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색

똑똑한 그녀가 나쁜 남자에게 끌리는 이유

『아버지의 딸』

  • 페이스북
  • 트위터
  • 복사

『머물고 싶은 남자 떠나고 싶은 여자』를 통해 중년의 심리를 들여다보았던 이우경 저자. 임상심리 전문가로서 그녀가 새롭게 들려주는 이야기는 ‘아버지와 딸의 관계’에 대한 것이다.

편집1.jpg

 

이 글은 아버지와 딸의 관계의 문제에 대한 해답을 알려주는 치유서가 아니다. 단지 그동안 잘 몰랐던 아버지와 딸의 관계에 조명을 비추어 여성 그리고 딸의 삶에서 아버지 혹은 아버지라는 한 남자의 영향력을 알아채기 위한 것이다. (『아버지의 딸』 6쪽)

 

『아버지의 딸』은 섣불리 치유를 말하지 않는다. 그보다는 먼저 관계를 제대로 바라보는 것이 필요하다고 이야기한다. 지금까지 ‘아버지와 딸의 관계’에 대한 깊이 있는 사유와 대화가 부재했기 때문이다. 반면 어머니와 딸에 대한 담론들은 이미 익숙할 만큼 오랜 시간 이어져왔다.

 

이러한 현실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 ‘아이는 어머니를 통해 여성성을, 아버지를 통해 남성성을 학습한다’는 보편적인 명제를 모두가 알고 있기 때문이다. 딸들의 삶에도 분명 ‘아버지로부터 영향을 받아서 구축하게 되는’ 한 세계가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제껏 우리는 그 영역을 면밀히 살피려하지 않았다. 그런 점에서 『아버지의 딸』 이야기는 시의적절하다. “딸들의 무의식에 여러 형태로 자리 잡은 아버지의 영향력을 관계심리학으로 풀어내”고 있기 때문이다. 

 

‘아버지의 딸’은 아버지로부터 각별한 영향을 받은 딸들을 의미한다. 분석심리학자들이 사용하는 이 용어는 세상의 모든 여성들을 일컫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임상심리전문가인 저자 역시도 “아버지를 오랫동안 부인해오다가 자신이 영락없는 ‘아버지의 딸’임을 알고 놀라는 딸들이 많다”고 증언하고 있다. 아버지로부터 긍정적인 영향을 받았든 부정적인 영향을 받았든, 심지어 신체적 혹은 정신적으로 아버지의 부재를 경험했다 하더라도, 아버지와의 관계로부터 완전히 자유로운 딸은 없다. 아버지가 드리운 그림자는 빛 또는 어둠의 흔적으로 마음 한 구석에 남아있는 것이다.

 

현재 서울사이버대학교에서 상담심리학과 교수로 재직 중인 이우경 저자는 『아버지의 딸』을 통해 상담실의 안과 밖에서 만났던 많은 딸들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아버지와 제대로 된 애착 관계를 형성하지 못해 이성과의 관계에서 어려움을 겪거나, 아버지의 기대를 충족시키기 위해 항상 ‘잘난 딸’이 되고자 노력해온 딸들의 고백이 담겨있다. 꼭 이렇다 할 문제를 겪지 않더라도 어린 시절 아버지가 무심코 반복했던 말들, 예컨대 ‘네가 아들이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라든지 ‘지금은 아빠가 바쁘니까 딴 데 가서 놀아’라는 이야기들도 딸에게 상흔으로 남을 수 있음을 보여준다. 
 
『아버지의 딸』은 말한다. “오랫동안 아버지를 부정하는 것은 곧 자신을 부정하는 것이고 그러다 보면 자기가 가진 모든 것을 부정하게 된다”고. 반대로 이야기하면 “아버지를 긍정하는 것이 자기 삶을 수용하고 긍정하는 것임을 깨달았을 때 비로소 자기 삶을 짓누르던 아버지에 대한 원망과 애증을 내려놓을 수 있다”는 것이다. 딸의 삶에 있어서 아버지의 영향력은 부인할 수 없는 것이기에, 그의 존재를 부정적으로 바라보면 스스로를 온전히 끌어안지 못하게 된다는 이야기다.

 

결국 『아버지의 딸』은 아버지와의 관계를 들여다봄으로써 딸들로 하여금 자신을 이해하도록 이끈다. “우리 모두는 아버지의 딸이다”라는 저자의 말처럼, 이 이야기는 세상의 모든 여성들에게 해당되는 것이기도 하다. 어머니, 아내, 여자 친구 등 서로 다른 이름으로 살아가고 있는 딸들, 그녀들의 삶을 이해하는 실마리가 되어준다.

 


무능한 아버지의 딸은 왜 슈퍼우먼이 될까


딸에게 있어서 어머니와의 관계가 미치는 영향과 아버지와의 관계가 미치는 영향이 다른가요?


아무래도 어머니는 딸과 동성이기 때문에 여성적인 역할, 모성 역할에 대한 모델이 되어 주죠. 반면 아버지는 이성이기 때문에 딸에게 독특한 영향을 미치는 부분이 있어요. 특히 이성 관계나 일 영역에 있어서 그렇죠. 그런데 그 영향력에 대해서 많은 사람들이 알지 못하는 것 같아요. 지금까지 잘 이야기되지 않기도 했고요. 융과 같은 분석 심리학자들은 아버지에게 특별한 영향을 받은 딸을 ‘아버지의 딸’이라는 개념으로 설명하는데요. 이런 내용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싶었어요.

 

“특히 아버지가 무능력하고 무책임한 경우 딸은 스스로 성취에 목을 매는 슈퍼우먼이 된다”고 하셨습니다. 그 이유가 궁금합니다.


어떤 결핍, 예를 들어서 자신은 아들이 아니라는 결핍을 메우기 위해서 성취 지향적이 되기도 하고요. 또 다른 경우에는 아버지가 너무 무책임해서 제대로 딸을 보호해 주지 못하다 보니까, 스스로 여전사처럼 세상에 대항하면서 전투태세를 갖추고 살아온 여성들도 있어요. 분석심리학자들은 그런 여성들을 일컬어 그리스신화에 등장하는 ‘아마조나스 여인’이라고 하는데요. 이렇게 슈퍼우먼처럼 살다보면, 20대 30대에는 그것이 동력이 될 수 있지만, 중년에 들어서면서 신체적인 고통을 경험하거나 심리적으로 소진되는 느낌을 갖게 됩니다.

 

슈퍼우먼과는 반대로 ‘영원한 소녀’에 머무르는 여성들도 있습니다. 그들은 아버지와 어떤 관계를 맺고 있었던 건가요?


아버지로부터 많은 사랑을 받고 자란 딸들 중에서도 수동적이고 취약한 소녀 이미지를 갖고 있는 여성들이 ‘영원한 소녀’의 유형이라고 할 수 있어요. 이들은 고유한 정체성을 찾거나 스스로를 발전시키기보다는 주변의 중요한 타인, 즉 남자친구나 남편이 자신에게 투사한 정체감을 취하는 경향이 있어요. 아버지의 착한 딸, 공주, 매력적인 아내, 왕비 역할을 맡기도 하죠.

 

‘영원한 소녀’는 살아가면서 어떤 어려움에 직면하게 되나요?


이런 유형의 여성들은 늘 힘 있는 존재가 자신을 통제해 주어야만 안심하고 혼자서 뭔가를 결정하는 걸 어려워해요. 심리적으로 의존적이 되는 거죠. 자기 독립성이나 자율성을 발달시키지 못하고요. 그래서 두려움이나 우울, 불안에 취약할 수 있어요. 실제로 남편에게 너무 의존적인 나머지 남편의 부재를 경험하면 강한 우울감을 느끼는 경우도 있죠.

 

일반적으로는 아버지와 딸의 관계는 친밀할수록 좋다고 여겨지는데요. ‘감정적 근친상간’의 개념을 보면 꼭 그렇지만은 않은 것 같습니다.


감정적 근친상간은 아버지와 어머니의 사이가 좋지 않은 경우나 어머니가 부재한 상황에서 나타날 수 있는데요. 아버지가 마치 딸을 애인처럼 여기게 되는 거예요. 딸은 정서적으로 아내의 역할을 하게 되고요. 이에 대해서 가족심리학자들은 부모와 자녀 사이의 경계를 침범한 사례로 봐요. 아버지와 딸 사이가 친밀한 건 좋지만 심리적인 거리를 두어야 해요. 요즘 딸바보 아빠들 중에는 경계를 허무는 경우도 많은 것 같은데요. 『아버지의 딸』에도 썼듯이 유치원생 딸아이가 남자 아이들과 놀고 있으면 질투심을 느끼는 아빠들도 있어요. 그런데 아이가 나이가 들면 심리적으로 놓아주어야 해요. 특히 여자아이의 경우 2차 성징이 나타나기 시작하면 신체적으로도 거리를 두어야 하고요.

 

편집2.jpg

 


똑똑한 그녀가 나쁜 남자에게 끌리는 이유


‘착한 딸 콤플렉스’에 빠진 사람들에게는 어떤 인식의 전환이 필요할까요?


어머니와 아버지가 부모로서의 역할을 제대로 해주지 못했을 때, 또는 부모가 아이를 너무 억압하는 경우에 ‘착한 딸 콤플렉스’에 빠질 수 있어요. 결국은 자기 욕구를 많은 부분 희생하고 부모의 기대에 맞춰서 사는 것이기 때문에, 어느 순간 원망이나 억울한 감정을 느끼게 되죠. 자신의 뜻대로 살게 하려는 부모에게 화가 나기도 하고요. 이럴 때는 약하고 어두운 측면을 인정해야 돼요. 엄격한 권위 앞에 스스로 억압하고 억제했던 인격의 원시적인 측면을 인식하는 거죠.

 

이런 유형의 사람들은 ‘이제는 예전과 다르게 살 거야’라고 선언하기가 두려울 것 같은데요. 어떤가요?


그렇죠. 착한 딸 콤플렉스에 빠진 사람들은 자기주장을 잘 하지 못해요. 부모에게만 그런 것이 아니라 직장에서도 착한 모습을 보이려고 하는 경우도 많아요. 윗사람이 시키는 대로 하는 ‘예스맨’이 되는 거죠. 자기 안에 부정적인 감정이 올라오는 걸 받아들이고 인정해야 하는데, 그런 감정이 올라오면 불편해하는 거예요. 감정은 다 옳다는 걸 기억할 필요가 있어요. 부정적인 감정이 올라오는 것도 당연한 거라고 받아들여야 하는 거죠. ‘부모님한테 이런 마음을 가지면 안 되지, 저 사람은 나한테 잘해줬는데 이런 마음 갖지 말아야지’하고 죄책감이나 수치심, 불안감을 느끼면서 욕구를 억압하면 안돼요. 그러면 나중에는 무의식에서 원할 수 있어요. 몸이 아프거나, 갑자기 우울해지거나, 자꾸 화가 나거나, 억울한 마음이 올라오는 거예요. 그래서 불특정 다수에게 화를 내거나 별 일이 아닌데도 화를 내기도 해요.

 

“유독 고부갈등에 시달리는 여성 중에서도 의무감과 헌신에 가득 찬” 딸들이 많다고 하셨습니다. 자신의 의사를 제대로 전달하지 못해서일까요?


자기 주장이 강한 며느리들은 시어머니와의 관계에서도 선을 분명히 긋고 부당한 요구에 대해서는 확실하게 거부해요. 그러나 착한 며느리들은 인정받고 싶은 마음 때문에 그렇게 하지 못하죠. 자기 욕구를 억압하면서 시키는 대로 하는 거예요. 그런데 희생한 만큼 언제나 돌려받는 것은 아니잖아요. 오히려 상대는 자신이 희생하는 만큼 더 요구하게 되죠. 그러다 보면 결국 화병에 걸리는 거예요. 공황장애를 겪는 경우도 많고요.

 

자신이 주변의 남자들과 맺는 관계를 살펴보면, 유년 시절에 아버지의 상실과 부재로 경험한 고통을 발견할 수 있다고 하셨습니다. 둘 사이에는 어떤 연관 관계가 있나요?


신체적 또는 정서적으로 아버지의 상실이나 부재를 경험한 사람들은 아버지를 대체할 대상을 찾아요. 가부장적인 남성에게 이끌리기도 하고, 남자친구나 남편에게 집착하거나, 목사님과 신부님 같은 종교지도자에게 강박적으로 몰두하기도 하죠. 아니면 일을 통해서 결핍을 채우려고 하다가 일 중독이 되는 경우도 있어요. 우리는 부성적인 원형을 가지고 있는데, 실제 아버지의 모습과 달리 ‘아버지는 이렇게 해야 돼’라는 생각으로 만들어 놓은 이미지가 있는 거예요. 관계에 중독이 되어서 사람한테 집착하는 사람들은, 상대가 부성적인 원형을 충족시켜주지 못하면 우울해하고 분노하기도 해요. 사랑이 아닌 중독에 가까운 거죠.

 

‘아버지 없는 딸’ 증후군이란 무엇인가요?


아버지의 결핍을 경험하면 늘 뭔가에 매진해야 한다고 느끼면서 정서적인 허기를 안고 살아갈 수 있어요. 그리고 거부당하는 것에 대한 두려움을 갖게 되죠. 이런 여성들은 이성 관계에서 있어서도 ‘거절민감성’이 굉장히 높아요. 그러다 보면 원치 않는 성관계에 빠지기도 하는데요. 거절할 수 있는데도 상대가 떠나갈까 봐 두려워서 의사표현을 하지 못하는 거예요. 남자가 떠나가면 버림받은 느낌을 받고요. 반대로 (결핍을 채우기 위해) 성에 탐닉하게 될 수도 있어요. 술이나 성공에 집착하는 경우도 있고요.

 

아버지가 없이 유년 시절을 보냈음에도 그와 같은 증상을 보이지 않는 여성들은 어떤 차이가 있는 걸까요?


물론 ‘아버지 없는 딸’이라고 해서 모두가 이런 증후군을 겪는 건 아니에요. 개인차가 분명히 있죠. 아버지가 없더라도 엄마가 건강한 모델이 되어주는 경우, 아이들을 잘 돌보고 경제적인 역할도 해주면서 성장으로 이끄는 경우도 있어요. 아버지가 부재한 상황에서 엄마마저 역할을 잘 해주지 못할 때 문제가 발생하는 거죠. 그러니까 ‘아버지 없는 딸’에게는 엄마의 역할이 중요해요. 엄마가 건강하게 곁을 지켜주는 경우에는 이런 증후군을 겪지 않을 수 있어요.

 

『아버지의 딸』에서 말씀하신 것처럼 “지적이고 강한 여성이 어이없게도 나쁜 남자에게 끌리는” 모습을 종종 목격합니다.


투사된 이미지 때문이에요. 여성 안에 자리 잡은 남성 원형은 부재하는 아버지상을 끌어 모으기 때문에 고독하게 방랑하는 늑대가 아니무스(여성의 무의식 속에 있는 남성적 요소 - 필자 주)로 형성돼요. 이런 여성들은 사랑에 빠지게 되면 고독한 방랑자라는 남성상을 주변에 투사하죠. 그래서 다정다감한 남자보다는 늘 떠날 것 같은 불안감을 주는 나쁜 남자에게 이끌리는 거예요. 성실하고 변함없이 곁을 지키는 남자보다는 무책임하고, 성실하지 않고, 심지어 다른 여성에게 추파를 던지는 남성에게 매력을 느끼는 거죠. 건강한 아버지 상을 경험하지 못한 여성은 건강한 아버지 상을 경험한 여성들에 비해 이런 남자들에게 빠져들 가능성이 높습니다.

 


아버지와 딸, 어떻게 화해할 수 있을까


딸의 성적인 부분에 대해서 아버지가 어떤 태도를 취하느냐에 따라서 여성성에 대한 인식도 달라진다고 하셨습니다. 그렇다면 가장 이상적인 아버지의 태도는 어떤 것일까요?


아버지가 딸의 성을 너무 억압하거나 금기시하는 경우, 딸들은 자라서 성에 있어서 자연스럽게 욕구를 충족하기 어려울 수 있어요. 성에 대한 왜곡된 시각을 갖거나, 심지어 성을 더럽다고 생각하게 될 수도 있죠. 특히 아버지가 성적으로 억압한 경우에는 성에 있어서 죄책감을 갖게 돼요. 성적인 즐거움을 느끼는 것에 죄의식을 가지는 거죠. 신앙적인 이유로 성에 너무 엄격한 태도를 보이는 경우도 마찬가지예요. 이렇게 강한 죄책감을 갖다 보면 성 불감증이 생길 수도 있죠. 아버지는 딸의 성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야 해요. 특히 2차 성징이 나타나면 딸이 여성으로 태어난 걸 축하해주고 환영해 주되 신체 접촉을 조심해야 하고요. 여성성을 과도하게 억압해서도 안 되지만 너무 강조하는 것도 바람직하지 않아요.

 

자식에게 자신의 욕구나 기대를 투사하는 아버지들도 많습니다. 이런 아버지의 딸들은 ‘독립 대 의존 갈등’을 겪는다고 하셨죠.


이런 갈등은 모든 자녀들이 부모와의 관계에서 겪는 거예요. 특히 부모가 너무 자녀를 움켜쥐는 경우, 벗어나고 싶으면서도 한편으로는 내 힘으로는 무언가를 할 수 없다는 무력감이 생겨요. 반항하면서 독립하려고 하다가도 다시 의존하게 되는 거죠. 대부분은 20대가 되면서 심리적인 독립을 먼저 하고 점차 경제적인 독립을 하게 되잖아요. 그런데 부모 특히 아버지가 강하게 통제하고 지배하는 경우에는 30대 40대가 되어서도 온전히 독립하지 못해요. 이렇게 독립 대 의존 갈등을 겪다 보면 부모에 대해서 양가감정을 갖게 되죠. 의존하고 싶은 마음도 있지만, 한편으로는 자신을 통제하는 것에 대해 화가 나는 거예요.

 

이미 아버지가 곁을 떠나셔서 화해를 할 수 없는 딸들에게 ‘내면의 아버지와 화해하는 방법’을 알려주셨습니다.


내면의 아버지란 진짜 아버지가 아니라 딸의 마음속에 내재화된 아버지인데요. 주로 내면의 목소리가 돼요. 아버지의 비난을 많이 받은 딸은 늘 ‘아버지가 좋아하실까’하고 아버지 기준에서 평가하게 되는 거죠. 아버지의 목소리와 진정한 자신의 목소리를 구분할 필요가 있어요. 아버지 목소리를 따라가기 보다는 자신이 진정 원하는 것, 내면의 고유한 열정이나 울림을 따라 가겠다는 다짐과 용기가 필요해요. 인간적 한계와 감정을 존중하는, 부드러운 목소리를 가진 내면의 아버지를 스스로 키워나가야 하고요. 내면의 아버지와 화해하게 되면 현실의 아버지와의 힘겨루기가 사라지고, 아버지의 긍정적인 부분과 부정적인 부분을 수용할 수 있게 되죠. 아버지가 돌아가신 상황이라면 원망과 넋두리를 반복해봤자 해결되는 건 없잖아요. 결국 회복할 수 있는 열쇠는 자신에게 있어요.

 

아버지를 향한 용서와 화해의 끝에서 느끼는 감정은 결국 연민이 아닐까 싶습니다.


그렇죠. 결국 아버지도 강한 남자가 아니었다는 것, 약함과 두려움이 많은 한 남자였고 그 두려움을 숨기기 위해 그런 방식으로 행동하였을 것이라는 것, 아버지 역시 그 아버지의 아버지로부터 혹은 어머니로부터 올바른 양육을 받지 못한 결과 좋은 아버지가 될 수 없었을 것이라는 것, 아버지도 인간적 약점이 많은 분이었다는 것을 인식하면서 연민의 마음을 가질 수 있는 거죠.

 

딸과 화해하고 싶은 아빠들은 어떻게 해야 할까요?


‘미안하다, 네가 많이 힘들었겠다’라는 한 마디만으로도 가슴 속의 응어리가 녹아내리겠죠. 그런데 그와 달리 끝까지 미안하다는 말을 하지 않는 아버지도 있잖아요. 이럴 때는 자기 용서를 먼저 해야 돼요. 아버지로부터 제대로 대접을 받지 못하다보면 스스로를 대접하지 못하는 사람이 될 수 있거든요. 나는 아무 쓸모가 없어, 라고 생각하면서 낮은 자존감을 갖는 거예요. 그렇다면 아버지의 사과와 용서에 너무 연연하지 말아야 하죠. 아버지의 영향으로 스스로를 함부로 대하지는 않았는지, 그 원망감이나 분노를 다른 사람에게 화살처럼 쏘아대지 않았는지 들여다봐야 돼요. 만약 그런 부분이 있었다면 스스로를 용서하는 마음을 가져야 하고요. 만약 아버지가 화해를 원하지 않는 경우에는, 계속 아버지에게 맞추면서 괴로워하기보다는 심리적 거리를 둘 필요도 있다고 생각해요.

 

『아버지의 딸』의 마지막을 ‘자기만의 방’과 ‘자기 집의 주인’에 대한 이야기로 장식하신 이유가 궁금합니다.


버지니아 울프가 말했던 자기만의 방은 자신만의 공간과 경제적 여유를 의미하죠. 물론 지금은 버지니아 울프가 살았던 시대보다 독립심이 강하고 능력 있는 여성들이 많아졌지만, 한편으로는 그렇지 못한 여성들도 많아요. 자기만의 방이라는 건 물리적인 공간이기도 하지만 심리적인 공간이기도 해요. 혼자서 무언가를 할 수 있는 마음의 여유, 자율성과 독립성을 추구할 수 있는 힘, 그리고 경제력을 갖추어야 한다는 걸 은유하는 거죠. 그래야만 자기 집의 진짜 주인이 될 수 있으니까요. 아버지나 남자친구나 남편의 인형이 아닌, 자기만의 능력과 힘을 가진 주체로서 삶을 살아가야 한다는 메시지를 담고 싶었어요. 물론 관계를 통해서 자신을 찾을 수 있기지만, 관계에만 전적으로 의존해서는 안 된다는 의미예요. 자기만의 주체성과 독립성을 가지고 홀로 서있을 수도 있는 여성이 관계 맺음도 더 잘할 수 있고요.

 

책에서 말씀하셨다시피 “이 책은 세상의 모든 딸과 모든 아버지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특히 이 책을 추천하고 싶은 독자가 있다면 어떤 이들인가요?


아버지로부터 긍정적인 영향을 받은 딸들보다는 부정적인 영향을 받은 딸들이 『아버지의 딸』을 찾게 될 것 같은데요. 상대가 연인이든 직장 상사든 이상하게 이성과의 관계가 힘들게 느껴진다면, 이 책이 도움이 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해요. 그리고 딸을 잘 키우고 싶은 아버지들이나 여자 친구나 부인을 조금 더 이해하고 싶은 남자들에게도 추천하고 싶어요.

 

 

 

img_book_bot.jpg

아버지의 딸이우경 저 | 휴(休)
《아버지의 딸》은 딸들의 무의식 속에 여러 형태로 자리 잡은 아버지의 영향력을 관계심리학으로 풀어낸 책이다. 지금까지 숱하게 이야기되었던 어머니와 딸, 어머니와 아들의 이야기에서 벗어나 기대와 실망, 흠모, 사랑, 배신이 엉켜 있는 아버지와 딸의 관계를 재조명해봄으로써 여성 그리고 딸의 삶에서 아버지 혹은 아버지라는 한 남자의 영향력을 알아채기 위한 시도이다.


 

 

[추천 기사]

- 김려령 “트렁크, 사실 버려도 되는 거잖아요”
- 김진혁 PD “미니다큐 <5분>, 어? 하는 느낌이랄까요?”
- 재즈뮤지션 임달균의 변화와 도전
- 인터뷰어 지승호 “내레이션이 너무 많으면, 다큐도 재미없잖아요”
- 오인숙 “남편을 위로하려고 찍은 사진, 사랑이 보였다”

 
‘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예스24 채널예스

이 기사가 마음에 드셨다면 아래 SNS 버튼을 눌러 추천해주세요.

독자 리뷰

(1개)

  • 독자 의견 이벤트

채널예스 독자 리뷰 혜택 안내

닫기

부분 인원 혜택 (YES포인트)
댓글왕 1 30,000원
우수 댓글상 11 10,000원
노력상 12 5,000원
 등록
더보기

글ㆍ사진 | 임나리

그저 우리 사는 이야기면 족합니다.

오늘의 책

20세기 가장 위대한 시인의 대표작

짐 자무시의 영화 〈패터슨〉이 오마주한 시집. 황유원 시인의 번역으로 국내 첫 완역 출간되었다. 미국 20세기 현대문학에 큰 획을 그은 비트 세대 문학 선구자, 윌리엄 칼로스 윌리엄스의 스타일을 최대한 살려 번역되었다. 도시 패터슨의 역사를 토대로 한, 폭포를 닮은 대서사시.

본격적인 투자 필독서

네이버 프리미엄콘텐츠' 경제/재테크 최상위 채널의 투자 자료를 책으로 엮었다. 5명의 치과 전문의로 구성된 트레이딩 팀으로 국내는 물론, 해외 최신 기술적 분석 자료까지 폭넓게 다룬다. 차트를 모르는 초보부터 중상급 투자자 모두 만족할 기술적 분석의 바이블을 만나보자.

타인과 만나는 황홀한 순간

『보보스』, 『두 번째 산』 데이비드 브룩스 신간. 날카로운 시선과 따뜻한 심장으로 세계와 인간을 꿰뚫어본 데이비드 브룩스가 이번에 시선을 모은 주제는 '관계'다. 타인이라는 미지의 세계와 만나는 순간을 황홀하게 그려냈다. 고립의 시대가 잃어버린 미덕을 되찾아줄 역작.

시는 왜 자꾸 태어나는가

등단 20주년을 맞이한 박연준 시인의 신작 시집. 돌멩이, 새 등 작은 존재를 오래 바라보고, 그 속에서 진실을 찾아내는 시선으로 가득하다. 시인의 불협화음에 맞춰 시를 소리 내어 따라 읽어보자. 죽음과 생, 사랑과 이별 사이에서 우리를 기다린 또 하나의 시가 탄생하고 있을 테니.


문화지원프로젝트
PYCHYESWEB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