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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남희 "나는 행복하지 않아서 제주도로 떠났다"

『푸른 섬 나의 삶』조남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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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에게 미안하지 않겠느냐고, 후회는 없겠느냐고” 스스로에게 물었고 “나는 행복하지 않다”는 답변을 얻었다. 그래서 익숙한 도시를 버리고 제주도로 떠났다. 『푸른 섬 나의 삶』의 저자인 조남희가 제주도에 ‘착륙’한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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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처녀, 제주에 착륙하다


30년 넘게 ‘서울 토박이’로 살며 딱히 불편한 점은 없었다. 연봉 5천만 원을 보장하는 번듯한 직장도 있었고, 화려한 도시의 밤은 손만 뻗으면 닿을 곳에 있었으며, 값비싼 물건들을 소유하는 일도 어렵지 않았다. 그러나 좋은 옷을 입고 스스로 만족할 만한 명함을 지니고 있어도, 일요일 밤마다 “출근하기 싫어서 정말 미치겠다”는 말이 한숨처럼 새어나왔다. 『푸른 섬 나의 삶』의 저자인 조남희의 이야기다.

 

과연 그녀만의 이야기일까. 쫓기듯 혹은 끌려가듯 살아가는 도시의 삶에서 벗어나는 건, 아주 많은 사람들의 꿈이 된 지 오래다. 그리고 대부분의 꿈이 그러하듯, 그것은 현실의 반대편에 존재하는 세상으로 여겨진다. 도시 밖의 삶을 꿈꾸는 이들이 여전히 이곳에 남아있는 이유는 그래서다. 현실에 발목이 잡혀 있으므로. 그래서 다가오는 월요일은 언제나 두렵지만 아무런 준비 없이 사표 한 장 던져버리는 건 더 두렵다. 돌아올 일터가 있을 때 훌쩍 떠나는 여행은 홀가분하지만 먹고 살 길이 막막한 가운데 시작하는 여정은 착잡하다.

 

저자가 “훌쩍 혼자 떠났던” 제주 여행도 다르지 않았다. 그녀에게는 돌아올 직장과 도시가 있었다. 그렇기에 “서울이 답답하게 느껴질 때마다 틈만 나면 제주행 비행기 표를 끊”을 수 있었다. 그런데 점점 돌아오는 길이 힘겨워졌다. 스스로 떠나온 곳으로 제 발로 돌아가는 일이 쉬울 리 없었다. “도돌이표 같은 숨 막히는 생활에 마침표를 찍고 싶”은 마음이 강렬해졌다. 그래서 생각했다. “직장 생활 7년 동안 무엇이 남았나” 메아리처럼 돌아온 답변은 간단했다. “나는 행복하지 않았다”

 

아침에 눈을 뜨면 출근을 하고, 저녁에는 야근을 하거나 회식을 하고, 집에 와서 잠깐 눈 붙이고 다시 출근을 하고……. 하루 24시간 중 내가 온전히 나로, 내 감성으로,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지내는 시간이 얼마나 될까? (중략) 반복되는 생활 속에 그냥저냥 ‘살아지게’ 되리라는 사실은 너무나 분명했다. 그 시간을 견디면 직급은 올라가고 연봉도 더 많아지겠지만 그렇게 40대를 맞이하고 싶지는 않았다. 30대의 나에게 미안하지 않겠느냐고, 후회는 없겠느냐고 스스로 물었을 때도 내 답은 분명했다. (『푸른 섬 나의 삶』 16쪽)

 

그녀가 들려주는 ‘도시 생존기’는 무척 익숙하다. ‘도시로 돌아가지 않아도 좋을 이유들’에 대한 이야기까지도. 그러나 뒤이어 펼쳐지는 이야기들을 전혀 다르다. 낯설기에 흥미롭다. ‘떠남의 용기’를 낸 사람만이 들려줄 수 있는 ‘제주 착륙기’이기 때문이다.

 

3년 전, 제주에 정착한 그녀는 <오마이뉴스>를 통해 자신의 일상을 공유했다. “서울 처녀 제주 착륙기”라는 이름으로 연재된 글들은 독자들로부터 많은 공감과 응원을 받았다. 그녀처럼 떠나고 싶었지만 그녀와 달리 결단을 내리지 못했던 이들은 부러움의 시선으로 바라보기도 했다. 그럴수록 저자는 더 솔직하게, 있는 그대로의 일상을 보여주려고 했다. ‘낯선 타지 사람’으로서 바라본 제주의 모습, 그곳의 사람들과 어우러져가는 과정, 때때로 마주치는 난관들에 대해 가감 없이 이야기한 것이다. 그 순간순간의 기록들은 한 데 모여 『푸른 섬 나의 삶』에 담겼다.


제주도에 살기 위해 줄여야하는 것은…


『푸른 섬 나의 삶』 속 제주의 일상이 서울에 ‘착륙’한 것은 지난 27일 저녁이었다. 책의 출간을 기념하며 독자들과 만난 조남희 저자는 ‘제주에서 살아간다는 것’에 대한 솔직담백한 이야기를 이어갔다. 그녀의 곁에서 대화를 이끌어간 이는 『푸른 섬 나의 삶』에 수록된 사진을 촬영한 임종진 사진작가였다.

 

“직장생활을 하면서 비싸고 좋은 것들을 소비하기도 했는데, 제주도에 오니까 그런 것들이 필요가 없더라고요. 소비 자체를 줄여야 할 필요도 있었지만, 그 자리를 채우는 다른 기쁨들과 소소한 행복들이 있다는 걸 알게 됐어요. 삶의 외적인 사이즈는 줄어든 것 같은데, 예전에는 알지 못했던 무한한 기쁨들이 있다는 걸 느끼게 됐죠. 그래서 책에는 “없이 살아도 인상 쓰지 않고 살 수 있어 좋다”고 적었는데요. 사실 아직까지도 어려운 일이기는 해요(웃음).”

 

꿈꾸던 곳에 발을 딛는다고 해서 삶이 드라마틱하게 바뀐다는 건, 그야말로 드라마에서나 가능한 일이었다. 적응해야 하는 건 낯선 언어와 낯선 사람들뿐만이 아니었다. 이름도 알 수 없는 벌레들, 몸살이 날 정도로 힘들었던 감귤 수확의 노동이 저자를 반겼다. 머무를 공간을 찾는 일조차 쉽지 않았고, 익숙한 도시에서는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던 외로움도 덮쳐왔다. 그녀가 셰어하우스 ‘오월이네 집’을 운영하게 된 계기이기도 하다.

 

“도시에서의 삶에 대한 미련이 전혀 없을 수는 없는 것 같아요. 아무래도 경제적인 부분과 많이 연관이 될 텐데요. 제주도에 살다보니까 지출과 소비를 절대적으로 줄여야 하는 상황이 오더라고요. 평균적인 급여 수준이 서울의 1/3 정도 밖에 되지 않거든요. 소비와 지출을 줄이는 훈련이 되어 있지 않으면 삶을 지속하는 게 쉽지 않죠. 지속적으로 연습하고 훈련해야 하는 일인 것 같아요. 지금도 부단히 노력하는 중이고요. 그런데 제주도에 내려와서 알게 된 건, 우리가 쓸데없는 곳에도 많은 돈을 쓰고 있다는 사실이었어요. 소비를 조장하는 사회에 살고 있잖아요. 그래서 지금은 불편한 걸 받아들이고, 그걸 즐길 수 있는 정도에 이르려고 노력하고 있어요.”

 

순탄하지만은 않은 여정이었기에 사람들은 물어왔다. 언제까지 제주에서 살아갈 것인지. 저자는 담담하게 대답한다. 언제까지 머무를 수 있을지 자신도 잘 모르겠다고. 그녀에게 중요한 것은 특정한 공간이 아니라 변치 않는 삶의 태도다. 그래서 언제까지나 제주를 떠나지 않겠다고 섣불리 단언하지 않는 것이다. “어디에서든 삶은 지속되고, 익숙함 속에서 새롭게 가슴 떨리는 것을 부단히 찾는 일은 누가 대신해줄 수 없는 각자의 몫이다”라는 것이 그녀가 들려줄 수 있는 유일한 대답일 뿐.

 

『푸른 섬 나의 삶』에서 이야기하는 ‘푸른 섬’은 이상향에 대한 표현인 것 같은데요. 저에게는 제주가 푸른 섬이었지만 지금은 생각이 조금 달라졌어요. 이상향이라는 건 스스로 만들어 가는 것이지, 반드시 어디로 옮겨가서 산다고 해서 그곳이 이상향이 되는 건 아닌 것 같거든요. 각자의 푸른 섬은 다 다를 거라고 생각해요. 그리고 모든 사람들에게 제주도가 푸른 섬은 아닐 수도 있다는 걸 말씀드리고 싶고요. 자신의 푸른 섬은 어디인지 생각해 보셨으면 좋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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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도 주민들이 텃세를 부린다고요?


그럼에도 여전히 ‘제주라는 푸른 섬’에서의 삶을 꿈꾸는 이들을 위해, 저자는 현실적인 조언을 들려주었다. 정부의 경제적인 지원 정책에 대한 정보를 수집하고 발 빠르게 움직여야 한다는 것,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마음의 준비라는 이야기였다. 경제적으로 어려움을 겪게 되더라도 버텨낼 수 있을지, 그 시기를 견디기 위해서 할 수 있는 일들은 어떤 것일지, 그 일을 마다하지 않을 수 있는지, 스스로에게 물어봐야 한다는 의미였다.

 

“제주도에 정착해서 살고자 하는 분들이 겪는 어려움 중의 하나가 텃세라는 이야기를 들어보셨을 텐데요. 그 맥락을 조금 더 들여다보셨으면 좋겠어요. 역사적으로 제주도는 육지에서 내려온 사람들 때문에 아픔을 겪었잖아요. 4.3 사건을 비롯해서 이재수의 난과 같은 민란도 많이 일어났었죠. 그리고 일부 이주민들의 행동은 제주도의 공동체가 와해되도록 만들기도 했어요. 올레길이 생기고 많은 사람들이 들고 나면서 좀도둑이 늘어나기도 했고요. 그런 맥락을 조금 더 이해하고 서로 노력하는 과정이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물론 이주민들과 함께 원주민들도 같이 노력해야 하는 부분이죠.”

 

 마을 공동체의 일원으로 받아들여지기 위해 많은 시간과 노력을 기울여야 하는 것은 저자에게도 마찬가지였다. 주민들에게 먼저 인사를 건네고 다가가는 건 당연한 시작이었다. 저자는 그것이 제주라는 공간의 특수성 때문만은 아니라고 말한다. 어느 공동체이든 그 안에 녹아들기 위해서는 기존의 질서를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과정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푸른 섬 나의 삶』에는 저자가 이웃들과 동화되어 갔던 순간들, 그러면서 깨닫게 된 제주의 역사적 상흔들에 대한 이야기도 담겨있다. 제주에 성공적으로 착륙하고 싶은 사람이라면 눈여겨봐야 할 대목이다.

 
모든 선택에는 기회비용이 따르고, 그래서 선택 뒤에는 늘 같은 질문이 이어진다. ‘그래서 지금 행복한가’. 『푸른 섬 나의 삶』의 독자들 역시 저자를 향해 물었다. 바쁘게 쫓기는 삶을 떠나오니 여유가 찾아왔느냐고. 저자는 미소를 지으며 “이렇게 한 권의 책으로 엮어 놓으니 굉장히 바쁘게 산 것 같지만, 사실 놀면서 지낸 날들도 많았다”고 말했다. 그리고 서울에서와는 또 다른 의미의 바쁜 나날들을 보내고 있다고 고백했다. 스스로가 원하지 않는 일들을 하느라 바쁘게 지내는 것이 아니라, 재미있어서 시작한 일들을 하느라 바쁘게 산다는 이야기였다.

 

그녀의 말을 듣고 ‘그런 종류의 ‘바쁨’이라면 얼마든지 그 속으로 뛰어들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도 언뜻 스친다. 그러나 결론은 잠시 미뤄두기로 한다. 『푸른 섬 나의 삶』에 담긴 ‘좌충우돌 정착기’를 엿본 후에 결정해도 늦지 않을 테니까. 저자가 들려주는 제주는 다채로운 빛깔을 지닌 섬이다. 한없이 너그러운가 하면 따끔할 만큼 불친절하기도 하다. 가슴이 벅차오르는 절경을 선사하다가도 무시무시한 태풍을 몰고 와 겁에 질리게 만들기도 한다. 그럼에도 여전히 제주가 당신의 ‘푸른 섬’이라고 생각된다면, 그곳으로 떠날 용기를 내기로 결심했다면, 연착륙에 성공하길 응원한다. 『푸른 섬 나의 삶』이 당신에게 건네는 한마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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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 섬 나의 삶 : 서울 여자의 제주 착륙기조남희 저 | 오마이북
푸른 섬 제주에 정착한 지 3년. 그동안 겪은 다사다난 우여곡절 제주 생활기를 ‘서울 처녀 제주 착륙기’라는 제목으로 [오마이뉴스]에 연재했다. 서른셋 젊은 그녀의 도전과 솔직담백한 이야기에 독자들의 응원과 관심은 뜨거웠다. 그것은 ‘떠남’의 미덕을 아는 사람들의 박수였고, ‘미처 떠나지 못한 자’의 부러움과 대리만족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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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ㆍ사진 | 임나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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