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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다툼도 제대로 해야 한다

자꾸만 곁길로 새는 가족 간의 다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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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크라이나 속담에 이런 말이 있다. “사랑은 다툼을 달고 다닌다.” 연인들을 보면 처음으로 입을 맞춘 때만 아니라 처음으로 말다툼을 벌인 때도 기억하는 경우가 많다. 어떻게 보면 인간관계는 갈등이 터지고 봉합되면서 친밀감이 한 차원 더 깊어진다고 할 수 있다. 특히 가족 관계가 그렇다.

사랑은 다툼을 달고 다닌다

 

우크라이나 속담에 이런 말이 있다. “사랑은 다툼을 달고 다닌다.” 연인들을 보면 처음으로 입을 맞춘 때만 아니라 처음으로 말다툼을 벌인 때도 기억하는 경우가 많다. 어떻게 보면 인간관계는 갈등이 터지고 봉합되면서 친밀감이 한 차원 더 깊어진다고 할 수 있다. 특히 가족 관계가 그렇다.


어느 가정이나 살다 보면 크고 작은 설전이 벌어지게 마련이다. 어떤 문제가 있으면 많은 사람이 그것을 해결하기 위해 용감히 ‘커뮤니케이션’을 시도한다. 다시 말해 문제에 관해 말한다. 하지만 때로는 말하는 방식이 걸림돌이 되어 문제가 해결되기는커녕 오히려 분쟁이 더 심각해진다. 또 대화를 통해 해법을 찾으려다 보면 싸움이 더 커지거나, 아예 곁길로 새서 왜 말을 그딴 식으로 하느냐며 옥신각신하는 사태가 빚어지기 일쑤다.

 

집안의 소크라테스

 

예를 들어 어느 부부의 실제 대화에서는 남편이 부인의 말에 이렇게 반박했다. “어휴, 거참, 한심하네!” 그리고 덧붙였다. “당신이 무슨 뜻으로 그런 말 하는지 모르겠어.” 거기다 대고 부인이 자기 말이 무슨 뜻인지 설명해주지 않은 것은 물론 전혀 놀랄 일이 아니다. 부인은 이렇게 대꾸했다. “그걸 꼭 한심하다고 해야겠어!”


문제의 대화는 커뮤니케이션 전문가 프랭크 밀러, L. 에드너 로저스, 재닛 비빈 배벌러스가 녹음하고 분석한 상담 중에 일어났다. 표면적으로는 남편이 ‘혼자 있는 시간’을 좋아하느냐가 논점이지만 남편과 부인의 말하는 방식 때문에 대화가 삼천포로 빠진다. 그중 백미는 부인이 구사하는 나름의 ‘소크라테스식 문답법’이다.


철학자 재니스 몰튼에 의하면 소크라테스식 문답법은 흔히 “상대방으로 하여금 자기 생각이 틀렸음을 인정하고 ‘수치’ 혹은 ‘겸손’으로 번역되는 감정을 느끼도록 유도하는 토론술”로 통한다. 내 생각에 소크라테스식 문답법은 상대방이 나의 말에 차례차례 동의하게 함으로써 결국 자신의 생각이 틀렸음을 인정하도록, 그래서 내 결론에 동의하도록 유도하는 변론술이다.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 소크라테스가 일련의 질문을 던져서 상대방의 답들을 통해 그 사람의 무지 혹은 모순된 신념을 밝혀낸 것과 비슷한 수법이다.


이 사례에서 문제의 발단은 “혼자 있는 게 좋아?”라는 부인의 물음이다. 그렇게 묻는 이유가 무엇인지는 우리가 확실히 알 수 없고 남편도 그런 것 같다. 소크라테스식 문답법을 이용해 부인은 남편이 차례차례 질문에 대답하게 함으로써 그녀의 견해를 뒷받침할 결론으로 유도하려 한다. 이렇게 나오는 사람과 논쟁하고 있으면 가슴이 콱콱 막힌다. 내 대답이 어디로 이어질지 모르니 마치 눈가리개를 하고 골목길로 끌려가는 심정이 된다. 그래서 당연히 많은 사람이 그런 질문에 답하기를 거부한다. 이 예시의 남편도 마찬가지다. 그는 대답 대신 아내를 비꼬고 비웃고 모욕한다. 그래서야 긍정적인 결과를 낼 확률이 낮기는 소크라테스식 문답법이나 매한가지다.


언쟁의 시작은 부인의 “혼자 있는 시간이 좋아?”라는 질문이다.


남편이 대답한다. “아, 그럼, 좋지. 난 혼자 살아도 될 것 같아. 평생 아무도 안 만나도 행복할 거야. 그러면―”


부인은 그의 대답을 받아들이지 않고 묻는다. “경마장에 못 가거나 계산기를 못 쓰게 돼도?”


필시 그녀의 질문이 얼마나 말도 안 되는 소리인지 보여줄 심산으로 남편이 대답한다. “아, 그러니까 감방 같은 데 처박혀 있으면 어쩔 거냐는 말씀이지?”


비꼬는 말이 나오자 역시 감정이 격해진다. 부인은 똑같은 질문을 되풀이한다. “아니, 아니, 아니. 경마장에 가고 싶어도 갈 수가 없고 계산기도 망가지면 어쩔 거냐고?”


그래도 남편은 질문에 답을 안 한다. 그는 다시 한 번 질문을 비웃은 후 타당한 질문을 던진다. “근데 내가 왜 그렇게 제약을 받아야 하는 건데?” 이 질문이 내게는 소크라테스식 문답법에 응하지 않겠다는 선언으로 들린다. 그는 아내가 그런 질문들로 자신을 어디로 끌고 갈 속셈인지 알고 싶어 한다.


부인이 답한다. “그냥 궁금해서 그래.” 딱 봐도 솔직하지 않은 대답이다.


이 시점에서 남편이 부인에게 도대체 그런 질문을 던지는 의도가 무엇인지 알려달라고 강력하게 요구하거나 자신은 답하고 싶지 않다는 뜻을 직접적으로 밝혔으면 좋았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똑같이 말도 안 되는 상황을 제시하며 그녀의 질문을 비웃는다. “그러는 당신은 책을 못 읽는다면 혼자 있는 게 좋겠어?” 그러고 나서 우리가 앞에서 본 대사를 읊는다. “어휴, 거참, 한심하네!”


남편과 부인이 쓰는 수법 때문에 대화가 엉뚱한 국면으로 접어들고 말았다. 이제 이들은 부인이 남편에게 혼자 있는 것이 좋은지 물었을 때 무슨 의도였는지를 따지는 것이 아니라 그 질문의 논리를 따지고 있다. 남편의 답답한 심정이야 충분히 이해가 가지만 그래도 그가 “그런 질문을 하는 의도가 뭐야?”라고 직접적으로 물으면서 메타커뮤니케이션을 했다면 더 소득이 있었을 것 같다. 하지만 그는 부인과 마찬가지로 딱히 답을 알고 싶지 않은 질문을 던지고는 답을 기다리지도 않고 모욕적인 말을 내뱉었다


모욕적인 언사가 나오는 바람에 말다툼은 한층 격렬해지고 당연히 그 초점은 문제의 모욕적 발언에 맞춰진다.


“그걸 꼭 한심하다고 해야겠어!” 부인이 발끈한다.


남편은 웃으면서 대꾸한다. “아, 그래…… 뭐, 그냥 당신 속 뒤집어 놓고 싶어서 그랬지.”


“허이구, 속이야 진작에 뒤집어 놓으셨지.”


“뭐?”


“나 아까부터 엄청 열 받아 있어.”


“열 받긴 뭘 받아.” 남편이 반박한다.


“진짜야.”


“아니야. 그냥 그런 척하시는 거지.”


이제 두 사람은 마치 펜싱 선수들이 상대의 공격을 쳐내듯이 상대의 말을 모조리 반박한다. 꼭 어린애들이 기 싸움을 벌이는 것 같다. “진짜야!” “아니야!” “진짜야!” “아니야!”


남편에게 혼자 있는 시간이 좋냐고 물었을 때 부인이 무슨 의도였는지는 두 사람이 직접 거론하지 않았기 때문에 끝내 알 수가 없다. 소크라테스식 문답법은 부인에게 아무 도움이 안 됐다. 혹시 그녀가 노리는 목표가 무엇인지 대놓고 말했다면 두 사람 모두에게 더 좋았을지도 모른다.


부인이 그런 가상의 상황을 제시했을 때 무슨 생각이었을지 하나 짐작이 가는 구석이 있긴 하다. 그것은 친밀감과 거리감 사이의 연속선에서 그녀의 위치를 위협하는 메타메시지와 관련이 있다. 남편이 혼자서도 행복하게 살 수 있다고 했을 때 아마 부인은 그 말이 자기를 거부하는 뜻으로, 자기가 없어도 얼마든지 행복하게 살 수 있다는 뜻으로 들렸을 것이다. 배우자로서는 충격적인 말이다. 경마장에 못 가거나 계산기를 쓸 수 없어도 혼자 있는 것이 좋겠냐고 물었을 때는 짐작건대 남편에게 그가 좋아하는 활동을 할 때는 혼자서도 행복할 수 있지만 모든 순간을 그런 활동만 하며 보낼 수는 없고 언젠가 할 일이 바닥나면 그녀가 그리워지리란 사실을 일깨워주려고 했을 것이다.

 

이런 핵심 쟁점들은 끝내 다뤄지지 않았다. 계속 상대의 말을 반박하기만 할 뿐 서로의 관점을 이해하려는 방향으로 대화가 이어지진 않았기 때문이다. 이를 통해 우리는 말다툼을 피하는 방법을 하나 알 수 있다. 소크라테스식 문답법을 안 쓰면 된다. 말하자면 순전히 상대방이 틀렸다는 것을 증명하고 수치심을 불러일으킬 요량으로 질문을 던져서는 안 된다. 그런 수법을 쓰면 논의가 논점에서 벗어나 곁길로 새게 된다.


그리고 상대방이 나와 말다툼을 벌이면서 소크라테스식 문답법을 쓰더라도 비웃거나 모욕하거나 비꼬지 말자. 그 대신 메타커뮤니케이션을 하자. 말인즉, 논점을 직접적으로 밝혀 달라고 강력하게 요구하자.

 

 

 

 

* 이 글은 『가족이니까 그렇게 말해도 되는 줄 알았다』의 일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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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이니까 그렇게 말해도 되는 줄 알았다데보라 태넌 저/김고명 역 | 예담
《가족이니까 그렇게 말해도 되는 줄 알았다》의 저자 데보라 태넌은 그동안 남녀 또는 가족 구성원의 대화 방식에 대한 흥미롭고 생생한 사례들을 연구해온 언어학자로, 어떻게 하면 가장 가까운 사람들 사이의 관계를 개선시킬 수 있는지 저자만의 특별한 방법들을 제시해왔다. 《가족이니까 그렇게 말해도 되는 줄 알았다》에서는 내 편인 줄 알았던 가족이 왜 적이 될 수밖에 없는지, 왜 싸우고 후회하는 일상을 반복하는지 보여주고, 더 이상 사랑이란 말로 상처를 주고받지 않는 법을 알려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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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데보라 태넌

작가

가족이니까 그렇게 말해도 되는 줄 알았다

<데보라 태넌> 저/<김고명> 역12,510원(10% + 5%)

가장 가까워서 더 어려운 가족의 대화법 《가족이니까 그렇게 말해도 되는 줄 알았다》의 저자 데보라 태넌은 그동안 남녀 또는 가족 구성원의 대화 방식에 대한 흥미롭고 생생한 사례들을 연구해온 언어학자로, 어떻게 하면 가장 가까운 사람들 사이의 관계를 개선시킬 수 있는지 저자만의 특별한 방법들을 제시해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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