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색

이센스, 힙합 씬에 대한 일갈을 날려줄 수 있는 랩퍼

이센스(E-sens) < The Anecdote >

  • 페이스북
  • 트위터
  • 복사

한국 힙합 역사에 자신의 이름을 아로새기다.

이센스.jpg

 

< The Anecdote >는 이방인의 기록이다. 촉망받는 신인에서부터 메이저 시장의 성공을 거친 이센스는 현재 한국 힙합 씬 외곽에 위치한다. 아니, 오히려 그 외곽에 자리를 잡았다. 단단한 열개의 비트 위로 흐르는 메시지는 이센스와 한국 힙합의 현재 진행형 역사를 날카롭게 관조하고 있다.

 

단 한 명의 피쳐링과 북유럽 프로듀서 오비(Obi)에게 의뢰한 붐뱁 비트, 으레 있을 법한 훅의 부재와 라임 논란까지 불러온 흐르는 듯한 랩까지 모두가 현재에 얽매이지 않는다. 앨범의 시작인 '주사위'부터가 자전적 이야기로부터 출발하여 자신에게 질문을 던지는 형식이다. 누군가에게 보여주고자 하는 마음보다는 그 자신에게 충실하고, 스스로가 만족할 수 있는 작품을 빚어내겠다는 열의가 앨범 전체에 깊이 묻어난다.

 

선 공개된 「Back in time」을 필두로 「주사위」와 「The anecdote」에서 아픈 과거를 덤덤히 뱉어내다가도 「A-g-e」를 통해 획일화된 사고방식과 문화의 허영을 지적하다가 창작의 고통을 풀어낸 「Writer's block」까지, 앨범은 다양한 주제로 엮인 단편 소설집, 혹은 수필집을 연상케 한다. 물 흐르듯 흘러가면서도 치밀한 배치에 고개를 끄덕이게 되는 랩 스킬은 효과적으로 이 메시지들을 전달하는 역할을 맡는다. 랩퍼 이센스의 삶을 압축하여 한 편의 서사시를 그려낸 「Next level」의 스토리텔링과 인간 강민호의 「The anecdote」는 '한국의 < Illmatic >'이라는 찬사가 허언이 아니었음을 느끼게 한다.

 

「삐끗」, 「Tick tock」처럼 잘못된 장르 이해로 부패한 한국 힙합 씬에 대한 일갈을 날려줄 수 있는 랩퍼도 사실상 이센스 뿐이다. 대부분이 메이저 시장과 좋든 싫든 모종의 관계로 이어진 상황에 깨끗이 씬을 바라볼 수 있는 랩퍼로써의 위치를 잘 활용했다. 아메바 컬쳐 탈퇴 이후 오래도록 언더그라운드의 상징 자리를 지킨 고유의 캐릭터 덕이다.

 

회고와 비판이라는 가장 큰 두 주제가 굳건히 자리를 지키고 있지만 오히려 확고한 의식 때문에 듣는 입장에서는 거칠고 투박한 앨범이 될 수 있다. 두 테마가 나란히 손을 잡고, 순서대로 달려가는 것이 아니기에 발생하는 문제다. 일관성이라는 지점도 앨범 전체의 유기적 흐름은 좋지만 개별 곡의 매력은 다소 낮다. 한 쪽에서는 폭발적으로 응답하였으나 다른 쪽에선 당황하거나, 실망했다는 식으로 호불호가 발생하는 이유다.

 

이센스의 이야기는 공감의 폭이 좁다. 앞서도 언급했듯 앨범은 대중적 장치를 의도적으로 배제하였고, 메시지 또한 현실에서 그의 행동 때문에 선뜻 동의하기 어려운 부분이 많다. 진솔한 내용의 가사도 정돈되지 않은 부분이 많다.

 

산전수전 다 겪은 그의 목적이 더이상 대중의 관심이나 동정에 머무르지 않음을 보이는 것이다. 이센스는 가장 큰 적인 자신과 싸워가며 본인이 만족할 수 있는 치열한 결과를 써내려갔다. 그 몰입의 결과가 < The Anecdote >이며, 이방인의 기록 그대로 낯설고, 냉소적이며 길들지 않았다. 그리고 바로 이 레어(Rare)함, 리얼(Real)함으로 앨범은 한국 힙합 역사에 자신의 이름을 아로새기게 되었다.

 

2015/09 김도헌(zener1218@gmail.com)

 


[관련 기사]


- 복고적인 느낌을 팀의 색깔로 흡수한, 에이핑크 < Pink MEMORY >

- 양날의 검을 가진, 프라이머리 < 2 > 
- 거부할 수 없는 네오 소울 사운드, 리앤 라 하바스 
- 20년 만에 다시 만난, 삐삐밴드

- 매끈한 비트와 스토리텔링의 매력- 배치기 < 甲中甲 >

 

‘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예스24 채널예스

이 기사가 마음에 드셨다면 아래 SNS 버튼을 눌러 추천해주세요.

독자 리뷰

(0개)

  • 독자 의견 이벤트

채널예스 독자 리뷰 혜택 안내

닫기

부분 인원 혜택 (YES포인트)
댓글왕 1 30,000원
우수 댓글상 11 10,000원
노력상 12 5,000원
 등록
더보기

글 | 이즘

이즘(www.izm.co.kr)은 음악 평론가 임진모를 주축으로 운영되는 대중음악 웹진이다. 2001년 8월에 오픈한 이래로 매주 가요, 팝, 영화음악에 대한 리뷰를 게재해 오고 있다. 초기에는 한국의 ‘올뮤직가이드’를 목표로 데이터베이스 구축에 힘썼으나 지금은 인터뷰와 리뷰 중심의 웹진에 비중을 두고 있다. 풍부한 자료가 구비된 음악 라이브러리와 필자 개개인의 관점이 살아 있는 비평 사이트를 동시에 추구하고 있다.

오늘의 책

수많은 사랑의 사건들에 관하여

청춘이란 단어와 가장 가까운 시인 이병률의 일곱번째 시집. 이번 신작은 ‘생의 암호’를 풀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인 사랑에 관한 단상이다. 언어화되기 전, 시제조차 결정할 수 없는 사랑의 사건을 감각적으로 풀어냈다. 아름답고 처연한 봄, 시인의 고백에 기대어 소란한 나의 마음을 살펴보시기를.

청춘의 거울, 정영욱의 단단한 위로

70만 독자의 마음을 해석해준 에세이스트 정영욱의 신작. 관계와 자존감에 대한 불안을 짚어내며 자신을 믿고 나아가는 것이 결국 현명한 선택임을 일깨운다. 청춘앓이를 겪고 있는 모든 이에게, 결국 해내면 그만이라는 마음을 전하는 작가의 문장들을 마주해보자.

내 마음을 좀먹는 질투를 날려 버려!

어린이가 지닌 마음의 힘을 믿는 유설화 작가의 <장갑 초등학교> 시리즈 신작! 장갑 초등학교에 새로 전학 온 발가락 양말! 야구 장갑은 운동을 좋아하는 발가락 양말에게 호감을 느끼지만, 호감은 곧 질투로 바뀌게 된다. 과연 야구 장갑은 질투심을 떨쳐 버리고, 발가락 양말과 친구가 될 수 있을까?

위기는 최고의 기회다!

『내일의 부』, 『부의 체인저』로 남다른 통찰과 새로운 투자 매뉴얼을 전한 조던 김장섭의 신간이다. 상승과 하락이 반복되며 찾아오는 위기와 기회를 중심으로 저자만의 새로운 투자 해법을 담았다. 위기를 극복하고 기회 삼아 부의 길로 들어서는 조던식 매뉴얼을 만나보자.


문화지원프로젝트
PYCHYESWEB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