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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많던 미술본능은 어디로 갔을까?

이 세상에 정답이 어딨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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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롭게 표현하고 즐기는 속에서 진짜 나의 모습을 찾고, 진짜 나다운 삶을 살아갈 수 있는 게 아닐까. 지금 무언가 표현하고픈 게 있다면, 바로 하얀 종이에 펜 하나 꺼내들고 그려내고 싶은 모든 걸 그려내 보기를 바란다.

생각해 보면, 꽤나 어렸을 때부터 나는 손으로 그리고, 오리고, 붙이고, 만드는 것들을 좋아했던 것 같다. 이건 비단 나만의 얘기만은 아닐 것이다. 우리는 어린 시절, 자유롭게 (완전히 마음 내키는대로) 이것 저것 그려도 보고, 종이며 찰흙이며 세상의 온갖 것들로 신나게 창조해본 경험이 있지 않던가. 누가 말해주지 않아도 뿜어져 나오던 그 미술 본능 말이다. 아주 어렸을 때, 동네 서점에서 발견한 김충원 선생님의 『예쁘게 그려보자』에 푹 빠져 엄마를 몇 일 졸라 그 책 한 권을 붙들고 하루 종일 그림을 그려댔던 그 때의 나의 미술 열정은 피카소 못지 않았었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미술’은 더 이상 즐기는 것이 아닌 게 되어버렸다. 학교에 들어가고, 누군가에게 평가를 받게 되고, 촉박한 시간 안에 ‘점수’를 위해 맞춤 미술을 해야 하면서 부터였던 것 같다. 특별한 미술 스킬을 지니지 않고서야 제한된 시간 안에 정확하게 무언가를 그려내고, 칠해내고, 표현하는 것이 나에게는 너무나도 어려운 일이었던 것이다. 그래서 나는 결론을 내렸다. ‘아, 나는 미술적인 재능이 없다. 포기해야겠어.’ 그렇게 미술을 좋아한다고 스스로 믿었던 나는 어느 순간부터 미술포기자가 되고 말았다.

 

미술적 재능없던 평범한 중학생으로 살아가고 있던 어느 날, 지루한 미술 시간이 다시 찾아왔다. 그 당시의 미술 선생님을 떠올려보자면 고집스러운 곱슬 머리에 독특한 잠자리 안경, 작은 키에 늘 회색 빛 칙칙한 양복을 입고 다니던, 괴짜같은 이미지였달까? 미술시간에 수업보단 본인 스스로의 사색 시간이 좀 더 길었던 분. 그는 어느 날, 이번 중간고사는 100퍼센트 실기, 인물화 그리기로  평가를 대체하겠다는 청천벽력같은 얘기를 전했다. 아... 이런 가혹한... 흔히 ‘데생’으로 불리는, 정말 그림 잘 그리는 사람이 아니면 해내기 어려운 그것이 시험이란다. ‘이번 시험은 망했어...’

 

하지만, 바로 그 해의 미술 시험. 나는 미술 실기 시험 ‘99점’ 이란 말도 안되는 결과를 얻었다. 미술포기자, 미술 무재능자였던 내가!! 그 해 그런 결과를 얻을 수 있었던 비결은 바로 ‘시간’에 있었다. 보통은 그 짧은 미술 시간 안에 끝낸 것에 대해서 평가하기 마련인데, 당시 미술 선생님은 우리들에게 집에서 좀 더 그릴 수 있는, 좀 더 생각하고 그릴 수 있는 시간, 기회를 더 준 것이었다. 그 덕에 나는 내가 그리고자 하는 걸 좀 더 오래 들여다볼 수 있었고, 전문 미술가 다운 그리기 스킬은 없었지만, 최대한  내가 할 수 있는 그 인물에 대한 근접한 표현을 위해 노력했었던 것 같다. 그리고 그렇게 완성된 그림은 내가 봐도 ‘오~ 제법이야’ 싶을 만큼 근사하게 완성이 됐다. 그렇게 내 그림은 좋은 점수와 함께 그 해 교내 전시회에도 걸리게 되는 행운을 얻기까지 했다는 것.

 

습작들.jpg

*이미지1. 썩 훌륭한 전문가는 아니었지만, 미술 학원 한 번 안다녀본 것 치곤 괜찮다... 스스로 생각하며

그렸던 아주 오래전 습작들. 아무것도 없는 연습장에 연필하나로 채워나가며 나름의 스트레스를 풀었던 듯 하다.


그 때부터 미술에 대한 나의 관심과 애정은 다시금 살아나기 시작했고, 미술에 대한 자신감도 흘러 넘치기 시작했다. 그동안 나는 내 안에 감춰져 있던 미술 본능을 ‘평가 받는다’라는 두려움에 숨겨놓고 살아왔던 것이다. 그저 점수를 잘 받기 위한 미술이 아닌, 내가 즐기고 좋아하는 미술을 할 수 있다는 사실을 잊고 있었던 것이다. 그렇게 나는 그리고, 만드는 취미에 푹 빠져 들었고, 그런 취미들은 꽤나 생산적이면서도 창의적인 능력을 키워줬던 게 아닐까 싶다. 그 덕에 지금까지도 나만의 소소한 집꾸미기  DIY에도 큰 도움이 되고 있달까.

 

IMG_4004.jpg

*이미지2. 집에서도 멈추지 않는 미술 본능. 요즘은 패브릭 액자에 꽂혀 값싼 우드락에 예쁜 패브릭천을 씌워 밋밋한 거실을 나만의 갤러리화 하는데 애쓰고 있다. 저비용으로 누리는 성취감!

 

아주 오랜 옛날부터, 아니 태초에 인간이 존재하던 순간부터 미술은 늘 있어왔었다. 동굴 속 벽화만 해도 그렇고, 민무늬 토기에서 빗살무늬 토기로 발달될 수 있었던 것도 인간의 미술 본능 때문이지 않았을까. 어른들의 색칠공부라는 ‘컬러링북’의 부활도 그렇고, 최근에 80년대 생들을 추억 속으로 빠져들게 했던 종이접기 달인 김영만 아저씨와 참 쉽게 그림을 그려주던 김충원 선생님까지 그들이 다시 우리의 관심을 불러일으키게 된 걸 보면, 우리는 모두 마음 속 한 켠에 미술을 향한 의지와 본능이 있는 게 아닐까 한다.

 

일상적이고 평범했던 것들이 ‘잘 하는 사람들의 것’이 되지 않았으면 하는 게 요즘 드는 생각이다. 미술도 그렇고, 음악도 그렇고, 이 세상의 모든 것들이 “넌 잘 하지도 못하면서 뭘 그런 걸 하려고 그래?” 라는 편견 아닌 편견 아래서 사그라 드는 경우가 적지 않은데, 이 세상에 정답이 어딨겠는가. 자유롭게 표현하고 즐기는 속에서 진짜 나의 모습을 찾고, 진짜 나다운 삶을 살아갈 수 있는 게 아닐까. 지금 무언가 표현하고픈 게 있다면, 바로 하얀 종이에 펜 하나 꺼내들고 그려내고 싶은 모든 걸 그려내 보기를 바란다. 아마도 우리 마음 속에 있는 그 미술 본능이 나를 더 자유롭게 하리니~!!

 

“매력적인 그림이란 그저 잘 그린 그림만이 아니라
역시 그 사람밖에 그릴 수 없는 그림이 아닐까요.
그런 걸 그려가고 싶습니다.”
도서 『안자이 미즈마루 : 마음을 다해 대충 그린 그림』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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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유승연

철저한 프리덤 속에 살던 ‘유여성’에서 ‘유줌마’의 삶을 살며 본능을 숨기는 중이다. 언젠가 목표하는 자유부인의 삶을 꿈꾸며.
예스24 홍보를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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