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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마록』의 결말은 10년 전부터 정해져 있었다

소설학교 3) 이우혁 작가 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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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우혁 작가와 함께한 ‘소설학교’의 세 번째 시간은 ‘작법의 비결’에 대한 이야기로 채워졌다. 구성과 문체, 캐릭터 설정에 이르기까지 소설가를 꿈꾸는 이들이 놓쳐서는 안 될 ‘핵심’을 공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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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로써 의미가 없는 이야기도 있다


예스24와 문학동네가 함께 준비한 ‘소설학교 프로젝트’의 세 번째 시간. 주인공으로 초대된 이는 최근 『왜란종결자』의 개정판으로 돌아온 이우혁 작가였다. 지난 14일 저녁, 소설을 사랑해 자신만의 소설을 꿈꾸게 된 이들이 모여 ‘이야기를 짓는 것’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 아마도 많은 이들이 이우혁 작가의 창작 비법을 들을 수 있으리라 기대했겠지만, 작가는 “여러분의 소설을 써야 한다”는 말로 강연을 시작했다. 한 사람의 작품 세계는 타인이 개입해서 만들어 주는 것이 아니라는 의미였다. 덕분에 ‘이우혁의 소설작법’ 시간은 작가 이우혁만의 것이 아닌, 이야기를 만드는 모든 이들을 위한 것이 되었다.

 

소설을 쓰는 데 있어서 가장 기본적이고도 핵심적 요소인 ‘구성’ ‘문체’ ‘캐릭터’에 대해 설명하기에 앞서, 작가는 ‘분류 의식’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어떤 상황을 보다 세밀하게 분류하려는 마음가짐이나 가치관이 ‘분류 의식’입니다. 사건을 세분하기 위해서는 그것에 대해서 잘 알아야 하겠죠. 피상적으로 알고 있는 상태에서는 피상적인 분류 밖에 할 수가 없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분류 의식을 가진다는 것은 더 깊이 들여다보겠다고 마음먹는 것이라 할 수 있겠죠.”

 

작가는 재레드 다이아몬드의 『총, 균, 쇠』를 예로 들며 “작가가 새로운 시각으로 선입견 없이 대상을 바라봤기 때문에” 그와 같은 이야기를 쓸 수 있었던 것이라고 단언했다. 그리고 ‘분류 의식’을 체화하기 위해서는 자신이 경험하는 모든 일을 세분화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구성의 방법은 작품에 따라 다르지만, 저는 일반론을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소설을 쓰는 순간은 자신이 쓰고 싶은 이야기가 있을 때여야 합니다. 그 다음에는 이야기를 어떤 방식으로 전달할 것인지 정해야 하죠. 노래로 만들 것인지 그림으로 그릴 것인지, 영화로 만들 것인지 소설로 쓸 것인지, 적합한 형태를 판단해야 하는 것입니다. 문학 안에서도 시로 쓰는 것이 맞을지 에세이로 쓰는 것이 맞을지 생각해야 합니다. 소설로 쓰는 것이 의미가 없는 이야기인데도 붙들고서 시간을 허비하는 예비 작가들을 볼 때면 너무 안쓰러워요.”

 

예술가들에 대한 흔한 환상 중 하나는 ‘불현듯 영감이 떠오른 순간에 일필휘지로 작품을 써내려갔을 것’이라는 생각이다. 물론 현실과는 매우 다른 이야기다. 이우혁 작가는 소설가라면 영감이 찾아올 때까지 기다릴 것이 아니라, 어떤 상황에서든 이야기를 쓸 수 있도록 준비되어 있어야 한다고 조언한다. 그리고 불이 번쩍이듯 떠오른 특정한 순간을 경계하라고 당부한다.

 

“어떤 장면이 떠올랐다고 해서 말단에서부터 시작하면 안 됩니다. 그 장면이 적합하게 사용될 수 있는 구성이 나올 때까지 기다려야 합니다. 하나의 장면에 맞추려고 앞부분을 급조해 내면 거꾸로 올라가는 것이 되어버리죠. 이야기는 이상한 방향으로 흘러가게 되고요. 아이디어가 여러분을 해칠 수도 있는 것입니다. 떠오른 장면을 잊으라는 건 아닙니다. 급박하게 작품으로 옮기려 하지 말라는 것이죠. 작품을 통해 전달하고자 하는 것은 주제여야 하는데 (이런 실수를 하게 되면) 특정 장면을 전달하고 싶은 작품이 되어버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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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우혁의 ‘캐릭터 만드는 비법’


이우혁 작가는 “주제의식은 깊을수록 좋다. 처음부터 끝까지 첨예하게 살아있어야 한다”는 말로 이야기를 이어갔다. 작품을 쓰는 중간에 좋은 생각이 떠올랐다는 이유로 방향을 틀어버리면 안 된다는 것을 경고하는 말이었다.

 

“구성이라는 건 나무가 자라는 것과 같다고 생각합니다. 나무가 자라려면 기둥이 있어야 하고 기둥에서 뻗어 나온 가지에서 잎이 돋아나야 하죠. 잎사귀 하나가 너무 멋져 보인다고 그것을 먼저 만들어 놓고 나무의 몸통과 이으려고 하면, 가지가 괴상한 모양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구성에 대한 고민은 마지막 장면이 정해질 때까지 계속되어야 합니다. 저는 엔딩이 떠오르면 한 가지 질문을 합니다. ‘내가 처음에 쓰고자 했던 주제와 맞아떨어지는지’ 확인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제 작품의 마지막은 늘 정해져 있었습니다. 『퇴마록 말세편』은 10년 전부터 생각했던 엔딩이었고 『치우천왕기』 바이퍼케이션 하이드라』 『왜란 종결자』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작품 중간의 세세한 내용은 미리 정해놓지 않더라도 결말만큼은 결정해 놓아야 한다며, 작가는 ‘시놉시스에 얽매이지 말라’고 덧붙였다. 자칫 시놉시스의 내용에 고착되어 버릴 수 있기 때문이다. 이미 정해놓은 사건들을 구구절절하게 ‘설명’하면서 시놉시스에 쫓기는 우를 범하지 말라는 이야기였다. 중요한 것은 ‘어떤’ 사건들이 일어났느냐가 아니라 ‘어떻게’ 그 사건들이 일어났느냐를 보여주는 것이기 때문이다.

 

“캐릭터의 특징은 비슷한 면에서 찾으려고 하지 말고 다른 면에서 찾아내야 합니다. 보편적인 부분을 집어넣고 그것이 개성이라고 우기면 안 되겠죠. 인물의 성격은 설명하는 것이 아니라 행동으로 보여줘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주변 사람의 성격을 파악할 때도, 작지만 타인과는 다른 행동들이 단서가 되죠. 작품 속의 캐릭터도 마찬가지입니다. 만약 그 방법에 대해 물어보신다면 저는 희곡을 읽으시라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희곡을 제대로 연구하면 캐릭터가 보입니다. 캐릭터는 행동과 선택으로 보여줘야 합니다. 그러려면 자신이 연기를 한다는 생각으로 다른 시각을 가지고 바라봐야 하고요.”

 

이우혁 작가가 전하는 ‘캐릭터를 만드는 비법’은 자신을 인물에 대입해 보는 것이다. 이는 반대의 경우에도 적용된다. 전자가 ‘이 상황에서 내가 이 인물이라면 어떻게 할까’를 고민하는 것이라면 후자는 ‘내가 아닌 사람이라면 어떻게 할까’를 생각해 보는 것이다. 실제로 『퇴마록』의 등장인물에는 이우혁 작가의 조각들이 투영되어 있다. 작가가 가진 용기와 결단력을 확장시키자 ‘현암’이 되었고, 차분하고 온화한 성격을 극대화시키자 ‘박 신부’가 탄생했다. ‘준후’는 이우혁 작가가 자신의 재기발랄함을 크게 키워 만들어낸 인물이다.

 

문체는 캐릭터의 행동이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질 수 있도록 도와주어야 한다. 이우혁 작가가 ‘가독성이 좋은’ 문체를 추구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가독성이 좋은 문체라는 건 빠르고 쉽게 읽히는 문체를 의미합니다. 그렇지만 쉬운 단어를 쓴다고 해서 쉬운 글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어려운 단어를 쓰더라도 그것이 어렵지 않게 느껴지도록 해야 하죠. 때로는 작가가 쓴 표현이 캐릭터와 독자를 방해하기도 합니다. 자신은 멋있는 표현이 생각나서 쓴 것이지만 독자에게는 그렇지 않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긴 대화를 쓸 때에도 누가 한 말인지 일일이 설명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대화가 길어지더라도 독자가 누구의 말인지 알아차릴 수 있도록 써야 하죠.”

 

이우혁 작가는 ‘무엇보다 작가에게 중요한 것은 경험과 마음가짐’이라는 말로 강연을 마무리했다. 자신이 직접 경험할 수 없는 것은 책을 통해서 얻으라는 조언과 함께 소설뿐만 아니라 다양한 장르, 특히 희곡을 눈여겨보라는 당부도 잊지 않았다. 그리고 “제대로 평가하고 자신의 소설을 쓰라”고 힘주어 말했다. 필요한 것과 필요하지 않은 것, 해야 할 것과 하지 말아야 할 것에 대한 자기 나름의 방향을 정하고 지켜나가야 한다는 이야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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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란 종결자 세트이우혁 저 | 엘릭시르
퇴마록』, 『치우천왕기』와 함께 ‘이우혁 한국 판타지 3부작’을 완성하는 대표작 『왜란 종결자』가 엘릭시르에서 출간되었다. 처음 출간된 후로 18년 만이다. 이번 판본에는 이우혁 판타지 세계관의 핵심이자 3부작을 하나로 묶는 새로운 결말이 준비되어 있는데, 마지막에 실린 특별 단편 「유계 정벌기」를 통해 세상의 시작과 끝, 세계관의 비밀을 밝힐 단서를 제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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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ㆍ사진 | 임나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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