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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에서 본 상식적인 북디자인 이야기

『편집자를 위한 북디자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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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속적으로 책을 보다 보면 북디자인에서 어떤 일관성이나 보편성을 감지하게 되고, 그 과정이 거듭되면 자연스럽게 안목이 형성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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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도 미술작품처럼 감상할 수는 없을까? 화가가 사인을 마친 그림은 완결된 형식으로 메시지를 전한다. 이때 사각의 캔버스에는 균형, 비례, 통일, 조화 같은 기본적인 조형 원리가 모두 녹여져 있다. 이런 요소와 함께, 그림과 어우러진 소재의 역할과 표정을 곱씹어보면 작품을 깊이 맛볼 수 있다. 책도 그림과 다를 바 없다. 디자이너가 치밀하게 디자인한 조형물이라는 점에서, 책의 외형도 얼마든지 감상의 대상이 될 수 있다. 북디자인에도 균형, 비례, 통일, 조화 같은 요소가 안받침되어 있다. 북디자인이 아름다운 책은 소장하고 싶게 만들고, 독서욕을 자극한다. 개인적으로, 애써 디자인한 책이 조형적으로도 감상되었으면 싶다. 그것이 모든 것이 데이터로 저장되는 디지털 시대에 물질로서 책을 즐기는 한 방법이기 때문이다.

 

이 책의 내용은 애시당초 아트북스 편집자를 대상으로 이야기하고, 또 이야기하고 싶었던 것들이다. 그런 것을, 격주간지 『기획회의』에 「편집자가 알아야 할 북디자인」이라는 제목으로 총 24회 연재(2007. 5. 20~2008. 5. 5)하며 정리한 바 있다. 지금도 마찬가지지만 연재 당시에 무척이나 조심스러웠다. 내가 북디자이너도, 디자인 전공자도 아니기 때문이다. 단지 책에 미친, 회화繪畵 전공자로서 그림을 분석하듯이 책의 조형미를 분석하면서 감상하다 보니, 북디자인 운운하게 되었다. 주제넘은 짓인 줄 안다. 연재 사실을 아트북스 편집자에게조차 알리지 않고 은밀히 진행한 것은 그 때문이었다. 그랬던 만큼, 책으로 묶을 생각은 애당초 없었다. 다만 그때의 바람은 연재 내용이 미흡하고 초점이 어긋났다면, 북디자인 전문가가 나서서 그것을 바로잡고 체계적으로 이야기해주었으면 하는 것이었다.

 

감감무소식인 채 6년 반이 흘렀다. 그 사이에 서울북인스티튜트(sbi)에서 매년 예술편집 강의를 하면서 이 책의 내용 일부를 소개했고, 한 출판사에서는 편집자를 위한 북디자인 특강을 하기도 했다. 출간 권유도 받았다. 매번 거절을 하다가 결국 다시 한 번 부끄러운 짓을 하기로 했다.

 

이 책은 북디자인에 관한 객관적인 이론을 설명하고자 한 것이 아니다. 따라서 타이포그래피(글자 다루기), 레이아웃(판면 다루기), 그리드(시각적 질서와 일관성을 유지시켜주는 도구) 같은 용어에 대한 구체적인 설명은 피했다. 그것은 내 능력 밖의 일이다. 다만 이 책은 책의 각 요소에 깃든 의미와 역할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책에 구현된 디자인에 관해 ‘이렇게도 한번 생각해보자’는 일종의 제안이 되겠다. 그리하여 편집자도 디자인적 사고를 갖추자는 것이다. 편집자가 북디자인을 제대로 알면 디자이너와 의사소통 과정에서 빚어질 수 있는 착오를 줄일 수 있고 더불어 조형적으로 밀도 있는 책을 만들 수 있다. 그래서 표지와 내지에서 어떤 전투가 벌어지고 있는지, 권두의 존재 이유는 무엇인지, 편평한 지면은 과연 평등하기만 한 공간인지 등 편집자들이 무심히 지나쳤을 점들을 시시콜콜 의문에 부쳤다.

 

대다수의 편집자가 책을 구성하는 각 면의 존재 이유를 생각해보지 않듯이 독자도 책이 어떤 과정을 거쳐 디자인되는지에 관심이 없다. 마치 영화 관객이 카메라 위치나 편집 등을 생각하면서 영화를 보지 않는 것과 같다. 독자에게 중요한 것은 북디자인된 책 그 자체다. 그저 좋아 보이면 좋은 디자인으로 여기고, 그렇지 않으면 무시하고 만다.

 

편집도 그렇지만 북디자인도 결국은 책을 통해 독자의 마음을 편집하고 디자인하는 일이기에, 편집자에게도 북디자인을 보는 최소한의 안목이 필요하다. 하지만 좋은 안목은 하루아침에 만들어지지 않는다. 암기과목처럼 밤새 공부한다고 해서 생기는 것도 아니다. 지속적으로 책을 보다 보면 북디자인에서 어떤 일관성이나 보편성을 감지하게 되고, 그 과정이 거듭되면 자연스럽게 안목이 형성된다.

 

내 제안은 또 책의 몸物性을 사랑하는 법에 관한 것이기도 하다. 독자는 디자이너와 편집자가 디자인하고 편집한 시각적인 동선을 따라, 책의 몸매(조형미)를 접하며 내용을 흡수한다. 그 과정이 물 흐르듯이 자연스러워서 독자는 거의 의식하지 못한다. 나는 이 과정을 조금 낯설게 하여, 내가 본 책의 조형 원리(라고 생각한 것들)를 공유하고 싶었다. 그래서 이 책은 ‘읽다보다는 ‘보다’에 집중했다. 즉, 내용보다는 내용을 담는 그릇으로서, 주도면밀하게 설계된 책의 몸매에 관해 곰곰이 생각해볼 수 있는 장이 되었으면 한다. 간단명료한 서술보다 비유를 동원하고 다양한 도판을 예로 든 것도 그 때문이다.

 

이야기를 진행하기 위해서는 선결되어야 할 문제가 한둘이 아니다. 그중의 하나가 어떤 책의 형식을 이야기의 기준으로 삼을 것인가 하는 문제다. 이미 책으로 표현된 형식은 수천억 가지가 되겠지만 어느 하나를 기준으로 삼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따라서 내가 기본적인 형식이라고 생각하는 바를 중심으로 얘기할 것이다. 내가 보기에 수많은 책의 형식은 기본적인 형식의 다양한 변주로 존재한다. 가령 신발의 디자인은 수억 가지가 되지만 사람의 발이 담긴 형식만큼은 변하지 않는 것처럼, 책에서도 기본적인 형식은 계속 유지되고 있다고 본다.

 

이야기는 지극히 상식적인 선에서 전개하되, 편집자가 알아두면 좋다고 생각하는 북디자인에 관해 현장에서 보고 생각한 것을 비교적 가볍게 다룰 것이다. 때로는 편집자들이 익히 알고 있는 이야기를 할 수도 있다. 그렇더라도 한 번쯤 생각하는 자리가 되었으면 한다. 편집자는 저자가 하고 싶어하는 말을 독자가 듣고 싶어 하는 말로 풀어주는 사람이다. 이 어눌한 북디자인 이야기가 독자의 눈높이를 염두에 두고 책을 편집하는 데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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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를 위한 북디자인 정민영 저 | 아트북스
“모르면 볼 수 없고, 제대로 볼 수 없으면 말할 수 없다. 또 말하지 못하면 그만큼의 북디자인이 될 수밖에 없다.” 디자이너와의 즐거운 소통을 위해 편집자도 디자인적 사고를 갖추면 작업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혼선을 줄일 수 있다. 더불어 책에 구현된 디자인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더욱 짜임새 있는 책을 만들 수 있다. 편집자는 언어의 틈에서 시선의 길을 찾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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