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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홍민 북스피어 대표 “이렇게까지 하는데, 재미없으면 어떡하지?”

장르문학 전문 출판사의 ‘야매로 살아남기’ 『재미가 없으면 의미도 없다』 펴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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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배들이 후배 보기에 창피한 일은 안 하는 게 맞다고 생각하거든요. 최소한 후배들 보기에 창피한 일은 안 할 것 같아요. 이런 이야기를 하면 누군가가 저를 유심히 보겠죠. 제가 이런 이야기를 굳이 하는 이유는 제가 한 이야기가 있으니까, 나중에 그런 일을 못할 거 아니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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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미를 내세우는 사람치고 싱겁지 않은 사람이 없고, 의미를 내세우는 사람치고 재밌는 사람이 없다. 그런데 재미와 의미, 모두를 충족시키는 책이 나왔다. 김홍민 북스피어 대표가 집필한 책 『재미가 없으면 의미도 없다』 이야기다. 출판계에서 ‘마포 김 사장’으로 불리는 김홍민 대표를 만나기 전에는 딴따라이거나 자기 세계관이 투철한 사람일줄 알았다. 그런데 번지수를 잘못 짚었다. 그럼 북스피어의 야매력, 드립력은 어떻게 탄생한 걸까? 인터뷰를 하다, 사무실 바닥을 기어가는 개미 한 마리를 발견했다. 오랜만에 보는 곤충이었다. 개미도 여기가 장르문학 전문 출판사인 걸 아는 걸까?

 

올해로 북스피어는 10살이 됐다. 창립 10주년을 맞아 김홍민 대표는『재미가 없으면 의미도 없다』 출간했고, 독자 3명을 데리고 미야베 미유키 작가를 인터뷰하러 일본에 갔다. 이름하여 ‘독자원정대’였다. 지난 6월 20일에는 철원의 한 폐교를 빌려 ‘창립 10주년 기념 파티, 장르문학 부흥회’를 열었고, 야매 장르문학 소식지 <르 지라시> 특대호를 발행했다. 물론 10주년을 맞아 미야베 미유키의 신작 『십자가와 반지의 초상』를 펴냈다.

 

소설가 백민석은 북스피어 창립 10주년 덕담으로 “김홍민 대표는 출판보다 이벤트에 더 열심이고 이벤트 플래너 쪽으로 더 재능을 보인다. 그쪽으로 빠져도 성공할 것 같다.”고 <르 지라시>에 밝혔다. 얼핏 동의하나 국문과 출신, 소설가 지망생이었던 김홍민 대표의 인터뷰를 읽어 보면 생각이 달라질 지 모른다. 책, 출판에 대한 애정이 없었더라면 ‘야매 이벤트 전문가’ 김홍민은 결코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기에.

 

 

안 팔리면? 할 수 없지!


편집자가 책을 제안했을 때부터 제목이 정해져 있었다고요. 『재미가 없으면 의미도 없다』는 북스피어 출판사의 모토이기도 한데. 책이 나오게 된 과정이 궁금합니다.


책을 한 번 써야겠다는 생각은 예전부터 했어요. 가급적 북스피어 10주년에 맞춰서 나오면 좋겠다고 생각했는데, 다행히 어크로스에서 제안을 줬어요. 사실 아무런 제안이 오지 않아도 쓰려고 했는데, 그래도 내 출판사에서 나오는 건 아무래도 좋아 보이진 않으니까요. 기본적으로 북스피어에서 10년간 해왔던 일들을 정리하고 싶었어요. 평소에 그런 문의를 자주 받아요. 독자펀드 5천 만원을 어떻게 받았어요? 독자교정은 뭔가요? 같은. 그럴 때마다 일일이 대답해주기가 참 어려운데, 이번 기회에 다 정리하면 좋지 않을까 싶었죠. 책을 맡은 편집자 분이 꼭 출판뿐만 아니라 다른 산업의 마케팅에도 참고 사례가 될 수 있을 것 같다고 했는데, 잘 모르겠네요.

 

서문을 읽어보니, 미녀 치과의사와의 소개팅도 거절할 만큼 책에 대한 불안감이 컸다고요.


걱정을 되게 많이 했어요. 원래 다른 매체에 글을 쓸 때도 걱정이 많은 편이에요. <한겨레신문>에 칼럼을 쓸 때도 다음 날, 신문에 실리기까지 걱정을 많이 해요. 출판계의 민감한 이슈에 대해 썼을 때는 겁도 나요. 그렇다고 하나 마나 한 이야기를 쓸 순 없는데, ‘내가 이런 이야기를 해도 되나? 나도 도덕적인 인간이 아닌데?’ 이런 생각이 들죠. 이 책이 얼마나 큰 레퍼런스가 되겠나? 하는 고민도 있었고, ‘이걸 가지고 책 씩이나 썼냐?’는 반응이 나오면 되게 괴롭겠다, 그런 생각을 엄청 많이 했어요.

 

현재까지는 반응이 되게 좋은데요.


다행이죠. 아직까지는 없어서.

 

아직도 걱정하세요?


혹시 뭐가 또 나오지 않을까? 항상 느끼는 거지만, 백 명의 선플보다 한 명의 악플이 파급력이 커요. 그 효과가 너무 막강해서 누구 하나가 부정적인 발언을 하면, ‘그럴 수도 있겠구나’로 가거든요. 그런 생리를 너무 잘 알기 때문에 걱정이 돼요.

 

기본적으로 북스피어에서 출간하는 장르소설을 좋아하는 독자들이라면 이 책을 되게 흥미롭게 읽을 것 같은데요. 독자들의 리뷰를 보셨나요?


많이 올라 왔더라고요. 지난 주말에도 행사가 있었고 출판 강의도 나갔는데, 다들 책을 사가지고 와서 사인을 해달라고 하시더라고요. 저희 독자들 같은 경우에는 절반 정도가 북스피어 블로그에 자주 오시거든요. 블로그에서 많이 봤던 글이고 제가 연재했던 칼럼도 책에 많이 포함됐는데, 책으로 읽으니까 새롭다는 분들이 많더라고요. 저도 교정을 볼 때와 모니터로 볼 때, 교정지, 가제본, 책으로 볼 때 다 느낌이 다르거든요. 반면에 독자교정 이벤트를 거의 10년간 했는데 ‘이런 게 있었어?’라고 처음 알았다는 분들도 계세요. 아, 정말 홍보는 끝이 없겠구나,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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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로 오래 일하셨는데, 편집자가 저자가 되면 그때야 비로소 저자를 이해한다고 하잖아요. 어떠셨나요? 편집자와 저자로서의 입장이 있었을 텐데요.


막연하게 예상을 했는데요. 예를 들면 그동안 제가 편집자였을 때는 다른 필자의 글을 고치잖아요. 엄청 신중하게 고쳐야 하는데, 어느 순간 제 입맛에 맞게 고칠 때가 있어요. 그것이 좋지 않다는 걸 알지만 그럴 때가 있어요. 취향의 문제이기도 하고. 예컨대 100명의 사람이 다 고쳐야 한다고 생각하는 문장이 있는가 하면, 이건 고쳐도 그만 안 고쳐도 그만인 게 있는데, 후자를 제 취향에 맞춰 고칠 때가 있거든요. 이번 책을 쓰면서, 그게 좋지 않다는 걸 더 뼈저리게 느꼈죠.

 

최근 북스피어에서 미야베 미유키의 『맏물 이야기』를 펴내면서 북&쿡 퍼포먼스 행사를 열었어요. 책의 한 대목을 북텔러리스트들이 직접 낭독하고, 소설 속에 등장하는 요리를 푸드스타일리스트가 실제로 재현했는데. 반응이 되게 좋았어요.


괜찮았어요. 『맏물 이야기』가 일본에서 7년 전쯤 나온 소설인데, 마침 우리가 냈을 때 한국이 요리 붐이 일어서요. 공연이 언론에도 보도가 되면서 묘하게 책도 많이 팔렸어요.

 

공연이 딱 봐도 비용이 꽤 많이 들었을 것 같던데요.


원래 그렇게 크게 할 생각은 없었고 소박하게 하려고 했는데, 아이디어가 계속 나오는 거예요. 저걸 추가하면 좋겠고, 이것도 추가하면 좋겠고. 비용이 다 늘어나는 상황이었는데, 이미 책으로 얻은 수익금을 몽땅 때려 부었어요. 무슨 이벤트를 하려고 할 때, 다른 영업자들은 “그게 수익이 돼요?”라고 묻는데, 전 5년 전부터 판매를 아예 놔버렸어요. 행사 자체로 재밌어야 한다, 그게 판매로 이어지면 다행인 거고 안되면 어쩔 수 없는 거다. 그렇게 생각하기로 했어요. 행사를 판매와 연관시켜서 계산기를 돌리면, 못해요. 손해 보는 거 뻔히 알고 시작하는 거고. 그걸 고려하기 시작하면 재밌는 걸 할 수가 없어요.

 

재미 있는 게, 곧 의미가 있기 때문에 이런 행사를 벌이는 걸 텐데요.


북&쿡 퍼포먼스 같은 경우는 저희 행사가 거의 최초라고 생각해서. 비용을 더 아끼지 않았어요. 사실 준비할 때까지는 엄청 고민을 많이 하거든요. ‘이렇게까지 하는데 재미없으면 어떡하지?’ 그게 항상 고민이에요. 그런데 동시에 ‘안 팔리면 할 수 없지’하는 마음이 있어요. 하지만 재미없으면 안 된다는 강박관념이 더 커요.

 

북스피어의 모토가 ‘재미’인데요. 대표님의 삶 자체에 대한 ‘재미’는 어떤가요?


제 삶에는 그런 게 전혀 없어요. 강의를 하거나 글을 쓰거나, 일에 관련된 일을 할 때는 되게 재밌고 활달하고 그런데. 그냥 일반인으로서의 저는 되게 내성적이고 말도 없고 그래요. 약간 자아가 분리되는 것 같아요. 모드가 달라져요. 사고 체계가 달라지는 건데, 원래의 저를 돌아보면 혼자 누워서 있는 거 좋아하고 사람들이랑 어울리는 것도 그다지 좋아하지 않아요. 맛집 찾아 다니는 거, 그런 거 제일 싫어해요.

 

일에서 충분히 재미가 충족되기 때문일까요.


뭐 분석을 해보진 않았는데 그럴 수도 있는 것 같아요.

 

독자들이랑 창고 정리도 하시던데, 여러 번 참가하는 분도 계시나요?


한 번 하시고 나서 연속으로 3,4번 오신 분이 있으셨어요. 파주 창고에 책이 7만 권 정도 있거든요. 창고 정리 이벤트는 수십 번 한 것 같아요.

 

북스피어가 장르문학 전문 출판사이기 때문에 독자들과 밀접한 소통이 가능하지 않았나 싶기도 한데요. 그렇다고 모든 출판사가 이런 이벤트를 벌이진 않는데.


저희 같은 경우는 원래 시작부터 이런 이벤트를 하겠다는 건 없었어요. 인력도 없고 돈도 없으니까 궁여지책으로 한 거죠. 독자들의 힘을 빌려 볼까? 하는 생각으로 했는데, 참여한 분들이 좋아해주시고. 그걸 특이한 경험으로 인식을 해주시니까 점점 이벤트적인 성격을 강화한 거예요. 처음에 독자 교정 이벤트를 했을 때는 그냥 사무실 책상에 앉아서 교정 보고, 밥 먹고 헤어졌어요.

 

올해 현충일에는 기차를 타고 교정을 보는 ‘낭만독자 열차교정’ 행사를 했는데, 부제가 ‘오자를 발견하지 못하면 집에 돌아가지 못하리’였어요.


강릉으로 가는 완행 열차를 타고 8시간 동안 교정을 봤어요. 끝나고는 같이 놀고. 1박 2일 동안 작품을 번역한 번역가 집에 놀러 가서 하룻밤을 같이 자면서 교정을 본 적도 있어요. 모든 이벤트가 다 그래요. 조금씩 가미를 해가면서 커진 거죠.

 

이벤트 참여 독자 선발은 어떻게 하나요? 선착순인가요?


선착순으로 뽑을 때는 거의 없고 선발을 해요. 하고 싶은 이유가 절실한 분들이 있어요. 예컨대, 지원해달라는 글을 올렸는데 “저요 저요.”, “나 할래요.”라고 댓글을 다는 분들이 있는데, 저는 좀 이해가 안 돼요. 왜 하고 싶은지에 대한 구체적인 뭔가가 있어야지, “저요 저요.”라고만 하면 그걸 어떻게 해석해야 할지. 독자 교정 같은 경우에는 맞춤법을 너무 모르시면 또 안 되는 거니까. 너무 문장이 틀린 분들은 뽑기가 애매하고 그런 게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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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르문학부흥회 포스터

 

 

독자원정대, 장르문학 부흥회, 공동출판


북스피어에서 최근 10주년 기념작으로 미야베 미유키의 현대물 신작 『십자가와 반지의 초상』을 펴냈어요. 독자 3명과 함께 미미여사를 인터뷰하러 일본에도 가셨던데요.


3년 전에는 저 혼자 갔거든요. 올해 북스피어가 10주년을 맞았으니까 독자들이 인터뷰를 하면 어떨까 싶더라고요. 직접 독자들이 질문지도 짜게 하고 일정도 정하는 독자원정대를 모집했어요. 기본적으로 일본어가 되는 분들에게 신청을 받았는데, 총 3명을 뽑는데 한 서른 명 넘게 지원해주셨어요. 경쟁률이 10:1 정도였던 거죠. 출판사 스태프까지 총 6명이 갔어요.

 

미야베 미유키 작가님의 반응은 어떠셨나요? 해외 독자들과의 만남이 특별했을 텐데요.


엄청 좋아하셨어요. 3년 전에 제가 갔을 때는 프라이버시는 물어보면 안 되고, 정치적 사안도 물어보면 안 된다고 했는데. 이번에는 완전히 다르시더라고요. 예전에는 단답형으로 대답하신 게 많으셨는데, 이번에는 물어보지도 않은 아버님 이야기도 하시고 일본 정치가가 바보 같은 이야기를 해서 한국 독자들에게 미안하다고도 하시고. 속으로 ‘아 이런 이야기를 하셔도 되나?’ 싶었어요. 인터뷰가 너무 좋아서 막 독자들이 울고 그랬어요. 작가님이 손수 선물도 준비해주시고.

 

미야베 미유키 작가님의 인터뷰가 북스피어의 야매 장르문학 소식지 <르 지라시>에 실렸는데요. 이 소식지는 북스피어 신간 구매 독자에게 사은품으로 제공되기 때문에 책을 산 독자들만 읽을 수 있어요. 좀 아까운데요.


사실 독자원정대 모집 공고가 나가고 기자 분들이 많이 요청을 해왔어요. 자기도 좀 데리고 가달라고. 저희도 쉽게 가려고 했으면 일간지 기자와 같이 갔겠죠. 그럼 비용도 3분의 1밖에 안 들고, 지면도 확보되고. 그런데 기자가 갔으면 작가님이 이렇게 소탈하게 인터뷰를 안 하셨을 거예요. 결과적으로는 되게 잘한 거라고 생각해요. 작가님이 달뜬 것 같을 정도로 마음을 확 열었거든요. 되게 감동스러웠죠. 독자 분들이 다들 구름 위를 걷고 있는 것 같다고 했어요. 저는 사진만 찍고 아무런 개입도 안 했는데, 하여튼 정말 깜짝 놀랐죠. 작가님이 내 후년에 30주년 일 때 다시 오라고 하더라고요. 그 때는 좀 더 많은 독자들을 데리고 가고 싶어요.

 

정말 하고 싶은데, 여력이 안 돼서 아직까지 못한 이벤트가 있나요.


매년 저희가 장르문학 부흥회를 하는데, 내년에는 바캉스를 겸해서 해보면 어떨까 싶어요. 올해 처음으로 가족 단위 독자들을 받았는데 되게 좋더라고요. 내년에는 섬을 빌려 보고 싶어요. 뭔가 비용이 좀 들더라도, 1박2일 대여가 가능하다면 가족 단위로 바캉스 겸 부흥회를 여는 거죠. 섬에서 할 수 있는 일이 많을 것 같아요. 폐교 부흥회도 <한겨레21>에서 인터뷰를 하면서 무심코 했던 말이 실현이 된 거예요. 기자 분이 “내년엔 어떻게 할 거냐?”고 물어서 “글쎄요. 폐교나 빌려 볼까요?” 그랬거든요. 그게 올해가 될지는 몰랐죠. (웃음)

 

타 출판사와 공동출판도 하셨죠.

한 작가의 작품을 꾸준히 내는 게 목표였는데 한계가 있더라고요. 모든 사항을 다 협의하고 진행을 해야 하니. 단발성으로 4,5개 출판사가 모여서 젤라즈니 전집을 한 권씩 낸다든가. 그런 기획을 해보면 어떨까도 싶어요.

 

책을 보니, 예전처럼 발랄하게 머리가 돌아가지 않아 걱정이라고요.


항상 그 걱정을 해요.

 

직원들에게 이벤트 아이디어를 내라고 하면 안 되나요? 또는 주변의 젊은 친구들에게.


음, 그게 다른 게 뭐냐면요. 전 제가 생각하지 않으면 상상이 잘 안 돼요. 예를 들어, 모든 출판사들은 재밌는 걸 하고 싶어하잖아요. 그런데 왜 못하냐? 직원이 아이디어를 내면 실현이 어려워요. 제가 출판사에 다닐 때도 아이디어 회의도 많이 해봤어요. 어떤 책에 대한 이벤트 아이디어를 짜보자고 하면 직원들은 되게 스트레스에요. 뭐랄까. 너무 막연하기도 하고 자기검열도 생기죠. 제가 출판사에 다녔을 때도 그런 모습을 너무 많이 봐왔거든요. ‘아이디어 회의합시다’ 하는 것보다 차라리 내가 정해서 시작하는 게 서로가 편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이디어가 많은 직원들은 새로운 일을 막 벌이고 싶을 거예요. 하지만 상사, 대표 눈치 보느라 차마 이야기를 못 꺼내겠죠. 그런 분들에게 조언을 한다면.


출판 마케팅 강의를 나가면 그런 질문을 많이 받아요. 저는 딱 두 가지를 이야기해요. 예전 회사에 있을 때 제가 써먹었던 건데, 그냥 허락을 받지 않고 진행을 하는 거예요. 나중에 거기에 대해서 깨지든, 잘되든. 저는 대부분 잘됐거든요. 위에서 한 소리를 듣긴 했지만, 잘리지 않은 걸 보면 내심 좋아한 게 아닐까 싶어요. 두 번째는 제안을 하는 사람이 최악의 상황을 미리 상정하는 거예요. “이런 아이디어가 있는데 만약에 실패하면 이런 이런 일이 벌어지겠죠? 아마 잘 안 되겠죠?”라고 먼저 선수를 치는 거죠. 그럼 오히려 듣는 입장에서는 “왜 잘될 수도 있는 것 같은데, 미리 걱정해?” 이런 반응이 나와요. 먼저 세게 나가면 상대는 움츠러들거든요. 책은 읽지 않았지만 아마 『설득의 기술』에 아마 이런 내용이 나와 있지 않을까요? 저는 가끔 너무 확신이 있게 이야기를 하는 사람들을 보면 오히려 반감이 생겨요.

 

‘마포 김 사장’이라고 불리는데, 출판사 직원이었을 때도 별명이 있었나요?


딱히 없었어요. 정말 재미없는 인간이었죠. 그 때는 새로운 걸 안 해도 월급이 나오니까. 굳이 내가 뭘, 이런 생각이 많았죠. 그런데 북스피어는 내 사업이니까요. 직원들에게 미루지 않고 아이디어를 내고 SNS를 직접 운영하는 이유는 제 일이고 제가 책임도 져야 하는 일이니까, 제가 해야 하는 게 맞다고 생각해요. 또 절박하니까요. 만약 제가 어느 회사에 들어가 있는 상태로 10년차가 됐다면 그저 그런 편집자로 책을 만들고 글을 썼을 것 같아요. 그런데 창업을 하면서 제작도 배우고 영업도 배우고 서점도 다녀보니까 할 수 있는 게 많아지더라고요. 정말 내 생계랑 직결된 거라고 생각을 하니까 죽이 되든 밥이 되든 해보는 거죠. 그런 심리가 되게 강해요. 다른 출판사들한테 이벤트를 제안하면, 다들 좋아해요. 재밌는 거 하고 싶으니까요. 그런데 선뜻 못 받아들이는 건 그걸 안 해도 할 수 있는 게 많기 때문이에요. 굳이 뭘 격 떨어지게 그런 걸 해? 이런 거죠. 저랑은 다르구나, 싶을 때가 많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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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주년 기념 특대호 <르 지라시> 

 

 

출판은 좀 예외면 안 되나요?


10주년 특대호 <르 지라시>를 만들면서 야매 책 광고를 받았어요. 격 떨어지는 광고인데 꽤 많은 출판사가 참여했어요.


처음부터 전략적으로 대표 분들에게 전화를 걸었어요. 신간 광고를 하는데 ‘명작’ ‘역작’ ‘100만부 돌파’ 이딴 문구는 빼고, 잔망스러우면서 야매적인 콘셉트로 그동안 감춰뒀던 ‘드립력’을 발휘해보라고 했죠. 물론 유료 광고라서 한 책당 30만 원 받았어요.

 

글항아리, 마음산택, 바다출판사, 은행나무, 한빛미디어, 한스미디어, 휴머니스트 광고가 실렸던 데요. 출판사 대표들의 반응은 어땠나요.


흔쾌히 좋다고 하셨어요. 우선 대표님들이 오케이 하면, 내가 실무진이랑 이야기를 해보겠다, 그랬죠. 되게 빨리 진행됐어요. 바다출판사 경우에는 디자인을 A팀, B팀으로 나눠서 경쟁을 붙였는데 둘 다 너무 잘해서 대표님한테 전화가 왔어요. 광고비 두 배로 줄 테니까 둘 다 넣어달라고요. (웃음) 사회평론이 광고를 너무 재미없게 만들어와서 빠져있던 찰나였거든요. 그래서 바다출판사는 광고가 두 개 실렸어요. 1면에 마음산책 광고가 실렸는데 제일 빨리 보내줬거든요. 마감을 안 지킬까 봐 선착순으로 앞면에 실어주겠다고 했어요. 은행나무 같은 경우는 신간 회의보다 이 광고 회의를 더 많이 했대요. 제가 온라인에서 투표하겠다고 했거든요. 제일 야매스러운 걸 뽑겠다고. 꼴등하면 쪽팔리니까 다들 열심히 해준 것 같아요.

 

<르 지라시> 다음 호에도 야매 광고를 볼 수 있나요?


글쎄요. 다음 번에는 서로 비난 광고를 해보면 어떨까 싶어요. 4,5군데 출판사 담당자들이 모여서 서로 먼저 양해를 구하고, 각자 다른 출판사의 책 광고를 해주는 거예요. 이를테면, “어, 이 책 더럽게 두꺼운데?” 뭐 이런. 요령 있게 비난 광고를 만드는 거죠. 까는 거지만 요령 있게 까는 거 있잖아요. 사람들이 리뷰를 쓸 때 좋은 점만 써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문제점을 지적해도 읽고 싶게 만드는 리뷰가 있어요. 비판 리뷰인 건데, 글의 공력이 훨씬 더 필요하죠. 저희 책이 인터넷서점에 나오면 리뷰가 막 달리잖아요. 좋은 리뷰도 있고 나쁜 리뷰도 있는데, 재미없게 읽었다고 별점을 되게 낮게 준 리뷰가 있었는데 기분 좋게 읽은 적이 있어요. 문제점을 지적하는데 일단 글을 너무 잘 썼고, 구구절절 맞는 말인 거예요. 글을 너무 잘 쓰니까 읽고 있는데 상쾌한 느낌이 들더라고요. 오히려 책이 더 궁금해져서, 사고 싶은 생각도 들 만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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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적 꿈이 소설가였다고 하셨는데, 지금도 여전한가요.


접었어요. 사람마다 생각이 다르겠지만 창작은 타고 나는 것 같아요. 책을 만들면서 절실히 느꼈어요. 이런 표현이 오해의 소지가 있지만, 저도 습작 많이 해봤거든요. 소설 비슷한 걸 흉내는 낼 수 있겠지만, 아주 단적으로 ‘내가 미야베 미유키 소설 같은 책을 쓸 수 있을까?’ 생각하면 저는 죽었다 깨어나도 못 쓰거든요. 훈련이나 교육이나 그런 걸로 안 된다는 걸, 되게 절감한 순간이 있었어요.

 

장르문학은 아무래도 마니아 층이 많은데, 전체 출판시장에서 보면 되게 소수에요. 도서정가제 이후 사람들이 책을 더 안 사고 있는데요.


예전에 한 번 칼럼에도 쓴 적이 있는데요. 저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책을 읽어야 한다는 강박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해요. 책을 읽어야 한다는 생각을 하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안 읽는 이유는 약간의 습관의 문제라고 생각하거든요. 고기도 먹어본 놈이 먹는다고, 책도 비슷한 것 같아요. 요즘은 더욱이 SNS 글쓰기가 되게 활발해졌잖아요. 글쓰기의 중요성을 다 인식하고 있는데. 책을 읽어야 한다는 강박과 글을 잘 쓰고 있는 소망은 100%는 아니겠지만 많이들 갖고 있어요. 저도 글을 잘 쓰는 건 아니지만, 스스로 글쓰기가 늘었다고 생각한 순간이 있었는데 PC통신이 한창 인기일 때였어요. 지금의 저와는 달리 그때는 게시판에서 글로 논쟁하는 일이 많았는데, 글로 싸우기 시작하니까 글이 많이 느는 것 같더라고요. 제가 그 때 강준만 씨한테 빠져 있을 때라서 엄청나게 싸움을 많이 하고 다녔어요. (웃음) 그런데 책을 늘 옆에 두고 읽지 않으면, 글로 싸워야 할 때 레퍼런스를 찾기가 힘들죠. 미야베 미유키 작가는 인터넷을 안 써요. 컴퓨터에 아예 인터넷이 연결되어 있지 않아요. 인터넷에는 허황된 정보가 너무 많다는 거예요. 그래서 책을 항상 찾아서 조사를 한대요.

 

만약 일간지 1면이 뭔가를 실을 수 있다면.


글쎄요. 재밌는 광고를 통으로 실을 수 있으면 좋겠어요. 지금까지 보지 못한 재밌는 책 광고. 저자 사진, 책 사진도 없고 아무런 설명 없이 그냥 사진 한 장에 카피 하나만 쓴. 되게 세련된 광고를 해보고 싶어요.

 

『재미가 없으면 의미도 없다』는 아무래도 출판, 마케팅 관계자들이 많이 읽을 것 같은데요. 저자로서 이 책을 추천하고 싶은 분이 있다면.


독자들이 많이 읽었으면 좋겠어요. 마케팅 이야기도 썼지만 기본적으로 책에 대한 이야기를 쓴 건데요. 예컨대 파본이 왜 생기느냐, 그런 걸 모르는 분들이 많으세요. 독자 분들이 책을 받았는데 그게 파본일 때, 인터넷서점 리뷰에 별을 하나를 주는 경우가 있어요. 그러면 출판사 입장에서는 되게 속상하잖아요. 내용으로 평가 받은 게 아니니까요. 엄밀하게 말하면 출판사가 모든 책을 한 권 한 권 다 뜯어 보고 해야 하지만, 물리적으로 힘들잖아요. 기계로 인해 파본이 나올 수 있는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할 수 없고요. 또 종이 낭비라면서 띠지를 극렬하게 싫어하는 분들이 있는데, 그런 반응을 들으면 되게 속상해요. 물론 독자들이 모든 걸 이해해줄 필요는 없지만 이런 이런 일에 대해서는 이해 받고 싶을 때가 있어요. 이번에 『십자가와 반지의 초상』이 나왔는데, “이게 무슨 인문학 서적이냐, 소설이 뭐가 이렇게 두껍냐?” 이런 리뷰를 올리는 분들이 있어요. 저희도 분권으로 내면 더 좋아요. 가격을 더 높일 수도 있고요. 하지만 한 권으로 낸 건, 이 소설이 한 호흡으로 보는 게 더 좋다고 판단했기 때문이에요. 조금 두껍더라도 가격을 확 낮출 수 있고요. 또 이걸 뭐 양장으로 냈냐고도 하는데, 900페이지 넘는 책을 무선으로 하면 터져요. 열심히 했으니까 사달라는 게 아니라, 책이 만들어지는 배경의 일정 부분을 독자들이 알아줬으면 좋겠어요.

 

요즘 출판계가 되게 어지러운데요. 대형출판사들에게 하고 싶은 말씀이 있다면.


작은 출판사가 키운 작가를 큰 출판사가 데리고 갈 때, 저는 좀 그래요. 전 떳떳하지 않은 짓은 안 하거든요. 도덕적인 인간이라서가 아니라 쪽팔리니까 안 해요. 저 같이 조그만, 별볼일 없는 사장도 그런 생각을 하는데, 저 훌륭한 출판사의 상징적인 분들이 왜 쪽팔린 일을 하는지 모르겠어요. 이런 이야기를 하면, “네가 경영의 논리를 몰라서 그래. 모든 산업은 마찬가지야.”라고 하는데, 출판은 예외일 수도 있는 거 아닌가요? 자본주의사회에 살지만 출판은 좀 그 원리에 벗어날 수도 있지 않나요? 문제 제기만 하면, “넌 출판을 되게 특별하게 생각한다.”고 하는데요. 좀 특별하면 안 되나요? 저는 선배들이 후배 보기에 창피한 일은 안 하는 게 맞다고 생각하거든요. 최소한 후배들 보기에 창피한 일은 안 할 것 같아요. 이런 이야기를 하면 누군가가 저를 유심히 보겠죠. 제가 이런 이야기를 굳이 하는 이유는 제가 한 이야기가 있으니까, 나중에 그런 일 못할 거 아니에요. 잘난 척이라는 걸 알지만 굳이 이 이야기를 하는 이유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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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미가 없으면 의미도 없다김홍민 저 | 어크로스
출간비용 마련을 위한 ‘독자 북펀딩’, 이웃 출판사와의 공동 출간, 자체 제작 장르문학 소식지 발행까지. 독특한 마케팅 실험과 독자들과의 연대로 주목받아온 북스피어 출판사의 김홍민 대표가 10년간의 출판 시장 횡단기를 책으로 담아냈다.책을 좋아하는 독자들이라면 즐겁게 읽어나갈 에피소드가 가득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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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엄지혜


eumji01@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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