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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 류근, 도취, 통속과 초월의 시학

<김도언의 시인의 얼굴> 여섯 번째 시인: 류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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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도취는 곧 그가 생존하는 방식이었던 셈이다. 그는 끊임없이, 맹렬하게, 지치지 않고 사랑이란 걸 한다. 사랑은 마치 그의 몸에 깃든 정령이나 몸주와도 같은 것이다.

내가 사는 별에는 이제/비가 내리지 않는다/우주의 어느 캄캄한 사막을/건너가고 있는 거다/나는 때로 모가지가 길어진 미루나무/해 질 무렵 잔등 위에 올라앉아/어느 먼 비내리는 별에게 편지를 쓴다/그 별에는 이제 어떤 그리움이 남았느냐고/우산을 쓰고 가는 소년의 옷자락에/어떤 빛깔의 꽃물이 배어 있느냐고 - 시 〈편지를 쓴다〉 중에서(『상처적 체질』 수록)

 

 

인상적인 첫 만남

 

내 기억이 정확하다면 류근 시인을 처음 본 게 2010년 이른 봄의 일이었던 것 같다. 시인들이 모인 술자리에 날렵하고 산뜻한 인상의 그가 앉아 있었던 것이다. 그때 그는 첫 번째 시집 출간을 목전에 두고 있었는데, 검고 깊은 눈동자 속에 흥분과 불안이 뒤섞인 어떤 극적인 표정을 숨기고 있는 듯 보였다. 그는 재미없는 농담을 하다가 술값을 내고 홀연히 사라졌다. 그때 그의 뒷모습의 그림자가 입술을 열어 좌중을 향해 “나를 따라올 테면 따라와 봐”라고 말하는 것을 나는 분명히 들었다. 환청이었을까. 하지만 그는 아무도 따라갈 수 없는 광속으로 날카롭게 허공을 찢고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지금은 잘 알려진 사실이지만 스물일곱에 신춘문예로 등단한 류근 시인은 이후 작품 발표를 전혀 하지 않고 18년이 지나서야 문제의 첫 시집 『상처적 체질』을 상재한다. 그의 인상적인 뒷모습을 본 지 두어 달쯤 지나 그의 시집을 우편으로 받아보고 나서야, 나는 그 18년이라는 시간이 어떤 의미의 무게를 갖는 것인지 깨달을 수 있었다. 시집 한가득, 눈부시게 걸러진 빛과 그림자의 대극이 가히 진풍경을 연출해내고 있었던 것이다. 그것은 또한 적막과 침묵의 조건 속에서 충분히 숙성된 언어들만이 가지는 향기마저 내뿜고 있었다. 그의 시를 읽으면서 손가락으로 찌르면 금방이라도 물방울이 튈 것 같은 그렁그렁한 울음소리를 나는 자주 들었다. 등단하고, 관리를 받듯 차곡차곡 신작 시를 발표하고, 월평과 계간평, 특집 등의 호사를 누리면서 너무나 쉽게, 그리고 너무나 일찍 시집을 엮는 관행을 그는 온몸으로 사절했던 셈이다. 그는 자발적 소외의 황홀이, 세속의 영락이 주는 즐거움 따위와는 애초부터 비교가 되지 않는다는 걸 알았던 거다.

 

이후 틈틈이, 우연을 가장해 불쑥불쑥 그를 만났다. 그를 만난 모든 곳에는 술이 있었고 도취가 있었다. 그는 늘 무언가에 도취되어 있는 사람처럼 보였다. 아니 이 말은 류근 시인 자체가 도취였다라는 말로 수정되어도 좋겠다. 그가 도취하는 대상은 시이기도 하고, 노래이기도 하고, 사랑이기도 했는데, 그것이 무엇이든, 현실의 소용이나 요구에서 탈각된, 어떤 절대적 이상이라는 점에서 동일한 것이었다. 그러니까 그의 도취는 곧 그가 생존하는 방식이었던 셈이다. 그는 끊임없이, 맹렬하게, 지치지 않고 사랑이란 걸 한다. 사랑은 마치 그의 몸에 깃든 정령이나 몸주와도 같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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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연과 같은 친교가 인연이 되어 나는 류근 시인의 책을 만든 적이 있다. 2013년 여름에 출간된 산문집 『사랑이 다시 내게 말을 거네』가 그것이다. 당시 나는 대형출판사의 문학브랜드 책임자로 일하고 있었고 류근 시인은 내가 눈여겨보는 매력적인 예비 저자 중 한 사람이었다. 당시 그는 소셜미디어에 글을 많이 썼는데, 거기에 올라오는 산문이 깊고 아름답고 독하다는 것은 글을 좀 볼 줄 아는 이라면 누구나 알아보는 것이었다. 그만큼 그의 글은 비범한 데가 있었다. 당연히 나뿐만 아니라 그의 책을 내고 싶어 하는 편집자들이 꽤 여럿 있었다. 나는 출간 문제를 매듭짓기 위해 그를 만났다. 시인으로서 산문집을 내는 것이 다소간 겸연쩍었는지 자꾸 주제를 돌리려는 그에게 나는 정색을 하고 이렇게 말했다.

 

“많은 훌륭한 출판사들이 형의 책을 내길 원하는 것을 알고 있어요. 하지만 그 출판사에는 김도언이 없죠. 형 책은 내가 가장 잘 만들 수 있어요.”

 

나중에 류근 시인은 그 말에 감명을 받아서 나와 출판계약을 맺었다고 공개적으로 진술한 적이 있다. 가끔 술자리에서 마주치는 어정쩡한 선후배 관계를 유지하고 있던 그와 나는 그 순간 사회적 운명을 공유하는 관계로 발전하게 된 것이었다. 그리고 그것이 계기가 되어 그때부터 나는 류근 시인을 형이라고 부르게 되었다.

 

 

도도한 시인의 길

 

류근 시인은 1966년 경북 문경에서 태어나 충북 충주에서 자랐고, 중학교 때 서울에 올라온다. 중학교 때 그의 집은 풍비박산이 났다고 한다. 공무원이었던, 성정의 결이 부드러웠던 아버지가 사람의 말을 덥썩 믿고 횡령사건에 연루되는 바람에 온 가족이 뿔뿔이 흩어지게 되었다고. 특히 경제적인 고통과 비참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고 한다. 그런데 그 시기에 문학이 그를 찾아왔다고 하니, 이것은 어쩌면 운명이랄 수밖에 없을 것이다. 둘째 누님과 자취를 하게 되었는데, 혼자 남겨진 시간 동안 수많은 책을 읽고 혼자 백지 위에 무언가를 써내려가는 취미를 갖게 되었다고. 그렇게 쓴 글이 흠모하던 국어선생님으로부터 칭찬을 받았고 백일장에 나가 툭하면 장원을 먹었다고 한다. 그때부터 그의 꿈은 시인이었단다. 아니, 이미 자신은 시인이라고 생각했었다고. 그의 말을 직접 들어보자.

 

김도언 : 형, 오산고를 나오셨는데요. 오산고가 김소월, 백석 이런 좋은 시인들이 나온 학교고, 그것에 대한 형의 자부심도 대단한 걸로 알고 있는데요. 오산고 나오고 중대 문창과에 입학하셨잖아요. 형한테 문학이 내가 가야 하는 길이다. 또 시가 나한테 맞는 문학적 장르다. 이런 걸 자각한 최초의 순간은 언제였나요?

 

류근 : 내가 아주 좋아하던 예쁜 국어선생님이 작품 숙제를 내줬는데, 썼더니 난리가 난 거야. 각 반을 돌아다니면서 류근이 이런 걸 썼다고 그런 거야. 그리고 자기 자취방에 불러서 박인환 시집을 주면서, 너는 시재가 있다 이런 말씀을 하셨어. 문재가 아니라 분명 시재가 있다고 했어. 그래서 그때부터 장래 희망이 시인이었어. 그 순간부터 나는 정신적으로 그냥 시인이었어. 고등학교 때도. 나는 그냥 시인이야. 그런데 사실은 고등학교에 올라갔을 당시에 정말 먹고살기가 힘들었어. 고등학교 문예부에 들어갔고, 그때 다섯 학교가 연합 써클을 만들었거든. 용산 쪽에 있는 배문, 양정, 오산, 그리고 신광여고, 서문여고. 이렇게 해서 문예부 연합서클을 만들었는데, 일주일에 한 번씩 모여서 문학 토론을 하는 동아리였는데, 거기를 다니면서 선배들하고 맨날 술을 먹었지. 남영동 뒷골목을 따라 다니면서. 그런데 정신적으로 정서적으로 80년대 초반이 너무 암울한 분위기여서 너무 일찍 세상을 알아버린 것 같아. 그러니까 그냥 시인이었어. 장래 희망을 떠나서 이미 시인이었던 거지.
 
김도언 : 그걸 주변에서도 다 알고 인정해줬어요?

 

류근 : 그렇지. 학교에서도 다 내놓은 거야. 밤새 술을 마시고 학교에 가면 술 냄새가 날 거 아니야? 그럼 친구들이 교련복을 덮어주면 하루 종일 잠을 자다가 정규 수업이 끝나면 다시 술집으로 나가는 생활을 했어. 상습 술꾼이었지. 그런데 선생들이 요즘하고 달라서. 그때가 아주 무서운 시대였지만, 낭만이 좀 있었던 거 같아. 적당히 마셔라, 뼈 삭는다. 이 정도 훈계였지. 술 먹는다고 때리고 그런 분위기가 아니었어. 그게 그럴 만한 이유가 있었는데 웬만한 백일장을 나가면 장원 확률이 한 오할쯤되는 거야, 가작, 차하 이런 건 한 번도 해본 적이 없었어. 탈락 아니면 장원이었지. 전국 규모 백일장에서도 그랬지. 그렇게 몇 번 뭔가를 보여주니까 선생들이 좀 봐준 거 같아. 류근은 공부랑 담쌓고 평생 이걸 해먹을 녀석이구나, 그렇게 생각했던 것 같아.

 

 

전작 시집의 탄생

 

류근 시인의 유일무이한 시집 『상처적 체질』은 어떤 의미에서든 ‘문학적인 사건’을 성립할 요소를 가지고 있다. 등단 이후 18년 만에 낸 전작 시집이라는 것. (전작 시집이란 문예지에 발표한 시들을 묶는 기존 시집과는 달리, 시인의 기획에 의해 완미한 형식을 가지며 출간되는 시집을 말한다.) 그리고, 1990년대 이후의 한국 시단에서는 매우 드물게 통속과 낭만의 문법 안에 자신의 시 세계를 확고히 고정시킨 점 등이 그렇다. 등단 이후 자의에 의해 발표를 전혀 하지 않은 것도 전례가 없거니와 사실, 통속과 낭만은 ‘치기’와 ‘미숙’과 동의어로 받아들여질 정도로 시인들에겐 기피 혹은 금기 대상이다. 내가 이런 이야기를 하는 이유는 이 희유한 요소 자체가 바로 류근 시를 받아들일 때 매우 중요한 레퍼런스일 수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시집 출간에 얽힌 이야기를 좀 들어봐야겠다.

 

김도언 : 『상처적 체질』이 전작 시집이잖아요. 보통 시집을 엮을 때, 발표를 해서 어느 정도 축적이 되면 그걸 출간하는 게 관행이죠. 형은 근데 발표를 전혀 안 하고, 한 권 분량의 시를 출판사에 보내서 공적인 심사를 거쳐서 문지에서 나왔죠. 이게 거의 유례가 없는 건데 그 상황을 좀 설명해주시고, 현재 시단의 시집 출간 관행, 그러니까 청탁을 받아 발표하고 작품 수가 쌓이면 그걸 묶는 관행에 대한 형의 생각을 듣고 싶어요.

 

류근 : 나는 사실 자의 반 타의 반으로 전작 시집을 낸 경우야. 중복 투고 금지 규정에 걸려 당선이 취소되고 최종심에서 계속 떨어지다가 문화일보 신춘문예로 데뷔했는데, 나 스스로 탐탁치 않다는 생각이 들었어. 그러다 보니 문단과 멀어졌고. 그런데 대학원에 들어가니까 알음알음 원고청탁이 들어오더라고. 그런데 그쯤 되니까 내가 지금까지 발표를 안 했는데 원치 않는 지면에 작품을 발표해야 하나 이런 생각이 들더라고. 내가 고등학교 때부터 문지 시집을 보고 자랐거든. 다들 그렇잖아. 문지, 창비, 민음사 시인선을 보고. 그런데 내가 특히 문지를 많이 봤어. 우리 같은 사람들은 김현 선생한테 영향을 많이 받았잖아. 그래서 애들한테 공언을 하기를 나는 김현 선생님의 해설을 받을 거야. 그래서 문지에서 시집을 낼 거야. 항상 그랬다고. 그런데 문지에서 시집 내기가 하늘에 별 따기라는 거야. 그래서 문지에서 시집을 내려면 어떻게 해야 하느냐고 물어봤더니 투고를 해야 한대. 그때 술 먹다 친해진 이윤학 형이 우리 집에 놀러 왔어. 그때 마침 내 서재에 써놨던 시를 보여줬더니 깜짝 놀라면서 시집을 반드시 내자고 하더라고. 그래서 문지에 시집 원고를 보냈고, 6개월 만에 출간하기로 했다는 연락을 받았어. 지금 시집 출간 관행에 대한 질문을 했는데, 청탁하는 행위와 발표하는 행위는 그럴 필요가 있었던 것 같아. 옛날에는 동인체제였잖아. 창비나 문지가 다 동인그룹으로 문학적 지향을 가졌던 거지. 그래서 자기들 기준에 입각해 청탁을 하고 시집을 묶는 건 당연했던 것 같아. 그런데 그것이 관행으로 굳어져버린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어. 그게 권력처럼 돼버렸잖아. 누구나 다 선망하는데 문호는 좁고 또 워낙 배타적이고 하나의 특권처럼, 시혜를 베푸는 것처럼 되어버려서 비판을 받는 것 같아. 그런데 그걸 극복할 수 있을까? 변하기 어려울 거 같아. 그들이 변하길 바라기보다는 새로운 에너지나 새로운 생각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 새로운 실험을 하는 게 빠르지 않겠나 하는 생각이 들어.

 

김도언 : 저는 『상처적 체질』이 출판된 그 과정이 상당히 건강한 사례라고 보고 있어요. 형처럼 아예 발표도 안 하고, 그냥 자기 기준으로 구성을 해서 심사를 받아서 시집이 나오는 게 순수하고 건강한 방법 같아요. 어떤 시인들과 이야기를 하다 보면 이해가 안 되는 게 있는데요. 제가 요즘 시 많이 쓰냐고 물어봐요. 그러면 청탁도 안 오고 그래서 안 쓰고 있어요, 이렇게 대답을 하더라고요. 청탁이 와야지만 시를 쓴다는 식으로요.

 

류근 : 아니 그게 도대체 무슨 소리야. 우리가 무슨 공장도 아니고 무슨 주문 받아서 제작하는 수제화 납품업자도 아니잖아.(웃음)

 

김도언: 문학제도와 관련해 형 같은 포지션을 가진 시인만이 해줄 수 있는 말이 있을 것 같은데, 형은 문단 바깥에 계셨던 분이잖아요. 문단 안에서 주류니 비주류니 하면서 자존심 싸움을 하고, 권력에 대한 시비도 생기고 이런 걸 어떻게 보고 계세요?

 

류근 : 누구나 자기가 속한 제도권 안으로 들어가고 싶은 욕망은 있는 거잖아. 그것까지는 존중해줘야 한다고 생각해. 그런 욕망을 인정해주지 않을 이유가 없잖아. 솔직히 나조차도 속물인 거야. 문지 아니면 시집 안 내겠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잖아. 그리고 지금도 그런 생각을 가지고 있어. 속물이지. 뭐. 나도 남들이 말하는 일류라고 말하는 데서 떨어지고 싶지 않은, 거기 진입하고 싶은 게 있는 거야. 그런데 나 같은 경우는 그 안에 주류니 비주류니, 권력이니 이런 것과는 무관하기 때문에 마음이 좀 편한 건데, 그런데 거기에서 선수하고 싶으면 방법이 없는 거야. 관중하면 되는데. 축구하는 게 편한 사람은 축구를 하고 구경하기 펴한 사람은 관중을 하면 되지.

 

 

아류가 아닌 자의 자존감

 

우리 말 ‘오기’나 ‘근성’을 뜻하는 일본말 ‘곤조’는 어떤 일을 대하는 태도의 악착스러움을 가리킬 때 주로 쓰는 말이다. 내 생각에 좋은 의미에서 ‘곤조’가 필요한 직업이 있다면, 그것은 복서와 시인이 아닐까 싶다. 곤조, 다시 말해 투쟁의지 같은 것이 사라지는 순간, 복서와 시인의 에너지와 존재 이유는 소멸되고 말 것이다. 복서의 투쟁 상대는 또 다른 복서이고, 시인의 투쟁 상대는 이 세계와 자기 자신이라는 것만이 다를 뿐이다. 류근 시인을 생각할 때, 내 머릿속에 자연스럽게 떠오르는 단어가 ‘곤조’다. 그는 좋은 의미에서 곤조를 잘 갖춘 시인이다. 그리고 그것은 천연적인 것으로 보인다. 비범해 보이는 날카로운 눈매와 중저음의 말투에서 자기 자신에 대한 확고한 믿음과 오연함을 엿보는 건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등단 24년차를 맞는 동안 시집을 한 권 펴냈을 뿐인 그가 타인들에게 자신을 시인이라고 당당하게 소개할 수 있는 것은, 그리고 그 자신이 중학생 이래로 언제나 시인이었음을 자임할 수 있는 근거에는 저 오연한 곤조가 개입되어 있음이 분명하다. 우문일 테지만 시인이 자존감을 유지하는 비결을 물어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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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도언 : 형을 볼 때마다 느끼는 것은 시인에 대해 형이 갖고 있는 압도적인 자존감이에요. 시단에서 인정을 받는 시인들 앞에서 위축되거나 그런 것을 본 적이 없어요.    

 

류근 : 소문을 들어서 알겠지만, 정말 나는 중대문창과에 들어갔을 때, 선배와 선생들이 이구동성으로 이런 말을 했어. 앞으로 위아래 5년에 너만 한 시인은 없을 거라고. 그렇다고 내가 막 자아도취에 빠졌던 건 아니고, 누가 봐도 내가 시를 제일 잘 썼으니까. 난 누가 뭐래도 당신들과 다른 좋은 시를 쓰고 있어,라는 자기긍정이랄까 이런 게 있었던 거지. 그런데 이상하게 운이 안 따르더라고. 중복투고 이런 것 때문에 떨어지고, 이런 불운이 겹치니까 많이 힘들었지. 하지만 시인으로서 단 한 번도 나 자신을 부정한 적은 없었어. 내가 삼류를 자처하지만, 누구의 아류처럼 되는 시를 쓰지 않으려고 정말 애를 많이 썼어. 그런 면에서 자긍심이 있는 거지. 지금도 그런 자존심을 놓치지 않으려고 해. 일류 시를 못 쓰더라고 삼류 본류의 시를 쓰겠다는 생각이 있지.

 

김도언: 형이 삼류라는 단어를 말하니까 통속미라는 단어가 떠올라요. 시집 『상처적 체질』을 얘기할 때, 항상 언급되는 단어가 통속미거든요. 제가 봐도 형은 통속성을 정면으로 겨냥하고 있거든요. 그걸 회피하지 않고 받아들이고 있는 거죠. 그 신파적인 정서를 시의 정조 속에 적극적으로 끌어들이고, 그 안에 삶의 희비극이 다 들어 있는데 사실은 2000년대 이후에 모더니티가 강조되는 전위적인 시들이 많이 쓰이는 분위기에서 형 시집이 나왔단 말이죠. 그 시집의 정서가 사실 2000년대 주류를 이루는 시들과는 상당히 거리가 있는 거였잖아요. 그것이 형한테 어떤 의미가 있는지 알고 싶어요. 형 자신의 좌표 같은 거랄까요.

 

류근 : 시인은 시단의 유행이 어떠한지, 평론가들이 추구하는 경향이 어떠한지와 상관없이 자기 생리에 맞는 시를 써야 하는 거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어. 나의 시론에 대해서 여러 번 밝힌 바가 있어. 무릇 시인이라고 하는 존재는 산을 만나면 산을 쓰고, 물을 만나면 물을 쓰고, 여자를 만나면 여자를 쓰고, 개를 만나면 개를 쓰는 거다. 시인이 난 꼭 이렇게 써야지, 하는 좌표가 어디 있어. 거기에 시가 있으면 그걸 옮겨 적는 건데. 내 시가 통속만 있는 것도 아니야. 나름 대단히 고급한 것도 있어요. 저속하지만은 않아.(웃음)

 

김도언 : 누가 형한테, 시를 왜 쓰냐고 물으면 외로워서 쓴다라고 대답한다는 얘길 들었어요. 그 말 속에는 시의 치유 효과나 고통을 줄여주는 진정 효과 같은 걸 인정한다는 뜻이 담겨 있잖아요. 보통 일반 독자들도 시를 생각할 때 그렇게 생각하기 쉽고요. 상처를 어루만져줄 수 있고, 고통을 줄여줄 수 있고. 시에 대한 형의 생각도 보통 사람들이 생각하는 그런 면을 강화시켜준다고 볼 수 있는데, 시를 그렇게만 보는 게 과연 바람직할까요? 시가 우리 삶을 위로해주고, 고통을 줄여주고, 치유해주고. 이렇게만 시를 받아들일 때 문제점은 없을까요? 형 시에 대한 반대론자들은 이렇게 이야기할 수 있거든요. 시를 당의정처럼, 진통제처럼 놔주는 거 아닌가.

 

류근 : 그런데 그만한 역할도 못하는 것들이 치장되어서 소비되고 있는데, 뭐. 독자가 있어야 시도 있는 거잖아. 어차피. 독자라는 게 있으니까 시가 살아온 거 아니겠어? 그러면 독자와 유리되고 괴리된 그런 시들의 역할이 뭐냐고 나는 되묻고 싶은 거야. 독자는 무시하면서 평론가들이 줄 세우기 하는 시들이 그런 말을 하는 거야. 어떤 위로도, 격려도, 치유도 되지 못하는 시를 내놓으면서. 그럼 시의 역할이 뭐냐고 물어보면 뭐 어떤 의미의 확장 내지 언어의 확장, 세계의 확장이라고 대답하거든. 그렇게 무작정 확장만 하면 그 안에 뭐가 남는 건지 묻고 싶어. 지금의 시라는 것이 이미 이전 세대에 받아들여지던 그런 장르가 아니야. 이미 시인은 너무 많아졌는데, 시는 남지 않았고, 독자들은 다 죽었잖아. 내가 심지어 이런 말을 한다고. 사람들이 죽지 않는 마을에 장의사만 난립하는 형태다. 평론가 남진우가 정확하게 말했지. “은퇴시점을 놓쳐버린 늙은 여배우 같다.” 시라는 장르가 솔직히 어떤 사회적 위상을 가지고 있는지, 우리끼리 생각을 더 해봐야돼. 사실 뭐 미래파니 하면서 자기들끼리 위계를 만들어가면서 독자들을 다 죽여버린 거 아닌가.

 

김도언 : 저는 무슨 소린지 이해하는데, 그러면 많이 팔리면 팔릴수록 좋은 시집이냐고 묻는 사람에게 뭐라고 대답할 수 있을까요?

 

류근 : 그렇게 말할 수는 없지. 아이가 과자만 원한다고 과자만 주는 엄마가 어디 있어. 과자도 주면서, 이것저것을 줄 수 있는 이런 것이 정말 좋은 시잖아. 그런데 시인 한 명이 전부를 생산할 수 없잖아. 비유를 하자면 나는 빵집을 해. 나는 빵을 주고 싶다는 거야. 그런데 나한테 스테이크를 내놔라, 아이스크림을 내놔라 하는 건 이상한 거야. 나는 빵집인데, 너는 왜 빵만 주냐고 하는 건 옳지 않잖아. 나는 빵집의 역할을 하겠다고. 그러니까 고도화된 셰프 역할은 다른 시인이 하면 돼. 나는 빵을 잘 만드니까 빵을 만들겠다는 거야. 어려운 시들은 다른 시인들이 쓰면 돼. 나는 가슴 아픈 시를 쓸 테니까. 그런 걸 말하는 거야.

 

 

도취, 엄살에 대한 오해

 

글의 앞머리에서도 말했지만 류근 시인은 언제나 늘 무언가에 취해 있는 시인이다. 시인이 무언가에 취한다는 것은 무엇일까. 그것은 자신이 꿈꾸는 이데아가 있는 저 너머의 세계로 건너가 무언가에 닿으려는 무의식의 열정 같은 것일까 아니면 고통을 잊으려는, 불안에서 빠져나가려는, 위험에서 도피하려는 환각 같은 것일까. 그 무엇이건, 류근 시인에게 있어 도취란 매우 중요한 존재방식처럼 보인다. 그는 술을 한 번 마시면 보통 무박으로 식음을 전폐하고 마시고 언제나 늘 수백 명의 애인과 연애중이다. 하지만 그가 늘 취해 있는 것만은 아니다. 디오니소스처럼 흠뻑 취해 있다가도 그는 문득문득 깨는데, 그때 그는 매우 논리적이고 사변적인 문장가가 된다. 그의 소셜미디어에는 사회적 편견이나 불편부당함에 단호하게 맞서는 도끼와 활의 문장이 종종 올라온다. 그 문장으로 그는 위정자와 배덕자들이 얼마나 부끄러운 삶을 살고 있는지를 매섭게 일깨운다. 그러니까 그는 현실 너머를 향해 취해 있다가도 현실 안에서도 부단히 깨어 있는 셈이다. 도취와 각성을 오가며 이 세계를 읽고 쓰고 발언하는 것이다.   

 

김도언 : 형을 보면 늘 무언가에 취해 있는 것 같아요. 도취의 삶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물론 깰 때도 있겠지만요. 깨기 위해서 취하는 건가요. 취하기 위해 깨는 건가요. 무언가에 취한다는 게 뭐죠? 형?

 

류근 : 나도 모르게 그냥 한 길로 가는 것 같아. 한 번 들어선 길로 갈 수밖에 없는 거지. 그냥 내가 좋아하는 곳으로 가는 거. 그게 술도 마찬가지고, 여자도 마찬가지지. 그런데 결국 외로워서 그렇지. 외로움에 감응하는 감각이 발달한 거지.

 

김도언 : 다른 사람들도 외로운 건 마찬가지인데, 그 사람들이 뭔가에 쉽게 도취되지는 않잖아요.

 

류근 : 나만큼 외로울 리가 없어. 누구나 다 자기가 가장 외로운 거야. 나는 정말 그렇게 생각해. 정말 외롭기 때문에 내가 끌리는 거에 정직하게 빠질 수밖에 없는 거지.

 

김도언 : 좀 불편한 질문일 수도 있는데, 형 시의 반대론자들이 하는 말인데, 『상처적 체질』이라는 시에 ‘상처는 내가 바라보는 세월/나는 또 이름 없이 다친다/상처는 나의 체질/ 어떤 달콤한 절망으로도 나를 아주 쓰러뜨리지는 못하였으므로’ 이게 상처적 체질의 한 대목인데, 형에 대해 비판적인 사람들은 형 시가 엄살이 심하다는 이야기를 해요.

 

류근 : 엄살이 심할 수도 있어.

 

김도언 : 그런데 과장하지 않고 상처에 당당하게 맞서는 성숙한 태도를 시인한테 요구하는 사람도 있고. 그런데 상처에 과민하게 반응하는 것이 형 시의 분명한 특질인데, 형은 어떻게 생각하세요.

 

류근 : 내가 쓴 시가 대체적으로 엄살이 심하냐고 말한다면 나는 이렇게 말하고 싶어. 그럼 시한테 가서 엄살을 부리지 내가 누구한테 가서 엄살을 부려야 하는 거야? 시에 가서 엄살을 부리고, 화해도 하고, 용서도 하는 거지. 시인은 시한테 할 말만 하면 되는 거 아닌가. 누구도 비난할 이유가 없어. 내 시에 대해 ‘감성팔이’라고 하는 사람들도 있던데 나는 시에 가서 엄살을 부렸을 뿐이야. 그게 나한테는 절실한 거니까. 시에 가서 울고, 시에 가서 하소연을 하고. 그들은 왜 나한테 직접적으로 그런 말을 할까. 시인들이 나를 그렇게 대놓고 욕하는 사람들이 몇 명 있잖아. 그러면 그 시인들은 자기들이 쓰는 시 앞에서 도대체 무얼 하는 거지?

 

김도언 : 궁금한 게 그런 엄살과 과장이 어떤 시적 전략인지. 형은 시에서 아픔이나 절망을 과장해놓고 무언가를 이끌어내는 거예요. 트로트 가요처럼 일단 상처와 아픔을 크게 부풀려놓고 어떤 정언적인 명령을 이끌어내는 게 전략인지 아니면 본능인지.

 

류근 : 아, 그걸 그렇다고 본다면 나름 전략과 본능 그 사이에 있을 가능성이 아주 높아. 내가 고등학교 때 읽었던 이야기 중에는 시라는 것은 부사와 같다. 슬픈 것은 더 슬프게, 아픈 것은 더 아프게. 이렇게 가는 게 맞다. 나는 거기에 크게 동의하는 사람이었거든. 왜 과장하면 안 돼? 내가 조금 전 인사동 화랑에서 김흥수 화백의 그림을 보고 왔는데, 그들은 어떤 아름다움을 확 과장하잖아. 어떤 비참함을 더 과장하잖아. 거기에서 미학이 생기기도 하잖아.

 

김도언 : 형, 제가 좀 예민한 질문을 드릴게요. 시대적으로 자유롭고 민주적인 분위기로 가고 있다가 이명박, 박근혜 정부가 들어서면서 그게 꺾여버리니까 불행에 민감한 예술가들이 현실발언을 많이 하는 것 같아요. 형도 사회비판적인 글을 자주 쓰고 있잖아요. 그리고 그건 공동체가 추구해야 하는 정의에 대한 윤리적인 판단이잖아요. 그런데 올바른 사회로 가기 위한 시인들의 목소리와 그것과 모순되는 시인 개인의 목소리가 일치하지 않는 문제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하세요?

 

류근 : 그건 개인의 도덕성에 대한 문제이고 사생활에 대한 문제인데 그걸 간단하게 말하는 건 쉬운 일이 아니지. 그런데 사회운동하는 사람들이 모두 성직자 같다면 그런 발언들이 가능할까. 사실 내가 만나본 많은 성직자들도 어떤 경우에는 자신의 욕망 때문에 괴로워하고 실수도 하고 그러는데. 사회 공동체에서 내가 추구할 수 있는 공동선에 대한 가치가 있다면 거기에 공헌하면 되는 거 아닐까. 범죄자나 살인범이 사회정의에 힘쓰면 안 되는 법이 있을까. 그건 별개로 봐줘야 하는 거라고 생각해. 개인의 윤리에 대한 반성과 성찰은 그 사람의 고유한 몫이 있을 거라고 생각하거든.

 

 

대중과의 거리

 

류근 시인은 현재 공영방송 KBS 1TV 역사교양 프로그램에 고정 패널로 출연 중이다. (인터뷰를 하는 중에도 그를 알아본 시청자가 인사를 건네왔다.) 그는 농반진반으로 자신을 ‘방송인 겸 전직 시인’이라고 소개하기도 한다. 나는 개인적으로 그의 방송출연과 대중에 대한 노출을 좀 아슬아슬한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다. 예술가와 대중의 접선의 정도에 대해 류근 시인의 사례가 많은 생각거리를 던져주기 때문이다. 늘 술잔 앞에서 도취한 목소리로 시와 사랑을 얘기하던 그가 말쑥한 차림으로 TV 화면에 나타날 때의 망단감은 방송을 아무리 여러 번 봐도 쉬 떨어지지 않는다. 대중과의 거리에 대해 어떤 생각을 갖고 있는지 그에게 물었다. 그에겐 어쩌면 외도(?)에 대한 소명의 기회가 될지도 모르겠다.

 

김도언 : 방송이나 소셜미디어 활동으로 인해서 대중들한테는 많이 알려졌잖아요. 그런데 예술가는 대중과의 거리 조절이 상당히 중요한 관건이잖아요. 그 거리가 너무 가까워도 안 되고, 너무 멀어도 외롭고. 대중들에게 노출되는 것에 대한 부담은 없으세요? 그리고 시인들한테는 필수적인 자발적인 소외나 고독의 시간은 어떻게 확보하는지.

 

류근 : 내가 사업하다가 마흔한 살에 은퇴를 하고, 백수생활을 오래했잖아. 원래 모든 아버지들은 출근을 하면서 아이들에게 뒷모습을 보여줘야 하는 법이야. 그런데 나는 맨날 술 먹고 들어와서 침대에 누워 자는 모습만 보여줬어. 방송 출연 제의가 왔을 때 내가 거절을 했거든. 그런데 앞에서 라면을 먹고 있던 중학생 아들이 그러는 거야. 아빠 방송에 나가주면 안돼? 그때 그게 무슨 말인지 알겠더라고. 그래서 출연을 하기로 결심했지. 사실 인생은 너무 권태로운 거잖아. 여기서 사는 게 재미가 없으니까 여의도 가보면 재미가 있지 않을까? 방송 하는 사람들은 무슨 생각을 하면서 살까? 그게 궁금하기도 했지. 사실 나는 시인이라는 존재가 사람들한테 만만하게 보이는 건 옳지 않다고 생각해. 시인은 위대한 존재니까. 시라는 장르에 대해 경외감도 있고. 그래서 나도 부담이 있지. 내가 유명세로 먹고살 사람도 아닌데, 길을 가다가 사람들이 아는 척하고 그러면 불편하다고. 그런데 나는 알다시피 혼자 있을 때는 결사적으로 혼자 있어. 누구랑 말 안 하고 지내는 경우가 아주 많지. 그런 것들이 나에게 외로움을 다시 한 번 상기시켜주지. 정말 그런 시간이 필요하면 혼자 도망가기도 하고 그래. 고독의 힘을 믿지 않으면 예술가는 못할 것 같다는 말은 맞는 말이야. 그런데 점점 더 타의에 의해서 혼자 있는 시간을 확보하기가 어려워지는 것 같아. 그래서 고민이 많지.

 

언젠가 그와 술을 먹다가 그의 시 한 편을 낭독한 적이 있다. 『상처적 체질』 1부에 들어 있는 〈편지를 쓴다〉라는 작품이었다. 낭독하다 슬쩍 보니 어느새 류근 시인이 눈물을 뚝뚝 흘리고 있는 게 아닌가. 자기 시를 들으며 운다는 면에서 그는 천진한 고아의 영을 가지고 있다. 그는 그처럼 잘 울고, 재미없는 농담도 잘하고, 흐릿한 듯 날카롭게 세상을 보고, 바보처럼 웃고, 또 어디서든 술값을 낸다. 그의 가난한 지갑이 구휼해준 시인들은 얼마나 많은가. 그는 죽은 김광석을 진실하게 그리워하고,(이미 잘 알려진 사실이지만 김광석의 〈너무 아픈 사랑은 사랑이 아니었음을〉의 노랫말은 류근 시인이 썼다.) 어려웠던 시절 신세를 진 이외수 선생한테 변함없는 경외와 존경을 보낸다. 세간의 시선이나 평가 따윈 연연하지 않는 것이다.   


그의 고아의 영과 같은 순진을, 나는 존중한다. 그가 도취에 깊이 빠져들 때는 도망치고 싶을 정도로 피로감을 느낄 때도 있지만, 그 피로감은 어쩌면 깎아지른 절벽의 서슬퍼런 기개와 맞섰을 때 느껴지는 것과 같은 종류의 것인지도 모른다. 나는 그가 좀처럼 개선되지 않기를, 수정되지 않기를, 반성하지 않기를, 그리고 지금처럼 영원히 맹목적이기를 바란다.  

 

류근 캐리커처.jpg

 

시인 류근은 경북 문경에서 태어나 충북 충주에서 자랐다. 중앙대학교 문예창작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 박사과정을 수료했다. 1992년 문화일보 신춘문예에 당선되어 시인으로 등단했으나 이후 작품 발표를 하지 않다가 등단 18년 만인 2010년, 시단의 관행을 깨면서 전작시집 『상처적 체질』(문학과지성사)을 첫 시집으로 출간했다. 대학 졸업 후 광고회사 등에서 일하다가 홀연 인도 여행을 하고 돌아와 강원도 횡성에서 고추 농사를 짓기도 했다. 대학 재학 중 쓴 노랫말 <너무 아픈 사랑은 사랑이 아니었음을>이 김광석에 의해 불려지면서 많은 이들의 심금을 울리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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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김도언 | 이흥렬(사진)

김도언
1999년 한국일보 신춘문예에 당선된 이후 여섯 권의 소설책과 세 권의 산문집, 한 권의 평전을 펴냈다. 지금은 문학적 관점을 다양한 형식의 글쓰기, 시각적 이미지 작업과 연계해 세계와 타자를 읽어내는 실험을 하고 있다. 좋은 인터뷰는 인터뷰이의 실존적 조건에 대한 통찰과 아울러 삶의 총체성에 대한 상상력과 감수성이 들어 있어야 한다고 믿는다.
https://www.facebook.com/doeon.kim.58

이흥렬(사진)
중앙대학교 사진학과와 밀라노 IED 사진학과 졸업. 인물사진과 나무사진을 주로 찍고 있으며 최근의 작업은 '푸른 나무(Blue Tree) 시리즈이다.
https://www.facebook.com/yolll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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