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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즈 페스티벌을 많이 가는데, 왜 재즈클럽은 안 갈까

재즈 평론가 황덕호 『그 남자의 재즈 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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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 년에 한 번 페스티벌 가서 듣는 것으로 모든 게 다 만족이 되었다는 거죠. 그 시장만 남은 거예요. 음악 시장이라고 보기에는 좀 힘들고, 피크닉 시장 같은 것으로 말이에요.

그것은 마치 몇 년을 같이 살아도 결코 그 속을 알 수 없는 애완용 고양이와도 같다. 때론 주인을 무척이나 따르는 것 같기도 하면서 때론 너무도 무심해 보이는, 그래서 애완용 가축과 도심의 야수 경계 사이를 절묘하게 거니는 한 마리의 능청스런 고양이.(80쪽)

 

재즈는 아름답다. 별스럽기도 해서 귀를 잡아끄는 매력이 있다. 날씨, 장소불문 부드럽게 장면에 녹아들다 곧 자신이 장면이 되는 음악. 우리는 아름답고 특별한 음악에 대해 이야기를 하다 결국 현실로 돌아왔다. 짧지 않은 역사의 이 아름다운 음악을 둘러싼 현실이라는 땅은 지금 너무나 황폐했기 때문이다. 아름다운 음악에 매혹되어 삶을 그것에 바치려는 사람들과 음악을 ‘피크닉’용 정도로 소비하고 있는 사람들 사이의 괴리가 걱정스러웠다. 매해 수십만의 사람들이 재즈 페스티벌에 가고, 도시를 뒤덮은 수많은 카페에서 재즈가 흘러나오지만 그뿐이다. 재즈는 매력적이지만 여전히 먼 곳에 있는 낯선 음악이며 음반은커녕 어떤 뮤지션을 들어야 할지도 모를 복잡하고 번거로운 장르로 치부되고 있는 것 같다.


“재즈 페스티벌을 그렇게 많이 가는데 왜 재즈 클럽은 안 갈까요?” 재즈 평론가 황덕호가 묻는다. 얼굴이 좀 달아올랐던 것 같다. 음악을 좋아하지만 어떤 음악이 좋다고 뚜렷하게 말하지 못하는 사람이라 막 재즈를 듣기 시작했다고 하면서도 다음 단계는 전혀 생각하지 않았다. 비단 국내의 문제만은 아니라고 위로하듯 말한 황덕호는 “정말 음악을 좋아하고 싶다면 음반을 딱 한 장이라도 사라고 말씀 드리고 싶다"고 했다. 그거다. 속으로 무릎을 탁 쳤다. 거기에 해답이 있을 것이다. 빵을 좋아하는 사람이 반드시 제빵 지식을 알아야 하는 건 아니므로. 맛있는 빵집을 찾아다니며 훌륭한 빵을 맛보는 건 (기쁜 마음으로)할 수 있으니까.


어떤 빵부터 시작해야 할지 감이 오지 않는 사람들을 위해 강력 추천하는 두 가지는 『그 남자의 재즈 일기』와 유튜브다. 이것만 있으면 된다. 그리고 마음에 드는 빵집(음반)을 하나만 찾아내자. 그걸로 충분히 성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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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화와 집중도 사이에서


2002년에 출간되었던 책이 개정되어 나왔습니다. 2002년과 2015년은 시간의 간격만큼이나 재즈를 둘러싼 환경 변화가 클 것 같은데요. 라디오에서 재즈 프로그램도 꾸준히 진행하고 계시는 내부인 입장에서는 어떻게 느끼시나요?

 
물론 음반이 사라지고 있는 전반적인 문제가 책에도 담겨 있는데요. 일단 재즈라는 음악이 2000년대 초만 하더라도 듣는 사람들의 숫자가 지금보다 훨씬 적었어요. 그러다 보니 이런 가이드북도 필요하다는 생각에 책을 쓰겠다는 아이디어를 만들었었죠. 지금은 어느 커피숍을 가도 재즈가 많이 나오죠. 재즈 페스티벌을 한 번 하면 수십만의 인파가 모이고요. 전보다 굉장히 덜 특별한 음악이 된 건 맞아요. 대중화되었다고 봐야죠. 동시에 재즈를 열심히 듣는 사람의 숫자는 줄어든 것 같아요. 많이 줄었죠. 음반이 사라지고 있는 부분과 큰 관련성이 있어요. 예전에는 어떤 아티스트가 어떤 음반을 냈고, 어떤 순서대로 나오고 있고, 누가 연주하고 있다는 것 등에 대한 총체적인 관심이 있었는데요. 음반이 사라지니까 광역적으로 넓어지는 대신에 그 음악에 대한 집중도랄까 그런 것이 떨어진 부분이 있죠. 열혈팬들은 훨씬 줄어든 느낌이 들어요. 음악 전반에서 소비되는 패턴이 다 그렇게 바뀐 것 같아요. 그런 상황이죠.

 

특히 국내 재즈 인구가 ‘공중분해(643쪽)’ 됐다고 표현하기도 하셨어요.


그렇죠. 실제 제가 음반사 담당자와 이야기 도중 들었던 얘기인데요. 팝이나 가요는 음반 시장에서 디지털 시장으로 옮겨갔잖아요. 음반 매출이 줄어들고 디지털 시장이 계속 커지고 있는 상황이고요. 음반이 사라지는 것을 가장 거부하는 층은 클래식 층이에요. 디지털로 듣는 것을 무척 싫어하니까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디지털 시장이 커진다는 대세는 바뀌지 않고 있고, 클래식 분야도 더디게나마 디지털 시장이 확대되고 있어요. 그런데 재즈는 음반 시장도 없어지고, 디지털 시장도 없어져버린 거예요. 어떻게 설명할 수 있느냐면 재즈가 너무 좋아서 듣는 사람의 숫자가 애초에 적었던 거고, 일 년에 한 번 페스티벌 가서 듣는 것으로 모든 게 다 만족이 되었다는 거죠. 그 시장만 남은 거예요. 음악 시장이라고 보기에는 좀 힘들고, 피크닉 시장 같은 것으로 말이에요.

 

피크닉 시장이요? 


예. 그런데 이게 비단 한국 시장만의 문제는 아닙니다. 미국에서는 2014년 통계가 2015년 상반기에 나오는데요. 공연 시장 등을 모두 포함한 통계인데, 재즈가 1.4%를 차지해서 꼴등을 했어요. 그건 항상 그랬어요. 동요 시장보다도 작아요. 재즈는 원래 그런 음악이에요.(웃음) 그런데 제일 충격적인 것은, 디지털 시장이 전년 대비 마이너스 시장이 된 분야가 재즈가 유일했다는 점이에요. 클래식도 디지털 시장 규모가 조금씩 다 늘거든요. 그런데 재즈만 마이너스가 됐어요. 그것에 대해 재즈 뮤지션들이 많이 얘기를 주고받았다고 해요. 이 통계는 인터넷에서 볼 수 있어요.

 

답답하실 것 같아요. 재즈를 향유하는 방식이 카페에서 듣는 음악 정도이지 어떤 아티스트를 좋아해서 음반을 찾아듣는 것으로 이어지진 않고 있어요. 그런 노력이 거의 없어진 분위기를 어떻게 보고 계신지 궁금해요.


음반이 만들어져서 컬렉션으로 듣는 문화가 미국과 유럽은 1930년대부터 시작된 것 같아요. 그때부터 음반 컬렉터라는 것이 생겨서 각 음반 회사 별로 일련번호들을 정리해서 잡지로 내고, 서로 정보를 공유하면서 평을 쓰고 이런 것들이 생겼어요. 재즈는 숫자가 훨씬 적긴 했지만요. 폭발적으로 이 숫자가 늘어난 게 LP라는 매체가 생기고 나서부터죠. 이때부터는 말도 안 되게 음악 시장이 거대해지고 평도 쏟아졌어요. 집에 오디오를 두고 음악을 듣는 것이 굉장히 재미있는 취미거리가 된 시대가 있었죠. 이제는 재미있는 것들이 다 스마트폰으로 가서 사람들이 재미를 다른 쪽에서 느끼는 상황이 된 것 같아요.


영화도 비슷하게 볼 수 있겠지만 영화는 확실히 극장이라는 공간을 집에 구현하기가 힘들고, 단순히 영화를 보는 것만이 아니라 애인이나 친구를 만나서 밥을 먹는 등의 행위들이 다 동반되어 있는 것이니까 좀 다르겠죠. 그것도 일종의 피크닉인 거죠. 재즈도 그렇게 된 것 같아요.

 

그런가 하면 ‘재즈란 이런 것이다’라고 하는 편협한 기준으로 반쪽짜리 감상을 하는 경우도 많아요. 책에서도 그런 감상을 계속 경계하시는 것 같았습니다.


누구나 그런 면이 있죠. 아무래도 균형 감각이 있으면 좋겠죠. 사실 그런 점에 있어서는 이 책을 싫어하는 분들도 많으실 거예요. 요즘 재즈 잘 안 다루고 있고, 재즈라는 음악을 어느 한쪽으로 몰아놓은 것 같은 느낌이 있을 테니까요. 이 취향에 동의하시지 않는 분들의 숫자가 훨씬 많을 거예요. 비근한 예로 팻 메스니(Pat Metheny), 키스 재럿(Keith Jarrett)은 우리나라 사람들이 제일 좋아하는 뮤지션들인데 이 책에서는 살짝만 다루잖아요. 실제로 저에게 그런 불만을 얘기한 분들도 계셨거든요. 그래서 책 역시 균형이 있다고 표현하기는 좀 그렇죠.


책에서 표현한 것은 음악 마니아고 재즈를 아주 좋아하시는 분들이 가지고 있는 편협함이나 까탈스러움, 잘난 척하고 재수 없는(웃음) 면들이었는데요. 이런 것들이 등장해야 얘기가 좀 진행이 되는 면이 있었기 때문이에요. 입문자 입장에서 ‘듣는 사람들은 저렇구나’ 생각하면서 그 사람과 정신적으로 싸움이 벌어져야 동력이 생기니까요.

 

사실 음악 감상자로서 우리 안에는 M도 있고, 염경미나 최지숙 등 모든 등장인물이 들어 있잖아요. 때문에 책의 주인공이 경험하는 의식의 흐름이 공감되는 부분이 있어요.


예.(웃음)

 

 

음악에 대해 글을 쓰는 것은 건축을 춤으로 표현하는 것과 마찬가지

 

소리에 대한 감상을 글로 표현한다는 것이 무척 주관적이기도 하고, 쉽지 않은 작업이었을 것 같아요. 색깔, 동물, 풍경 등으로 표현하면서 최대한 느낌을 전달하려고 하셨어요. 어려운 점은 없으셨어요?


어렵죠. 그게 제일 어려운 부분이죠. 누구의 말인지 불확실하지만 ‘음악에 대해 글을 쓰는 것은 건축을 춤으로 표현하는 것과 마찬가지’라는 유명한 얘기가 있잖아요. 어려워요. 추상적인 것을 말로 표현하는 데는 늘 한계가 있어서요. 책에서 계속 라이너 노트(liner note, 음반에 따라 나오는 음악과 연주자 해설)를 읽고 얘기를 하잖아요. 대부분 영문으로 쓰여 있어서 잘 안 읽으시는데, 책에서는 그걸 빼놓고 얘기를 하려면 진행이 안 되니까 객관적인 사항을 가지고 시작한 거죠. 아니면 뜬구름 잡는 얘기만 계속 하게 되니까요. 좀 억지스럽긴 하지만 그래서 어쩔 수 없이 그런 설정을 넣은 거예요.

 

랠프 J. 글리슨이 쓴 음반 해설문의 도입부를 인용하면 이렇다.

 

이 음악에 대해 말할 것이라곤 별로 없다. 내 말은 음악에 대해 많은 설명을 하지 않겠다는 뜻이다. 왜냐하면 그것은 바보 같은 짓이며 음악 자체가 모든 것을 말해주고 있기 때문이다. 내가 말하려는 바는 음반을 들으면서 내 마음속에 수많은 섬광이 스쳐지나갔으며, 할 수만 있다면 나는 삶과 현장, 사람들 그리고 피와 땀 사랑 등 모든 것들이 어우러진 소설 한 편을 쓰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는 것이다.(170쪽)

 

칼럼도 많이 쓰시는데, 그때도 비슷한 방법을 취하시는 거죠?


조그만 리뷰를 쓸 때도 저는 안에 있는 정보는 최대한 읽고 쓰려고 해요. 최소한 그 뮤지션이 이 음악을 통해 전달하려고 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이해하는 것을 출발점으로 삼아야죠. 아주 아름다운 미문을 쓰려고 노력하는 건 아니고요.


책을 쓸 때 참 힘들었어요. 주인공이 나름 초보자잖아요. 그런데 너무 다양한 정보를 다 알고 있는 티가 나면 독자 입장에서 공감하기가 힘드니까 적정선을 타협해야 했죠. 그렇다고 너무 모른다는 말만 하고 넘어가면 읽는 분들에게는 아무 도움이 안 되고요. 어떤 게 있다고 하더라 하는 식으로 썼는데, 잘 전달이 안 된 것 같기도 하더라고요.(웃음) 이게 왜 명반인지 더 구체적으로 강한 어조를 가지고 설명해줘야 하는데 왜 그러지 못했냐는 질문도 받았거든요. 제 능력의 부족함일 수도 있고, 책의 내용상 너무 그럴 수도 없었어요. 평론가가 글을 쓰고 있는 게 아니니까요. 초보자가 쓰는 일기 화법이 일장일단이 있었던 거죠. 

 

편견을 깨는 것도 아주 중요한 감상 포인트가 아닐까 싶습니다. 관악기 편성 대목에서도 그 점을 지적해요. 


그것이 재즈 드는 데 가장 어려운 부분 중 하나인 것 같아요. 클래식 음악에서도 항상 현악기 뒤에 있는 것이 관악기고, 실내악 같은 데서는 아예 잘 쓰지도 않고요. 특히 금관악기들은 더 그렇죠. 일반 팝 음악에서는 사라진지 오래 됐죠. 이 소리는 재즈를 들어야 뭘 만나는 정도예요. 일단 무슨 악기 소리인지도 잘 모르고요. 들을 때 소리가 좋아야 하는 건데 참 어려운 장벽인 것 같아요. 많은 분들이 팻 메스니, 키스 재럿을 좋아하는 이유는 사운드의 친숙함이라는 부분이 있어요. 피아노의 친숙함, 기타 사운드처럼 어떤 장르를 좋아해도 다 좋아할 수 있는 음색을 가지고 있는 악기들이니까요. 색소폰, 트럼펫이 되면 어디서 만날 일이 없는 악기들이니까 낯설죠. 책이 이 악기들에 대한 편견을 깰 수 있게 했다는 생각은 안 들어요. 어떻게 하겠어요?(웃음) 그저 어느 순간에 괜찮다는 느낌이 와야 하는 거죠. 저도 10대 시절 록을 더 좋아했을 때는 색소폰 나오면 술집 음악 듣는 것 같고 싫었어요. 특히 빅밴드 음악은 서커스 음악 듣는 것 같고요. 그런데 어느 순간 좋아지더라고요.

 

어떤 순간이었을까요?


모르겠어요. 왜 그게 좋아졌느냐고 물어보면 대답을 못하겠어요. 그렇지만 어느 순간 딱 오는 거죠. 너무 얘기가 많이 되어서 안 좋은 면도 있지만, 사실 무라카미 하루키가 재즈를 굉장히 좋아하잖아요. 카운트 베이시(Count Basie)를 들을 때 그가 하는 게 있대요. 볼륨을 가급적 제일 크게 하고, 맥주를 들고, 소파에 몸을 기대고 앉아서 사운드를 몸으로 느낀다고요. 이게 빅밴드, 카운트 베이시가 주는 즐거움이라고 했거든요. 전적으로 공감해요. 제가 그런 문장을 쓸 수 있었으면 진짜.(웃음) 그 사람은 정말 대단해요. 어떤 평론가도 그렇게 쓴 적이 없거든요. 그런데 느낌이 딱 오잖아요. 그 문장 읽고 나서 그대로 하면 정말 좋을 거예요. 그렇지 않을까요? 클래식 교향악단에서도 그런 소리가 안 나오죠.

 

그 압도적인 소리들을 ‘몸’으로 느낀다는 상상만도 좋은데요.

 

네! 사운드의 완급을 굉장히 폭 넓게 쓰잖아요. 피아노, 베이스 소리가 ‘치-치찌치-착착착’하며 나지막하게 나오다가 ‘파박!’ 이런 식으로 나오잖아요. 서서히 올라가는 게 아니라 ‘팍!’치고 나와요. 죽이잖아요. 2004년에 한국에 왔었는데, 연주가 끝나도 관객들이 아무도 가질 않더라고요. 진짜 대단해요.

 

현장에서 소리를 들으면 그 감각을 잊지 못할 것 같아요.


그 다음부터는 음반을 들어도 그 느낌이 오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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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양한 인종, 다양한 문화, 다양한 음악이 만든 ‘재즈’


재즈라는 음악은 무엇보다 해석의 여지가 많다는 것이 큰 매력인 것 같아요. 다양한 줄기가 갈래를 뻗었고요. 재즈의 예술성이 이런 부분이라는 생각도 들었어요. 

 
애초에 재즈라는 음악은 시작부터 그 안에 다양한 음악이 몰려 들어와 있었기 때문인 것 같아요. 일단 아프리카계 미국인들에게는 기본적으로 블루스라는 음악이 있잖아요. 독특한 음악적 형식과 라임이 있단 말이죠. 이들이 군악대도 하고, 술집에서 피아노도 치고 하면서 다 섞인 거죠. 재즈가 최초에 대중음악적 성격도 있었지만 음반 산업과는 별개로 자신들이 좋아서 하는 장르로 형성된 거예요. 듀크 엘링턴(Duke Ellington), 카운트 베이시, 찰리 파커(Charlie Parker) 등 그들이 만든 소리들은 음반 판매를 염두에 둔 게 아니에요. 단지 뮤지션들끼리 알아듣는 언어였던 거죠. 물론 시장이라는 것도 일종의 압박이어서 이런 음악이 안 팔린다고 하면 그 음악은 죽어요. 그쪽으로 상상을 할 수가 없는데, 재즈 뮤지션들은 몇 장 팔리든 이게 굉장히 음악적으로 재미있는 언어라고 하는 공감이 있었던 거예요. 그게 오래 지속되다보니 사방팔방으로 음악이 변하면서 100년 동안 이어져 온 거죠. 듣는 사람의 숫자와 상관없이 말이에요. 굉장히 독특한 사회적 환경 속에서 이런 음악이 가능했던 것 같아요. 다른 나라였어도 불가능했을 거예요. 다름 아닌 미국이란 나라에서 다양한 인종의 문화, 다양한 음악들이 섞이는 안에서 뮤지션들을 위한 뮤지션들의 음악이 만들어진 거죠. 그걸 또 좋아하는 소수의 팬들이 있었고요.

 

소수의 팬들이라는 점이 또 중요한 부분이에요. 그들 재즈 뮤지션들의 삶이 마약과 술로 얼룩진 사례들이 많았잖아요.


대부분 그 사람들이 패배자가 되었죠. 시장 안에서 말이에요. 그럴 수밖에 없는 거죠. 거기에 어떤 성공 스토리가 없죠. 루이 암스트롱(Louis Armstrong)처럼 대중적으로 너무나 잘 알려진 뮤지션이 중간에 한두 명 씩 나오고 사회적, 금전적으로 대우도 받긴 했지만 대부분은 그들이 무슨 음악을 했는지도 모르는 경우가 많았죠. 그러니 다 약물에 의존하고, 술에 의존하고 나자빠져버렸죠.

 

더불어 ‘할렘 르네상스’ 안에서 재즈를 해석하기도 하셨고, 사회적 저항 분위기에서 비롯된 재즈의 흐름도 읽혔는데요. 이런 접근이 무척 흥미로웠습니다. 반드시 재즈뿐 아니라 음악이란 사회와 결코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잖아요.


음악이 세상과 별도로 떨어져 있는 게 아니죠. 말했듯이 사회적 조건이 마련되어야 그 안에서 무엇이 만들어지고 할 수 있는 것이에요.

 

국내 재즈 뮤지션, 신인 뮤지션들의 상황은 어떤가요?


엄청 많이 나오고 있어요. 2010년 이후 재즈 음반이 1년에 100장 정도는 나왔을 거예요. 요즘은 음반 시장 위축에 따라 좀 줄어든 것 같지만요. 굉장히 많이 나왔죠.

 

그것이 어떻게 가능했을까요? 음반 시장도 안 좋고, 재즈 뮤지션들이 음악으로 생활하기도 힘든 국내 음악 토양에서 말이에요.


재즈 뮤지션들이 한국 와서 많이 놀라는 것이 청중들의 나이가 어리다는 거예요. 깜짝 놀라요. 일본의 경우도 거의 고령화 되었고, 그것이 굉장히 재즈의 전망을 어둡게 하는 요소가 되죠. 페스티벌을 가면 거의 다 노인이에요. 우리나라만 젊은 사람들이 많이 가요. 사회적 여건이 좋아졌다기보다는 그만큼 재즈가 늦게 들어왔기 때문이에요. 말들이 많지만 재즈 대중화의 단초가 세워진 것은 1990년대부터 서서히 시작되었다고 보는데요. 2000년 이후에 페스티벌도 생기고 하면서 사람들이 듣기 시작한 거거든요. 현재 재즈 뮤지션, 직업적으로 클럽에서 연주하고 하는 사람들의 숫자를 대략 300명 정도인데, 2000년대만 하더라도 50명 됐을까요? 100명이 채 안 됐어요. 국내 음반 자율화가 된 게 얼마 안 되니까요. 재즈 CD가 80년대 후반, 90년대 돼서 보였지 그 전에는 수입이 안 됐어요. 음악을 마음껏 접할 수 있고, 할 수 있는 세대가 늦게 탄생한 거예요. 또 실용음악과라는 요인도 커요. 80년대 후반에 학과가 생기면서 재즈를 조금 하는 사람들이 주임교수로 앉기 시작했죠. 화성이론 같은 것이 기본적으로 다 재즈에서 나오거든요. 그러니까 어디라도 입학하려면 재즈를 조금이라도 이해해야 했어요. 

 

 

재즈 페스티벌을 그렇게 많이 가는데 왜 재즈 클럽은 안 갈까


문제는 수요가 크지 않다는 점이에요. 앞서 미국 재즈 뮤지션들의 사례도 떠오르네요.


시장이 안 만들어지고 있다는 게 굉장히 큰 문제죠. 뮤지션이 살 수 있는 여건이 형성되어 있지 않기 때문에 앞으로 큰 문제가 될 것 같아요. 재즈 페스티벌을 그렇게 많이 가는데 왜 재즈 클럽은 안 갈까요? 그나마 1930년대 미국의 재즈 뮤지션들은 평생 재즈라는 음악을 하며 살았거든요. 가난하게 살지언정 말이죠. 우리나라는 아예 희망고문 자체가 안 되는 것 같아요. 클럽도 너무 없고, 음반도 안 팔리니까요. 지금 국내 재즈 뮤지션이 300명 정도라고 했는데, 몇 년 안에 곱절이 늘 것 같거든요. 금세 늘어요. 하지만 실질적으로 무대가 없으니까 다른 방법을 찾게 되겠죠. 정말 연주 잘하는 신인들이 나오니까 반갑기도 하면서 착잡하기도 해요. 

 

시만 쓰는 시인이 없는 것처럼 재즈만 할 수 있는 재즈 뮤지션이 존재할 수 없는 환경이군요.


해방 이후 한국은 음악이 실패한 나라예요. 예체능계에서는 스포츠가 성공을 했죠. 음악은 실패했어요. 그럴 수밖에 없었던 게 80년대까지 국가 주도의 사회였잖아요. 스포츠를 국가적으로 장려했던 반면 음악은 항상 검열과 감시의 대상이었죠. 이것만 놓고 보아도 여기서 잘될 수가 없었던 거죠. 대중음악 평론가들이 우리나라 대중음악의 역사를 얘기하고, 호평하는데요. 물론 좋은 음악도 있었고, 이런 어려움 가운데도 훌륭한 음악이 나왔다는 걸 인정하지 않는 것은 아닌데 전반적으로는 저질의 음악을 쏟아냈어요. 국가 찬양하는 노래, 천편일률적 노래들을 쏟아냈다고요. 시인과 뮤지션의 상상력을 죽인 나라죠.

 

자본이라는 권력도 무시할 수 없고요.


2000년대 이후 자본이 검열의 자리를 차지해요. 안 팔리는 건 다 죽이죠. 싸이가 아무리 흥행을 해도 한국 음악에 1%도 도움 못 돼요. 음악이든, 시든 최소한 사회 구성원으로서 낙오자나 실패자, 죽는 사람이 생겨선 안 되는 거예요. 안전장치가 있지 않으면 아무도 시를 안 써요. 아무도 음악을 안 하죠. 계산을 해볼 수 있겠죠. 주 5일, 아침 9시에 출근해서 오후 3시 정도에 퇴근하는 정도의 노동으로 최소한의 생활 가능한 돈을 벌면서 나머지 시간을 창작에 쏟고, 밤에 어디 가서 공연을 할 수 있는 환경이 되면 되는 거예요. 무슨 진흥원에서 지원 사업을 한다, 다 소용 없어요. 창작자들이 그런 지원에 손을 안 벌리고 어느 정도 노동을 하면서 하고 싶은 것을 할 수 있는 여건을 만들지 않으면 불가능해요.

 

그런 환경이 사실 전혀 불가능한 얘기도 아니잖아요. 유럽이나 선진국의 사례를 봐도 그렇고요.


프랑스의 하모니카 연주자가 국내에 온 적 있어요. 한 클럽에서 연주를 한 후 자신이 가져온 서류를 내밀면서 클럽 주인에게 서명을 해달라고 하더라고요. 프랑스에 돌아가서 이 서류를 제출하면 정부에서 돈이 다 나온대요. 한국에서 공연한 것까지 말이에요. 우리나라에서는 진짜 사람들을 즐겁게 하고 마음을 정화시킬 수 있는 곳에 세금이 하나도 안 쓰이고 있죠.

 

이런 고민을 정말 많이 하실 것 같아요.


안 할래요. 이제.(웃음)

 

이런 틈에도 고무적이라고 할 만한 것이 있나요? 아니면 전혀 희망이 없다고 보세요?


젊은 뮤지션들이죠. 우리 세대에서는 도무지 생각도 할 수 없던 음악을 만들어내고, 너무 잘해요. 어렸을 때부터 음악을 했으니까요. 그렇지만 도통 이 젊은 친구들의 재능을 담보해낼 수 있는 사회적인 조건이 안 만들어지고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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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아하는 딱 한 장의 음반


명반 50장을 꼽으셨는데, 그 중 제일 좋아하는 음반이 뭘까요?


정말 좋아하는 뮤지션인데 책에 다루지 못한 사람들도 많아요. 좋아하는 가수 중에 멜 토메(Mel Torme)라고 있는데요. 내용 흐름 상 안 맞으면 억지로 넣을 수가 없더라고요. 음. 제일 좋아하는 음반 고르기는 힘들어요. 범위를 좁힌다면 모를까요.(웃음)

 

그렇다면, 술 한 잔 했을 때 떠오르는 음악을 꼽는다면?


얼마 전에 술자리에서 빌리 홀리데이(Billie Holiday)가 흘러나오는데, 함께 있던 여섯 명이 동시에 쓰러졌어요.(웃음) 진짜 좋았어요. 사람들은 다 똑같더라고요.


무인도에 가져갈 음반을 ‘아일랜드 레코즈’라고 하더라고요. 저는 하여튼 찰리 파커가 좋아요. 들으면 전체가 완전히 재즈로 들어찬 것 같은 느낌이 들어요. 들을 때마다 짜릿짜릿해요. 듀크 엘링턴도 좋지만 그는 좀 아닌 작품도 있고, 너무 과하다 싶은 것도 있는데 찰리 파커는 진짜 버릴 게 하나도 없는 에센스인 것 같아요. 재즈 에센스요.

 

이제 막 재즈를 듣는 분들에게 꼭 하고 싶은 말이 있으실 것 같아요.

 

오해하실 수도 있겠지만 정말 음악을 좋아하고 싶다면 음반을 딱 한 장이라도 사라고 말씀 드리고 싶어요. 오히려 많이 사는 사람도 저는 별로 신뢰하지 않아요. 한 장을 여러 번 듣고, 누가 연주했는지도 살펴보고, 낱낱이 알아야 해요. 그럼 다음 단계로 자연스럽게 옮겨갈 수 있어요. 책의 내용이 다 그런 것이고요. 그렇게 가면 좋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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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남자의 재즈 일기황덕호 저 | 현암사
다채로운 이 음악들이 모두 ‘재즈’다. 재즈는 흡수력이 왕성해서 모든 음악을 빨아들였다가 재즈로 토해낸다. 재즈는 한때 지금의 힙합 같은 핫한 음악이자 불손한 음악이었으며, 팝처럼 널리 대중적인 사랑을 받던 음악이었다. 또 현대 미술처럼 파격적이고 난해한 음악이기도 했다. 모든 것이 그렇듯 재즈도 공부하면 하는 만큼 들리는 음악이고, 역사적 이해가 필요한 음악이다. 재즈 입문자를 위한 최고의 레퍼런스 『그 남자의 재즈 일기』는 ‘그 남자’가 뉴올리언스의 홍등가, 시카고의 클럽, 뉴욕의 뒷골목과 카네기홀을 함께 거닐며 재즈를 읽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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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신연선

읽고 씁니다.

오늘의 책

수많은 사랑의 사건들에 관하여

청춘이란 단어와 가장 가까운 시인 이병률의 일곱번째 시집. 이번 신작은 ‘생의 암호’를 풀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인 사랑에 관한 단상이다. 언어화되기 전, 시제조차 결정할 수 없는 사랑의 사건을 감각적으로 풀어냈다. 아름답고 처연한 봄, 시인의 고백에 기대어 소란한 나의 마음을 살펴보시기를.

청춘의 거울, 정영욱의 단단한 위로

70만 독자의 마음을 해석해준 에세이스트 정영욱의 신작. 관계와 자존감에 대한 불안을 짚어내며 자신을 믿고 나아가는 것이 결국 현명한 선택임을 일깨운다. 청춘앓이를 겪고 있는 모든 이에게, 결국 해내면 그만이라는 마음을 전하는 작가의 문장들을 마주해보자.

내 마음을 좀먹는 질투를 날려 버려!

어린이가 지닌 마음의 힘을 믿는 유설화 작가의 <장갑 초등학교> 시리즈 신작! 장갑 초등학교에 새로 전학 온 발가락 양말! 야구 장갑은 운동을 좋아하는 발가락 양말에게 호감을 느끼지만, 호감은 곧 질투로 바뀌게 된다. 과연 야구 장갑은 질투심을 떨쳐 버리고, 발가락 양말과 친구가 될 수 있을까?

위기는 최고의 기회다!

『내일의 부』, 『부의 체인저』로 남다른 통찰과 새로운 투자 매뉴얼을 전한 조던 김장섭의 신간이다. 상승과 하락이 반복되며 찾아오는 위기와 기회를 중심으로 저자만의 새로운 투자 해법을 담았다. 위기를 극복하고 기회 삼아 부의 길로 들어서는 조던식 매뉴얼을 만나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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