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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창원 “범죄자로 태어나는 사람은 없어”

표창원 『왜 나는 범죄를 공부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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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에게 공부는 현재진행형이다. 인생 2막, 새로운 꿈을 꾼다. ‘표창원범죄과학연구소’를 통해 범죄에 대한 다양한 접근을 시도하고자 한다. 두려움은 없다. 원칙대로, 행복하게, 계속 자신의 길을 걸어갈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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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카로운 눈매가, 꽉 다문 입술이, 그가 해온 ‘공부’를 말해주는 것 같았다. ‘범죄 전문가’라는 수식으로 잘 알려진 표창원. 경찰대 학생으로, 일선 형사로, 경찰학 박사에서 경찰대학 교수로 걸어온 그의 뚝심 있는 발자국은 지금 그의 인생 2막에 든든한 자산이 되었다. 인생을 결정할 중요한 선택들 앞에서 스스로 옳다고 믿는 것을 택할 수 있었던 것은 삶을 공부하며 얻은 지표들 덕분이었다. 권위에 복종하지 않고, ‘왜’라는 질문을 던져보고, 목적지만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과정을 살피는 것 모두 표창원의 중요한 지표다.

 

“우리는 왜 살까요? 우리가 사는 근본적인 이유는 삶의 연결이라고 생각해요. 살아내는 거죠. 우리 시대 한계 내에서 할 수 있는 것들을 하면서 말이에요. 그 후 다음 세대에 바통을 이어주는 것, 그게 우리의 역할이라고 봐요. 끝에 뭐가 있느냐? 우린 모르죠. 하지만 우리가 꿈꾸는 이데아라고 하는 낙원, 존 레논이 ‘imagine’에서 얘기했던 종교도 없고, 전쟁도 없는, 그런 세상이 올지 어떻게 알아요?”

 

역설적이게도, ‘사람에 대한 관심’과 ‘희망’이었다. 표창원은 범죄를 공부하고 범죄자들을 만나면서 결국 인간은 모두 같다, 미세한 방향 차이가 범죄를 촉발시킨다, 때문에 범죄는 얼마든지 예방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 그렇기 때문에 그는 안타깝다. 범죄자로 태어나는 사람은 없다. 그를 둘러싼 환경을 조금만 변화시켜줬다면, 자신이 살면서 만난 좋은 사람들이 그의 곁에도 있었다면, 사회가 조금만 더 관심과 애정을 주었다면, 하는 아쉬움이 늘 남는다.


자신의 역할을 늘 깊이 고민하는 표창원의 공부는 현재진행형이다. 셜록홈스를 꿈꾸던 표창원이 만드는 새로운 문화가 기대된다.

 

스스로 하고 싶어서 하는 공부


‘표창원 인생 1막 자서전’ 같습니다. 어떻게 책을 쓰시게 되었나요?  


출판사로부터 먼저 제안을 받았죠. ‘공부’라는 것의 의미가 최근 많이 퇴색되었잖아요. 주로 진학, 취업 같은 기술적인 부분에 집중되어 있어요. 각 분야에서 나름대로 자신의 세계를 이룬 사람들이 진솔하게 자신이 어떻게 살아왔고, 어떻게 공부했는지 이야기해주면 도움이 될 거라는 출판사의 기획을 듣고 취지가 정말 좋다고 생각했어요.


누구나 그렇겠지만 한쪽에는 자신의 이야기를 미화하고 싶은 욕심이 있었고, 다른 쪽으로는 있는 그대로 다 드러내 보이면 오히려 도움이 아니라 다른 것들을 주게 되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이 크게 있었죠. 모든 사람들의 삶이라는 게 겉으로 보이는 것과 달리 다 아픔도 있고, 어둠도 있고, 잘못도 있고 그럴 수 있잖아요? 어쨌든 여기까지 왔으니까 그 과정을 솔직하게 보여드리는 게 예의다 싶어서 하게 됐습니다.

 

제목이 말하듯이 ‘배움과 깨달음의 쾌감’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하셨습니다. 독자에게 어떤 이야기를 전하고 싶었는지 궁금합니다.


전체 내용을 통해 드리고 싶었던 말씀은, 공부라는 것은 정말 사람의 삶에 있어 중요하다는 것이었어요. 그것을 쉽게 표현하기가 어렵잖아요. 다들 그냥 ‘공부해’라는 말만 듣다 보니까요. 저도 그랬고요. 공부라는 것에 반감이 심해요. 또 책의 트렌드가 자기계발이라는 영역 내에서 뭔가 남보다 앞서고, 성공하고 이런 기술적인 의미에서의 공부법들을 많이 내놓다 보니 공부의 진정한 의미가 퇴색되어 왔다는 아쉬움이 있었죠. 공부라는 것을 왜 해야 하는지에 대해 한 번 같이 나눠보고 싶었어요. 제가 공부의 필요성을 깨닫게 된 과정은 짧게 설명드릴 수가 없는 거예요. 삶 전체에 걸쳐 깨달았으니까요. 공부와의 갈등, 도피도 있었고요, 필요에 의해서 하기도 했고, 그러다 정말 뒤늦게 알고 싶은 것을 알아나가는 과정의 기쁨을 찾았어요. 이렇게 찾은 공부의 재미를 전달해드리고 싶었죠.


가능만 하다면 내 안에서 공부하고 싶다, 알고 싶다, 라는 욕구와 열망, 갈증, 호기심 이런 것들이 생기기 전까지는 공부를 확 놓아버리고 노는 것도 참 좋은 방법이라는 생각을 전하고 싶었어요. 특히 부모님들에게요. 저도 많이 아쉬운 부분이거든요. 청소년기 때는 특히나 공부하기 싫을 때가 많잖아요. 그냥 놀고 싶은데 초조감 때문에 혹은 감시당하고 강요당하다 보니까 놀지도 못하고, 공부를 하는 것도 아니고, 눈 속이는 상태로 책상에 앉아있는 시간들이 너무 많단 말이죠. 그런 것들을 다른 후배, 젊은이들은 겪지 않았으면 싶었어요. 본인이 자발적으로 하고 싶어서 하는 공부를 좀 찾아주고 싶고, 그게 안 될 때는 차라리 노는 게 낫다는 걸 말하고 싶었죠. 놀고, 뛰어다니고, 건강하고, 즐거움이라도 찾고, 정신이라도 맑게 하고요. 이 두 가지 메시지를 드리고 싶었어요.

 

이런 말씀을 하시는 데에는 어렸을 때 마음껏 뛰어놀며 탐정 놀이하던 경험이 스스로에게 무척 소중하기 때문인 것 같아요. 더불어 자녀 이야기도 하셨는데 학부모로서도 스스로 동기부여가 되지 않으면 억지로 하는 공부는 의미가 없다고 느끼셨던 거죠?


저는 대한민국이 참 이상한 나라라고 생각하거든요. 특히 두 아이를 키우면서는 이런 이상한 나라에 적응하고, 자기 자리를 찾도록 해주는 게 부모의 도리 아닌가 하는 의무감과 강박관념, 그로 인해 생기는 불안감이 당연히 있었죠. 그런 마음을 이기고 떨쳐내기 위해서 많은 노력을 했어요. 고민도 많이 하고 저를 돌아보기도 하고요. 쉽게 말하면 싸움이었죠. 그 결과 제 아이들에게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한 것은 ‘행복’이었어요. 제 나이 또래에 얻을 수 있는 걸 얻게 해주고 싶다는 마음이요. 그러다보면 제가 그랬듯이, 자기들이 깨닫게 될 거라고 생각해요. 인간이란 존재가 그렇게 만들어졌으니까요. 스스로 알아서 나는 뭘 하지? 어떻게 살아야 하지? 지금 나에게 필요한 게 뭐지? 하는 것들을 생각할 수밖에 없게 되어 있거든요. 그게 남들보다 늦게 시작되더라도 훨씬 더 안전하고, 탄탄하고, 자기를 찾는 바람직한 방법이라는 확신을 가진 거죠. 그렇게 초조함과 불안감을 이겨냈어요.


아내와도 계속 이야기를 나눴어요. 당연히 저보다는 아내가 더 불안했죠. 아내가 친구들에게 가장 많이 들었던 이야기가 큰일 난다, 아이들 과외도 안 시키고 무슨 짓이냐, 왜 넋 놓고 있느냐 하는 말들이었어요. 이런 얘기를 계속 들으면 좀 불안해하다가도 서로 얘기 나누고 그래, 우리가 옳아, 이러면서 지켜내 왔던 거예요.

 

인내가 필요한 일이잖아요. 신념대로 산다는 게 쉽지 않은데, 유학시절 한국 여학생의 사과를 대신 받아준 일이나 경찰대학 시절 일들도 보면 그냥 넘어갈 수도 있을 것 같은 일들에 가장 적극적으로 개입합니다. 아는 것을 실천하기가 쉽지 않을 것 같은데 남다른 면이 있는 것 같습니다.


신념이 강하죠. 그리고 그것이 공부라고 생각해요. 제가 다른 친구들과 달랐던 가장 큰 것 중 하나가 그 부분이라고 생각해요. 초등학교 다닐 때 보면 조금이라도 가정에 여유가 있거나 하는 친구들은 거의 과외를 했어요. 저는 그렇지 않았거든요. 때문에 정답이라는 게 저한테는 없었어요. 누가 안 가르쳐줬고, 모든 걸 다 제가 체득해야 했죠. 책에서 읽은 것도 많았고요. 특히 세 살 위의 형이 있어서 형을 보고 나도 저렇게 해봐야지, 했던 것들이 다였죠. 사실 사회가 정해준 정답이라는 게 있잖아요. 가만히 있어라, 시키는 대로 해라, 권위를 따라라, 지시를 이행해라, 이렇게 정해진 답이 있는데요. 저는 어렸을 때부터 누군가가 정답을 정해주면 따라가는 삶이 아니었고, 그러다보니까 남과는 다르고 이상한 절차들을 거치기도 했죠. 그렇지만 그 자체가 저한테는 어떤 상황에서도 살아남을 수 있는 적응력과 자생력을 키워준 것 같아요. 경찰대학 학생이라 하더라도 그보다 더 중요하고 기본적인 건 대학생이라는 것, 대학생보다 중요한 건 대한민국 국민이라는 것,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인류라는 것, 이런 기본적인 인식에서부터 나는 무엇을 해야 할 것인가로 접근했어요.

 

그런 생각이 갑자기 생기진 않았을 것 같은데 어디서 그런 것이 시작된 것 같으세요?


초등학교였던 것 같아요. 초등학교라는 나만의 사회에 들어갔죠. 부모님의 틀을 벗어난 또래 아이들과 학교, 선생님이라는 사회로 말이에요. 그것에 부딪치기 시작했어요. 저는 처음부터 규칙, 권위, 이런 것에 순응하고 들어가지 않았고 자꾸 질문을 했어요. ‘왜?’ 라는 질문이요. 선생님들이 무척 귀찮아하셨죠. 저도 그렇지만 의례적으로 선생님들이 ‘자, 질문 있으세요?’라고 묻잖아요. 다들 가만히 있거든요. 의례적인 말로 받아들이고 그냥 시키는 대로 따라하죠. 그런데 저는 질문을 해야 한다는 마음을 가졌어요. 예를 들어 이름표를 차야 한다는 말에 ‘왜 이름표를 차야 하죠?’물어요. 선생님은 당황하시죠. 그런 질문을 받아본 적이 없으니까요. 그렇게 하면 사실 좋은 보상이 오진 않잖아요. 다들 잘 따라 하는데 너만 왜 말도 안 되는 엉뚱한 질문을 하냐고 하는 식의 반응이 대부분이고요. 그렇지만 그치지 않았어요. 궁금한 건 물어야 했고, 이런 데서 내려오는 원칙, 규칙이 저에게 단단히 만들어져 있지는 않았으니까요.

 

반항하던 어린시절


꽤 다루기 어려운 아이였습니다. 반골기질도 눈에 띄고요. 어떤 순간에도 그대로 받아들이는 법 없이 반드시 “꼭 이렇게 해야 하나?(112쪽)” 생각합니다. 지금, 부모의 입장에서 어린 시절의 나를 바라본다면 어떨 것 같으세요?


제 아이 둘 중 큰 아이가 저와 비슷해요. 딸인데요. 좀 충동적이기도 하고, 도전적이기도 하고, 의문도 많이 제기하고, 호기심도 많고, 뭐든지 직접 해봐야 하고, 그래서 사고도 좀 치고 그래요. 둘째, 아들은 정 반대예요. 안정을 추구하고, 순응적이에요. 그래서 두 아이를 보면서 제 어렸을 때 모습을 상기하게 돼요. 제 아들이 이해 못하겠다는 그런 친구들이 있거든요. 그때 제 모습이 딱 떠오르는 거예요. 소름이 끼치기도 해요.(웃음) 나름대로는 아들에게 어렸을 때 저에 대한 이해를 시켜주기 위해서 그 친구 편에서 얘기를 하기도 해요. 그러면서 생각하는 시간을 많이 갖죠. 내가 어렸을 때 선생님이나 부모님, 형 같은 사람들에게 참 어려움을 많이 끼쳤구나, 이런 생각을 많이 해요. 형이 또 저 때문에 엄청 속을 끓였거든요. 물 좀 떠오라고 하면 ‘내가 왜 물을 떠와야 하는데?’ 이런 식이었으니까요.

 

아드님 이야기가 의외네요. 아버지와 많이 다르고요.


아내를 많이 닮은 것 같아요. 제 경우는 부모님의 영향도 많이 컸던 것 같아요. 어머니가 아버지께서 월남에 가셔서 안 계실 때, 아버지 없는 아이라는 말을 안 듣게 하려고 엄청 엄하게 하셨어요. 조금만 실수하고 잘못해도 매를 드셨고요. 많이 맞았죠. 형은 매와 체벌을 피하기 위해 순응을 한 거예요. 방법을 따라가고 하지 말라는 것은 하지 않았죠. 그런데 저는 대항을 했어요. 어린 나이인데도 ‘왜 나를 때리는 거야!’ 이런 식이었어요. 어머니가 무척 성격이 강하신데, 주변 사람들에게 본인이 세상에서 못 이기는 사람이 딱 한 사람 있다고 하셨을 정도니까요. 대신에 잘못한 건 무조건 받아들였어요. 잘못했다고 느꼈을 때는 눈물 뚝뚝 흘리면서 반성했지만 불합리하다고 생각이 들면 대항했어요. 형과 다퉈도 시시비비가 있을 텐데, 어머니는 무조건 형 말을 안 들었다고 혼을 내세요. 저는 받아들일 수 없었어요. 형, 동생을 떠나 누가 잘하고, 잘못하고를 따진 후에 내가 잘못했다면 받아들일 수 있지만 무조건 형이니까 말을 들어야 한다고 하면 못 받아들이겠다, 이런 식이었어요.

 

형 말씀을 하셨는데, 부모님의 권위에 순응하는 편이었던 형이 거기에서 오는 불만을 동생에게 풀었을까요? 형에게 많이 맞았다고 하셨잖아요.


그런 것도 있겠고요. 또 하나는 제가 정말 싸가지 없는 동생이었으니까 그랬기도 했겠죠. 제가 지금 생각해도, 만약 제 동생이 저한테 그랬으면 저도 아마 형처럼 하지 않았을까 싶어요.(웃음) 정말 힘든 동생이었죠. 왜 그랬는지 모르겠어요. 뭔가 그런 반항의식 같은 게 있었어요. 지금도 장면이 떠오르는데요. 세 살 위의 형이니 얼마나 힘이 세겠어요. 그런 형 밑에 깔려서 막 맞는 거예요. 그러면서도 끝까지 반항했어요. 절대로 ‘형, 잘못했어.’ 이런 얘기를 해본 적이 없어요.(웃음) 얼마나 얄미웠겠어요.

 

범죄를 공부한다는 것이 인간에 대한 관심이 없으면 불가능한 일이란 생각이 듭니다. 애정에 가까운 이런 관심은 어디서, 언제부터 시작되었을까요?


저는 그냥 호기심 천국이었어요. 뭐든지 다 궁금했고, 특히 사람들에 대해서 그랬죠. 제 상황이 억울하다는 느낌을 많이 가졌거든요. 그토록 반항적이었던 이유 중에는 물론 제가 어린 나이에 잘못 생각했기 때문인 경우가 많죠. 하지만 어쨌든 저는 나름대로 정당성, 명분이 있고, 이유가 있다고 생각했는데 그것에 대한 반응이 주로 잘못했다는 것이니까요. 선입견을 가지고 너는 원래 그런 말썽부리는 아이 아니니, 하는 경험을 많이 했어요. 교실에 화분이 깨져있는데 아무도 자기가 깼다고 하지 않는다, 그러면 시선이 저에게 쏠리는 상황 말이에요.(웃음) 그런 것들을 겪으면서 남들이 저를 좀 이해해주길 바라는 마음이 강했어요. 그러면서 다른 한편으로 내가 남을 이해해야겠다는 것도 많이 깨닫게 된 거죠.


지금도 무상급식 때문에 난리지만 저희 어렸을 때는 도시락을 싸오는 아이들이 절반 밖에 안 됐어요. 저희 어머니는 꼬박꼬박 도시락을 싸주셨는데요. 도시락을 혼자 먹는다는 것 자체가 받아들여지지 않아서 어떤 경우에는 배부르다고 도시락을 다른 친구에게 주기도 하고, 나눠먹기도 하고, 아예 그런 상황을 피하기 위해서 점심시간 시작하자마자 ‘축구하러 가자!’고 하면서 도시락 안 싸온 아이들과 축구하러 가고, 수돗물로 배 채우고 그렇게 하기도 했어요. 그 친구 집에도 가보고, 같이 생활하고, 이야기 해보고요. 중학교, 고등학교 가서도 늘 말썽꾸러기 아이들, 선생님이 포기한 아이들, 흔히 말하는 불량학생, 폭력 써클 아이들과 많이 지냈어요.


가장 큰 이유는 정말 궁금해서였어요. 이 친구들은 왜 이렇게 불량스러운지 알고 싶었어요. 그들이 사는 동네도 가보고, 그 친구들의 동네 형들도 만나보고요. 후에 보니까 그 중 강력범죄자들도 많더라고요. 그런 가운데도 그 친구들은 저를 보호해줬어요. 너는 공부를 해야 해, 이런 데는 끼면 안 돼, 하지만 친하게는 지내자, 이런 식이었죠. 그런 과정이 어떻게 보면 저는 날 때부터 범죄문제와 관련돼 살아가는 운명을 타고났나, 이런 생각을 하기도 해요.

 

어린 시절에 겪었던 충격적인 사건들(친구의 강간살인, 친구 여자친구의 유괴살인 등)이 주변에 흔히 일어나는 일이 아닐 것 같은데 몇 번이나 있었어요.


두 가지죠. 하나는 제가 살아온 삶 자체가 조금 위험을 동반할 수 있는 모험적인 삶을 살다보니까 인간관계, 친구관계가 좀 그런 부분들이 있고요. 또 다른 측면은 이런 거예요. 우리나라에서 발생하는 범죄의 양을 보면 누구에게나 주변에 있는 사람이 가해자거나 피해자인 강력 사건이 발생하거든요? 많은 사람들이 그걸 신경 쓰지 않거나 모른 채 넘어가요. 분명히 그 친구들과 같은 반을 거쳐 온 친구들이 초등학교 6년, 중학교 3년, 고등학교 3년을 거치면서 무수히 많았을 텐데, 그들이 모두 자신이 알던 사람이 이런 일을 저질렀다는 사실을 알거나 공감하진 않는다는 거죠. 관심이 있는 사람만 ‘어떻게 내가 아는 사람이 이렇게 됐지?’라는 것을 느낀다는 거예요.

 

방금 말씀하신 친구관계에서부터 경찰대 생활처럼 엘리트적 관계까지 삶에서 겪은 경험치가 굉장히 넓은데, 그것들이 이후에 선택들, 주요한 고비 때마다 지위나 명예가 아닌 ‘옳은 것’을 선택하게 하는 주요한 요인들이었을 것 같아요. 


저도 그런 생각이 많이 들어요. 그게 제 장점이자 한계인 것 같기도 하고요. 한계라면, 저는 순수한 학자는 절대로 못 되겠다는 걸 일찍 깨달았어요. 그것도 남다른 재미가 있거든요? 힘들고 어렵긴 하지만 논문을 써내고, 학회에서 발표를 하고, 토론하고, 그럴 때마다 느끼는 학술적인 희열이 있죠. 그런데 뭔가 내 옷이 아닌 것 같은 느낌 있잖아요. 내게 맞는 곳이 아닌 것 같았어요. 많은 석학들처럼 학술적으로 의미 있는 성과를 내는 것, 그것은 못하는 사람이다, 라는 생각이 많이 들었어요. 덧붙여 관료 조직에서 높이 올라가는 것, 그거는(웃음) 못해요.


말씀하신 것처럼 제가 살아온 그런 경험, 특히 범죄 피해를 당한 분의 말로 표현 못할 아픔을 직접 느껴보지는 못했지만 그 근처까지는, 그분들이 얼마나 아프실까 하는 것까지를 공감해보려는 자리까지는 가보고, 반대로 완전히 인성이 망가진 범죄자들, 그들을 또 이해할 수 있는 그런 경험들을 많이 해봤단 말이에요. 여기까지 오게 된 과정, 무엇이 어떻게 널 그렇게 왜곡시켰는지 상당히 이해가 되고, 조금만 일찍 이런 짓 저지르기 전에 내가 만났던 좋은 분들이나 혹은 나라도 만나서 방향을 바꿀 수 있었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여기까지는 가는 거죠. 그런 경험들을 가지고 살아나가는 사람은 그런 관료 조직 내의 불합리라든지, 권위에 대한 충성이라든지, 이런 건 절대로 못해요. 그게 저의 가장 큰 한계죠.


정치와 관련해서도 자꾸 얘기를 하시는데요. 한 번 생각해봤어요. 나 같은 사람도 참여해서, 사회에 좋은 일도 하고 그러면 좋지 않을까 생각했는데요. 그 안에 벌어지는 매커니즘과 그 속에 있는 제 모습을 그려본 순간, 아유.(웃음) 저는 그 안에서 또 하나의 이단아가 되고, 말썽 저지르고, 스캔들이나 일으킬 것 같다, 차라리 안 가는 게 낫겠다, 얼마나 그 생활이 불편할 것인가 생각이 드는 거죠. 순수한 학자라든지 관료 조직에서 위치를 밟아 나간다든지 정치세계에서 타협과 권모술수 안에서 살아나는 것, 그건 저는 못하게 생겨먹은 사람인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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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죄자로 태어나는 사람은 없어


범죄를 다루면서 접한 일들 중 가장 안타까웠던 사건이 있다면요? 청소년 범죄에 대해 사춘기 교육, 정서적 안정에 대해 말하기도 하셨고, 몰라서 법을 어기게 되는 사람들을 엄격히 처벌한 안타까움이나 성폭행 친고죄가 없어져야 한다는 의견도 보이셨어요.


범죄는 다 안타깝죠. 특별한 한 가지를 꼽을 순 없어요. 모든 게 다 안타까워요. 고등학교 1학년 때 입학식 하러 가다 처음 본 놈이 시비 걸어서 싸우다 교실에 들어가니까 같은 반이었고 친해졌는데, 얘가 나중에 강간 살인범으로 사형을 당하더란 말이죠. 범죄라는 게 그런 것이에요. 날 때부터 나쁜 놈은 없다는 거예요. 일부 학자가 사이코패스니 뭐니, 날 때부터 그렇다고 하지만 저는 아직까지 그렇게 믿지 않아요. 후천적인 과정을 통해서 그렇게 나아가는 것이죠. 요즘 언론 인터뷰를 안 하려고 하는데요, 뭔가 자꾸 마음에 걸려요. 언론이라는 것이 표면에 드러난 사건의 잔혹성과 엽기성을 자극적으로 내세우면서 얼마나 괴물 같은 인간인가에 집중하거든요. 박춘봉 사건(2014년 11월 발생한 시신훼손 유기 살인사건) 때 딱 그랬잖아요. 하지만 들어가 보면 박춘봉이라는 인간도 불쌍한 인간이거든요. 물론 범죄는 안 되는 거지만 그때까지의 인생을 보면, 그 사람도 중국에서 어렵게 살았고, 돈을 벌려고 한국에 왔다가 고생하고, 처음부터 자기가 사람을 죽이겠다고 한 게 아니잖아요. 그걸 그냥 10초, 20초 되는 인터뷰 속에서 많은 문제를 이야기하고, 범죄가 얼마나 위험한지 얘기하는 게 아무 의미 없다는 생각이 들어요. 범죄 사건이라는 건 모든 사건이 다 안타까운 것 같아요.


피해자 입장에서 본다면 그런 피해를 당할 이유가 없는 거잖아요. 그분들이 당한 것을 어떻게 보상하겠으며, 어떻게 이해하고, 어떻게 치유할 수 있겠느냐 질문이 늘 많이 생기죠. 세월호 참사 때문에 많은 이야기들이 있지만 저처럼 많은 분들의 아픔, 고통, 이런 것들을 지켜보며 살아온 사람들은 함부로 그런 말을 내뱉으면 안 된다는 걸 뼈저리게 느끼죠. 그런데 공감하지 못하고 ‘시체 팔이 하느냐’, ‘너무 오래됐다’라고 말하는 그 사람들도 이해가 간다는 거예요. 왜 그들이 그렇게 이야기를 하고 있는지, 그렇게 살아온 사람들의 인생역정이 다 보이는 거예요. 얼마나 인간답지 못하게 공부와 성공에만 매몰돼서 그 자리까지 살아왔으며 그 정도밖에 안 되는 인간이 됐느냐, 보이는 거죠. 범죄 사건을 떠나서 이 사회의 모든 것들이 저는 그냥 불쌍하고, 안타깝고, 화나고 그래요. 자세히 들여다보면 다 이해가 가고요.

 

‘그것이 알고 싶다’도 보면 저마다 사연이 전부 있고, 일어나선 안 될 사건이 일어나긴 했지만 거기까지 가는 길이 아주 미세한 차이로 방향이 틀어진 것을 종종 볼 수 있어요. 사회라는 것이, 인간을 바라보는 것이, 그렇게 단순할 순 없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렇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범죄를 저지르게 된다면, 그 선을 넘어서게 된다면, 비난 받을 수밖에 없는 거고, 책임을 질 수밖에 없는 거죠. 하지만 가장 원하는 것은 그 선을 넘기 전에, 그럴 수 있는 여지를 가진 사람들이 선을 넘기 전에 어떻게든 좀 말리고, 붙들고, 묻는 거예요. 그게 가장 좋은 방법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지금 우리는 뭔가 잘못된 방향으로 가고 있는 것 같아요. 이명박 정권과 박근혜 정권 하에서 정부가 보여주는 것들, 말하는 것들을 보면요. 그들이 제시하는 한국의 미래는 미국 같은 나라, 또는 일본 같은 나라인 것 같거든요. 여건 차이에 의해 그렇게 되지도 못할뿐더러, 그 방향이 옳은 것이냐에 대해서는 국제 사회에서 다 의문을 제시하고 있어요. 학계에서도 그렇고요. 그들 스스로가 지금의 모습에서 벗어나려고 노력하고 있는데 우리는 목표의식이나 명분, 논리도 없어요. 경제나 다른 것은 모르겠지만 범죄라는 측면에서만 본다면 도저히 손 댈 수 없을 정도로 사람들이 불행해요. 초등학교부터 망가지고, 중학교에서 포기하고, 고등학교에서 세상을 적으로 돌리는, 이런 아이들이 양산되고 있는데 여기에 대해 무슨 수사를 하고 해결을 한단 말입니까. 이렇게 해결될 문제가 아니라는 거예요.


조그만 한 가지에서 사람의 방향이 바뀐단 말이죠. 그런데 그 조그만 것이 이미 여러 군데에 도사리고 있어요. 충암고등학교 교감이 아이들 식사하는데 못 들어가게 하고 급식비 안 낸 애들은 밥 먹지 마, 돈 가져와, 라고 했다고 막말 파문이 있었잖아요. 그 아이들 한 명 한 명이 얼마나 소중한 인격체고, 이 아이들에게 그 한 마디가 어떤 영향을 미칠 것인가에 대해 전혀 생각하지 못하는 사람이 교육자로 앉아있단 말이죠. 이게 대한민국이에요. 제가 교장 대상으로 학교 폭력 예방 강의를 한 적이 있어요. 학생들이 학교 폭력으로 자살하는 과정, 심리적인 과정을 다 설명하면서, 물론 이것들이 온전히 학교의 책임은 아니지만 사건이 발생하는 순간에는 교장선생님이 가장 큰 책임자가 된다고 말했어요. 여러분은 분명히 이런 것들에 대해 책임을 느끼고 사건이 발생하자마자 학교와 관련 없다든지, 개인이 우울증이 있다든지, 가정 문제가 있다든지, 이런 얘기 하지 마시고 책임을 인정하시라고요. 그랬더니 이 사람들이 탄원을 제기해서 예정되어 있던 강의에서 잘렸어요. 정말 절망감을 느꼈던 게, 제가 겪은 피해 때문이 아니라 이 사람들의 그런 옹졸한 태도 자체가 얼마나 비교육적이고 반교육적인가 하는 것 때문이었죠. 범죄를 양산해 내는 잘못된 인식과 구조와 관행, 문화 이런 것들을 어떻게 해결할 수 있을까에 대한 고민들이 많이 있어요. 

 

“경찰이 신뢰받지 못하는 사회는 불행하다”(131쪽)고 하셨습니다. 안타까움과 자성의 감정이 느껴졌어요. 경찰대학 폐지 논란에 대한 의견도 피력하셨는데요. 최근 경향신문 칼럼에서는 교수사회에 대한 비판도 하셨던데, 이런 발언을 하는 것에 어떤 소신이나 의무감이 있는지 궁금합니다.


뭐랄까, 참 불평분자인 것 같아요.(웃음) 다 불만스러워요. 그러다 저에 대한 반성도 하고요. 저는 힘이 많을수록, 많이 알수록 책임이 크다고 생각해요. 본인이 노력해 얻은 것이긴 하지만 혼자 잘나서 가능했던 것만은 아니거든요. 주어진 여건이 많은 도움을 준 것이죠. 저도 그랬다고 생각하고요. 그렇게 본다면 많은 힘을 가졌다는 것은 그만큼 힘을 갖지 못하는 사람들을 위해서 그 힘을 사용하라는 의미거든요. 배울 수 있는 기회조차 부여받지 못한 아이들이 있잖아요. 과외 한 번, 사교육조차 받아보지 못한 아이들이 있죠. 가난하고 힘없는 사람들은, 상대적으로 많이 배운 사람들이 제발 우리 자식들이 제대로, 인간답게 살 수 있게 해줬으면 좋겠다는 한 가지 희망을 갖고 있어요. 그런데 이 인간들이 하는 짓이 정말 너무 화가 나는 거죠. 자신의 힘이나 지식을 개인의 이익만을 위해서 사용하고, 도구로 이용하고, 다른 사람을 짓밟는 데 쓰잖아요. 그 순간 사회 전체에 신뢰가 없어지는 거거든요.


돈 많은 사람, 존경 받아야 돼요. 대신 그 존경의 근거란, 이것을 자기만을 위해서 쓰는 것이 아니라 사회를 위해서 쓴다는 것이죠. 그렇게 되면 많은 사람들이 자기는 덜 받고, 덜 가지고, 덜 존중받으면서도 가진 자들이 그만큼 사회 전체를 위해서 노력한다는 신뢰가 생긴단 말이에요. 그런데 현실은 어떤가요? 서울대 교수 성추행 문제뿐 아니에요. 학계에도 있어봤지만, 대한민국의 학계는 심각하게 말하면 범죄 집단이라는 생각까지 들어요. 학생들이 내는 등록금만큼이라도 제대로 학문이건 진리건 간에 인간적인 교감이라든지 이런 것을 주고 있는가. 아니거든요. 그렇다면 최소한 미안한 마음이라도 가지고 있어야 하지 않느냐는 거예요. 미안한 마음은커녕 자기가 누리는 연봉, 지위 이런 것들을 제공해주는 고마운 고객분들 위에서 갑질을 한단 말이죠. 다양한 형태의 갑질이에요. 성(性)적인 것뿐 아니라, 특히 권력이 있는 분들이 취직을 볼모로 하기도 하고요. 그런 현상 자체에 대해서 언젠가는 이야기를 해야겠다는 생각을 많이 갖고 있었어요. 이번에 성추행 문제가 연달아 터지기에 아예 얘기를 하자고 생각하고 말을 한 거죠.

 

사회적 약자의 입장에서 앞서 발언해주시는 것이 고맙지만, 발언하는 입장에서는 또 감수해야 할 부분이 많으니까 어려운 점도 많을 것 같은데요.


제 경험이 그런데요. 처음 한 두 번은 ‘이상한 놈이다’, ‘도대체 왜 그래?’ 라는 시선을 받지만요, 계속하면 포기현상이 일어나요. 쟤는 원래 저렇다고 하는 포기요.(웃음) 그동안 소위 말하는 돌직구, 정치나 군, 관료사회, 검찰, 학계까지 발언해왔지만 마찬가지였고요. 처음 국정원 사건 때 저 사람들이 압력을 가하려고 많이 했었거든요. 그게 잘 통하지도 않았고, 그러다가 제가 다른 쪽까지 계속 발언하다보니까 똑같은 현상이 일어난 것 같아요. 우리 사회의 가진 사람들 측에선 ‘저 놈은 원래 저래’이렇게요. 압력 넣어봐야 소용도 없고요. 글쎄요. 아직까지는 제가 잃을 게 별로 없다는 생각이 들어요. 불안감은 있죠. 우리 아이들이 공부 잘하고 잘 지내는 와중에 다른 것에 의해서 노력이 좌절될 수 있는 상태라면 고민을 하겠죠. 그런데 봐서는 그런 건 아닌 것 같고요.(웃음)


또 하나는요. 힘세고 강한 사람들에게 미움을 받는 대신, 보이지 않는 수많은 분들의 지지와 보호가 있더라고요. 마찬가지로 경험을 해온 거예요. 고등학교 때도 학도호국단 회의에서 흡연실을 만들자고 건의했을 때 실제 숨어서 담배를 피우는 수많은 아이들에게 있어서는 쟤는 지켜줘야 해,(웃음) 이런 것들이 있었어요. 선생님들 중에도 학교나 당시 강압적인 시대, 군사 문화적으로 학교를 운영하는 것에 대한 반감을 갖고 있는 분들이 계셨거든요. 그분들도 표현은 못하셨지만 저 같은 아이를 보호해주고 싶은 마음이 있으셨던 거죠. 학교 측에서 몇 차례 저를 두고 퇴학 건의가 들어간 적이 있었어요. 그럴 때마다 보이지 않는 선생님들께서 얘는 그런 애 아니다, 오해하지 마라, 그런 말씀을 해주신 거죠. 지금도 마찬가지인 것 같아요. 불이익에 대한 두려움은 갖지 않는 게, 저는 그다지 바라는 게 없기 때문이에요. 정부나 권력이나 재벌이나 이런 분들에게 바라는 게 전혀 없어요. 그냥 잘만 해주셨으면 좋겠어요. 제가 던지는 비판도 애정이 있으니까 비판도 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자기를 돌아봤으면 좋겠고요. 다만 저는 이렇게 책을 내면 책을 사 보시는 독자 분들, 제가 방송을 나가면 방송을 봐주시는 분들, 그런 분들은 다 보이지 않는, 힘없고 하지만 올바른 세상이 되길 바라는 이런 분들이 계시기 때문에 괜찮아요. 그런 불이익에 대해서는 염려하지 않아요.

 

표창원이 바라보는 한국 사회


한국 사회를 어떻게 바라보고 계신지가 궁금했습니다. 희망이 있다면 어떤 것인지, 없다면 어떤 부분을 가장 시급하게 수술해야 한다고 생각하는지에 대해서 말이에요.


한때는 정말 절망스러웠고, 희망이 없는 사회라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그런데 그게 잘못된 생각이라는 것을 깨달았어요. 희망이란 것은 결국 우리가 포기하면 없어지는 것이고, 우리가 포기하지 않으면 존재하는 것이라는 걸 느끼게 됐어요. 누군가, 특히 힘 있고 가진 자들이 우리에게 희망을 주리라는 기대 그 자체가 잘못된 거라는 걸 느끼게 된 거죠. 역대 왕조나, 지난 일제 강점기나, 해방 이후 언제 단 한 번이라도 권력을 가지고 힘 있고 돈 가진 사람들이 우리에게 희망을 주고, 행동한 적이 있었는지 보세요. 언제나 우리는 세상이 어떻게 이럴 수 있어, 라는 분노 속에 살아온 것이나 다름없거든요. 분노가 어찌 보면 우리의 삶의 원동력이었던 것 같기도 하고요.


아무리 지금 우리가 이 사회를 비판하지만 그래도 전보다는 나아졌거든요. 기가 막힌 일이에요. 그렇죠? 경제적인 부분이 아니라, 그나마 지금은 우리가 성소수자의 권리까지 이야기하고 있고, 세월호 참사 같은 경우도 우리가 분노를 참지 못하고 있지만 예전에는 더 했단 말이에요. 국가에서도 피해자 분들을 지원해 주거나, 그렇게 오랫동안 많은 분들이 함께 해주시지 않았거든요. 학생들의 권리도 그래요. 저희 때는 그야말로 영화 <말죽거리 잔혹사>에 나오는 그런 선생님들 많았거든요. 아무 이유 없이 때리는 일들도 많았어요. 그런 불합리 속에서 살아온 것을 생각하면 지금은 훨씬 나아졌죠.


하지만 ‘그러니까 불만 가지면 안 된다’ 라든지 ‘비판하면 안 된다’ 그건 절대 아니에요. 힘 있고 권위 있는 자들이 마련해 준 게 아니잖아요. 여기까지 온 것은 그만큼 힘없는 보통 사람들이 힘 있는 자들을 압박하고, 비판하고, 요구하고, 어쨌든 선거란 것을 통해서 국민의 힘을 보여주고 해오면서 왔죠. 그러한 힘을 활용하고 힘을 보태준 소수의 지식인들, 소수의 엘리트들이 조금씩 도움을 줬고요. 그것이 희망이라고 봐요. 지금 우리 사회에 희망이 있느냐? 당연히 희망이 있죠. 깜짝 놀랄 때가 많아요. 어려움에 처한 분이 있으면 여러 분이 다 도와주시잖아요. 그런 모습들을 계속 목격하거든요. 이게 바로 희망이구나 생각해요. 권력자들은 잘못된 교육 시스템 속에서 어린 아이들을 전부 경쟁하게 만들고, 공부 기계로 만들고, 인간성을 말살시켜 나감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우리 국민들의 힘은 도도하고 강하게 인간성을 잃지 않고 놓지 않고 가지고 계시는구나 생각하면 그게 힘이라고 봐요. 

 

박종철 고문치사사건 앞에서 경찰의 일원이란 사실이 부끄럽고 죄스러웠다고 하셨어요. 부끄러움과 죄스러움이 어떤 감정으로 현재에 남아있는지 궁금합니다. 


여전히 남아있죠. 아마 끝까지 갈 것 같아요. 박종철, 이한열 사건 모두 제가 대학생일 때 일어났던 일들이고 그들과 동년배이고요. 여전히 그것 때문에 저를 비난하는 분들도 많아요. 그 시절 너는 권력의 주구로 있었지 않느냐, 그때 그런 마음을 가졌었다고 한들 무슨 소용이 있느냐고요. 그분들의 비판 다 정당하고요. 다만 그런 부채의식을 가지고서 지금의 경찰이나 국가권력에 대한 비판을 하는 것이에요. 사실 저에게는 죄가 없잖아요. 그런 일에 가담한 것도 아니고, 그들과 인식을 공유한 것도 아닌데요. 단지 그 조직의 일원이기 때문에 가지는 죄의식이란 말이에요. 다시는 그런 젊은이들이 안 생겼으면 좋겠다는 게 가장 큰 바람이에요. 예를 들어 일제시대에 일제 순사, 앞잡이 일을 한 사람들 중에도 나쁜 사람만 있는 건 아니거든요. 전체적인 인식이나 교육을 받지 못한 상태에서 자기 눈앞에 주어진 좋은 일자리 때문에 가서 일한 사람이 있을 거예요. 그 사람들만을 탓할 게 아니에요. 그렇게 우리 젊은이들을 자기도 모르게 죄를 짓는 그런 상태로 몰아넣는 시대가 잘못이죠. 저는 그렇게 되지 않게 하기 위해서 지금도 노력해야겠다, 그런 생각을 많이 하죠.

 

지금 일어나는 어떤 일들도 후에 역사의 평가를 받을 일들이 굉장히 많고, 동시대를 사는 사람의 입장에서도 나에게도 부끄러움이나 죄의식 같은 게 있을 수 있잖아요. 지금 나는 아무것도 못하고 있지만 시간이 지나서라도, 혹은 지금부터라도 어떻게 할 수 있는 일이 있을까 이런 고민을 하는 젊은 사람들이 많아요.


그런 고민을 하셔야 돼요. 또 하시는 게 고마운 거고요. 제일 안타까운 건 아무것도 할 수 없기 때문에 차라리 고민조차 안 하는 사람들이 많다는 거예요. 심리학적 방어기제의 발동이라고 볼 수 있죠. 부정하는 거예요. 자기는 아무 죄의식 없이 일상적으로 보는 업무지만 이게 커다란 사회의 톱니바퀴 속 하나로 이 톱니가 사람들을 말살하고, 학살하는 기계 역할을 하고 있을 수도 있잖아요. 그런 상황을 나 혼자 어쩔 수는 없어요. 톱니바퀴 하나가 혁명을 일으켜서 ‘돌지 마, 돌면 안 돼!’ 라고 해봐야 그 하나가 잘려 나갈 뿐이거든요. 이런 상황에서 우리가 과연 무엇을 해야 할까 질문한다면, 결국 치열하게 인간 이성의 한계 속에서 깨닫고 비판하고 싸우고 투쟁하고 해야 하지만 그 한계를 넘어서는 것에까지 책임지려 할 필요는 없다, 그런 생각을 가져요. 나의 한계를 알 필요가 있다는 거죠. 내가 서있는 이 자리, 내가 하는 일, 그 안에서 고민하되, 그 이상 되는 부분은 죄책감이나 미안함으로 가져가고 그것 때문에 나의 존재나 나의 삶이나 내가 가진 것 모두를 의미 없다고 여겨서는 안 된다, 그런 생각을 많이 해요.


글쎄요. 결국 왜 사느냐의 문제로 연결되잖아요. 우리는 왜 살까요? 철학적으로 여러 가지 이야기가 나오지만 우리가 사는 근본적인 이유는 삶의 연결이라고 생각해요. 살아내는 거죠. 우리 시대 한계 내에서 할 수 있는 것들을 하면서 말이에요. 그 후 다음 세대에 바통을 이어주는 것, 그게 우리의 역할이라고 봐요. 다음 세계는 우리가 해온 성과나 우리의 잘못, 우리의 문제, 이런 것들을 조금씩 더 개선해서 그 다음에게 이어주는 거죠. 계속해서요. 21세기의 가장 중요한 화두를 ‘지속가능성’이라고 하는 이유도 그거라고 생각해요. 환경도 보존하고, 가급적이면 덜 오염시키고요. 끝에 뭐가 있느냐? 우린 모르죠. 하지만 우리가 꿈꾸는 이데아라고 하는 낙원, 존 레논이 ‘imagine’에서 얘기했던 종교도 없고, 전쟁도 없는, 그런 세상이 올지 어떻게 알아요? 이외수 선생이 ‘존버(존나게 버틴다)’라고 얘기했지만, 우리의 사명은 일단 지금의 한계 속에서 더 파괴하지 말고, 더 망가지지 말고, 더 나쁘게 하지 않은 채, 버텨서 가급적이면 좋은 상태로 다음에게 넘겨주는 것, 이것이 우리 생존의 목적이고 존재 의의라고 생각해요.

 

안타까운 사건들도 많이 있었죠.


너무 한 개인이 세상 전체의 짐을 다 지려고 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제일 안타까운 게, 이남종 열사(2013년 12월 31일, ‘박근혜 대통령 퇴진’과 ‘국정원 대선개입 특검’을 요구하며 서울역 앞 고가도로에서 분신) 같으신 분들, 김기종 씨(2015년 4월, 리퍼트 미국 대사 피습) 같은 경우예요. 결국 자기 개인의 책임이나 의무를 너무 과하게 생각하셨기 때문에 그러신 것 같아요. 의무와 책임감을 견디지 못해서 내 몸을 불사르든지 테러를 하든지 하는 것의 결과는 무엇일까요. 세상을 바꾸는 건 아니잖아요. 우리는 그저 세상 전체의 커다란 인류 공동체의 공통의 목적 하에, 한계를 인정하고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면서 다음 세대에게 넘겨주는, 거기까지가 우리의 임무라는 생각을 한다면 너무 크게 자책하지 않아도 될 것 같아요.

 

교수님도 그런 마음으로 지내시나요?


저도 마찬가지예요. 늘, 지금도 좀 마음속에 죄책감 같은 게 있어요. 그걸 또 자극하는 분들도 계시고요. 당신은 뭐하냐? 우리를 이렇게 불사질러 놓고서 왜 그렇게 조용하고 나서지도 않고, 박근혜가 무섭냐? 계속 그런 분들이 계세요. 그런 자극에 반응을 해서 앞장서고 투사가 된다? 그건 제 역할이 아니라고 생각해요. 그 부분은 저에게 일정의 부담감과 미안함, 죄책감 이런 걸로 분명 작용해요. 가지고 있어요. 그걸 제가 안고 가고, 담고 가야 할 제 몫이라고 생각해요. 그것마저 없다면 철면피가 되는 거죠. 변절자가 되는 거고요. 하지만 분명히 아무리 생각해도 제 한계를 생각할 때 제 역할은 그게 아니라고 생각해요. 이 시대도 그런 시대가 아닌 것 같고요. 저도 때때로 치밀어 오르는 미안함, 부담감, 책임감, 죄책감, 이런 것들을 잘 다독이면서 이렇게 지내고 있어요.

 

사건 하나를 다루면 사건 하나만큼의 상처가 생겨


수사법이 진화하듯이 범죄 방법도 진화할 텐데요. 범죄를 공부하면서 가장 어려운 점은 무엇인가요?


계속 어렵죠. 인간이야말로 변화무쌍하고, 창의적이고, 특히 모방의 천재잖아요. 그 와중에 범죄라는 것은 범죄자 입장에서는 인생을 거는 것이거든요. 허투루 하다가는 자신의 삶이 망가지는 것이니 자기의 모든 걸 쏟아 붓는 거예요. 저는 기본적으로 사람의 차이는 없다고 봐요. 김연아, 박태환, 이런 천재 같은 사람들 있잖아요. 이런 사람들이 남들과 다르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거기까지 들어간 시간이 다른 거죠. 노력이 다른 거예요. 범죄를 저지른 사람들은 바로 결과가 나오지 않는 어려운 노력들을 포기한 사람들일 뿐이지, 그런 능력이 남들보다 떨어지는 건 아니에요. 그런데 그걸 범죄라는 데에 쏟아 부으니까 이게 문제인 거예요. 환장할 노릇이죠.(웃음) 기기묘묘한 수법을 쓴 범죄자들이 나오면 사람들이 ‘저런 능력을 좋은 일에 쓰면 얼마나 좋았을까’하지만 그게 안 되거든요. 그 인간들도 좋은 일에 한때는 노력을 해봤죠. 어렸을 때요. 하지만 바로 결과가 나타나지 않는 거예요.


아들이 축구를 하는데 초등학교 1학년 때부터 했지만 잘하는 축이 아니었어요. 늘 벤치 멤버였고 조금씩 올라갔죠. 특유의 성실성을 가지고요. 지금은 축구 명문 중학교에 갔고, 거기서도 주전 후보로 올라가 있어요. 제가 아들과 계속 이야기를 주고받았던 게 그런 거예요. 절대로 남보다 못하다고 실망할 필요 없다, 끝까지 가는 게 중요하다, 좋아하는 것을 열심히 하는 게 중요한 것이지 남보다 잘하는 게 중요한 게 아니다. 욕심 때문에 조급해지고 욕심이 채워지지 않아 실망하고, 감정이 개입되게 되면 오랫동안 노력을 들여 나타나는 성과는 이룰 수 없잖아요. 이런 이야기를 범죄 저지르기 전에 어렸을 때부터 계속 해줬다면 이 친구들도 그렇게 안 됐을 테죠. 근데 성적도 다른 애들이 훨씬 더 좋지, 노래 잘하는 애는 따로 있지, 자기는 아무것도 없단 말이죠. 그러니까 이 세상에 내 자리는 없나보다 라는 생각을 가지고 지내다가 도저히 견디지 못하고 이탈하고, 말썽을 저지르는 것이거든요. 그게 범죄라고 보시면 되는데 그렇다고 해서 얘네가 다른 사람보다 능력이 떨어지냐, 아니란 말이죠. 진즉 그걸 좀 잡아주었더라면 싶고, 너무 안타까운 거죠.

 

역시 사람에 대한 ‘관심과 애정’이네요.


안타까워요. 다른 한편으로, 우리는 사건이 발생하자마자 현장에 가는 게 아니잖아요. 상당히 시간이 흘러 우리에게 온 사건 관련 자료, 조사 내용이 모두 정확한 사실인지, 어떤 주관이 개입된 건지, 변동이 일어난 건지 가려낸다는 게 제일 힘들어요. 아무리 지능화, 첨단화 된다 하더라도 그 친구들이 자기의 한계 내에서 최선을 다할 뿐이지 과학적, 기술적인 우위에 서 있는 건 절대로 아니거든요. 그런 차원에서 어려움은 없어요. 다만 이미 발생한 이후에 많은 것들이 변하거나 왜곡된 상태에서 사건을 접하기 때문에 그것을 구분해내는 것이 제일 힘들죠. 때로는 사건 관계자들의 오해나 오인도 있고, 기억의 혼돈도 있으니까요. 얼마 전 강남 80대 재력가 할머니 피살 사건 있잖아요. 처음 언론보도에서 조카며느리의 진술에 따라 보이스피싱을 당하고 있었고, 협박을 당하고 있었고, 낯선 사람이 와서 몸싸움을 하다 갔고, 이런 식의 얘기가 나왔어요. 거기에 집중해서 수사를 하다보면 엉뚱한 방향으로 가게 되는 거예요. 저는 그걸 딱 보는 순간, 첫째로 이건 사람의 말이기 때문에 절대로 다 믿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죠. 혹시라도 이 사람이 사건 관계자일 수도 있는 거거든요. 그러면 사건에 관련 없는 이야기를 일부러 할 수도 있는 것이고요. 그 부분을 제외하고 객관적인 사실부터 파악을 한 다음 진술의 객관성, 부합성을 파악해서 수사해야 해요. 처음에는 혼란이 있어요. 사건이 발생하자마자 오는 정보 중에는 왜곡이라든지 변질, 오류, 오해, 오인 이런 것들이 많이 섞여 있는데 이런 것들을 가려내는 게 제일 힘들죠.

 

막을 수 있었던 죽음을 경험한다는 것이 쉽지 않은 일일 것 같습니다. 정신적으로도 피해가 크고요. 스스로 거리를 두는 방법이 있나요?


처음에는 큰 충격을 받죠. 내가 죽인 것 같은 느낌도 들고요. 시험지 분실사건 경우도 완전히 무에서 시작해서 혐의점이 점차 경비과장에게 모아지고 있는 상황이었어요. 체포 영장이 청구된 상태였는데 그 사람이 자살을 해버린 거예요. 조금만 더 빨리, 일단 인신부터 확보를 한 후 영장처리를 했었더라면 하는 생각에 무척 괴로웠어요. 거기다 형사팀에서 이 사람이 죽고 난 후에 알아온 건데 집안 내력이 있었단 말이죠. 아버지도 유사한 상황에서 자기 동생에게 혐의가 갈 것을 두려워한 나머지 유치장에서 자살을 했는데, 그걸 미리 알았더라면 하는 생각을 많이 했죠. 하지만 인력으로 할 수 없는 문제라는 것을 깨달았어요. 어떻게 보면 합리화죠. 나 때문이 아니야, 라는 합리화를 하는 과정을 거쳐야만 했었어요. 심리적으로 어려운 건 상당히 컸죠. 어쨌든 극복을 해내면서 한계라는 것을 정확히 인식해야 했어요. 내가 모든 걸 다 할 수 없다, 단지 최선을 다할 뿐이다 라고요. 불합리하게 감정적으로 거기서 헤어 나오지 못하면 일을 못하는 거니까요. 만약 내가 무엇을 잘못해서 누군가에게 피해를 줬다면 당연히 전적으로 그 책임을 끝까지 져야겠지만 그렇지 않은, 내가 어쩔 수 없는 부분에서 일어난 것은 지나치게 책임을 느끼고 그로 인해 다른 일을 하지 못하는 그런 우를 범하지 말자, 그런 생각을 하게 되었고요.


반면 그런 생각이 너무 지나치게 되면 인간성이 상당히 메마르게 돼요. 매너리즘이라고 하잖아요. 매너리즘에 빠지지 않기 위한 노력들이 또 많이 필요해요. 다행히도 저는 그 이후 유학을 가게 되면서 일선에서 빠졌기 때문에 감성과 정서를 회복하고 유지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만일 계속 일선 형사로 있었다면 지금쯤 아주 냉혹한 사람이 되어 있었을 것 같아요. 모든 감정이 다 차단되고, 그러면서 속으로는 트라우마가 계속 일어나고요.

 

실제로 그런 분들이 많으실 것 같은데요?


많으실 거예요. 겉으로 드러나진 않죠. 그러한 트라우마는 사실 눈에 보이지 않는 모습으로 표출되거든요. 실제 문제들이 발생하고 있어요. 예전에 포천 여중생 피살사건 수사 반장이 자살한 일도 있었잖아요? 그런 일들이 생기는 거예요. 개인의 차이긴 하지만 범죄 수사하는 사람에게 누구나 주어지는 상황이란 말이에요. 그걸 제도적으로, 경찰 심리 상담사라든지 제도가 있어서 언제든지 그런 큰 사건이 발생하면 상담을 하고 사전에 보호할 수 있으면 좋겠죠. 그게 제도적으로 이루어지지 않고 있죠. 다 개인들이 알아서 대처해야하는 상황이에요.

 

‘이익보다는 옳은 것’을 택하는 ‘삶에서 얻은 감성’이 포함된 일련의 모든 선택들이 늘 만족스러웠을까요? 혹시 후회한 적은 없었나요? 특히 최근 가장 큰 선택이었다고 하면 경찰대학 교수직에 대한 선택이었을 텐데요.


그 선택에 대해선 일말의 후회도 없어요. 전혀요. 그건 제 원칙에 완전히 부합하는 선택이었고 괜찮아요. 오히려 홀가분해요. 저한테 덧씌워졌던 틀이랄까 규격화된 옷을 벗어버린 느낌이거든요. 당연히 잃는 것도 많지만 동으로 가면서 서쪽에 있는 것까지 갖겠다는 건 욕심이잖아요. 그런 욕심은 안 갖는 훈련이 저는 오랫동안 되어 있어요. 잘못된 선택에 따른 결과를 후회하지 않는 그런 연습은 충분히 되어 있으니 전혀 문제가 아니에요. 그 선택 외에 살아오면서 했던 여러 가지 선택 중에는 잘못했구나, 그러지 말았어야 했다, 하는 건 있죠. 그걸 다 안고, 그러한 경험을 통해서 다음에는 유사한 실수를 저지르지 않도록, 더 나은 선택을 할 수 있도록 노력을 하고 있어요.

 

‘표창원범죄과학연구소’ 소개와 앞으로의 계획에 대해 말씀 부탁드립니다.


꿈을 많이 꾸고 있어요. 새로운 시작이라는 희망에 많이 부풀어 있고요. ‘표창원범죄과학연구소’라는 곳을 통해서 제 세계를 만들어나가고 싶어요. 범죄에 대한 다양한 접근, 범죄를 테마로 한 교육, 범죄에 대한 분석, 또는 ‘그것이 알고 싶다’ 같은 곳에서 보여드린 것들을 좀 더 체계화하는 일들도 계속 하고요. 현실, 실제 사건들은 힘들거든요. 당사자는 아니지만 사건 하나를 다루면 사건 하나만큼의 상처가 생겨요. 감정적인 개입을 하지 않으려 노력하지만 당연히 피해자의 고통이 전달이 되고, 또 가해자가 그 상황까지 이르게 된 삶의 흔적들에 안타까움과 분노가 일어나고 그렇거든요. 이제는 좀 편안하게 범죄나 추리를 테마로 한 가상의 문화를 만들어보고 싶어요. 늘 선이 이기고 악을 마음껏 혼내줄 수 있고, 또 실제 사건에서 충분히 전달하지 못하는, 범죄를 둘러싼 많은 이야기들을 좀 더 부담스럽지 않게, 제가 상처받지 않으면서 풀어내는 거죠. 그것을 우리 아이들이 ‘명탐정 코난’ 같은 것이 아니라 우리의 콘텐츠, 우리 스토리로 접할 수 있도록 해주고 싶어요. 성인도 마찬가지고요. 이런 부분에 상당히 제가 관심이 많아서요. 결국 한국의 ‘셜록 홈즈’ 같은 추리 소설, 영화, 이런 것들을 좀 만들어내겠다는 포부를 가지고 있죠.

 

소설 출간 계획이 있다고 들었는데요?


소설이나 픽션의 경험이 많이 부족하지만 지금부터라도 계속 노력을 하고 있어요. 다른 작가들과도 협업 제안을 많이 받고 있고요. 어린이 추리 소설, 소년 중앙에 연재했던 것은 15회로 끝내기로 했는데 그것을 좀 보완해서 올 여름 전에는 책으로 나오게 될 것 같아요. 성인 대상 소설도 비밀리에(웃음) 준비하고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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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나는 범죄를 공부하는가 표창원 저 | 다산북스
그의 말처럼 “삶은 특정 목표에 도달하기 위한 경쟁이 아니라 끝을 규정할 수 없는 ‘여행의 연속’이다.” 그래서 우리의 공부는 계속되어야 한다. 하나를 이루어내면 그다음으로 다른 것을 꿈꾸어야 한다. 수많은 두려움을 뚫고, 삶이라는 여행을 풍요롭게 만들기 위해 공부하기를 그치지 말라고 강조하는 표창원 박사. 『왜 나는 범죄를 공부하는가』에는 담긴 그의 고군분투는 어디로 나아가야 할지 몰라 방황하는 우리들에게 공부를 통한 삶을 꿈꾸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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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신연선

읽고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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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해지지 않은 것들에 깃든 삶의 진실

명확한 것들이 때로는 우리를 배신한다. 『작은 동네』는 ‘누구도 말하거나 기억하지 않은 나와 엄마의 서사를 복구하는’ 소설이다. 화자가 믿어온 사실들은 이제 전혀 다른 말을 하기 시작한다. 촘촘하게 설계한 이야기를 능숙하게 한 겹씩 펼쳐내는 솜씨가 탁월한 손보미표 추리극이다.

나도 너를 미워하기로 했어

어느 날 한 아이가 말했다. '너 같은거 꼴도 보기 싫어!' 이유도 말해 주지 않고 가 버린 그 아이를 보며 눈물이 나올 것 같았다. '그래, 나도 너를 미워하기로 했어.’ 어느덧 미움이 쑥쑥 나라나 내 마음을 가득 채웠다. '그런데 이상해. 하나도 시원하지가 않아.' 미움이란 감정을 따라 떠나는 '내 마음' 탐구.

우리는 모두 ‘멋지다’가 들어있어요!

같은 반 아이들 20명이 각자의 개성으로 ‘멋지다’를 소개하는 특별한 책. 잘 넘어지는 아이는 보호대에 그림을 그릴 수 있어서 멋지고, 잠 못 드는 아이는 상상을 할 수 있어 멋지고, 수줍음을 타다가 슬쩍 건넨 인사로 친구가 된 아이까지! 우리는 모두 멋진 구석을 한가지씩 가졌습니다.

임진아 작가의 두 번째 일상 에세이

『빵 고르듯 살고 싶다』 임진아 작가가 우리 곁의 평범하고 익숙한 사물들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사물에게 배우는 마음을 가질 수 있다면 내 삶은 조금 더 너그러워질 거라는 작가의 마음이 담긴 글과 직접 그린 그림들. 책을 펼치는 순간 오늘이 조금 더 좋아지는 마법을 발견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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