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색

연극 <택시 드리벌>, 합승 하실래요?

연극 <택시 드리벌>

  • 페이스북
  • 트위터
  • 복사

연극 <택시 드리벌>이 11년 만에 다시 무대에 올랐다. 김수로 프로젝트 12탄으로 부활한 것. 작품은 세월의 간극을 느끼지 못할 만큼 지금의 이야기를 충실하게 담아냈다. 나와 당신의 일상이 차창 밖의 풍경처럼 펼쳐진다.

택시_분할포스터_150814_WEB.jpg

 

 

연극 <택시 드리벌>, 합승 하실래요?


‘아버지는 택시 드라이버’라고 읊조린 이는 자이언티뿐만이 아니었다. 약 20년 전, 영화감독 장진도 같은 이야기를 들려줬다. 물론 그는 ‘아버지는 택시 드리벌’이라고 했을 테지만. 1997년 초연한 연극 <택시 드리벌>은 장진 감독이 택시 기사였던 아버지를 떠올리면서 집필한 작품이다. 아버지를 통해 들여다봤던 소시민의 삶이 조각조각 박혀있다.

 

개인택시 한 대를 가지면 출세했다는 말을 듣던 시절이 있었다. 1종 면허를 딴다는 건 그런 성공에 한 발짝 다가섰다는 의미였고, 빚을 내서라도 택시를 뽑는 건 돈을 벌기 위한 투자로 여겨지던 때였다. 장진 감독의 아버지 세대가 살아낸 시대였고 <택시 드리벌>의 덕배에게 주어진 세상이었다. ‘taxi driver’를 ‘택시 드리벌’이라 읽는다고 해서 창피할 일은 없었다. 덕배처럼 짧은 가방끈을 가진 사람은 흔했으니까. 그래도 폼나게 살고 싶었다. 클래식 음악에 대해 아는 것은 없었지만 그 음악을 듣는 자신의 모습은 어딘지 모르게 멋져 보였다.

 

그러나 현실은 녹록지 않았다. 서울로 상경해서 택시 운전을 하다 보면 금세 자리도 잡고 돈도 벌 줄 알았지만, 성공과 꿈은 요원했고 피로와 염세는 짙어졌다. 이른 새벽부터 늦은 밤까지 차 안에 갇힌 채 사람들에게 시달려야 하는 오늘이 반복되고 있었다. 지난밤의 숙취에서 깨어나지 못한 승객을 태우는 것으로 하루를 시작했고, 밤의 어둠 뒤에 숨어 끈적한 애정행각을 벌이는 승객과 만나는 것으로 일과를 마무리했다.

 

일상의 무게만큼이나 그를 짓누르는 것은 지키지 못한 연인 화이에 대한 기억이다. 고향을 떠나오며 약속했던 마음과 재회는 빛이 바래버렸다. 덕배는 끝내 연인의 마지막을, 자신의 순정을 지켜내지 못했다. 그 앞에서 덕배의 현재도 무너져 내렸다. 자괴감에 빠진 그는 새로운 사랑을 감히 꿈꾸지 못한다. 택시 안에 남겨진 핸드백을 보면서 어쩌면 다시 연애를 시작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지만 그럴수록 뚜렷해지는 화이의 기억 때문에 섣불리 용기를 낼 수가 없다.

 

택시드리벌_박건형,김수로,강성진,임철형.jpg

 


우리는 모두 순정을 잃었다


<택시 드리벌>은 서로 다른 시간의 이야기를 잘 버무려놓은 작품이다. 덕배는 지나간 시대를 살아가고 있지만 그의 삶에 투영된 것은 현재 우리의 모습이다. 택시의 승객들은 이 시대의 군상들을 압축적으로 보여준다. 갑질을 일삼는 강남 사모님, 정치와 지역감정에 대한 이야기로 대립하는 아저씨, 성형수술 때문에 얼굴에 붕대를 감은 아가씨 등 이곳의 일상을 증언하는 인물들이 등장한다. 그들은 독특한 캐릭터와 재치 있는 대사를 앞세워 관객들의 웃음을 유발한다. 덕배가 가지고 있는 상처와 일상의 고단함 가운데에서도 <택시 드리벌>이 코믹극으로써 매력을 잃지 않는 이유다.

 

막이 내릴 때 쯤 관객들은 우리의 삶이 택시 기사의 그것과 다르지 않음을 깨닫는다. 덕배와 마찬가지로 우리의 하루는 수많은 타인들로 기억된다. 누군가를 만났는지, 누구와 함께 웃었는지, 어떤 사람 때문에 상처받았는지 이야기하는 것으로 일상은 요약된다. 갇혀버린 듯한 느낌을 지울 수 없는 것도 택시 기사만의 운명은 아니다. 생존의 각축전이 벌어지는 공간은 누구에게나 벗어나고 싶은 곳이다. 그 안에 있을 때면 자신이 어울리지 않는 옷을 입고 있는 것은 아닌지 불안해지곤 한다. 그러나 현실에서 뛰쳐나가기란 늘 버거운 일이다. 그렇게 우리는 같은 자리에 매여서 비슷한 시간들을 쌓아간다.

 

화이에 대한 덕배의 기억도 낯선 것이 아니다. 그에게 있어 화이는 순수했던 시절의 상징이고 순정 그 자체다. 그것은 사랑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어느 샌가 멀어져 버린, 그래서 잊어버린 꿈과 시간과 마음과 장소의 동의어다. 그런 순정을 지켜내지 못한 기억은 누구에게나 있다. 우리는 모두 순수를 지키지 못한 자책감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한 것이다.

 

<택시 드리벌>은 관객에게 기분 좋은 드라이브의 경험을 안겨준다. 덕배의 택시에 합승한 관객들은 서로 다른 빛깔을 가진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는다. 그리고 운행을 마칠 때가 되면 켜켜이 쌓인 이야기 속에서 자신의 것을 찾아낸다. 나의 하루는 어땠는지, 요즘 나는 어떻게 지내고 있는지, 돌아보게 된다.

 

 

 

[추천 기사]

- 뮤지컬 <드림걸즈> 눈부시게 빛나는 그녀들
- 뮤지컬 <그남자 그여자>, 서로 다른 언어로 사랑을 말하다
- 진짜 북한군 4명 VS 남한군 2명, 그들은 운명은?
- 꿈을 파는 데 지친 이들에게 - 뮤지컬 <곤, 더 버스커>
- 우리는 친구일까 연인일까? - 연극 <70분간의 연애>

 
‘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예스24 채널예스

이 기사가 마음에 드셨다면 아래 SNS 버튼을 눌러 추천해주세요.

독자 리뷰

(0개)

  • 독자 의견 이벤트

채널예스 독자 리뷰 혜택 안내

닫기

부분 인원 혜택 (YES포인트)
댓글왕 1 30,000원
우수 댓글상 11 10,000원
노력상 12 5,000원
 등록
더보기

글 | 임나리

그저 우리 사는 이야기면 족합니다.

기사와 관련된 공연

오늘의 책

수많은 사랑의 사건들에 관하여

청춘이란 단어와 가장 가까운 시인 이병률의 일곱번째 시집. 이번 신작은 ‘생의 암호’를 풀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인 사랑에 관한 단상이다. 언어화되기 전, 시제조차 결정할 수 없는 사랑의 사건을 감각적으로 풀어냈다. 아름답고 처연한 봄, 시인의 고백에 기대어 소란한 나의 마음을 살펴보시기를.

청춘의 거울, 정영욱의 단단한 위로

70만 독자의 마음을 해석해준 에세이스트 정영욱의 신작. 관계와 자존감에 대한 불안을 짚어내며 자신을 믿고 나아가는 것이 결국 현명한 선택임을 일깨운다. 청춘앓이를 겪고 있는 모든 이에게, 결국 해내면 그만이라는 마음을 전하는 작가의 문장들을 마주해보자.

내 마음을 좀먹는 질투를 날려 버려!

어린이가 지닌 마음의 힘을 믿는 유설화 작가의 <장갑 초등학교> 시리즈 신작! 장갑 초등학교에 새로 전학 온 발가락 양말! 야구 장갑은 운동을 좋아하는 발가락 양말에게 호감을 느끼지만, 호감은 곧 질투로 바뀌게 된다. 과연 야구 장갑은 질투심을 떨쳐 버리고, 발가락 양말과 친구가 될 수 있을까?

위기는 최고의 기회다!

『내일의 부』, 『부의 체인저』로 남다른 통찰과 새로운 투자 매뉴얼을 전한 조던 김장섭의 신간이다. 상승과 하락이 반복되며 찾아오는 위기와 기회를 중심으로 저자만의 새로운 투자 해법을 담았다. 위기를 극복하고 기회 삼아 부의 길로 들어서는 조던식 매뉴얼을 만나보자.


문화지원프로젝트
PYCHYESWEB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