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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득 낯설다, 내 편인 듯 내 편 아닌 가족

가족끼리도 왕따를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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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의 재회. 듣기만 해도 끈끈한 정과 뭐든 다 받아줄 것 같은 푸근함이 느껴지며 가슴이 뭉클해진다. 그래서 다들 가족이라는 공동체에 소속되길 꿈꾼다. 그러나 가족이 재회하면 거의 어김없이 씁쓸한 순간도 있게 마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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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속 이어졌다 끊기는 선

 

가족의 재회. 듣기만 해도 끈끈한 정과 뭐든 다 받아줄 것 같은 푸근함이 느껴지며 가슴이 뭉클해진다. 그래서 다들 가족이라는 공동체에 소속되길 꿈꾼다. 그리고 실제로 가족의 재회는 멀리 떨어져 살던 식구들이 모여서 추억을 나누고 세상 사는 이야기를 하며 함께 웃는 즐거운 시간이 되기도 한다. 그러나 가족이 재회하면 거의 어김없이 씁쓸한 순간도 있게 마련이다. 예를 들면 형이 어릴 적에 그랬듯이 동생을 바보로 만드는 질문을 한다. 여동생은 어머니와 언니가 둘이서 속닥대는 모습을 보고 문득 어릴 때처럼 쓰라린 소외감을 느낀다.


가족 안에서 느끼는 흐뭇한 결속감과 고통스러운 박탈감을 이해하려면 ‘연대’라는 개념을 알아야 한다. 대화는 사람들을 가족으로 묶는다. 대화를 통해 연대가 형성되면서 아이들의 그리기 교재에서 점들이 선으로 이어지듯이 식구들이 이어진다. 대화를 통해 두 사람이 연대하면 두 점이 굵은 직선으로 연결된 것과 같다. 하지만 남은 한 사람은 점선, 구불구불한 선으로 연결되거나 아예 연결되지 않고 소외될 수 있다. 메타메시지와 마찬가지로 연대도 은밀한 무기가 될 수 있다. 상처를 입히지만 왜 그런지는 알아차리기 어렵다. 왜냐하면 연대의 의미는 입 밖으로 나온 말에 있지 않고 그 말의 영향력에 있기 때문이다. 메타메시지와 마찬가지로 연대도 겉뜻이 아니라 속뜻을 만들어낸다.


가족은 구성원들이 교감하고, 말다툼을 벌이고, 비밀을 털어놓고, 함께 이런저런 일을 하고, 소원해지고, 화해하며 계속 연대가 바뀌는 만화경과 같다. 또한 댄서들이 계속 파트너를 바꾸는 스퀘어댄스와 같아서 어떨 때는 손발이 척척 맞는 파트너와 멋진 호흡을 뽐내지만 또 어떨 때는 그렇지 않은 파트너와 긴긴 스텝을 밟아야 하기도 한다. 가족에 속했다고 해서 무조건 떳떳한 구성원이라는 자신감이 들진 않는다. 살다 보면 다들 스퀘어댄스 중에 진행자가 “모두 손을 잡고 원을 만들어 도세요”라고 했을 때 어쩌다 보니 혼자만 덩그러니 남은 것 같은 심정일 때가 있게 마련이다.


“우리 가족은 나의 요새야.” PBS의 <아메리칸 러브 스토리>에 출연한 가족 중 장녀 시실리 윌슨이 한 말이다. ‘요새’라는 말에는 가족이 세상을 막아주는 담벼락, 우리를 해하려는 사람들이 절대 뚫고 들어올 수 없는 보호막이라는 뜻이 담겨 있다. 하지만 방벽 안에 있는 사람들끼리 꼭 화목하란 법은 없다. 울타리 쳐진 공동체 안을 들여다보면 사랑뿐만 아니라 분노와 상처도 존재한다. 아무리 가족들이 바깥세상에 맞서 한 팀으로 연대한다고 해도 어느 팀이나 그렇듯이 그 안에서도 서로 반목하고 다투고 상처 입히면서 고통을 겪는다. 그 고통은 금세 사라지기도 하지만 평생 가기도 한다. 다름 아닌 연대 때문에 가족이 서로에게 선물이 되기도 하고 고통이 되기도 한다. 대화를 통해 연대가 형성되는 원리를 알면 그것을 토대로 왜 다른 사람의 말이 우리에게 상처가 됐는지에 대해 메타커뮤니케이션할 수 있고 새로운 대화법으로 새로운 연대를 형성할 수도 있다.

 

비밀의 공유와 누설

 

가족 관계에서는 대화를 통해 정보가 공유되기도 하고 확산되기도 하고 비밀에 부쳐지기도 하고 누설되기도 한다. 이를 통해 거미줄처럼 복잡하게 동맹이 형성되고 재형성되기를 반복한다.


서른두 살에 유방암 판정을 받은 캐서린 러셀 리치는 아무도 그 사실을 몰랐으면 했다. 그녀는 오로지 어머니에게만 비보를 전했다. 어머니라면 비밀을 지켜주리라 믿었다. 그런데 뜻밖의 전화 한 통을 받고 방벽에 구멍이 난 것을 알았다. 그녀의 회고록 『붉은 악마The Red Devil』를 보면 이렇게 나와 있다. “덴버에 사는 사촌 시아의 전화였다. ‘우리 교회에 언니를 위한 기도 모임이 생겼다는 걸 말해 주려고 전화했어.’” 화가 머리끝까지 치민 리치는 어머니에게 전화해서 따졌다. “엄마가 시아한테 말했죠!” 이어진 대화는 다음과 같다.


“아니야, 안 말했어.”


“말했잖아요! 방금 전화받았어요. 다 알던데요!”


“아니야, 난 네 언니한테만 말했다. 그런데 걔가 시아한테 말했나 보구나.”


어머니는 그런 식으로 엄밀히 따지자면 본인 탓이 아니라고 둘러댔다.


짧은 일화지만 그 속에서 대화를 통해 연대가 형성되고 재형성되고 있다. 기도 모임이 생겼다고 전화했을 때 시아는 결속감을 표현하면서 리치와 연대하려 했다. 그녀는 자신이 마음을 쓰고 있고 자기 자리에서 도울 수 있는 일을 하고 있다고 전했다. 그런데 참으로 유감스럽게도 리치가 보기에는 시아가 자기를 돕는다면서 기도 모임 사람들에게 비밀을 알린 꼴이었다. 자신의 병을 비밀로 하고 싶었던 리치로서는 그 전화가 가족 요새를 침범하는 행위였고 자신의 현 상황에 대한 정보를 통제하고 싶은 마음을 짓밟는 행위였다.


리치의 어머니는 그 정보를 전달함으로써, 다시 말해 비밀을 누설함으로써 또 다른 딸인 리치의 언니에게 결속감을 표현했던 것이 틀림없다. 하지만 그와 함께 연대의 선이 다시 그어졌다. 리치에게서 어머니로 이어지는 선은 괜찮았다. 어머니에게서 언니로 이어지는 선은 괜찮을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었다. 언니에게서 사촌에게 이어지는 선은? 절대 안 되는 것이었다! 리치가 가족 안에서 마음을 좀 놓으려 할 때 다른 식구가 사촌 동생, 곧 외부인을 그 속으로 성큼 들어서게 한 셈이었다.

 

“내 친구들이 다 그렇대”

 

정보가 가족 내부에서 외부로 새어나갈 때만 가슴 아픈 연대의 재형성이 일어나는 것은 아니다. 반대로 정보가 외부에서 내부로 끌려 들어올 때도 연대의 재형성이 일어난다. 이는 흙이 잔뜩 묻은 신발을 신은 채로 집에 들어오는 것과 같다. 그 정보가 꼭 천지개벽할 내용이어야 하는 것도 아니다. 사소한 말, 정말 대수롭지 않은 말이라도 상관없다. 정보를 전달하는 사람으로 인해 재형성되는 연대는 배신으로 비칠 수 있다.


이브는 남편 톰이 한 말에 속이 상했다. 그녀는 그의 말을 친구 한 명 한 명에게 전하며 자기가 과민반응을 보이고 있는 것인지 알아봤다. 친구들은 이브의 심정에 동감했고 이브는 그들의 말을 증거로 삼아 남편에게 자기주장을 펼쳤다. 그녀는 “당신이 나한테 그런 식으로 말하면 안 됐어”라고 한 뒤 덧붙였다. “내 친구들도 다 그렇게 생각한대.”

그 뒷말이 톰에게는 단순한 불평으로 들리지 않았다. 그의 눈앞에 아내와 친구들이 마치 작전을 짜는 운동선수들처럼 머리를 맞대고 수군거리는 광경이 펼쳐졌다. 그 속에서 아내는 톰이 아닌 친구들과 의기투합해 연대를 형성했다. 톰이 더욱 답답했던 이유는 아내의 친구들과 직접 이야기하는 사이가 아니라서 해명할 기회가 없는 탓이었다. 처지가 그러니 이제 그들에게 나쁜 남편으로 찍혔다는 억울한 기분이 드는데도 어떻게 손쓸 방법이 없었다.


이는 아주 흔하게 발생하는 상황이다. 하지만 처리하기는 꽤 어렵다. 많은 여성이 친구들과 고민을 나눈다. 여성은 주로 개인적인 문젯거리를 이야기하면서 우정을 쌓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런 문제가 가족 구성원과 관련이 있으면 개인적인 문제를 이야기하는 것이 곧 가족에 대한 정보를 외부로 유출하는 것이나 다름없어진다. 대부분의 남성은 이를 배신으로 받아들인다. 도대체 무슨 목적으로 그러는지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남성의 우정은 비밀을 이야기하면서가 아니라 활동을 함께하면서 형성된다. 톰이 볼 때 이브가 친구들에게 자기 이야기를 한 것은 가족 요새의 방벽에 구멍을 내는 행위였다.


이런 갈등을 간단히 해결할 방법은 없다. 이브가 친구들에게 부부 싸움 얘기를 하지 않았으면 톰이야 좋았겠지만 그녀로서는 우정의 날개가 꺾이고 위로의 샘 중 하나가 막히는 셈이었다. 이브는 왜 톰이 못마땅해하는지 이해할 수가 없다. 그녀의 관점에서는 서로의 문제를 논하는 것이야말로 사람들이 친구를 사귀는 주된 이유이기 때문이다. 그녀는 톰도 주위 친구들과 대화를 더 많이 했으면 싶다. 연대의 측면에서 정보 교환 행위를 보면 서로의 반응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된다. 톰의 입장에서 보면 이브가 친구들에게 그의 이야기를 하는 것은 그와 형성한 연대를 친구들과의 연대로 바꾸는 행위다. 하지만 이브의 입장에서 보면 오히려 톰과의 연대를 강화하는 행위다. 그런 이야기를 통해 톰과의 관계가 그녀의 인생에서 가장 중요하다는 사실이 친구들에게 전해지기 때문이다. 이를 알면 톰은 이브가 친구들과 그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을 대체로 용인하는 쪽으로 태도를 바꿔볼 수 있다. 이브의 경우에는 친구들의 조언을 듣고 힘을 얻는 것은 괜찮지만 톰에게 말할 때는 반드시 자기 생각만 말해야 한다.

 

* 이 글은 가족이니까 그렇게 말해도 되는 줄 알았다』의 일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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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이니까 그렇게 말해도 되는 줄 알았다데보라 태넌 저/김고명 역 | 예담
《가족이니까 그렇게 말해도 되는 줄 알았다》의 저자 데보라 태넌은 그동안 남녀 또는 가족 구성원의 대화 방식에 대한 흥미롭고 생생한 사례들을 연구해온 언어학자로, 어떻게 하면 가장 가까운 사람들 사이의 관계를 개선시킬 수 있는지 저자만의 특별한 방법들을 제시해왔다. 《가족이니까 그렇게 말해도 되는 줄 알았다》에서는 내 편인 줄 알았던 가족이 왜 적이 될 수밖에 없는지, 왜 싸우고 후회하는 일상을 반복하는지 보여주고, 더 이상 사랑이란 말로 상처를 주고받지 않는 법을 알려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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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데보라 태넌

작가

가족이니까 그렇게 말해도 되는 줄 알았다

<데보라 태넌> 저/<김고명> 역12,510원(10% + 5%)

가장 가까워서 더 어려운 가족의 대화법 《가족이니까 그렇게 말해도 되는 줄 알았다》의 저자 데보라 태넌은 그동안 남녀 또는 가족 구성원의 대화 방식에 대한 흥미롭고 생생한 사례들을 연구해온 언어학자로, 어떻게 하면 가장 가까운 사람들 사이의 관계를 개선시킬 수 있는지 저자만의 특별한 방법들을 제시해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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