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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 편집자들이란

조금 이상한 편집자는 모두가 남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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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 이상한 편집자들은 모두가 남성들이었다. 여성은 아직까지는 대체적으로 멀쩡했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책 『샐러드를 좋아하는 사자』중 <다채로운 편집자들>이라는 에세이를 보면 그 마지막 부분에 ‘어디까지나 우연이겠지만, 내가 인생의 과정에서 만난 컬러풀하달까, 조금 이상한 편집자들은 모두가 남성들이었다. 여성은 아직까지는 대체적으로 멀쩡했다. 왜 그런지는 잘 모르겠다. 왜 그럴까요?’라는 부분이 있는데 나는 그걸 읽으며 절로 고개를 끄덕였다. 나도 비슷한 경험을 했기 때문이다.
 
전업으로 글을 쓰기 시작한 지 얼마 안 된, 책도 두어 권 낸 것이 전부였던 시절, 한 번은 한 남성 프리랜서 편집자의 책을 내자는 연락을 받았다. 당시 아이가 어려서 집에서 육아를 하면서 글을 쓰던 터라 죄송하지만 집으로 좀 방문해달라고 했다. 그는 흔쾌히 승낙했다. 하지만 집으로 들이는 순간부터 나는 후회했다. 그는 소파에 ‘쩍벌남’ 자세로 너무 편안하게 앉아 자신이 나를 위해 구상한 책에 대해 말하기 시작했는데 제목과 목차와 주요내용까지 다 요점정리를 한 후, 이것대로만 내가 쓰면 대박을 칠 거라며 침을 튀기며 반복했다. 약장수처럼 장담하는 그에게 그래서 ‘그럼 당신은 그간 어떤 책을 편집해왔냐’고 물었다. 한데 그는 책 몇 권의 타이틀을 말해주면서 ‘읽어볼 필요는 없다. 솔직히 그럴 정도로 괜찮은 책들은 아니다’라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아마 내 책도 만들고 나면 다른 데 가서 저렇게 말하겠지 싶었다. 더불어 용건을 다 얘기했으면 자리에서 일어나야 하는데 이 남자는 일어설 생각을 안 하고 뭉개면서 자꾸 다른 이야기들을 꺼내는 것이었다! 그 일로 아무리 사정이 있어도 절대 첫 미팅을, 그것도 남자편집자를, 집에서는 하지 말아야겠다고 다짐했다.  
 
또 한 번은 내가 한 출판사로 갔을 때 일어났다. 한 여성편집자의 책 출간 섭외를 받고 나서 수락할까 말까를 고민하던 중 그녀의 상관이던 중간관리자가 ‘한 번 만나서 식사나 하자’고 초대해서 점심시간에 방문했던 것이다. 아마도 윗사람이 섭외에 힘을 실어주고자 하는 나름의 접대자리가 아닐까 생각했다. 회사위치가 애매해서 택시를 타고 한참을 갔다. 사무실로 찾아가 인사를 드린 후 회사 밖으로 나왔다. 그런데 그 남자상관이 우리를 데려간 곳은 회사에서 엎어지면 코  닿는 허름한 ‘배달형’ 중국식당이었다. 사람들도 없는 홀의 테이블에 앉자마자 그는 ‘난 자장면’이라면서 우리에게 ‘자장면이냐 짬뽕이냐’를 물었고 나는 그 대목에서 아연실색하고 말았다. 만원이 넘는 택시비를 내고 일하는 시간 두어 시간을 빼서 여기까지 왔더니 자장면과 짬뽕? 하도 어이가 없어서 그보다 500원 비싼 볶음밥을 시켰다. 당연히 그 출판사의 섭외는 그 날로 거절했다. 나를 무시해서 기분이 나쁜 게 아니라 기본적인 센스가 없는 것이 문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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짜장이냐 짬뽕이냐 그것이 문제로다 

 

마지막으로 아스라한 추억으로 씹고 싶은 분은 한 출판사 중역 남자 분이다. 그 때는 이미 그 출판사에서 낸 책이 예상 외로 잘 팔린 덕에 그것을 축하하는 회식자리였다. 그 중역 분이 입을 연 것은 싱싱한 회들이 룸으로 들어오고 잔에 맥주 한 잔씩 따른 후 다함께 첫 건배를 하고 나서였다. ‘위하여’를 외치며 맥주 한 잔을 비우고 나서 한다는 그의 첫 마디 : “책을 다 읽어봤는데 사실 조금 아쉽고 부족한 부분이 있었어요.” 나는 겉으로는 미소지으며 진지하게 듣고 있었지만 이 무슨 해괴망칙한 비판적 평가인가 싶었다. 방금 전까지 이렇게 반응이 좋을 줄은 몰랐다며 좋~다면서 기쁘게 건배를 하자마자 바로 할 소리인가. 그리고 아쉽고 부족한 것이 있다면 미리 책을 읽고 책을 출간하기 전에 말하라고요… 좋은 분위기에 찬물 확 끼얹은 그 순간 담당 편집자들은 민망해서 다 고개를 돌리고 있었다.
 
믿어달라. 나는 그다지 까다롭지 않은 필자다. 책만 잘 만들어준다면 다른 건 바라는 게 없다. 하지만 어째 매번 이상한 방향으로 내 인내심을 시험에 들게 한 것은 늘 남성편집자들이었으니 이것 역시도 하루키씨 말대로 어디까지나 우연일까?  

 

 

 

샐러드를 좋아하는 사자

무라카미 하루키 저/오하시 아유미 그림/권남희 역 | 비채

책을 덮은 후 ‘재미있다’ ‘감동적이다’와 같은 단순 감상으로 그치지 않고, 독자들의 토론까지 이어지는 작품이 몇이나 될까? 신작이 나온다는 소식만으로 전세계를 들썩이게 만드는 작가는 또 몇이나 될까? 국경, 세대, 성별, 문화를 초월해 늘 폭발적인 베스트셀러를 낳는 작가 무라카미 하루키가 신작 에세이로 돌아왔다! 『샐러드를 좋아하는 사자』는 『채소의 기분, 바다표범의 키스』에 이어, 패션 주간지 「앙앙」에 연재한 52편의 권두 에세이를 한 권으로 묶은 것이다.

 

 

 

 

 

 

[관련 기사]

- 임경선 “사랑은 관대하게 일은 성실하게” 〈Across the universe〉
- 완전한 개인의 탄생을 환영하며 : 임경선 ‘나라는 여자’
- 좋은 편집자란
- 밥벌이의 덫
- 읽을 책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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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임경선 (소설가)

『태도에 관하여』,『나의 남자』 저자

샐러드를 좋아하는 사자

<무라카미 하루키> 저/<오하시 아유미> 그림/<권남희> 역11,700원(10% + 5%)

소설보다 흥미로운 전설의 에세이 '무라카미 라디오' 완결판! 책을 덮은 후 ‘재미있다’ ‘감동적이다’와 같은 단순 감상으로 그치지 않고, 책을 덮은 후 독자들의 토론까지 이어지는 작품이 몇이나 될까? 신작이 나온다는 소식만으로 전세계를 들썩이게 만드는 작가는 또 몇이나 될까? 국경, 세대, 성별, 문화를 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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