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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년의 자식과 노년의 부모 사이

서로의 삶에서 균형을 찾아 나가야 한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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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삶에서도 이미 경험한 사람도 있을 수 있지만 모두가 멀지 않은 시기에 겪게 될 일이며, 더 나아가 수 십년이 지난 다음에는 딸의 시점이 아니라 죽음을 맞이할 당사자의 관점이 될 것이라는 마음으로 읽는다면 기껏 두 권의 만화지만 결코 가볍게만 느껴지지 않는 두터운 울림을 느낄 수 있을 것이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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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어릴 땐 환갑잔치를 흔히 했다. 큰 식당을 빌려서 먼 친척들까지 온 식구가 다 모인다. 손주들이 재롱을 부리고, 자식들이 선물을 했다. 나도 초등학생 저학년일때 할아버지의 환갑 잔치가 있었는데, 태권도복을 입고 가서 태권도하는 시늉을 했던 기억이 난다.


시간이 흘러 요새는 환갑 잔치는 거의 하지 않는 것 같다. 원래 환갑이란 것이 60년이나 사는 사람이 드물었던 시절에 그 나이까지 살았다는 것은 복을 많이 타고난 사람이란 의미로 했던 것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건강해서 요새는 70전에 사망하면 너무 일찍 돌아가셨다고 안타까워하는 분위기니 자연스럽게 환갑은 조용히 아주 가까운 식구들끼리 식사를 하거나, 부부가 함께 여행을 가는 정도로 넘기는 것 같다.
 
전반적인 생활환경이 좋아지고, 의학이 발달하면서 평균수명은 빠른 속도로 높아지고 있다.


우리나라의 평균수명은 1970년에 남자 58세, 여자 65세 였는데, 1990년에는 67세와 75세로 높아졌고, 2010년에는 77세와 84세다. 불과 40년만에 남녀 공히 20년을 더 살게 되었다. 1970년만해도 세칭 60세를 정년으로 볼 때 남자는 자신의 직업 정년을 마치기 전에도 죽는 사람이 많았다. 1990년에는 60세에 일을 마치고 은퇴를 하면 한 십년 정도만 더 살 준비를 하면 되었다. 그런데 지금은 정년을 맞는 사람도 적지만 현업에서 은퇴를 하는 나이를 60전후로 봤을 때 그후 최소 20년 정도를 더 살아야한다. 지금 이 글을 읽는 세대들은 아마도 남녀 모두 80세 중반까지는 살아갈 생각을 해야 할 것이다. 이미 지금 장년 세대의 부모는 80대 중반까지는 살아계신다.

 

이런 셈을 해보면 새로운 고민거리가 우리 사회에 던져졌다는 걸 알 수 있다. 결혼을 하지 않고 비혼(非婚)으로 살아가면서 중년을 맞이하는 사람이 늘어난다는 것, 자연스럽게 늙은 부모와 함께 살아가면서 발생하는 일들이 하나요, 다른 하나는 자식도 중년이 넘어가면서 삶을 유지하는 것이 힘든데, 독립적으로 살아가던 부모가 점차 늙어서 독립성을 잃어가면서 벌어지는 의존을 받아들이고 서로의 삶에서 균형을 찾아나가야한다는 것이 새로운 고민의 요지다. 

 

이런 고민은 우리보다 조금 더 먼저 잘 살았던 국가에서는 꽤 진행이 된 것 같다. 최근들어 많은 책들이 쏟아져 나오기 시작했다. 얼마전에 소개했던 아툴 가완디의 『어떻게 죽을 것인가』는 의학적, 인문학적 관점에서 죽음을 다룬 바 있다. 아주 좋은 책이었지만 다만 약간 무거울 수 있고, 버겁게 느낄 독자도 있었을 것이라 그게 일종의 진입장벽이 될 책이었다. 그런데, 최근 나온 두 권의 비슷한 주제의 책은 모두 만화다! 이제는 만화라는 가장 가볍고 편한 매체조차도 늙어간다는 것, 죽음에 대해 생각하는 것을 일상의 영역에서 다루기 시작했다. 그런 면에서 이 두 권의 만화를 순차적으로 읽어보는 것은 세칭 ‘백세 시대’를 맞이하기 위한 워밍업으로 충분할 것이라 여겨 소개하려고 한다.

 

첫 번째 책은 일본의 만화가 마스다 미리가 쓴 『사와무라 씨 댁의 이런 하루』다. 40세의 독신 회사원인 딸 히토미, 회사원을 하다 정년퇴직을 하고 젊게 살려고 노력하는 70세의 아버지 시로, 요리가 특기이고 동물을 좋아하는 주부인 69세 엄마 노리에 씨가 이 만화의 세 주인공이다. 특별한 사건이나 극적인 갈등은 일어나지 않는다. 아주 오래 전부터 살고 있는 작은 일본의 주택에서 세 사람이 함께 살아가는 일상이 이 만화의 전부다. 아버지는 운동을 하기 위해 짐(gym)에 회원 등록을 하고 젊은 사람들과 어울리려 노력한다. 그리고 호기심이 많아서 백화점 수퍼에서 퇴근길에 서서 아이스크림을 먹는 여성들을 관찰하고 신기해한다. 굳이 서서 급하게 먹을 게 있냐고 딸에게 묻는다. 같은 직장인인 딸은 앉아서 먹는 커피샵은 비싸니 잠깐 달콤한 음식을 상으로 주고 싶을 때 하는 행동이라고 설명을 한다. 그렇지만 가끔 엉뚱한 이야기를 하고, 한 일도 잊는다. 가족들도 걱정을 한다. ‘양배추, 단무지, 문어, 메기, 악어’등 맥락에 없는 단어를 나열한 메모장을 보고 혹시 하는 염려를 하면서 “일단은 밝게 물어보자”면서 용도를 묻는다. 아버지는 시리즈 물인 책의 제목들인데 산 책을 다시 사지 않으려고 적어놓은 것이라 대답한다.

 

이렇게 조금씩 늙어가면서 멀지 않은 곳에 치매, 혹은 큰 병이 기다리고 있을 것이라는 것을 알면서 조심해서 살아가는 것이 이 가족의 일상이다. 그러면서도 여전히 딸이 결혼을 하지 않은 것을 타박하기도 하고, 동시에 함께 살아가고 서로 의지하는 것을 감사하게 여긴다. 낡은 집을 리모델링을 고민하면서 문턱을 없애고, 욕조도 너무 깊지 않게 바꾸는 것을 ‘건강할 때 해두면 좋겠다’라고 진지한 고민을 하면서 동시에 딸이 결혼을 하면 같이 살 게 2세대 주택으로 만들면 어떨까하는 고민도 함께 하는 것이 지금 이 가족의 일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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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일상은 조금 마음이 아슬아슬하지만 평온하다. 아직 두 부모가 건강하고, 경제적 어려움도 없어보인다. 다만 세 사람이 각자가 나이들어감에 적응하면서 살아가는 과정을 보여준다. 그런데, 오 년후, 혹은 십 년후에 서서히 부모의 몸과 마음이 저물어가게 된 다음에 겪을 일들이 기다리고 있다. 미국의 만화가 라즈 채스트(Roz Chast)의 『우리 딴 얘기 좀 하면 안돼?』다. 저자 본인이 겪은 이야기를 만화에세이로 만들어 냈다.

 

뉴욕 브루클린에서 자라난 채스트는 부모의 곁을 떠나 코네티컷으로 이사를 간다. 부모가 건강할 때에는 가끔 안부전화를 하고 일 년에 한 두 번 만나는 것으로 충분했다. 그런데, 90살이 넘어서 까지 씩씩하고 건강하게 독립적으로 잘 살아가던 부모에게 변화가 오기 시작했다.

 

93세가 되면서 어머니는 낙상을 하기 시작하고, 아버지는 차를 끓인 후 불을 끄는 것을 잊는 사건들이 생겼다. 그러면서 서서히 집밖을 나가지 않기 시작하였다. 불가피하게 노인 전문 변호사에게 도움을 청해서 즐겁지는 않지만 해둬야 할 많은 것들을 꺼내서 점검을 하기 시작했다. 유언, 유산관리, 연명치료 여부등을 의식이 온전할 때 결정해두기로 한 것이다. 사실 이런 얘기를 자식이나 부모 양측 모두 대놓고 하고 싶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미리 분명히 해두는 것이 필요하다는 것 또한 양측 모두 알고는 있는 일이다. 그것은 어느날 문득 계기가 오고, 그때 해치워버려야한다. 불편하지만 가야할 길을 가야하니까.

 

바로 이때부터 죽음, 떠남, 독립성을 잃어간다는 것이 일상의 영역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고 저자는 그려나간다. 부모 본인 뿐 아니라 유일한 혈육인 딸의 마음안에서도 언제나 이 문제가 언제든지 일어날 수 있는 문이 열리기만 기다리는 일로 의식되기 시작한다. 어머니가 물건을 꺼내다가 낙상을 하고 침대에 누운채 몇 주나 보내고 난 다음부터는 일어나지 못하고 결국 병원으로 실려간다. 평생을 어머니에게 의지해 집에서 지내온 아버지는 아내가 없는 상황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정신이 급격히 약해져서 그동안 아주 경미한 수준이던 치매증세가 확연해지기 시작했다. 같은 이야기를 반복해서 하고, 누가 자신을 감시한다고 여기고, 통장을 훔쳐 갈 것이라 피해망상이 생겼다.

 

어머니는 퇴원을 했지만 온전히 혼자 걸어다니고 장을 보고,  집밖을 나갈 수 없게 되었고,아버지는 치매로 온전한 판단능력을 잃었다. 사회적으로 완전히 고립된 채 이 년을 지내다가 드디어 두 사람은 평생을 살아온 집을 떠나 간호사와 식당이 있는 복지주택으로 이사를 하게 된다. 다음 단계로 넘어간 것이다. 아버지가 결국 노쇠해져서 폐렴에 걸려 사망하고, 어머니도 서서히 기능을 잃고 요양보호사를 고용해서 24시간 도와주면서 지내다가 사망을 한다. 이 과정을 거치면서 두 사람이 모아놓은 돈이 햇볕에 애써 만든 눈사람이 순식간에 녹아내리듯이 사라져가면서 딸은 실질적인 경제적 고민에 빠지기도 하고, 의료보험 제도의 문제점을 직면한다. 그리고 뉴스에서나 보던 먼 이야기일 것이라 여겼던 DNR(Do not resuscitate) 팔찌를 부모의 팔에 채워주기도 한다. DNR이란 불필요한 연명치료를 하지 말기로 결정했다는 의미다. 고통스럽게 생명을 연장시키는 심폐소생술을 받거나, 인공호흡기를 다는 것을 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이런 일련의 과정 안에서 딸로써 알아온 부모의 평소 성격이 그대로 남은 채 고집을 부리고, 중년의 딸은 어릴 때부터 지긋지긋하게 보아온 부모의 성격에 맞서기도 하고, 또 타협을 하는 과정을 유머러스하게 그린다.

 

많이 칙칙하고 해피엔딩이 될 수 없는 결말이라는 것을 뻔히 알고 있는 책이다. 읽는 내내 아무리 만화책이라고 해도 편안하게 보기는 힘들었다. 그렇지만 다행히도 저자는 유머를 담아 에피소드를 담아내고, 그녀가 제일 잘아는 부모의 생전 모습인 근검절약하고 자기가 살던 방식대로 살면서 서로를 사랑하는 옛날 뉴욕사람으로 묘사해 나간다. 아마도 이 만화는 그녀가 부모를 마음에서 떠나보내는 자기만의 애도의 방식이리라. 책 말미의 어머니의 마지막 날들을 하루하루 스케치한 장면들에 더욱 쉽사리 눈을 떼기 어려웠던 것도 그런 마음이 공감되었기 때문이다.

 

마스다 미리의 만화가 아직은 건강한 그러나 평균나이 60세의 가족의 일상을 그리고 있다면 라즈 채스트의 만화는 93세가 넘으면서 빠른 속도로 죽음의 세계로 진입하는 부모의 마지막을 지켜본 중년의 딸의 경험을 담고 있다. 이 두 만화는 소개한 순서대로 읽어 볼 것을 권한다. 그리고 이 일들은 우리의 삶에서도 이미 경험한 사람도 있을 수 있지만 모두가 멀지 않은 시기에 겪게 될 일이며, 더 나아가 수 십년이 지난 다음에는 딸의 시점이 아니라 죽음을 맞이할 당사자의 관점이 될 것이라는 마음으로 읽는다면 기껏 두 권의 만화지만 결코 가볍게만 느껴지지 않는 두터운 울림을 느낄 수 있을 것이라 믿는다. 어떻게든 입에 담거나 의식 표면위로 올리고 싶지 않지만 부정할 수 없는 늙음, 그리고 죽음이라는 주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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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와무라 씨 댁의 이런 하루마스다 미리 글,그림/권남희 역 | 이봄
이 만화는 일본의 주간지 〈문예춘추〉에 인기리에 100회 가량 연재한 것이다. 마스다 미리는 요즘 흔히 볼 수 있는 키워드들을 나란히 놓고 바라보다가 자연스럽게 ‘평균 연령이 높은 가족’이 떠올랐다고 한다. 40살의 딸이 부모님 집에서 산다는 설정은, 요즘의 새로운 가족 형태이기도 하다. 노인이 된 부모를 모시는 일은 사회적인 문제로 다가온다. 그런데 이 만화는 조금 다른 시선을 보여준다. 부모님과 함께 산다는 것은, 이제 어른이 된 자식이 부모님을 이해할 시간을 갖을 수 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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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딴 얘기 좀 하면 안 돼?라즈 채스트 글,그림/김민수 역 | 클
나이든 부모를 혼자서 책임져야 한다는 불안함과, 돈은 떨어져가는데 언제까지 버틸 수 있을지 모르겠다는 막막함 등 자식으로서의 복잡하고 미묘한 심정이 구체적인 에피소드들을 통해 솔직하고 담백하게 묘사된다. 한편 그 시간 동안 어린 시절을 반추하며 아버지에 대한 연민, 어머니에 대한 두려움을 인정하고 극복하려는 딸의 노력이 가슴 찡하게 다가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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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하지현(정신과 전문의)

어릴 때부터 무엇이든 읽는 것을 좋아했다. 덕분에 지금은 독서가인지 애장가인지 정체성이 모호해져버린 정신과 의사. 건국대 의대에서 치료하고, 가르치고, 글을 쓰며 지내고 있다. 쓴 책으로는 '심야치유식당', '도시심리학', '소통과 공감'등이 있다.

ebook
어떻게 죽을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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