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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친과 기요히메의 어긋난 사랑

안친安珍과 기요히메淸姬의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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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살고 있는 한반도는 말 그대로 반도이다. 반도의 상상력과 사고는 대륙이나 섬나라의 그것과 다를 수밖에 없다. 삼면이 바다로 에워싸여 있지만 북쪽이 열려 있다는 점에서 그렇다. 그래서 양자의 장단점을 모두 갖추고 있다.

우리가 살고 있는 한반도는 말 그대로 반도이다. 반도의 상상력과 사고는 대륙이나 섬나라의 그것과 다를 수밖에 없다. 삼면이 바다로 에워싸여 있지만 북쪽이 열려 있다는 점에서 그렇다. 그래서 양자의 장단점을 모두 갖추고 있다.
일본의 경우는 사방이 바다로 둘러싸여 있기에 외부로 향하는 상상력보다는 내면으로 향하는 상상력이 발달했다. 이런 모습은 사방이 트여 있어 외부로 향하는 공간적 상상력이 발달한 중국의 경우와 극명하게 대조를 이룬다. 이렇듯 한국과 일본, 중국은 각기 다른 지리적인 환경 때문에 유사한 세계관을 가지고 있지만 한편으로 서로 다른 모습으로 살아왔다. 물론 어느 것이 더 뛰어난 것은 아니며 각각 장점과 단점을 갖고 있다.


이런 차이를 일본판 의상과 선묘의 이야기인 안친安珍과 기요히메淸姬의 이야기를 통해 살펴보자. 안친과 기요히메 이야기의 기본적인 골격은 의상과 선묘 이야기와 동일하다. 그런데 섬나라 일본으로 건너가면서 이야기의 구성이 변형된다.

 

때는 928년 여름 무렵이었다. 그때 구마노에 참배를 온 승려가 하나 있었다. 그는 매우 잘생겼는데 이름은 안친이었다. 안친은 머물 곳을 찾다가 쇼지라는 사람의 집을 찾았다. 그런데 쇼지의 딸인 기요히메가 잘생긴 안친을 보고 한눈에 반하고 말았다. 그리고 그날 밤이 이슥해지자 기요히메는 안친의 방에 몰래 숨어들었다.


안친은 참배를 해야 하는 몸이기 때문에 정결해야 한다고 말하며, 돌아올 때 꼭 들리겠다고 설득했다. 기요히메는 안친의 말을 믿고 그대로 물러났다.

 

여기까지는 선묘 이야기와 별로 다를 것이 없다.

 

그런데 안친은 참배가 끝나고 돌아갈 때 기요히메의 집을 들르지 않았다. 속았다는 것을 알게 된 기요히메는 분노한 나머지 맨발로 안친의 뒤를 쫓아갔다. 기요히메는 안친이 도죠지道成寺에 도착하기 전에 따라잡았다. 그런데 안친은 기요히메에게 쌀쌀맞은 표정으로 사람을 잘못 보았다며 거짓말을 했다. 분노로 시작되었지만 막상 안친을 다시 만나 기쁨으로 가득했던 기요히메의 뜨거운 마음은 다시 거친 분노로 바뀌었다.


안친은 거짓말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일본의 신 곤겐에게 기원해 기요히메를 쇠사슬로 묶어놓고 달아났다. 결국 분노가 하늘을 찌를 듯이 치솟은 기요히메의 몸은 큰 뱀으로 변했다. 뱀이 된 기요히메는 분노의 화신이 되어 안친의 뒤를 뒤쫓았다.


안친은 기요히메가 뱀으로 변해 쫓아오자 놀라서 강을 건너 황급하게 도죠지로 도망을 쳤다. 그리고 강을 지키는 사람에게 뱀을 막아달라고 부탁했다. 하지만 소용이 없었다. 숨을 곳을 찾던 안친은 종 안에 들어가 숨었다. 안친은 종 안에 숨어 있으면 안전할 것이라며 안심했다.


안친이 숨은 종 앞에 이른 뱀이 된 기요히메는 몸으로 종을 감기 시작했다. 그리고 분노를 폭발시키듯 몸에서 불을 일으켰다. 종 안에 갇혀 있던 안친은 뜨거운 열기를 이기지 못하고 불에 타 죽고 말았다.
훗날 뱀이 된 안친과 기요히메는 도죠지의 주지가 읊는 법화경의 공덕에 의해 성불했고 주지의 꿈에 하늘로 올라가는 두 사람이 나타났다고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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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처럼 두 사람이 만나는 장면부터 연심을 품는 것까지는 의상과 선묘의 이야기와 다르지 않다. 또한 기요히메가 뱀이 된 것도 선묘가 용이 된것과 형태적으로 유사하다. 그러나 줄거리에서 보았듯이 이야기는 전혀 엉뚱한 방향으로 흘러간다.


지극히 개인적인 연심을 불교라는 종교적 차원으로 승화시킨 의상과 선묘와 달리 결국 두 개인의 감정 다툼으로 들어가 갇혀버린 안친과 기요히메 이야기의 결말이 같을 수 없다. 즉 외부적인 방향 선회가 가능한 반도와 내부적으로 품고 해결해야 하는 섬나라의 상상력의 차이가 전혀 다른 결말을 낳은 것이다.


즉 몸을 피하기 위해 종의 속으로 들어간, 즉 다르게 표현하면 내면으로 파고 들어간 안친의 모습은 일본인을 상징한다. 또한 기요히메가 변신한 모습인 뱀 또한 형태적으로는 용과 유사하지만 다른 성격을 지니고 있다. 용은 하늘로 날아오를 수 있지만 뱀은 하늘이 아니라 지하로, 다른 말로 내면으로 파고드는 생물이다.


이처럼 외부적인 탈출구가 없는 섬나라의 특성 때문에 의상과 선묘의 이야기는 일본으로 건너가 안친과 기요히메라는 새로운 형태의 이야기로 변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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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이경덕

한양대 철학과를 졸업했고, 그 후 한양대 대학원에서 문화인류학으로 석박사 학위를 받았다. 현재 대학에서 아시아 문화, 종교 문화, 신화와 축제 등을 강의하고 있다. 주요 저서로는 《신화 읽어주는 남자》, 《역사와 문화로 보는 일본기행》, 《신화, 우리 시대의 거울》, 《우리 곁에서 만나는 동서양 신화》, 《하룻밤에 읽는 그리스신화》 등이 있다. 주요 번역서로는 《고민하는 힘》, 《주술의 사상》, 《일본인은 한국인을 어떻게 바라보고 있는가》, 《오리엔탈리즘을 넘어서》(공역)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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