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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주비행사들의 대화, 왜 내 가슴이 뜨끔하지?

앤드루 스미스의 『문더스트』, 메리 로치의 『우주 다큐』에서 선택한 대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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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생 그런 기회가 올지 모르겠지만 우주에서 지구를 딱 한 번만 바라보고 싶다. 어떤 기분일까. 내가 어떻게 느껴질까. 수많은 우주인들은 ‘황홀할 뿐이다’라고 말한다. 전문가들은 우주에서의 환각 상태를 ‘인식 과부하로 인한 지적 환각 상태’라고 부른다. 우주인 제리 리넨거는 우주에서의 감각을 이렇게 적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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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째 문제. 관제소와의 대화


제미니 4호의 우주비행사 에드워드 화이트(Edward White)는 NASA 최초의 우주 유영을 하고 있었다. NASA는 화이트가 걱정스러웠다. 우주 유영에서의 도취증으로 인해 판단 능력을 잃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관제소의 우주선 교신 담당자인 거스 그리섬(Gus Grissom)은 곧장 화이트의 상관이자 우주선의 사령관인 맥디비트(James McDivitt)에게 연락을 취했다. 세 사람의 대화를 듣고 빈칸에 알맞은 대화를 선택해보자. (아래 대화는 앤드루 스미스의 책 『문더스트』와 메리 로치의 책 『우주 다큐』의 내용을 편집한 것입니다.)

 

화이트 : 백만장자가 된 것 같은 기분이 들어요. 굉장해요.
맥디비트 : 자넨 꼭 어머니의 자궁에 들어가 있는 것처럼 보이더군.
(… 시간 경과…)
그리섬 : 제미니 4호, 화이트를 당장 귀환시키기 바람.
(화이트는 못 들은 척하며 지구를 내려다보고 있다.)
화이트 : 사령관님, 우린 지금 어느 상공에 있습니까?
맥디비트 : 잘 모르겠네. 지금 서반구 상공이지 싶군. 그런데 지상 관제소에서 자네가 귀환하기를 바란다네.
화이트 : 아, 희망봉입니다. 사진 몇 장만 찍겠습니다.
맥디비트 : 아니, 돌아오게, 어서.
(잠시 멈춤)
화이트 : 돌아가겠습니다. 하지만 들어보세요. 억지로 끌려 들어가고 싶진 않지만, 가긴 가겠습니다.
(…2분 후…)
맥디비트 : 당장 돌아와.
화이트 : 지금은 우주선을 찍으려 하고 있어요.
맥디비트 : 에드, 당장 안으로 들어와!
화이트 : (                             )

 

다음 중 화이트가 한 말로 적절한 것은?

 

1) 아, 우주에서 보는 지구는 정말 아름답습니다.
2) 지금이 제 삶에서 가장 슬픈 순간입니다.
3) 셀카 딱 한 장만 찍고 갈게요.
4) 자꾸 들어오라고 하니까 더 들어가기 싫잖아요.
5) 맛있는 저녁 만들어줄 때까지 절대 안 들어갈 거예요.

 

(문제 해설)
1965년, 세 사람의 대화는 라디오를 통해 실황 중계가 되고 있었다. 사람들은 대화를 들으며 어떤 우주를 상상했을까. 지글지글한 잡음과 세 사람의 목소리 속에서 어떤 미래를 떠올렸을까. 50년이 지난 지금, 인간은 더 먼 우주로 날아가고 있다. 에드워드 화이트가 우주 유영을 하는 장면(//www.youtube.com/watch?v=7K5DiKsZhTk)을 보면서 이 대화를 읽으면 마음이 숙연해지기도 한다. 인간은 대체 어떤 존재이길래 우주의 비밀을 밝혀내기 위해 수많은 것들을 바치는 것일까.

 

 

대화 속에서 세 사람의 입장이 모두 이해가 된다. 그리섬은 우주의 상황을 전혀 모르기 때문에 안전을 최우선으로 생각할 수밖에 없다. 실제 화이트가 우주선으로 복귀하는 데 걸린 시간은 25분이었다. 조금 더 지체했더라면 상황이 어떻게 됐을지 알 수 없었다. 맥디비트가 화이트에게 소리를 지른 것도 이해가 된다. 만약 산소가 부족해 화이트가 우주선 밖에서 의식을 잃을 경우, 그와의 연결을 끊어버리라는 명령을 받았기 때문이다. 의식을 잃은 화이트를 해치 안으로 데리고 오려면 제미니 4호 자체가 위험해질 수 있었다. 에드워드 화이트의 심정도 이해가 된다. 평생 한번 있을까 말까 한 기회인데, 1분만 더 있고 싶은 마음을 누가 모를까. 그렇다면 답은 3번이 아닐까. 지구를 배경으로 셀카 한 장 찍고 싶었을 것이다. 그러나 3번의 보기에는 (너무 쉬운) 함정이 있다. 1965년이 배경이니까, 셀카 따위 찍을 수 없었겠지. 셀카봉이라도 있었다면 참 좋았을 텐데 말이다.

 

영화 <그래비티>에서는 (‘휴스턴’으로 통칭되는) 관제소가 중요한 캐릭터로 등장한다. 주인공 매트(조지 클루니)의 넋두리를 받아주는 곳도 휴스턴이며, 스톤 박사(산드라 블록)의 건강 상태를 확인해주는 곳도 휴스턴이고, 가벼운 농담으로 우주인들의 스트레스를 풀어주는 곳도 휴스턴이다. 휴스턴을 살아 있는 생물체의 이름이나 사람의 이름으로 생각해도 좋을 것 같다. 휴스턴은 사람들의 안전을 걱정하고, 여러 가지 충고도 해준다. 잔소리를 늘어놓지만 그게 다 걱정이 돼서 그러는 거다. 문제가 발생했을 때 가장 빨리 해결책을 찾아주는 것도 휴스턴이다. 여러모로 어머니를 닮은 캐릭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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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이트와 그리섬과 맥디비트의 대화를 다른 방식으로 생각해보자. 그리섬은 어머니, 맥디비트는 아버지, 화이트는 철없는 아들 같다. 아버지는 어머니에게 추궁 당하는 게 일상이고, 어머니는 아들 걱정을 하고, 철없는 아들은 신기한 세상에 사로잡혀 정신을 차리지 못한다. 그렇다면 답은 4번이 아닐까. 광활한 우주의 풍경에 넋이 나간 화이트는 사춘기로 돌아간 것이다. 빨리 돌아오라는 아버지의 말에 짜증을 내면서 우주에 남고 싶어한 것이다. “자꾸 들어오라고 하니까 더 들어가기 싫잖아요.”가 답이라면 대화는 재미없어진다. 짜증 섞인 한 마디 때문에 우주의 아름다운 풍경이 사라지고 만다.

 

유쾌한 과학 저널리스트 메리 로치는 『우주 다큐』에서 우주인들이 겪게 되는 짜증에 대해서 상세하게 기록하고 있다. 우주에서 갇혀 지내게 되면 수많은 감정들이 분노로 변하게 된다고 한다. 동료 우주인은 눈앞에서 함께 고생하고 있는 게 뻔히 보이므로 모든 분노는 관제소로 향할 수밖에 없다.

 

좌절감을 우주비행 관제 센터의 직원에게 터뜨리는 일은 우주비행사의 유서 깊은 전통으로, 심리학계에서는 ‘감정전이(displacement)’라고 한다. 샌프란시스코 캘리포니아 주립대학교의 우주 정신의학자 닉 캐나스는 우주비행사들은 6주간 임무를 수행하며 동료 승무원과 거리를 두고 자기 영역을 확보한 채, 서로에 대한 적개심을 관제 센터로 옮긴다고 말한다.

 

짐 로벨은 대부분의 적개심을 제미니 7호의 영양사에게 옮겼던 것 같았다. 임무 기록에 따르면 그는 언젠가 우주비행 관제 센터에 이렇게 말한다.

 

“챈스 박사에게 드리는 말. 꼭 눈보라 속에서 달랑 소고기 샌드위치 하나를 들고 있는 것 같군요. 끼니당 300달러라는데 이것보다는 더 좋은 메뉴를 만드실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일곱 시간 뒤, 그는 다시 마이크 앞으로 간다.

 

“챈스 박사에게 드리는 또 다른 말. 닭고기와 채소 요리, 시리얼 번호 FC680, 입구가 거의 막혀버렸네요. 음식을 꺼낼 수조차 없습니다. 챈스 박사에게 계속해서 드리는 말. 막 봉인을 뜯었습니다. 이번에는 닭고기와 채소 요리가 용기 사방에 튀어 있네요.”
로벨의 임무는 단 2주뿐이었다.

 

우주에서의 식사 생활에 대한 글을 읽는데, 왜 내 가슴이 뜨끔한 걸까. 이건 마치 내가 중학교 때 도시락 투정을 하던 모습을 보는 것 같다. “어머니, 도시락 반찬에 소시지라도 좀 넣어주면 안 되는 거예요? 김치 들어 있는 반찬통 쏟는 바람에 제가 얼마나 창피했는 줄 알아요?” 그때의 나는 도시락 반찬이 마음에 들지 않았던 게 아니라, 세상 자체가 마음에 들지 않았던 것이다. 공부를 왜 해야 하는지 알 수 없었고, 전망이 보이지 않는 미래에 불안했다. 인간은 지구에서나 우주에서나 별로 달라지지 않는 모양이다. 그렇다고 해서 정답이 5번이 될 수는 없다. 그건 우주에서 할 수 있는 말 중에 가장 멍청한 말이겠지.

 

평생 그런 기회가 올지 모르겠지만 우주에서 지구를 딱 한 번만 바라보고 싶다. 어떤 기분일까. 내가 어떻게 느껴질까. 수많은 우주인들은 ‘황홀할 뿐이다’라고 말한다. 전문가들은 우주에서의 환각 상태를 ‘인식 과부하로 인한 지적 환각 상태’라고 부른다. 우주인 제리 리넨거는 우주에서의 감각을 이렇게 적었다.

 

은하가 100조 개나 있다는 사실이 압도적으로 머릿속을 지배하고 있어서 잠자리에 들기 전에 아예 그것에 대해 생각하지 않으려 한다. 그렇게 엄청난 크기를 생각하면 너무 흥분되거나 동요되어서 잠을 이룰 수가 없기 때문이다.

 

정답은 2번이다. 1번도 답이 될 수 있다. 화이트는 한 번쯤 그렇게 말했을 것이다. 정말 아름다웠을 테니까. 눈을 떼지 못할 정도로 아름다웠을 테니까. 그렇지만 2번의 감정이 좀더 압도적이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풍경 앞에 서 있는 한 사람이 있다. 그는 이 풍경을 뒤로 한 채 돌아서야 한다. 언제 다시 돌아올지 기약할 수 없다. 아마도, 다시는 이렇게 아름다운 순간이 돌아오지 않을 것이다. 모든 게 흘러가버릴 것이다. 인간은 본능적으로 그걸 안다. 시간 속에 있는 사람은 그걸 안다. 지금이 자신의 삶에서 가장 슬픈 순간이라고 느낀다면, 이전의 일들이 그토록 아름다웠기 때문일 것이다. 사실, 내가 생각하는 이 문제의 답은 1번, 2번, 3번, 4번, 5번을 순서대로 놓는 것이다. 내가 우주에서 지구를 바라보고 있는데, 누군가 자꾸만 귀환하라고 할 때 이렇게 대답해줄 거다.

 

“여긴 정말 아름다워요. 그런데 너무 슬프기도 하고요. 조금만 기다려보세요. 셀카 한 장만 찍고 갈게요. 아, 진짜 왜 자꾸 보채세요. 들어간다잖아요. 자꾸 그러면 확 우주로 날아가버리는 수가 있어요. 음식이 맛없으니까 들어가기가 싫다고요. 맛있는 떡볶이라도 만들어주면 금방 돌아갈게요.”

 

아, 참으로 인간적인 대답이 아닌가.

 

 


참고도서

 

우주다큐

메리 로치 저/김혜원 역 | 세계사 | 원제 : Packing for Mars

누구나 이해하기 쉬우면서도 어디서도 접해본 적 없는 이야기들은, 전문가들이 쓴 어려운 책들이 일색인 과학 분야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이 책만의 가장 큰 특징이다. 또한 메리 로치 특유의 유쾌하고 익살맞은 문체와 본문부터 각주까지 세밀히 녹아 있는 유머, 방대한 정보를 한국 독자들이 이해하기 쉽도록 편집했다. 우주과학 역사를 한눈에 볼 수 있는 연대표는 독자들로 하여금 책을 읽은 후, 또 다른 즐거움을 선사한다.

 

 

 

 

 

 

문더스트

앤드루 스미스 저/이명현,노태복 공역 | 사이언스북스 | 원제 : Monndust

『문더스트: 달을 밟은 아폴로 우주인 9명의 인터뷰(Monndust)』는 아폴로 우주 계획에 참여했던 우주 비행사들과 관계자들의 인터뷰를 엮은 책으로 아폴로 계획에 대한 찬사나 비판, 음모들이 외면했던 아폴로 우주인들의 내면 이야기를 통해 그들이 지구 귀환 후에 밟아야 했던 인생의 궤적들을 돌아보고 있다.

 

 

 

 

 

 

 

우주비행, 골드핀을 향한 도전

마이크 멀레인 저/김은영 역 | 풀빛 | 원제 : Riding Rockets

『우주비행, 골드핀을 향한 도전』은 우주선을 타고 우주까지 날아갔다 되돌아온 NASA의 진정한 우주비행사 마이크 멀레인이 우주비행사들의 세계를 누구보다도 솔직하게 보여주고 있는 책이다. 그는 우리에게는 최초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우주비행과 우주비행사들의 실상을 낱낱이 보여준다. 책에는 한번 시작하면 56시간 동안 계속되는 시뮬레이션 훈련, 우주 공간에서 자유롭게 움직이기 위한 우주유영 훈련, 임무를 수행하는 데 필요한 로봇팔 조작 훈련 등 우주 공간에서 겪을 험난한 일에 대비하는 훈련들을 반복함으로써 강인한 인간으로 거듭나는 과정이 담겨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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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김중혁(소설가)

소설 쓰고 산문도 쓰고 칼럼도 쓴다. 『스마일』, 『좀비들』, 『미스터 모노레일』,『뭐라도 되겠지』, 『메이드 인 공장』 등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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