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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냄새를 보는 소녀>, 스릴러와 로맨스 어울릴까

SBS 〈냄새를 보는 소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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톡톡 튀는 로맨스는 물론이거니와, 동생 대신 목숨을 구한 소녀와 사랑에 빠진 무감한 남자라는 설정은 그 자체로 신선하고 매혹적이다. 무감각과 초감각, 감각에 대한 대비로 주인공의 인연을 설명하는 데 이르면 더더욱 흥미롭다. <냄새를 보는 소녀>가 스릴러와 로맨스, 두 가지 토끼를 모두 잡을 수 있을지 궁금한 것은 그래서다.

병실 한 가운데 누워있던 소녀가 눈을 뜬다. 193일간 혼수상태였던 소녀가 기적적으로 의식을 찾는 장면, 뭔가 이상하다. 한 쪽 눈은 예전과 달리 녹색으로 빛나고, 소녀의 시야에는 온갖 빛깔로 반짝이는 입자들이 날아든다. 기이한 광경에 몸을 떠는 소녀, 오초림(신세경). 빛나는 향기 입자들이 허공을 가득 메우는 단 한 장면으로 시청자들은 SBS <냄새를 보는 소녀>가 공상적 상상력에 기반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차린다. 냄새를 볼 수 있는 소녀라니, 다분히 환상적인 설정이거니와 냄새 입자의 바탕이 되는 물건이 온갖 색깔로 허공에 동동 떠다니는 모습은 그야말로 만화적 상상력이 가득한 연출이니까.
 
드라마가 만화 <냄새를 보는 소녀>를 원작으로 한다는 사실은 그래서 놀랍지 않다. 원작 <냄새를 보는 소녀>는 인터넷에서 연재 중인 웹툰으로, 역시 냄새를 보는 소녀를 중심으로 벌어지는 갖가지 사건들을 다루고 있다. 얼핏 원작과 드라마는 비슷한 길을 걷는 것처럼 보인다. 로맨스와 스릴러를 섞은 복합 장르라는 점, 남자 주인공이 경찰이라는 점은 양쪽 모두에서 찾아볼 수 있는 설정이다. 여자 주인공은 부모님의 사망 사고로 냄새를 볼 수 있는 능력을 얻었고, 그 사고가 누군가가 인위적으로 만들어낸 인재(人災)라는 것도. 하지만 공통점은 여기까지다. ‘냄새를 볼 수 있다’는 설정을 들고 드라마는 원작과는 다른 방향으로 나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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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_ SBS


  가장 눈에 띄는 것은 남녀 주인공의 관계다. 원작의 남자 주인공 김평안은 형사였던 아버지가 죽은 이후 경찰이 되기로 결심했다. 그는 영화관에서 우연히 새아의 옆자리에 앉았다가 화재 사건에 휘말리고, 그를 계기로 소녀와 함께 각종 사건을 해결해나가기 시작한다. 드라마는 인연의 시작을 조금 더 극적으로 편집한다. 연쇄 살인마의 범행 현장을 목격한 은설(신세경)은 도망치다 교통사고로 쓰러지고, 범인은 은설의 이름을 들고 병원으로 향한다. 같은 시각, 작은 버스 사고로 같은 병원에 입원한 동생을 찾는 무각(박유천). 하지만 무각의 동생은 은설과 동명이인으로, 이미 목격자를 혼동한 범인에 의해 목숨을 잃은 후다. 무각은 자신의 동생을 죽인 범인을 찾기 위해 경찰이 되고, 193일 동안 의식을 잃고 혼수상태에 빠졌던 은설은 간신히 의식을 되찾지만 과거의 기억을 잃고 오초림이라는 이름으로 새로운 삶을 살기 시작한다.
 
흥미로운 점은, 드라마 속 최무각이 통각상실증 환자라는 점이다. 통각뿐만 아니라 미각과 후각을 느끼지 못하기 때문에 생기는 해프닝은 초반부터 시청자들에게 강한 인상을 남긴다. 범인을 잡기 일보 직전 그대로 쓰러져 잠이 드는 장면이라거나, 뜨거운 커피를 숨도 안 쉬고 벌컥벌컥 들이키는 장면처럼. 특히 7회 말미 범인과의 대치는 긴장감을 불러일으킨다. 제 어깨에 부딪치고 사라지는 범인을 바라보던 무각은 시선을 내린다. 복부엔 칼이 꽂혀있고 무각은 뒤늦게 범인이 자신을 찌르고 갔음을 깨닫고 쓰러진다. 절로 손에 땀을 쥐게 하는 전개다.
 
물론 무각의 통각상실증이 단지 극적 재미를 돋우기 위한 장치로서만 작동하는 것은 아니다. 드라마의 가제가 <감각남녀>였음을 감안하면, 드라마가 감각에 대한 명제에서 이야기를 시작할 것임을 알 수 있다. 원작과 달리 드라마는 초림의 후각에 대해 부연하지 않는데, 대신 통각을 잃은 남자 최무각을 초림의 대척점에 둠으로써 균형을 맞춘다. 감각을 잃은 남자는 냄새를 볼 수 있는 소녀를 만나 자신의 목표에 한 걸음씩 가까워지는 것은 물론이고, 동생의 죽음 이후 자신이 무엇을 잃었는지 복기할 기회를 얻는다.
 
무각이 감각을 잃은 것이 동생의 사망 이후라는 점은 의미심장하다. 초반부, 무각은 동생에 대한 애정을 숨김없이 드러내고 드라마는 그에게 동생 은설이 어떤 존재였는지 공들여 묘사한다. 무각이 동생의 죽음 이후 감정은 물론이거니와 감각까지 잃은 것에 대한 당위성을 주기 위해서다. 감정과 감각은 엄연히 다른 범주에 존재하는 감상이지만, 무각은 동생의 사망 이후 둘 모두를 잃는다. 적어도 무각의 세상에서 감정과 감각은 같은 선에 존재하는 셈이다. 이후 어떤 즐거움도 느끼지 못하고 살아온 무각은 초림을 만나 웃고 울며 천천히 희노애락을 되찾아간다. 그저 자신을 도와줄 뿐이라고 생각했던 초림을 눈여겨보고 수사에 휘말려 다치지 않을까 걱정하며 무각은 점차 초림에 대한 감정을 키워간다. “범인 추격이 얼마나 위험한 일인지 너 알아? 너 진짜 정신이 있는 거야 없는 거야? 니 말대로라면 그 놈 살인범이라면서. 그런데 너 혼자 쫓아들어갔단 말이야? 너 제정신이야?” 거칠게 화내는 말에는 초림에 대한 애정이 묻어나고, 돌아가는 그녀를 잡아 약을 손에 쥐어주기도 한다. 하지만 쫓아 달려온 목표가 워낙 멀고, 앞에 놓인 사건이 무거운 탓에 무각은 자신의 변화에 대해 깨닫지 못한다.
 
무감한 그를 위해 드라마는 결정적 변화를 준비한다. 감각의 복원이다. 초림과 애틋한 입맞춤을 나누고 난 후, 무각은 불현듯 찾아오는 아픔에 배를 감싸쥔다. 감정조차 잊고 오로지 한 가지 목표만을 향해 달려온 제게 오랜만에 찾아온 통각에 무각은 얼떨떨하다. 하지만 놀라운 일은 아니다. 동생을 잃은 이후 모든 인간적 감정을 잃은 것처럼 살았지만, 초림은 무각에게 그 모든 인간적 감정을 되살리는 존재가 됐으니까. 후각은커녕 미각이나 통각도 느끼지 못하는 무감각한 남자가 초(超)감각을 가진 소녀 초림을 만나 자신의 인생을 찾아갈 것임을 암시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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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_ SBS

 

<냄새를 보는 소녀>는 다양한 사건을 전면에 내세워 장르적 재미를 추구한다. 사실 사이코패스 권재희(남궁민)가 지휘하는 바코드 연쇄 살인사건을 제외하면 여타 사건들은 짜임새도 엉성하거니와 오로지 무각의 추리에 의존해 해결되길 반복한다. 초림이 냄새를 볼 수 있다고 해도 한 가지 냄새만으로 개연성 없이 툭 튀어나오는 무각의 추리는 허술하기 그지없다. 원작 웹툰이 그렇듯이 치밀하게 짜인 사건과 추리, 기묘하고 음울한 분위기를 기대했던 팬들에겐 아쉬운 일일 터다. 하나 드라마는 자신만의 매력을 자랑한다. 톡톡 튀는 로맨스는 물론이거니와, 동생 대신 목숨을 구한 소녀와 사랑에 빠진 무감한 남자라는 설정은 그 자체로 신선하고 매혹적이다. 무감각과 초감각, 감각에 대한 대비로 주인공의 인연을 설명하는 데 이르면 더더욱 흥미롭다. <냄새를 보는 소녀>가 스릴러와 로맨스, 두 가지 토끼를 모두 잡을 수 있을지 궁금한 것은 그래서다. 과연 드라마는 오초림과 최무각을 통해 스릴러와 로맨스를 모두 잡을 수 있을까? 복합 장르의 또 다른 훌륭한 예가 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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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김지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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