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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부의 녹의홍상을 닮은 협죽도

성석제 『협죽도 그늘 아래』 협죽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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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석제 단편 『협죽도 그늘 아래』에서는 ‘한 여자가 앉아 있다. 가시리로 가는 길목, 협죽도 그늘 아래’라는 문장이 열 번 이상 나온다.

 

 


수많은 소설 작품이 현실을 반영하는 것처럼 우리 주변의 꽃과 식물이 소설에 등장하는 것은 어찌 보면 자연스러운 일이다. 
『문학이 사랑한 꽃들』은 독자들이 무심코 지나칠 수 있는 ‘소설 속에 등장하는 꽃’을 주목한다. 소설의 어떤 대목에서 야생화가 나오는지, 그 야생화가 어떤 맥락으로 쓰였는지 소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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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석제 단편 『협죽도 그늘 아래』에서는 ‘한 여자가 앉아 있다. 가시리로 가는 길목, 협죽도 그늘 아래’라는 문장이 열 번 이상 나온다.


여기서 한 여자는 결혼하자마자 6ㆍ25가 나서 학도병으로 입대한 남편을 기다리는 일흔 살 할머니다. 스무 살에 결혼했으니 오십 년째 남편을 기다리는 것이다.


대학생 남편은 전쟁이 나자 합방도 하지 못한 채 학도병으로 입대할 수밖에 없었다. 여자는 시댁 식구와 함께 전쟁을 겪었다. 피난길에 시아버지는 친정에 가 있으라고 했지만 여자는 피가 흘러내리도록 입술을 문 채 고개를 흔들었다.


전쟁은 끝났지만 남편은 돌아오지 않았다. 행방불명이라는 통보도 받았다. 하지만 여자는 여전히 남편을 기다렸다. 십 년쯤 지났을 때 여자의 오빠가 찾아와 “개명천지에 이 무슨 썩어 빠진 양반 놀음이냐”고 소리를 질렀지만 누이를 데려가지는 못했다. 그렇게 오십 년을 기다린 여자가, 그의 칠순 잔치에 찾아온 친척들을 ‘가시리로 가는 길목’에서 배웅한 다음, 치잣빛 저고리와 보랏빛 치마를 곱게 차려입고 남편을 기다리는 것이다.


여자는 남편과 신행(新行) 며칠을 함께 보냈을 뿐이다. 명확한 신체 접촉은 신랑이 입대하는 날, 우는 여자의 얼굴을 어루만지며 눈물을 닦아준 것밖에 나오지 않는다. 칠순 잔치에 온 환갑 넘은 질부는 여자에게 농을 던졌다.


“새점마, 우리가 다 궁금해하는 게 있수. 혹 새점마 처녀 아니우?”


여자가 뭐라고 대답했는지 나오지 않는다. 일부종사(一夫從事)라는 전근대적인 관습으로, 6?25라는 민족적 비극으로 설명하기에는 너무 애잔하다. 소설은 ‘여자는 자신을 위해 일생을 바쳤다’고 표현했다.


강한 독성 알려져 수난 당하는 협죽도


협죽도(夾竹桃)라는 꽃이 나오는 것으로 보아 할머니가 사는 가시리는 남부지방 어느 곳이다. 협죽도는 노지에서는 제주도와 남해안 일대에서만 자라는 나무이기 때문이다.


소설에 나오는 ‘가시리’는 제주도 서귀포시 표선면에 실제로 있는 지명이다. 그러나 소설에서 여자의 친정인 몽탄(전남 무안에 있는 면)에서 ‘백리 길을 걸어’ 가시리에 도착했다는 대목이 있는 것으로 보아 가시리는 제주도에 있지 않는, 상징적인 마을인 것 같다.


협죽도는 댓잎 같은 생긴 잎, 복사꽃 같은 붉은 꽃을 가졌다고 이 같은 이름을 얻었다. 잎이 버드나무 잎 같다고 유도화(柳桃花)라고도 부른다. 꽃은 7~8월 한여름에 주로 붉은색으로 피고, 녹색 잎은 세 개씩 돌려나고 가장자리가 밋밋하다. 이처럼 협죽도의 꽃과 잎은 신부들이 흔히 입는 한복, 녹의홍상(綠衣紅裳) 그대로다. 할머니는 잠시나마 남편과 함께한 신부 시절을 그리워하며 협죽도 그늘 아래 앉아 있었을 것이다.


협죽도는 비교적 아무 데서나 잘 자라는 편이고 공해에도 매우 강하다. 꽃도 오래가기 때문에 제주도나 남부지방에서는 가로수로 쓸 만한 나무다. 베트남 등 아열대지역이나 제주도에 가면 가로수로 길게 심어놓은 것을 볼 수 있다.
그런데 이 협죽도가 강한 독성을 갖고 있는 것이 알려지면서 최근 수난을 당하고 있다. 이 나무에 청산가리의 6000배에 달한다는 ‘라신’이라는 맹독 성분이 들어 있어서 치명적이라는 것이다. 부산시는 2013년 부산시청 주변에 있는 이백여 그루 등 협죽도 천여 그루를 제거했다. 제주도에서도 많이 베어내 눈에 띄게 줄었다.


‘우리시대 최고의 이야기꾼’이 진지하게 접근한 소설


협죽도에 유독 성분이 들어 있는 것은 맞다. 그러나 베어내야 할 정도로 위험한지에 대해서는 전문가들은 대체로 부정적이다. 상당수 식물학자들은 “독성 때문이라면 베어낼 나무가 한둘이 아니고, 일부러 먹지 않으면 위험하지 않은데 굳이 제거하는 것은 코미디 같은 일”이라는 의견을 보이고 있다.

 

성석제(1960년생)는 경북 상주 출신으로 연세대 법학과를 졸업했다. 그에게는 늘 ‘우리 시대 최고의 이야기꾼’, ‘입담의 달인’이라는 수식어가 따라붙는다. 평론가 우찬제는 그를 “거짓과 참, 상상과 실제, 농담과 진담, 과거와 현재 사이의 경계선을 미묘하게 넘나드는 개성적인 이야기꾼”이라 했다. 실제로 그의 글을 읽다 보면 이게 진담일까, 농담일까 헷갈리는 대목이 적지 않다. 대표작으로는 이 소설이 담긴 소설집 『홀림』, 『황만근은 이렇게 말했다』, 『위풍당당』, 『단 한 번의 연애』 등이 있다. 주로 힘없는 소시민이나 건달, 노름꾼 등 비주류 인생을 특유의 입담으로 풀어내는데, 『협죽도 그늘 아래』에서는 진지하게 한 할머니의 인생을 파고들었다.

 

 

 

 

 

협죽도 그늘 아래

성석제 저/전승희 역 | 아시아

성석제의 「협죽도 그늘 아래」는 현대판 소설 ‘망부석(望夫石)’이라 할 만하다. 이 소설에서 남편을 기다리고 그리워한 ‘한 여자’의 사연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여자는 스물에 대학생인 신랑과 결혼했다. 결혼하고 일 년 만에 전쟁이 났고 남편은 학병입대 지원을 했다. 남편은 유엔군 군속 통역으로 전장에 있었고 여자는 시댁식구와 함께 전쟁을 겪었다. 전쟁은 끝났고 남편은 돌아오지 않았다. 그렇게 오십 년을 기다린 여자가, 칠순 잔치를 맞아 찾아온 친척들을 배웅하러 마을 길목에 나와서 ‘스무 살 신부의 모습’으로 협죽도 그늘 아래 앉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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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이 사랑한 꽃들 : 33편의 한국문학 속 야생화이야기김민철 저 | 샘터
김연수 [벚꽃 새해], 정은궐 《해를 품은 달》, 김애란의 《두근두근 내 인생》 등의 최근 소설에서부터 1980년대부터 꾸준히 사랑받고 있는 작가(양귀자, 조정래, 박완서, 성석제 등)의 소설까지 33편의 한국소설을 150여 점의 사진과 함께 야생화를 중심으로 들여다보았다. 소설의 어떤 대목에서 야생화가 나오는지, 그 야생화가 어떤 맥락으로 쓰였는지 소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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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김민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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