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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정호 PD, 대중을 유혹하는 7가지 기술

『대중 유혹의 기술』펴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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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이지 않는 손’은 미디어에도 있다. 그것은 대중으로 하여금 물건을 구매하도록 만들고, 특정 이미지를 각인시키며, 무언가를 주목하거나 간과하게 만든다. 이 유혹에 넘어가지 않기 위한 방법은 한 가지 뿐이다. 『대중 유혹의 기술』에 담긴 그들의 전략을 파악하는 것.

깜빡 속았다. 최초로 거리를 활보했던 여성 흡연자들이 뿜어냈던 여권 신장의 상징이, 베이컨과 달걀이 점령한 아메리칸 브렉퍼스트가, 1930년대 미국인들의 거실 한편을 차지했던 붙박이 책장이, 모두 ‘만들어진’ 작품이었다니. 더구나 이 모두가 한 사람의 대중홍보 전략가에 의해 치밀하고 정교하게 고안된 이미지일 줄이야.

 

『대중 유혹의 기술』이 들려주는 진실 앞에서 기존의 통념들은 소리 없이 허물어져 내린다. 당신이 떠올리는 이미지가, 사실이라 믿어 의심치 않는 사건의 실체가, 조금도 가공되지 않은 것이라 확신할 수 있을까. 만약 그렇다면, 당신을 에워싸고 있는 미디어의 힘을 간과하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보이지 않는 손’은 도처에 있다. 그것은 대중의 심리를 꿰뚫고 마음을 움직이는 기술을 가지고 있고, 모든 종류의 텍스트를 동원해 자신이 원하는 방향으로 반응을 이끌어낸다. 한 장의 사진과 한 편의 드라마, 심지어 언론 기사와 주변의 입소문까지도 ‘보이지 않는 손’으로부터 완전히 자유롭지 못하다. 한 번도 맛본 적 없는 과자지만 먹고 싶다는 강렬한 유혹을 뿌리치기 어렵고(허니버터칩) 짜릿한 스포츠 영상을 보는 것만으로도 에너지드링크의 효과를 떠올리는 일이(레드불) 가능한 이유다.

 

『대중 유혹의 기술』에 담긴 7가지 유혹의 기술은 몇 주 전 EBS 다큐프라임 <한국인의 집단심리 - 우리 WE>를 통해 공개된 바 있다. 갓 나온 따끈따끈한 정보를 책 속에서 만날 수 있게 된 건, 프로그램 제작 단계에서부터 출간을 염두에 둔 오정호 PD 덕분이다. 그는 방송 시간의 제약과 영상 매체의 특성을 이유로 미처 다 담지 못한 이야기들을 『대중 유혹의 기술』 안에서 풀어냈다. 이 방대한 작업을 통해 그가 전하려는 메시지는 명확하다. “당신을 유혹함으로써 다른 유혹에는 쉽게 빠지지 않을 어떤 지혜를 당신에게 주고 싶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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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품을 팔고 싶다면 라이프 스타일을 바꿔라


다큐프라임 프로그램 제작과 『대중 유혹의 기술』 출간을 동시에 준비하신 이유는 무엇인가요?


카메라에 비유하자면 방송은 표준렌즈라고 할 수 있어요. 모든 맥락이 제거되고 적당한 사이즈가 나오죠. 자세히 들여다보거나 멀리서 바라보는 경우는 없어요. 그런데 책은 접사렌즈나 망원렌즈의 효과가 있더라고요. 그래서 방송에서는 제거된 맥락들을 책으로 풀어내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무엇보다 대중적인 소재라는 판단이 있었어요. 저는 프로그램을 만들 때마다 ‘내가 만든 프로가 아니더라도 보고 싶을까’를 생각하는데 『대중 유혹의 기술』을 준비할 때도 같은 기준으로 판단했어요. 이런 책이 시중에 나오면 들춰볼 것 같더라고요(웃음). 그리고 지금 시대에는 대중을 타깃으로 하는 전략들이 미디어라는 매체를 통해서 이루어지잖아요. 그런 점에서 함께 이야기해볼 수 있는 이야기라고 생각했어요.

 

이번 프로그램을 시작하게 되신 결정적인 계기로 두 권의 책을 꼽으셨어요. 『적군파 : 내부 폭력의 사회심리학』 『우리는 왜 극단에 끌리는가』 때문이라고요.


『적군파』가 출간되던 해에 프레시안에서 이 책을 올해의 책으로 선정했어요. 처음에는 심심한데 읽어볼까 라는 생각이었는데, 직접 보니까 굉장히 밀도 있더라고요. 인간 심성에 대한 깊은 해부가 있었어요. 『우리는 왜 극단에 끌리는가』는 제도화된 시스템 내에서 우리가 극단화되는 경우들을 생각해 보게 하죠. 이렇게 가장 어두운 부분부터 가장 밝은 부분까지 한꺼번에 다 이야기할 수 있는 프로그램을 생각하다가 처음의 기획안을 제출했어요. 그것과 한국인의 집단심리를 결합해서 만들어 보자고 생각해서 탄생하게 된 게 이번 프로그램이고요.

 

‘대중이란 어떤 존재인가’에 대한 생각은 오래 전부터 가지고 계셨던 것 같습니다.


2011년에 영국에서 폭동이 발생했을 때 제가 런던에 있었는데요. 그때 4일 동안 밖에 나가지 못했어요. 방화와 약탈이 일어나는 동네 한 가운데에 있었거든요. 그때 트위터를 많이 보게 됐는데, 폭동의 와중에서도 누군가는 빗자루를 가지고 나가자고 하면서 청소를 하더라고요. 어둠과 그림자를 동시에 교차해서 보는 게 흥미로웠어요. 이런 소재를 통해서 대중에 대해서 이야기하면 심리에 대한 내용이 될 것 같다는 막연한 생각을 가지고 있었죠. 칠레 광산에 매몰됐던 광부들의 이야기도 굉장히 흥미로웠어요. 보통은 휴머니티가 살아있는 아름다운 이야기라고 생각하잖아요. 그런데 사실은 기네스북 기록에 오르려고 서로 마지막까지 남겠다고 하는가 하면, TV가 생기자 채널 선택권을 두고 다투기도 했거든요. 그런 모습들이 흥미로웠죠.

 

이번 취재를 통해 대중에 대해 생각이 바뀌셨나요?


대중이 주어로 쓰일 때보다 목적어로 쓰일 때가 훨씬 많죠. ‘대중이 무엇을 할 수 있다’라는 것보다는 ‘대중을 설득한다, 대중을 유혹한다, 대중을 이끈다, 대중을 호도한다’라고 하는 경우가 훨씬 많은 거죠. 그런 건 이미 정교화 된 기술로 굳어져있어요. 대중으로 하여금 물건을 사게 하거나, 원하는 방향으로 이동하게 하거나, 어떤 것을 생각하지 못하게 하는 식이죠. 저는 그 기술들이 공통적으로 통과하는 지점이 미디어라고 본 거예요. 그야말로 매개체인 건데, 그 매개체는 잘 보이지 않죠. 그렇다면 대중 유혹의 기술을 쓰는 보이지 않는 손이 무엇일지 궁금해지잖아요. 방송에서는 제가 뚜렷하게 나타내지는 않았지만 노엄 촘스키의 인터뷰처럼 그것이 미디어라고 은근하게 밝힌 거예요.

 

『대중 유혹의 기술』에서 에드워드 버네이즈가 PR에 미친 영향을 많은 지면에 걸쳐 소개해주셨습니다. 그는 어떤 인물이었나요?


일단 버네이즈는 천재죠. 저도 버네이즈에 대해서 조사하면서 대단히 흥미로운 인물이었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베이컨을 팔기 위해서 아메리칸 브렉퍼스트를 만든다든지, 녹색 옷을 유행시키기 위해서 파티를 기획하고 입소문을 만들어 낸다든지, 책을 팔기 위해서 붙박이 책장을 유행시킨다든지, 그런 면들은 거의 100년 지난 지금 생각해봐도 대단히 현대적이고 직관적이죠. 모든 마케터들이 가장 단순하면서도 가장 본능적으로 대중들을 유혹할 수 있는 기술을 원하는데, 그것의 본류가 에드워드 버네이즈라는 생각이 들어요. 상품을 팔기 전에 대중들의 라이프스타일을 바꾸라는 건 지금 생각해 봐도 너무 뛰어난 전략이잖아요.

 

책에 쓰신 것처럼 버네이즈는 프로이트의 조카였고 『정신분석입문』을 직접 번역하기도 했습니다. 그는 대중이 선동 가능한 대상이라는 걸 이미 알고 있었던 걸까요?


대중은 취약한 존재들이죠. 어떤 자극을 주면 움직이게 될 수밖에 없다는 게 저의 생각이기도 해요. 충분히 길들여질 수 있죠. 버네이즈 역시 그런 생각을 가지고 있었고요. 버네이즈는 자본주의를 굉장히 신뢰했고 좋아했던 사람이었어요. 자본주의가 굴러가기 위해서는 새로운 욕망을 계속해서 만들어줘야 되는데, 그것이 PR과 홍보의 기술이라는 것도 너무나 잘 알고 있었던 거죠. 지금의 홈쇼핑만 봐도 알 수 있잖아요. 계속해서 욕망을 만들어내고 그 욕망을 보여주고 욕망이 채워진 상태의 나를 보여주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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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의 공포와 분노를 자극하라

 

지금까지 바이럴 마케팅의 전략은 ‘최대한 많이 입소문을 내는 것’이 아니었나 싶습니다. 그런 데 책에서 소개하신 울트라뮤직페스티벌코리아(UMF)은 전혀 다른 방식을 선택했더라고요.


울트라뮤직페스티벌의 경우는 대중들에게 너무 많은 정보를 밀어 넣지 않아요. 오히려 정보에 굶주리게 만들었어요. 그 대신 정보를 탐색할 수 있는 인터페이스는 굉장히 잘 만들었죠. 그 안에서 경쟁이 이루어지게 한 거예요. 누군가 정보를 찾아내면 그것이 바이럴로 돌게 되고요. 정보 탐색에 선행하는 사람과 후발주자들의 간격을 벌리게 하는 일종의 시차 전략이었다고 할까요. 모든 사람에게 모든 정보를 줬을 때는 그 시차가 발생하지 않아요. 하지만 굶주리게 했을 때는 다르죠. 그것도 나름대로 좋은 바이럴 전략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드라마투르기라는 극작술이 저널리즘에서도 사용되는 이유는 무엇인가요?


보통 스토리라인이라고 하면 픽션에만 해당된다고 생각하지만 논픽션에서도 가능하죠. 사실 논픽션 스토리텔링에는 기법이 있고 기자들도 많이 써요. 좋은 방식으로 쓰이죠. 그것이 반드시 부정적인 것만은 아니라고 말씀드리고 싶어요. 문제는 사회적으로 큰 문제가 있을 때 팩트가 정확히 확인되지 않은 상태에서 드라마가 만들어지는 거예요. 혐의만으로도 드라마가 만들어지거든요. 이야기가 하나하나 덧붙여지면서 사회적 드라마가 돼요. 그것이 사람들에게 소비되는 시스템을 우리는 이미 갖추고 있죠. 신문이나 인터넷에서 이야기가 돌기 시작하면 찌라시나 SNS를 통해서 확산되잖아요. 그런 일이 가능한 미디어 시스템을 갖추고 있는 거예요.

 

이런 현상 속에는 어떤 위험성이 감춰져 있나요?


혐의가 팩트가 되는 과정에서는 누가 그렇게 규정했는지 범인을 찾기 힘들어요. 공범에 묻히는 거죠. 이런 드라마투르기의 위험성이 점점 높아지고 있어요. 가장 큰 위험은 마지막 결론을 누가 내느냐의 경쟁으로 간다는 거죠. 저널리즘이 드라마 작업으로 변하면 누가 따끈따끈한 소식을 덧붙이느냐의 경쟁이 되는 거예요. 사람들은 계속해서 드라마를 소비하다가 잠잠해지면 다른 사건으로 넘어가죠. 대중들을 유혹하는 이런 기술은 사실 미디어에서 가장 많이 쓰죠. 저는 이걸 누가 쓰느냐에 따라서 달라진다고 봐요. 드라마투르기는 좋은 기술일 수도 있고 호도하는 기술일 수도 있는 거죠.

 

알랭 드 보통의 말을 빌려 “뉴스는 ‘동요하고 겁먹고 괴로워하는 대중’을 간절히 원한다”고 하셨습니다. 그 사실을 보여주는 예들을 다수 소개해 주셨고요. 그 중에서도 가장 상징적인 사건은 키티 제노비즈 사건일까요?


키티 제노비즈 사건은 1964년에 발생했고 저는 2014년에 우연히 보게 됐어요. ‘뉴욕타임스도 실수를 한 적이 있을까’라는 가벼운 호기심에서 조사를 하다가 알게 됐죠. 물론 이견도 있어요. 뉴욕타임스의 거짓말이라는 주장도 있고 의도된 건 아니라는 주장도 있어요. 지금도 모든 사회심리학 책에서 방관자효과를 설명할 때 키티 제노비즈 사건이 언급돼요. 아직도 각종 매체에서는 38명의 주민들이 범죄 현장을 보고도 신고하지 않았다고 하고요. 결과적으로 키티 제노비즈 사건은 그 동네 주민들에게 오명을 줬죠. 하나의 정보가 공포와 분노와 같이 들어왔을 때는 굉장히 강하게 박혀요. 그것이 강화가 되면 그렇게 믿어버리고요. 그것이 얼마나 무서운 것인가를 이야기하고 싶었어요. 공포와 분노를 자극하는 건 대단히 효과적으로 대중을 유혹할 수 있는 기술이죠. 변형하면 마케팅적으로 쓸 수도 있지 않을까 싶어요. 특히 온라인에서 공포와 분노는 가장 강력한 요소예요. 잘 활용하면 뷰어나 접속자수를 극대화시킬 수 있는 요소인 거죠. 암울하고 공포스러운 걸 넣었을 때 사람들은 더 끌리거든요.

 

그와 유사한 사례가 최근에도 있었나요?


이른바 사다코의 눈빛이라고 불렸던 조현아 씨의 사진은 굉장히 공포스러웠죠. 그 사진이 묘했던 건 공포와 분노가 동시에 있었다는 거예요. 사실 그녀는 분노의 대상이 될 수 있는 행동을 했죠. 그 사람이 저지른 일은 법적으로 처리하면 돼요. 그런데 그 단계를 넘어가는 과정에서 사다코의 눈빛이라는 사진이 나와서, 분노라는 감정에 공포라는 감정을 덧붙여서 강화시킨 거예요. 조현아를 우롱하는 패러디도 많이 나왔잖아요. 증오의 대상을 누가 더 희화화시킬 수 있는지 경쟁 아닌 경쟁이 이루어진 거예요. 그건 옳지 않다고 봐요. 오히려 사건의 본질에서 더 멀어지게 하는 행위들인 거죠. 공포와 분노는 어떤 사건의 본질을 찾을 수 있는 일차적인 감정이기는 해요. 하지만 그것이 사건을 제대로 들여다보는 열쇠는 아닌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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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혹에 기술에 현혹되지 않으려면…


히틀러가 대중을 유혹한 기술을 이야기할 때 대부분 요제프 괴벨스를 떠올릴 텐데요. 『대중 유혹의 기술』은 하인리히 호프만의 역할에도 주목하고 있습니다. 그는 어떻게 히틀러를 대중의 아이콘으로 만들었나요?


호프만은 히틀러의 사진을 찍을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이었잖아요. 저는 호프만의 스튜디오에서 촬영된 히틀러의 사진이 흥미로웠어요. 사진 속에서 연설을 연습하는 히틀러의 모습을 보고 그는 만들어진 인물이라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하인리히 호프만은 히틀러의 이미지를 통제하기 시작했던 거죠. 밖으로 나가는 히틀러의 이미지를 통제했어요. 그만이 히틀러의 사진을 찍을 수 있었고 내어줄 수 있었던 거예요.  『나의 투쟁』이 나오기 전까지는 히틀러는 그냥 평범한 정치가 이미지였는데, 책이 출간된 이후부터는 나치당에서 이미지를 조정하기 시작해요. 히틀러를 점점 독일인이 원하는 얼굴로 만들어내기 시작한 거죠. 그렇게 통제된 이미지들을‘괴벨스의 라디오’에 덧붙였고요.

 

“레드불의 PR 전략에는 가장 효과적인 대중 유혹의 첨단 기술이 총망라되어 있다”고 하셨습니다.


레드불의 마케팅 전략을 살펴 보면 하늘을 나는 것에 공통점이 있더라고요. ‘레드불, 날개를 펼쳐줘요’라는 CEO의 캐치프레이즈가 있었던 거예요. 에너지드링크를 먹었을 때 체험적으로 다가오는 느낌과 뛰어내리는 스포츠의 순간들이 잘 맞아 들어간 거죠. 펠릭스와 레드불사가 함께한 성층권 프로젝트처럼요. 그리고 카메라 기법도 그렇게 쓰죠. 이를테면 드론을 사용하거나 헬기에서 촬영하는 거예요. 레드불의 마케팅에는 미디어 이벤트, 쾌감 있는 공포, 바이럴이 다 들어있어요. 때로는 무의식을 자극하기도 하죠. 일본에서 ‘레드불 에어 레이스 치바’를 개최했잖아요. 일본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하늘을 나는 꿈과 맞닿아 있는 거예요.

 

『대중 유혹의 기술』은 “대중을 유혹하는 최고의 기술은 대중의 무의식을 이용하는 방법”이라고 말합니다. 대중의 무의식은 어떻게 발견하고 이용할 수 있는 걸까요?


과거의 기억 또는 과거의 기쁨을 활용할 수도 있고요. 트라우마와 욕망을 자극할 수도 있어요. 대중의 무의식이라는 건 어떻게 보면 통계적으로 설명이 가능하죠. 할리우드에서는 보통 작품을 리바이벌을 할 때 주기가 있어요. 20~25년 정도예요. 소비자가 어렸을 때 봤던 것을 성인이 되어서 다시 보고 싶어 하는 나이가 된 시점이거든요. 그리고 중요한 건 자녀와 같이 볼 수 있는 나이가 됐다는 거예요. 그러니까 무엇이 유행이 될 수 있을까 분석할 때 20년 또는 25년 전의 신문을 뒤져보면 좋죠. 어렸을 때 각인됐던 기억이나 기쁨들이 소비될 수 있는 상품으로 다시 찾아왔을 때 쓰게 되니까요.

 

트라우마를 자극하는 것이 어떻게 긍정적인 결과로 이어질 수 있는 걸까요? 언뜻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상처를 다시 가지고 오는 게 아니라 상처를 뒤집어서 가지고 오는 거죠. <포레스트 검프>가 어떻게 미국인들을 사로잡았는지 생각해 보면, 뒤집어진 역사이기 때문이에요. 베트남 전쟁은 미국이 패배한 전쟁인데 <포레스트 검프>는 그걸 다른 형태로 뒤집어서 가지고 왔거든요. 들추기 싫었던 전쟁을 받아들일 수 있는 기억으로 다시 가지고 온 거죠. <암살>도 비슷하겠죠. 그 당시에 잘 알려지지 않은 역사를 우리가 소비할 수 있는 역사로 다시 가져오는 거예요. 이를테면 우리나라가 핵폭탄을 발명할 수 있었다는 것만 가지고도 얼마든지 소설이 될 수가 있는 거고요. 실패한 역사도 얼마든지 가공과 변형을 거쳐서 가져올 수 있어요.

 

『대중 유혹의 기술』에 담긴 7가지 기술들은 인간의 심리를 정확하게 꿰뚫고 있잖아요. 그런 기술에 현혹되지 않는 것이 가능한 일일까요?


안다고 해서 현혹되지 않는 건 아니죠. 기술의 손아귀는 엄청난 힘을 가지고 있으니까요. 기왕 속을 바에는 덜 속는 방법 밖에는 없지 않을까요? 보이지 않는 손은 너무 강하고 은폐되어 있어요. 우리에게 그 손은 보이지 않지만 그들에 의해서 우리는 보이죠. 내가 인터넷에서 무엇을 보고 무엇을 좋아하는지 다 알잖아요. 마케팅적으로 우리는 이미 그들의 네트워크 안에 들어있는 거예요. 그러니까 속지 않을 수 있는 방법을 이야기할 수는 없을 것 같고, 다만 어떻게 하면 덜 속을 수 있을지에 대해 이야기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속지 않으려면 속이는 기술에 대해 알아야 한다는 말씀이시군요.


그렇죠. ‘어떤 기호가 거짓을 말하는 데 사용될 수 없다면, 마찬가지로 그 기호는 진실을 말하는 데도 사용될 수 없다’는 기움베르토 에코의 말을 좋아하는데요. 마찬가지로 거짓말의 기술이 될 수 있는 것은 진실의 기술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해요. 그리고 그것은 누가 쓰느냐에 따라서 진실의 기술이 될 수도 있고 거짓말의 기술이 될 수도 있다고 생각하고요. 유혹의 기술이 속이는 기술이 될 수도 있지만, 속이는 데에서 빠져나올 수 있게 만드는 기술이 될 수도 있죠. 아니면 제대로 속이는 기술이 될 수도 있고요. ‘그 기술을 어떻게 사용할지는 당신의 판단에 달려있다’는 이야기를 남길 수 있을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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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 유혹의 기술EBS MEDIA 기획/오정호 저 | 메디치미디어
TV프로그램이 성공작으로 방송된 후 출판으로 이어지는 일반적인 경우와 달리, 책 《대중 유혹의 기술》은 방송 제작과 동시에 진행되었다. 따라서 단순히 방송 내용을 활자로 풀어놓는 것을 넘어 (방송의 1, 2부에 해당하는) 100분의 시간에 담지 못한 상세한 이야기들을 책 속에 담아낼 수 있었다. 방송 최종 편집과 책 마감이 겹쳐 8월 한 달을 초인적인 스케줄을 이어가고 있는, 다큐의 PD이자 이 책의 저자인 오정호 PD는 방송을 표준렌즈에, 책은 접사렌즈에 비유하며, 각각의 역할에 충실한 결과물을 내고자 노력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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