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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양도성을 걸으며 도시를 생각하다

『권기봉의 도시산책』 권기봉 저자와의 만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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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5월 31일, 『권기봉의 도시산책』 출간기념 ‘권기봉 작가와 함께하는 도시 산책’은 한양도성을 누비는 시간으로 마련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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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동차에 의해 살해된 도시”(프랑스 사진작가 얀 베르트랑)라던 서울은 더디지만 ‘걷는 도시’로 탈바꿈을 시도하고 있다. ‘보행친화도시 서울’을 선언한 서울시 정책과 함께 걷기 열풍이 불면서 서울에서 걷는 사람을 만나는 것은 어렵지 않다. 물론 서울이 파리처럼 걸을 수 있는 환경이 좋은 도시는 아니다. 특히 장애인에게는 보행이 너무 열악한 도시가 서울이다. 서울은 좀 더 걷도록 만들어야 한다. 자동차에게 내줬던 우선권을 사람과 생명이 돌려받아야 한다. 걷기를 통해 이어져야 하고, 만나야 한다. 그럼으로써 서울은 좀 더 도시다운 모습을 지니게 될 것이다. 생기를 찾게 될 것이다.

 

“걷는 사람에게 절망은 없다. 그가 정말 걷는 사람이라면”이라던 프랑스 시인 자크 레다의 말은 도시 산책자에게 힘을 준다. 이 말을 곱씹으며 한양도성을 걸었다. 지난 5월 31일이었다. 『권기봉의 도시산책』 출간기념 ‘권기봉 작가와 함께하는 도시 산책’은 한양도성을 누비는 시간으로 마련됐다. 한양도성은 요즘 떠오르는 산책길 중의 하나다. 앞선 명칭은 ‘서울 성곽’으로 2011년 7월 지금의 명칭으로 변경됐다. 한양도성은 왕이 통치하는 도시 한양의 상징물이었다. 일제가 조선을 강제병합하기 직전부터 대대적으로 파괴됐다가 최근 활발하게 복원이 이뤄지고 있다.

 

“한때 눈길도 두지 않았던 한양도성길이 새로운 도보여행 코스로 떠오르고 있다. 총길이가 18.6킬로미터나 되어 규모 면에서 여느 올레길이나 둘레길에 뒤지지 않는데, 특히 전체 구간 가운데 12킬로미터 정도는 성벽과 나란히 걸을 수 있어 역사와 자연을 함께 만끽하기에 제격이다.”(183쪽)

 

스무 명 가량의 독자들이 4호선 한성대입구역 부근에서 저자와 만났다. 가장 먼저 바라본 곳은 혜화문. 사소문에 속하는 혜화문은 원래 있던 위치에서 벗어난 곳에 자리 잡고 있다. 도로 확장과 함께 원래 위치에서 벗어나게 됐던 것. 저자는 성에 대한 이야기도 풀었다.

 

“성은 공격이 아닌 방어를 위한 건축물이다. 그래서 높은 곳이 유리해서 능선을 따라 짓는다. 높은 곳을 못 찾으면 다른 방어 장치를 찾는다. 대부분 도시는 높은 곳에 지어졌다. ‘아크로폴리스’의 어원을 따지면 ‘아크로스’와 ‘폴리스’의 합성어인데, 아크로스는 높다, 폴리스는 도시라는 뜻이다. 즉 높은 곳에 만들어진 도시다. 한양도성은 일제강점기 전후 많이 철거됐다. 교통 등을 이유로도 그랬고 성돌을 갖다 쓰면서 사라진 것도 많다.” 

 

혜화문을 바라본 뒤 본격적으로 성곽 길로 올라섰다. 성곽에는 복원의 흔적인 아크릴판이 붙어 있었다. 태조 4년 한양도성은 축성되었다. 백악산(북악산)ㆍ낙산(낙타산, 타락산)ㆍ남산(목멱산)ㆍ인왕산의 능선을 따라 축조됐던 한양도성은 세종, 순종 때 수정(보완)됐다. 최근 연구에 의하면, 순조 때도 보완공사가 있었다는 기록도 있다고 한다. 복원이 한창 이뤄지고 있는 지금, 성곽 주변의 나무는 없애는 추세다. 성곽에 무리를 줄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수정과 보완의 과정을 거쳐서인지 성돌의 크기나 색깔, 질은 조금씩 다르다. 시기에 따라 성돌은 확연한 차이를 드러낸다. 농한기를 택해 성을 쌓았는데 주로 겨울에 하다 보니 여럿이 죽었다는 기록도 있었다고 한다. 그렇게 쌓았던 성이 일부 무너지면 관군들이 보수ㆍ보완에 나섰다.

 

“새 돌의 색깔이 너무 밝아 옛것과 어울리지 않는다거나, 기계로 다듬은 느낌이 지나치게 강하다는 지적을 쉽게 흘려들어서는 안 된다. 옛 모습을 되찾아주려는 노력도 좋지만 빨리 지으려고만 하다 자칫 안 하느니 못한 날림공사가 될까 우려스럽다. 나아가 ‘복원’이라 이름 붙은 일련의 재건축 작업들이 한양도성의 ‘진정성’을 해치는 것은 아닌지 본질적인 차원에서 더 깊이 고민해봐야 한다.”(185쪽)

 

“한양도성 보존을 위해서는 안쪽 나무들도 베어야 하나 아직 사유지여서 그렇게는 못하고 있다. 성곽을 자세히 보면 나무뿌리 등도 잘라낸 흔적을 볼 수 있다. 횡렬로 된 시멘트 흔적이 있는 것도 볼 수 있는데, 예전에 성곽길에 가건물이나 상점 등이 있었음을 보여주는 흔적이다. 한양도성을 공원화 사업하면서 이들을 철거했다.”

 

성곽 주변을 그렇게 거닐다가 마을이 나왔다. 몇 번 들렀고 아는 사람도 살고 있는 마을이다. 장수마을. 이 마을의 재생사업을 주도했던 마을기업 ‘동네목수’가 떠올랐다. 붙어 있는 북정마을도 발을 디디고 싶었다. 이들은 이른바 ‘성곽마을’로 불리고 있다. 한양도성이 문화재로 지정되는 바람에 개발이 쉽지 않았고 슬럼화 되기도 했지만 이곳은 사람이 사는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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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수마을은 재개발을 하려고 했지만 높이 제한 등으로 채산성이 맞지 않아 새 건물을 짓기보다 사람이 살기 좋은 환경으로 바꾸는 재생 사업을 하고 있다. 난간도 설치하고 현재 살고 있는 사람들이 좀 더 살기 좋은 곳으로 바꾸기 위한 움직임이 펼쳐지고 있다.”

 

“그동안 한국은 문화재 정비를 구실로 주민들을 원래 삶의 공간에서 몰아낸 예가 적지 않았다. 이제는 개인의 주거권도 중시하면서 동시에 문화재도 돋보이게 할 수 있는 아이디어가 필요한 시대가 되었다. 또 그 성과들이 조금씩 나타나고 있다. 한양도성을 축대 삼은 탓에 알게 모르게 싫은 소리를 들어온 동네가 그 성곽을 매개로 역사와 문화가 살아 숨 쉬는 마을로 재탄생할 수 있기를 기원한다.”(189쪽)

 

낙산공원에 들어섰다. 이곳은 공원화하기 이전에 ‘시민아파트’가 있던 곳이다. 한국전 이후 인민들이 서울로 대개 왔다. 그러나 살 곳이 없다 보니 산 능선, 중턱 등에 움막이나 판자집을 짓고 살았다. 당시 군인 출신의 ‘불도저’라는 별명을 가졌던 김현옥 서울시장이 판자촌을 허물고 아파트 건설 사업에 적극 나섰다. 창천동 와우아파트, 회현동 시범아파트 등도 그의 작품(?)이었다. (그러나 1970년 4월 8일, 와우아파트가 무너지면서 김현옥은 서울시장에서 물러났고 구청장과 건축 설계자, 현장 감독, 건설회사 사장까지 책임을 지고 좌천되거나 구속됐다.)

 

“낙산은 공원화 사업을 하면서 시민아파트는 철거됐다. 돈을 아끼며 빨리 짓는다며 부실시공과 비리가 생겼고 결국 와우아파트가 무너졌다. 시민아파트는 집 없는 사람을 위한 것이었으나 아파트 입주자들은 피아노 등을 가진 중산층이었고 이런 수요층 파악도 제대로 못해서 짐이 많아지면서 무너졌다는 얘기도 있다. 그래서 회현동에 지어진 것은 ‘시범아파트’로 이름을 바꿔지었다. 아직 이 아파트는 남아 있는데 몇 년 전 안전등급에서 D등급을 받았음에도 보상금문제 등이 해결되지 않아서 아직도 사람들이 살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인왕산, 백악산, 남산 등을 바라볼 수 있고 대학로와도 연결된 낙산이다. 왜 이런 산사면에 아파트를 지었을까. 지을 수 있는 곳도 많지 않았지만 정치적인 목적도 있었다. 전시행정의 효과를 노린 것이다. 시민들이 잘 볼 수 있는 곳 그리고 파란 기와집의 최고권력자 눈에도 잘 띌 수 있는 곳. 시민아파트에 살던 사람들은 어디로 갔을까. 그렇게 낙산을 둘러보고는 흥인지문으로 향하는 길, 창신ㆍ숭인동을 거친다. 이곳은 도시재생 사업이 활발하게 펼쳐지고 있다.

 

권기봉은 조선 후기의 백과사전이었던 『지봉유설(芝峰類說)』을 지은 이수광의 생가 ‘비우당(庇雨堂)’이 있던 자리를 가리켰다. ‘비를 피할 만한 집이면 족하다’는 뜻의 비우당. 검소한 선비의 모습을 보여주는 집 이름이다. 과거의 선비는 이렇게도 살았건만, 지금 우리는 이런 풍모를 만나지 못한다. 물론 그것을 탓할 순 없다. 시대가 다르고 환경이 다르니만큼. 그럼에도 거듭된 총리 낙마와 공직자들의 태도가 아쉬운 것은 어쩔 수 없다.

 

단종을 그렸다는 동망봉은 지금 아파트촌이 되어 있다. 낙산에서 잠시 빠져 이화마을에도 발을 디뎠다. 성곽마을과 달리 성 안쪽 마을인 이화마을은 관광지로 뜬 탓인지 외지인들의 발걸음이 활발하다. 일본 관광객들이 ‘가와이~(귀엽다, 사랑스럽다)’를 외치며 상품 구매에 관심을 기울이고 있으며, 마을 평상에는 마을 구경을 온 것으로 보이는 사람들이 쉬어가고 있었다. 이화동 마을박물관이 눈에 띠었다. 예능 프로그램 <1박2일> 등에 나오면서 ‘이화벽화마을’로도 알려진 마을답게 곳곳에서 사진을 찍는 관광객들도 볼 수 있다.

 

다시 이어진 골목길 탐방은 창신봉제골목으로 이어졌다. 권기봉은 채석장으로 독자들을 이끌었다. 자연절벽이 아닌 돌을 깎아지른 채석장. 석질이 괜찮았던 까닭에 일제강점기 채석장으로 개발됐다. 이곳에서 잘라낸 돌로 초선총독부, 경성부청(현 서울도서관) 등을 만들었다는 설도 있다. 저자는 근처 보문동에도 채석장이 있다는 얘기를 들려준다.

 

“그 당시 채석장에서 일한 분 가운데 지금도 이곳에 살고 있는 분들도 있다. 창신동은 동대문 의류산업의 배후 생산지로 작동하고 있다. 뉴타운 안이 나오기도 했는데 무산되고 이곳에 살고 있는 주민들의 의견도 듣고 재생을 위한 여러 논의가 이뤄지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동대문 의류산업의 배후기지인 창신동은 문화적?역사적으로 의미를 지닌 동네다. 전태일 열사가 일했던 봉제공장도 있고, 백남준과 박수근이 살았던 집도 있다. 백남준은 죽기 전 창신동에 가고 싶어 했다. 지금 이곳에는 러닝투런이라는 사회적기업이 ‘OOO간(공공공간)’을 통해 지역 주민들과 함께 흥미로운 예술작업과 경제활동을 펼치고 있다. 그 밖의 여러 사회적경제와 마을공동체 주체들이 슬럼화됐던 창신동을 새로운 공간으로 만들어가고 있다. 러닝투런은 2013년에 이미 ‘도시의 산책자’라는 프로그램을 통해 창신동을 누비는 재미를 느끼게 해줬다.

 

그리고 동대문(흥인지문)으로 향했다. 평지 지역이어서 옹성을 쳐서 둘렀던 동대문은 지금 숭례문처럼 외따로 떨어져 섬처럼 존재하고 있다. 저자는 건널목 건너의 동대문성곽공원에 얽힌 이야기도 풀어냈다.

 

“1907~1908년 전차선로를 놓으면서 성벽을 원래보다 3m 넓혔다는 기록이 있고 전차선로를 확장하면서 성벽이 허물어졌다. 임진왜란 당시에는 격전지로도 알려져 있다. 최근 지반 침하가 이뤄지면서 조심스럽게 지켜보고 있다. 동대문성곽공원은 이대동대문병원을 철거하고 조성한 것이다. 이에 대해선 약간의 논란이 있다. 이대병원은 건물 역사만 80년 이상으로 구한말 외국인선교사가 지은 최초의 여성전문병원인데 한양도성 때문에 철거됐다. 지금은 한양도성박물관으로 활용되고 있다.”

 

흥인지문은 근현대사의 현장이다. 흥인지문 바깥길은 ‘왕산로’라고 부르는데, 왕산은 1900년대 초반 일제에 대항해 의병 궐기를 일으킨 의병장 허위의 호다. 왕산은 의병을 일으켜 사대문 안으로 진군하다가 청량리 바깥에서 일본군에 의해 진압을 당했다. 그 정신을 잇는 의미로 ‘왕산로’라는 이름을 붙였다는 것이 권기봉의 설명이다.

 

흥인지문을 지나 북적이는 동대문시장을 통과했다. 다리를 지나면서 저자는 ‘오관수문’에 대한 이야기도 풀었다. 한양도성의 다른 구간에는 물길이 지나는 곳이 없다. 유일하게 성곽을 뚫고 물길이 지나는 유일한 곳이었다는 것. 다섯 개의 구멍이 있어서 오관수문이었다. 이 오관수문에는 30명 정도가 배치돼 있었다고 한다.

 

요즘 가장 뜨거운 관심을 받고 있는 건축물인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도 빠질 수 없었다. 일제강점기 일본의 왕은 해방 이후 동대문운동장으로 이름을 바꾼 ‘경성운동장’을 만들었다. 운동장을 만들면서 흙을 덮었는데 이때 남산에서 발원된 물이 나오는 이관수문을 덮었다. 이관수문 위로 한양도성을 지나는 길이 있었다. DDP를 만들면서 이런 유적을 발견하고는 지금 이관수문은 보전을 하고 있다.

 

“오세훈 전 시장 때 DDP를 지으면서 땅을 파니 이관수문 등 성곽 유물이 나왔다. DDP를 짓다가 설계 변경을 해야 했다. 그러면서 설계 비용에 맞먹는 돈이 들게 된 거지. 사실 DDP는 지을 때 목적 없이 만들어졌다. 지금 전시회나 초대전 등을 통해 공간을 활용하고 있다. 서울디자인재단에서 위탁운영하고 있는데 새 건물의 운명이 시민들의 손에 맡겨진 셈이다. 시민들이 어떻게 활용하면 좋을지 스스로 결정해야 한다.”

 

걷다 보면 생각을 하게 된다. 생각은 무언가를 재발견하게 만든다. 서울은 걷기를 통해 재발견될 수 있다. 계획도시였던 서울은 그동안 지나치게 빠른 속도로 과거를 지우는 데만 공을 들였다. 그러다 자동차에 의해 살해도 당했고 걷기에 불편한 도시로 전락했지만 서울은 걷기를 통해 새로운 꿈을 꾸고 있다. 그러니 걸어라. 도시를 산책하자. 비록 절망의 나라에 살고 있지만 그 절망은 익숙한 것이지만, 걷기는 그 절망에서 다른 가능성을 잉태해줄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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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기봉의 도시산책 권기봉 저 | 알마
서울이라는 도시의 일상에서 발견할 수 있는, 그러면서도 무심코 지나치기 쉬운 다채로운 모습들을 95꼭지에 담아낸 책. 이 글들을 읽다 보면 서울이 얼마나 깊이 있고 역동적이며 매력적인 도시인지 새삼 깨닫는다. 《권기봉의 도시산책》은 서울이 과거에 시선을 고정한 채 단편적인 정보만 나열하고 있는 박제된 공간이 아니라 생생히 ‘살아 있는’ 공간임을 새삼 재발견하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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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김이준수

커피로 세상을 사유하는,
당신 하나만을 위한 커피를 내리는 남자.

마을 공동체 꽃을 피우기 위한 이야기도 짓고 있다.

권기봉의 도시산책

<권기봉> 저16,920원(10% + 1%)

박제된 공간이 아닌 살아 움직이는 도시 서울을 만나다 서울이라는 도시의 일상에서 발견할 수 있는, 그러면서도 무심코 지나치기 쉬운 다채로운 모습들을 95꼭지에 담아낸 책. 이 글들을 읽다 보면 서울이 얼마나 깊이 있고 역동적이며 매력적인 도시인지 새삼 깨닫는다. 중요한 것은 95꼭지에서 담아낸 장소들이 단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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