죠. 그런데 자존감을 느낄 수 있는 통로는 정말 많거든요. 많아야만 하고요. 자기 능력을 통해서 자존감을 가져야 하니까요. 그런데 저도 그렇고 대부분의 여자들이 연애 관계를 통해서 자존감을 느끼려고 하는 것 같아요. 당연히 저도 거기에서 다 벗어나지 않았고요.

 

미치지 않고 사랑하려면 조금 더 힘을 빼고 조금 덜 욕심내야 하는데, 말처럼 쉽지가 않잖아요. 결혼하신 후에는 잘 실천하고 계신가요(웃음)?


당연히 잘 안 되죠. 잘 됐으면 그런 이야기를 쓰지도 않았을 거예요. 그런 생각을 할 필요도 없을 테니까요. 잘 되지 않으니까 생각을 많이 하고 노력도 하고, 그러다 보니까 생각이 의식 속에 자리 잡게 되고, 책에도 쓰게 된 거겠죠. 아마 심리학자들도 자신이 상담해주는 문제들을 완전히 넘어선 건 아닐 거예요. 그랬다면 문제에 관심을 갖지 않을 테니까요.

 

『언젠가 너에게 듣고 싶은 말』을 읽으면서 남편 분에 대한 애정이 흠뻑 묻어난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가끔 그런 생각도 들어요. 이 사람을 왜 이렇게 좋아하는 걸까(웃음).

 

동시에 평범한 결혼 생활의 모습을 보여주기도 하셨어요. 때론 다투기도 하고, 등 돌린 채 잠들기도 하는 일상들이요.


같이 살면 연애할 때와는 조금 달라지는 부분들이 있죠. 깨 볶는 신혼이라는 건 신화 같아요. 사람들에게 아무리 물어봐도 그런 종류의 신혼을 보낸 사람은 없어요(웃음). 깨는 볶죠. 그런데 깨만 볶지는 않아요. 생강 물처럼 톡 쏘는 것도 있고요. 깨만 볶으면 그건 이상한 거예요. 제대로 연애를 안 하고 있다는 뜻이라고 생각해요. 연애를 하다 보면 자신의 콤플렉스가 전부 수면 위로 올라오면서 상대를 탓하기도 하고 스스로 미워지기도 하잖아요. 그런 모습들이 드러나야 제대로 연애를 하는 것 아닐까요?

 

연애할 때와는 달리 결혼이 주는 무언가가 있을 것 같아요.


저는 결혼을 통해서 한 시대를 마무리 짓고 성장하고 싶었어요. 연애를 할 때는 상대가 내가 싫어하는 일을 하면 그냥 밀어내서 헤어져버릴 수 있지만 결혼은 그렇지 않잖아요. 여러 가지 대응 방식을 취하게 되죠. 설득을 해서 푼다든지, 나도 똑같이 화를 낸다든지, 참는다든지, 그냥 웃어준다든지, 다양한 방식들이 있죠. 저는 쉽게 헤어질 수 없는 울타리가 사람의 성장을 담보한다고 생각하거든요. 고통을 피하고자 하는 건 본능이니까, 관계에 문제가 생기면 그냥 헤어져버리고 말잖아요. 새로 연애를 시작하는 좋은 기분을 다시 느끼고 싶으니까요. 그런데 아무리 연애를 해도 사람 간에 나누는 감정은 비슷비슷한 것 같더라고요. 그래서 저를 새로운 틀 속에 넣어보기로 한 거죠.

 

뮤지션도 아니고 아내도 아닌, 서른세 살의 평범한 여자 임수진으로서 고민하는 것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인생이 너무 짧다는 생각을 해요. 벌써 서른셋이라는 게 믿겨지지 않아요(웃음). 한 것도 없는 것 같은데, 뭘 했을까, 헛살았구나, 그런 생각을 가끔 하죠(웃음). 많은 걸 이룬 것 같지만 꼼꼼히 따져보면 그렇지도 않은 것 같고, 내가 그 일들에서 정말 만족감을 느꼈는지 정직하게 물어보면 그런 것도 아닌 것 같아요. 그런데 이런 이야기를 들었어요. 젊은 네가 지금 행복하지 않은데 더 나이 들어서 몸이 아플 때 행복할 수 있을 것 같냐고요. 지금 행복하지 않으면서 그때 더 행복할 거라는 상상을 버리라고 하더라고요. 그 말을 들은 후로는 지금 젊을 때 나의 심리적인 장애들을 넘어서지 않으면 나중에는 더 힘들겠다는 생각을 해요. 다른 한편으로는, 이십 대 때 제가 너무 불행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지금이 제일 행복해요. 청춘도 역시 신화인 것 같아요. 그렇게 많은 시트콤들이 아름다운 공동체와 연애를 그리고 있는 건, 그런 걸 누리는 사람이 없기 때문인 거죠.

 

이십 대에 행복하지만은 않았다고 말씀하셨는데, 그렇게 기억하시는 이유가 있으신가요?


어떻게 보면 저의 이십 대가 한국사회의 성과주의에 희생된 것 같기도 해요. 성과주의의 특성은 아무리 해도 더 해야 된다는 거잖아요. 겉에서 보기에 저는 학력도 나쁘지 않고 밴드도 잘 되고 있었는데도, 그런 걸 하면서 성취감을 느끼기 힘들었어요. 지금보다 더 잘할 수 있을 것 같은 생각이 드는 거예요. 그런데 그건 끝이 없거든요. 성과주의의 특성은 현실에서 내가 어떤 것을 이루었든 얼마나 열심히 했든 상관없이 더 뽑아내는 게 아닐까 싶어요. 저는 그게 지금 십 대 이십 대의 자살률로 나타나고 있다고 생각해요. 성적 때문에 죽는다는 게 진짜 문제가 아니라, 뼛속까지 스며들어있는 더 잘해야 된다는 강박을 도저히 참을 수 없는 거라고 생각돼요. 그걸 공감해주는 사람이 없었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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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 너에게 듣고 싶은 말』 그리고 『세 번째 계절』


‘이만큼 했으면 됐다’는 생각을 갖기가 쉽지 않은 것 같아요. 왠지 그러면 안 될 것 같고, 그럴 시간에 더 노력해야 할 것 같은 강박이 있는 거죠.


저도 마찬가지거든요. 노래를 아무리 해도 할수록 더 힘들어요. 노래를 100번 1000번 부르는 동안 어떻게 항상 그 감정 속에 있을 수 있겠어요. 그런데 노래 부를 때는 그렇게 해야 되거든요. 가끔씩은 관객들이 나를 평가하는 것 같은 기분이 들죠. 아무리 해도 관객을 만족시키지 못할 것 같은 느낌이 들 때도 있거든요. 『언젠가 너에게 듣고 싶은 말』에서 이야기한 평범한 불행이라는 건, 평범한 것이라기보다는 만연되어 있는 불행이라고 생각해요. ‘의식주도 풍족하고 문제가 없는 것 같은데도 왜 불행한가’라는 생각말이죠. 뭔가 공허한 거죠.

 

그 이유가 뭘까요?


심리학에서는 결핍을 삶의 추동력으로 삼았던 부모 세대가 자식들에게 ‘더 해야 된다’는 콤플렉스를 물려줬다고 이야기하더라고요. 부모가 자녀를 양육하는 방식은 그 자녀의 자녀에게까지 이어지고, 콤플렉스도 대물림 된대요. 아래 세대로 내려올수록 콤플렉스는 더 심해지고요. 그런데 부모 세대에게는 ‘더 해야 된다’는 콤플렉스를 가져야 할 이유가 있었어요. 그렇게 하지 않으면 굶어 죽었으니까요. 그런데 그 자녀들은 그렇게 해야 할 이유도 없는데 콤플렉스만 남아있는 거예요. 제가 생각하는 평범한 불행이라는 건 그런 종류의 불행이었던 것 같아요. 어딘가 부족하다, 더 잘해야 될 것 같다, 그런 생각으로 인해서 겪게 되는 것들이죠.

 

『언젠가 너에게 듣고 싶은 말』을 쓰시면서 ‘내 생각이 예전과는 많이 달라졌구나’라고 느끼신 부분도 있었나요?


드러낸다는 게 무엇인가에 대해서 생각을 많이 한 것 같아요. 저는 지금까지 무언가를 드러내지 않았었잖아요. 노래도 드러내지 않는 방식으로 드러내는 걸 택했고요. 미묘한 전략으로 대중문화계에서 생존한 느낌인데요(웃음). 드러낸다는 게 뭔가, 라는 생각을 했죠. 제가 얻게 된 교훈은, 드러내지 않으려고 하는 마음의 벽을 치우면 자연스럽게 드러난다는 거예요. 드러내려고 한다고 해서 드러나는 게 아니고요. (의식적으로) 드러내려고 하면 이미 의도가 반영되어서 과장되는 것 같아요. 이번 책에서 영향을 받아서 부른 가을방학 3집도 마찬가지였어요.

 

지난달에 가을방학의 3집 『세 번째 계절』도 발매가 됐는데요. 이번 책이 많은 영향을 미쳤나요?


정말 많은 영향을 줬어요. 책을 쓰면서, 감정이라는 게 드러내지 않으려고 하지만 않으면 드러난다는 걸 알게 됐는데, 노래할 때도 그 점을 생각했어요. 이번 앨범에 실린 「이별 앞으로」 같은 곡은 더 감정을 담아서 부르려고 했었는데요. 그렇게까지 하면 듣기에 좋지 않더라고요. ‘감정을 느껴서 드러내야지’ 하고 생각하고 녹음했을 때는 좋지 않았고요. 느끼는 대로 했을 때는 자연스럽게 나오더라고요. 그게 정말 너무 어려워요(웃음). 저는 관객이 무서운 걸 알거든요. 관객은 제가 뭘 느끼고 있는지 이야기하지 않아도 다 알아요.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절 보고 있잖아요. 관객 스스로도 인식하지 못하는 사이에 알아채요. 그 분이 제 기분을 알고 있다는 걸 제가 어떻게 아는지도 설명할 수는 없어요. 그렇지만 관객들은 알아요. 남겨주신 리뷰를 봐도 아시는 것 같고요. 제가 긴장을 했는지 안 했는지도 아세요. 그런 건 절대 숨길 수 없다고 생각해요. 제가 노래를 부를 때 감정을 밀어내려고 하면 그것도 알아요. ‘뭐가 안 좋은지는 모르겠지만, 별론데’ 하고 생각하시는 거죠.

 

한 인터뷰에서 “음악적인 부분에 있어서도 음악에서보다 책에서 더 영향을 받는 것 같다”고 말씀하신 적이 있습니다.


어렸을 때부터 똑같은 책을 반복해서 읽는 걸 굉장히 좋아했거든요. 그래서 박학다식하게 알지는 못하는데요(웃음). 책을 읽으면서 보낸 시간 자체는 많은 편인 것 같아요. 어렸을 때는 동화책을 많이 읽었어요. 민음사의 60권짜리 동화전집이요. 그리고 이십 대가 되면서부터는 똑같은 책을 계속 읽지는 않았던 것 같아요.

 

어렸을 적 쌓인 동화적인 감성이 음악 작업에도 영향을 주었을까요?


아무래도 그렇겠죠. 제가 정바비라는 송 라이터를 선택한 이유를 생각해 보면, 멜로디도 무척 좋지만 가사가 정말 좋았기 때문인 것 같기도 해요. 바비 씨의 가사는 호불호가 나뉜다고 생각하는데요. 오버그라운드에서는 그런 식의 가사를 쓰지 않잖아요. 바비의 가사는 상당히 문학적이죠. 장식이 많고, 에둘러서 표현하기도 하고, 그러면서 새로운 효과를 내기도 하고요. 책들을 읽으면서 그런 부분을 바라보는 눈과 취향이 생겼겠죠. 그렇지 않았다면 전혀 다른 종류의 음악을 받아서 불렀을 수도 있겠죠?

 

어떤 노래로 기억되는 뮤지션이 되고 싶으세요?


앨범을 낼 때 어떤 사람이 들어줬으면 좋겠다고 생각하지는 않아요. 마찬가지로 책도 어떤 사람이 읽어줬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어요. 어쩌면 처음부터 뮤지션을 목표로 삼았던 게 아니라서 그런지도 모르겠어요. 자연스럽게 흐름을 타다 보니까 뮤지션이 된 거고, 그래서 더 목표가 없는 것 같기도 해요. 책 역시 어떤 목표 지점을 두고서 쓴 게 아니거든요. 자연스럽게 흘러서 분량이 쌓이니까 출간하게 된 거예요. 가을방학 앨범이랑 똑같은 방식으로 만들어진 거거든요. 책을 써야겠다는 생각은 있었지만 목표는 없었어요. 어떤 음악으로 기억되고 싶다는 마음도 없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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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 너에게 듣고 싶은 말임수진 저 | 달
1983년생, 여자, 대학교 졸업, 대학원 졸업, 앨범 몇 장을 낸 가수인 그녀는 보통의 사람과 다를 것 없는 평범한 사람이다. 학교를 졸업하고, 친구를 사귀고, 연애를 하고, 업으로 삼는 일이 있으며, 결혼도 하게 되는 여성이다. 30대에 접어들기까지 그녀가 경험한 것들과 마주하는 광경들은 다른 사람들의 것과 특별히 다를 것 없이 평범하다. 그녀는 그녀의 일상이 어떻게 흘러왔는지를, 아주 일상적인 시선으로 관찰하여 적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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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임나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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