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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고학, 궁금하지만 어렵게 여겨진다면

『유라시아 역사 기행』저자 강인욱 인터뷰 초원지역 유목문화의 진정한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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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옆에 있는 여러 물건들 중에 수백 년, 수천 년 후에 유물로 남을 만한 것들은 어떤 게 있을까? 그때의 후손들은 그 유물들을 보고 어떤 생각을 할까? 그런 후에 유리벽 너머의 유물들을 보면 그것들이 좀 다르게 느껴지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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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방 초원을 빼고 우리 역사를 말할 수 있을까? 우리에게 초원은 ‘야만적인 약탈자’ 혹은 ‘자유로운 노마드’의 극단적인 모습으로만 기억되어 왔다. 때론 고구려와 맞서 싸운 오랑캐로, 때론 신라 문화의 원형을 간직한 뿌리로 북방을 이야기해 왔지만, 그 어떤 이미지도 북방의 진정한 역사를 제대로 들여다보지 못했다.

 

러시아에서 북방 고고학을 전공한 젊은 학자 강인욱은 저서 『유라시아 역사 기행』을 통해 지금껏 단편적으로만 제시되던 북방 유라시아와 우리 역사의 관계를 본격적으로 보여 주고자 했다. 그는 “한국이 유라시아 동쪽 끝에 위치한 작은 반도가 아니라 유라시아로 향하는 출발점이며 교류의 한 축이었음이 이 책을 통해 자연스럽게 밝혀질 것”이라고 말한다.

 

선생님께서 이 책을 쓰게 된 계기, 혹은 지금 우리가 유라시아 역사를 알아야 할 이유가 무엇일까요?

 

최근 유라시아에 대한 관심이 많은데 대부분 현재의 자원, 경제와 한류에 대한 것이지 수천 년의 문화 교류에 대한 연구는 없어요. 유라시아에 대한 관심은 많은데 아는 것은 거의 없지요. 왜 그럴까 생각해 보니 결국 언어적인 장벽이 너무 크더군요. 유라시아라면 중국 신장성 지역과 이름이 ‘~스탄’으로 끝나는 나라들, 그리고 몽골과 시베리아입니다. 이 나라들이 지난 20세기에는 모두 러시아어로 된 자료만 남겼습니다. 동아시아가 한자문화권이라면 유라시아의 근대는 러시아어문화권이지요. 그런데 한국에서 러시아어로 된 고고학 자료를 제대로 이해하는 사람들이 거의 없습니다. 그래서 아직도 실크로드 하면 100여 년 전에 이 지역을 조사한 오렐 스테인이나 스벤 헤딘, 오타니 탐험대들의 이야기가 대부분이죠. 저는 지난 100여 년간 축적된 러시아와 중앙아시아 학자들의 연구들을 제대로 이해할 수 없었다는 것이 그 원인 중 하나라고 생각합니다. 한국 사람이 직접 자료를 모은 유라시아 고고학 관련 책은 거의 없고, 서점에 깔린 많은 실크로드에 관한 책들은 대부분 영어나 일본어 연구서를 번역한 것입니다. 사정이 이러니 조금 더 쉽게 다가갈 수 있는 문장으로 러시아어를 포함한 여러 나라의 자료들을 균형 있게 정리하여 초원지역 유목문화의 진정한 모습을 소개하는 것이 제 의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이 책을 기획하게 됐고요.

 

초원 문명을 ‘제5의 문명’이라고 지칭하신 게 신선했어요. 그만큼 인류사에 미친 초원의 영향을 높게 보신다는 말인데, 구체적으로 어떤 게 있을까요?

 

가 ‘제 5의 문명’이라는 개념을 제기한 것은 초원 문명이 정착 문명과는 완전히 다른 세계관으로 만들어졌기 때문입니다. 유목민들은 지속적으로 이동했기 때문에 보물을 쌓아 두는 대신 주변의 가신들과 가족들에게 곧바로 나누어 주었습니다. 말 위에서 건설된 문명이라 거대한 도시나 문자, 관개 수로 같은 것도 없어요. 허허벌판에 사람들이 모이면 그 순간 거대한 도시가 만들어지고, 그들이 사라지면 아무것도 남지 않죠. 재물과 사람이 순식간에 모였다가 사라지는 곳이 초원입니다. 정착 문명은 한 지역에서 오랫동안 대를 이어 존속한다면, 유목 문명은 하나의 시간 속에서 다양한 공간을 오고 갑니다. 

 

유목 문명은 이러한 초공간성으로 4대 문명의 북쪽 초원 지대를 모두 연결했습니다. 덕분에 유라시아 어딘가에서 새로운 기술이 발명되면 초원을 통해 다른 지역으로 퍼져 나갔지요. 대표적인 것이 전차에요. 기독교와 불교 모두 전차를 신의 모습에 빗대어 표현할 정도로 전차는 가공할 무기입니다. 그런데 그 기원이 우랄산맥 근처에서 생겼다고 보는 것이 정설이에요. 또, 만주지역의 대표적인 청동기시대인 하가점상층문화에서 사용된 투구는 거의 같은 시기에 흑해 연안까지 전래되었습니다. 얼마 전에는 중국 북방 초원에서 사용되는 동검의 거푸집이 바다 건너 일본의 간사이 지역에서 발견되기도 했죠. 

 

신라에 남은 초원 유물에 대한 내용을 읽고 깜짝 놀랐어요. 금관, 황금보검, 적석목곽분 등 저 멀리 초원 지역에서 나온 것과 유사한 유물이 정말 많더라고요. 일각에서는 ‘신라 북방 민족 기원설’ 같은 것도 주장한다던데, 선생님은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신라의 북방계 유물인 적석목곽분, 유리, 천마도 등을 모두 연구하려면 수많은 학자가 수십 년은 연구해도 부족할 것입니다. 그런데 한두 개 유물만 보고 북방에서 사람이 ‘왔다, 안 왔다’ 이렇게 성급히 결론 내리시는 분들을 보면 참 안타깝습니다. 제가 이 책에서 주장하고 싶은 것은 유물은 교류의 흔적이라는 시각에서 출발하여 그 교류가 어떤 경로로 이루어졌는지를 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기존의 시각은 북방 지역에 대한 무지에서 출발한 것입니다. 예를 들어볼까요? 만약 서울의 길거리에서 어떤 아름다운 여성이 프랑스의 명품 핸드백을 두르고 지나간다고 합시다. ‘북방기원설’적 관점에서 보면 그 여성은 프랑스에서 만든 가방을 가졌다는 이유만으로 프랑스 사람이 됩니다. 

 

북방 유목 민족이 한반도로 내려와서 신라 지역을 정복했다고 생각하는 분들도 있지만, 유목민들의 습성을 생각해 보면 그럴 가능성은 크지 않아요. 유목민들에게는 가축을 먹일 넓은 목초지가 필요합니다. 만약 기마인들이 대량으로 내려왔다면 그들이 정착한 곳은 경주가 아니라 아마 대관령 고원 지대여야 하죠. 게다가 유목민들이 신라에 내려와서 농경문화에 곧바로 적응했다는 것은 마치 농사짓던 한국인이 몽골로 이주하자마자 게르를 짓고 목축을 했다는 것과 다르지 않습니다.

 

반대로 무조건 교류가 없었다고 고집하는 것 역시 전혀 주변지역 상황에 귀를 막는 꼴입니다. 적석목곽분을 예로 들어 볼까요? 적석목곽분의 요소 하나하나를 뜯어보면 한국에서 기존에 발견되는 고인돌이나 목곽묘와 유사합니다. 그런데 우연히 그것들을 합치니 북방의 고분과 똑같이 생겼다는 것은 참 납득하기 어렵습니다. 수많은 북방계 무덤과 유물이 우연히 신라 고분에 들어갈 가능성은 복권 당첨의 확률에 가깝죠. 

 

한민족 북방 기원설이 일제강점기 식민사학의 유산이라고 말씀하시면서도, 한반도에 미친 초원의 영향을 부정하지는 않으셨잖아요. 여기에 대한 선생님의 입장을 듣고 싶어요.

 

한민족 북방 기원설 아니면 자생설, 이렇게 이분법적으로 갈라보는 것은 바로 일제강점기에 일본인들이 한국 문화를 나눠 보려던 것과 똑같다고 생각합니다. 일제강점기 때에 한국사를 들어서 타율성론으로 설명하려고 했습니다. 원래 한국은 조선시대부터 소중화를 자처했는데, 그런 나라를 식민지화하려니 한국의 문화를 중국과 분리시켜야 했죠. 한국인은 자율적으로 문화를 일구어낼 수 없는 ‘타율적’인 사람들이라고 주장해야 했으니 그 대안으로 북방기원설이 나온 것이지요.

 

하지만 신라의 금관, 황금보검, 적석목곽분은 기본적으로 신라의 주체적인 발전을 전제하지 않으면 불가능한 것입니다. 때문에 당시 북방지역의 상황을 연구하고, 왜 신라인들은 북방지역의 고분과 유물을 선호했는가를 다각적으로 검토해야 합니다. 이러한 복잡한 문화 교류를 비슷한 시기 다른 유라시아의 교류와의 비교를 통해 차분하게 풀어야 하는데, 이걸 단순하게 기마 민족 이주설로 결론 내는 것은 마치 중대한 사건을 수사하기 귀찮다고 아무나 범인으로 지목하고 끝내는 꼴이에요.

 

사실 일제 때 만들어진 한민족 북방 기원설이 해방 이후 최근까지 지속된 데에는 역사에 대한 우리의 콤플렉스도 한몫했습니다. 우리는 어려서부터 ‘세계가 찬탄하는 반만년의 찬란한 우리 역사’라고 배웠습니다. 하지만 어떤가요? 당장 이웃 중국만 가서 보아도 한국의 역사 유적이 결코 세계가 괄목할만한 규모는 아니라는 것이 분명합니다. ‘몰락한 양반집 증후군’이라는 재미있는 개념이 있습니다. 보잘것없는 집안일수록 조상을 들먹이며 자존심을 세우는 걸 말하죠. 한국은 해방 이후 제대로 된 역사도 없었고 참 초라했습니다. 그러하기에 머나먼 북쪽 어딘가가 우리 역사의 기원이었다고 생각하는 것은 많은 위로가 되었겠지요. 

 

사실 이렇듯 극단적인 주장이 나오게 된 것은 최근까지 북방 지역에 대한 조사는커녕 방문조차 어려웠던 연구 환경 때문이기도 합니다. 이제 한국은 자타가 공인하는 선진국 아닙니까? 그런데 아직 갓 독립한 신생국 시절의 방어적 역사관을 유지할 필요가 있을까요? 이제 우리의 손으로 직접 유라시아 초원지역의 자료를 연구할 수 있으니 한반도와 초원 지역 교류의 실체가 하나씩 밝혀지리라 기대합니다.

 

고구려의 등자 얘기를 보니 우리가 초원에 영향을 준 유물도 있다는 것이 놀라웠습니다.  ‘외국 언론이 보도한 한국의 OO’ 이런 식의 기사가 요즘 유행인데, 그런 것처럼 초원의 제국들이 본 한국은 어떠했을까도 궁금하군요. 

 

초원의 제국의 눈에 비친 한반도는 초원 문화와 농경문화의 강점을 모두 가진 작지만 강한 나라였던 것 같습니다. 한 무제가 고조선 정벌을 결심했을 때 일차적인 목표는 흉노와 고조선의 관계를 끊는 것이었습니다. 고조선을 흉노의 왼쪽 어깨라고 경계했거든요. 실제로 흉노의 성지에서는 한반도 북부 지역에서 유행하던 온돌이 발견되기도 했습니다. 또 고구려는 유연과 연합해서 북위를 압박하기도 했습니다. 고구려는 초원과 중국의 장점들을 취해서 자신의 영향력을 극대화했던 것 같습니다. 본문에도 소개된 꼬치구이나 등자처럼 말입니다.

 

고구려가 당시 동아시아 세계에서 차지했던 위치에 대해서는 비교적 잘 알려져 있지만, 고조선과 초원 지역의 관계에 대해서는 기록이 거의 없습니다. 오로지 고고학 자료만이 그 관련을 말할 수 있겠죠. 때마침 작년부터 경희대에서 “고조선과 북방 문화” 연구가 시작되었는데요. 이 연구가 진행되면 우리 고대 문화가 초원 지역에 끼친 영향을 좀 더 구체적으로 이야기할 수 있을 것 같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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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골 초원에 위치한 몽골의 옛 수도 카라코룸

 

책이 유라시아 역사 ‘기행’이잖아요. 선생님께서 다녀온 초원 유적 가운데 어디가 가장 인상 깊었는지 궁금해요. 독자들에게 추천해 주고 싶은 ‘초원’ 역사 여행지가 있을까요?

 

푸르른 몽골 초원에 위치한 몽골의 옛 수도 카라코룸으로 다녀오라고 권해 드리고 싶네요. 몽골은 전 세계적으로 거의 유일하게 순수 유목민들이 남아있는 곳입니다. 카라코룸까지 가는 길은 도로도 비교적 잘 정비되었고, 유적들도 정비가 잘 되어 있어서 초원의 역사를 한눈에 보는 데 안성맞춤입니다. 카라코룸으로 가는 길 곳곳에 위치한 사슴돌과 판석묘 등도 괜찮은 볼거리고요. 

 

또 카라코룸에 가시면 꼭 초원에 누워 보라고 권하고 싶어요. 사실 초원은 색이 단조롭습니다. 처음엔 신기하지만 곧 똑같은 푸른 색깔에 질려 버리거든요. 그럴 때는 초원에 한번 누워 보세요. 여름의 초원은 참 따뜻합니다. 그러면 곧 멀리서는 보이지 않던 다양한 잡초와 꽃, 그리고 그들 사이를 지나가는 귀뚜라미를 볼 수 있고, 그 조근조근한 소리를 듣는 것도 좋죠. 초원이 얼마나 생동적인지를 느끼는 데에 5분도 걸리지 않을 겁니다. 땅과 입 맞추고 다시 일어나 초원을 본다면 아마 완전히 다르게 보일 거예요.

 

고고학 하면 좀 고리타분한 학문이라는 이미지가 많잖아요. 읽을 만한 개론서도 없고, 박물관 같은 데 가도 뭘 봐야 할지 모르겠고요. 고고학에 좀 더 쉽게 접근할 수 있는 방법이 없을까요?

 

한국에서 일반인들이 쉽게 접할 수 있는 고고학 자료는 그리 많지 않습니다. 제 생각에 고고학을 제대로 느끼려면 유물을 직접 발굴하고 만져야 하는데, 대개의 유물들은 유리벽 안에 갇혀 있으니 일반인들이 직접 접할 수 있는 기회가 적지요. 

 

사실 제가 이 책을 쓴 것도 대중들이 고고학에 좀 편하게 접근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에요. 그래서 영화 이야기도 담아 보고, 돼지국밥이나 꼬치구이 같은 음식 이야기도 실었고요. 아마 학자들이 그런 노력을 더 해야겠지요.

 

개인적으로는 주변의 사물에 상상력을 보태 보라고 말씀 드리고 싶어요. 지금 옆에 있는 여러 물건들 중에 수백 년, 수천 년 후에 유물로 남을 만한 것들은 어떤 게 있을까? 그때의 후손들은 그 유물들을 보고 어떤 생각을 할까? 그런 후에 유리벽 너머의 유물들을 보면 그것들이 좀 다르게 느껴지지 않을까요? 깨진 그릇 한 점에서 치열하게 부부싸움을 하는 선사시대 사람들을 떠올리게 될지도 모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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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라시아 역사 기행강인욱 저 | 민음사
러시아에서 북방 고고학을 전공한 저자는 유럽과 러시아, 몽골, 중국, 중앙아시아의 최신 고고학 자료를 바탕으로 이 문제에 색다른 해법을 제시한다. ‘4대 문명’과는 다른 방식으로 세계사의 발전을 이끌었던 초원에 ‘제5의 문명’이라는 이름을 붙인 것이다. 저자는 지난 수천 년간 왜곡되고 천대받았던 초원의 역사에 새로운 지위를 부여함으로써 지금껏 단편적으로만 제시되어 온 초원과 한반도의 관계를 선명하게 그려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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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채널예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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