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괜찮고, 잘 될 거라는 단맛

이한철 <슈퍼스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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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노래는 너절하게 긍정을 강요 때릴 생각이 없다. 다만 친구들끼리 서로의 편이 되어 지지하고 공감하고 믿어주는 아름다운 느낌을 음악 속에 녹여 놓았다. 거기서 비롯되는 솜사탕처럼 끈적한 친밀감과 연대감은 결코 수준 낮고 공허한 단맛이 아니었다. 꿀맛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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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력한 무더위에 선풍기를 끌어안다 문득 옥탑방 살던 시절이 떠올랐다. 내가 살던 가건물 옥탑방들은 여름이면 지옥의 땀샘 파괴 한증막이 되곤 했다. 밤에 옷 벗고 바닥에 자면 땀 때문에 장판 위를 쭉쭉 미끄러지며 자는 기이한 쾌락이 있었다.

 

여름마다 영혼이 삐끗할 듯 상태 안 좋은 집들이 대부분이었는데 딱 한 번 제대로 지은 옥탑이 얻어걸렸다. 에어컨 없이도 맞바람이 꽤 시원한 집이었다. 그 상태 좋은 옥탑방은 아이러니하게도 상태 안 좋은 내 친구들이 모이는 아지트가 되었다. 우리들의 공통점은 남녀를 불문하고 돈 없고, 할 일 없고, 대책 없고, 애인 없고, 근거 없는 자신감만 있다는 점이었다.

 

그런 친구들이 한데 모이면 슬픔과 좌절의 장마철이 될 것 같았지만 의외로 농담과 유머가 쉬어갈 틈이 없는 예능 경연장이 되었다. 미래에 대한 희망이 워낙 없다보니 다들 과도한 유머를 펼쳐서라도 절망감을 떨쳐내고 싶었던 건지도 모르겠다.

 

그러니까 한 마디로 개판이었다. 웃기기 위해선 무슨 짓이든지 했다. 차력 쇼, 자해 쇼, 오바이트 쇼, 개 드립 퍼레이드, 막장 인생 메소드 연기 등등 온갖 쇼가 난무했다.

 

런 분위기에서 오늘의 주제곡 이한철 님의 <슈퍼스타>가 그 옥탑방의 찬송가로 등극했었다는 게 오늘 칼럼의 요지다.

 

들어 보신 분도 많을 것이다. ‘괜찮아 잘 될 거야~’ 하는 신나는 음색의 후렴구로 유명한 곡이며, 기분 좋은 멜로디와 담백한 목소리가 매력적으로 깔끔한 명곡이다.

 

사실 행복 전도사, 긍정 마법사 식의 메시지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인생이 비참하게 느껴질 때, 긍정할 기력도 없을 때, 잘 될 거라고 믿으세요, 억지로 웃어서라도 행복을 찾으세요, 라고 떠드는 건 일단 시끄럽고, 내겐 낮은 차원의 눈속임이자, 간단한 설탕 한 스푼을 내미는 것과 다를 바 없어 보였다.

 

그러나 경쾌한 기타 소리로 시작하는 이 노래 <슈퍼스타>의 단맛은 그런 설탕과는 확 다른 성분이었다. 이 노래는 너절하게 긍정을 강요 때릴 생각이 없다. 다만 친구들끼리 서로의 편이 되어 지지하고 공감하고 믿어주는 아름다운 느낌을 음악 속에 녹여 놓았다. 거기서 비롯되는 솜사탕처럼 끈적한 친밀감과 연대감은 결코 수준 낮고 공허한 단맛이 아니었다. 꿀맛이었다. 


고로 그 옥탑방 멤버 중 누군가 어렵고 힘든 일이 있다고 고백하면 모두가 약속한 듯 이 곡을 불러재꼈다.

 

괜찮아, 잘 될 거야~ 너에겐 눈부신 미래가 있어.
괜찮아 잘 될 거야~ 우린 널 믿어 의심치 않아.

 

이 노래에 담긴 복음은 어떤 녹차음료 광고의 주제곡으로 쓰여 그 옥탑방에 전해졌다. 탤런트 윤은혜 씨가 일이 안 풀려 처져있는 사람들 앞에 불쑥 등장해 녹차 음료를 건네는 장면과 함께, 뭐라 설명하기 애매하면서 웃긴 트위스트 비슷한 댄스를 추며 괜찮아 잘 될 거야~ 하고 노래하는 광고였다. 녹차 음료를 마신 사람들은 그 즉시 함께 춤을 추며 그녀의 즐거움에 동화된다는 콘셉트였다.

 

논리적으로는 개뿔, 녹차를 마시는 것만으로 뭐가 어떻게 괜찮아지고, 어떻게 고민이 해소될 거고, 대체 무슨 수로 잘 될 거라는 건지 알 수 없는 광고였는데, 그걸 보는 우리들의 느낌은 ‘으아 저거다’ 였다. 우린 녹차 대신 소주를 사용했지만 뭔가 마시면서 기분이 나아지고 이젠 잘될 거라는 희망에 넘칠 수 있다는 그 광고의 메시지를 온몸과 정신으로 믿을 수 있었다.

 

그래서 우리는 하루에 백 번도 넘게 이 노래를 불러댔다. 암만 더워도, 소개팅에서 까여도, 집에서 나가 죽으라고 해도, 발기부전이나 우울증에 걸려도, 괜찮아 잘 될 거야를 합창하면 기분이 발랄해졌다.

아무 근거 없이 잘 될 거라는 믿음을 갖는 건 허무할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찌질한 우리들이 찌질한 우리들의 편이 되어 인생의 찌질함을 함께 버텨내려 했던 거룩한 협력의 송가였다. 작대기 하나는 부러지지만 여럿이면 안 부러지는 원리를 응용한 셈이다. 친구, 네가 뭘 하든 괜찮고, 잘 될 거라는 지지를 주고받으면서, 앞으로 계속 후회 없이 살고자 하는 의지가 노래를 부를 때마다 넘쳐났다. 부수적으론 라면을 엎었다거나 하는 사소한 일에도 다 같이 벌떡 춤추며 이 노랠 불러 재끼면 웃기기도 했고, 소주를 엎었다거나 하는 끔찍한 일에도 이 노래를 부르면 다 용서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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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지금 좀 개판이지만 곧 잘 될 거야’ 라고 믿는 사람과 ‘아아 엿 됐다, 늘 이런 식이야. 왜 항상 되는 일이 없지’ 하고 절망에 빠지는 사람 중에 누가 더 잘될 것인지는 자명하다. 둘 중에 로또에 걸리는 사람이다. 그러나 로또에 안 걸리는 사람 중에서만 보자면 잘 되는 건 역시 희망을 가지는 쪽이다. 특히나 힘내라고 토닥여 주고, 잘 될 거라고 믿어주고, 그래도 안 되면 웃겨서라도 기분을 나아지게 만드는 친구가 있는 쪽이 부정적인 행각을 빨리 멈출 수 있을 것임에 틀림없다. 

 

폭염 속에서 축 늘어져있던 나는 왜 에어컨 살 돈도 없나 고민하다가 벌떡 일어나 이 노래를 다시 들어보았다. 뭔가 괜찮고, 잘 될 것 같았다. 찌질한 옥탑방 친구들 생각이 나면서 코끝이 찡해지기도 했다. 그때 그토록 잘 될 거라고 노래를 불렀지만 사실 잘 된 놈은 없다. 하지만 경쟁과 성공에 목숨 걸지 않고 행복에 지표를 두고 살아선지 친구들 대부분은 아직도 유쾌함을 잃지 않고 있다. 생활의 안정 여부를 떠나 늘 긴장하고 불쾌한 표정인 사람들보다 그 대책 없이 웃긴 친구들이 훨씬 후회 없이 잘 사는 중이라고 믿어 볼란다.

 

너만의 살아갈 이유 그게 무엇이 됐든 후회 없이만 산다면 그것이 슈퍼스타~

 

자, 독자님들도 너무 덥다면 달달한 수박주스처럼 시원한 이 노래를 불러보세요. 기분이 좋아질 거예요. 셋, 넷! 괜찮아, 잘 될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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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박상 (소설가)

소설가. 장편소설 『15번 진짜 안 와』, 『말이 되냐』,『예테보리 쌍쌍바』와 소설집 『이원식 씨의 타격폼』을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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